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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버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평점 :
머리말
2020년 미시간주에서 한 무리의 백인 극우 극단주의자 그룹이 꾸민 납치 시도가 내전이 임박했다는 징후라고 말한다면, 독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의 내전은 바로 이런 자경단원들에서 시작된다. 무장한 전투원들이 사람들에게 직접 폭력을 행사하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민병대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규정하는 특징이다. 시리아에서 반정부 반란자들은 반군들과 풀려난 수감자들이 뒤죽박죽된 세력으로,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 국가(IS)와 나란히 싸우고 있다. 시리아 최대의 초기 반란 세력 ─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 ─ 도 중앙에서 지휘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느슨하게 연결된 소규모 그룹 수백 개가 뒤섞인 집단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전에서는 산적, 군벌, 민간 군사 기업, 외국 용병, 정규 반군 등이 싸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예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공식 군복을 입은 단일한 전투 부대가 전통적인 무기를 들고 싸우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10)
1 아노크라시의 위협
이라크는 종족, 종교에 따라 정치적 경쟁이 극심한 나라였다. 북부에 사는 대규모 소수 종족인 쿠르드족은 오랫동안 후세인에 맞서 자치권을 얻기 위해 싸웠다. 이라크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시아파는 수니파인 후세인과 역시 수니파가 주류인 바트당의 통치를 받는 것에 분노했다. 수십 년간 후세인은 종교나 종파에 상관없이 공직을 맡으려면 바트당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는 식으로 수니파로 정부 직책을 채우고 또한 나머지 국민들은 잔인한 보안군을 앞세워 탄압함으로써, 소수 종파의 권력을 굳힐 수 있었다. 고작 침공 두 달 반 만에 이라크인들은 경쟁하는 몇몇 종파적 파벌로 뭉쳤다. 미국의 이라크 임시 정부 수반 폴 브리머Paul Bremer는 이라크에 신속하게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위해 바트당을 불법화하고 후세인 정부에서 일한 모든 관리 ─ 거의 전부 수니파 ─ 는 영원히 권력에서 배제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고는 이라크군을 해체함으로써 수니파 수십만 명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16-7)
하지만 후세인 치하에서 권력에서 배제되었던 사람들은 기회를 포착했다. 망명을 끝내고 돌아온 시아파 반정부 인사 누리 알말리키Nouri al-Maliki나 이라크를 이슬람 체제로 변신시키려는 급진 시아파 성직자 무끄타다 알사드르Muqtada al-Sadr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 곧바로 정치적 이전투구가 벌어졌다. 원래 미국은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 간의 권력 분점 합의를 중재하고 싶어 했지만, 이내 인구 구성에 따라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정부를 원하는 알말리키의 요구를 묵인했다. 권력 장악에 뒤이은 혼돈 상태였다. 수니파 반군은 처음에는 미군 병력을 추격하지 않았다(미군 또한 무장이 철저했다). 대신에 반군은 손쉬운 표적에 공격을 집중했다. 미국인들을 돕는 개인들과 단체들이었다. 반군의 목표는 미국 점령에 대한 지지를 줄이거나 근절하고 미군을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야 반군은 미군 병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후세인이 생포되는 2003년 12월 무렵이면 이미 게릴라전이 발발한 상태였다. 17-8)
어떤 나라가 내전을 겪게 될지 여부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지표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향해, 또는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있는지 여부다. 한 나라가 험난한 이행 과정을 거치지 않고 완전한 독재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옮겨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가 지도자의 민주화 시도에는 종종 중대한 퇴보나 유사 독재적인 중간 구간의 정체가 포함된다. 그리고 시민들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정부가 언제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 지망자가 권리와 자유를 조금씩 갉아먹고 권력을 집중하면서 민주주의가 쇠퇴할 수 있다. 헝가리는 1990년에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오르반 빅토르Orbán Viktor 총리가 서서히 체계적으로 민주주의를 독재로 몰아갔다. 대개 바로 이런 중간 구간에서 내전이 일어난다. 전문가들은 이런 중간 구간을 통과하는 나라를 〈아노크라시anocracy〉라고 부른다. 완전한 독재autocracy도,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상태를 가리킨다. 20)
