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신화 - 클래식 음악의 종말과 권력을 추구한 위대한 지휘자들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김재용 옮김 / 펜타그램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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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휘자의 탄생(창작과 비평자)
미술이나 문학은 작가와 독자 그리고 비평가의 삼각관계 속에서 작품이 명멸한다. 음악은 여기에 연주자가 부가되는데, 연주는 그 자체로 작품을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작업으로서 창작자와 비평가의 혼융상태라 할 수 있다.
악보에 담긴 음표들이 악기에서 흘러나올 때, 작곡가의 구상/이미지/영감이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작곡가의 이상은 연주자의 연주에서 비로소 생명력을 획득하는데, 이 생명력의 양태를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지휘자이다.

2. 지휘자의 부각(해석의 권위자)
충분한 경력을 갖춘 악단의 화음도 어떤 지휘자의 손길을 거치는가에 따라 격정에서 평온으로 얼굴색을 달리한다. 위대한 작곡가들이 잠들고 위대한 작품만이 살아 숨쉬는 시대에 이르면 "해석은 더 이상 작곡가의 지휘를 충실하게 설명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창조적인 행위"로 변모한다.
지휘자는 천상의 빛을 쏟아내는 예술의 진정한 주역으로 자리매김한다. 지휘자들이 서로의 해석을 경쟁하고, 음악의 외연을 넓히는 일에만 주력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3. 지휘자의 몰락(음악의 판매자)
자본이 지휘자의 권위가 아로새겨진 지휘봉에 매달려 음악을 대중화하면서 물질이 예술의 심장부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정점에 올라선 지휘자들은 기꺼이 정신의 일부를 그들에게 내어주고 계보와 인맥을 앞세워 분주히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새로운 시도는 디미누엔도(점점 여리게)로 잦아들고, 지휘자의 계좌가 불어날수록 연주자들과 오케스트라는 파산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음악의 자식들이 천상의 빛을 감싸는 황금의 찬란함을 선택한 것이다.

고양된 정신과 풍요로운 물질의 동거는 일견 어색해 보이지만 훌륭한 인격이 훌륭한 예술과 반드시 합치하지 않는 것처럼 정신과 물질은 상호 생성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분산된 세계는 집중을 갈구하고, 집중된 세계는 분산을 요청한다. 생명의 본질은 정체가 아니라 운동이다. 결국 당도하는 지점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그곳은 끝장난 무덤이 아니라 부활의 요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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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반세계의 끝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마티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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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피안(彼岸)에서 춤추는 아름다움은 자신의 미모에 귀기울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기꺼이 아름다움의 무대를 열어준다.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말이다.

이 책은 그러한 아름다움을 채집하고자 했던 소년 파브르들의 분투기이자 음반 안에 박제되어 음의 포로가 되어버린 요정 지니의 탈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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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아서 O. 러브죠이 지음, 차하순 옮김 / 탐구당 / 198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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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자족하는 신이 있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간 너머에 펼쳐진 영원을 주관하면서 세계 만물의 운행에는 일체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의 우주는 최상의 가능성을 실현한 세계이고, 우연적 가능성이 닫힌 불변의 세계이다. 필연적인 질서에 순응하는 피조물들은 평온한 안식을 주는 자신의 자리에 굳건히 머무른다.

여기 생성하는 신이 있다. 그는 만물의 창조자요, 존재 이전의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이전을 주관한다. '생의 약동'에서 풀려나오는 무한한 다양성은 불완전한 현재를 완전한 미래로 이끌고 가려는 정열의 표상이다. 세계의 아름다움은 빈틈없는 연쇄의 정합성이 아니라 체계 통일의 충동 그 자체에서 길어올려진다.

인과관계의 형이상학적 변주곡인 <존재의 대연쇄> 관념은 이러한 두 신의 면모를 모두 안고 고대 희랍의 초월적 사유에서 중세의 신을 향한 믿음을 거쳐, 근대의 자연과학과 낭만주의까지 뿌리를 내리며, 최초의 원인을 갈구하는 이성의 욕구를 자극하거나 안식처로의 도피 심리를 충족시켜 주는 사유로서 작동하였다.

이성과 충동이 맞물린 <존재의 대연쇄> 관념은 구조의 안정성으로 인해 오히려 신성과 더욱 멀어진다. 논리적으로 이해가능한 신과 전지전능한 신 관념의 공존은 '닫히고 열린 문'처럼 형용모순이다. 이것은 신의 존재를 설명하기에는 알맞은 역설이지만, 체계 일반을 향한 인간의 의지를 꺾기에는 미진한 회유책이었다.

