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굿모닝북스 투자의 고전 5
찰스 P. 킨들버거.로버트 Z. 알리버 지음, 김홍식 옮김 / 굿모닝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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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국면에서 자산가격이 상승을 멈추면, 곧바로 하락이 시작된다. 평평한 고지나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38)


"광기는 현재 및 가까운 미래 시점의 부동산가격, 주가, 상품가격 혹은 특정 국가의 통화가치가 먼 미래 시점에서의 동일한 부동산가격이나 주가, 상품가격, 통화가치와 일관되지 않을 정도로 상승하는 현상을 동반한다." 통상적으로 "경기 확장기에는 투자자들의 낙관적인 태도가 증폭되고, 이들은 먼 미래 시점에 얻게 될 수익 기회를 더욱 열광적으로 찾아다닌다. 반면 대여자들의 위험회피 성향은 줄어든다. 합리적 활력은 비이성적 과열로 변이를 일으키고, 경제적 풍요감이 확대되면서 투자지출과 소비지출이 늘어난다. 지금이야말로 '기차가 역을 출발하기 전에 열차에 올라타야 할 때'라는 인식이 도처에서 만연하는데, 이례적으로 높은 투자수익을 올려주는 기회들은 점차 사라진다. 그래도 자산가격은 더욱 상승한다. 전체 자산 거래 가운데 단기적인 자본이득을 노리고 자산을 매입하는 비율이 계속 늘어나고, 신용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이렇게 자산을 매입 정도로 높아진다."(38-9)


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을 통제해야 하는 의무를 띄고 있는 궁극적 대여자의 딜레마는, "자산가격이 급락하더라도 정부가 관대한 구제책과 함께 조만간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투자자들이 미리 알고 있다면, 자산과 유가증권을 매입하는 투자자들의 조심성이 줄어들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붕괴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42-3) 금융 질서는 "자산가격 붕괴에 따르는 패닉의 확산을 막기 위해 궁극적 대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궁극적 대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채무 과다 상태에 빠지게 될 개별 차입자들이 '구제'될 것이라는 견해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궁극적 대여자의 시장 개입은 교묘한 계략과도 같다. "불필요한 디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항상 구제에 나서지만, 투기자나 은행, 도시, 국가들에게 신중함을 주입시키기 위해, 구제가 제때에 실현될 것인지 혹은 과연 실현되기는 할 것인지를 항상 불확실한 상태로 유지하는 일이다."(56)


민스키는 "호경기 때 늘어나고 경제의 탄력이 약화될 때 줄어들면서 경기순환에 동조하는 신용 공급의 확대와 축소가 금융 질서의 취약성을 초래하고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증폭시킨다고 믿었다." 민스키는 피셔의 노선에 따라 "과도한 채무를 진 차입자들, 특히 경기 확장기에 단기적인 자본이득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부동산이나 주식, 상품의 매수 자금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주목했다. 이들이 이런 거래를 하는 이유는 해당 자산가격의 상승률이 매수 자금으로 조달한 차입금의 금리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둔화하면 이들이 매수한 자산가격의 상승률이 차입금의 금리보다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이들 차입자 가운데 일부는 실망하게 되고, 이들 중 다수는 투매자로 돌변한다."(59) 결국 투자자들의 "합리성이란 세계가 실제로 작동했던 방식에 대한 묘사라기보다 세계가 따라야 하는 작동 방식에 대한 선험적인 가정"에 불과하다.(80)


# 민스키의 금융위기 모델

1.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격변 발생 (가령, 정보기술 혁명, 금융자유화 등)

2. 주요 경제 영역의 낙관적 전망과 예상 수익 상승

3. 경제성장률 증가로 "이번에는 다르다"는 낙관론 정당화 (경제적 풍요감 속에서 상호 feedback 효과)

4. 신용 팽창 (기업과 개인의 차입 증가)

5. 투기적 판단, 장래수익 과대 추정, 과도한 차입금 의존 증가 (자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차입자들의 부채 비율이 하락하는 경우도 발생)

6. 선행자 따라하기(follow-the-leader) 만연

7. 광기(비합리성)와 거품(가치 급락)


# 투기적 광기의 유형

1. 군중심리에 휩싸여 시장 참여자들이 일종의 집단의식 아래 행동한다.

2. 시장의 각 단계에서 서로 다른 개인이 시장 전개에 대한 생각을 합리적 추정에서 비합리적 확신으로 바꾼다.

3. 합리성의 정도가 서로 다른 집단이 자산가격이 상승하면서 광기에 휩싸이는 집단으로 바뀌고 그 수가 늘어난다.

4. 시장 참여자들이 구성의 오류에 빠져서, 개인(의 합)과 집단의 행동이 달라진다.

5. 일정한 사태의 '질'을 합리적으로 판단한 시장이 거기에 적합한 '양'을 추정하는 데 실패한다.

6. 잘못된 모델을 선택하거나, 결정적인 정보를 누락하거나, 자신이 받아들인 모델과 어긋나는 정보를 외면한다.


신용 팽창은 많은 사례에서 "이전의 전통적 화폐를 대신하는 대체 수단의 개발에 의해 이루어졌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전반 미국과 중국, 영국 간의 삼각무역에서 은이 환어음으로 대체됨에 따라 신용 팽창이 나타났다."(119) 신용 팽창은 "우연한 사건들의 연쇄작용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체계적인 발전 과정으로서 금융시장의 참여자들이 거래비용과 유동성 및 현금잔고의 보유비용, 두 가지 모두를 줄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통화 팽창은 "임의적이고 외생적인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내생적인 과정"이며, 화폐의 역사는 "주어진 통화 공급량의 보다 효율적인 활용을 목적으로 계속 이어지는 혁신과 통화에 적용되는 형식적 규정을 우회하기 위해 전통적 통화에 가까운 대체수단 개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121-3) 신용 조절의 난점은 "어떤 통화량 지표 Mi를 고정시킨다 해도, 시장은 경기 호황기에 새로운 형태의 화폐와 유사화폐 대체 상품들을 창출해 그 한계를 넘어선다는 점에 있다."(127)


정부가 경기순환의 거친 굴곡을 완화하기 위해 개입하는 "시점 선택의 문제는 복합적이다. 정부당국의 경고가 효과적이려면, 호황 국면에서 발생하는 과잉을 어느 정도 예방하기 위해서는 경고성 성명을 충분히 일찍 내놓아야 하지만, 성명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늦은 시점에 내놓아야 한다. FRB 전 의장의 비유를 들자면 당국은 대중의 비우호적인 반응으로 인해 '잔치가 막 벌어지고 있는 도중에 잔칫상을 걷어내기'를 꺼려한다." 이 딜레마에 대한 불완전한 방편으로, "소비자물가 수준이나 어떤 다른 물가지수의 상승을 누그러뜨리는 통화정책을 개발하는 데서 편안함을 찾는 게 중앙은행들의 현대적 전통이 됐다. '인플레이션 목표관리(inflation targeting)'가 중앙은행들이 즐겨 찾는 새로운 기도문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정책상의 문제는 중앙은행 책임자들이 부동산가격이나 주가가 장기균형 가치에서 큰 폭으로 이탈했을 때, 이 가격의 상승을 무시해야 하는가의 문제다."(163)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탄환이 튀듯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파급"되면서 국제적 전염을 발생시킨다. 국가간의 위기를 확산시키는 "여러 유형의 연결 경로 가운데 하나는 각국 시장을 연결시키는 차익거래의 작용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의 시장에서 "매매 가능한 국제적 거래의 대상인 유가증권은 통상 환율에 따른 통화간 등가 환산 후의 가격이 거의 동일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의 유가증권 시장 역시 서로 연결된다."(210-1) 국제적 자본이동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변화 외에 전쟁과 혁명, 기술혁신, 새로운 시장 및 원자재 보급지의 등장, 각국 경제성장률 간의 관계 변화 등 실물적 요인에 반응할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추진되는 정부소유 기업의 민영화도 외국인 매수자의 유입을 종종 유발한다. 외환시장에서 한 나라 통화의 환율에 '가격 오차'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도 자본이동을 유발한다."(213)


1990년대 초 아시아 국가들에서 발생한 신용 거품은 대외적으로는 변동환율제가 유발한 통화유입국의 외환가치 상승과 통화 공급량의 증가, 대내적으로는 부동산 가격과 주가의 상승이 유발한 투자 및 소비지출의 빠른 증가에서 비롯했다. "일본, 태국,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의 자산가격 거품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유사성은 시장 참여자들이 최근의 가격 상승에서 나타난 추세를 미래 시점으로 비례 배분하는 방식에 의해 자산과 유가증권의 가격을 예측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거와 달리 "현재 및 미래 임대소득이 부동산가격을 산정하는 기본적인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했고, 기업의 기대 수익률은 주가 산정의 기준 역할을 상실했다. 대신 최근의 가격 상승 추이를 기준으로 한 미래 가격 추정치가 부동산가격과 주가 산정의 기초가 됐다. 마치 월요일에서 화요일까지의 가격 상승이 금요일의 가격 수준을 예측하기 위해 수요일에 활용되는 양상이다."(241-2)


어느 자산가격의 거품이든 거품이 붕괴할 때면 신용 축소를 막기 위해 반드시 부정과 사기가 발견된다. "패닉과 붕괴로 인해 '재주껏 도망쳐야 한다(sauve qui peut)'는 좌우명에 짓눌릴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파산이나 재정파탄을 피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 오늘의 조그만 부정으로 내일의 파국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호황이 끝나고 손실이 명백해질 때, 거꾸로 성공하기만 하면 당장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더 큰 도박을 시도하는 경향이 생긴다."(275) 부정행위는 경제가 호황기일 때 증가한다. "재산은 호황기에 만들어지며, 개인들은 부의 증식 과정에 끼어들기 위한 탐욕에 빠지고, 사기범들이 이 탐욕을 이용하려고 등장한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을 사기범의 희생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305)


패닉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놓아 두어야 한다는 견해에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하나는 투자자 혹은 투기자들이 그들의 과도함에 대한 대가로 치르게 되는 고통을 즐기는 것─또는 '파괴의 기쁨(schadenfreude)'─이다. 어느 정도 청교도적인 이 시각은 지옥의 불을 지나치게 탐욕적인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보답으로 환영한다. 다른 요소는 패닉을 '유해하고 유독한 열대 기후에서' 공기를 정화하는 폭풍우로 본다." 이들은 패닉이 "상업과 금융세계의 독소들을 정화해 활력과 건강을 회복시키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무역과 건전한 진보, 영구적인 번영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이와 대립되는 견해는 "시스템에서 광기가 벌여놓은 투자와 거품을 정화해 내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디플레이션을 일으키는 패닉의 확산으로 인해 투기자가 아닌 사람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신용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들의 건전한 투자마저도 일소해 버릴 위험이 있다는 양보적 입장이다."(332-3)


"패닉은 내버려두는 것 자체로 치료될 수 있다는 선험적 시각을 반박하는 가장 유력한 논거는 패닉이 그렇게 방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당국은 개입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짓눌린다."(338) 호황기에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여신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은행 규제와 감독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같은 논거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완벽한 이상에서나 존재한다." 은행의 관리부실은 "위기가 드러나기 전에는 감지하기 어렵다. 경기가 확장되는 동안 규제와 감독 과정에서 불어나는 엔트로피가 시스템의 곳곳에 발생시키는 위험구역들은 경기가 수그러들 때 갑자기 표면화된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결국 문제는 청산, 시간 지연, 보증, 구제, 인수합병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혹은 그 밖의 궁극적 대여 수단을 동원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362)


"시점 선택은 특수한 문제를 제기한다. 경기 확장이 점점 더 세게 그 강도를 높여 가면, 패닉이 촉발되지 않도록 하면서 확장의 강도를 늦추어야 한다. 붕괴가 발생한 후에는, 채무지불 능력이 없는 기업들이 파산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채무지불 능력은 있지만 단지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들에게까지 위기가 확산될 정도로 오래 기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391) 궁극적 대여자의 개입 규모와 시점 선택의 딜레마는 "할인 방식보다 공개시장조작이 더욱 심각하다. 할인에 대해 월터 배젓이 규정한 합당한 규모는 채무지불 능력과 건전한 담보를 갖춘 회사들을 할인 경로로 하여, 시장이 벌칙적 금리 수준에서 흡수하는 최대한이다." 시스템에서 신용이 마비되었다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안전하다. 과잉은 나중에 걷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점 선택은 예술이다. 이 말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392)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에는 일국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국가별 통화와 국가별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한, 환율의 변동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393)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변동환율제의 채택이 이자에 민감한 자본 이동을 없앨 것이고, 일단 통화가 변동환율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면 중앙은행들은 기대하지 않은 외부 효과를 발생시키지 않고도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투기적 자본 이동이 균형점을 찾아가는 안정적인 작용을 하는지, 경우에 따라 균형점에서 이탈시키는 심각한 교란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환차손에 대한 공포가 자본흐름을 억제할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이 견해는 잘못된 것임이 증명됐다. 다수의 은행들은 외환시장에서 가치가 변동하는 다수의 통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익 창출을 위해 매매할 수 있는 새로운 자산군이 생긴 것으로 취급했다."(431)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변동 가능한 평가(adjustable parity)에 따라 각국 통화를 준고정시키는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붕괴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일어난 외환위기는 이 시기와 물리적 시간이 맞먹는 이전의 그 어느 시기보다 많았다. 1971년 8월 미국은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핵심인 금 1온스 당 35달러로 설정된 미 달러화의 평가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했다. 통화간 교환비율을 정해놓는 각 통화의 상대가치 체계가 1972년 1월의 스미소니언 합의에서 새로 확립됐지만, 약 1년간 유지되다가 1973년 2월 독일 마르크화와 일본 엔화, 이어서 대부분의 선진국 통화들이 시장의 변동환율에 맡겨졌다." 은행 파산과 장기균형 가치에서 이탈하는 "환율의 오버슈팅과 언더슈팅,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은 체계적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간 자금흐름의 규모와 방향에 큰 변화를 야기하는 다양한 충격의 결과로 나타났다."(448-50)