민주화를 진행 중인 정부는 앞선 체제에 비해 ─ 정치적, 제도적, 군사적으로 ─ 허약하다. 독재자와 달리, 아노크라시 지도자는 대개 반정부 세력을 진압하고 충성을 보장할 만큼 충분히 권력이 많거나 무자비하지 못하다. 정부는 또한 종종 지리멸렬하고 내부 분열에 시달리면서 기본적 서비스나 심지어 안전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 야당 지도자들이나 심지어 여당 내부 인사들도 개혁 속도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는 한편, 새로운 지도자들은 신속하게 시민과 동료 정치인, 군 장성 들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 이행의 혼돈 속에서 이 지도자들은 종종 실패한다. 아노크라시에서 패자들 ─ 예전 엘리트층, 야당 지도자, 한때 이득을 누렸던 시민 ─ 은 정부가 공정할지, 또는 자신들이 보호받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미래에 대한 진정한 불안이 조성될 수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자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를 기다리느니 아직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힘이 강할 때 싸움을 벌이는 편이 나았다. 23-4)
2 고조되는 파벌 싸움
정치 불안정 연구단은 오래전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던 중에 인상적인 양상을 발견했다. 각국의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이 정치 불안정 및 폭력과 강한 관계가 있었다. 그것은 〈파벌주의〉라고 명명한 극단적 형태의 정치적 양극화였다. 파벌주의로 분열되는 나라들에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종족이나 종교, 인종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정당들이 존재하는데, 이 정당들은 타자를 배제하고 희생시키면서 통치하려고 한다. 〈파벌화되었다〉고 간주되는 나라들에 존재하는, 정체성에 기반을 둔 정당들은 대개 비타협적이고 유연하지 않다. 정당들 사이의 경계가 엄격해서 치열한 경쟁과 심지어 전투로까지 이어진다. 경쟁하는 집단들은 종종 규모가 비슷하다. 실제로 두 집단 사이에 힘의 균형이 존재할 때 이처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다. 승리나 패배의 결과가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이 당들은 또한 성격상 종족적, 종교적 민족주의에 호소해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지배적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35-6)
전문가들이 발견한 것처럼, 파벌주의는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 집단의 엘리트층과 지지자들이 기회를 감지한다. 아마 정권이 약해지는 순간이나 인구 변동 때문에 불만이나 취약성의 느낌이 고조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사람들을 정책의 쟁점을 중심으로 집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과 관련된 단어나 상징 ─ 종교 문구, 역사적 슬로건, 시각적 이미지 ─ 을 활용함으로써 충성을 부추긴다. 밀로셰비치가 코소보에서 오스만 전투의 기억을 환기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언어 구사는 점차 집단의 독자적 성격을 강화하면서 사회에서 긴장을 조성하며, 만약 이 파벌이 집권하면 흔히 지위를 이용해서 경쟁 파벌을 탄압한다. 정당한 법 절차를 잠식하고 공공연한 전투성을 부추긴다. 그리하여 경쟁 집단들 사이에 공포와 불신이 커지면서 긴장이 한층 높아지고, 각 집단이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력행사를 고려하게 된다. 이윽고 이런 분열이 정치의 장에서도 나타난다. 37)
종족적 민족주의, 그리고 파벌을 통한 표출은 한 나라에서 스스로 강화되지 않는다. 한 사회가 정체성 구분선을 따라 분열되려면 대변자가 필요하다. 특정 집단의 이름으로 기꺼이 차별을 호소하고 차별 정책을 추구하려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대개 공직에 오르거나 그런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 쟁탈전을 지지할 유권자 집단을 가두려는 방편으로 공포감을 자극하고 부추긴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종족 사업가ethnic entrepreneur〉가 그것이다. 이 용어는 1990년대에 밀로셰비치나 투지만 같은 인물들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지만, 그 후에 그런 현상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고 있다. 이 전쟁 선동가들은 대개 권력을 잃을 위험이 아주 높거나 최근에 잃은 경우가 많다. 그들은 정체성에 기반한 민족주의를 부추겨 폭력과 혼돈의 씨앗을 뿌리면서 연구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부활을 위한 도박〉 전략을 활용한다. 41-2)
흥미롭게도, 보통 시민들은 대개 종족 사업가들에 대해 분명히 안다. 이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의제를 갖고 있고 전부 진실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기 삶에 위협이 고조된다고 느끼면 기꺼이 지지를 보낸다. 시민들은 만약 아무리 희박할지언정 반대파가 자신들을 말살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게 되면, 아무리 악랄한 사람이더라도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지도자에게 의지하게 마련이다. 투지만이 크로아티아 문장을 채택하고 크로아티아 정부에서 세르비아인들을 숙청하자, 크라이나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이 갑작스러운 사태를 밀로셰비치의 경고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해석했다. 마찬가지로, 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계 사람들이 지배하는 유고슬라비아군에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라고 명령했을 때, 크로아티아인들은 투지만이 주창한 바와 같이 자신들의 생활 방식이 공격을 받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양 파벌 모두 결국 자신들을 구하려면 폭력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43-4)
