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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휴가 갈 땐, 주기율표 - 일상과 주기율표의 찰떡 케미스트리
곽재식 지음 / 초사흘달 / 2021년 12월
평점 :
1. 수소와 매실주 H
수소 원자는 ⊕전기를 띠기 쉽다. 그런데 수소 원자는 그냥 깔끔하게 ⊕전기를 띠는 상태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살짝 ⊕전기를 띠는 듯 마는 듯한 느낌으로 ⊖전기를 띠기 쉬운 다른 물질을 약간만 끌어당기는 묘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상태로 수소 원자가 ⊖전기를 띠기 쉬운 다른 물질을 슬쩍 잡아당기는 현상을 수소결합hydrogen bond이라고 한다. 수소결합은 그다지 힘이 세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수소결합으로 연결된 부분은 어떨 때는 살짝 붙어 있다가, 어떨 때는 다른 힘을 못 이겨 떨어지기도 한다. 즉, 여러 가지 다양한 경우가 생긴다. 이 같은 성질 덕분에 수소는 갖가지 복잡하고 이상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온갖 물질이 별별 복잡한 형태로 다채로운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하는 생명체의 몸속에서 수소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생명체가 복잡한 이유의 근원은 수소결합의 힘이 애매한 정도라서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갖고 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0-1)
수소결합, 즉 수소 원자가 ⊖전기를 띠기 쉬운 물질을 적당한 힘으로 끌어당기는 이 이상한 특징은 생명체가 유전 받은 대로 자기 몸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가 들어 있는 DNA는 자기와 똑같은 DNA를 복사해서 한 벌 더 만들어 내거나, 짝이 맞는 RNA를 만들어 내는 등의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이 화학반응에서 DNA가 서로 끌어당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수소결합이다. 이런 화학반응은 생명체가 선대로부터 유전된 그대로 자신의 몸을 만드는 현상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에서 수소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수소가 흔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단, 지구를 기준으로 보면 오직 수소 원자만 모여서 생긴 수소 기체는 그리 흔치 않다. 수소 기체는 지구에 드물지만 다른 원자 옆에 붙어 있는 수소 원자는 흔한 편이다. 물에는 산소 원자와 함께 수소 원자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바다는 수소 원자를 가득 품은 거대한 저장고다. 11-2)
2. 헬륨과 놀이공원 He
사실 태양은 전체 무게의 70% 이상을 수소가 차지하고 있으므로 거대한 수소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소 원자들은 엄청나게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몇 단계에 걸쳐 서로 합쳐져 헬륨 원자로 변하는 수가 있다. 이런 현상을 원자의 핵끼리 서로 붙는다고 해서 핵융합nuclear fusion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태양이 강한 빛과 열을 사방으로 내뿜는 것이고, 그 덕분에 우리는 환하고 따뜻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 헬륨이 쓸모가 많은 까닭은 특이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니다. 정반대로 헬륨은 아무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서 유용하다. 헬륨은 불을 댕겨도 타오르지 않고, 금속을 헬륨 속에 놓아두어도 녹슬지 않는다. 한마디로 헬륨은 아무 성질이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질인 물질이다. 주기율표에서 헬륨과 같은 열에 있는 네온, 아르곤 같은 물질들은 다들 이렇게 화학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런 물질들을 묶어서 비활성기체noble gas라고 부른다. 20-2)
매우 정밀한 가공작업을 하거나 높은 열을 가해야 하는 작업장을 생각해 보자. 세밀하게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화학반응을 잘하는 물질이 주변에 나돌고 있으면 불필요한 화학반응이 일어나 재료가 손상될 수 있다. 바로 이럴 때, 제조 시설에 헬륨을 불어 넣어 주면 주위가 헬륨으로 가득 차 불필요한 화학반응을 일으킬 대상이 아예 없는 깨끗한 환경이 마련된다. 당연히 불이 붙지도 않는다. 헬륨은 워낙에 아무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성질을 띤 까닭에 자기들끼리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액체로 만들기가 어렵다. 평범한 1기압에서 날아다니던 헬륨 원자들이 서로 들러붙어 액체가 되게 하려면 온도를 영하 269℃까지 낮추어야만 한다. 액체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온도를 낮춰야 하는 물질이다 보니, 일단 액체로 만든 헬륨을 뿌리면 주변 온도 역시 아주 낮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헬륨은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재료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지 않고 냉각 작업에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23-5)
3. 리튬과 옛날 노래 Li
리튬 원자는 전자를 잃고 ⊕전기를 띠는 상태로 쉽게 변하는 성질이 있다. 리튬 배터리는 간단히 말해 리튬 원자가 ⊕전기를 잘 띤다는 점을 이용해서 그 전기를 뽑아 쓰는 장치라고 보면 된다. 리튬은 세상 모든 원자 중에 수소, 헬륨 다음으로 평균 무게가 적게 나가는 원자다. 가볍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수소, 헬륨, 리튬은 모두 성질이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원자들의 차이는 원자핵에 양성자가 몇 개 있느냐 하는 것밖에 없다. 양성자가 한 개만 있으면 수소 원자가 되어 불에 잘 타는 물질이 되기 쉽지만, 똑같은 양성자인데도 두 개가 꼭 붙어 있으면 헬륨 원자가 되어 아무런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성질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수소 원자를 이루고 있는 것과 똑같은 양성자가 한 개가 아니라 세 개가 달라붙어 있으면 리튬 원자가 되는데, 이번에는 금속 덩어리가 되기 쉽다. 100종이 넘는 세상 모든 원소 간의 차이는 원자의 핵에 양성자가 몇 개 들어 있는지 그 개수의 차이밖에 없다. 29-31)
