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이인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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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펠레스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고 서술하겠다는 사람들은,
우선 정신을 몰아내려고 애를 쓴단 말이야.
그렇게 하면 부분적인 것들은 손에 쥐게 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신적인 연관성은 결여되게 마련이지!
화학에서는 이를 자연의 조작(操作)이라 말하지만,
스스로를 조롱하는 것일 뿐, 그 근본 이치는 모르고 있어. p.121


메피스토펠레스,
그는 알 만큼 아는 자, 볼장 다 본 자, 듣지 않은 말이 없는 자,
그는 악기가 스스로 음률을 맞추도록, 건반의 잠을 깨우는 자,
그는 저녁 노을의 입을 열고 어둠을 삼켜 자신을 불태우는 자,
그는 가장 아름다운 별을 가장 질긴 흙에 이겨 한몸에 품은 자,
오, 그는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진리의 산등성이 너머에 서 있는 자!

파우스트가 태초의 존재를 '말씀'이 아니라 '행위'로 규정할 때, 그는 자신이 찾는 언어를 결코 찾지 못할 것임을, 그저 긴긴 방황의 몸짓을 통해 간신히 살아낼 수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했을 것이다. 자신의 언어를 가진 자, 자신이 아는 것을 확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자, 신은 말하지 않고,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자, 파우스트는 그에게 영혼을 내주었지만 입술은 내주지 않았다. 자신의 말을 빼앗긴 자는 더 이상 자신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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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
박태주 지음 / 매일노동뉴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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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용불안과 임금에 대한 높은 집착, 그리고 그 표현으로서의 파업은 현대차 노사관계의 동학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변수들이다." p.15

"Cheese in the Trap"이라는 웹툰 & 드라마의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현대자동차의 노사관계는 "Salary in the Trap"이다. 아니, 저자의 말처럼 한국 노사관계가 그러하다. "송곳"이라는 웹툰 & 드라마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시시한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회사 노조가 정치 파업이나 연대 투쟁에 나서기보다는 우리의 임금 인상과 복지 향상에 힘써주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에서 노조는 '정치적' 투쟁을 통해 단결권을 쟁취했지만, 단결권이 보장된 노조는 더 이상 '정치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공공의 이익에 헌신하거나 최소한 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노조는 균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협상권을 확보하는 순간 노조원들의 공통 희망이라는 덫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마당에는 여전히 공공의 이익이라는 대의가 새겨진 깃발이 나부끼지만, 공공은 개별 노조의 영역으로 축소되고, 대의는 개별 노조원들의 이익으로 전환된다. 사회적 자본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이 조직의 동력은 외부의 더 큰 희생이다.

'정치적'으로 타협한 그들의 높은 임금은 점점 패배의 토양이 된다. 우위를 선점한 개별 기업의 임금과 복지를 둘러싼 노사갈등은 노동운동을 이기주의로 분칠하는 사회적 담론을 정당화한다. 공공 영역 바깥으로 밀려난 나머지 구성원들은 기꺼이 귀족노조를 질타하는 데 동참한다. 결국 '정치적' 행위를 내버린 노동운동은 '정치적 파산'에 이른다. '정치'의 수혜자들이 앞장 서서 연대가 최선의 이익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는데, 열악한 환경에 놓인 대다수가 희생에 동참해야 할 의무가 있을리 없다.

우리는 연예가중계를 시청하듯이 포털 뉴스를 클릭하면서 한국 사회가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회사의 비민주적 행태를 조직의 생리라고 말하는 상사의 주장을 내면화한다. 그 말을 내뱉는 자와 그 말을 수긍하는 자는 '정치'가 거세된 한국의 노사관계에 길들여져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우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결단과 희생을 열망하고, 갈수록 쪼그라드는 나의 처지를 한탄한다. 사소한 실천을 무의미한 행위로 치부하는,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현대차 노사관계의 본질은 담합이다. 파업 과정에서는 높은 임금과 연대의 포기를 교환했으며, 비정규직은 고용안정과 유연성을 교환한 결과였다. 작업장에서의 낮은 생산성도 비정규직의 과도한 활용과 무관하지 않다. 담합의 리스트에는 장시간 노동이나 장시간 노동을 보장하기 위한 UPH(Unit Per Hour, 시간당 생산대수) 축소와 산별교섭 거부도 포함된다.
노사갈등은 담합을 위한 과정이었거나 담합을 포장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현대차 노사관계는 `갈등적 담합관계`에 해당된다. 담합은 합의의 바깥에 제3의 희생자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현대차의 높은 임금에는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로부터 전가된 희생이 포함돼 있다. 현대차 노동운동이 왜 실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다. 16-7)

현대차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에는 부를 창조한 대가 외에도 다른 노동자들이 만든 부를 이전한 몫이 포함돼 있다. 현대차에 근무한다는 것은 회사가 독점이윤으로 벌이는 잔치에 초대받았다는 의미다. 42)