3 지위 상실이 가져온 암울한 결과
파벌화된 아노크라시에 불만을 품은 채 살아가는 종족 집단은 어디에나 많으며, 대부분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에는 80개가 넘는 종족 집단이 있고 주요 종교만 최소 5개에 이른다. 하지만 오직 소수만이 조직을 이루어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세계에서 종족적으로 가장 다양한 나라로 손꼽힌다. 360개가 넘는 부족과 종족-언어 집단이 있지만, 지금까지 4개 집단 ─ 암본인, 동티모르인, 아체인, 파푸아인 ─ 만이 무기를 들었다. 학자들이 처음 발견한 한 가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실인데, 폭력적으로 바뀐 집단들이 대체로 정치 과정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은 투표권이 제한되고 정부 공직에 거의 전혀 들어가지 못한다. 정치권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하지만 학자들이 발견한 폭력의 가장 유력한 결정 요인은 한 집단의 정치적 지위의 궤적이다. 일단 권력을 잡았다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특히 싸움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 54)
정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위 격하downgrading〉라고 지칭한다. 지위 격하는 정치적, 인구학적 사실인 만큼이나 심리적 현실이기도 하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기독교도든 무슬림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지위가 격하된 파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집단의 성원들이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지위가 상실됨을 느끼고 그 결과 원한을 품는다는 사실이다. 지위 격하는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라 지위가 역전된 상황인 것이다. 지배적인 집단이 어느 순간 누구의 언어를 사용하고, 누구의 법을 집행하며, 누구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옮겨 간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의 가난이나 실업, 차별을 참을 수 있다. 조잡한 학교나 열악한 병원, 방치된 기반 시설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참지 못한다. 원래 자기 것이라고 믿는 장소에서 지위를 상실하는 것은 못 참는다. 21세기에 가장 위험한 파벌은 한때 지배적이었으나 쇠퇴에 직면한 집단이다. 54-6)
전문가들은 전쟁을 벌이는, 지위가 격하된 많은 종족 집단이 〈토박이sons of the soil〉 유형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토박이〉는 한 지역의 원주민이거나 그 역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태어난 땅의 정당한 상속자로서 특별한 혜택과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집단이 지배적인 것은 그들이 다수 지위를 차지하거나 처음에 그 영토에 거주하거나 정복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토착민〉이라고 여기며, 나중에 그 땅에 정착하거나 지역의 주요 언어를 모어로 사용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외부자〉라고 규정한다. 1800년 이래 벌어진 내전을 다룬 한 연구에 따르면, 〈토박이〉 범주에 해당하는 종족 집단이 반란을 일으키는 비율은 약 60퍼센트로, 다른 범주 ─ 28퍼센트 ─ 에 비해 두 배 정도 높았다. 이런 집단이 위험한 이유는 저항 운동을 조직하는 역량이 강하고 불만을 느끼는 정도가 압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내전을 촉발하는 주체를 결정하는 데 주요한 요인이다. 56-7)
4 희망이 사라질 때
1922년 당시 북부에 살던 아일랜드 가톨릭교인들은 나머지 아일랜드 지역과 더불어 독립을 얻지 못했다. 영국은 아일랜드 자유국을 만들었지만, 북부의 6개 주는 영국의 통제하에 남겨 두었다. 설상가상으로 웨스트민스터 당국은 북아일랜드의 경계선을 수정해서 개신교인들 ─ 스스로 영국인이라고 생각한 이들 ─ 이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보장했다. 결국 가톨릭교인이 아니라 개신교인이 새로 구성된 반자치 정부를 지배하면서 교육과 법률, 공공사업, 산업, 농업 등을 통제하게 되었다. 웨스트민스터 당국은 개신교인들이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한 그들 마음대로 통치하도록 허용했다. 북부의 가톨릭교인들은 아일랜드의 나머지 지역과 차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기네 땅에서 소수자가 되었다. 세기 중반에 이르러 북아일랜드에는 내전의 밑바탕이 되는 조건이 두루 존재하게 되었다. 부분적 민주주의,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경쟁하는 파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정치에서 배제된 토착 주민 등이 그것이다. 64-5)
