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신적 질서를 모방하여 정상국가를 실현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국가의 정상성을 독점적으로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다. 하지만 정상성은 홀로 증명될 수 없고 오직 예외의 틈입 아래서 확보된다.1장합리주의적 태도에 따르면 법은 정상성을 구축하려는 시도이다. 법은 질서의 수호자이며 정상 상태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다. '신이 만든 불변의 계명을 본받는 일'이 바로 법의 존재이유이다. 이로써 신학적 질서는 세속적 법규범 안에 자리하며, 자연법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법을 정하는 자가 바로 정통성을 가진 입법자로 군림한다. 법은 지면 위에 쓰여진 조문이 아니라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자연법칙이 된다.2장혼란을 진압하고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이러한 정상성을 수립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다. 그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정상 상태를 외부에서 내부로 끌고 들어오는 견인력의 상징이 아니라 정상 상태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실존적 의지의 표상이다. 그는 그 '결정'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자이며 독점하는 자이다. 따라서 국가의 지배는 강제적인 규범의 적용으로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 규범을 결정하는 과정에 있다.3장빛으로 가득 찬 공간의 밝음을 빛이 증명할 수 없듯이 정상성의 근거는 자신의 존재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다. 그 자리에 합리주의에서 배제됐던 예외가 침입하고 구체성을 획득함으로써 정상성의 외연이 확정된다. 그러므로 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한다. 예외는 규칙을 보증하며, 규칙은 예외에 의해서 존속한다. 예외를 직시하지 않으면 일반적인 것 또한 설명할 수 없다. 예외는 규범을 무화시키며 주권자를 호명한다.슈미트는 예외의 역할을 긍정했지만 예외의 독립성은 부정했다. 예외가 생명력을 갖는 지점은 오직 주권자의 '결정' 아래에서이다. 그러므로 주권자는 '예외 없음'의 선포를 통해 비독재적 독재자가 된다.
최근 한국의 성장소설이 극단에서 바라본 삶의 풍경을 주로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주변에서 건너다 본 삶의 헛헛함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일견 긍정도 섞여 있고, 희망도 담겨 있어 보이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극단마저 뚫고 나간, 그래서 아마도 되돌아 올 수 없으리란 체념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요새 언론에 언급되는 산토리 세대의 일면을 보여준다).모든 걸 잃어버렸다 하여도,우리, 공감이란, 맞잡은 손의 체온으로 전하는 언어 아니겠는가.
이상을 향한 전진은 인류의 오래된 미래이다. 현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이상향에 들어간 인간은 철저하게 독립적인 개인이다. 이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화해와 갈등이 이상을 배태하는 어머니이다.1장계몽의 시대에는 공동선을 향한 열망과 그 성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절대적 진리의 실체에 대한 긍정은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기획의 변주이다. 단지 고대에는 이성적 판단에 대한 근원적 차별성을 전제로 신분제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면, 근대에는 합리적 판단의 보편성이라는 개개인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주요 원동력으로 간주된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2장근대의 정치적 혁명은 외부 규범이 침입할 수 없는 신성한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와 개인들간의 관계망, 곧 타자의 실존에의 인식과 상호 작용에서 비롯하는 공동체주의의 기획을 발생시켰다. 화해할 수 없고 충돌과 배제만이 가능할 것 같은 양자의 조합은 옳음과 좋음의 선후 혹은 상하관계를 두고 대립하는 사이지만, 개인은 시민의 공동체 기획에서 탄생하고 시민은 개인의 주체적 결단에서 비롯한다.3장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선이라는 이데아의 확신을 바탕으로 동굴 속의 불완전한 삶을 파괴하는 전체주의적 기획으로 삶을 몰아가서는 안되며,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어느 한 쪽에 대한 적대에서 비롯한 체제의 완전성이란 곧 달성할 수 없는 기획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거짓선동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적인 것'의 귀환은 갈등을 불러오지만 이 다원성의 생성과 확장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기획의 본질이며 보호막이다.다원성을 하나의 가치로 수렴하려는 통일적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귀결되는 잊혀진 과거이다. 중심이 비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들은 귀환한다. 자유와 평등은 유동하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아버지이다.
요즘 사회에서 '정치적'이란 수식어는 그다지 긍정적인 빛깔을 띄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정치란 다종다양한 사회활동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흙탕물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정치란 본래 그러했을까?1. 플라톤플라톤에게 정치는 '좋음'의 이데아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왜 '좋음'인가? 플라톤이 살아간 시대는 현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동족간의 학살이 자행되던 시절이다. 그런 위기를 넘어선 '좋음'이란 진선미가 통합된 상태이며, 바른 인식과 실천의 결합이다. 또한 현실적 혼란을 벗어난 절대적, 불변적 가치이다.2. 아리스토텔레스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혼란기를 수습한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 살았다. 따라서 증명할 수 없는 실재와 추상적 논리만을 바탕으로 정치적 이상향을 구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과거와 당대의 주요 정치 체제를 살펴보고, 그 현실태에서 이상적인 요소를 추출해냈다. 그것은 조화와 중용이 어우러진 균형상태였다.3. 마키아벨리악한 군주의 대명사, 막장 사상가로 여겨지는 마키아벨리는 인격적 완성자로서의 정치가라는 고대의 전통적 전제를 무너뜨리고 현실적인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냉혹하고 무도덕적(비도덕이 아니라)인 지도자상을 제시하고 있다. 군주는 무력과 설득력을 동시에 갖추어야 하고 현명함과 교활함 사이를 오가야 한다.4. 로크'사회계약설'로 유명한 로크의 통치론은 당대에 발흥하던 부르주아 계층의 당파성을 철저히 대변한 정치사상이다. 국가의 최우선 존립 근거는 개인의 인격(여기에 소유권이 포함된다)을 보장하는 약속과 실천이다. 이성이란 재산권을 확장하는 데 쓰이는 도구로 전락하였고, 도덕적 가치는 고려대상에서 빠졌다.정치의 본래적 의미는 '집단간의 갈등과 대립을 무력이 아닌 대화와 설득으로 풀어내는 행위'이다. '정치공학'만이 난무하는 현실은 '정치사상'의 부재를 반영한다. 파트너가 없는 정치란 곧 독재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의 신앙은 의식적이고 이성적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이성이나 의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신학교에서 제가 가장 비판을 받은 것은, 내 무의식에 깃든, 그들이 보기에 범신론적인 감각이었습니다.아무리 명석하고 논리적이라도, 이 유럽 기독교에는 생명 속에 서열이 있습니다." 176신성이란 온전히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전체에 굴복(아우구스티누스)하거나 또는 파기(도킨스)하거나 그도 아니면 신비주의로의 도약을 감행한 서양의 '이해의 구도求道' 체계를 헤르만 헤세가 잘 보여준다면, 엔도 슈사쿠는 '사랑의 구도'를 말없이 체현함으로써 신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려는 '깊은 강'처럼 흘러가는 동양의 사유방식을 본 작품을 통해 잘 묘사하고 있다.전작 '침묵'보다 나약해 보이는 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 실존의 본질을 가감없는 드러낸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