# 오버슈팅과 언더슈팅

1. 오버슈팅 : 특정 국가 통화의 외환가치가 국내 물가상승률과 주요 교역상대국의 물가상승률의 차이에서 산출되는 가치에 비해 상승하는 현상

2. 언더슈팅 : 오버슈팅과 정반대로 실질 외환가치가 하락하는 현상


"변동환율제를 지지하는 주된 논거 중 하나는 통화가치가 더 이상 고정돼 있지 않으면, 국내적 경제목표의 달성을 위해 통화정책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중앙은행들의 독립성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퉁화가 금 혹은 다른 통화에 고정돼 있지 않을 때, 중앙은행들은 금리와 통화 공급량의 성장 속도를 변경할 수 있었다. 실제로 어느 통화의 평가를 유지하는 것은 그 나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 특히 보다 팽창적인 통화정책의 채택을 제약했다. 즉 통화의 평가를 유지한다는 것은 해당국의 물가상승률이 주요 교역 상대국들의 물가상승률과 크게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통화의 평가를 유지하지 않을 경우, 중앙은행들이 채택하는 정책은 현행 및 기대 물가상승률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고, 이에 따라 국가간 자금흐름의 변화가 유발된다. 결과적으로 국가간 자금흐름의 진폭이 훨씬 더 확대된 이유는 통화정책과 기대 물가상승률의 변화가 커졌기 때문이다."(460)


"투자자들이 특정 통화로 표시된 유가증권의 보유를 늘리거나 줄이고자 할 때마다, 이 통화의 외환가치에 오버슈팅이나 언더슈팅이 유발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시장 환율이 국가별 물가상승률 격차에 부합하는 환율로부터 큰 폭으로 빠르게 괴리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전의 속설─'악순환 및 선순환', 그리고 시장의 균형점 이탈을 유발하는 '교란적 투기'─은 국가간 자금흐름의 급격한 변화에 뒤따르는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기대 물가상승률의 변화─보다 정확히는 국가별 물가상승률 차이의 변화─는 현물 시장환율 기대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외환가치에 오버슈팅과 언더슈팅을 초래한다." 또한 변동환율제하에서 "어느 한 통화로 표시되는 유가증권 수요의 확대라는 형태로 발생하는 일정한 크기의 충격은 그 나라에서 거래되는 유가증권과 부동산의 가격 상승이 유발되는 효과를 통해 해당국의 GDP에 더욱 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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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K. 헌트의 경제사상사 - 애덤 스미스부터 21세기 자본주의까지 비판적 관점으로 본
E. K. 헌트.마크 라우첸하이저 지음, 홍기빈 옮김 / 시대의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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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란 "생산, 교역, 상업에 필요한 각종 재료와 물질을 일컬으며, 연장, 장비, 공장, 원자재, 가공 중인 재화, 재화의 운송 수단, 화폐 등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물질적인 생산수단은 모든 경제 시스템에 다 있지만 그것이 자본이 되는 것은 오로지 상품 생산과 사적 소유에 필수적인 사회적 관계가 존재하는 맥락 안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자본은 단순한 물리적 대상물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복합적 집합도 지칭하는 말이다." 자본주의를 낳은 "최초의 자본축적이 가능했던 네 가지 중요한 원천은 (1) 급속히 늘어나고 있던 무역과 상업의 총량, (2) 공업의 선대제, (3) 인클로저 운동, (4) 대규모 인플레이션 등이었다. 그 밖에도 최초의 자본축적에 있어서 몇 가지 다른 원천이 있었고 그 중 몇 가지는 상당히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종종 망각 속에 묻어버리곤 하는데, 식민지의 약탈, 해적질, 노예 무역 등이 그것이다."(76-7)


초기 중상주의 시기에는 "대부분의 생산을 노동자가 수행했는데, 이 노동자는 아직 스스로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했다. 자본가는 주로 상인이었고, 그들의 자본이란 일반적으로 화폐와 팔아야 할 재화의 재고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중상주의 시기에 저작을 남긴 경제사상가들이 이윤의 원천을 교환, 즉 판매와 구매 과정에서 찾았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상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윤을 발생시키는 것은 교환이지 생산이 아니었다."(87) 중상주의 저작들의 공통점은 "첫째, 상품의 '가치' 또는 '자연적 가치'는 그 상품이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일 뿐이다. 둘째, 시장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힘이다. 셋째, 중상주의 저술가들은 종종 '내적 가치intrinsic value', 즉 사용가치야말로 수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따라서 시장가치를 결정하는 데서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논하고 있다."(89)


17세기 중반부터 "거의 모든 중상주의 저술가들은 국가가 국내 경제에서 독점권을 부여한다든가 여타 형태의 보호와 정실주의를 행하는 것을 비난했다(국제적 상업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이러한 관행을 적극 옹호했다). 구매자와 구매자, 판매자와 판매자, 또 구매자와 판매자가 모두 서로를 적으로 삼는 경쟁 시장에서는 가격이 자유롭게 오르내리면서 제대로 된(즉 시장을 균형 상태에 이르게 하는) 수준을 찾아가도록 할 때 사회의 편익이 극대화된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생각이었다."(102) 대표적으로 1714년, 버나드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에서 "낡은 도덕률로 보자면 가장 경멸받아 마땅한 악덕들이 만약 모두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최대의 공공선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이상한 모습의 역설을 제시한다. 이기심, 탐욕, 소유욕이 강한 행동 등은 모두 근면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경제를 번성시키게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104)


후기 중산주의 시기로 오면 상업의 확산으로 경쟁이 증가하면서 가격 격차만으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생산과 판매과정에 대한 자본가의 통제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늘어난다. "18세기의 경제사상가들은 (노동 분업으로) 늘어난 생산성을 놓고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기 시작했다. 첫째, 자연 자원은 오로지 노동을 투하하여 사용가치를 가진 생산물로 변형시킨 뒤에야 비로소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둘째, 전문화와 노동 분업이 증가하게 되자 상품의 교환이라는 것을 사실상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상이한 전문화된 노동의 교환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106) 한편, 프랑스의 중농주의자들은 "비효율적인 소규모 농업 대신 대규모의 자본주의적 농업을 장려"하면서, 길드 폐지와 규제 제거, 정부 수입을 "농업에 대한 단일의 전국적 조세로 충당해야 한다"는 정치적 개혁을 주창했다.(110)


18세기 중반 글래스고를 포함한 영국의 많은 상업 및 공업 도시들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매뉴팩토리manufactories'라고 부르는 장소에서 상당한 양의 생산이 이루어졌다." 매뉴팩토리란 "자본가가 건물, 생산 장비, 원자재를 소유하고서 일을 할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장소로서, "공장에서는 기계화된 조립 라인의 기술이 사용되었지만, 매뉴팩토리에서는 (여전히) 구식의 수공업 생산 기술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매뉴팩토리에서 "자본가가 노동을 효과적인 분업 과정들로 나누고, 그 결과 노동생산성이 크게 향상된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애덤 스미스는 "세 가지 소득 범주―이윤, 임금, 지대―가 그가 살던 시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3대 계급―자본가, 지주,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얻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자유로운' 노동자―에 조응한다는 사실의 의미와 중요성을 최초로 깨달은 경제학자이기도 했다."(125-6)


스미스는 3대 계급 중에 "오로지 노동만이 가치 또는 부를 창조하는 유일한 계급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134) 그는 "계급 분화의 가장 주된 기초가 토지 및 자본의 소유권이라고 보았다. 또 그는 자본가의 권력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몇 개의 원천에서 나온다고 보았는데, 자본가의 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그들의 능력, 정부에 대한 그들의 통제력 등이 그것이었다."(137) 노동가치론에서 어떤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양 그리고 생산에 사용된 간접노동(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생산수단을 생산한 노동)과 직접노동(그렇게 생산된 생산수단을 사용하여 그 상품을 생산한 노동)을 생산과정의 상이한 시점에서 어떻게 상대적으로 배분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하지만 스미스는 "생산수단의 통제권을 자본가가 장악하고 토지 및 천연자원을 지주가 독점하면 교환가치 또는 가격이 임금, 이윤, 지대라는 세 구성 요소의 총액이 된다고 여겼다."(138-9) 


스미스의 가격론에는 "두 가지 중요한 약점이 있었다. 첫째, 임금, 이윤, 지대라는 가격의 3대 구성 요소는 그 자체가 가격이거나 또는 상품의 가격에서 도출되는 것들이다. 상품의 가격을 설명하는 이론이 한 상품의 가격을 그저 다른 상품의 가격으로 설명하는 식이라면 이것을 일반적 가격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한 상품의 가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상품의 가격을 알아야 한다면, 이는 즉시 그 다른 상품의 가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낳는다."(143) 둘째, 스미스의 가격론이 내놓는 이런저런 결론은 "사실은 모든 가격의 전반적 수준에 대한 것일 뿐이며(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화폐의 구매력에 대한 것일 뿐이며), 다른 상품들 사이의 상대적 가치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145)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스미스의 가격순환론을 벗어나기 위해, 시장이 변동해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뉘메레르numeraire(상품 간 교환비율을 결정하는 기준 상품, 예를 들면 은)를 찾고자 노력했다.


1790년대에 노동자 조직이 급속히 확산되고, 사회경제적 불만이 증대되자 상류계급은 대단히 불편해 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프랑스혁명의 기억이 생생했고 그래서 단결된 노동자의 힘을 두려워했다. 그 결과는 1799년의 단결금지법Combination Act으로 나타났는데, 이 법은 노동자가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그 밖에 고용주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도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단결하는 것을 모조리 불법화했다."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지지자들이 강렬하게 벌였던 또 하나의 운동은 "1795년에 생겨난 스핀햄랜드Speenhamland 빈민 구호 시스템을 철폐하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직인법의 전통을 이어) 기독교적인 가부장적 윤리의 산물이었다. 빈곤에 처한 이들이 일자리가 있건 없건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취지였다." 이들은 어떤 형태의 구호에도 반대했는데, "이들의 논리는 맬서스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었다."(177-8)


맬서스의 <인구론 1판>에는 "책 전체를 관통하여 반복되는 두 개의 지배적인 주제가 있었다. 첫째는 제아무리 개혁가들이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부유한 소유자와 가난한 노동자라는 현재의 계급 구조는 필연적으로 다시 출현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한 계급 분열은 자연법에서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맬서스는 생각했다." 그의 인구론에 속속들이 파고든 두 번째 주제는 "끔찍한 빈곤과 고통은 모든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피할 길 없이 당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더욱이 빈곤과 고통을 경감시키려는 시도는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결국 상황을 개선시키는 게 아니라 더 악화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맬서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추동하는 동기는 성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며, 이 욕망은 결코 포만 상태가 되도록 충족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욕망이 억제되지 않는다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185-7)


맬서스가 교환을 사회적 조화라는 관점에서 지지하는 이유는, "소유권이라는 기성의 법률과 현존하는 소유권의 배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노동력밖에 없는 노동자는 "노동력의 구매자를 찾아내어 아무리 적은 임금이라도 받는 것이 굶주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따라서 모든 교환은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이며, 특히 소유자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분리가 불가피한 것임을 받아들인다면 더욱 그러하다."(196) 맬서스는 "지주의 지대 또한 그들이 생산에 기여한 바에 대한 보상이라고 옹호했으며, 그 과정에서 당시 널리 받아들여지던 생각, 즉 지대는 독점에서 얻는 수익 또는 일종의 불로소득이라는 생각을 논박하는 데 힘을 쏟았다."(200) 맬서스가 경제학 이론에 기여한 점은 공급과잉glut 또는 불황의 이론으로서, 그는 "공급과잉의 궁극적 원인은 과도한 이윤이 결국 (유효수요를 감소시켜) 자본축적률을 지속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상에 있다고 보았다.(209)


리카도의 "지대 결정 이론은 두 개의 전제 위에 서 있다. 첫째, 모든 토지는 비옥도가 차이가 나며 따라서 모든 토지를 가장 비옥한 것에서 가장 덜 비옥한 것까지 한 줄로 정렬할 수 있다. 둘째, 지주에게서 땅을 세내어 경작하는 자본주의적 영리 농업가들의 이윤율은 그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항상 균등화된다."(222) 리카도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받아들였고, 그 가장 중요한 귀결, 즉 인구 증가는 결국 노동자의 임금을 생계 수준으로 내리누르는 경향이 있다는 명제도 받아들였다. 따라서 지대를 발생시키지 않는 최열등지에서의 이윤은 그 토지에서의 총 산출에서 그 토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먹여살릴 만큼의 곡물을 뺀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윤은 임금을 지불하고 난 뒤 남은 몫이다." 여기서 "비옥도가 더 떨어지는 토지가 경작지로 들어올 때마다 순 생산물이 감소하는 한, 또 곡물로 표현된 임금률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한, 이윤율은 감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227)


리카도는 국제 무역에서 "교역되는 모든 상품을 한쪽 나라가 다른 쪽 나라보다 더 효율적으로 생산한다고 해도 자유 무역을 행하면 결국 두 나라 모두 혜택을 본다는 주장을 일관된 논리로 전개한 최초의 경제학자였다. 그는 또한 나라 사이에는 자본의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별개의 국제무역 이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267) 공급과잉을 부정하는 리카도의 주장은 단순하다. "자본가가 스스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생산하는 이유는 오직 이를 시장에 가져가 자신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과 바꾸기 위해서이다. 이 교환은 화폐에 의해 매개되지만 화폐 그 자체를 원하는 이는 없다." 화폐란 "다른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어떤 유용한 속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화폐를 그 자체로 축장하고 하는 이는 없다. 그러므로 생산은 그 자신의 수요를 창출한다. 어느 자본가든, 자신이 생산한 상품의 가격에 해당하는 양만큼 다른 상품에 대한 수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262)