"대기업들은 임금인상과 기업복지의 대폭적인 확대를 통해 조합원들의 의식을 실리주의적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창원대 조효래(2005) 교수의 분석이다.
...
정치적이고 연대적인 노동운동이 일반 노동자 사이에 번져 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패로서 회사는 높은 임금을 지급했다. 대신 연대지향적이고 정치적인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노조지도부에 대해서는 타협 없이 대립적인 태도를 유지했다(유형근, 2012). 45)

1998년 구조조정의 상흔(trauma)은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났다. 하나는 "있을 때 벌자"라는 명목 아래 `임금으로의 도피`로 귀결됐다면 다른 하나는 고용의 안전판으로 비정규직 사용을 용인하는 것이었다. 2000년의 `완전고용 합의서`는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가 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노조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율을 16.9% 선에서 허용하기로 약속했다. 103-4)

사내하청이란 원청으로부터 수주한 공정을 원청의 작업장 내에서 수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작업장 바깥으로 외주화하면 하청, 즉 협력업체가 된다. 현대차로서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제3자(업체)가 고용한 노동자를 도급이라는 명목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현대차에서 사내하청이 문제가 된 것은 그들이 도급인지 파견인지를 둘러싼 논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급은 합법이다.
...
파견과 도급을 구별하는 핵심은 노동자에 대한 지휘•명령권을 누가 행사하는가다. 292-3)

(미헬스에 따르면) 사회의 비이기적인 일반적 연대는 하나의 유토피아일 뿐 이해관계의 공통성이 사회적 연대의 근원이다.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다른 이해관계,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존하고 있는 한 연대는 가능하지 않다. 자본 사이의 경쟁이 노동자 사이의 경쟁으로 전환되면서 이들은 경쟁에 의해 서로 고립된다. 연대는 본질적으로 이해관계의 유사성이라는 기초 위에서 공동작업을 위한 의지와 함께 생겨난다.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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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상

케이트는 카르텔의 무자비하고 적나라한 폭력에 맞서 물러서지 않는 굳은 용기와 신념으로 무장한 마약 단속반 경찰이다. 그녀는 법과 원칙이 작동하는 세계를 수호하는 임무에 헌신한다. 그러나, 그녀가 더 많은 조직원들을 잡아들이고, 살인귀들을 쫓을수록 그들은 케이트의 세상을 잠식해 들어온다. 그녀가 '질서'를 바로잡으려 할수록, 세계는 더욱 '무질서'해지고, 이성을 잃어간다. 그녀는 그 이유가 너무도 알고 싶었기에 기꺼이 지옥 심장부의 초대를 받아들인다.

이 타락한 수렁에 영문도 모른 채 합류한 케이트는 전쟁의 주요 행위자들과 달리 애써 지켜야 할 대상이 없다. 그녀는 남편도 자식도 없는 이혼녀로서, 제발 외모 좀 꾸미고 다니라고 말하는 동료 경찰 레지가 그나마 친밀한 지인이다. 그녀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는 '사랑'이 아니라 '진실'과 '원칙'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세계가 과연 그러한가? 이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정해진 경계를 넘어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세력을 응징하는 제국, 미국이다.

케이트는 그야말로 무기력하다. 작전의 전 과정에 이방인처럼 떠돌고 무시당하며, 궁극의 세력 균형과 질서 유지에 철저히 이용되는 소품에 불과하다. 케이트는 비정상 세계와 대립하는 정상 세계의 대등한 대변자가 아니라, 본래 정상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진실의 엑스트라이다. 세계는 그녀의 소망과 무관하게 제자리로 돌아간다. 영화는 케이트의 정당성을 옹호하거나 부각시키려 애쓰지 않으며, 감독이 바라본 세계를 충실히 복원하는데 주력한다.

여기서 두 가지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세계가 불가피하게 선악이 공존-거대한 악에 선이 매달려 있는 형태의-하는 곳이라면, 그 질서의 균형점은 도대체 어디인가? 그리고 그 질서를 주관하는 자는 누가 주관하는가? 과연 맷 그레이버의 주장처럼 세계의 마약 인구 20%를 설득할 수 없다면 기존 질서를 복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은 질서의 균형점을 짚고 있는가?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해도, 균형의 조정자를 자처하는 가장 강한 폭력은 누가 관리할 수 있는가?

불안과 평온, 궁핍과 여유, 질서와 무질서의 대립과 혼재는 인간사의 불가피한 모습이다. 한 가지 모습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어디에도 없으며, 우리는 그저 양 진자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피난처를 찾아 탐조등을 비추며 방황할 뿐이다. 누구나 후아레즈 바깥의 세계를 원하지만, 세계는 후아레즈와 후아레즈 바깥이 아니라 제국과 제국의 바깥으로 구분된다. 베트남의 정글과 아프가니스탄의 사막, 소말리아의 인종 학살, 콜롬비아의 메데인은 모두 후아레즈의 과거이다.  