가톨릭교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북아일랜드에서 공정한 정치적 대표권과 평등한 대우를 얻기 위해 수십 년간 평화롭게 시위를 벌인 바 있었다. 편지를 쓰고, 시민권 협회를 결성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야외 집회와 연좌시위를 하고, 1968년에는 벨파스트에 있는 북아일랜드 의회를 점거하기도 했다. 1969년 1월에는 미국의 셀마-몽고메리 행진을 본보기로 삼아 벨파스트에서 데리까지 〈대행진〉을 조직했다. 하지만 개신교인들은 내내 타협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영국 군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가톨릭교인들은 민주적인 런던 정부가 북아일랜드 개신교인들의 최악의 경향을 제어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지역 개신교인들이 완강하게 자신들을 권력에서 배제하는 것은 알았지만, 영국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파벌적이고 유사 민주적인 북아일랜드 지도자들보다는 그래도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영국 군인들이 반란 진압 전술을 구사하자 진실이 드러났다. 바로 이 시점에서 가톨릭교인들은 희망을 잃었다. 67)
시위 자체는 내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실 시위는 기본적으로 희망에서 우러나는 행동이다. 일반 시민이 집을 나와 종이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가서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는 것은 정부가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들의 삶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정부가 자신들에게 총을 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 너무 무서워서 행동에 나서지 못하거나 ─ 결의를 불태우며 나가게 마련이다. 휴대 전화 하나만 달랑 들고서 거리로 나가는 것은 낙관적인 행동이다. 체제가 스스로 교정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시위가 실패로 돌아가면 희망이 사라지고 폭력의 구실이 생긴다. 대개 오랫동안 평화 시위가 벌어지고 난 뒤 내전이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위자들 스스로가 병사로 변신하는 것은 아니다. 불만을 품은 집단의 호전적인 성원들이 이제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다고 느끼면서 무력 저항을 조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71)
5 촉매
2010년 이래 해마다 세계는 민주주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나라보다 내려가는 나라가 더 많은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새롭게 민주화된 나라들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신성불가침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부유한 자유주의 국가들에서도 이런 퇴보가 나타난다. 적어도 한동안 아프리카는 이런 추세에서 두드러진 예외였다. 지난 10년의 대부분 동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민주주의가 축소되지 않고 계속 확대된 유일한 지역이었다. 같은 시기에 아프리카 나라들은 인터넷 사용률이 매우 낮았다. 아프리카에서 인터넷 접속이 늘어난 때는 2014년인데, 당시 소셜 미디어가 주요한 소통 수단이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는 2015년부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진출했으며, 이 과정에서 충돌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2018년 이후 새롭게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충돌은 계속 고조되었다. 한 분석가에 따르면, 이는 〈페이스북이 지배하는 인터넷 접속이 급증하는 시기〉와 일치했다. 82-3)
문제는 소셜 미디어가 추구하는 사업 모델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구글, 트위터 같은 정보 기술 기업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을 최대한 오랫동안 자사 플랫폼에 잡아 두어야 ─ 또는 그들의 표현대로 〈관여하게engaged〉 만들어야 ─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행동 알고리즘은 스스로 강화하면서 이용자들을 위험한 경로로 인도하는 기이한 정보 창고를 만들어 냈다. 음모론과 반쪽 진실half-truth,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극단주의자들로 나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무서운 이유는 바론 이런 〈관여〉라는 사업 모델 때문이다. 현재의 모델은 자신이 퍼뜨리는 정보가 많은 관심을 끌기만 하면 진실인지 아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날 뉴스와 정보의 새로운 게이트 키퍼 노릇을 담당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누가 자사의 플랫폼을 사용하는지, 또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제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실제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정보를 최대한 널리 퍼뜨리는 것이 빅테크 주주들에게는 이익이 된다. 84-6)