"원자적 개인주의, 이기주의적 공리주의, 시장에 대한 의존, 이윤을 통한 산업화 자금의 융통, 계산적인 합리주의라는 다섯 가지의 측면이 19세기 말과 20세기에 효용과 사회적 조화를 말하는 신고전파 이론의 지적인 기초가 되었다. 훗날 경제학자들이 스미스와 리카도의 저작에서 불편하게 동거하고 있던 노동가치론의 관점을 제거하고 사회적 조화와 시장의 사회적 혜택 등의 개념을 따로 떼어내고자 진력하며 내놓았던 생각들은 대부분 벤담, 세, 시니어의 생각을 가져온 것이었다."(288) 밴담의 효용의 원리는 "모든 인간 행동은 쾌락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온다."는 말로 집약된다.(290) 벤담은 저축이 반드시 신규 투자로 이어지지 않으며, 이 경우 생산은 줄어들고 실업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부와 소득의 큰 불평등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부자에게서 빈자로 화폐를 재분배하는 정부 조치는 사회의 효용 총량을 늘려준다."(296)


"세는 노동이 가치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면서 오로지 효용만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주장했다." 세는 생산과정을 "자연의 원자재를 인간의 노력을 사용하여 쓸모 있는 재화로 전환시키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는 대신, 생산과정 안에는 상이한 '생산적 인자productive agencies'가 존재하며 이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재화를 생산하는 것이 생산 과정의 본질이라고 단언했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 노동의 지출을 한편으로 자본, 토지, 재산의 소유권을 다른 한편으로 하여 비교할 때, 양쪽은 효용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299-300) 세의 저작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자유 시장은 항상 모든 자원―노동을 포함―이 완전히 사용되는 균형점, 즉 노동과 산업 생산 시설이 모두 완전고용 상태에 달하는 균형점에 이르도록 자동적으로 조정되게 되어 있다는 믿음이었다."(303)


"시니어는 정치경제학의 이론들 사이에 그토록 많은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경제학자가 단순히 부를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후생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후생을 고찰하게 되면 즉시 규범적 또는 윤리적 명제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런 명제는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는 다양한 집단의 태도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비과학적인 윤리적 전제를 제거하면 "정치경제학은 가치가 배제된 중립적인 ‘순수 과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보았다.(312-3) 시니어는 이론화 과정의 기초 자체에 이미 가치의 문제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이론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그가 어떤 사회적 쟁점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문제들에 대해 어떤 유형의 해결책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결정한다."(314) 가치 중립적 명제라는 말 자체가 이미 가치 지향적인 '사회적' 발언이다.


윌리엄 톰프슨과 토머스 호지스킨은 오언의 협동조합 운동과 노동가치론의 계급 갈등적 시각을 결합한 이론가들이다. "톰프슨은 부의 분배야말로 사회의 다양한 성원들이 얼마나 많은 쾌락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341) 자유 교환 논리를 받아들인 톰프슨이 "보수적인 자본주의 옹호론의 공리주의를 반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노동자가 자본주의 하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판매한다는 주장을 부인했기 때문이다."(345) 그가 보기에 굶주림의 위협은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협과 마찬가지로 강제적인 것이다. 톰프슨은 경쟁적 개인주의보다 협동적 사회주의가 낫다고 보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모든 동기를 자기 이익의 합리적 추구로 환원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는 톰프슨 자신의 공리주의적 심리학과는 전혀 양립할 수 없"었고 그 결과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빠져들고 말았다.(358)


"호지스킨은 자본이란 본질적으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생산물을 수탈하는 강제적 권력을 내포하는 사회적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자연이 정한 법령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호지스킨은 노동의 산물인 "자본을 생산하지 않은 이가 소유하는 것은 비자연적이며, 또 대부분의 사회악의 근저에 도사린 문제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지스킨에게 이상적인 사회란 "일도 하지 않으면서 소유권으로 소득을 얻는 게 가능하지 않은 사회였다. 자본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노동하는 이들뿐이며, 이들도 자신들의 생산활동을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자본만 소유할 수 있을 뿐이다. 오직 이런 사회에서만 상품의 가격에 이윤과 지대를 계산에 넣어야 하는 필요가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만 자연가격과 사회적 가격이 일치한다." 즉, 호지스킨의 시스템은 "자본가가 없는 경쟁적 자본주의였다."(367-9)


효용가치론적 접근을 일관되게 전개한 최초의 경제학자는 바스티아다. 그는 "교환은 정치경제학이다. 교환은 사회 자체이다. 교환이 없는 사회 또는 사회가 없는 교환이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384) 바스티아의 접근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노동은 그저 서비스의 한 유형에 불과하며 지주와 자본가가 수행하는 다른 종류의 생산적 서비스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었다."(387) 밀은 바스티아와 달리 사적 소유가 자연이나 하나님이 만든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밀은 정치경제학의 핵심을 교환에 두는 것을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환은 생산물 분배의 근본적 법칙이 아니다. 이는 도로와 교통수단이 운동의 본질적 법칙이 아니라 단지 그 법칙을 현실에 발현시키는 기계적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점을 혼동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실수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인다."(401)


밀은 노동자가 단결하면 '파업의 경험'이 가능해지며, 이는 "임금과 노동의 수요·공급의 관계라는 주제를 노동자계급에게 교육시키는 최고의 교사"라고 말했다.(409) 밀은 극심한 빈부의 차이 때문에 당대의 자본주의적 계급 구조를 도덕적으로 거부했으며, 이것이 궁극적으로 폐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인류가 고용주와 피고용인이라는 두 개의 세습적 계급으로 나뉜 상태가 영구적으로 유지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밀이 관심을 두었던 으뜸가는 질문은 자본주의가 모종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회로 진화하는 사회적 변화의 방향과 속도였다.(415) 그러나 밀의 직접적인 목적은 자본주의의 개혁을 증진하는 것이었다. 바스티아처럼 현존하는 소유권이 신성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에 반대하여 밀은, "사회는 충분히 숙고하여 공공선에 합치한다고 판단을 내린다면 어떤 특정한 소유권도 바꿀 수 있고 아예 폐지할 수도 있는 완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418)


마르크스는 "모든 상품에 공통적인 요소로서 직접 양적으로 비교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사회적 관계의 일부를 이루는 유일의 요소는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라고 보았다.(443) 인간 노동의 생산물은 "오직 시장에서 화폐와의 교환이라는 목적으로 생산"되었을 때만 상품이 된다. 따라서 "생산물이 상품의 형태를 취하는, 즉 직접적으로 교환을 위해 생산되는 생산양식이야말로 부르주아적 생산의 가장 일반적이고도 가장 맹아적인 형태"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448) 마르크스에게 중심적인 질문은, "잉여가치, 즉 M’이 M을 넘는 초과분을 발생시킨다고 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특징을 과연 유통영역 안에서 해명할 수 있는가이다."(453) 그가 생각하기에, "잉여가치의 원천은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즉 잠재적 노동)과 노동력으로 생산되어 실현된 노동을 체현하고 있는 상품(즉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사용가치를 소비한 것)의 가치 사이의 차이일 수밖에 없다."(458)


자본주의는 "상품 생산 사회에서 하나의 소수 계급의 사람들―자본가―이 생산수단을 독점한 탓에 대다수의 직접 생산자들―노동자―이 생산수단이 없어서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없을 때 존재한다. 노동자는 다음의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굶든가 아니면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든가. 자본주의는 이렇게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이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진화해온 독특한 생산양식으로서, 지배계급이 상품 생산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능력을 통해 피지배계급을 통치하는 생산양식이다."(459)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을 가장 신랄하게 비난한 것은 "인간의 인격적 발전을 좌절시키고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제반 활동을 시장의 소외된 상품으로 만드는, 이러한 노동계급의 비하와 철저한 비인간화였다."(501)


# 경쟁과 축적의 네 가지 결과

1. 경제적 집중 : 강자가 약자를 분쇄, 흡수, 합병한다.

2. 이윤율 저하 경향 : 이윤율 계산의 기초는 자본(생산수단+노동력)이지만,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노동력뿐이다. 자본축적이 커질수록 생산수단의 가치가 노동력의 가치보다 빠르게 증가해서 이윤율이 하락한다. (이윤 총량은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다)

3. 소비재와 자본재 부문 간의 불균형과 공황 : 호황기에 노동 수요가 급증하면, 자본가는 생산성을 높여 고임금을 억제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생산기술이 발전하면 잉여 노동 인구가 늘어나는데, 늘어난 생산량과 실업으로 인해 줄어든 총수요가 불균형을 이루어 공황을 초래한다. 

4. 프롤레타리아트의 소외와 비참의 증대 : 인간은 노동을 통해 감각과 지성을 개발하고, 생산물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실현을 달성한다. 그러나 노동력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의 소외를 맛보게 되고, 자본축적이 증가할수록 이러한 비참함은 증가한다.


제번스, 멩거, 발라가 경제 이론에 도입한 '한계주의marginalism'는 "인간 본성을 오로지 효용의 합리적 계산을 통한 극대화에만 있다고 보는 공리주의적인 비전을 미적분학으로 풀어서 정식화했다. 일반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도록 경제 이론을 수학으로 정식화하는 경향이 바로 여기에서 진짜로 시작되었다."(517) 제번스는 자연적 조화가 존재한다는 공리주의적 신념에 따라 "시장 자본주의의 자연적 상태가 계급 갈등이 아니라 사회적 조화라고 확신했다." 그는 경제학에서 모든 인간들은 다 형제라고 말했는데, "이 사회적 조화의 '형제애'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을 오로지 교환 당사자로만 본다면 누구나 다 본질적으로 평등하고 똑같게 보이기 때문이다."(524) 이처럼 이들의 공리주의는 자신을 기만하면서 주관성(쾌락, 가치부여, 심미안 등)을 객관성(계량화)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미스, 리카도, 마르크스에서 "지대, 임금, 이윤은 전체 사회에서 계급에 따른 소득분배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지만 개별 기업의 생산물을 구성하는 비용 요소이기도 하다. 이것을 비용의 구성 요소로 보아 합산한 것이 스미스의 '자연가격' 또는 마르크스의 '생산가격'이다." 그러나 "효용가치론의 관점은 가격 결정 과정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며, 수요와 공급은 효용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소비재 가격의 궁극적인 결정 요소는 효용이다. 토지, 노동, 자본 등의 '생산요소'의 가격 또한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 이 세 생산요소의 공급은 그것들의 소유자의 효용 계산에 따라 결정되며, 그 수요는 그 세 가지 요소가 소비재 생산에서 얼마나 큰 생산성을 갖는가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소비재에서 소비자들이 얼마나 큰 효용을 얻는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효용가치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임금, 지대, 이윤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소비재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533-4)


발라는 경제가 균형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하지만 거기에는 "완전경쟁의 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신고전파가 보는 완전경쟁의 그림에서는 모든 기업이 가격 수용자이다. 가격이 먼저 시장에서 확립되며, 기업은 그 뒤에 이 가격에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 새로운 가격은 어떻게 확립되는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오늘날까지 이 문제로 대단히 골치를 앓아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발라는 경매인 또는 '호가자呼價者'가 존재하여 모든 사람에게 모든 상품의 가격을 알린다고 가정해야만 했다."(555) 발라는 "사회주의를 혐오했지만 '시장의 무정부 상태'(비록 이는 사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이지만)의 문제를 피하는 수단으로 결국 호가자와 중앙 계획 기구 모델을 선택했다." 발라 이론의 문제는, "어느 한 가격이라도 변한다면 그때마다 이 변화가 한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른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557-8)


산업혁명 초기의 산업자본가는 "실제의 생산과정을 직접 감독하고 조정하며 지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들의 노력에서 중심적인 초점 또는 목적은 산업자본의 신속한 축적이었고, 이들의 주된 지적인 관심은 자본축적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노동가치론은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별에 초점을 두면서 이러한 자본축적 과정에 대해 가장 유용한 지혜를 제공했다." 그러나 "산업화의 으뜸가는 형태로서 주식회사가 성장하고 또 이에 따라 산업의 집중이 증가하면, 산업자본의 축적의 성격과 산업자본가의 역할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가 생겨난다. 자본축적은 이제 체계화되었고, 제도화되었고, 정규화되었다." 산업자본가가 지주계급을 닮아가면서 "소유권을 신성한 것으로 인정하고 교환경제의 미덕을 높이 내거는 이론"이 필요해졌다. 바로 그 시점에 "효용 이론 또는 시장의 관점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의 모든 요소의 공통된 이익에 복무하기 시작한 것이다."(566-8)


"사고파는 상품의 수량을 조금씩 한계적으로 조정함으로써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신고전파 이론에서 가능한 이유는, 한 상품 대신 다른 상품을 쓸 수 있다는 대체 가능성substitutability 개념 덕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유일한 고려 사항은 "상품에서 얻는 한계효용이 얼마인가 그리고 그 상품을 얻는 비용은 얼마인가이다. 따라서 어떤 상품의 비용이 증가하면 소비자는 그 비싸진 상품의 소비 일부를 줄이는 대신 다른 상품의 일정량으로 그것을 대체한다."(591-2) 마셜은 소비재의 대체 가능성 개념을 생산요소에도 적용시킨 경제학자이다. 그에 따르면 "기업에서 생산요소의 대체 가능성은 가계에서 소비재의 대체 가능성과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생산요소의 사용 증가에서 수확체감이 나타난다는 법칙 또한 한 상품의 소비량 증가에서 한계효용 체감이 나타난다는 법칙과 유사하다. 마셜 이후로 기업의 극대화 이론은 가계의 극대화 이론과 분석적으로 거의 동일한 것이 되었다."(594)