후아레즈는 자연발생적인 장소가 아니라 제국이 빚어낸 인공의 산물이다. 제국은 균형의 조정자를 자처하고, 무질서한 세계를 관리하지만, 그것은 제국이 자신의 영속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신념을 지닌 제국의 일원, 케이트와 맷 그레이버는 가장 강한 폭력의 숭배자가 될 수도 있고 관리자가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유동하는 경계를 부단히 일깨운다는 점에서 관리자 역할에 힘쓰는 동지이다. 무관심으로 '질서'에 편승하는 자들이 바로 제국의 숭배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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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상

영화는 시카리오의 어원을 설명하는 자막으로 출발한다. 시카리오는 이교도 로마 제국에 맞서 예루살렘 성전을 수호하는 광신적 유대인들의 분파인 젤롯당원들(Zealot)을 가리킨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궁극적 가치는 어떠한 언어로도 드러낼 수 없는 야훼의 신성함이다. 말로도, 몸짓으로도, 이미지로도 그려낼 수 없는 신의 신성함을 유한한 인간이 지상에서 조금이나마 실현하는 방식은 '오직 사랑'이며, 그들은 '오직 믿음'이 명령하는 암살로 성전을 사수한다.

늑대들의 도시 후아레스는 멕시코 국경에 자리잡은 인간 도축장이다. 마약 카르텔이 군림하는 이 도시는 당연히 법과 질서가 통용되지 않고, 살인과 생존이 일상과 완벽하게 뒤섞인 지옥이다. 체포된 카르텔의 핵심 인사를 미국으로 인계하기 위해 출동한 중무장한 멕시코 경찰차와 미 특수요원 차량이 횡단하는 거리의 풍경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고가도로에 걸려 있는 난도질당한 시체들과 길거리 낙서로 가득 찬 담벼락을 두고 공놀이를 하는 주민들의 모습)

멕시코 경찰 실비오도 '혼란'이라는 말이 부족한 이 악다구니 속에서 제나름의 몫을 챙기며 살아간다. 그의 삶의 중심은 축구를 좋아하고, 아빠와 축구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들이다. 아들이 자신의 총에 보이는 일말의 흥미를 단호히 끊어내는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아들의 평범한 일상일 것이다. 아들을 진한 애정으로 감싸는 아빠 실비오와 순찰차로 마약을 운반하는 부패 경찰 실비오는 후아레스의 표본이다. 그들은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타락한 자들이다.

그렇다면, 시카리오를 체현한 인물 알레한드로를 밀고 나아가는 동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키지 못한 사랑'이다. 그는 아내와 딸이 멕시코 카르텔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전직 검사로서, 복수를 위해 메데인(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암살자로 거듭난다. 미국은 국경을 넘어 살인을 저지르고, 마약 시장을 교란하는 멕시코 카르텔을 응징하기 위해 그와 손을 잡는다. 미국을 대변하는 특수부대 팀장 맷 그레이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질서'이다. 

사실, 냉혹한 살인 교사자들인 멕시코 카르텔의 핵심 인물들에게도 따스한 가정은 삶의 원천이다. 돈세탁 은행이 기습을 당했다는 사실을 보고받는 2인자의 저택 수영장에서는 어린 소녀들이 즐겁게 물장구를 치며 논다.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알레한드로의 총구를 맞이한 보스의 마지막 요청은 아이들을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케이트를 감시하기 위해 접근한 미국 경찰 테드 역시 전처와 딸의 신상을 까발리겠다는 협박에 수사에 협조한다.

비정한 늑대들은 각자가 품고 있는 '사랑'에 충실히 복무한다. 그러나 가장 고귀한 신성에서부터 가장 원초적인 혈육에 이르기까지 시카리오들의 '사랑'은 피비린내로 가득 찬 호수를 이룬다. 그들은 세계를 자신의 '질서' 아래 두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이 각각의 '질서'가 충돌하는 세계를 장악하는 것은 오로지 가장 강한 '폭력'이다. 가장 강한 '폭력'이 원하는 '질서'는 날카로운 총성과 축구 시합의 함성이 공존하는, 어쨌든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가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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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감정적인 열기는 수도꼭지처럼 잠가버릴 수가 없다.

적을 계속 발견해야 한다. 마음과 가슴은 소대나 분대처럼 바로 무장해제할 수 없다.

오히려 흰 증기를 뿜어내는 용광로처럼 식는 데 오래 걸린다.”

