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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귄터 보른캄 지음, 허혁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6년 9월
평점 :
서론 바울 서신에 나타난 바울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그리스도인이며 선교사인 바울을 묘사할 때 아직도 바리새주의에 의해 대표되고, 이제는 예수의 부활에 의해 실증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선조들의 율법에 충실히 머물러 있는 확실한 바리새인임을 강조하는 반면, 유대인들은 예수를 배척함과 동시에 그들의 가장 고유한 거룩한 전통들을 배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실제의 바울은 전혀 다르다. 특히 빌립보서에서 분명히 밝힌 대로 바울은 율법을 행함으로써 의(義)를 얻으려는 그의 옛 바리새적인 열심을 버렸고,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서 오는 구원을 얻기 위해 그것을 '해로운 것', '배설물'로 여겼다. 물론 이 분명한 차이 때문에 사도행전은 원시적이고 유대주의적인 경향을 띤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사도행전의 견해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율법의 타당성 문제를 둘러싼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투쟁이 조정되고, 율법이 옛 편협한 제한성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이다."(23)
"특히 주목할 점은 누가의 작품 전체의 어느 한 구절에서도 사도 자신의 서신을 알았거나 사용한 흔적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으로 미루어 사도행전이 성립되던 시대에는 광범위하게 교회 영역들에 유포되어 있던 대표적인 바울 서신 수집록이 아직 없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물론 개개 서신들은 이미 일찍부터 이웃 교회들 사이에 교환되고 있었다. 고대 교회의 다른 저술가들이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수집록의 확실한 흔적이 산발적으로 나타나다가, 1세기 90년대부터는 점점 증가된다. 사도행전이 아직 서신들을 모르고 있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사도행전 역시 대략 이 시대에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 앞서 저술, 완결되어 있던 누가복음서─이것은 70년 이후에 저술된 세 공관복음서들 중 마지막 것인데─가 80년대에 기록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 연대를 가장 근거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누가는 직접적인 증인이 아니라 이차적인 보고자에 해당한다."(25-6)
"사도의 문서적 유산이 오직 서신들뿐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인 우연일 뿐 아니라 중요한 내용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울은 수십 년 뒤에 나온 마가복음서 기자와 다른 사람들이 행한 것같이, 가령 어떤 복음서를 써서 나사렛 예수의 역사를 전할 생각을 가졌었다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다. 또한 그는, 가령 우리가 그와 동시대의 유대인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와 고대 그리스도교의 문필가들에게서 보는 바와 같은, 구약성서의 개별 문헌들에 대한 주석서를 쓰거나 고대 교회 이후 많이 선을 보인 교회제도에 관한 것, 신학적인 논문, 교리 지침서를 저술하려고 생각했다고 볼 수도 없다." "모든 순수한 편지처럼, 바울의 서신들도 특정한 기회에, 그 때를 위해, 구체적인 동기에서, 특정한 사람들에게 쓴 것이다." "바울 자신은 이 편지를 임시변통으로, 헤어져 있어서 당장은 이룰 수 없는─이미 불가능하게 되었거나 아직은 가능치 않은─만남에 대한 불충분한 대안으로 생각했다."(27-8)
제1부 생애와 활동