각각의 생산요소가 그 한계생산물의 가치와 동일한 소득을 얻는 완전경쟁 시장에서 "모든 요소가 얻는 소득을 모두 합한 것은 총생산물의 가치와 정확하게 동일하다. 착취의 가능성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각각의 개인은 자신의 생산요소가 생산한 것과 같은 가치를 수취하며, 누군가가 수탈할 잉여는 존재하지 않는다."(618) 이 교환 체계에는 두 기계신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기업가entrepreneur로서, 극대의 이윤을 쫓는 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충동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들고 그 결과로서 생산요소를 소비재로 변형하여 효용 극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두 번째 기계신은 발라가 말하는 호가자이다. "일반균형 상태에서 수요와 공급의 힘이 자유롭게 작동할 때 그러한 균형적 정상가격 조합이 확립되며, 그러한 가격 조합에서는 각각의 개인이 자신의 생산요소가 창출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만큼을 얻게 되고, 공황이나 비자발적 실업 따위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621-2)


"신고전파 분배 이론에서 자본의 가치는 자본의 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의 생산성을 확인하기 위해 자본의 가치를 가정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본의 가치가 자본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꼴이 되지만, 신고전파 이론에서는 이러한 인과관계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야만 한다. 즉 자본의 생산성이 자본의 가치를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신고전파 한계생산성 분배 이론이 논리적으로 성립하려면(즉, 이론적으로 순환논증이 아니냐는 공격에서 벗어나려면), 생산에 사용된 자본의 수량을 자본의 가격과는 전혀 무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해야만 한다."(625) 클라크 이후 "신고전파의 이론에서는 자본의 수량이 자본의 한계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이것이 다시 자본의 가치를 결정하도록 인과관계의 방향이 설정"되어 있다. 이들은 "실제로는 그런 척도를 전혀 찾아낸 적이 없"으면서도 그런 척도를 찾아낸 것 마냥 계속 이런저런 이론을 구축해왔다.(628)


19세기 후반 '테일러주의'로 대표되는 과학적 경영은 개인적 차원의 자본축적 양식을 대규모 주식회사 형태로 합리화, 정규화, 제도화했다. "이러한 제도적 변형으로 나타난 결과 중 각별히 중요한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자본의 국제화였다. 두 번째는 자본가계급 구조의 변화이다. 자본가계급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지배력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축적 과정의 제도화로 인하여 자본가들의 대다수는 가만히 앉아서 부재 소유권absentee ownership만 보유하고도 지위를 영구화시킬 수 있었다. 자본가들의 대다수는 이제 순수한 금리 수취 계급이 되었으며, 그들 중 오직 소수만이 관리(경제와 정치 모두에서)의 기능에 종사하면서 전체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일종의 집행위원회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집행위원회는 이 새로운 기업 구조의 '관리자들을 관리함'으로써 그 기능을 수행했다."(644)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베블런의 근본적 비판은, 그것이 인간 본성과 사회제도에 대해 철저하게 몰역사적이고 단순화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652) 베블런은 "생산이란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며, 여기서 인간들은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또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하며, 자연을 인간의 필요와 쓸모에 맞도록 변형시키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회적으로 협동한다. 이러한 과정을 분리하는 것, 게다가 그 과정에 들어가는 상이한 요소를 오로지 토지, 노동, 자본으로 범주화하는 것은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시대에만 고유하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656) 따라서 소유권의 근거가 그 소유자의 생산적 노동에 있다는 "사적 소유의 관점은 보수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옹호할 때도 사용되며 또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공격할 때도 사용"되지만, 어느 경우든 옳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소유의 기초인 생산과정을 개인이 수행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661)


"부자들의 과시적 소비 행태를 기술하면서 베블런은 단지 재미난 일화를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금전적 문화는 무엇보다도 남의 질투를 유발하는 차별의 문화이다. 어떤 개인의 인간적 가치가 무엇보다도 금전이라는 질투 유발의 차별 시스템에서 측정된다면, 사회 안에 작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의 하나는 경쟁적 모방emulation이며, 이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보수주의를 확고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장치가 된다."(687-8) 사람들이 "모방적 소비 또는 소비주의라는 쳇바퀴에 갇히면 이들은 이제 얼마의 소득을 얻든 '만성적 불만족'의 삶을 산다." 이제 빈곤의 나락에 빠지지 않은 노동자들마저 비참함을 느끼게 된다. 베블런은 이 비참함이 "정신적 사실이라는 것 때문에 현실성과 절실함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말로 이는 정신적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더 실질적이고도 치유가 불가능한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한다.(691)


신고전파 미시경제학 이론에서 "소비자의 효용 극대화를 분석하는 한계효용 이론에서 무차별곡선indifference curve을 도입하게 되면 효용의 양을 객관적으로 측정하여 기수적基數的으로 수량화할 수 있다는 가정을 버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저 소비자가 상이한 상품에 대해 무엇을 무엇보다 더 좋아하는지처럼 각각의 재화에 대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호에 서열을 매길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는 효용을 그저 서수적序數的으로만 수량화하는 것(즉 서열 매기기)을 말하는 것으로서, 개인들 사이의 효용 비교는 요구하지 않는다."(762) 효용 가능 곡선 위에서 "아무리 생산을 변화시키고 상품 교환 수량을 변화시킨다 해도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게 되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해치게 된다."(769) 따라서 최초의 부의 분배 상태가 주어지면, 생산과 교환을 통하여 거기서 도달할 수 있는 극대의 수준까지 효용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 점이 바로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이다.


# 효용 가능 곡선 : 생산량의 수준과 생산물의 구성이 균형 상태에 도달하여 그 결과 나타나는 교환이 위치하는 선


"후생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인 규범적 원리는 몇 가지 다른 방식으로 언명할 수 있다. 쾌락은 더 많은 편이 더 적은 편보다 윤리적으로 선하다(벤담이 말한 방식). 더 많은 효용이 더 적은 효용보다 윤리적으로 선하다(19세기 말 신고전파의 방식). 한 사람의 선호 순서에서 더 선호되는 위치가 덜 선호되는 위치보다 윤리적으로 선하다(오늘날의 신고전파 방식). 이 각각의 경우마다 어떤 사물의 쾌락, 효용, 선호도를 제대로 평가할 자격을 갖춘 유일한 판단자는 고립되고 원자화된 개인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후생의 크기는 오로지 그 개인과 소비 대상 사이의 관계로만 결정된다고 가정되기 때문이다. 개인이 가진 욕망에다 시장의 구매력을 가중치로 계산한 것이 사회적 가치의 궁극적인 기준이다." 후생경제학은 "개인의 욕망이라는 것 자체가 특정한 사회적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위치에서 생겨나는 산물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다."(776-7)


파레토 최적을 정부 정책의 규범으로 삼는 관점은 정부를 그림자 같은 존재로 다룬다. "파레토 최적이 존재하는 한 정부는 전혀 언급되는 법이 없다. 그러다가 불완전성(이는 보통 완벽한 이 세상에 어쩌다가 일어나는 고립된 사건이라고 간주된다)이 생겨나면, 정부가 갑자기 무슨 기계신처럼 시장 위에 내려와서 그 시스템에 일종의 지복 상태를 회복해준다. 정부는 시장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불편부당한 존재로서, 이따금씩 무대 위로 내려와 파레토 최적을 회복하기 위하여 소비세를 부과하거나 보조금을 주는 존재다."(786) 신고전파 후생경제학에 따르면, "시장경제에서 어떤 개인이나 기업의 행동이 다른 개인이나 기업에 쾌락이나 고통을 일으킨다고 해도, 이 행동에 대한 가격이 시장에 의해 매겨지지 않는 경우는 모두 외부성의 개념에 해당한다." 이들이 환경오염 같은 외부성을 처리하는 방법은 "새로운 재산권을 창출하고, 그러한 권리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790-1)


신고전파의 임금률과 총생산량 분석에서 "실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노동자가 자신들의 한계생산물의 가치보다 더 많이 받을 때에만 일하려 하기 때문이다."(819) 케인즈는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낮추는 것이 실업의 유일한 대책이라는 신고전파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실질임금은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통해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임금재의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천천히 떨어지게 만들면서 화폐 임금률을 더 빠르게 줄이면 된다는 것이었다(이는 대부분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추천하는 방식이다). 둘째, 화폐 임금률이 동일하거나 천천히 증가한다면 임금재의 가격을 더 빠르게 증가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첫 번째 방법으로 임금을 줄이는 것은 노동자들이 절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지만, 두 번째 방법은 그럭저럭 평화적인 가운데 용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824)


케인스가 거부했던 신고전파의 믿음은, "만약 자본주의 경제가 완전고용 상황에서 출발한다면 이자율이 자동적으로 이자와 저축을 동일하게 만들어주고 이에 따라 총수요는 총공급과 일치하게 되어 있다는 명제였다. 그가 신고전파의 시장의 자동조정 이론과 단절한 주요한 지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비록 그는 저축이 이자율의 영향을 받는다는 신고전파의 생각을 받아들였지만, 저축량을 결정하는 데 이자율보다 훨씬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총소득의 수준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둘째, 그는 이자율을 결정하는 것은 저축과 투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자율이란 화폐의 수요와 공급을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가격이며, 투자 및 저축과는 상당히 다른 문제라고 케인스는 생각했다". 이 생각은 "시장에 자유와 경쟁이 주어지면 파레토 최적의 자원 배분이 생겨나게 된다는 주장 그리고 각 생산요소의 한계생산성이 분배를 결정한다는 주장을 함께 무너뜨렸다."(826)


# 하락의 나선형 악순환

화폐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는 이자율 r1에서 저축이 투자를 초과 → 총수요가 총공급보다 낮아짐 → 기업 생산물이 모두 팔리지 않아 재고 증가 → 개별기업의 생산량 축소 → 고용 및 소득 감소 → 총수요 더욱 감소 → 생산량 축소 ...


# 하락의 나선형 악순환에 대한 케인즈의 해결책

1. 화폐 공급을 늘려 이자율을 저축과 투자가 일치하는 수준으로 조정한다.

2. 이자율이 이미 너무 낮아 통화정책이 별 효과가 없는 경우라면, 과잉 저축분을 정부가 차입하여 공공 사업을 시행한다. 공공사업이 중간 및 하층 소득자에게 더 큰 혜택이 된다는 이유로 정치적, 현실적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 무익한 활동이라도 벌이는 것이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낫다.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 두 가지의 기술이 있다고 하자. 기술 A에는 많은 양의 노동이 들어가지만 노동시간은 생산과정의 후기 단계에 집중된다. 기술 B에는 적은 양의 노동이 들어가지만 노동시간은 생산과정의 초기 단계에 집중된다."(889) 신고전파 이론은 기술 A와 B 중 어느 쪽이 더 자본집약적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채, "오로지 이자율이 떨어지고 임금률이 오르면 이윤 극대화 기업은 항상 자본 집약도가 낮은 기술에서 높은 기술로 전환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러나 "똑같은 종류의 물리적 자본재를 똑같이 조합하여 똑같은 시간적 구조로 똑같은 조건에서 사용했는데도, 거기서 창출된 자본의 가치는 현행 이자율과 임금률이 얼마인가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생산의 물질적 조건이 동일하다고 해도 상이한 상품 사이의 생산비용의 비율 또한 변할 수 있다."(892-3)


# 기술 재전환

1. 기술 A가 더 자본집약적인 경우 : 이자율이 아주 높고 이에 상응하는 임금률이 아주 낮을 때

2. 기술 B가 더 자본집약적인 경우 : 이자율이 점차 낮아지고 이에 상응하는 임금률이 올라갈 때

3. 다시 기술 A가 더 자본집약적인 경우 : 이자율이 아주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임금률이 올라가는 상황의 특정한 지점. 즉, 이자율 하락폭이 임금률 상승폭을 상회할 때 도달하는 특정한 지점.


기술 재전환을 발견한 스라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이한 노동량을 내포한 여러 '기간들'을 합산하여 이것으로 자본의 양을 표시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단일한 수량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산 방법에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품 사이의 상대 가격 변동 방향이 거꾸로 뒤집히는 현상은, 자본을 분배 및 상품 가격과 무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수량으로 보는 그 어떤 생각과도 화해가 불가능하다."(893) 여기서 "기술 재전환이라는 것이 과연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인가 아니면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일어나는 일인가의 문제가 나온다." 그러나 신고전파 이론의 기대와는 달리 기술 재전환이 불가능한 경우는, "두 기술 모두 자본재 생산 부문과 소비재 생산 부문에서 자본-노동 비율이 동일할 때만 나타난다. 그 이외의 모든 경우에서는 기술 재전환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에 신고전파 경제 이론은 논리적 모순에 휘말려든다."(898)


여기에는 최고의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거의 항상 노동가치론을 가격이 노동가치에 비례한다는 명제와 동일시해왔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상품 가격과 노동가치의 엄밀한 비례 관계를 조정한 "수정 원리가 논리적, 이론적으로 성립 가능하다는 사실을 한사코 거부해왔다. 이들은 노동가치론은 모든 산업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동일할 것을 요구하는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이론을 비웃고 거부했다. 이런 비현실적인 가정이 도대체 어떻게 실제의 경제 현실에 대한 기술이 될 수 있겠느냐며 한심한 것으로 치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스라파의 비판을 통하여 "형세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노동가치론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모두 동일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이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신고전파 이론 쪽이 되어버렸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기술 재전환의 딜레마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모든 산업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동일할 때뿐이다."(898-9)


폴 새뮤얼슨은 "자신의 논문 <자본 이론에서의 우화와 현실주의: 대리생산함수>에서 신고전파 이론(그리고 이데올로기)을 구출하기 위한 멋진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스라파의 비판을 인정했지만, 단순하면서도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우화'―논리적으로 일관성을 가진―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 우화의 유비를 통해 J. B. 클라크의 '진리'를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901) 신고전파 이론의 열정적인 추종자들이 "그저 이론적으로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에서 (신고전파 이론을) 내팽개치기에는 이데올로기적 가치가 너무나 크다." C. E. 퍼거슨의 저서 서문을 보면, 신고전파 이론에 몸 바친 열정적 추종자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솔직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고전파 경제 이론에 의지할지 말지는 신앙의 문제이다. 나 개인은 이 이론을 믿는다. 하지만 현재로서 내가 다른 이들도 이 이론에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새뮤얼슨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뿐이다."(904-5)


# 새뮤얼슨의 자유방임주의 비판 수용과 반론

1. 자유 시장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러나 정부의 확장을 통해 혼합경제가 창조되어, 불안정성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2. (독)과점은 경쟁에 의한 효율성을 저해한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와 반독점 법률은 가격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다.

