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연설 - 분열된 국가를 통합시킨 대통령의 연설, 올바른 리더십의 본보기
게리 윌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 그때 게티즈버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게티즈버그에서 남군의 리Lee 장군은 뚜렷한 확신도 없이 절체절명의 적진으로 돌진해 나갔다. 그 불운한 진격이 끝난 후 리 장군은 잔류 병력의 소집을 지시했지만 조지 피켓 장군은 다시 끌어모을 병력이 전혀 없다고 보고했다." "양 진영은 5만여 명의 병사가 전사하거나 부상당하고 실종된 이 전쟁에 대한 광범위한 핑계거리를 준비해야만 했다. 리 장군은 남군이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려 했고, 미드 장군은 자신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게티즈버그 전투가 이런 혼란과 희망의 상실 그리고 무의미한 죽음들로부터 벗어나 국가적 지표와 자부심 그리고 이상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 추악한 현실을 소중하고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변형시켰다. 그는 오직 272개의 단어만을 사용하여 그 일을 해냈으며, 그 단어들보다 더 강력한 호소력을 갖춘 것은 없었다."(14-5)


"링컨의 연설은 대학살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당시에 벌어진 전투를 추상의 단계로 끌어올렸으며 그것을 통해 그 전투를 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사건으로 만들어냈다." "링컨은 어느 한 전장에서 얻어낸 성과를 남북전쟁 전체에 적용하려 했다. 그는 헌법과 지역주의, 소유권과 국가를 너저분한 논쟁들로부터 떼어내 추상화시켰다. 그의 연설 속에 게티즈버그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처럼 노예제도 역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의 논의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을 뛰어넘어 더욱더 깊숙한 핵심으로 파고들어갔으며, 정신적인 투쟁을 통해 원형 그대로 획득되어야 할 위대한 이상을 향해 다가갔다. 링컨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로부터 초월적인 의미를 새로이 이끌어냈다." "링컨은 게티즈버그의 험악한 분위기를 진정시켰을 뿐만 아니라 공적인 죄악들과 대물림된 범죄에 오염돼 있던 미국의 역사 그 자체를 정화시켰다."(41-2)


1장 그리스 문화 부흥 시기의 웅변술


"간결함은 단순히 길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리스의 웅변에서처럼 어떤 것을 이상화하는 링컨의 기술에는 특별한 것들의 묘사가 억제되어 있었다. 이러한 억제가 미학적인 역설을 창조했으며, 그것에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음에도 미묘한 감동을 자아냈다. 그리스 웅변가들은 도시국가의 규정에 따라 답변할 때를 제외하고는 자기 자신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링컨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모든 시민을 지칭하는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했다. 또한 죽은 자들을 일일이 호명하지 않았다. 전사자들은 일반적으로 단순히 '이들(사람들)'이라 불렸다. 이것은 링컨이 '그들이 여기서 했던 일' 또는 '이들 전사자들'이라고 지칭했던 경우와 같다." "플라톤은 에피타피오스(국장國葬연설)에서 (연설가들이) 시인들의 수사를 제거한 꾸밈없는 언어를 사용했다고 말한다. 산문 형식 그 자체는 정치적 삶으로 회귀하는 것이며, 가족 단위의 애도보다 더 커다란 사회적 목적으로 전이하는 것을 뜻한다."(65)


"아테네인들의 연설에서처럼 링컨의 연설에서 주된 대조는 삶과 죽음에서 나타난다. 플라톤은 에피타피오스가 목적하는 주요한 두가지 임무는 죽은 자를 칭송하고extol 산 자를 분발exhort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죽은 자를 칭송하고laud 살아남은 자를 이끈다lead'와 같은 표현에서처럼 어원이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여 압운을 맞추었다. 장례 연설에는 두 가지 주요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죽은 자를 위한 칭송epainesis과 산 자에게 주는 충고parainesis이다." "그리스 저자들은 이러한 주제를 각각의 경우에 확장하거나 축약하고 생략함으로써 발전시켰다. 또한 대부분의 요소들은 그 순서가 변경되거나 강조점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연설 속에 반영되어 드러난다. 그것은 기계적인 공식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 통찰력으로 나타난다. 링컨의 연설이 경이로운 것은 그 통찰력이 그리스의 연설들과 비슷한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점이다."(74-5)