"종교적으로나 세계관적으로 극도의 분열 상태에 있던 고대 말기 주변 세계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유대 종교의 방사력과 유인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시국가의 안온한 영역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고, 세계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정도로 확장되었으며, 이와 함께 인간 자신은 개별화되었다. 아직 옛 신들을 위해 신전이 세워지고 계속 제사와 제물을 드렸으나 그것들은 진부한 것이고 신들에 관한 신화들은 쓸모 없게 되었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위한 보호와 축복, 구원과 속량에 대한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는 이미 무력해졌다. 도처에서 옛 종교들과 특히 동양으로부터 쇄도해 오는 새로운 종교들의 융합과 혼합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이질적이고 복잡할수록 그만큼 더 매력이 있었다. 운명과 죽음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과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는 밀의(密儀) 종교의 의식(儀式)과 구원의 교리가 지나치게 판을 쳤다. 이런 배경에서 유대교는 전혀 다른 것,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고자 했다."(44)
"디아스포라 회당의 선교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원칙들에 따라 수행되었으니 이방 주민 중에 유대인 공동체에 가담한 '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유일신론적인 신앙 고백, 최소한의 의전적 계명들(안식일 계명, 음식물 규정 등), 그리고 율법의 윤리적인 기본 요구들을 이행하는 것으로 족했다. 그들에게는 물론 할례도, 그와 함께 유대 민족의 완전한 지체로 간주되는 '개종자(Proselyt :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의 신분으로 들어오는 것도 강요하지는 않았다. 율법에 대해 엄격한, 바리새파의 지도하에 있는 팔레스틴 유대교는 이 관례를 배교적인 행위라고 판단하고 모든 사람에 대한 할례의 요구를 고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파 역시 이방 선교에 열중했다. 물론 디아스포라 유대교에 비해 그 성과가 미미했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로써 이미 유대교적 이방 선교의 영역에는 할례에 대한 문제로 나뉜 두 방향이 서로 반목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47-8)
"헬레니즘 파는 그리스도에 대한 극히 혁명적인 주장했으며, 이러한 이해는 유대교적인 엄격한 율법 이해와 충돌을 일으켰고, 성스러운 전통들과 성전 예배, 선택된 백성만 구원받는다는 배타적인 주장을 문제시했다. 바로 이것이 바리새인인 바울에게─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그리스도인을 박해하도록 자극한 이유들이다." "여기서 예수의 메시아됨에 대한 신앙이, 엄격한 유대교도에게는 충분한 박해의 이유가 되었다는 널리 알려진, 그러나 잘못된 가정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런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눈에도 과오를 범하고 있는 기괴한 하나의 유대교 종파로 보이기는 했을 것이나 결코 신성모독적인 이단은 아니었다. 이런 '예언자'를, 혹은 저런 '예언자'를 메시아로 믿은 추종자들의 집단은 이 밖에도 유대교 내에 적지 않은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유대교 측으로부터 박해받고 추방당해야 했던 일은 없었다."(53)
"바울이 후기에 에베소에서 활동할 때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글은 유대주의적 거짓 교사들의 선동으로 인해 유발되었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전하는, 율법에 구애되지 않는 복음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오직 선택된 유대 민족의 일원이 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한 이들의 공격과 더불어 동시에 그의 사도직도 문제시되었다. 아무도 이 직책을 그에게 위임한 이가 없다는 것이다. 적대자들이 비방하는 내용은 바울이 소식을 변조하고 자칭 사도가 되려는 독단적인 월권을 저질렀다는 두 가지였다. 그 때문에 그는 스스로 공격하면서 동시에 그의 서신에서 아주 날카로운 어조로, 이방인들을 위한 그의 복음의 진리와 그의 사명의 신적인 근원이란 두 가지 점을 변호했다. 이 둘은 불가분의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이것들은 같은 내용의 두 가지 측면이고, 그 배후에는 하나의 신적인 의지의 권위가 있다."(57-8)