3. 사회가 반드시 소비해야 하지만 개인들이 효율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공공재가 존재한다. 이 공공재는 정부 선출 과정과 정부가 마련한 법령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4. 외부성은 도처에 존재한다. 외부성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자본가는 없다. 따라서 정부의 공적 개입이 필요하다.

※ 새뮤얼슨은 정부 개입이 신고전파의 3대 이데올로기를 이상에 가깝게 실현되도록 뒷받침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 속의 정부는 기득권의 이익에 복무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새뮤얼슨은 거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공황과 1,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방임 자본주의라는 신념을 일정부분 포기한 케인즈 경제학과 '발전' 경제학이 도입되었지만, 신고전파는 군수경제와 이데올로기적 중요성에 힘입어 여전히 경제학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12-2006)은 대공황의 책임 추궁을 오롯이 정부 정책의 어깨 위에 쏟아부음으로써 대공황을 설명하고 대공황 때문에 신고전파의 자유방임 정책이 겪어야 했던 신뢰의 위기를 해소했다."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1915-2009)은 신고전파 이론을 고도로 훈련된 신고전파 경제학자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더욱 중요한 업적은 전통적인 신고전파 이데올로기와 새롭게 나타난 케인스 경제학 및 발전경제학이라는 서로 상극으로 양분화된 상태를 극복하여 화해시킨 것으로서, 이것이 나중에 표준적인 정통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935-6)


한편, 제3세계의 저발전 국가들은 "자유 시장에만 의존하는 것으로는 자신들의 상황을 절대로 개선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여기서 소비에트 경제가 보여준 급속한 공업화의 예는 강력한 매력을 던지고 있었다." 아서 루이스W. Arthur Lewis(1915-1991)는 발전경제학 분야를 창조하여 저발전 국가에 "강제적 공업화의 매뉴얼과 같은 것을 제시"하고,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안전하고도 이윤 좋은 투자기회를 보장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법률적, 경제적, 국가적 제도와 장치를 갖추도록" 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937) 루이스에 따르면 제3세계 나라들에 필요한 것은 바로 '더 많은 저축'이다. 그렇게 되면 "전통 부문에서 '무시할 만큼 적어서 제로 또는 심지어 마이너스'의 한계생산성으로 일하던 비생산적 노동자를 자본주의적 부문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이들의 한계생산성이 훨씬 더 높아져서 경제 전체의 생산을 증가시키고 종국에 가면 모든 이들의 경제적 후생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940)


오스트리아 및 시카고학파는 "리버럴 신고전파 학자들이 자유방임 이론으로는 현실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네 가지 주요 영역에 크게 괘념치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리버럴 신고전파와는 달리 정부 활동의 고유한 영역을 현존하는 시장 시스템을 보호하는 것(즉 사적 소유를 보호하고 계약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 이상으로 확장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958-9) 기술 재전환 문제의 증명과 관련해서 이들은 "자본주의의 존재 자체를 아예 부인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애초부터 자본이라고 부를 만한 보편적 사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자본의 생산성을 계산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미 오래전에 세, 시니어, 바스티아가 시작한, 노동과 자본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작업 과정을 이들이 완성한 셈이다. 이들의 이론에서는 노동자도 자본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교환을 행하는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961)


신고전파 경제 이론의 두 주요 분과(소비 이론과 생산 이론)를 보면 "소비란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교환만을 포함하는 반면, 생산은 '자연과의 교환'이다. 따라서 모든 경제활동은 교환일 뿐이다." 자본과 이자에 대한 오스트리아 및 시카고학파의 접근법에서는 "모든 상품에 현재의 가격과 미래의 가격이 존재한다. (지금 당장 사용되는 노동이나 미래에 사용되는 노동에 대한) 임금률도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이다. 투자란 자연 또는 다른 교환자와 현재의 재화를 미래의 재화로 교환하는 것일 뿐이다. 자본은 모든 미래 소비재의 현재 가치(그 개인이 그 소비재를 소비할 수 있는 미래 시점까지의 이자율로 할인한 가치)에 불과한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미래에 무언가 향유할 재화가 있다면 정의상 모든 개인은 다 자신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 셈이며, 결국 모든 개인은 미래와 현재 사이에 걸쳐서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교환을 하고 있으므로 모두 다 자본가이다."(963-4)


# 자유방임주의 비판에 대한 이들의 대응

1. 시장의 불안정성은 정부의 지나친 개입 탓이다.

2. 거대 기업은 중대하고 유의미한 독점력을 갖고 있지 않다. 현존하는 독점력은 정부의 도움을 얻어낼 수 있는 경우뿐이다.

3. 정부가 공급해야 하는 유일한 공공재는 국방이다.

4. (환경 오염 같은) 부정적 외부성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창출하여 시장에 내놓는다.


제도주의 경제학자인 "에이레스는 베블런을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 활동과 가치는 두 개의 이분법적이며 적대적인 범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쪽 극단은 미신적이며 의식儀式과 결부된 의전적ceremonical 가치 및 활동이다. 이러한 가치 및 활동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위계적 구별을 창출하고 보존하는 것을 사회적 기능으로 삼는다. 이 이분법의 다른 쪽에는 기술적 가치 및 활동이 있다. 이러한 가치 및 활동은 에이레스가 '사회 전반의 생활 과정general life process'이라고 부른 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996)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이 어떠한 제도들에 기반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권력이 시장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으며 어떻게 시장에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는가를 연구"한다. 이들은 경제를 "사회적 가치 평가 과정의 일부로 보며, 이 과정은 상품의 가격 결정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중요한 과정이라고 본다."(1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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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보의 자본주의의 역사 1500~2010 - 제6판
미셸 보 지음, 김윤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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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향한 "여정의 첫째 단계는 아메리카의 정복과 약탈(16세기), 둘째 단계는 부르주아지의 등장과 그 기반확립(17세기)이다."(38) 아메리카 귀금속의 유입으로 화폐와 물가가 크게 동요하자 "혼란스러운 논쟁이 전개되었고 물가 등귀의 원인으로서 농부, 중개인, 수출업자, 외국인, 상인, 고리대업자 등이 뒤범벅이 되어 비난을 받았으며 그뿐 아니라 화폐의 귀금속 함량을 줄인 화폐 액면가의 인상도 함께 비난을 받았다."(43) 각국 정부가 금은의 국외 반출을 저지하는 조치를 취하는 중에 존 헤일스는 그의 <강론Discourse>에서 "각각의 개인은 공공 복리의 구성원이다. 따라서 한 사람에게 돈벌이가 되는 모든 거래는 이를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돈벌이가 될 것이다. 한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그러므로 동시에 그의 이웃에게도 이익이 되며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고 썼다. 이로써 "왕국의 부는 상인과 제조업자의 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44-6)


17세기 이후 유럽 각국이 식민지 확장에 몰두하면서, "1621년 토머스 먼은 그의 <영국의 동인도 교역론>에서 해외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귀금속의 축장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문제는 흑자 수지를 가져오도록 이를 순환시키는 것이었다."(61) "국민적 위대성, 국가와 상인의 치부致富, 세계의 제패, 여기에 부르주아지와 군주간의 타협의 기반이 놓여 있었다." 유산계급과 군주제의 대립은 크롬웰의 과두적 공화제를 불러왔다. 크롬웰은 공격적인 중상주의 정책을 취했는데, "1651년 위기를 맞이해 그는 첫 번째 항해조례를 선포했다. 유럽의 상품은 오로지 영국 선박 혹은 그 원산국의 선박만으로 수송될 수 있으며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의 산품은 오직 영국 선박이나 당해 식민지의 선박에 의해서만 수입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660년 두 번째 항해조례는 선장과 승무원의 최소한 4분의 3은 영국인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게 된다."(63)


상인제조업자 밑에서 일하는 "가난한 수공업자와 노동자,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유도 민주주의도 아니요, 언제나 똑같은 목표를 가진 법령의 보호였다. 즉 품삯이나 임금의 인상, 노동시간의 단축, 외국의 경쟁에 대한 보호 등이었다. 민주주의와 자유, 이런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상인부르주아지나 은행부르주아지, 법학자 그리고 법률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 지지자들은 자유직업인, 농촌의 유력자들, 부유한 상인과 영농가, 그리고 일부 젠트리들이었다." 절대주의를 타도하는 일이 보통선거에 기초한 민주적 정권을 세우는 문제와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재산가들(약 5만 명)만이 의회에 보내는 대표를 지명할 수 있었다. 왕국이 추진해온 중상주의 정책으로 오랫동안 혜택을 받아온 부르주아지는 절대주의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의 거점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즉 대중운동에 직면해 여전히 강력한 지배계급인 구귀족과 부르주아지의 사이에 신중한 타협이 진행되었던 것이다."(68-70)


로크의 <시민정부론>이 나온 다음 해인 1691년, 영국의 귀족이자 데카르트의 찬양자로서 터키의 무역업자와 런던의 고위 관리, 시장을 역임한 더들리 노스 경은 중상주의를 배격하고 순수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무역론>을 발표했다. 그는 "무역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 세계는 단일한 국가 또는 단일한 국민에 불과하며 그 속에서 각 국가는 일개인과도 같은 것이다. ··· 한 나라의 상업과 국익에는 유리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불리한 모든 방책은 [세계 전체로 보면 자원의] 남용이며 그만큼 공공의 이익을 감소시킨다. ··· 무역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가격을 고정시키는 법이란 없다. 가격 수준은 스스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며 또 스스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73) 반면 프랑스는 여전히 중상주의 정책을 중시했다. 콜베르에게 "무역회사는 왕의 군대이며 프랑스의 제조업은 그 예비군"이었고, "왕국의 화폐를 증대시킬 수 있는 길은 오직 이웃나라로부터 그만큼의 화폐를 빼앗아오는 것"이었다.(80)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세계무역을 지배할 만큼 충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자 자유무역의 장점을 내세워 중상주의 명제를 버리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절대주의에 맞설 만큼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하자 이와 함께 스스로 자유와 자유로운 합의의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하고(그리하여 프티부르주아지와 대중에게 지지를 얻었다), 계몽된 귀족계층과 동맹을 맺었다(이로써 농민봉기와 대중적인 불만의 위험에 대처했다). 어떤 경우에나 부르주아지는 국가기구의 최고위직(고등서기관, 행정감독관, 국가관리뿐 아니라 의회나 사법부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을 차지했다. 이는 국가 '기술관료techno-bureoisie'의 최초의 맹아로서 이들은 국가 실무를 다룸으로써 실질적 권력을 확보하게 된다." 형성 당시부터 자본주의는 "일국적이면서 세계적이었고, 경쟁적이면서 독점적이었으며 또한 자유주의적이면서 국가와 연관되어 있었다."(87-8)


생산방식을 개량하고 생산량을 늘리는 기술 발명의 움직임 속에서 바로 새로운 생산형태, 즉 공장이 등장한다. "공장에서는 동력과 기계를 사용했다. 1765년에서 1775년에 걸쳐 와트가 착상, 제작한 증기기관은 18세기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기계 작동에 사용되었다(1800년 경에는 약 500대가 사용되고 있었다)."(139)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세계는 아직 "대공업이 존재하는 세계는 아니었다. 또한 증기력이나 기계장치를 사용하는 세계도 아니었다. 스미스의 세계는 매뉴팩처자본주의의 세계였다. 그가 말하는 공장(못공장, 핀공장)은 '손재주'가 있는 노동자들을 집합시킨 곳이었으며 그가 언급하는 직업들은 아직 수공업적인 것들이었다."(146-7)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예비하던 시기에 "계몽주의 이데올로기와 자연법 사상, 보편적 조화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은 스미스는 시장을 통해 작용하는 '자연적 자유의 체제'를 신뢰했다."(149-50)


19세기 초, 산업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공장주, 제조업자, 산업가 등의 새로운 세대가 형성되고 있었지만, 산업부르주아지는 아직 응집력 있는 사회계층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였던) 공장노동자들도 기계제 생산의 가차 없는 규율과 끔찍한 궁핍의 위협에 지배받고 있었다. 사회적 기반이 없고 배우지 못한 이들 불안정한 노동자는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와는 반대로 구사회 계급들은 아직도 건재했다. 즉 귀족과 봉건 지주, 농민, 수공업자, 소매상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또한 과거의 가치 규범을 내건다든지(영국의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의 루이 드 보날드와 조제프 드 메스트르) 이성과 형평에 따라 고안된 새로운 사회를 내걸면서(영국의 윌리엄 고드윈과 로버트 오언, 프랑스의 앙리 드 생시몽과 샤를 푸리에) 당시 진행 중인 변화를 비판하는 소리도 대개 이들 계급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다."(158-9)


맬서스는 빈곤과 궁핍을 개인 윤리의 문제로 치환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과 경제력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행복 추구를 미루어야 한다."고 썼다. 이리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은 자연법칙을 존중하지 않은 죄인들이 된다."(162) 리카도 역시 이 불행을 '과학적 필연'으로 설명한다. 그는 "다른 모든 계약과 마찬가지로 임금도 순수한 경쟁과 시장의 자유에 맡겨야 하며 입법자의 간섭에 구속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장 바티스트 세에게 "재산, 자유, 번영이라는 말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생산자본이라는 재산이 있으면 이로부터 수익이 얻어지고 그러려면 생산자본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가 보기에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닌 모든 규제는 소유권에 대한 침해"에 불과했다.(164-5) 이러한 정신에서 시장의 자유로운 소유권을 옹호하는 이른바 '자유주의적 유토피아'가 형성되었다.


