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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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주의는 생각하지 않는 것,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걸 뜻하네. 요컨대 정통주의란 무의식 그 자체일세."

윈스턴은 그녀와 이야기하는 동안 정통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면서도 정통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도 납득하지 못할뿐더러 현재 일어나고 있는 공적인 사건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가장 악랄한 현실 파괴도 서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무지로 인해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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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은 대상의 실존을 확인하는 일이다. 보는 것은 눈과 마음을 다하는 일이며, 한번에 그치지 않고 잊혀질때마다 되풀이하여 새기는 일이다. 도마의 의심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의 것이 아니라, 보던 것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 자의 불안이다. 있음을 알던(믿던) 자만이 없음의 상실을 절감할 수 있다.

절대 권력이 아무리 텔레스코프와 사상경찰을 흩뿌려 감시해도 개개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을 볼 수는 없다. 대신에 그들은 검열하고 색출하고, 교정하면서 이단자를 잡아들이는 동시에 끊임없이 정통을 보여주어 마음 속의 이단을 삭제한다. 잊을 수 없도록 반복하고, 눈앞에 가져다놓아 확신의 등불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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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 검은 콧수염 속에 숨겨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기까지 사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부질없는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 안을 떠나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며 지내온 유랑의 삶이여! 진 냄새가 배어 있는 두 줄기 눈물이 그의 코 양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잘되었다. 모든 것이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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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적 확신은 타율적 강요보다 강하며, 생명의 조건을 넘어서는 의지의 날개를 달아준다. 그러나 자립적이라는 말을 찬찬히 짚어보면, 그것의 원천과 재료들은 거의가 외부에서 받아들인 정보와 경험과 판단의 합성물임을 알 수 있다. 자립은 타율의 반대가 아니라 타율과 교감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힘인 것이다.

본성이냐 환경이냐의 논쟁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환경은 단순히 물질적 사물만이 아니라 정신을 구성하고 지성을 고양하는 의식의 형성 과정을 포함한다.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른 면을 생각하는 것이 자립적 의식이다. 이 자립은 홀로 서지만, 자신 밖의 홀로 섬을 볼 때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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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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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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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나' 같은 모습을 하고, '어떤' 변화도 용납하지 않고, 다름을 시도하는 것도 '안 되며', '모두' 고정된 자리에 머문다면, 그 종(種)은 출발과 함께 멸종했을 것이다.

종이에 쓰여진 법률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돌판에 새겨진 계명은 지우고 고쳐 쓸 수 없다. 다시 말할 수 없는 언어란 생명력을 소진하고 침묵의 품으로 돌아간 화석이다.

그리하여 대의(!)가 희생의 흙더미에서 꽃피우고 농장의 풍요(?)가 인간들을 감동시킬때 언어는 자의성을 회복하고 다시금 하나의 원칙으로 돌아갔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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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계명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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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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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리의 죽음은 내가 쉽게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마일리는 용감하고 재능 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글래스고 대학의 자리를 내팽개쳤다. 또한 내가 목격한 대로, 그는 흠 잡을 데 없는 용기와 흔쾌함으로 전선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저들이 그에게 해준 일이라고는 그를 감옥에 집어넣고 방치된 동물처럼 죽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
내가 이런 죽음에 화가 나는 것은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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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사건에 역사적 사실을 중첩하면 보이지 않던 진실의 일면이 드러난다는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다만, 거기에는
1. 해석의 여지가 있는 사건인가?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풀이는 따분하다)
2. 현재를 미화하기 위한 인용이 아닌가?
(꽃의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 새싹의 싱그러움을 상기할 필요는 없다)
3. 선악의 구도를 벗어나 있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굶주려도 입만은 살아 있다)
4. 역사적 결과를 확정된 미래로 착각하고 있는가?
(역사는 이정표이지 단선 철로가 아니다)
를 검토하는 관조의 자세가 필요하다.

즉, 역사의 물길을 잇대어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예언자적 통찰을 과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유사한 상황과 인물구도의 결합이 전혀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것이 인간 행위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앎은 삶을 되짚어볼 뿐,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인간은 지식과 실천, 용기와 겸손, 사려와 결단 사이에서 고뇌하는 시지프스이지, 정상과 지상에 동시에 거하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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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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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스 노동자가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공장은 베트남과 중국의 노동자가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공장의 생산성을 이겨낼 수 없다. 공장은 폐쇄되고 노동자들은 장마에 떠내려가는 부유물처럼 흩어진다. 숫자는 많은 걸 말해주지만 그 중 단 한 명의 삶도 담아내지 못한다.

앎은 힘들다. 사실의 본질을 제대로 알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의 무게가 힘들고, 기껏 알아낸 사실의 슬픔과 무기력함이 힘들다. 그래서 차라리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앎이 곁에 오지 않길 바란다. 고통을 외면하고 피해다닌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너무 멀리까지 연결되어버렸다.