<다니엘서>, E. L. 닥터로, p.41

 


지상에 묶여 있는 육신과 천상에 떠다니는 정신의 이중적 삶을 주관하는 신의 기획은, 이성의 최종 기착지를 건설하는 산업 혁명의 쇠망치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깨져나간 자아의 번뜩이는 창조력에 심취한 인간은 세계 끝까지 자신이 건설한 물질 문명을 목도하면서, 신이 거하지 않는 천년왕국의 도래를 확신했다. 이제는 광인(狂人)의 외침으로 들리는 이 강고한 이상주의는 자신의 영지가 가까운 미래에 포탄의 굉음으로 가득 차리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방에서 우주를 사유하던 광대한 정신이 그 우주를 눈 앞에서 확인하고자 조급히 달음박질 할 때, 역사는 마치 신이 예비한 것 마냥 깊은 심연의 절벽으로 허공을 메우고 있었다. 20세기 초의 유럽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이 격차를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무오류성을 확신한 지도자들은 기꺼이 리바이어던을 작동시켰고, 지도자의 무오류성에 열광한 대중은 기계 안으로 환호하며 들어갔다. 신이 그저 관망하는 세계에서, 강철의 바벨탑 꼭대기에 오른 무수한 이카루스들이 추락하고 있었다.


자유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더불어 파산 선고를 받았지만, 자유주의자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시대(Belle Époque)를 향한 향수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조화로운 이익으로 변모시켜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자유방임주의와 인간의 양심과 이성의 소리에 귀 기울여 국제정치 세계를 조율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성공을 믿었다. 그러나 필멸의 신은 자신에게 강제력을 발휘하는 상위 권위체를 반기지 않았기에, ‘도덕에 호소하는 방패를 민족이라는 창으로 뚫어버렸다.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아 지식과 논리로 무장한 엘리트들은 대중의 탄생을 몹시도 경계했지만, 오만한 선택을 거듭하면서 세계 공황의 폐허에서 부활한 민족주의의 파국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근대를 끝장낸 존재의 이행을 가장 열정적으로 수행한 이들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인적 자원으로서의 개인(Menschen Material)’을 기꺼이 활용한 체제, 곧 파시즘이다.

 

근대 국가들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한 제1차 세계대전은 엄밀히 말해, “동원된전쟁이 아니었다. 19세기 내내 유럽 각국은 풍요의 전제조건이 자아를 팽창하고 타자를 억압하는 과정의 연속체라는 명제를 꾸준히 실천하는 동시에 국지전을 통해 국가 간의 연합을 시험하고 강화해 나갔다. 자신과 타인을 경계 짓는 일에 익숙해진 시민은 국가의식을 내면화한 국민으로 거듭났고, 의심과 약속으로 위태롭게 엮어놓은 국가들의 동맹이 끊어지자 결연한 투쟁심과 환희에 가득 차 전장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무자비한 전쟁은 기대와 달리 승전의 희망을 들불처럼 집어삼켰고 피로 새긴 파국의 묘비(墓碑)를 도처에 세웠다. 무덤으로 변한 참호에 느닷없이 찾아온 종전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실패의 훈장에 불과했고, 싸울 기력이 남아 있던 패전국의 군인들은 평화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전우애로 위장한 복수심을 간직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베르사유 조약이 각국에 수립한 자유주의 정치 체제의 핵심 기구(apparatus)인 의회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전비 채무와 국가간 무역망 파괴, 사회주의의 도전과 인종주의 등 만연한 경제적, 사회적 모순과 이념 대립에 무기력한 처사로 일관했다. 자유주의 체제는 다원성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일에 지나치게 관대했고, 권리에 도취된 정당들은 소통보다 대립에 연연하면서 정치 불안을 조장했다.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경험과 확신이 없던 일반 대중들 역시 당면한 문제를 처리하는 데 미숙하기만 한 제도를 외면했다. 이탈리아의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전간기의 민주주의가 굶주릴 자유로 판명되자, 대중의 불만을 피해 우파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중립지대로 물러났다. 엘리트 집단은 권력을 위협하는 사회주의의 파괴력을 우려한 나머지, 무신론을 증오하는 가톨릭 세력과 손잡고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으로 파시즘을 호출했다. 그렇게 무솔리니는 검은 셔츠단의 행진에 맞춰 로마에 무혈입성(1922.10)한 후에, 우파의 양보와 지지를 받아 의회에서 지배권을 확보했다.


이념 대립과 경제적 어려움이 한층 심했던 독일에서 무솔리니의 놀라운 성취에 주목한 이가 바로 히틀러였다. 그는 승전국의 가혹한 처사와 대공황이라는 부당한 운명이 어깨를 짓누르자 터질듯한 분노에 휩싸여 광장에 모인 군중을 현란한 연설 솜씨로 매혹시켰다. 군중은 무책임과 무능을 일소할 수 있는 체제를 원했고, 히틀러는 그들의 염원을 돌격대의 군사주의와 의회 입성의 민주주의에 적극 활용했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독일 정계의 우파는 히틀러를 통제 가능한 사냥개로 치부했지만, 히틀러는 총리 자리에 앉자마자 제국의회를 파괴하고 국가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나치 독일은 정점에 홀로 선 금발의 야수의 의중을 헤아리려는 추종자들로 채워졌다.