현대사에서 반민주적 성향의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퇴보를 겪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전에는 군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독재가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유권자들 스스로가 독재를 탄생시킨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주된 이유는 소셜 미디어 덕분에 후보자들이 하나의 정부 형태로서 민주주의에 관해 시민들이 가질 법한 의심을 키우거나 편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짜 정보 캠페인을 활용해서 제도를 공격하면서 대의 정부와 자유 언론, 독립적 사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훼손하고, 관용과 다원주의에 대한 지지를 갉아먹을 수 있다. 또한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법질서를 강조하는 극우파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부정 선거를 주장하고 최소한 일부 유권자들에게 선거 결과가 뒤집어졌다고 설득하면서 시민들이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수 있다. 89)
6 우리는 얼마나 가까운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의 저자들에 따르면, 공화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통제를 하고 싶어 안달인 국내의 집단이었다. 이런 파벌의 지도자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다른 시민들의 권리나 공동체의 항구적이고 종합적인 이익을 거스르면서35 권력을 굳히고 공공선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드높일 것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커다란 위협이라고 본 파벌 유형은 계급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들은 재산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지키고 부의 재분배를 막기 위해 정치권력을 집중시킬 것을 우려했다. 매디슨의 삼권 분립 ─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 모델은 이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18세기 지도자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이 우려한 〈파벌화〉가 계급이 아니라 종족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1789년에는 적어도 연방 차원에서는 미국의 유권자가 전부 백인 ─ 그리고 전부 남성 ─ 이었기 때문이다. 106)
정체성 기반 정치로의 변화가 대거 시작된 때는 1960년대 중반으로, 당시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은 민권 법안을 지지함으로써 남부 백인들을 배신했다. 1964년 존슨이 민권 법안을 내놓자 일대 격변이 일어났다. 민주당은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지만, 존슨과 대결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그는 민권 법안에 반대했다)는 남북 전쟁 재건기 이래 최남부에서 선거인단 표를 싹쓸이한 첫 번째 공화당 후보였다. 이후 수십 년간 다른 정체성의 표지들이 정치화되었다. 종교가 그다음이었다. 공화당 엘리트들은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점점 결집하는 신자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점점 더 낙태 반대pro-life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기독교 우파와 관련된 정치 단체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의 지도자인 제리 폴웰 시니어Jerry Falwell Sr. 같은 사람들이 점차 득세하게 되었다. 21세기 초에 이르면, 기독교인이나 복음주의자라면 공화당에 투표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06-7)
한 나라의 파벌주의 수준은 5점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5점이 가장 파벌주의가 약하고 1점이 가장 강하며, 3점은 확실히 위험 구간이 된다. 2016년 미국은 3점 ─ 파벌화됨 ─ 으로 떨어졌고, 지금도 우크라이나, 이라크와 나란히 그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 또한 2016년에 3점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 수준의 파벌주의는 과거에 두 차례뿐이었다. 남부 민주당이 비타협으로 일관하면서 비백인을 법의 동등한 보호에서 배제한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리고 민권 시위와 베트남 전쟁, 반체제 운동을 진압하는 데 몰두한 부패한 정부로 나라 전체가 요동치던 1960년대 중반에 그러했다. 두 시기 모두 미국의 정당들은 나라의 미래에 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전망을 갖고 있었다. 나라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나라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 집단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초법적 조치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자신의 전망을 폭력적으로 추구한다. 오늘날 공화당은 약탈적 파벌처럼 행동하고 있다. 109-10)