"게티즈버그 전투의 생존자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이 대륙의 토지에 생명의 씨앗을 뿌렸던 것처럼 죽음으로부터 삶을 이끌어낸다. 생존자들은 전사자들이 '모든 것을 다 바쳐 온전히 헌신'했음에도 '더욱더 증대된 헌신'을 떠맡는다. 그 증대된 헌신은 생존자들이 그전에 느꼈던 헌신을 넘어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전사자들이 제공해준 궁극적인 그 어떤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전사자들은 오직 살아있는 자들만이 완수해낼 수 있는 '남아 있는' 임무를 물려주었다. 죽은 자들은 나라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가 완수해야 할 진로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킨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앞에 놓인 그 임무를 위한 교훈이었다. 〈국가가 살 수 있도록who here gave their lives / 여기 목숨을 바친 사람들that that nation might live〉. 또한 그 국가가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라는 실험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80-1)


2장 게티즈버그와 죽음의 문화


"도시 경계 외곽으로 매장지를 이전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위생상의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왔다. 즉, 교회 묘지와 도시 내에 위치한 묘지가 현대화된 도시계획에 방해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죽음의 문화를 연구했던 필립 아리에스의 추종자들은 관념적인 요인들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교회 묘지에 드리워진 신학적 음울함으로부터의 탈피, 자연으로의 회귀, 소멸과 생성을 동일시하는 범신론적 사상과 같은 태도에서 그리스적인 사고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월주의자들은 세미테리cemetery가 '인생의 배움터'로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묘역은 삶에서 동떨어진 채, '그저 침입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담으로 가로막혀' 주변과 소통이 단절된 협소한 영역이었다. 반면에 새로운 세미테리는 죽음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한 방편으로서 자연을 벗삼으려는 자들의 발길이 잦은 장소인 것이다."(85-6)


"그러므로 게티즈버그의 봉헌식은, 일반적으로 죽음에 매료되어 공동묘지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19세기 문화의 한 일면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 의식을, 단순히 즉각적이며 어쩔 수 없이 연상하게 되는 남북전쟁과 군사적인 의식이라는 맥락 속에서만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죽은 자들을 보살피기 위해 자연의 새로운 일부분을 헌납하는 것으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의식에 대한 더 크고 더욱 오래 지속되어온 반응 양식을 완전하게 설명해낼 수 없다." "공동묘지는 19세기에 경계성을 나타내는 최고의 장소였다. 그것은 삶과 죽음, 현세와 영원, 과거와 미래 사이의 경계지역이었다." "만약 자연의 순환이 자연스러운 최면술의 역할을 한다면, 죽은 자들과 가까이 있다는 감각은 강신술의 한 형태일 것이다. 스토리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는 세상으로 돌아가 죽은 자와의 교류를 통해 우리 자신이 더 순수해지고 더 나아지고 더 현명해짐을 느끼게 된다.〉"(94-9)


"링컨은 에버렛과는 달리 어느 한 병사를 추모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 대륙에서 이루어지는 한 국가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시련에 의한 시험과, 새로운 자유의 탄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에게 어머니는 단지 그 나라를 태어나게 한 대륙만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링컨의 연설이 아테네의 에피타피오이와 얼마나 닮았는지 살펴보았다. 그리스의 연설에서도 역시 선조들progonoi의 전통은 언급되지만, 대지 그 자체의 모성이 더욱 강조되며 아테네 시민을 '흙에서 태어난autochthones' 것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지역에 대한 애국적인 애착심과 국가주의적 종교의 공통된 주제이다. 이러한 생각이 '처녀처럼 순결한 대륙' 위에 미국이 건립되었다는 진부한 표현을 낳았던 것이며 이것은 거짓된 은유(대륙을 '처녀'로 만들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무시되었고 또 제거되었다)임에도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다. 그것은 아메리카 신화의 너무도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103)