이탈리아 파시즘이 교회와 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신을 권위 있는 가장으로 자리매김한 반면, 나치 독일은 오로지 인민의 의지에 의존하면서 사법과 행정 체계를 전부 파괴하는 급진성을 내보였다. 그러나 파시즘은 두 나라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족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열기는 전간기 유럽 정치권의 공통 화제였으며,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부 유럽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그 지역을 러시아와 독일의 패권 기도를 저지하는 완충 지대로 삼고자 했다. 국가를 유기체로 간주하고, 우월한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관리한다는 생각은 정치적 성향을 가리지 않고 보편화된 상식이었다. 더구나 대중들은 의회 민주주의의 혼란이 아니라 파시즘의 열광적인 집회에서 생생하고 의미 있는 정치 참여를 경험했다. 하나의 집단, 하나의 민족으로 혼연일체가 된 개인들은 전체 안에서 해방감을 만끽했고, ‘자유인이 되었다. 파시즘은 대중을 선동했고, 대중은 파시즘을 선택했다.


인종에 기반한 민족(Volk) 국가를 필두로 대륙 전체를 순수한 단일체로 정화하고자 했던 제3제국은 신성로마제국의 에피고넨이자, 예외로 체계를, 파편으로 중핵을, 지도자의 카리스마로 인민의 의지를 한데 엮어놓은 히틀러 국가였다. 나치즘은 결코 잠재울 수 없는 야생의 본성이 기술 문명의 정점인 국가 기구의 중심부로 돌진해 들어간 통제된 야수성의 발현이다. 이때의 통제는 순화나 억제가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향해 결집된 힘을 극대화하는 수단을 뜻한다. 그러나 순수한 이념을 승화시켜 야수성을 통제하고자 한 다른 방식의 시도가 있었으니, 그것은 가장 거대하고 가장 낙후된 제국, 러시아에서 발원한 볼셰비즘이다. 인종의 지도자(Führer)와 계급의 영도자(Vozhd)의 핏빛 무대가 마련되고 있었다.

 


니콜라이 2세가 퇴임하고 두마 의회가 해산(1917.2)됨으로써 러시아 군주정이 마감되자, 혁명 세력은 중간 계급과의 연대와 점진적인 개혁 노선을 주장하는 마르토프의 멘셰비키와 전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힌 케렌스키 임시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할 것을 주장하는 레닌의 볼셰비키로 나뉘었다. 러시아 자유주의자들이 유럽 자유주의자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면서 헌법상의 문구에 집착하고 있을 때, 볼셰비키는 노동자들을 소비에트로 결집시키고 농민들을 평화 협정과 토지 소유로 유혹하면서 제국을 붉게 물들여갔다. 레닌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인가?”라는 말로 요약되는 4월 테제를 천명하여 권력 장악의 날을 인위적으로 조성했고, 마침내 10 25일 적위대가 동부 전선 배치를 거부하는 페트로그라드 수비대에 침투하여 주요 군사시설을 점령하면서 혁명의 깃발을 올렸다.


마르크스가 과학적, 역사적 필연성을 부여한 천년왕국을 최초로 실현했다는 자부심에 가득 찬 10월 혁명의 첫 세대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처럼 사회주의가 악을 소멸하고, 불행과 억압, 불평등과 부정이 없는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살아남아야 한다는 최우선 과제가 믿음을 온전한 현실로 정착시키기 위한 선결조건이었다. 혁명 정부가 독일과 강화조약을 맺고, 연합국들의 전후 유럽 분할 구상을 담은 비밀조약을 폭로하자 광활한 제국은 혁명의 반대 세력과 그들을 지원하는 외부 세력의 동맹으로 전운에 휩싸인다. 레닌이 국제주의에 호소하면서 유럽 각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촉구했지만, 윌슨이 꺼내든 민족자결주의의 매혹적인 음율은 러시아 혁명이 세계 혁명으로 전환되리라는 희망을 동토(凍土)에 꽁꽁 묶어두었다. 이념을 성취한 러시아 역시 하나의 국가에 불과했으며, 절박한 생존의 기로에 처한 그들이 세계 혁명에 완전히 헌신하는 것은 불가능한 임무였다.