"예루살렘 회합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그의 복음을 제시함으로써 원사도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을 온전히 그리고 그것의 모든 결론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마치 신에 의한 기적적인 작용으로 통합이 이루어졌다는 직접적인 통찰이 순수한 신학적인 논증들보다 더 강하게 관여한 것같이 보인다. 그러므로 그가 회심하고 소명을 받은 이래 바울에게 거의 의심 없었던, 그리고 후에 그의 서신들에서 전개된 신의 새 창조로서의 교회에 대한 인식들, 즉 교회에서는 이미 유대인도 없고 모두 그리스도 아래에서 하나(갈 3, 28)라는 인식들이 무조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전제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유대인계 그리스도교 교회와 유대교인들에 대한 설교에서는 오히려 지금까지의 것이 그대로 계속 타당하고 안디옥 사람들은 그들대로 이 이상 더 강요받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그렇게 할 사람도 없었음이 분명하다."(82)
"바울은 개체 교회를 넘어서 언제나 곧 나라와 지방들을 생각한다. 방금 세워진 교회일지라도 모두 그에게는 각기 그 모든 지방을 위해 있는 것이다: 가령 빌립보 교회는 마게도냐 지방을 위해(빌 4, 15),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위해(살전 1, 7-8), 고린도 교회는 아가야를 위해(고전 16, 15 고후 1, 1), 에베소 교회는 아시아를 위해(롬 16, 5 ; 고전 16, 19 ; 고후 1, 8) 있다." "즉 복음은 단 한 곳에만 선교되어도 스스로 길을 내고 개개 도시로부터 모든 주변 지방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남겨두고 간 교회들에 대해 바울이 무심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얼마나 그들에 대해 책임지고 있었는지는 그의 서신들이 증명한다. 그러나 그가 이 교회들을 위한 지속적인 염려는 그의 동역자들에게 위임하고 그 자신은 그의 서신들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순간적인 방문으로써 교회들을 지킬 수 있었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한다는 그의 원대한 목표는 그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초조하게 했기 때문이다."(100-1)
"바울이 떠난 이후 고린도 교회는 놀랍게 성장했고 활동적이었으며 결코 종교적인 가난과 불모에 떨어지지 않았다(1, 4-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혼돈된 모습을 제공하고 있다. 교회의 풍요로움이 교회에 큰 위험으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교회에 당부하면서 또한 예리하게 비판한다. 그가 자세히 언급한 첫 질문(고전 1-4장)은 이미 그 교회가 바울 자신에 의해 닦여진 토대로부터 빗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교회는 경쟁적인 여러 파로 분열되어 있고,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의 통일성이 위협 받고 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다〉(고전 1, 12)." "그 당파들의 구성과 논쟁의 출발점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떻게 싸웠든지 간에 교회 생활에 개입한 열광주의는 바울에 의해 고린도전서에서 처리되어야 했던, 참으로 위험한 현상이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자신들만이 이미 '완전한' 상태에 도달했고, '영'과 '지식'을 소유했다고 자랑했다."(119-20)
"고린도전서 8-10장은 특히 주의할 만하다. 바울은 여기에서 열광주의자들이 자신을 변호하는 모든 거짓 신학적 논증들을 얼마나 단호하게 멸시하고, 제기된 문제들을 신과 주변 세계 앞에 져야 할 다른 사람을 위한 책임이라는 주제 하에서 얼마나 단호하게 다루었는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난 구원에 참여한다는 신념 하에 주의 만찬이 베풀어진 것은 확실하나 부유한 사람들이 이 만찬에 수반된 공동 식사에서 가난한 자들, 늦게 오는 자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들을 배려하지 않았다. 바울에 의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는 예배 때 황홀경에서 연설하는 데 몰두하는 영 소유자들의 소란한 경쟁에 반대하고 이성적인 분명한 말로 선포함으로 인해 아직 멀리 있는 자들과 불신자들을 설복하고 그들을 감화시킬 것을 종용했다."(122)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은 이방 세계의 신적인 이적을 행하는 자들에 대해 자신의 사도직의 합법성을 변호해야 했었다. 이에 반해 고린도에서는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그들의 이방인 경쟁자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며 바울과 그의 복음을 멸시하고 드러내 놓고 그에게 도전했다. 그들의 척도들에 의하면,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에 의해 위임된 참 사도의 표지들이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이 표지들이 있음을 주장했고 그것들로 그들의 인상을 교회에 심었다." "이에 맞서 바울이 '자랑'으로 여긴 것은 바로 그의 선포에 의해 신앙에로 일깨워진 교회이며, 그의 나날의 노동의 피로이며 그가 그의 일에서 경험한 수난과 박해의 연속이다. 이것이 그에게는 참 '사도의 표지'이다." "새로운 적들이 고린도에서 교란을 일삼는데 직면해 바울은 그의 사도직의 옹호와 함께 그의 복음과 그리스도인됨의 이해 전반을 위해 싸워야 했다."(124-5)