주기율표에서 리튬은 소듐의 바로 위 칸에, 포타슘은 소듐의 바로 아래 칸에 써넣는 원소다. 즉, 세 가지 원소는 주기율표의 같은 열에 주르륵 적혀 있다. 이는 현대의 화학자들이 리튬, 소듐, 포타슘을 성질이 비슷해 하나로 묶을 만하다고 본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원소들은 다들 원자가 ⊕전기를 잘 띠고, 화학반응을 잘하며, 한데 뭉쳐 있을 때는 쇳덩어리 비슷한 모양을 이룬다. 주기율표에서는 이들 모두 맨 첫 번째 열에 나열돼 있어서 1족 원소group 1 family라고 부르기도 한다. 리튬을 주원료로 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물질들의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돕느라 리튬을 쓰는 일도 있다. 가만히 두면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물질들에 적당한 촉매catalyst를 섞어 주면 그때부터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가 있다. 이 과정에서 촉매 자신은 거의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물질은 계속 빠르게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변화하도록 도와준다. 이 때문에 많은 화학 회사에서는 적합한 촉매를 개발하는 일을 핵심 기술로 여긴다. 34-6)
4. 베릴륨과 보물찾기 Be
우라늄은 중성자neutron와 충돌하면 원자핵이 둘로 나뉘어 다른 원자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원자핵이 쪼개지는 현상을 핵분열nuclear fission이라고 하며, 핵분열 현상이 일어날 때는 강한 열이 나온다. 그런데 이 과정을 유지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성자들이 원자로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고 계속 우라늄 사이를 돌아다니도록 무엇인가로 막아 주어야 한다. 중성자는 이름 그대로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 상태의 입자다. 그래서 딱히 다른 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키지도 않고, 서로 밀고 당기는 일도 거의 없다. 유령 같은 중성자를 원자로 안에 가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 중성자는 다른 원자의 중심부인 핵 근처에서 그 핵을 이루는 양성자 또는 중성자에 이끌릴 수 있다. 그러니까 중성자는 대체로 다른 물질들을 그냥 통과하는 편이지만, 가끔 다른 원자의 정중앙 근처를 지나게 될 때는 그 원자핵에 들어 있는 양성자나 중성자에 이끌려 붙잡히거나 진행 방향이 바뀔 수 있다. 42-3)
베릴륨은 세상의 모든 원자 중에 평균 무게가 네 번째로 가볍고, 그만큼 원자 자체의 크기도 작은 편이다. 베릴륨의 원자핵은 대개 양성자 네 개와 중성자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다. 주기율표에서 수소, 헬륨, 리튬에 이어서 네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까닭이 바로 양성자가 네 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성자가 베릴륨의 원자핵 근처를 지나갈 때면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오묘한 수준의 힘에 이끌린다. 그리고 이 힘 때문에 중성자의 진행 방향이 꺾여서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런 현상이 연달아서 일어나면 마치 중성자가 베릴륨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즉, 베릴륨이 중성자를 튕겨내는 반사재reflector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원자로 안에 베릴륨을 넣어 그릇처럼 만들고, 그 안에 중성자와 우라늄을 넣어 반응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면 제아무리 유령 같은 중성자라도 베릴륨에 가로막혀 계속해서 튕겨 나가고, 원자로 안에서는 연쇄반응이 꾸준히 일어난다. 43)
5. 붕소와 애플파이 B
유리는 규소와 산소 원자들이 서로 붙어 있는 물질을 주재료로 만든다. 특별한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여기에 소듐과 칼슘 원자도 약간 섞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유리는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약하다. 특히 유리를 뜨겁게 하면 유리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이 떨린다. 사실 어떤 물체가 ‘뜨겁다’거나 ‘온도가 높다’는 말 자체가 그 물체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리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모든 원자가 빠르게 떨리다 보면 규소 원자와 산소 원자 사이에 끼어든 소듐 원자 근처에 틈이 생길 수 있다. 원자들 사이에 틈이 생기면 유리의 강도가 약해진다. 다행히 요즘 주방에서 사용하는 유리 제품들은 제법 높은 열에도 잘 견디는 것들이 있다. 유리를 만들 때 붕소 성분을 약간 넣기 때문이다. 규소 원자와 산소 원자 사이에 섞여 있는 소듐 원자 때문에 틈이 생길 만한 자리마다 붕소 원자가 끼어들게 해서 그 틈을 메워 버리는 것이다. 붕소 원자의 크기는 그런 역할을 하기에 꼭 맞다. 49-50)
붕산boric acid은 황산이나 염산, 질산처럼 다른 물질을 무시무시하게 녹이지는 않는다. 그런 대표적인 산성 물질에 비하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정도도 훨씬 덜하다. 붕산은 이처럼 어중간한 산성을 띠는 덕분에 살충제로 요긴하게 쓰인다. 붕소는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 재료다. 반도체의 주재료는 규소인데, 순수한 규소에는 전기가 잘 흐르지 않는다. 여기에 규소와 성질이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붕소를 불순물처럼 아주 조금 넣어 주면 훌륭한 반도체가 된다. 규소에 붕소를 살짝 뿌려 주는 이 작업을 도핑dopping이라고 한다. 도핑 작업을 거치면 규소와 붕소의 비슷한 듯 다른 듯한 미묘한 성질 차이 때문에 어떤 때는 전기가 흐르고 어떤 때는 흐르지 않는 반도체의 특징이 생겨난다. 베릴륨이 중성자를 잘 튕겨 내서 핵분열을 부채질하는 것과 반대로 붕소는 중성자를 잘 흡수하는 성질을 지녔다. 그래서 핵분열이 과도하게 일어나서 원자력이 지나치게 강해질 것 같으면 붕소를 넣어 핵분열을 줄인다. 52-3)