내전은 혁명이 맞이한 1차 시험이었다. 먼저 사회혁명당이 세운 코무치(Komuch) 정부(1918.6)가 체코 출신의 전쟁 포로들을 끌어들여 볼가강 유역을 점령하고 혁명에 반기를 들었다. 11월에는 콜차크 제독이 영국의 지원 속에 백군(白軍)을 조직하여 우랄 산맥의 대도시 페름을 점령했고, 여기에 프랑스가 지원하는 안톤 데니킨의 의용군이 합류한다. 백군의 공세에 맞서 적군(赤軍)을 이끈 것은 역설적으로 국가 존립이라는 대의에 복무한 애국적인 군 장교들이었다. 참전 용사들은 전쟁이 사물의 내재적 질서이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역사 발전의 주요 단계라는 신념 아래 국가 수호에 나섰다. 볼셰비키는 국민의 생명을 징발하여 국가의 생존을 도모하는 전시 공산주의체제로 전환하여, 경제 붕괴를 감수하고 국가의 역량을 전선으로 모았다. 백군은 한 때 차리친과 하리코프, 키예프를 점령하면서 위세를 떨쳤지만 병력과 장비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농민들을 회유하라는 서방의 권고를 무시하다가 농민 빨치산인 녹색 군대의 게릴라 전법에 큰 피해를 입어 점차 소멸되고 만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향한 중단 없는 혁명이 재개되었다. 소련은 코민테른을 결성(1919.3)하여 세계 혁명을 재가동하려 했지만 야심은 오래지 않아 회의로 뒤바뀐다. 혁명의 국제화를 가로막은 최대의 걸림돌은 자신의 국가 이해와 충돌하지 않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소련 자신이었다. 트로츠키도 노동조합 논쟁(1920.11)에서 노동 운동의 국가화를 통해 계급 전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노동자의 독자성을 강조하던 기존 주장을 폐기했다. 소련이 혁명 정신을 부인하듯이 신경제정책(NEP)을 도입(1921)하자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사회민주주의로 발길을 돌려나갔다. 스탈린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분쟁을 이용하여 국가를 유지하기보다는 소련 자체를 강국으로 만드는 대업에 착수한다. 내전기에 반()혁명 세력을 타격하고 서구의 위협에 맞서던 혁명 의지는 군수 산업화와 농촌 집단화를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되었고, ‘영구 혁명은 허공을 떠도는 반혁명 유령과의 대결 구호로 전락했다. 자코뱅의 열정을 찬양하던 혁명은 자코뱅의 공포정치를 모방하고 심지어 혁신했다. 시민의 인간성 회복을 다짐하던 전위 세력은 관료제로 옷을 갈아입고 신민을 재생산하라는 명령을 주저 없이 공포(公布)했다. 혁명의 연속성은 국가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19세기 이후 함선과 대포의 그늘에 잠긴 아시아는 서구의 압도적인 힘에 대응하는 전략을 모색한 결과, 전통을 복원하여 예전의 강성함을 되찾아야 한다는 반동적 신념과 기존의 문화적, 사회적 토대 위에 서구의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절충주의, 그리고 옛 것을 철저히 배격하고 서구화로 거듭나는 것만이 생존을 담보한다는 급진적 세속주의가 혼재된 상태였다. 아직 잃을 것이 많았던 초기에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이나 동도서기(東道西器)와 같은 온건한 개혁 조치가 호응을 얻었지만, 미흡한 진전을 질타하는 구체제의 반격과 제국주의의 침탈이 강화되자 점차 적자생존의 세계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한 권위주의 체제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아시아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는데, 이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약소국을 응원하는 자유민주주의 선언으로 해석하고, 급속한 산업화 정책에 성공한 소련의 사회주의를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봤으며, ‘국민적 민족공동체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킨 파시즘의 일체화를 옹호하기도 했다. 유럽이 혁명과 민족을 전선의 양쪽에 배치하여 힘의 균형을 도모하는 동안, 아시아는 근대의 모든 이념을 저항 운동의 촉매로 활용하는 대장정에 오른 것이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 열강의 대열에 합류한 일본은 그 위상에 맞게 국가 정책을 안위에서 확장으로선회하면서, 표면적으로 자신을 서구 제국주의의 위선을 파헤치는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단기간에 서구의 기술을 따라잡은 메이지 유신의 효율성은 정신을 개조하는 작업마저 압축적으로 달성해냈으며, 그 중심에는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일본의 이익이 곧 아시아의 이익이라는 구호는, 태평양 전쟁의 패배로 빛이 바래질 때까지 대동아공영권팔굉일우(八紘一宇)’의 정신으로 변모하면서 일본의 팽창 전략을 정당화했다. 아시아를 해방시키고, 세계를 천황의 발 아래 두기 위한 첫 걸음은 만주 정복이었다. 일본은 만주와 대륙의 역사적 연관성을 부정하면서 만주(Manchuria)’라는 독립 명칭을 고집했고, 말을 널리 통용시킨 후에 해당 지역을 실제로 점령하는 전략을 구사하여 대륙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다. 장제스는 만주사변(1931.9)을 계기로 일본의 야욕과 위세를 가슴 속에 확실히 각인하면서, 강성한 일본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인내와 외교, 지구전과 무저항주의를 고수하고 일본과의 분쟁을 국제무대로 끌고 가 해결하는 전술을 염두에 두었다.