오늘날 미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미국은 아노크라시의 문턱에 선 파벌화된 나라로, 빠른 속도로 공공연한 반란 단계로 접근하는 중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내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의사당 습격 사건을 계기로 이제 정부는 극우파 단체들이 미국과 민주주의에 제기하는 위협을 간단히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공격에 가담한 많은 투사 중 일부는 실전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아직 의사당 습격이 재연되거나 어떤 양상의 일부가 될지를 알지 못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국인들은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불안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의 책임인지 의문을 던질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혼돈을 틈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얻지 못한 것을 폭력을 통해 획득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공공연한 반란 단계에 정말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지금 당장 한 가지는 분명하다.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이 점점 더 조직화되고 위험해지고 완강해지며,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118)
7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테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그 공격 대상 ─ 시민들 ─ 이 정치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테러 공격을 막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 아일랜드 공화군, 하마스, 타밀 호랑이 등은 모두 일반 시민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길수록 정부가 평화를 대가로 테러리스트들에게 더 많은 양보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어느 쪽이든 간에 극단주의자들이 이득을 얻는다. 국가 지도자로 하여금 극단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정책 ─ 총기 규제 폐지, 엄격한 이민 정책 추진 ─ 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들과 가까운 극단적 지도자를 선출하게끔 유권자들을 설득한다. 테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성공을 거두기가 굉장히 쉽다.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감시가 적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단체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것을 가로막는 헌법적 제약이 많기 때문에 외국 테러리스트들보다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그들은 미국인들에게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123-4)
극단주의자들은 대개 몇 가지 고전적 문서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떠받치는 영감을 발견해 낸다. 미국에는 연방 수사국이 〈인종주의 우파의 바이블〉이라고 지칭한 『터너의 일기The Turner Diaries』가 있다. 아리아인 혁명이 일어나 미국 정부를 전복한다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1978년에 네오나치 단체 민족 동맹을 이끈 윌리엄 피어스William Pierce가 쓴 이 이야기는 인종적 원한을 인종 전쟁으로 끌어올리는 각본을 제공하면서 어떻게 비주류 활동가 무리가 연방 정부를 무너뜨리고 다른 백인들을 〈각성시켜〉 자신들의 대의로 이끄는지 ─ 테러 공격, 대량 살상 폭탄 ─ 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터너의 일기』는 극우 테러리즘을 직접적으로 고무한 바 있다. 이 책에는 연방 수사국 본부 폭탄 공격과 의사당 건물 습격, 그리고 〈인종 배반자들〉 ─ 정치인, 변호사, TV 뉴스 진행자, 판사, 교사, 목사 등 ─ 을 교수대에 목매달아 죽이는 〈밧줄의 날〉 제정 등에 관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124-5)
오늘날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은 이른바 가속주의accelerationism를 신봉한다. 현대 사회는 구제할 길이 없으며 그 종말을 한시바삐 앞당겨야만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다는 묵시록적 믿음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미국을 반란 단계에서 위로 끌어올리고 또한 어쩌면 종족 청소로 이끌기 위해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다. 가속주의 신봉자들은 일반적인 수단 ─ 집회, 우파 정치인 선출 ─ 으로는 충분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폭력을 통해 변화를 재촉해야 한다고 믿는다. 테러리즘 전문가 맥냅이 설명한 것처럼, 그들은 충돌을 유발하기 위해 코로나 록다운부터 인종 정의를 위한 시위에 이르기까지 온갖 구실을 찾는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이런 행동을 계기로 폭력의 연쇄 반응이 시작되어 온건한 시민들 ─ 정부의 억압과 사회적 불의를 눈뜨고 지켜보는 시민들 ─ 도 그들의 대의에 동참하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에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대규모 충돌이 필요하다고 믿는 극우 단체가 수백 개 존재한다. 128-9, 132)