인간의 행복이 모든 영역의 수요와 공급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통해 보장된다는 '자유주의적 유토피아'에 맞서 인간의 행복이 그 사회에 적합한 조직화를 통해 보장된다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사상도 전개되었다. "전자는 상인부르주아지에 의해서 그들에게 자유주의적 터전이 필요할 때마다 (각종 규제 조치와 길드, 독점과 특허, 구빈법, 보호주의에 맞서) 지지되고 이용되었다. 후자는 기술자들(생시몽주의)로부터도 반향이 있었지만 특히 프티부르주아지(수공업자, 상점 주인)와 대중 계층(소매상과 노동자)의 지지를 받았다."(169-70) 대공업의 확립과 공장의 확대 속에서 "매뉴팩처 공장주나 도매상, 그 밖에 수공업자의 후예, 직공장 등은 제조업 공장주가 되어, 농촌의 변화와 이민으로 풍부해진 노동력을 최대한 착취하려는 일념으로 일을 시켰다. 바로 이러한 참상과 참기 힘든 억압 속에서 당시 최초의 근대적 노동자계급의 핵심이 형성되었다."(175)


"부르주아지의 부와 권력은 19세기 노동자들의 극심한 궁핍에 기초해 증대했다. 여러 가지 유형의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 때문에 노동시간은 연장되고 임금은 낮았다. 이들의 생활조건은 종종 전 단계의 농노보다 훨씬 가혹했다. 자선과 온정주의가 때때로 극에 달한 빈궁을 완화해주었고 이민은 이의 배출구 역할을 했다. 봉기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 진압은 가차 없는 것이었다." 계급 결집과 대립 속에서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는 '순수하고 완벽한 경쟁상태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후에는 한계효용이론을 내걸고 '과학적 이론'의 모습을 갖추었다. 마르크스가 그 속에서 젊은 날의 신념을 얻었으면서도 또한 이를 비판했던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는 마르크스에 의해 '과학적 사회주의'의 분석에서 유래하는 '역사적 필연성'으로 바뀌게 된다. 이 두 유토피아는 적어도 20세기 말까지 살아 있었다."(228-9)


"19세기 전반기의 공황은 이중의 운동을 통해 조절regulation이 이루어졌다." 물가 하락과 매출 감소는 "불량자본의 주기적인 '추방'이라는 급진적인 처방"을 불러왔고, 실업과 실질임금 하락은 "공황(과 그에 따른 불량자본의 '추방')을 확대"하긴 했지만, 또한 "값싼 가용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불황을 타개할 수 있게 했다."(246-7)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조절양식mode of regulation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노동자계급이 충분히 강력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세력관계를 확립한 나라들에서는 공황기의 실질임금 하락에 거세게 저항했다. 이와 동시에, 고용주들은 대기업 트러스트나 기업그룹의 결성(미국, 영국), 카르텔의 결성(독일), 직능단체의 조직(프랑스) 등을 통해 자본주의를 재편했다." 위기를 극복하는 와중에 "다시 자본주의 경제의 새로운 조절양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249)


전 세계로 보면, 1913년에 "약 1500만 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각종 사회입법을 탄생시킨 이 새로운 세력관계는 "많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신념을 갖게 했다. 폴 라파르그는 "혁명이 임박했다. ··· 인간의 착취를 끝내는 데는 단 두 차례의 봉기로 충분하다."고 했다(1882).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여러분, 내 말을 믿으시오. 사회혁명이 임박했습니다. 10년 안에 사회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나는 노동자들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이를 단언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1883)."(265) 그러나 이에 맞서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지배양식이 등장하고 있었으니, "산업자본의 집중과 집적, 트러스트와 국가독점의 형성, 그리고 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무역과 자본 수출을 통한 자본주의 지배 영역의 세계적 확대, 다국적 그룹의 형성, 세계의 분할에 이르게 되는 식민지화 등이 그것이다."(274)


문명 전파라는 사명감으로 포장된 "문명화된 혹은 종교적인 양심이 이를 축복하고 인종주의와 백인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이 마지막 주저를 제거해주었다. 경제적 이익이 이를 재촉하고 때때로 뜨거운 태양과 광활한 공간에 대한 신비감이 이를 자극했다. 근대식 무기는 이에 필요한 용기를 주었다. 그리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 그 밖에 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식민지 원정대가 등장했다."(284)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이 유착한 금융자본이 등장했고, 국가는 영토 확장이라는 대규모 사업을 집행하는 데 적합한 군국주의로 무장했다. 일국 자본주의를 확장해야 한다는 지배논리에 국민이 동원되면서, "노동자의 국제주의와 반反자본주의는 무쇠 단지가 될 국민감정과 민족주의 앞에서 토기 단지"로 전락했다.(293) 결국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신화는 무너졌다. 1912년, "수년간의 캠페인을 통해 준비된 12월 16일의 반전 총파업은 그 규모와 적절한 시기 선택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297)


"본질적으로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공황은 1914-18년의 세계대전을 낳았던 것과 똑같은 모순들이 합쳐지면서 초래되었다. 제1세대 공업화 각 부문의 침체와 각국 자본주의 간의 경쟁 격화가 그것이다. 또 보다 공평한 생산물의 분배를 확보하고자 하는 노동운동이 이들을 부추겼다." 이와 동시에 "제2세대 공업 부문이 한창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본가 대부분의 눈에는 체제를 무너뜨리는 사태로 보였던 노동자 계급 일부의 구매력 증대는, 변증법적 역전을 통해 경제 동학과 사회 통합의 요소가 되었다."(355) "대외투자 수익과 부등가교환을 통해, 농산물과 공산품의 협상가격차 확대와 교역조건의 개선을 통해, 식민지 그리고 광물과 농산물 생산국인 신생국으로부터 공업자본주의 강대국으로 막대한 양의 가치 이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구미 노동자계급의 상대적인 구매력 향상은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부분적으로는 전 세계 농민의 수탈에 의해 확보한, 또는 보상된 것이었다."(356)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양한 초과노동 강제를 통해, 그리고 현대식 장비를 이용한 축적 노력에 기초해 1950-60년대의 생산성 증대가 이룩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노동강화가 수반되든 수반되지 않든 노동 시간의 연장을 의미했으며(농민, 트럭운전사, 가내노동자) 또 다른 경우에는 주로 노동강화를 의미했다(일관작업대 노동, 테일러주의, 성과급 임금제도).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의 탈숙련화와 노동강화로, 또는 생활여건의 하락(8시간 3교대 혹은 8시간 4교대의 야간작업, 교대작업)으로, 그 밖에 이들 여러 가지 경우의 혼합으로 나타났다. 20년 동안 이러한 시도들은 전체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전쟁을 겪고 약탈과 파괴를 경험한 한 세대의 노동자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들에게는 구매력의 증가와 함께 미국이 전간기에 경험한 '소비사회', '대량소비'로의 길이 주어졌기 때문이다."(370-1)


전후 압도적으로 진행된 자본주의의 세계적 단일화(세계시장, 생산의 다국적화)와 지역적 파편화(노동 비용의 불균등, 동일 상품의 '국민적 가치'의 편차)는 새로운 현상처럼 보이지만, 그 근본에는 약자(저개발 국가 혹은 노동계급)의 몫을 수탈하여 강자(선진국 혹은 자본가 계급)의 창고에 축적하는 착취 시스템이 변함없이 작동한다. "16-18세기의 면직물 매뉴팩처, 19세기의 비철금속과 뒤이은 제철 대기업, 자동차공업과 전기공업, 이어서 정보와 원격통신 대그룹"은 여전히 "초과노동, 생산된 가치와 잉여가치의 실현, 더 많은 생산을 유도하는 자본의 확장, 더 넓은 시장과 더 많은 잉여가치 등"을 강요하고 강요당한다. 그러나 이는 "확장의 논리일 뿐 아니라 위기의 논리이기도 하다. 증대된 생산은 배분된 구매력을 감안할 때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시장 포화, 경쟁 격화, 이윤율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429) 자본주의는 역사에 등장한 모든 시기에 걸쳐, "창조자이면서 동시에 파괴자였다."(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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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1-0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 님의 글 애독하는 독자입니다.
항상 좋은 글 넘 잘 읽고 있습니다. ^^
한가지 궁금한 점은 모든 읽으신 책의 별점을 다섯 개 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여쭤봐도 무례 아니죠?^^

nana35 2018-01-04 07:42   좋아요 1 | URL
첫째는, 딱히 흠잡을 만한 구석이 (별로) 없는 좋은 책들이기 때문이구요.
둘째는, 평가가 아닌 정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구요.
셋째는, 별 다섯개가 아닌 책들은 (가급적) 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자본주의 이해하기 - 경쟁·명령·변화의 3차원 경제학
리처드 에드워즈 외 지음, 이강국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1. 경제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다.

   ①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갖는 제약constraints(행동에 대한 제약), 선호preferences(결과에 대한 평가), 그리고 한 개인의 신념beliefs(특정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이해)을 고려해야 한다.

   ② 이기심은 여러 동기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③ 사람들 사이의 유사성을 인간 본성human nature이라고 하며,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문화적 차이라고 한다.

   ④ 모든 동물은 같은 종 내의 다른 구성원과 경쟁하지만, 인간은 친족의 범위를 벗어난 사람들과 협력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2. 3차원 경제학은 경제생활을 구성하는 경쟁·명령·변화를 모두 고려한다.

   ① 자본주의는 경제체제의 하나이다.

   ② 모든 경제체제는 수평적 차원(경쟁), 수직적 차원(명령), 시간적 차원(변화)에서 설명할 수 있다.

   ③ 경제학은 사실facts에 대한 학문일 뿐 아니라 가치values에 대한 학문이기도 하다.

   ④ 3차원 경제학의 세 가지 요소

      가) 경쟁competition : 다수의 잠재적 소비자와 판매자들 간의 교환과 선택이 지배적 역할을 하는 경제적 관계의 한 측면. 주로 시장에서 이루어진다.

      나) 명령command : 힘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경제의 관계적 측면. 타인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용가능한 정보를 제어하는 능력도 포함한다.

      다) 변화change : 사람과 경제체제의 역사적 진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체제 내에서 체제 자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발생한다.


3. 정치경제학(3차원 경제학)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① 정치경제학에 공헌한 인물들은 구체적인 경제 현실과 씨름했다.

   ② 정치경제학의 주요 사상가들

      가) 아담 스미스 : 노동 분업은 독립적인 경제 행위자들을 경제적으로 상호의존하게 만든다. 특정 개인이나 제도가 의식적으로 질서를 만들지 않더라도, 즉 개인의 이기심에 맡겨 놓아도 질서 잡힌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 공공 이익에 전혀 관심없는 이기적 행동도 사회적으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나) 칼 마르크스 : 경제적 이해관계에는 조화만이 아니라 갈등도 존재한다(교환이 당사자들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자신들의 이해를 방어하고 증진시키고자 행동할 수 있다. 어떤 경제체제든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자체의 작동에 반응하면서 변화한다.

      다) 조셉 슘페터 :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경제적 변화의 한 형태 혹은 양식이며, 변화를 멈춘 적이 없다. 진보(기술 혁신과 조직 및 사회 변화)란 낡은 사업 방식이 ‘창조적으로 파괴’될 때 일어난다. 혁신이 대규모 생산의 경쟁 우위와 결합될때,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기업은 소기업보다 우월한 경쟁력을 갖는다. ‘장기파동’long waves이나 ‘장기변동’long swings현상을 설명했다.

      라) 존 메이너드 케인스 : 실업은 임금이 너무 높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노동이 생산한 재화에 대한 수요가 너무 적기 때문에 발생한다. 자본주의는 자체적으로 균형 상태에 도달할 수 없으며, 필요한 경우 정부가 적정한 재화나 서비스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마) 로널드 코스 : 가격 결정 체계(시장)의 역할을 믿으며 중앙 집중적 경제 계획이 불가능하다는 고전학파의 믿음과 명백히 계획된 사회와 기업이 존재하고 작동하는 현실은 어떻게 양립하는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명령으로 일을 조직할 때 발생하는 거래 비용이 시장 교환으로 같은 일을 조직하는 데 드는 거래 비용보다 작기 때문이다. 또한 거래 비용이 없다면 파급효과(외부성)의 문제는, 많은 경우 (이론적으로는 당사자 간의 협의를 통해서) 정부의 개입 없이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는 거래 비용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바) 아마르티아 센 : 평균 소득 같은 지표로 국가의 경제 발전을 측정하거나 이를 기초로 소득수준을 높이는 정책을 고안하기보다는, 빈곤, 열악한 경제적 기회, 체계적인 사회적 박탈, 관용 없는 배타성, 공공시설의 경시, 독재정치, 억압적 국가 등 자유를 제한하는 주요 원천을 제거해야 한다. 기근은 식량 부족이 아니라 불평등한 소득분배가 식량의 극심한 불균등 분배를 가져오기 때문에 발생한다.