산 자는 누구이고 죽은 자는 누구인가? 해고를 피한 자와 생계를 택한 자가 산 자인가? 반대로 해고를 당한 자와 신념을 지킨 자가 산 자인가? 삶은 어느 것으로도 답할 수 없다. 매일 밤 잠들고 매일 아침 다시 깨어나는 자신에게 물어볼 따름이다. 너는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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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2 - 근현대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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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강점기
1) 1860~70년대는 척사론과 개국론이 맞섰고, 1880년대에는 독립론과 (청의) 속방론을 논의했으며, 대한제국기에는 군민공치론을 억압한 황제권 강화론을 추구하였다.
2) 단발령은 을미사변을 무마하고 근대개혁을 추진하려는 개화파의 시도로, 중화문명과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려 했던 보수반동을 정당한 민족적 저항으로 만들었다.
3) 대한제국이 추진한 광무개혁은 외세의 침략 앞에서 국권-군주권과 동일한-을 지키기 위해 지배계급의 주도로 마지막으로 시도된 근대화 개혁이라는 한계를 지녔다.
4) 을사조약은 위임•조인•비준의 어느 과정도 거치지 않았고, 고종이 적극적으로 승인을 거부했으며, 한국 정부의 동의표시도 결여된, 체결되지 않은 강압적 시도에 불과하다.
5) 개신교의 정착은 축자영감설에 기반한 정복자의 태도와 정치•사회 문제를 배제하는 '오직 신앙'의 관점이 주류를 형성하여 민족주의 운동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6) 문화역량 우선주의를 표방한 민족주의 세력의 '김윤식 사회장' 추진은 사회주의 세력이 이들과의 통일전선 논의를 통해 운동론의 차이를 가시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7) 3•1운동의 실패를 내부 역량 강화로 돌린 물산 장려 운동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은 생산력의 증진과 정치혁명 간의 우선성을 논의하면서 노선의 불일치를 해소해갔다.
8) 창조파는 임정의 대표성 부족과 지역적 제한성을 지적하여 새로운 대표회를 주장했고 개조파는 임정의 한계가 시기적 절박함 때문이라면서 법통의 유지를 주장했다.
9) 이승만의 외교노선은 러일전쟁 직후의 대미청원, 3•1운동에 즈음한 위임통치 청원, 1930년대 소련과의 접촉 시도, 해방 직전의 반소•반공 선전과 임정 승인 요청이다.
10)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문화정치 아래에서 친일로 기울던 지주•자본가 계급에게 정치성을 배제하고 역량 강화에 힘쓰자는 개량주의적 민족운동의 길을 열어주었다.
11) 중국정부의 입장에서는 재만조선인들이 일제의 만주 점령의 선봉이자 전위로서 '만보산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대륙침략 정책을 막기 위해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12) 단군신화는 단군을 민족시조이자 동방문화의 연원으로 주장한 최남선에 의해 되살아났으며, 역사적 실증보다는 식민기 및 해방 이후의 국수주의적 우상화에 이용됐다. 
 

2 해방~1960년대
1) '소련 신탁통치 주장, 미국 즉시독립 주장'이라는 오보에서 비롯한 친탁과 반탁의 대결 구도는 친일파들이 적극적으로 반공•반탁을 주장하며 애국자로 둔갑하게 했다.
2) 도강파가 서울 수복 후에 잔류파를 부역자로 몰아 마녀사상을 벌인 일은 전쟁 초기의 패전 책임을 모면하고 반공이 애국이라는 절대 명제를 각인시킨 정치적 폭력이었다.
3) 북한은 1956년 종파사건을 계기로 중공업 중심의 독자적 사회주의를 모색했고, 개인숭배를 배격한 소련의 수정주의를 벗어나 자주적 주체사상의 도식화를 강화했다.
4) 이승만 정권의 반대세력을 옭아매기 위한 신국가보안법은 피고의 변호사 접견을 금지하고 상고심제도를 폐지한 헌법 위의 법이었으며 59년 2.4 날치기 통과되었다.
5) 4•19 혁명 이후 통일은 자립적 경제개발의 선결 조건으로 논의되었으나 체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경제개발 통일유보론이 득세하다 5•16 쿠데타로 가속화되었다.
6) 한일회담은 경제개발 자금이 시급했던 한국, 잉여자본을 해외로 수출하려는 일본, 지역블럭을 구축하여 대소봉쇄의 전초지로 삼으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은 결과였다.

 

3 1970년대 이후
1) 국사교육 강화 정책은 1972년 10월 유신과 때를 같이 하여 주체성 있는 국민정신 교육을 강조하였고, 이를 위한 방편으로 단일한 국정교과서를 1974년부터 시행했다.
2) 70년대에 역사적 주체로서 재발견된 '민중'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한몸에 지닌 역동적인 세력으로 추상화되었다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시민'으로 전환되었다.
3) 86년 정립된 NL-CA 논쟁은 반미,반봉건의 민족통일전선과 노동계급 중심의 반파쇼 투쟁이 쟁점이었고, 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NL의 대중노선이 우위를 점했다.
4) 87년 대선 때 NL세력의 김대중 비판적 지지, 후보단일화, 소수 운동권파의 독자후보 운동은 각자의 주관적 당위에 객관적 상황과 조건을 꿰맞춘 이론과 실천의 괴리였다.
5) 보호감호는 7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출소하게 된 해방 직후의 사상범들을 재구금 또는 사상전향시키기 위한 방안이었으며, 일제의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본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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