반란자들이 강력한 민주주의에 대항해서 사용하는 전략은 무수히 많다. 한 가지는 본질적으로 소모전으로, 사람과 공공 기반 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꾸준히 이어 가는 방식이다. 또 다른 전략은 협박이다. 중앙 정부를 무너뜨릴 수 없다면, 폭력을 행사해서 사람들을 직접 굴종으로 몰아갈 수 있다. 또 다른 테러 전략은 〈더 세게 지르기outbidding〉이다. 한 전투적 집단이 지배권을 공고히 굳히기 위해 다른 집단들과 경쟁할 때 이 전술을 구사한다. 극단적 이데올로기와 활동 방식은 더 헌신적인 전투 부대와 단호한 지지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으며, 대의에 헌신하지 않는 이들을 솎아 내면서 빈약한 성과, 편 바꾸기, 배신 등의 문제를 줄인다. 마지막 테러 전략은 〈망치기spoiling〉다. 온건한 집단들이 새로운 종족 국가를 세우려는 원대한 목표를 위태롭게 만들고 뒤엎으려 할 때, 테러리스트들이 구사하는 전술이다. 온건한 반군 집단과 정부의 관계가 개선되어 평화 협정이 임박한 듯 보일 때 보통 이 전략이 작동한다. 133-5)
# 그레고리 스탠턴Gregory Stanton이 쓴 문서 「제노사이드의 10단계The Ten Stages of Genocide」
1. 분류 : 권력을 쥔 한 정체성 집단이 시민들 사이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2. 상징화 : 그들 자신이나 다른 집단을 가리키는 일정한 표식을 도입한다.
3. 차별 : 법률이나 관습을 동원해서 다른 이들의 권리를 부정하거나 억압한다.
4. 비인간화 : 표적이 된 소수자를 범죄자나 인간 이하로 폄하한다.
5. 조직화 : 군대나 민병대를 모아서 다른 집단을 근절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6. 양극화 : 선전을 확대하면서 표적 집단을 더욱 악마화하고 분리한다.
7. 준비 : 군대를 조직하고, 사람들에게 피해자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주입한다.
8. 박해 : 본격적이고 집단적으로 표적 집단을 탄압한다.
9. 절멸 : 군대와 법집행 기관의 도움을 받아 표적 집단을 완전히 말살한다.
10. 부정 : 가해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부정한다.
흔히들 종족 청소가 증오에 의해 추동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증오는 존재하지만 종족 청소를 부추기는 진짜 요인은 공포다. 자신이 위협받고 취약하다는 공포 말이다. 폭력 사업가들은 이런 불안을 활용하면서 적이 자기를 해치기 전에 먼저 적을 해치라는 신호를 보내는 생존 본능에 편승한다. 이런 실존적 공포가 국내의 군비 경쟁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 집단이 불안을 느끼게 되면 안전을 확보하고자 민병대를 결성하고 무기를 사들인다. 그러면 경쟁 집단도 불안을 느끼면서 똑같이 민병대를 결성하고 무기를 사들인다. 또다시 앞의 집단은 훨씬 더 많은 무장을 갖출 수밖에 없다. 양쪽 모두 자신들이 방어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믿지만, 그 결과 한층 더 불안감이 조성되어 언제든 전쟁으로 이어지는 나선 운동이 촉발될 수 있다. 사람들이 무장을 갖추면 이런 식의 안전 딜레마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의 총기 판매는 2020년에 역대 최고를 기록해서 1월에서 10월 사이에 1천7백만 정이 팔렸다. 137-8)
8 내전을 예방하기
1986년 아파르트헤이트 정부가 억압을 확대하자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들 ─ 미국, 유럽 공동체, 일본 ─ 이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미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는데, 1989년 비타협적인 P. W. 보타P. W. Botha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된 F. W. 데클레르크F. W. de Klerk는 중요한 계산을 했다. 국가의 생존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집권당인 국민당 소속이긴 했지만 데클레르크는 실용주의자이기도 했다. 경제가 붕괴하면 백인이 쌓아 둔 부도 붕괴할 터였다. 공화국 인구의 4분의 3은 흑인이었다. 백인 통치를 계속 고집하면 내전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는데, 백인이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데클레르크는 내전 대신 아프리카 민족 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를 비롯한 흑인 해방 정당에 대해 29년간 이어진 금지를 철폐하고, 언론 자유를 복원했으며, 아프리카 민족 회의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를 포함한 정치범을 석방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내전 직전에 멈춰설 수 있었다. 141)