6. 탄소와 스포츠 C
탄소를 이용하면 다양한 물질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내기가 무척 편리하다. 아주 단순한 것부터 별 희한한 성질을 띠는 복잡한 물질까지, 탄소 원자를 이리저리 조합하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탄소가 이렇게나 다양한 물질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까닭은 탄소 원자 한 개가 다른 원자 네 개와 결합하려는 성질을 띠기 때문이다. 탄소 원자 하나에 다른 원자를 붙잡을 수 있는 갈고리가 네 개 달렸다고 상상하면 적당하겠다. 갈고리가 네 개나 있는 탄소를 이리저리 붙여 가면서 뭔가를 만든다면 다른 원소를 재료로 삼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탄소 원자가 다른 원자와 달라붙는 힘은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다. 어떤 조건이 갖추어지느냐에 따라 아주 튼튼하게 달라붙을 수도 있고, 조건이 바뀌면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쉽게 떨어지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이라도 원자끼리 어떻게 붙어 있느냐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56)
지구에 사는 모든 유기체, 즉 생명체의 몸에는 탄소가 많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탄소는 모두 어디서 왔을까? 공기 속의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몸이 되었다가, 다시 그 식물을 먹은 동물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지구의 공기 중에는 이산화탄소가 별로 없다. 지구의 공기는 질소가 78%, 산소가 21%를 차지하고, 생명체를 이루는 재료인 이산화탄소는 고작 0.04%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금방 바닥나는 일은 없다. 생명체가 죽으면 곰팡이와 세균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유해를 썩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생명체의 몸은 다시 이산화탄소로 변해서 공기 중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지상의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요약하면 공기 중에 0.04%밖에 없는 이산화탄소 중 일부가 화학반응을 거치며 탄수화물이 되고, 단백질과 지방의 재료로도 활용되어, 마침내 생물의 몸이 되었다가, 생명 활동을 마친 뒤 분해되어 다시 이산화탄소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58-60)
7. 질소와 목욕 N
사람 몸은 단백질로 이루어졌는데, 단백질은 아미노산amino acid이라는 물질이 수없이 붙어 있는 덩어리다. 그런데 여기서 아미노amino라는 말은 질소가 들어 있는 대표적인 물질 암모니아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공기를 들이마셔도 그 속에 있는 질소를 아미노산과 단백질의 재료로 활용할 수가 없다. 생명체가 질소 기체를 몸속에서 단백질 재료로 바꾸지 못하는 것은 질소 원자 특유의 성질 때문이다. 질소 원자 자체는 화약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다른 원자들에 달라붙으며 화학반응을 잘한다. 그런데 같은 질소 원자 둘이 달라붙을 때는 갈고리 역할을 하는 세 전자가 모두 한꺼번에 서로서로를 이끌어 붙이는 갈고리 역할을 해서 질소 원자 둘이 아주 야무지게 붙어 있게 한다. 이런 모습을 가리켜 질소가 삼중결합을 했다고 표현한다. 이 때문에 생명체가 질소 기체를 아무리 들이마셔 봤자 어지간해서는 질소 원자 두 개를 서로 떼어 낼 수가 없고, 당연히 질소 원자를 재료 삼아 다른 물질을 만들 수도 없다. 66-8)
그렇다면 동식물이 몸속에서 질소 원자를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소 기체가 아닌 화학반응을 잘하는 다른 물질 속에 들어 있는 질소 원자를 흡수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질소 기체의 삼중결합을 끊어서 화학반응을 잘하는 다른 물질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동식물이 그 물질 속에 있는 질소 원자로 몸에 꼭 필요한 아미노산과 단백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다행히도 지구에는 오랜 옛날부터 이런 일을 해 온 특별한 생물이 있다. 다름 아닌 세균들이다. 수많은 세균 중 몇몇 종류가 공기 중의 질소 기체를 흡수해서 화학반응을 잘하는 다른 형태의 물질로 바꾼다. 식물은 땅속 세균들이 바꿔 놓은 물질을 뿌리로 빨아들여 그 속에 든 질소 원자를 이용해 단백질 등 여러 가지 필요한 물질을 만든다. 그리고 동물들은 바로 그 식물을 먹는다. 질소 기체의 삼중결합을 끊어 생명체가 활용하기 좋은 질소 원자로 바꿔 주는 이 세균들이 없다면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동물도 살아갈 수 없다. 68)
8. 산소와 일광욕 O
지구 상공에는 자외선을 흡수하는 보호막이 있다. 바로 지구를 감싸고 있는 오존층ozone layer이다. 오존층은 오존ozone이 많이 모여 있는 공기층을 일컫는 말로, 지상에서 대략 20~25km 높이에 해당한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지상의 생명체들을 위해 오존층을 선물로 준 것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다. 바로 세균, 그중에서도 남세균 종류다. 수십억 년 전에 전 세계 바다에 나타난 남세균들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면서 산소oxygen 원자가 두 개씩 붙은 산소 기체를 공기 중에 내뿜었다. 이 세균들이 수억 년 동안 줄기차게 산소 기체를 내뿜자, 지구는 산소 기체가 풍부한 행성으로 변했다. 지구 대기에 산소 기체가 풍부하다 보니, 자외선이 쏟아지는 저기 하늘 높은 곳에서는 산소 기체가 자외선을 맞고 오존으로 변한다. 산소 원자가 두 개씩 서로 짝지어 있는 것이 보통 산소 기체의 모습인데, 그러다 자외선을 맞으면 원자들이 떨어지고, 이내 세 개씩 다시 들러붙어 새로운 물질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오존이다. 75-6)
