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단상
영화는 시카리오의 어원을 설명하는 자막으로 출발한다. 시카리오는 이교도 로마 제국에 맞서 예루살렘 성전을 수호하는 광신적 유대인들의 분파인 젤롯당원들(Zealot)을 가리킨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궁극적 가치는 어떠한 언어로도 드러낼 수 없는 야훼의 신성함이다. 말로도, 몸짓으로도, 이미지로도 그려낼 수 없는 신의 신성함을 유한한 인간이 지상에서 조금이나마 실현하는 방식은 '오직 사랑'이며, 그들은 '오직 믿음'이 명령하는 암살로 성전을 사수한다.
늑대들의 도시 후아레스는 멕시코 국경에 자리잡은 인간 도축장이다. 마약 카르텔이 군림하는 이 도시는 당연히 법과 질서가 통용되지 않고, 살인과 생존이 일상과 완벽하게 뒤섞인 지옥이다. 체포된 카르텔의 핵심 인사를 미국으로 인계하기 위해 출동한 중무장한 멕시코 경찰차와 미 특수요원 차량이 횡단하는 거리의 풍경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고가도로에 걸려 있는 난도질당한 시체들과 길거리 낙서로 가득 찬 담벼락을 두고 공놀이를 하는 주민들의 모습)
멕시코 경찰 실비오도 '혼란'이라는 말이 부족한 이 악다구니 속에서 제나름의 몫을 챙기며 살아간다. 그의 삶의 중심은 축구를 좋아하고, 아빠와 축구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들이다. 아들이 자신의 총에 보이는 일말의 흥미를 단호히 끊어내는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아들의 평범한 일상일 것이다. 아들을 진한 애정으로 감싸는 아빠 실비오와 순찰차로 마약을 운반하는 부패 경찰 실비오는 후아레스의 표본이다. 그들은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타락한 자들이다.
그렇다면, 시카리오를 체현한 인물 알레한드로를 밀고 나아가는 동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키지 못한 사랑'이다. 그는 아내와 딸이 멕시코 카르텔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전직 검사로서, 복수를 위해 메데인(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암살자로 거듭난다. 미국은 국경을 넘어 살인을 저지르고, 마약 시장을 교란하는 멕시코 카르텔을 응징하기 위해 그와 손을 잡는다. 미국을 대변하는 특수부대 팀장 맷 그레이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질서'이다.
사실, 냉혹한 살인 교사자들인 멕시코 카르텔의 핵심 인물들에게도 따스한 가정은 삶의 원천이다. 돈세탁 은행이 기습을 당했다는 사실을 보고받는 2인자의 저택 수영장에서는 어린 소녀들이 즐겁게 물장구를 치며 논다.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알레한드로의 총구를 맞이한 보스의 마지막 요청은 아이들을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케이트를 감시하기 위해 접근한 미국 경찰 테드 역시 전처와 딸의 신상을 까발리겠다는 협박에 수사에 협조한다.
비정한 늑대들은 각자가 품고 있는 '사랑'에 충실히 복무한다. 그러나 가장 고귀한 신성에서부터 가장 원초적인 혈육에 이르기까지 시카리오들의 '사랑'은 피비린내로 가득 찬 호수를 이룬다. 그들은 세계를 자신의 '질서' 아래 두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이 각각의 '질서'가 충돌하는 세계를 장악하는 것은 오로지 가장 강한 '폭력'이다. 가장 강한 '폭력'이 원하는 '질서'는 날카로운 총성과 축구 시합의 함성이 공존하는, 어쨌든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가는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