노구교 사건(1937.7)에 말려든 장제스가 상하이로 진격하는 실책을 범하자, 일본은 곧바로 15개 사단을 증파하여 파죽지세로 동부지역을 점령해 나갔다. 일본인들은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된 중일전쟁이 중일 국교를 저해하는 잔존 세력의 토벌전이자, 기존 조약에 명시된 일본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보상 행위라는 정부의 선전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중국 공산당은 장제스의 안내양외(安內攘外) 정책이 민족 상잔을 야기하여 일본을 이롭게 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즉각적인 국공 내전 종결과 공동 항일 투쟁을 외쳤다. 일본 군부는 자력으로 중국의 숨통을 끊을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대륙은 지칠 정도로 넓었고, 국공 합작이 내부 분열을 봉합했으며, 열강들의 이해는 제각각이었다. 일본과 독일과의 우호 관계 수립은 소련의 대일 강경론과 영미 해군의 공동 전략을 초래하여 중일전쟁이 국제 분쟁으로 확대되는 단초를 제공한다. 폭주하는 야수성에 사로잡힌 일본이 태평양으로 야심을 확대하자 미국은 대일 금수조치를 취하고 미국 내 일본 자산을 동결하면서, 장제스 정부에 대한 군사 원조에 나섰다.


천황의 군대는 죽음 앞에서도 승리의 찬가를 올리며 진군했지만, 석유가 떨어진 군함과 탱크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일본의 패전이 확실시되자 장제스는 공산당과의 결전에 조급하게 재돌입한다. 그러나 일본과의 전쟁 중에도 무자비한 강제 노동과 식량 공출을 벌이고, 마구잡이로 징집한 군인들이 전투에 나서기도 전에 죽는 일이 속출하자, 민심은 국민당에 등을 돌린 지 오래였다. 이와 반대로 공산당은 국공합작 기간 동안 토지몰수를 철회하는 대신 소작료를 인하하고 등급화된 과세 제도를 도입하여 빈곤층의 토지 소유를 확대하면서 민심을 장악해갔다. 아울러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 빈궁한 현실을 몸소 체험하게 하고, ‘보갑 상호책임제같은 집단 통제 장치를 작동시켜 내부 결속을 놓치지 않았다. 국민정부의 불행은 상대가 외세가 아닌 같은 민족이라는 점과 폐허로 변한 국가를 재건하려는 혁명 의식은 물론 인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정치적 급진성까지, 모든 저항 수단을 공산당에게 넘겨준 오만함의 결과였다. 만주에서 내려온 일본을 물리치고 대세를 장악했던 장제스는 만주로 올라가서 항쟁을 벌인 공산당에게 패했다. 그에게 만주는 모든 것을 주었다가 모든 것을 가져간 독립지역이었다. 마침내 내전을 승리로 이끈 공산당은 천안문에 입성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1949.10)한다.

 


일본은 옥쇄(玉碎, 쿄쿠사이)와 만세(萬世, 반자이) 정신으로 압도적인 물량의 우위를 점한 미국에 맞섰지만, 전쟁의 승패는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일본인들이 예정된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는 견디기 힘듦을 견디고 참을 수 없음을 참아라는 천황의 방송 문구에 집약되어 있다. 일본은 전쟁에 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전쟁이 끝난 세계로 이동한 것이며, 그곳은 여전히 천황이 지배하는 왕토였다. 천황은 신민들에게 자신의 도덕성을 본()으로 삼아 절대 긍정의 생활 태도를 내면화하라고 읊조렸으며, 거대한 전쟁을 견뎌낸 만큼 전후의 사소한 굴욕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주문(呪文)을 되뇌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열도는 더 이상 일본인들의 땅이 아니었다. 미국의 야심가들은 자신 앞에 놓인 백지(白紙, tabula rasa)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리라는 흥분에 도취되어 있었다. ‘푸른 눈의 메시아가 점령한 폐허 속에서 생존 본능이 번성하고 찰나의 쾌락을 추구하는 도피 심리가 타올랐다. 지배와 피지배의 모순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도 혁명적 반()문화를 칭송하는 입장과 현실참여를 좌절시키려는 반()혁명적 음모라는 입장이 공존했다. 미군정은 국가에 대립하는 개인주의정신을 배양하고자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세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고통을 위로 받기 원하고 타인의 관심을 바라는 공동체 안의 개인주의이자 상위 권위체에 복속된 개인들이었다. 무엇보다 미군정의 제일 목표는 일본의 전쟁 의지를 영원히 제거하여 군국주의의 재등장을 막고, 공산주의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방파제로서의 일본 재건이었다. 그 임무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운 발언권과 세력 갈등이 인정되었지만, 일본인들 스스로 습득하는 민주주의의 혼란상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맞물려 미군정의 인내심을 가혹하게 시험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은 이념이 이상을, 지시가 갈등을 대체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가부장으로 변모한 미군정은 자신의 열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지식인 관료들과 협력하여, 천황제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신()헌법을 제정한다. “입헌군주제와 절대 평화의 휘광 아래 모인 일본인들은 희생(犧牲, 기세이)의 은총을 받아, 자신을 얽어 매던 전범의 사슬을 벗어 던지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희생자의 가면을 집어 들었다.