남세균이 지구에 산소 기체를 이만큼이나 공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산소는 화학반응을 무척 잘하는 원소다. 어쩌다 산소 원자 두 개가 달라붙어 산소 기체가 되더라도 그 상태로 가만히 있기보다는 뭔가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물질로 변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즉, 산소 기체가 자꾸 다른 물질로 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공기 중 산소 기체의 양을 넉넉하게 유지하려면 다른 물질로 변해서 없어지는 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남세균들이 계속해서 산소 기체를 내뿜어야 한다. 그러니 남세균은 그 수도 어마어마하게 많았을 것이고, 대단히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광합성을 했을 것이다. 산소를 이용하는 다른 생물들은 남세균이 만든 산소 기체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호흡으로 산소 기체를 들이마시는 수많은 동물 역시 산소 기체가 화학반응을 잘한다는 점을 활용해 살아간다. 사람 역시 호흡으로 산소 기체를 들이마시고 있으니, 산소 기체의 화학반응 능력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76)
9. 플루오린과 아이스크림 F
물 같은 액체 상태의 물질이 마르면서 기체 상태로 변할 때, 주변의 열을 가져가면서 시원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액체가 기체로 변하면서 가져가는 열을 기화열heat of vaporiz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냉장고 정도의 냉각 효과를 내려면 아주 쉽게 기체로 변하는 물질이 유리하고, 기왕이면 재활용하기 위해 기체로 변한 뒤에 액체로 되돌리기 편리한 것이 좋다. 이런 용도로 이용하는 물질을 냉매refrigerant라고 한다. 염소chlorine, 플루오린fluorine, 탄소carbon 원자를 조합해 만든 냉매 물질을 각 원소 이름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CFC라고 부르는데, 이 물질의 상품명인 프레온Freon이 유명해져서 흔히 프레온가스라고 한다. 그런데 CFC가 공기 중으로 빠져나오면 하늘 높이 올라가서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때문에 CFC 대신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HFC라는 물질을 쓰기도 한다. HFC는 수소, 플루오린, 탄소 원자 등을 성분으로 만드는 물질이므로, 여기에도 플루오린은 들어간다. 82-4)
플루오린은 예전에 플루오르fluor 또는 불소라고도 불렀던 물질이다. 플루오린은 화학반응을 극히 잘 일으키는 물질이어서 도저히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물질을 건드려 끝내 화학반응을 일으키곤 한다. 수소와 플루오린이 연결된 물질을 플루오린산fluoric acid, 혹은 불산불화수소산이라고 하는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불산은 산성을 띤다. 아주 강한 산성은 아니지만, 다른 물질과 쉽게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자꾸 스며들고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서 사람 피부나 다른 생물에 닿으면 위험하다.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작은 칩 위에 수없이 많은 부품이 연결된 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반도체 부품은 크기가 1만 분의 1mm, 10만 분의 1mm 정도로 매우 작다. 이렇게 작은 부품을 아주 정밀하게 만들려면 재료를 세밀하게 깎아야 한다. 그 작은 부품을 조각칼 같은 도구로 깎을 수는 없으므로, 적절한 화학물질을 이용해서 불필요한 부분이 삭게 한다. 바로 이 공정에 불산을 쓴다. 85, 88-9)
10. 네온과 밤거리 Ne
가이슬러관에 기체를 넣고 강한 전기를 걸면, 기체 원자 속에 있던 전자가 전기의 힘 때문에 튀어나온다. 전자는 ⊖전기를 띠므로 전자를 잃은 기체 원자는 ⊕전기를 띠게 된다. 이렇게 전기를 띤 상태로 돌아다니는 기체 원자를 요즘에는 플라스마plasma라고 부른다. 플라스마, 그러니까 ⊕전기를 띤 기체 원자는 자연히 ⊖전기 쪽으로 이끌려 날아간다. 플라스마가 유리관 안에서 다른 기체 원자들과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전기가 있는 쪽으로 날아가다 보면 다른 원자 안에 들어 있는 전자들과 부딪히거나 서로 이끌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전자들은 힘을 받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전자가 갑자기 속도를 잃을 때는 전자파를 내뿜는다. 따라서 가이슬러관에 넣은 기체의 종류와 양, 압력을 잘 조절하면 전자파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전자파의 주파수도 조절할 수 있다. 만약 플라스마가 내뿜는 전자파의 주파수를 4억~8억 MHz 정도로 유지할 수 있으면, 그 전자파는 사람 눈에 감지되어 빛으로 보인다. 94-5)
주기율표에서 네온은 헬륨 바로 아래 칸에 적혀 있다. 같은 열에 배치된 것에서 알 수 있듯 네온은 헬륨과 성질이 비슷하다.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지 않는 비활성기체이며, 헬륨처럼 우주 전체로 보면 비교적 흔하지만, 지구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물질이다. 1871년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y Mendeleev가 대체로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 순서로 원소 이름을 써넣으면서, 성질이 비슷한 것들은 세로로 같은 줄에 오도록 배치한 것이 주기율표다. 그런데 이 원칙대로 정리했더니 어떤 칸에는 써넣을 것이 없었다. 빈칸이 생겼으니 주기율표를 만드는 원리가 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주기율표가 틀린 것이 아니라 빈칸에 들어갈 원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어 그 자리를 채울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1898년에 네온이라는 새로운 물질이 공기 중에 0.002% 정도 섞여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물질이 주기율표의 빈칸을 채우게 됐다. 99)