4. 잉여의 기원과, 규모, 잉여를 통제하고 활용하는 사회 시스템을 살펴본다.

   ① 경제는 노동과정들labor processes의 집합체다. 각각의 노동과정은 기술(투입과 산출 사이의 관계)과 생산의 사회적 조직화(사람들이 생산과정과 맺는 관계)로 구성된다.

   ② 잉여는 노동과정을 통해 생산된 생산물의 총량이, 생산자들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생산에 사용된 원료 및 생산과정에서 사용된 기계의 마모분을 보충하는 데 필요한 양보다 클 때 발생한다.

   ③ 잉여의 크기를 결정하는 국가 내 경제 관계, 국제적 경제 관계들은 때때로 매우 갈등적이다.


5. 경제적 계급은 잉여 생산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통제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① 계급 집단은 생산물을 생산하지만 잉여 생산물을 통제하지 못하는 집단과 잉여 생산물을 통제하는 집단으로 나뉜다. 

   ② 경제체제란 다양한 재산권 제도를 바탕으로 노동과정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다양한 방법을 말하며, 이 재산권 제도는 다시 잉여 생산물이 어떻게 사용될지를 결정한다.

   ③ 자본주의는 자본재를 소유한 고용주가 임금노동자를 고용해 이윤을 목적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특정한 경제체제이다.

   ④ 자본주의에서 잉여는 ‘이윤profit’으로 나타난다.

   ⑤ 계급 개념의 네 가지 측면

      가) 모든 계급은 (다른 계급과의) 관계로 정의된다. 

      나) 계급 관계는 노동과정에서 각각이 점유한 특정 위치에 따라 정의된다. 

      다) 계급 관계는 위계적(수직적)이다.

      라) 대부분의 경우, 생산 계급과 통제 계급의 이익은 충돌한다.

   ⑥ 자본주의 노동과정의 세 가지 측면

      가) 상품생산 : 돈을 벌기 위해 판매할 의도를 가지고 생산한 물건이나 서비스. 상품은 시장을 전제한다.

      나) 자본재의 사적 소유 : 사유재산이란 소유물을 사용, 판매할 수 있는 권리, 거기서 나온 수익에 대한 권리, 타인이 자신의 소유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리(고용 및 해고의 권리 포함)이다.

      다) 임금노동 : 임금을 받는 대가로 고용주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지는 노동. 자본재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6. 자본주의 경제의 고유한 특징인 경쟁은 잉여 생산의 많은 부분을 소비보다는 투자에 사용하게 한다.

   ① 기업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이윤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이윤 획득을 둘러싼 경쟁은 불가피하다.

   ② 이윤을 얻기 위한 경쟁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투자의 과정을 ‘축적’이라고 부른다.

   ③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는 축적 과정을 쉽게 해주는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발명했는데,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을 사회적 축적 구조social structures of accumulation라고 부른다.

   ④ 19세기 중반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변천 과정

      가) 경쟁 자본주의competitive capitalism(1860년대-1898년) : 소규모 사업체들이 주로 가격 인하로 경쟁하던 시기

      나) 법인 자본주의corpoate capitalism(1898년-1939년) : 대규모 기업 집단(트러스트) 등장, 노동권 열악, 대공황이 야기한 실업과 이윤 감소로 해체

      다) 조절된 자본주의regulated capitalism(1939년-1991년) : 고용과 성장률을 중심으로 정부의 직간접 규제 증가, 사회보장, 실업 급여 같은 정부 보조 증가

      라) 초국적 자본주의transnational capitalism(1991년~  ) : 국제적 상품 유통, 인구 이동, 지식 교환

   ⑤ 노동조합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노동시장의 분화

      가) 독립 1차 노동시장independent primary labor market : 고도로 관료화되거나 직업의 전문성이 확실한 일자리들을 포함한다. 수공업자, 기술자, 전문직, 하위 관리직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나) 종속 1차 노동시장subordinate primary labor market : 노사 합의 같은 집단 협상을 통해 조직된 일자리들을 포함한다. 주로 산업 분야에 속하며, 노조가 조직된 산업 노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다) 2차 노동시장secondary labor market : 1차 시장의 특징인 공식적 조직화가 미비한 직업들로 구성된다. 서비스나 소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점원, 계절노동자와 노조가 없는 소규모 사업체 직원들이 여기에 속한다.


7. 교환의 중요한 형태 중 하나인 경쟁 시장은 수요와 공급 개념으로 분석할 수 있다.

   ① 경쟁 시장은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수많은 잠재적 구매자와 판매자로 구성된다.

   ② 경쟁 시장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공급곡선, 수요곡선, 그리고 시장 청산market-clearing이다.

      가) 수요곡선(demand curve) : 각각의 모든 가격에서 수요자들이 얼마만큼 재화를 구입하고자 하고, 또 구입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나) 공급곡선(supply curve) : 각각의 가격에서 공급자들이 팔고자 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양을 나타낸다.

      다) 시장 청산 가격market clearing price : 판매자가 판매하고자 하는 제품의 수량이 구매자가 구매하고자 하는 수량과 정확히 일치하게 되는 시장가격을 말한다. 즉 P(가격)=MC(한계비용) 상태를 말한다.

   ③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의 위치를 결정하는 요인들

      가) 공급곡선 : 기술, 투입 비용, 대안적 이윤 기회, 잠재적 공급자의 수

      나) 수요곡선 : 소비자들의 선호, 소득(분포), 다른 재화의 수와 가격, 잠재적 수요자의 수


8. 시장은 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행동들을 조정하며, 그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① 경쟁시장은 성공은 보상하고 실패는 처벌함으로써 분권화된 유인 구조decentralized system of motivation를 제공한다.

   ② 일정한 조건에서 시장은 전체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경제를 조정한다. 그러나 이 조건이 사라지면, 시장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③ 경제적 조정economic coordination의 두 가지 방식 (시장과 계획)

      가) 준칙에 의한 조정(coordination by rules) : 상호 작용이 행위의 보편 원칙에 따라 결정된다. 

      나) 명령에 의한 조정(coordination by command) : 상호 작용이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하는 명령에 의해 결정된다. 

   ④ 조정의 실패 (기후 온난화, 어획량 규제 등)

      가) 죄수의 딜레마 : 협력 부족이 조정의 실패를 초래하는 경우 

      나) 공유지의 비극 :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가 공유지를 훼손하여 공동 이익을 해치는 경우

   ⑤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 :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상호 작용하여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

      가) 소수가 시장을 통제하는 경우 (독점의 폐해)

      나) 생산 분야의 음의 외부성 (사회적 비용이 기업의 사적인 비용을 초과하는 경우, 환경오염)

      다) 소비 분야의 음의 외부성 (개별 소비자의 편익과 비용이 전체 사회의 편익과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 흡연자의 담배 연기 문제)

      라) 필요가 시장 수요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 (노숙인들은 집을 살 만한 구매력이 없다)


9. 이윤율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는 기본 도구이다.

   ① 이윤이란 생산에 투입된 요소(원료, 기계의 마모분, 노동)에 대한 보수를 모두 지불하고 난 후 남는 부분, 즉 잉여를 말한다. 경제 내의 모든 투입 요소들에 대한 보수의 총합이 경제적 총생산물의 가치와 같게 되면 이윤은 존재하지 않는다.

   ② 이윤율이란 이윤을 총 자본재의 가치로 나눈 값이다.

   ③ 자본가 집단이 이윤율을 높이는 방법은,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 비용으로 높은 노력 지출을 뽑아내고, 정부에게 낮은 세금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얻어 내며, 원재료와 여타 투입 요소를 낮은 비용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④ 이윤의 종류

      가) 상업이윤 : 구매 비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팔아 생기는 이윤

      나) 자본주의적 이윤 : 생산된 것의 가치가 투입된 노동 시간이나 여타의 투입 요소의 비용보다 큰 데서 발생하는 이윤

   ⑤ 이윤율의 결정 요인과 이윤율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

      가) 산출물의 가격 (+)

      나) 노동시간당 노력 지출 (+)

      다) 노동 효율, 주어진 노력 지출로부터 얼마나 많은 생산물이 산출되는가 (+)

      라) 노동시간당 사용되는 원료의 양과 기계 (-)

      마) 원료와 기계의 가격 (-)

      바) 시간당 임금률 (-)

      사) 자본재의 가격 (-)

      아) 고용된 노동 한 시간당 사용되는 자본재의 양 (-)

      자) 설비 가동률 혹은 소유 자본 중 실제로 사용되는 자본재의 비율 (+)


10. 이윤은 경쟁을 초래하고, 경쟁은 변화를 유도한다.

   ① 기업 간의 경쟁은 세 가지 형태를 띤다. 첫째, 가격 우위를 점하려는 노력(가격 경쟁력), 둘째, 잠재적 경쟁자들을 따돌리는 상황을 창출하려는 노력(돌파구 찾기), 셋째, 경쟁 자체를 제거하려는 노력(독점력)이다.

   ② 투자는 기업이 가격경쟁력을 얻고, 돌파구를 찾고, 독점력을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③ 경쟁은 이윤의 크기를 다르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윤율을 균등화하기도 한다. 이윤율 균등화 경향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여러 힘들의 상대적 크기에 달려 있다.


11. 노동자와 고용주의 이해관계는 작업 현장에서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① 생산과정, 즉 노동은 본질적으로 지루하고 억압적이거나, 반대로 즐겁고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생산과정이 ‘본질적으로’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다.

   ② 자본주의 기업은 명령 체계이고, 위에서 아래로 권력이 행사된다.

   ③ 고용주는 피고용인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는 좋은 직장이 희소하고 노동시장에 항상 노동의 초과 공급, 즉 실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 불완전한 노동계약incomplete labor contract :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계약이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임금수준은 명시할 수 있지만 이후에 정확히 어떤 임무를 맡게 될지, 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의 양은 어느 정도가 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불완전한 계약

   ④ 고용주들은 노동자에게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받아들이는 임금의 최저한도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하면 ‘뭔가를 잃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 따라서 현 임금수준에서 일할 용의가 있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비자발적인 실업 상태가 존재하게 된다.

      가) 저지선 임금fallback wage : 노동자가 현재의 직장을 유지하는 것과 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할 때의 임금수준


12. 모든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조직화 방식과 생산기술을 결합한다. 이 두 요소가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따라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임금과 노동강도, 노동조건을 둘러싼 갈등의 표출 형태가 결정된다.

   ① 고용주는 작업 현장에 통제 시스템을 갖추어 더 수월하고 완전하게 노동을 추출하려고 한다. 

      가) 단순 통제(simple control) : 적절한 보상과 처벌로 고용주가 원하는 작업 속도 유지

      나) 기술적 통제(technical control) : 생산과정에 기계를 도입하고, 기계의 속도를 변화시켜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법

      다) 관료적 통제(bureaucratic control) : 조직적 인센티브인 승진 체계, 호봉제 등을 이용하는 방법

   ② 현재의 생산기술 수준은 고용주가 생산을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제약 조건이다. (기술 변화를 둘러싼 갈등)

      가) 작업속도를 높이거나 조립라인을 도입하여 더 많은 노동 추출한다.

      나) 탈숙련화(deskilling) : 비숙련 노동자들로 작업할 수 있도록 작업 방식을 변화(분업)시킨다.

      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separation of conception from execution in work) : 일을 계획하는 사람과 일을 실행하는 사람을 다르게 한다.

   ③ 고용주들은 노동과정을 가장 수익성 높은 방향으로 조직하려고 하는데, 그 방향이 항상 가장 효율적인 방향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④ 시장과 위계는 자본주의적 이윤 창출 과정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보완한다.


13. 고용과 실업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총수요에 달려 있고, 정부 정책은 실업률을 낮추고 총수요의 변동을 완화할 수 있다.

   ① 재화와 서비스의 총수요는 총생산액과 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총수요가 총공급보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②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할 때에도 실업은 존재한다.

   ③ 재화와 서비스의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이윤과 임금 사이의 소득분배다. 임금률은 소비재의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이윤율은 투자재의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④ 정부는 이자율을 조정하고,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여 고용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⑤ 경제는 일반적으로 고용과 산출의 변동을 겪는데, 이를 경기순환이라고 한다.


14.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거시경제정책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없다.

   ① 높은 고용(낮은 실업률)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이윤이 감소하는데, 이를 높은 고용으로 인한 이윤 압박high-employment profit squeeze이라고 부른다.

   ② 수출입이 가능한 해외시장의 존재는 거시경제정책의 효과를 더욱 제한한다.

   ③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종종 모순된다. 적자 지출을 위해 필요한 정부의 차입은 완전고용을 위한 통화정책의 목표인 저금리와 갈등을 빚는다.

   ④ 실업이 존재하는 두 가지 이유

      가) 사적이고 조정되지 않는 경제적 의사 결정 : 각 개인(고용주와 노동자)의 의사 결정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공급과 수요에 불일치가 발생한다.

      나) 자본재의 사적 소유 : 생산과정의 계급적 성격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을 대부분 기업에 유리하게 조절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실업을 필요로 한다. 


15. 고용주, 노동자, 원료 공급자, 정부 사이에서 소득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① 경기 인플레이션(cyclical inflation) : 경기순환의 호황기가 끝날 때 발생하는 가파른 인플레이션

   ② 구조 인플레이션(structural inflation) : 주요 경제 행위자(은행, 대기업, 노동조합, 정당, 정부) 가운데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다른 이들에게 부과할 권력을 갖지 못하는 정치적 교착 상태political stalemate가 지속되면서, 산출의 감소나 후퇴가 동반될 때 나타나는 인플레이션. 