"자신의 생애사의 마지막 장이 될 예루살렘 여행길에 오른 바울은 '장로들'을 에베소로부터 불러서 예언자적 선견으로 곧 순교하리라는 감동적인 장황한 연설로 그들과 작별한다(행 20, 17-38)." "역사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은 무엇보다도 아주 자명하게 전제된 교회의 장로 제도인데, 이것은 바울 서신들이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후세의 것임을 특징지어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고별 연설 자체의 문체와 내용이다. 이 연설은 사도의 전체 활동을 회고하면서 그의 마지막을 예측하고 그가 죽은 후에 물어뜯는 늑대처럼 교회를 파괴할 거짓 교사들의 출현을 예고한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바울은 그의 순수한 가르침의 전권을 이 장로들에게 계승시키고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양떼의 '관리자들(Episkopoi)'로 선임된 직권자들로서 그들을 임명한다." "이는 후기 교회가 특히 이단 방지 싸움에서 발전시킨 사상들의 전형적인 성격을 보여 준다."(151-2)
"바울이 구금되기까지의 예루살렘 사건들에 관한 보도들은, 사도행전에서는 완전히 침묵하고 있는 예루살렘 여행 목적, 즉 헌금의 전달과 연결시킬 때에 비로소 투명해진다." "헌금 전달과 함께 이것으로써 바울이 교회에서 가능하게 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히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회의 통일을 과시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물론 이루어지지 않고 말았다. 그렇게도 큰 실천적이며 신학적인 정력을 가지고 모은 원교회를 위한 이방인계 그리스도 교회들의 헌금이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누가의 보도에 따르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만났는데 바울이 그의 동반자 가운데 유대교인이 아닌 한 사람, 즉 에베소 출신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온 줄 잘못 알고 죽이려고 했다. 그에 대한 소동은 결국 로마 군인이 개입해서 그를 보호 검속해 유대 군중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한다(행 21, 27-36). 그 후 바울은 로마의 죄수가 되었다."(152-4)
"누가가 바울의 재판의 계속과 그의 불법적인 죽음에 관해 알면서도(행 20, 22 이하, 21, 10 이하) 한 마디 말도 시사하지 않은 것은 기이하다. 그러나 누가적인 역사서의 구상, 즉 예루살렘과 유대로부터 사마리아를 지나 땅 끝까지 이른 복음의 길을 서술한다(행 1, 8)는 계획을 회상하면, 이 책의 평화로운 마무리는 이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행전 저자는 이 위대한 이방 민족의 선교사로 하여금 로마에서도 그의 위력적인 일을 완수하게 했다. 그리고 특별히 바울의 순교에 관한 침묵이 사도행전의 현실적인 목표 설정을 통해서 이해된다. 사도행전은 신자들을 고무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이방 제국에 대한 변호적인 의도를 가지고 기록되었다. 이방 제국이 바울의 이 모습에서 그리스도교의 위대함과 평화의 의지에 관한 인상을 받고 로마 관원의 많은 대표들이 바울의 역사 과정에서 이미 보여 준 것과 같은 현명하고 바른 태도를 교회에 대해 취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사도의 실제 최후는 달랐을 것이다."(159)
제2부 소식과 신학
"지상의 예수의 선포와, 바울뿐만 아니라 부활 후의 교회 전반의 그리스도 소식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놓여 있다. 이 차이는 생각 없는 사람만이 간과할 뿐이다. 바울은 그저 지상 예수의 설교를 전달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이 차이는 현저하게도 신약성서 문헌들이 각기 달리 보도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복음서들이 단순화된 도식적인 말로, 예수의 죽음과 그의 부활까지 그의 지상 역사 영역에서 일어난 그의 설교와 활동에 관해서 보도했다면, 사도의 소식(서신들, 사도행전, 요한묵시록)에서는 전자의 목표점이 부활 후의 증인들을 낳는 근거와 시초가 된다. 선포자가 선포되는 자로 되면서 그의 지상 역사의 제한성은 제거되었으며, 예수의 말 대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 부활, 마지막 날에 그의 옴에 관한 말이 등장한다. 바울을 이 과정의 제일 첫 책임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을지라도, 그의 서신들은 역시 우리로 하여금 특히 뚜렷하게 이 놀라운 사태에 직면하게 한다."(164)