11. 소듐과 냉면 Na
소듐은 ⊕전기를 띠려는 성질이 강하다. 소듐의 전기적인 특성을 이용하면 독특한 노란색 빛을 내는 전등을 만들 수도 있다. 나트륨등은 유리관에 소듐을 넣고 전기를 걸어 아주 높은 온도에서 녹아내리고 끓어오르게 해서 기체 상태로 유리관 안을 떠다니며 빛을 내뿜게 만든 것이다. 순수한 소듐 덩어리를 물에 던지면 빠르게 폭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듐이 그만큼 격렬하게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는 증거다. 가성소다는 가혹한 성질을 지닌 소듐 물질이라는 뜻으로, 가성소다가 동물의 살갗에 닿으면 피부에 해를 입는다. 하지만 다른 물질을 잘 녹이는 성질을 적당히 이용하면 가성소다로 세탁물의 찌든 때를 녹여 없앨 수 있다. 양잿물이 바로 가성소다, 즉 수산화소듐을 말한다. 가성소다가 다른 물질을 잘 녹이는 까닭은 이 물질이 대표적인 염기base이기 때문이다. 소금은 소듐과 염소 원자가 규칙적으로 붙어 있는 덩어리다. 그래서 염화소듐sodium chloride 또는 염화나트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03-5)
우리 몸에서 소듐이 꼭 필요한 곳은 신경이다. 사람과 동물은 온몸에 신경이 퍼져 있다. 거대한 신경 덩어리라고도 할 수 있는 뇌에서 몸을 어떻게 움직이라고 보내는 신호가 신경을 통해 해당 부위에 전달돼야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고 여러 가지 감각도 느낄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신호는 전기신호다. 그리고 신경을 통해 전달할 전기신호를 만들기 위해 인체가 사용하는 물질이 바로 ⊕전기를 잘 띠는 소듐과 포타슘이다. 사람의 신경에는 가까이 있는 물질 중에서 ⊕전기를 띤 소듐만 골라서 한쪽으로 흘러가게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부위가 있다. 소듐통로sodium channel와 소듐-포타슘 펌프Na+ K+ pump라고 부르는 부위인데, 소듐통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기를 띤 소듐이 한곳으로 모이는 바람에 상당한 전기가 걸린다. 그러니 몸속에 소듐이 전혀 없다면 신경에서 전기를 일으킬 수가 없고, 신경을 통해 신호가 전달되지 않으면 온몸이 한마음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소듐이 없으면 몸은 뇌와 연결되지 못한다. 106)
12. 마그네슘과 숲 Mg
식물에서 초록색을 내는 화학물질을 엽록소chlorophyll라고 한다. 엽록소를 커다랗게 확대해서 보면 핵심이 되는 부분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에 금속으로 분류되는 마그네슘 원자가 자리 잡고 있다. 즉, 엽록소라는 물질을 정확히 설명하자면, 마그네슘계 유기화학물질을 이용한 광화학반응 목적의 색소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싱그러운 숲의 초록빛을 정확하게 일컫는 말이다. 곡식이나 과일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 관점에서 보면, 광합성은 식물이 햇빛 속의 힘을 흡수해서 영양분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엽록소의 중심에 있는 마그네슘 관점에서 보면, 마그네슘 원자와 다른 원자들이 이어진 아주 작은 회로가 햇빛의 힘을 받아 작동하면서 전자로 만든 광선 검 같은 장치가 가동되어 물 분자를 조각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각난 물 분자의 파편인 수소가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화학반응을 일으킨 결과로 다른 동물들이 원하는 당분 같은 물질이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111-3)
⊕전기를 잘 띠는 마그네슘의 특징을 이용하면 다른 금속이 녹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다. 금속의 전자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 즉 녹스는 현상은 주위에 있는 무엇인가가 금속에서 전자를 떼어 내 가져가려고 하니까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금속의 전자를 가져가려고 하는 물질이 나타날 때마다 금속보다 먼저 나서서 전자를 던져 주는 장치가 있다면 보호하고자 하는 금속 안에 있는 전자는 뜯겨 나가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하면 마그네슘으로 금속이 녹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다. 장치는 간단하다. 보호하고 싶은 금속과 마그네슘 덩어리를 전선으로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보호하려는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마그네슘이 재빨리 자기 전자를 떼어서 전선을 통해 전달해 준다. 이렇게 해서 마그네슘은 하나둘 전자를 잃어 ⊕전기를 띠는 상태로 변한 뒤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삭아 가고, 반대로 보호하고자 했던 금속은 마그네슘 덕분에 전자를 잃지 않아서 녹슬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116-7)
13. 알루미늄과 콜라 Al
지표면의 돌과 모래를 이루는 원자를 분석하면 산소와 규소 원자가 매우 많은 편이고, 바로 그다음 순위를 차지하는 것이 알루미늄이다. 사람들은 흔히 쇳덩어리라고 하면 철을 떠올리는데, 이는 철이 지구에 흔한 금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루미늄은 철보다 더욱 흔하다. 지표면을 이루는 원자의 8% 정도가 알루미늄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렇지만 돌이나 흙에서 알루미늄 원자만을 골라내서 금속 덩어리로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초로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은 (베릴륨을 발견하고 요소를 합성한) 독일의 위대한 화학자 프리드리히 뵐러였다. 뵐러는 화학반응을 아주 잘 일으키는 물질인 포타슘을 염화알루미늄aluminium chloride과 반응시키는 과정을 이용해서 상당히 순수한 알루미늄 가루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알루미늄을 뽑아내는 방법이 점점 더 발전해서, 힘들긴 해도 알루미늄 원자가 들어 있는 돌에서 알루미늄을 뽑아내 조금씩 덩어리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24-5)