비록 <존재의 대연쇄> 관념이 지닌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모순을 재배치하여 한쪽에 편입하거나 화해를 모색한 시도는 모두 실패로 마감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흩어져 나온 무수한 잔해들은 "한 신념의 효용과 그 타당성이 서로 독립적 변수"라는 저자의 말을 입증해주는 확고한 사례로서 사상사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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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구성 나남신서 692
승계호 지음, 김주성 외 옮김 / 나남출판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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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든 가능한 경험을 넘어가서 사물들 그 자체일 터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명확한 개념도 세울[아무것도 명확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참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물들 그 자체에 대한 탐구 앞에서 그것을 전적으로 그만둘 만큼 자유롭지가 못하다. 왜냐하면 경험은 이성을 한 번도 온전히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험은 우리를 물음들에 대한 답변에 있어서 언제나 계속해서 되돌려보내고, 물음의 온전한 해결에 관하여 우리를 불만인 채로 둔다. -Kant, 형이상학 서설, A165


본 저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이념을 근간으로 공정성을 모색한 롤즈의 이론에 배어 있는 직관과 구성의 포속관계를 단초로, 불확정성과 전달 불가능성을 함유한 직관을 배제하고 절차에 근거한 형식적 구성주의로 나아가려는 일련의 시도가 보여주는 사상사적 한계를 검토하고 있다.

이 물음은 불변의 실체로 존재하는 진리 혹은 법칙을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하강'의 방법으로 사회체제를 구성할 것인가, 아니면 진리 혹은 법칙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계약에 근거한 부단한 합의를 통해 엄밀하게 구성하는 '상승'의 방법으로 사회체제를 구성할 것인가의 대립이다.

체제를 구성하는 작업은 정당성의 근거를 반드시 필요로 하며, 이 정당성은 아무리 절차적 엄밀성으로 구축하려 해도 보편성을 획득할 수가 없다. 만장일치를 이끌어낸 제도라 하더라도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을 얻기 위해서는 이미 그 개념의 '초월성'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형식을 세우는 작업 자체가 초월적인 세계로 올라서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보편화를 통해 모든 경우의 수를 포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도식화로 고착되기 십상이다. 실질과의 괴리는 구조의 구축이 필연적으로 배태하고 있는 결함이며, 인간 이성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하나와 여럿 / 이론과 실천 / 자유와 자연 사이의 긴장은 사상의 역사에서 순환하는 주제이다. 문화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 이래로 이 주제를 향한 탐구 정신이야말로 절대 불변의 진리요 법칙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인은 이 꿈을 절대로 이룰 수 없다는 자각에 사로잡힌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는 다시 순환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이 정말로 이룰 수 없는 것인지를 하나하나 짚어오르고, 마침내 결단코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디오티마의 사다리가 놓여진 자리는 쿠자누스의 '아는 무지'(docta ignorantia)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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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끝났다. 그렇다면 또 누군가가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난파에서 한 사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MobyDick, 김석희 역>, 에필로그, 683p

 

 

그렇다. 연극은 끝났다. 밀항자들이 몰살한 어창의 문이 열렸을 때, 연극은, 끝이 났다.
선원들은 살아 남았지만, 그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뱃사람과 밀항 알선업자라는 엇갈린 정체성은 한 배를 탄 인연의 실타래마저 한 칼에 끊어버렸다.

 

선장 철주(김윤식)에게 배는 모든 것이다. 그에게 배는 삶과 동의어이므로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운명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침몰하는 배는 그의 집념과 애착을 닻줄에 묶어 함께 가라앉는다.
그는 괴이하게 피어올라 자신을 꽁꽁 묶어버린 이질적인 존재('해무'와 '홍매')를 이해하지 못한다.

 

1998년 IMF 사태는 한국인들의 현실을 움켜쥐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무대로 추방해버렸다.
협동과 연대는 사전(辭典) 목록에서 정리해고 되었고, 능력주의는 모든 행위의 정당성을 독점했다.
결코 상상하지 않았던 미래로의 항해(航海), 거기에 파국이라는 결말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IMF라는 '해무'를 헤치고 살아남아야 했던 '전진호' 한반도의 알레고리이다.

 

...

 

파국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여전히 누군가는 살아남고 무대에 다시 등장한다.
삶을 떠받치는 힘이 레이첼이라는 구원의 손길이든 홍매라는 신기루의 뒷모습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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