198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오늘날의 미국보다 내전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백인이 흑인을 억누르기 위해 만든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는 1965년까지 미국에 존재한 유사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보다 훨씬 더 억압적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흑인이 백인과 결혼하거나, 백인 구역에 사업체를 설립하거나, 〈백인 전용〉 표기가 된 해변이나 병원, 공원에 가는 행위는 불법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노크라시 역사도 현대 미국보다 훨씬 길어서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미국은 중간 구간에 잠깐 머물렀을 뿐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또한 스스로 〈토박이〉라고 생각하는 주요 집단이 두 개 있었다. 흑인과 백인 모두 이 땅에 대한 역사적 권리를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한 집단만이 그런 주장을 한다(주변으로 밀려나고 상대적으로 인구도 적은 원주민은 예외다). 198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질 위협에 비하면 오늘날 미국의 위험성은 크지 않은데, 그래도 어쨌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전쟁을 피했다. 142)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례를 보면 지도자 ─ 기업 지도자, 정치 지도자, 반대파 지도자 ─ 의 힘이 떠오른다. 지도자는 위험에 직면해서 타협을 할 수 있고, 또는 싸움을 선택할 수 있다. 데클레르크와 만델라는 협력하는 쪽을 택했다. 만델라를 비롯한 흑인 지도자들은 백인들이 상당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계속 유지하게 해주는 조건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데클레르크는 흑인에게 완전한 시민권과 과반수의 정부 장악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었다. 보타는 데클레르크처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 무력 저항에 찬성했던 만델라는 종족적 폭력을 옹호할 수 있었다. 또는 종족 사업가가 되어 내전을 통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흑인 동포들의 분노와 원한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 치유와 통합, 평화를 설파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더 많은 충돌과 유혈 사태를 겪지 않게 만든 것은 책임을 맡은 지도자들이었다. 1993년 데클레르크와 만델라는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142)
한 나라의 거버넌스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경제 개선보다 더욱 중요하다. 부유한 나라가 경제 번영에 걸맞는 수준에 비해 정부가 좋지 않으면, 〈이후 시기에 내전이 발발할 위험성이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미국 같은 부유한 나라의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하게 되면 설령 1인당 소득이 바뀌지 않더라도 내전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달리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어떤 특징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할까? 피어런은 〈좋은 일은 대개 동반하는 경향이 있지만〉 세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8 법치(법적 절차의 평등하고 공정한 적용), 발언권과 책임성(시민들이 정부를 선택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정도, 그리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유능한 정부(공공 서비스의 질과 행정 조직의 질과 독립성)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은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도와 정치 제도가 탄탄하고 정당성과 책임성이 있는 정도를 반영한다. 거버넌스가 개선되면 이후에 전쟁이 벌어질 위험성이 줄어든다. 144-5)
정치적 양극화 때문에 내전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내전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파벌화다. 시민들이 종족이나 종교, 지리적 구분을 바탕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정당들이 약탈적으로 바뀌어 경쟁자를 배제하고 주로 자신과 지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실행할 때 파벌화가 완성된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만큼 파벌화를 부추기고 가속화하는 것은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본보기이자 자유의 횃불이지만, 우리는 돈과 극단주의가 우리 정치에 침투하게 방치했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적 제도와 사회를 강화할 수 있다. 우리는 뉴딜을 통해 이런 일을 해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사람들을 다시 일하게 하고, 많은 미국인을 빈곤에서 구했으며, 경제 체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을 회복시키면서 희망을 되살렸다. 이제 다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자기 차별적이고 약탈적인 파벌주의의 경로에서 벗어나 우리 나라의 장기적인 건전성에 대한 희망을 회복시키기 위해 공적 담론을 되찾고 중재해야 한다. 154, 1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