그래도 초창기에는 알루미늄 덩어리를 만들기가 힘들었다. 연-알루미늄-술에 결국 성공한 인물로는 보통 프랑스의 폴 에루Paul Héroult와 미국의 찰스 마틴 홀Charles Martin Hall이 손꼽힌다. 1880년대 후반, 두 사람이 각자 발견한 기술은 알루미늄을 뽑아낼 수 있는 재료에 전기를 걸어 주는 독특한 화학반응을 통해 알루미늄을 녹여낸 뒤에 다시 훑어 내는 방법이었다. 요즘에는 주로 보크사이트bauxite라는 돌에서 알루미늄을 뽑아내며, 예전보다 훨씬 더 발전된 기술을 이용한다. 하지만 여전히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데는 전기가 많이 든다. 다행히 요즘은 돌에서 뽑아내지 않아도 알루미늄을 얻을 방법이 있다. 바로 재활용이다. 게다가 알루미늄을 재활용하면 돌에서 직접 알루미늄을 뽑아낼 때보다 전기를 훨씬 절약할 수 있다. 재생 작업에 소모하는 전기는 돌에서 직접 뽑아낼 때 소모하는 전기의 2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날 알루미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126, 128, 130)
14. 규소와 선글라스 Si
유리와 수정의 재료가 되는 물질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규소silicon 원자에 산소 원자가 둘씩 달라붙은 이산화규소silicon dioxide에서 출발하는 물질이다. 이산화규소를 이루는 산소와 규소는 둘 다 지구에 흔한 원소다. 지표면을 이루는 원자 중에 산소와 규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75% 가까이나 된다. 한반도에서는 또 다른 물질이 유리를 능가하는 인기를 끌었다. 이산화규소 덩어리였던 유리와 달리 그 새로운 물질은 규소를 중심으로 알루미늄이나 철 등 여러 원자가 다양하게 섞인 것이었다. 그 물질은 다름 아닌 도자기다. 여기에 현대의 기술을 더해 규소 원자가 이루는 모양을 적절히 조절하면 더 튼튼하고 더욱 쓰기 좋은 재료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원리로 만들어 낸 도자기 계통의 재료를 흔히 세라믹ceramic이라고 한다. 고대의 유리구슬부터 중세의 도자기에 이어 현대의 세라믹까지, 이 모든 것에는 규소가 있고, 규소를 어떻게 녹이고 굳히느냐에 따라 제품의 품질이 달라진다. 134, 137-8)
1950년대의 학자들은 전기가 잘 흐르는 도체와 그렇지 않은 부도체의 중간 성격을 띠는 어중간한 물질을 잘만 이용하면 원하는 경우에만 전기가 흐르게 조절할 수 있는 전자부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바로 이런 물질을 반도체semiconductor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던 강대원과 아탈라는 규소를 주재료로 삼고 다른 화학물질들을 조금씩 이용해 정말로 이렇게 동작하는 전자부품을 만들어 냈다. 이 부품을 금속산화물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etal oxide semiconductor field effect transistor라고 한다. 보통은 줄여서 MOSFET로 쓰고, ‘모스펫’이라고 읽는다. 1979년에 나온 모스펫 2만 9,000개짜리 장치가 바로 최초의 IBM PC 핵심 부품이었던 8088 CPU였다. 전기를 받으면 빛을 내뿜도록 반도체를 만들면 LED가 된다. 반대로 빛을 받으면 전기를 내뿜는 반도체를 만들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만든 장치는 태양광발전소가 된다. 태양광발전 장치를 만들 때도 역시 규소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140-1)
15. 인과 기차 여행 P
화재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가루가 바로 난연제flame retardant라는 물질이다. 그리고 그 난연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phosphorus 원자가 들어 있는 성분이다. 난연제는 플라스틱 같은 재료에 섞어 넣어 불이 잘 붙지 않게 하는 약품을 말한다. 보통은 불이 잠깐 붙었다가도 번져 나가지 않고 그냥 사그라들게 하는 효과를 주는 것들이 많다. 만약 불에 잘 타지 않으면서 푹신한 가죽 소파 같은 느낌이 나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가죽과 같은 질감의 플라스틱에 난연제를 섞어 소파를 만들면 되고, 불에 안 타는 벽지가 필요하다면 종이와 같은 질감의 플라스틱을 벽지 모양으로 가공한 다음 난연제를 섞어 두면 된다. 난연제는 화재 위험을 낮추고 싶은 그 어디에나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전자제품이 전기 합선으로 불이 날까 봐 걱정된다면, 난연제를 첨가한 플라스틱으로 제품을 만들면 된다. 난연제 덕택에 플라스틱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불에 잘 타지 않으면서 값도 싼 환상적인 재료가 되었다. 146-7)
꼭 난연제가 아니어도 인 원자를 이용한 화학물질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과 수소, 산소가 붙어 있는 물질인 인산phosphoric acid이다. 인이 들어 있는 물질을 이렇게나 많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이 물질이 비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인 원자가 들어 있는 비료를 뿌려 줘야만 농작물이 잘 자란다. 인이 있어야 잘 자라는 것은 농작물이나 식물만이 아니다. 사실은 세상 모든 생물이 자라는 데 인이 꼭 필요하다. 사람이 사는 데도 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인 원자가 들어 있는 물질인 아데노신삼인산adenosine triphosphate이 모든 생물의 몸이 움직이는 데 사용되는 핵심 연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데노신삼인산이 아데노신이인산adenosine diphosphate으로 바뀌는 화학반응을 일으켜 몸 곳곳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활용한다. 몸속에서는 워낙에 별별 곳에 다 사용되는 물질이라 아데노신삼인산이라는 긴 이름 대신 ATP라고 줄여서 표기하는 일이 많다. 147-8)
16. 황과 긴 산책 S
