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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
박태주 지음 / 매일노동뉴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고용불안과 임금에 대한 높은 집착, 그리고 그 표현으로서의 파업은 현대차 노사관계의 동학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변수들이다." p.15
"Cheese in the Trap"이라는 웹툰 & 드라마의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현대자동차의 노사관계는 "Salary in the Trap"이다. 아니, 저자의 말처럼 한국 노사관계가 그러하다. "송곳"이라는 웹툰 & 드라마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시시한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회사 노조가 정치 파업이나 연대 투쟁에 나서기보다는 우리의 임금 인상과 복지 향상에 힘써주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에서 노조는 '정치적' 투쟁을 통해 단결권을 쟁취했지만, 단결권이 보장된 노조는 더 이상 '정치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공공의 이익에 헌신하거나 최소한 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노조는 균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협상권을 확보하는 순간 노조원들의 공통 희망이라는 덫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마당에는 여전히 공공의 이익이라는 대의가 새겨진 깃발이 나부끼지만, 공공은 개별 노조의 영역으로 축소되고, 대의는 개별 노조원들의 이익으로 전환된다. 사회적 자본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이 조직의 동력은 외부의 더 큰 희생이다.
'정치적'으로 타협한 그들의 높은 임금은 점점 패배의 토양이 된다. 우위를 선점한 개별 기업의 임금과 복지를 둘러싼 노사갈등은 노동운동을 이기주의로 분칠하는 사회적 담론을 정당화한다. 공공 영역 바깥으로 밀려난 나머지 구성원들은 기꺼이 귀족노조를 질타하는 데 동참한다. 결국 '정치적' 행위를 내버린 노동운동은 '정치적 파산'에 이른다. '정치'의 수혜자들이 앞장 서서 연대가 최선의 이익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는데, 열악한 환경에 놓인 대다수가 희생에 동참해야 할 의무가 있을리 없다.
우리는 연예가중계를 시청하듯이 포털 뉴스를 클릭하면서 한국 사회가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회사의 비민주적 행태를 조직의 생리라고 말하는 상사의 주장을 내면화한다. 그 말을 내뱉는 자와 그 말을 수긍하는 자는 '정치'가 거세된 한국의 노사관계에 길들여져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우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결단과 희생을 열망하고, 갈수록 쪼그라드는 나의 처지를 한탄한다. 사소한 실천을 무의미한 행위로 치부하는,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현대차 노사관계의 본질은 담합이다. 파업 과정에서는 높은 임금과 연대의 포기를 교환했으며, 비정규직은 고용안정과 유연성을 교환한 결과였다. 작업장에서의 낮은 생산성도 비정규직의 과도한 활용과 무관하지 않다. 담합의 리스트에는 장시간 노동이나 장시간 노동을 보장하기 위한 UPH(Unit Per Hour, 시간당 생산대수) 축소와 산별교섭 거부도 포함된다. 노사갈등은 담합을 위한 과정이었거나 담합을 포장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현대차 노사관계는 `갈등적 담합관계`에 해당된다. 담합은 합의의 바깥에 제3의 희생자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현대차의 높은 임금에는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로부터 전가된 희생이 포함돼 있다. 현대차 노동운동이 왜 실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다. 16-7)
현대차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에는 부를 창조한 대가 외에도 다른 노동자들이 만든 부를 이전한 몫이 포함돼 있다. 현대차에 근무한다는 것은 회사가 독점이윤으로 벌이는 잔치에 초대받았다는 의미다. 42)
"대기업들은 임금인상과 기업복지의 대폭적인 확대를 통해 조합원들의 의식을 실리주의적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창원대 조효래(2005) 교수의 분석이다. ... 정치적이고 연대적인 노동운동이 일반 노동자 사이에 번져 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패로서 회사는 높은 임금을 지급했다. 대신 연대지향적이고 정치적인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노조지도부에 대해서는 타협 없이 대립적인 태도를 유지했다(유형근, 2012). 45)
1998년 구조조정의 상흔(trauma)은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났다. 하나는 "있을 때 벌자"라는 명목 아래 `임금으로의 도피`로 귀결됐다면 다른 하나는 고용의 안전판으로 비정규직 사용을 용인하는 것이었다. 2000년의 `완전고용 합의서`는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가 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노조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율을 16.9% 선에서 허용하기로 약속했다. 103-4)
사내하청이란 원청으로부터 수주한 공정을 원청의 작업장 내에서 수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작업장 바깥으로 외주화하면 하청, 즉 협력업체가 된다. 현대차로서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제3자(업체)가 고용한 노동자를 도급이라는 명목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현대차에서 사내하청이 문제가 된 것은 그들이 도급인지 파견인지를 둘러싼 논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급은 합법이다. ... 파견과 도급을 구별하는 핵심은 노동자에 대한 지휘•명령권을 누가 행사하는가다. 292-3)
(미헬스에 따르면) 사회의 비이기적인 일반적 연대는 하나의 유토피아일 뿐 이해관계의 공통성이 사회적 연대의 근원이다.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다른 이해관계,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존하고 있는 한 연대는 가능하지 않다. 자본 사이의 경쟁이 노동자 사이의 경쟁으로 전환되면서 이들은 경쟁에 의해 서로 고립된다. 연대는 본질적으로 이해관계의 유사성이라는 기초 위에서 공동작업을 위한 의지와 함께 생겨난다.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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