   ③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저성장(불황)과 물가수준의 일반적 상승(인플레이션)이 결합된 형태

   ④ 실업-인플레이션 상충 관계(unemployment-inflation trade-off) : 실업률이 떨어졌을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실업률이 증가했을 때 인플레이션이 감소하는 경향

   ⑤ 인플레이션의 부정적 효과

      가) 인플레이션은 소득분배에 불균등하고 예측 불가능한 영향을 미친다. 인플레이션은 그 비용(때때로 이익도)을 매우 불균등하고 자의적으로 배분한다. 

      나) 인플레이션은 실질소득real income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플레이션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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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에서 인터넷까지 - 기술은 어떻게 사회와 역사를 변화시켜 왔는가
토머스 J. 미사 지음, 소하영 옮김 / 글램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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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프로젝트에 복무하고 권세 가문의 전시나 궁정 오락을 위해 발현된 르네상스 시대 기술의 독창성과 특별한 성격은 '궁정시대의 기술(1450-1600)'이라는 말로 집약된다. "다빈치와 그의 동료 기술자들을 고용한 도시국가들과 궁정은 산업 또는 상업적 기술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그들의 꿈과 열정은 오직 전쟁, 도시건설, 궁정오락, 그리고 왕조의 위엄을 보여주는 데만 치중했다."(40) 따라서 궁정 기술자들 간의 방대한 지적 교류는 동료들의 모임 내에서만 공유되었고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통치자의 몰락 혹은 통치자의 문화 파괴와 같은 사회체제 분열은 기술 전통의 지속성을 떨어뜨리며 세대 간의 공유를 단절시켰다. 기술의 변화는 영구적으로 쌓여있지도, 지속하지도 못한 채 조각조각 흩어졌다. 기술에 있어 영구적이고 계승 가능한 전통은 인쇄술과 원근법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중유럽의 광산업에서 나타났다."(61)


인쇄술의 발전과 종교개혁, 그리고 정치적 문화적 독립체인 네덜란드의 등장과 국가 간 무역 분쟁은 대륙이 교역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기술 발전은 자본주의적 성향을 띄었지만 산업적이지는 않았던 '상업시대의 기술(1588-1740)'이다. "혁신적 선박설계, 수입 가공 등과 같은 금융 혁신을 일으킨 다수의 기술은 마차 공격대, 궁정 오토마타와 화려한 궁전들이 르네상스 기술의 상징으로써 왕권의 비전을 표현했던 것처럼 상업적 필요 때문에 발전되었다."(72) 당시 발트 해는 화물 용량이 아니라 선박의 갑판 면적에 따라 통행세를 부과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플류트 선박은 전형적인 강화 구축을 포기하고 "선박 안에 더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갑판 면적을 최대한 줄여서 설계했다."(81) 17세기 중반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예멘까지 닿았던 무역 루트는 "상품거래, 공공 외환은행, 주식 거래를 포함하는 상업 자본주의 기관들에 대한 네덜란드의 대대적인 혁신에 기인한다."(85)


르네상스기 궁정 후원 시대와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다양한 상인들과 무역업자, 조선업자, 선박 주인, 설탕 정제 산업 관계자들, 섬유제작자 외 많은 사람이 부를 창출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였고, 이는 상업시대 기술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네덜란드 상업시대를 다른 시대와 구분하는 것은 바로 부를 창출하는 기술과 기법들이다. "다른 그 어떤 시대나 장소에서도 대형화물을 싣는 상선들이나 공장 같은 청어 어선, 내륙 도시들과 연계된 분주한 대형 항구들, 교역의 부가가치, 주식과 상품을 거래하는 거래소, 공공소유 선박, 청어, 양모, 한때는 튤립 거래를 위한 선물시장을 포함하는 세계적 금융기관의 정교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103-4) 각각의 교역품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생산량, 고임금, 고품질 수송"을 지향한 네덜란드의 상업기술은 "많은 생산량, 저임금, 낮은 생산품질을 강조하던 초기 산업기술과 극명히 대조되었다."(96)


영국의 부상(1740-1851)은 산업 지형도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영국 역시 산업혁명 전 단계에는 "대개의 노동자가 작은 가게에서 일하거나, 건축, 양모, 가죽 등의 전통적인 산업에 종사"했지만, 런던을 위시하여 점차 산업화의 길로 나아갔다.(110) 1800년 무렵, 런던 인구의 3분의 1이 제조업에 고용되면서 "도시는 그 어떤 공장 도시보다 더 많은 증기기관을 사들였다. 1850년이 되자, 런던은 4개 대형 공장이 있는 도시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제조인력을 보유하게 되었다."(112) 거대한 "산업화 규모와 자본의 막대한 상승, 인력 비용절약, 기술 혁신, 그리고 시장집중, 제품별 특화의 풍성함, 공급 산업 등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극적으로 담고 있던, 맥주 양조산업은 "산업과 위생, 소비, 농업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며 런던이 산업도시로 가는 길목을 제공했다."(116-7) 포터 흑맥주 양조업자들은 빠르고 열정적으로 "노동력을 절약하는 기계화와 산업시대의 논리"를 도모했다.(120)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런던과 달리 면직물 기술자들이 거주하던 맨체스터는 "빠른 성장 속도가 개념의 열쇠였다." 1770년 맨체스터 인구는 3만 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인구는 한 세대를 보낼 때마다 2배로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1851년에 이르자 그 수치는 30만 명에 육박했다."(128-9) 1825년, 맨체스터에는 방적 회사와 창고 회사가 결합한 통합 방적/직물 기업형 회사가 총 38개 존재했다. "도시의 섬유산업 규모는 1851년 정점을 찍었으며 이와 관련된 해당 노동자 수는 5만 6천 명을 육박했다. 아울러 이 해에 처음으로 천을 마무리하는 직업, 방직기계를 만드는 직업, 주택 건설과 기타 제조업 등에 관련해 고용된 총 노동자의 수가 단순히 옷감을 만드는 노동자의 수를 뛰어넘었다. 이 시기부터 성장은 단순히 한 도시의 산업에 의존했다기보다는 그 지역 전체의 면직물 공장들에 의존했다. 맨체스터에서 염색과 표백 제조 산업 또한 섬유산업의 특화 보조 산업으로 함께 성장했다."(136) 


철강산업의 중심지였던 셰필드에는 공장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셰필드의 기술자들은 "집에 작은 사무실 혹은 방을 두고 이름이 새겨진 도장 하나만 있으면 제조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연삭, 경화, 연마, 손잡이 혹은 자루 제조, 심지어는 스템프를 식별하는 일과 같이 나이프를 만들거나 날카로운 도구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모든 숙련된 노동은 거리에 널려 있는 숙련된 작업자의 가게를 방문해야 살 수 있었다." 소규모 제조사의 형태를 갖춘 "업체들은 낮은 자본, 빠른 회전율, 그리고 유연성에 대한 강점을 누렸으며 무엇을 하든 적절한 것들을 고르고 선택할 수 있었다."(145-7) 이처럼 산업혁명은 다양한 경로를 밟아 나갔다. 런던에서는 인구 집중을 통한 동시다발적인 산업 활동이, 맨체스터에서는 단일 산업에 종사하는 대규모 공장체계가, 셰필드에서는 고품질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분야별 지역 네트워크가 중점적으로 발전했으며, 다양한 보조 산업이 함께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19세기 중반, 산업화된 국가들은 해외 식민지 통치라는 신사업에 눈을 뜨면서, '제국의 도구들(1840-1914)'을 발전시켜 나간다. "발명가, 기술자, 무역상, 자본가, 정부 관료들은 국내의 용광로나 섬유산업에서 해외 식민지 개발을 위한 증기선, 전신, 철도를 향해 급속도로 관심을 돌렸다."(161) 그러나 제국주의가 착취한 수익은 식민지에서 수시로 벌어진 반란들을 진압하는 "군사비용뿐만 아니라 제국 관리들의 교통, 숙소, 식량, 연금 비용"으로 대부분 새어나갔다. 제국주의의 수혜를 받은 집단은 "무역상이나 투자가, 군 장교, 또는 관료들" 같은 일부 계층에 국한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의 기술 발전은 상업 및 산업 시대와 달리 "빠르고 편리한 수송과 신속하고 안정적인 의사소통, 그리고 무엇보다도 풍부하고 효과적인 군사력을 보장"하는 데 집중됐다.(164) 일례로, 엄청난 연료를 소비하여 상업적인 이용가치가 떨어지던 증기선은 인도와 런던 간의 연결고리를 강화했으며, 아편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식민지에 깔린 전신과 철도망도 같은 목적에 복무했다. 미국에서는 원주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캐나다에서는 자치주들의 연합 조건으로, 남아프리카에서는 영국의 단일 식민지 건설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철도가 건설되었다. 제국 기술의 주목적은 수익이 아니었다. "값비싼 증기선이나, 지나치게 화려했던 기관차, 넓은 폭의 이중 철도, 그리고 멀리 뻗어 나가는 전신과 전신망을 보면 명백히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제국주의가 단순히 이전의 상업이나 산업시대의 연속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며, 제국주의는 오히려 기술자들의 주목적을 산업과 경쟁하거나 심지어 대체시키는 일에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증기선, 공작기계, 기관차, 철 그리고 면직물을 내다 팔 수 있는 확실한 식민지 해외시장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 기업가들은 떠오르는 경쟁자들과 경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때문에 장기적인 측면에서 영국의 세계 경쟁력 하락이 가속화되었을지도 모른다."(201)


'과학과 시스템(1870-1930)'의 발전은 산업사회의 특징을 확연히 바꿔놓았다. 사회주의자들의 소망과는 달리 "기술을 통해 안정을 찾은 '체계적 자본주의'는 그들의 예상을 벗어났다. 이 시기의 기술자, 특히 과학 기반 산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는 아예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기보다는 존재하는 시스템을 개선하고, 안정시키고, 견고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허법, 기업 소유권, 산업연구소, 그리고 공학 교육 등을 동반한 시스템 안정을 향한 노력은 산업사회를 변모시켰다. 그리고 바로 이 시대에 '기술'이라는 용어가 장치의 집합, 산업의 복합체,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추상적인 힘이라는 오늘날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205-6) "산업과학자와 과학기술자는 거대한 시스템에 순응하려는 노력과 시스템의 질서정연한 확장을 위해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232)하는 데 주력했고, 시스템의 혁신은 "전기, 전화, 자동차, 가전제품, 실내 장식, 라디오 등 거대 소비자 시장을 형성했다."(243)


모더니즘(1900-1950)은 근대주의를 대표하는 재료들인 강철, 유리, 콘크리트에 주목했다. "이탈리아의 미래파는 모더니즘에 열렬한 기술 중심적 세계관을 불어넣었고, 네덜란드의 데 스틸 회원들은 근대적 재료의 미학적 가치를 표현했으며,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이론과 실제의 통합을 달성했다. 근대적 재료가 곧 근대 문화의 기초라는 마리네티의 주장─강철로 건축 중인 집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은 미래파의 유산 중 하나였다."(259-60) 모더니즘은 "근대 기술사회의 필연성을 반영하는 순리적인 발전 양식으로 표방되었으나, 모더니즘을 주류로 이끄는 운동은 충분히 정치적이었다." 모더니즘은 1920년대 도시 주거단지건설 계획으로 발전했지만, 1930년대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억압에 시달리다가, 1940년대 이후 사회주의적 뿌리를 상실한 미학적 모더니즘으로 넘어갔다. 이후 "모더니즘의 구체적인 해석은 CIAM, 현대미술관, 그리고 다른 유행을 선도하는 단체의 중요한 홍보대상으로 전락했다."(286)


"1950~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군의 지원으로 기업들은 '첨단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들 기업이 바로 IBM, 보잉, 록히드, 레이시언, 제너럴 다이너믹스, MIT와 같은 주요 군수산업체이다."(291) 기술이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의 도구(1936-1990)'를 낳기 시작했다. 2차례의 원폭 투하로 막을 연 원자력 시대의 기술 경쟁은 대부분 "장거리 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다탄두미사일(MIRV)과 같이 공격용 대량살상무기"에 집중됐다.(315) 그러나 핵무기 군비경쟁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미국과 소련의 재정을 심각하게 갉아먹었고, 1960년대에 이르면 국방부조차 연구 예산을 맞춰줄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IPTO(정보처리기술국)에서 개발, 보유하고 있던 인터넷 관련 기술이 군용 통신망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1964년 RAND 기업보고서에 나온, 분산 처리되는 통신망 개념은 폐쇄된 군사시대의 지휘 통제기술을 넘어, 개방적이고 고객 지향적인 네트워크 기술로 이어졌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국제 표준화를 촉진한 팩시밀리, 표준화된 음식과 노동 관행McJobs, 단일화된 미국 문화McWorld로 대변되는 맥도날드, 전세계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인터넷은 기술과 문화에 대한 사람의 생각을 결정하는 강력한 힘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01년 9·11일 테러가 발생하며 세계화의 확장도 끝나버렸다."(377) '테러와의 전쟁'은 세계화라는 유토피아를 끝장냈으며, 안보 기술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과도한 보조금 정책으로 더 많은 화석연료 소비를 부추기는 에탄올 산업은 지속불가능한 에너지 정책의 표본이며, 통합된 단일 시스템이 가져오는 정보 리스크는 지정학적 불안정과 더불어 세계화의 부작용을 낳는다. 이처럼 기술은 자연발생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문화·경제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세계를 재구성하는 힘이다. 기존의 기술과 실천 관행이 새로운 대안을 봉쇄하고 기각시키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향후 기술 발전의 방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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