생명체에서 뽑아낸 다른 많은 물질처럼 고무나무에서 뽑아낸 고무에도 탄소 원자가 주로 많이 들어 있다. 고무 속의 이 많은 탄소 원자는 대개 서로서로 줄줄이 연결되어 기다란 끈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황 원자는 다른 원자 두 개와 잘 결합하려는 성질이 있다. 갈고리가 두 개 달린 원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래서 고무에 황을 넣어 주면 이쪽과 저쪽 탄소 가닥 사이에 황이 끼어들어 양쪽으로 갈고리를 걸고 붙어 버린다. 탄소가 많이 들어 있는 실 가닥 같은 물질들 사이사이에 황 원자가 들어가서는 접착제처럼 탄소 실 가닥 곳곳을 붙여 버린다고 상상해도 비슷하겠다. 바로 이 때문에 고무에 황을 적당히 넣어 주면 탄소 가닥들이 서로 엉겨 붙으면서 고무가 더 탱탱해진다. 생물의 몸속에 있는 단백질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황은 수소결합보다 더 강한 접착제 역할을 한다. 황 덕택에 단백질의 모양이 더 다양해질 수 있고, 생명체는 더욱 다양한 단백질을 이용하며 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158)
술파제sulfa drug는 세균의 몸 속에 들어가면 엽산folacin을 만들 때 쓰이는 원료처럼 반응한다. 지구의 생명체들은 모두 DNA와 단백질로 몸을 만들어 가는데, 몸속에서 각종 영양분을 활용해 DNA와 단백질을 만들 때 조금이지만 엽산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균은 몸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스스로 엽산을 만든다. 그런데 세균 몸에 술파제가 들어가면 세균은 술파제를 이용해 엽산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면 오류가 발생해 엉뚱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아마도 술파제에 붙어 있는 황과 다른 원자들의 모양과 성질이 원래 세균에게 필요했던 물질과 묘하게도 비슷해서 혼동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싶다. 엽산이 없으면 DNA와 단백질도 제대로 만들 수 없으므로 결국 세균은 몸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죽는다. 이와 달리 사람 몸에는 애초에 엽산을 만드는 능력이 없다 보니 술파제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다. 술파제가 등장한 뒤로 인류는 드디어 몸속에 감염된 세균을 제대로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164)
17. 염소와 수영장 Cl
염소는 바닷물 속에 ⊖전기를 띤 상태로 넉넉히 녹아 있다. 바닷물에서 얻는 소금이 바로 소듐 원자와 염소 원자가 한 개씩 쌍쌍이 붙어 있는 물질이다. 수영장 냄새는 염소chlorine로 물을 소독해서 나는 냄새다. 염소 원자 둘이 붙어 있는 물질인 염소 기체를 직접 물에 섞어 소독하는 방법도 있고, 염소 원자를 다른 원자들과 함께 이용해 만든 소독약을 쓰는 방법도 있다. 염소는 주기율표에서 플루오린 바로 아래에 적혀 있는 만큼 플루오린과 성질이 비슷하다. 염소도 플루오린처럼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는 편이고, ⊖전기를 띠는 상태로 쉽게 변한다. 염소 기체를 이용해 소독할 수 있는 까닭도 염소 원자가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염소 기체는 아주 조금만 물에 넣어도 세균을 비롯해 물속에 사는 여러 미생물의 세포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미생물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꿔 버려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몸의 각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미생물은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167-9)
염소 원자가 들어 있는 위험한 물질을 꼽자면 염산hydrochloric acid을 빼놓을 수 없다. 쇳덩이를 녹일 만큼 강한 산성 물질로 잘 알려진 염산은 염소 기체를 물에 뿌리기만 해도 물과 화학반응을 해서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 독가스로 퍼트린 염소 기체를 병사들이 들이마셨을 때 해를 입는 이유 중 하나도 염소 기체가 몸속의 수분과 반응해서 염산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강한 산성을 자랑하는 염산은 알고 보면 우리 몸속에도 있다. 위에서 음식을 소화하기 위해 분비하는 위액의 중요한 성분이 다름 아닌 염산이다. 특히 위액 중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펩신pepsin이라는 물질은 산성 환경에서 화학반응을 가장 잘 일으키는데, 산성 물질인 염산은 펩신이 활발하게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그뿐 아니라 염산은 위 속에서 산성에 버티지 못하는 세균들을 녹여서 없애는 역할도 맡고 있다. 사람 위액 속에 염산이 없었다면 입으로 세균이 조금만 들어와도 그것에 감염될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171)
18. 아르곤과 제주도 Ar
아르곤은 헬륨과 마찬가지로 다른 원자와 화학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물질이다. 어찌나 반응을 안 일으키는지 그저 낱낱이 흩어져 기체 상태로 날아다니기만 한다. 헬륨은 지구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 물질이지만, 아르곤은 공기 중에 1% 가까이 들어 있다. 공기 성분 중 질소 기체, 산소 기체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아르곤이다. 그렇다면 아르곤은 어떤 일에 쓰일까? 헬륨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재료를 보호하거나 작업장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할 때 아르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아르곤 용접을 들 수 있다. 쇠를 녹여 붙이는 용접 작업을 할 때는 높은 온도로 쇠붙이 주위를 녹이는데, 주변의 잡다한 물질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끼어들어 용접 부위를 더럽힐 수 있다. 공기 중의 산소만 해도 화학반응을 일으켜 쇠를 녹슬게 할 수 있고, 먼지가 타서 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 아르곤을 넣어 주면 불필요한 반응을 일으킬 만한 것을 모두 날려 버리고 깨끗하게 용접할 수 있다. 179-81)