"어떤 사상으로부터 탄생한 국가는 그 사상이 생명을 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상을 다시 주입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그 사상과 그 사상의 지지자들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이것은 바로 '새로운 탄생'으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 속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유용한 것이다. 연설문의 마지막 문장 속에 나타난 '자유의 새로운 탄생'이라는 표현은 우리들을 첫 문장의 기적적인 탄생으로 다시 데려가주며, 또한 이러한 이미지의 이면에는 '다시 태어난'(요한복음 3장 3절~7절) 사람들이라는 성서적 개념 역시 드러난다." "독립선언문은 영적 재탄생의 도구로서 복음서를 대체했다." "연설 끝 부분에 표현된 '남아있는 그 위대한 임무'는 선조들의 위대한 업적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일한 과업으로서 그들이 항상 행하고 있는 것이며 모든 투사들을 국가의 영원한 이상인 영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119-20)


3장 초월주의 선언


"링컨의 연설에는 몇 가지 사안들이 빠져 있었다. 게티즈버그 연설에 정작 게티즈버그에 대한 언급은 없다. 노예제도에 대해서도 그렇거니와 더 놀라운 것은 미합중국 자체에 대해서도 거론하지 않고 있다. (남부도 물론 언급하지 않는다.) 1863년의 노예해방령과 관련한 주요 내용도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더욱이 옹호는 물론 변호도 하지 않고 있다. 연설에서 언급된 '위대한 과업'은 노예해방이 아니라 자치의 보전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자치를 이야기할 때 백인뿐 아니라 당연히 흑인들까지 포함한 자치라고 생각하지만, 게티즈버그에서 연설을 할 당시까지도 링컨은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들의 선거권에 대해서는 전혀 주창하지 않았다. 예술적이며 웅변적이기도 한 게티즈버그 연설은 당대의 역사적 공간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여겨지는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주요 사안에 대해 교묘히 회피하고 침묵했던 것 때문에 링컨은 살아 있는 동안 줄곧 비난을 받았다."(124)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파커는 노예제도 반대에 링컨보다 더 솔직했다는 이유로 윌리엄 수어드를 지지했다. 그러나 수어드는 바로 그 솔직함 때문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에서 탈락했다. 링컨은 더 조심스러웠고 우회적이었다." "링컨의 정치적 기반인 일리노이 주는 후일 웨스트버지니아 주가 된 전체 지역보다 훨씬 남쪽인 지점(남부도시 카이로)에까지 이르렀으며 또한 켄터키 주와 버지니아 주에 속한 대부분의 지역보다 훨씬 남쪽으로 뻗어나간다. 링컨이 더글러스와 토론을 벌이기 10년 전이었던 1848년, 일리노이 주에서는 널리 퍼진 '흑인 공포증'으로 자유를 얻은 흑인들이 주 내로 이주해오지 못하도록 하는 수정법안을 투표에 붙였다. 흑인 전입금지에 관한 주 전체의 투표율은 70%였지만 남부와 몇몇 중부의 카운티에서는 90% 이상이 찬성했다. 링컨은 자신이 속해 있는 주의 인종적 지도를 익히 알고 있었으며, 그때그때의 청중들에 따라 노예제도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고 있었다."(125-6)


"링컨은 흑인이 백인에 비해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선호했으며, 흑인을 사회적으로 열등한 상태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조지 프레더릭슨이 지적했던 것처럼, 흑인이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에 대해 확실성보다는 불가지론을 표명하는 것이 당시로서는 '자유주의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링컨을 비롯한 그 어느 누구도 (흑백 인종의) 사회적 혼합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링컨은 이러한 정서와 관련되어 있고 또 그 당시로는 해결할 수도 없었던 문제들과 정치적 평등의 문제가 한 묶음으로 다루어지게 되는 것을 꺼려했다. 그에게, 제대로 확립시키기는 어려웠지만 실현 가능한 최소한의 것, 즉 그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최소한, 인간을 자산으로 취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링컨은 그 결과들을 하나하나 명쾌하게 밝혀나감으로써 그러한 태도를 부조리한 것으로 만들어나갔다."(133-4)