"물론 이 변화 과정에는 종교사학적으로 후기 유대교적·묵시 문학적 사상들과 후기 고대 주변 세계의 신화적 표상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지상적인 예수가 신화적인 신적 존재로 바뀌고 역사는 절망적으로 포기되었다는 널리 알려진 주장은 피상적이고 잘못된 것이다." "원그리스도교적 증언들과 고백들, 즉 구약성서적·유대교적인 혹은 헬레니즘적인 언어로 그를 부른 수많은 호칭들이 예수의 이 구원의 의미를 분명히 말해 준다: 메시아, 그리스도, 퀴리오스(主), 사람의 아들(人子), 신의 아들 등. 이 모든 호칭들이 지상적인 예수를 대신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상적인 예수가 폐기된 것은 아니다. 그의 이름도 우연하거나, 공허한 혹은 바꿀 수 있는 낱말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호칭들은 오직 그만이 신에 의해 세계에서 성취된 구원의 내용과 전달자라는 것을 말한다. 선포되는 말을 듣고 신앙으로 대답하는 자들은 다 함께 이 사건에 소속되고 관련된다."(165-6)
"바울은 자신이 예수의 선포를 위해 성별(聖別)되고 부름을 받고 파견되었음을 알고 있다(롬 1, 1 ; 갈 1, 15)." "복음에서 일어나는 것에 관해 바울은 묵시 문학적인 울림으로 말하고 있다: 〈신의 의가 복음에서 계시된다〉(Apokalyptetai, 롬 1, 17)."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와 같이, 그가 미래적인 사건들을 예고하고 유대교적 묵시 문학에서처럼 환상적으로 세계의 파멸과 새 세대의 영광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 이미 지금 복음 자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오고 있는 구원과 파멸의 가능성을 가리킬 뿐 아니라 구원을 가져오는 신의 도래가 그 안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다. 복음 자체가 〈믿는 모든 사람을 해방시키는 신의 능력〉이다(롬 1, 16). 이것은 이미 묵시 문학적 의도에 일치하지 않는다. 유대교적·원그리스도교적 묵시 문학에서 먼 혹은 가까운 미래에 기다려지던 것이 복음에서는 현재가 된 것이다."(169-70)
"아직 실제로 주목을 끌지는 않지만 지적되어야 할 중요한 바울 신학의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즉 그의 신학은 처음과 끝이 서로 어울리는 주제들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배열된 체계로서, 이른바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으로 그것을 재생시키려는 모든 노력에 강하게 반대한다. 많은 학문적인 진술들이 마치 여기에 그런 어려움이 없는 것같이 그의 신학을 다루며 신과 그리스도, 인간, 구원, 성례전, 교회, 마지막 일들과 그와 유사한 것들에 관한 바울의 진술들을 열심히 체계적으로 배열한다. 그들은 흩어져 있는 것을 한데 모아 하나의 통일체를 만들 수 있으면 있을수록 더 높은 인기를 누린다. 그러나 설사 모든 구절을 위해 필요한 증거를 가져다 댈지라도 다음과 같은 단순한 관찰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은 거짓이 된다. 즉 바울의 진술들은 교의학적인 주제들의 체계적인 배열에 있지 않고 거의 언제나 단편적이며 항상 다른 것들과 엉켜 있다는 것이다."(172-3)
"구약성서의 모든 경건한 사람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에게서도 율법은 그 원래의 의미상 구원과 생명을 위한 신의 부름이며 처방이다(롬 2, 6 이하 ; 7, 10). 율법은 순종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율법은 십계명으로, 특히 사랑의 계명으로 종합되면서 유대인들에게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것이다(롬 7, 7 ; 13, 9 ; 갈 5, 14)." "그러나 바울에 이르러 바로 이 성스럽고 의롭고 선한 율법(롬 7, 12.16)이 실제로는 이미 구원과 생명에 인도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비로소 부각되었다. 이 의미에서 그는 율법의 보편성을 완전히 새롭게 이해했다." "즉 율법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그들이 신 앞에서 죄인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이 보기에 율법이 명하는 바를 열심히 실천하는 것도 유혹적으로 지배하는 죄의 세력의 구속에서 인간을 풀어 주지 못한다. 율법은 그를 '의롭게' 하지 못한다. 율법의 지배하에 일어나는 모든 사람의 상실성의 불가피한 이 연대성이 비로소 그의 소식의 본래적 혁명성이다."(178-9)