그렇다면 결코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는 아르곤과 무엇이든 화학반응을 일으키려고 하는 염소나 플루오린을 서로 섞어 두면 어떻게 될까? 아르곤과 플루오린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상태 중에 전기적으로 특수한 상황이 되는 것을 아르곤-플루오린 엑시머 또는 Ar-F 엑시머라고 한다. 세상에는 에너지를 가하면 빛을 내는 물질이 여러 가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질은 전기를 걸면 빛을 내고, 어떤 물질은 높은 열을 가하면 빛을 낸다. 그런데 만약 빛을 쐬어 주면 그 결과로 똑같은 빛을 내는 물질이 세상에 있다면 어떨까? 이런 물질은 쐬어 준 빛을 받아서 빛을 내는데, 자기가 내뿜는 그 빛 때문에 다시 더 빛을 내게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생겨난 특이하고 강한 빛을 레이저laser라고 한다. 아르곤-플루오린 엑시머 역시 이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 중 하나다. 아르곤-플루오린 엑시머로 만든 레이저는 일상적인 물질을 깔끔하고 정교하게 깎아 내기에 유리해서 그런 작업에 많이 쓰인다. 182-3)
19. 포타슘과 바나나 K
아랍어로 알칼리al qalīy는 원래 식물 따위를 태운 재를 뜻하는 말인데, 실제로 식물을 태운 재를 잘 골라 물에 녹이면 염기성, 즉 알칼리성 용액이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이전 우리 조상들도 식물의 재를 녹인 물을 잿물이라 부르고 세탁에 이용했다. 염기성을 띠는 잿물에는 단백질 등의 얼룩이나 때를 이루는 성분을 파괴하는 성질이 있어서 이를 빨래하는 데 이용한 것이다. 식물의 몸을 이루는 수많은 원자 중에 탄소, 산소, 수소 같은 원자들은 태우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낱낱이 떨어져 나왔다가 다시 서로 적당히 붙어서 이산화탄소와 수증기가 된다. 공교롭게도 이 물질들은 기체여서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간다. 따라서 식물이 타고 남은 재에는 기체가 되어 날아가지 않는 원자들만 남게 된다. 마침 칼륨 원자는 재로 남는 쪽에 속한다. 지금처럼 정밀한 화학반응 기술이 없었던 시절에 식물을 태워서 얻은 재로 알칼리성 물질을 만들었던 옛사람들의 기술은 상당히 실용적이었던 셈이다. 187-8)
사람의 신경은 전기신호를 전달하면서 제 역할을 한다. 몸의 특정 부위에서 감지한 것을 뇌에 전달하고, 정보를 받은 뇌가 다시 신체 각 부위로 명령을 전달함으로써 몸이 움직이는데, 이때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통로가 바로 신경이다. 그러므로 전자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배터리를 충전하듯이 사람 몸에서도 충전과 비슷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사람의 몸은 생명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항상 연료로 활용하는 ATP라는 물질을 반응시켜서 충전한다. 이때, 충전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물질이 세포의 겉면에 있는데, 이름하여 소듐-포타슘(칼륨) 펌프Na+ K+ pump다. 우리가 골똘히 생각해야 할 때나 무엇인가를 느끼고 행동해야 할 때, 우리 몸은 평소에 소듐-포타슘 펌프를 가동해 모아 둔 전기를 이용해서 신체 각 부분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결국 우리가 삶을 사는 수고의 10분의 1쯤은 소듐과 포타슘을 몸속 세포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보내는 데 소모하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91-2)
20. 칼슘과 전망대 Ca
요즘 사용하는 콘크리트란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 그리고 물을 섞어 사용하는 건설 재료를 말한다. 시공할 때는 묽은 반죽 같은 상태지만 시간이 지나면 굳어서 아주 튼튼해진다. 콘크리트의 재료 중 모래와 자갈은 흙 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으니 그보다 핵심 재료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 시멘트다. 시멘트는 접착제 역할을 해서 다른 재료들을 돌처럼 단단하게 붙잡아 준다. 현대 시멘트의 성분을 살펴보면 칼슘, 탄소, 산소, 알루미늄 같은 다양한 원소들이 보인다. 알루미늄이야 흙 속에 워낙 많이 있는 물질이니 이 중에 눈에 띄는 주성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칼슘과 탄소다. 특히 시멘트의 재료라고 하면 칼슘 원자 하나에 탄소 원자 하나, 산소 원자 세 개씩의 비율로 붙어 있는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 같은 것을 꼽을 만하다. 칼슘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몸속에 있는 뼈의 성분을 떠올릴 텐데, 우리 몸속에 있는 칼슘을 제외하고 살면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칼슘이 아마 시멘트 속에 있는 칼슘이 아닐까 싶다. 197-8)
사람은 스스로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몸속에서 칼슘 성분을 다양한 화학반응에 활용하곤 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사람의 뼈를 이루는 물질의 상당량은 칼슘이다. 우리가 멸치나 우유 같은 음식을 먹으면 그 속에 있던 칼슘이 물에 녹아서 흘러 다니다가 적당한 곳에서 다른 물질과 결합하면서 단단하게 굳어 뼈를 이룬다. 사람의 뼈는 화학의 황제인 탄소와 인 등의 물질이 칼슘과 튼튼하게 붙어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서 가벼우면서도 아주 튼튼하다. 몸속에서 칼슘이 수시로 사용되는 현상은 뼈에 역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동물은 칼슘이 필요하면 뼈에 잔뜩 들어 있는 칼슘을 녹여서 사용한다. 사실 몸의 활동에 꼭 필요한 인 성분도 뼈에 저장되어 있던 것을 녹여서 사용할 때가 많다. 그러니까 뼈가 몸 여러 기관에 필요한 칼슘과 인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 외에도 사람이 살다 보면 뼈가 낡고 상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뼈는 항상 조금씩 없어지기도 하고 생겨나기도 하면서 유지되어야 한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