"만약 어떤 흑인이 타인의 자산이 아니라 스스로를 책임지는 인간이라면, 자신의 노동으로 얻게 된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지녀야 한다.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흑인들이 나와 동등하지 않다는 더글러스 판사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들과 나는 분명 피부색이 다르며, 어쩌면 도덕이나 지적인 천부의 자질도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획득한 빵을 다른 어느 누구의 허락 없이도 먹을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나와 동등하며, 또 더글러스 판사와 동등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동등합니다.〉 링컨은 한 가지 편견에 대항하기 위해 또 다른 편견을 활용하려 했다. 미국인들은 성경에서 인용된 것이라면 우선적으로 호의를 보이는 성향이 있다. 링컨은 언제나처럼 뼈 있는 내용의 성경 구절을 활용하고 있다. 인류를 향한 예외 없는 구절인 '그대의 얼굴에 땀을 흘리고 나서야 빵을 먹을 수 있게 되리라'(창세기 3장 19절)는 적어도 흑인들의 입장에서는 냉소적인 권리인 것이다."(136)


# 또 하나의 논리 :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천부인권의 원리 아래 왕정을 반대한 독립선언문의 정신 주창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고결함과 이상과 간결함을 이룩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1850년대의 대부분의 시기를 그 시대의 가장 민감한 문제들과 더불어 독립선언문의 위대한 원칙과 끊임없이 연관시키며 보냈기 때문이었다. 만약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난 것이라면 그들 스스로 자산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은 그를 소유하는 군주에 의해 지배될 수 없다. 그들은 최소한의 의미에서도 자기 자신의 소유자로서 스스로를 다스려야만 한다." "연설에서 이 문제들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언급될 필요조차 없다. 다시 말해 자유롭게 국가의 이상을 표명해온 국가라면 오랜 시간에 걸쳐 어느 특정하거나 제한적인 개혁들, 심지어 노예해방만큼 중요한 개혁들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국가의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자주적인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혼란스러운 특별한 사건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며 오랫동안 품어온 평등과 자치라는 과업으로 복귀하는 것이다."(169-70)


4장 사상의 혁명


"링컨은 독립선언문을, 추구해야 할 초월주의적 이상의 한 표현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링컨으로서는 독립선언문을 건국 문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시어도어 파커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 생각들을 확실히 해두어야만 했다. 파커의 견해에 의하면, 남부 지역의 주들이 한 국가로서 미국의 비전을 부정한다면 미국의 비전을 따르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남부에 그대로 남겨두고 합중국 내에서 오염인자가 될 남부 지역의 주들을 합중국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립선언문이 단일 국민의 주권 행위였다면,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라 해도 그 국민은 분열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링컨이 '나의 정의로운 주인인 미국 국민들'이라고 선언하며 권좌에 오른 그 순간부터 그 두 가지 견해─국민은 확실한 역사적 실체이자 독립선언문의 주체로서 헌법적 실체라는 파커와 웹스터의 견해─는 링컨의 말과 행동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었다."(187-8)


"따라서 호전주의자들의 지위 문제에 관해 링컨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에게 이 문제는 전쟁이 아닌 반란이었다. 남부군은 외국 호전주의자들의 집합체가 될 수 없었다. 취임연설에서 '합중국은 부서지지 않는다'고 천명했듯이 그는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도, '연방에서 탈퇴한 주들'이라는 표현을 잘못된 것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펼쳤다. 그 주들은 탈퇴가 가능하지 않았으므로 탈퇴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임스 맥퍼슨이 그랬던 것처럼 링컨이 마침내 독립전쟁을 시민 봉기가 아닌 외국과의 전쟁이라는 견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사실, 북부는 대부분의 경우 국제법하에서 해외 강대국들과의 관계 때문에(예를 들어 외국 선박에 영향을 끼치는 봉쇄 조치의 관리) 교전국으로서의 절차들(예, 죄수의 교환)을 채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제퍼슨 데이비스의 군대를 남부를 약탈하는 도적떼로 여겼던 링컨에게는 법적인 가설일 뿐이었다."(189)


