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끝났다. 그렇다면 또 누군가가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난파에서 한 사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MobyDick, 김석희 역>, 에필로그, 683p
그렇다. 연극은 끝났다. 밀항자들이 몰살한 어창의 문이 열렸을 때, 연극은, 끝이 났다.
선원들은 살아 남았지만, 그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뱃사람과 밀항 알선업자라는 엇갈린 정체성은 한 배를 탄 인연의 실타래마저 한 칼에 끊어버렸다.
선장 철주(김윤식)에게 배는 모든 것이다. 그에게 배는 삶과 동의어이므로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운명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침몰하는 배는 그의 집념과 애착을 닻줄에 묶어 함께 가라앉는다.
그는 괴이하게 피어올라 자신을 꽁꽁 묶어버린 이질적인 존재('해무'와 '홍매')를 이해하지 못한다.
1998년 IMF 사태는 한국인들의 현실을 움켜쥐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무대로 추방해버렸다.
협동과 연대는 사전(辭典) 목록에서 정리해고 되었고, 능력주의는 모든 행위의 정당성을 독점했다.
결코 상상하지 않았던 미래로의 항해(航海), 거기에 파국이라는 결말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IMF라는 '해무'를 헤치고 살아남아야 했던 '전진호' 한반도의 알레고리이다.
...
파국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여전히 누군가는 살아남고 무대에 다시 등장한다.
삶을 떠받치는 힘이 레이첼이라는 구원의 손길이든 홍매라는 신기루의 뒷모습이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