"바울이 가르치는 의(義)는 신은 의롭다는 일반적인 신학 명제가 아니다. 그의 소식의 특수성은 믿는 자들에게 신의 의(義)를 넘겨 주는 것이다." "신의 의는 경건한 자가 율법의 일들에 의해 얻어내는 '의'와 정면으로, 배타적으로 반대된다. 그가 자신의 열심으로 이루어 놓은 것은 언제나 단지 그 '자신의' 의(롬 10, 3)에 불과하며 결코 신의 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신만이 의롭다고 선언하고 그럼으로써 의롭게 한다. 반면에 인간은 수동적이다. 즉 인간은 의롭다는 선언을 받고 의롭게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소유격 결합인 '신의 의'는 문법적으로 말해서 주어적 소유격(이렇게 보면 신은 접근할 수 없는, 인간을 배제하는 먼 그의 존엄성에 숨어 버릴 것이다)이 아니라 근원자의 소유격을 의미한 것이다. 즉 이것은 신이 인간에게 그의 의를 마련해 주고 그를 의로 세움으로써, 신의 이러한 선언과 행위 없이는 멸망할 인간으로 하여금 지금의 신 앞에서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194-6)
"'오직 신에 의해서만(solo deo)' 그리고 '오직 은혜에 의해서만(sola gratia)'에는 만인을 포괄하는 철두철미 새로운 의미가 들어 있다. 신앙을 위한 신의 의는 그리스도의 '속죄 제물'에 근거를 두고 율법 없이 제시되었다(롬 3, 21 이하). 그리스도의 속죄 제물에 관한 사상은 바울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이 사상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신의 언약의 성실에 대한 증거를 보고, 이스라엘의 범죄에 의해 파기된 시내산 계약의 회복에 그리스도를 관련시킨 유대인계 원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은 바울 자신의 해석에서 곧 완전히 후퇴하고, 그 대신 예수를 믿음으로써 신의 행위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바 현재에서 세계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며 일어나는 신의 행위가 부각된다(롬 3, 26)." "오직 신만이 의롭게 하고 경건한 사람은 신의 은혜에 의지한다는 사상을 통해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한정된 옛 시내산 언약에 철저히 대립되는 새로운 언약 사상을 확언한다."(198-9)
"소식과 고백은 시간과 더불어 영원히 어제에 머물러 보리는 옛 시대의 사건들을 내용으로 갖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역사는, 그것이 일회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구원 사건으로서 현재와 미래를 규정한다.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깨워져서 다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죽음이 다시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 이는 그가 그의 죽음으로 죄에 대해 단번에 죽고 그의 삶으로 그는 신에 대해 살아났음이다〉(롬 6, 9-10; 비교. 14, 9). 복음은 구원 사건을 진정한 의미에서 '현재화'하고 이 사건에 스스로 속한다; 복음은 단지 이 사건에 관한 차후의 보도가 아니다. 복음의 선포와 함께 새로운 창조의 날의 빛이 신자들의 마음에서 빛나기 시작한다(고후 4, 6). 그러므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세계에 대한 신의 화해의 행위에 관해 말하면서 동시에 신이 '직책'을, 즉 '화해의 말'을 세웠다고 말할 수 있었다. 선포가 단지 지나간 옛일의 회상만이 아닌 것처럼 그것은 미래에 대한 위로이다."(219)
"바울의 모든 역사는 양면에서 협공을 받았다. 한쪽은 율법과 할례, 제의적 의식을 받아들여 특권적인 구원의 백성에 관여하면서 그의 절망적인 길을 다시 타개하려는 시도이고, 다른 쪽은 외견상 반대 방향을 가는 노력같이 보이는데, 즉 모든 지상적인 제약들로부터 벗어나서─파렴치하게 선전되고 실천되는 윤리적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영에서' 새로운 실존을 보려는 것이다. 율법성에 되돌아가는 것과 영적인 체험에 심취하는 것─바울은 이 둘에 대해, 함께 십자가의 말을 부끄럽게 하고 무력하게 하는 것이며, 복음이 믿는 자들을 찾고 만나고 붙잡는 지상적이고 역사적인 현재를 상상적인 과거 또는 환상적인 '완성'에 넘겨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든 혹은 저렇게든 그의 소식에 만족하지 않는 그의 적들과 비판가들은 함께 절망적인 시대 착오에 빠졌으며, 참된 오늘과 지금을 탈취하는 데 그리고 이와 함께 그의 상대자, 즉 그 말이 상대하면서 해방시키려는 인간을 은혜의 말에서 탈취했다."(252-3)