"〈노예해방은 정서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힘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마력이나 증기동력이 측정되고 평가될 수 있는 것처럼 보존되고 평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측정된 바에 의하면, 흑인들의 지지는 우리가 잃고 살아가는 것보다 가치있는 일입니다.〉" "링컨은 스스로 언급했던 것처럼, 노예들의 힘마저 말이나 증기의 힘과 같은 물리적은 물자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군의 사기라는 군사적인 이유에서도, 복합적인 의미에서 마찬가지로 중요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노예해방이라는 위협과 그것의 실질적인 실현은 남부군의 사기에 타격을 입혔으며 북부군의 희망을 더욱 강화시켰다." "링컨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호프스태터를 비롯한 비판자들은 노예해방의 동기로는 '저열한 것'이라며 그를 비난했다. 그러나 새 세대의 흑인 역사가들은 그의 말에서 흑인들의 공헌을 인정하려는 현실주의적 자세를 찾아냈다. 즉, 노예들을 위해 노예해방을 추진한다는 생색을 내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201-4)


"(흑인 '투사들'의 자유를 인정한 것은) 링컨이 노예해방에 대해 육군과 해군의 총사령관으로 자신의 권한을 제한했던 헌법적 도덕관이 가져다 준 여러가지 부수적인 효과 중의 하나였다. 민간의 권한으로는 남부의 제도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서약을 지킴으로써 링컨은 남부 사람들에 맞서 도덕적인 장광설을 구사하지 않고도 그들이 감당할 만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질서가 회복되었을 때, 그들은 통치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다. 또한 엄격하게 지켜진 군사적 조치는(비록 간접적인 압력을 가중시키기는 했지만) 접경지역 주들의 자발적인 노예해방과 1865년 모든 노예의 해방을 선언한 제13차 수정법안을 이끌어낸 시민적 합의의 과정을 훼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방적인 분리는 있을 수 없음을 주장하여 일방적인 노예해방을 피하는 방법으로 링컨은 모든 국민을 위한 헌법(노예조항을 비롯한 모든 조항들)을 온전한 상태로 유지시켰다."(204-5)


"링컨은 개별적인 것, 지역적인 것, 분열적인 것을 극복하려 했다. 그는 이상적 국가의 모습을 향한 노력으로 전쟁 이후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그 위대한 책무'를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가 개별적인 주보다 그 시기와 중요성에서 앞선다는 제임스 윌슨, 조지프 스토리 그리고 대니얼 웹스터와 같은 법률가들이 단순한 이론이 이제는 미국의 전통 속에 살아있는 실체가 되어 있다. 이러한 이론의 성과들은 한꺼번에 드러났다. 독립전쟁 시기까지는 (연합된 주들이라는 의미에서) '합중국the United States'은 언제나 복수명사로 사용되어왔다. 즉, 'The United States are a free government'라고 표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게티즈버그 연설 이후부터는 서서히 단수명사로 바뀌어 'The United States is a free government'라고 표현하게 되었다. 그것은 링컨이 연합을 신비주의적인 희망 사항이 아니라 헌법적인 실체로 만들면서, 자신의 표현뿐만 아니라 행동을 통해 표현해낸 투철한 철학의 결과라 할 수 있다."(205-6)


5장 문체의 혁명


"링컨의 산문적 특징으로 드러나는 간소함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연구의 결과이다. 링컨 당대의 고대 수사법 해설자인 블레어는 꾸밈이 없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가르쳤다. 설령 문장의 정상적인 질서를 뒤바꾸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적절한 단어들이 두드러지게 배치되어야 한다. 젊은 시절에 링컨은 일종의 언어적 운동경기를 치르듯 이 문제에 몰두했다. '부서진다 해도, 나, 역시 어쩌면, 그것에 고개 숙이지 않을 것이다Broken by it, I, too, may be; bow to it I never will.' 그는 일생을 통해 문법적인 도치를 즐겨 사용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연구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그는 두 번째 취임연설에서 '우리들은 간절히 바라며 열정적으로 기도 드립니다We fondly hope and fervently pray'라 하지 않고 '진정으로 간절히 우리들은 바라며, 진정 열정적으로 우리들은 기도 드립니다Fondly do we hope, fervently do we pray'라고 표현했다."(231)