한편, 한반도는 벼락처럼 열린 해방 공간을 누가 차지하는가를 두고 좌우파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 현준혁이 해방 직후인 9 3일에 암살된 사건은, 해방 후 한반도의 정치 지형이 테러의 칼날 아래 재편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했다. 신탁 통치 반대 운동(1946)은 좌우파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사건으로서, ‘즉시 독립에 사활을 건 민족주의자들과 달리 국제 결정을 존중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악수(惡手)는 식민지 친일 관료들을 소생시켰고, 모든 정당성을 반공 아래 무릎 꿇렸다. 임정의 헤게모니를 위해 반탁운동을 주도한 김구가 철저한 반공주의자 이승만에게 막혀있는 동안, 미소공위를 지지하고 통일 정부 수립에 매진한 여운형과 한민당을 이끌던 장덕수가 차례로 암살(1947)된다. 남한 단독 선거를 전후하여 발생한 제주 4.3 항쟁과 여순 반란 사건(1948.10)은 제5열을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을 제공했고, 대한청년단과 학도호국단 같은 광범위한 하부조직으로 뒷받침된 병영 국가의 길을 활짝 열었다. 마침내 상징적으로나마 이승만의 대항마 역할을 하던 김구마저 암살(1949)되자, 한반도에는 꼭두각시괴뢰도당이라는 증오의 언어만이 남아 왕국의 절반을 되찾기 위한 전운이 피어올랐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 전진기지로 재무장할 것을 결의한다.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정세 변화에 주시하면서 정치 개혁을 부르짖는 지식인과 군대 재건 및 천황 숭배에만 골몰하는 우익을 제치고 권력을 공고히 한다. 그는 경제 부흥을 민주주의 건설에 앞선 지상 과제로 내세우고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1951.9)을 맺어 일본을 미국의 집단안보체제에 편입시킨다. 미국이 수립한 평화 헌법을 무기로 경무장에 치중하여 국방비를 절감하고 경제 재건에 몰두한 요시다 내각은, 미국과의 연대가 안겨준 선진 기술 습득 기회와 세계 최대 시장 개방이라는 선물을 마음껏 누리면서 국제 무역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전쟁 특수로 재건에 성공한 일본은 미군의 한반도 파병으로 생긴 치안 공백을 메운다는 구실로 창설, 운용되던 경찰예비대를 자위대법의 개정과 함께 자위대로 개편(1954.7)하면서,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를 향해 비상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국가 위의 국가인 미국의 용인과 지원을 발판 삼아 수립된 국제 질서의 한 축이었다.

 


우리 인간들은 너무 교만했어. 피투성이 과거를 이미 극복했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이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는 현재를 성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p.415

 

중세가 신앙으로 빚은 연금술의 시대였다면, 근대는 신념으로 빚은 연금술의 시대였다. 야만을 문명으로, 인간을 기계로, 사적 자유를 공적 통제로 전환하려는 이 모든 시도의 주체는 바로 국가였다. 국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주도하고도 살아남았으며, 전장의 상흔을 간직한 채 더 강력한 주권자로 돌아와 전후의 세계 질서를 조정했다. 한계 없는 자유가 파괴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개인들은 광장을 저버리고, 무관심의 방벽에 둘러싸인 생활 터전의 안락함을 즐겼다. 철의 장막을 마주한 국가들은 국가 전복이라는 경계선 안에서 벌어지는 돌출 행동을 포용하면서, 매혹적인 상품을 쏟아내고 든든한 복지 정책을 펼쳐 보여 자신이 오래된 평화의 적임자임을 증명해냈다. 국가 밖에서 공동체를 꿈꾸던 영혼의 해방은 더 이상 찾는 이 없는 퇴락한 신전의 메아리로 전락했다.


언어로 지은 집은 실체가 없으며, 무오류성을 가장하기 때문에 현실이 쇠퇴할 때 비로소 그 허구가 폭로된다. 언어는 인간의 입을 빌어 세계에 현현하며, 오류로 점철된 유한자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진리의 빛으로 자신을 위장한다. 국가야말로 가장 굳건한 언어의 구조물이며, 무오류의 화신이다. 현재에 고정된 이성은 비이성적 국가의 귀환을 비현실적인 상상으로 치부하지만, 국가는 실패의 폐허에서 부활하곤 한다. 가려진 국가의 야수성을 예감하는 통찰은 망각의 문을 두드리는 과거의 성찰에서 비롯한다. 이 미세한 균열은 실체와 이름의 엇갈린 위계 질서에 의문을 품는 사소한 저항이며, 붕괴의 조짐이 아니라, 전도(顚倒)된 세계의 추락을 경고하는 다른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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