"묵시 문학의 언어와 표상들이 바울 신학에 끼친 영향은 강하나 이 신학에서 심오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것들은 완전히 거세되거나, 대개 단편적으로 또는 통일성 없이 산재할 뿐이다. 그의 종말론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냄에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서 세대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바울의 신학에서 이것에 긴밀하게 연결된 것은 그 전에 전혀 없었던, 그에 의해 철저히 생각되고 전개된 통찰, 즉 신 앞에서 상실된 인간이 세계의 특징으로 확인되고 신의 구원의 행위는 시간과 역사 '안에서' 이 인간에게 일어났다는 통찰이다. 신앙의 때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그의 도래 사이의 때로 된 것이다." "열광주의자들은 너무도 성급하게 때의 성취와 구원의 시작에 관한 소식을 탐욕적으로 받아들이고 새 시대를 그들 자신의 실존에서 연출시키되 낮아지고 고난받는 그리스도교적 현존의 나그네됨을 스스로 감내할 각오 없이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269)
결론 바울과 예수
"초기 교회사에서 바울에 대한 평가는 극히 분열적이었다. 예로부터 유대인계 그리스도교 측에서는 그를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의 적으로서 용서 없이 버렸다. 아니 이 그룹들에서는 그를 모든 이단자의 두목인 시몬 마구스와 동일시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위僞클레멘스서). 1세기 말에는 그를 높이 존경하고 그의 서신들을 인용하는 교회의 문필가도 몇 있었다(클레멘스 1서,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폴리갑). 그러나 이 밖에 바울을 자기 편에 둠으로써 그로 하여금 교회의 의심을 받게 하는 영지주의자들과 소종파의 두목들, 특히 마르시온 같은 사람이 곧바로 등장했다. 그러므로 그는 수십 년 동안 침묵 속에 파묻히거나 위조된 베드로후서(2세기 중엽)에서와 같이 '사랑하는 형제'로 호칭은 되지만 역시 주저하면서만 언급되었다. 그의 서신들의 난해성 때문에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으로 인해 '스스로 멸망에 이르렀기' (벧후 3, 15-16) 때문이다."(304-5)
"'바울이 아니라 예수'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이들은 바울이 비정상적인 묵시 문학적 헬레니즘계 유대교, 그러나 아주 이방적인, 그리스·근동적 신화와 사상들에 희생되었으며 동시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불행한 대립과 예수 자신의 설교 및 순수한 유대교를 변질시킨 교회의 교리 전통에 대해 본래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때 옛날의 많이 알려진 논증들─지금은 세분화되고 완전히 변한 전제들이기는 하지만─이 새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즉 그들은, 율법과 할례의 제거, 예수의 신앙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변질시킨 것, 그에게서 이미 현재한다는 종말론적 구원의 시대에 대한 선포─이것은 세계와 역사 안에서 날마다 겪는 모든 경험들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이스라엘의 희망의 포기, 끝으로 개인을 민족과 역사, 세계의 숨은 보호에서 분리시킨 것, 아니 그것들을 피조물로 인정하지 않고 악마화한 것 등을 바울의 책임으로 지적한다."(307)
"그러나 바울은 지상의 예수의 말들 또는 비슷한 말들에도 직접 자신을 결부시키지 않았다. 그의 모든 말은 오히려 그가 그런 것들을 알지조차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자신 있게, 많은 사람들에게 아마 놀랍고 역설적으로 들릴 주장, 즉 거의 2천 년의 거리를 둔 오늘의 우리가 아마 역사적 예수에 관해 바울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주장을 확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가 예수에 관해 아는 것, 즉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의 부활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해방의 일을 선포하고 신의 약속을 확인하는 '예(Ja)와 아멘'으로서 예수 자신을 이해했다(고후 1, 17 이하)." "예수와 바울 모두의 설교는 깨어 있으라는 부름과 고난과 시련에 대비하라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여기서 깨어있음과 대비는 불확실성과 묵시 문학적인 유토피아의 설계, 또는 인간이 '무덤 직전에서도 가질 수' 있는 희망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된 새로운 날의 빛 가운데 그 근거를 두고 있다."(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