"또한 블레어는 균형 잡힌 대조법을 통해 뜻을 명확히 할 것을 권했다." "링컨은 1854년까지 미국이 처해 있었던 적대적인 분할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남부는 승리에 들떠 무리한 시도를 획책하려 하며, 북부는 배신감에 노여워 자신들의 잘못을 질책하며 복수심에 불타오릅니다. 한쪽은 선동하고, 다른 한쪽은 저항합니다. 한쪽은 조롱하고, 다른 한쪽은 무시합니다. 한쪽은 공격하고, 다른 한쪽은 보복합니다.〉" "블레어는 이러한 모든 장치들이, 의미를 더 명확히 하고 진실을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정직한 의도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자멸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분명, 이것이 바로 링컨의 웅변이 갖고 있는 비밀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소리로 나타내기 위해 큰 소리로 읽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글로 옮겨 썼다. 그는 분석적인 훈련에 열성적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가장 무미건조한 과목이라 생각했던 문법을 즐겨 연구했다."(231-3)


"그랜트 장군에 대한 링컨의 존경심은 부분적으로, 군사 작전에 대해 설명하거나 주장을 펼칠 때 애매모호했던 매클렐런과는 달리 그가 언어를 적확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맥퍼슨은 링컨이 언어의 힘으로 전쟁에서 이겼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두 가지의 반쪽 진실은 적어도 하나의 완벽한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즉, 논점이 분명한 언어들은 그랜트와 링컨이 놀라울 정도의 상호교감과 군사적 의견일치를 이룰 수 있게 한 매개물이었다는 것이다. 1864년 8월 17일에 링컨이 보낸 전보에는 오해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계속 불독처럼 물고 늘어지고 물어뜯어 숨통을 끊어버리시오. 최대한으로.' 이 전보문을 읽은 그랜트는 폭소를 터트리며 '대통령께선 그 어떤 고문들보다 배짱이 있다'고 말했다. 링컨이 전보문에 사용한 수사에는 단음절과 스타카토식의 박자가 있다. 〈받아들이지 마시오. 확고한 자세를 유지하시오. / 그 지점에서 확고히 지키시오. 마치 강철 사슬처럼. / 매일, 매시간 경계하고 강압하시오.〉"(244-5)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긴 라틴어 어원의 단어들 대신 간략한 앵글로색슨의 단어들을 사용하여 '세속적인' 문체를 만들어냈다며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링컨은 자유 속에 태어난born in freedom 국가로 표현하지 않고 자유 속에 잉태된conceived in Liberty 국가라 표현하며, 하나의 진실에 서약한vowed to a truth 국가라고 표현하지 않고 하나의 명제에 헌정된dedicated to [a] proposition 국가, 그리고 병사들의 헌신devotion을 보여주는 봉헌된consecrated 국가라고 표현하고 있다. 온통 라틴어 어원의 단어들이다. 심지어 링컨은 과거에 '명제proposition'와 같은 '비문학적인' 단어를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비록 링컨이 전원묘지 운동으로부터 다산의 이미저리를 빌려와 사용하긴 했지만,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 자체가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라틴어인) 전보문적인telegraphic 문체라 할 수 있다."(251)


"링컨은 민주주의의 일반원리와 자명한 이치들을 유클리드 수학의 '명제들'과 비교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사고를 지닌 초월주의자였다. 그는 추상적인 단어들이 잘 어울리는 과학의 시대와 교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대의 언어로 이야기했다. 그의 한결같은 주장은 '있는 그대로 말하기'와 같은 거친 방법보다는 연설의 내부적인 '연결'과 '실행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농업적인 미래가 아닌 기계론적인 미래를 연설하고 있었다. 그의 연설은 그 자신이 전투를 위해 시험을 거쳐 발전시킨 그 기계처럼 경제적이면서 간결하고 내부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비록 그 언어들이 전쟁의 와중에서 평화의 무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동원된 것이지만, 그에게 언어는 바로 무기였다." "그가 연설에서 제시한 상징은 경험에 의한 시험을 거친 것이었으며, (얼음 속의 불처럼) 침착한 추상적 개념 속에 감성적 긴박감을 지니고서 완벽하게 표현된 국가적 가치를 호소하는 것이었다."(252)


에필로그 그 밖의 연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