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반양장) - 간략한 역사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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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관찰되는 안정 조건의 하나는 "상위 계급들의 경제적 힘이 제약되면서, 경제적 파이의 훨씬 더 많은 몫을 노동자들이 갖게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소득자의 상위 1퍼센트가 갖는 국가 소득의 몫이 전쟁 전 17퍼센트에서 전쟁 직후에는 8퍼센트 이하로 떨어졌으며 거의 30년 동안 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성장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이러한 제약이 문제되지 않았다. 파이는 계속 커져갔으므로 그 파이의 안정적인 몫을 챙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1970년대 성장이 붕괴되어 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가 되고 매우 낮은 배당 및 이윤만을 받게 되는 생활이 일반화되자, 세계 곳곳의 상위 계급들은 위협을 느꼈다." 자산 가치(주식, 부동산, 저축) 하락으로, 20세기 전반에 걸쳐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상위 1퍼센트의 통제 권력은 급속히 약화됐고, "상위 계급들은 정치적·경제적 파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해야만 했다."(31-3)


"1979년 10월 카터가 대통령이었을 때 연방준비은행장이었던 볼커는 미국 통화정책에 엄중한 변화를 추진했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적 국가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뉴딜 원칙들에 대한 집착─이는 기본 목표로서 완전고용과 결부된 케인스적 종합재정통화정책을 의미함─은 폐기되고, 고용에 대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든지 간에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 선호되었다. 1970년대 두자릿수의 인플레이션 파도가 일었던 시기에 마이너스였던 실질이자율은 연방준비은행의 지시에 의해 플러스로 변했다. 명목 이자율은 밤새 인상되어, 그 후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1981년 7월에는 20퍼센트에 가깝도록 뛰어올랐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공장을 텅 비게 하고 노조를 와해시켰으며 채무국들을 파산의 고비로 몰고 갔던 깊고 오래된 경기후퇴와 연이은 긴 구조조정기"가 시작되었다."(41)


볼커의 통화주의 정책을 계승한 레이건은 다음 단계로 노동권력에 대한 전면 공격에 나섰다. 1981년 항공관제사 노조PATCO의 파업 분쇄는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PATCO는 일반적 노조 이상의 것이었다. 숙련된 전문직 협회 성격을 가진 백인 노조였고, 따라서 노동계급이라기보다 중산층 조합주의의 징표였다. (PATCO의 좌절이) 국경을 가로질러 노동 조건에 미친 효과는 극적이었다. 이 점은 1980년대 빈곤선과 동등한 수준이었던 연방 최저임금이 1990년에는 그 수준의 3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는 사실에서 가장 잘 파악될 수 있다. 그 이후 실질임금 수준의 지속적 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43) 노동 권력을 제압하고 나자, 석유파동으로 쌓인 오일머니의 유입과 미국이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벌인 은밀한 폭력과 체제 길들이기 속에서 뉴욕 투자은행들을 통해 재순환된 유휴 기금들은 세계 전역에 파급되었다.


"1973년 이전에 미국의 해외투자 대부분은 주로 유럽이나 남아메리카에서 원료 자원(석유, 광물, 농업 생산물)의 활용이나 또는 특정한 시장(원거리 통신, 자동차 등)의 육성과 직접 관련된 것들이었다. 뉴욕의 투자은행들은 언제나 국제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했지만, 1973년 이후에는 (외국 정부들에 대한 자본 대출에 좀 더 초점을 두기는 했지만) 그런 성향을 훨씬 더 많이 보였다. 이 점은 국제 신용 및 금융 시장의 자유화를 필요로 했으며, 미국 정부는 1970년대 동안 이 전략을 세계적으로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출에 목말랐던 개발도상국들은 뉴욕 은행가들에게 유리한 이자율인데도 많이 빌리도록 장려되었다. 그러나 채무는 미국 달러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국 이자율이 급등할 때는 물론 아주 조금 인상되는 경우에도 취약한 국가들은 쉽게 채무불이행으로 내몰렸다. 이는 뉴욕 투자은행들을 심각한 손실에 노출시키는 위험 요소이기도 했다."(47)


"자유주의적 관행은 잘못된 투자 결정에 의해 발생하는 손실을 대출자가 떠안게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관행은 현지 주민들의 생계나 복지가 어떻게 되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용자가 부채 지불의 비용을 떠맡도록 국가나 국제적 권력들에 의해 강제된다."(48) 전세계적 교환 관계를 금융화한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다른 모든 영역들과 국가 장치는 물론, 마틴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금융의 장악을 심화시켰다. 이는 또한 세계적 교환관계에 가속적인 변동을 유발했다. 의심할 바 없이 생산으로부터 금융의 세계로 권력 이행이 있었다. 이제 제조 능력에서의 이익이 필수적으로 1인당 소득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게 된 반면, 금융 서비스에의 집중은 분명 소득의 증가를 의미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금융 제도의 지원과 금융시스템의 보전은 신자유주의 국가들의 집합체(G7처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로 구성된 집단)의 핵심적 관심사항이 되었다."(52)


칠레나 아르헨티나에서 국가 폭력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는 주요 수단이었다면 "1979년 이후 대처와 레이건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혁명은 민주적 수단을 통해 이뤄져야만 했다. 이처럼 중대한 이행이 가능하려면, 선거에서 이길 정도로 충분히 큰 범위에 걸친 정치적 동의가 사전에 구축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람시가 ('공동으로 보유되는 지각'으로 정의하는) '상식(common sense)'이 전형적으로 동의의 기반을 이룬다." 당대 이슈를 비판적으로 고려하면서 구축되는 '양식(good sense)'과 달리 상식은 "문화적 편견하에서 실제 문제를 중대하게 오도하고, 모호하게 하며, 가장할 수도 있다. (신이나 국가에 대한 믿음, 또는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에 관한 견해와 같은) 문화적·전통적 가치와 (공산주의자, 이민자, 이방인, 또는 '타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현실을 숨기기 위해 동원될 수 있다."(59-60) '개인적 자유'라는 명분은 대중 기반에 호소함으로써 계급 권력을 회복하려는 본래 의도를 감추는 데 성공했다.


"개인의 자유가 신성불가침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정치적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습곡으로 편입되기 쉽다. 가령 1968년의 세계적인 정치적 격변은 좀 더 위대한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려는 소망에 의해 크게 굴절되었다." 개인적 자유를 근본적으로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수사는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해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다양한 사회 세력들을 자유지상주의, 정체성의 정치, 다문화주의, 그리고 자기중심적 소비자주의로 분할하는 힘을 갖고 있다."(61-2) 신자유주의화는 "차별화된 소비주의와 개인적 자유지상주의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시장 기반적 대중문화의 구축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요청했다. 신자유주의화는 (새로운) 문화적 충격, 즉 오랫동안 날개 밑에 숨어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커져서 문화적으로나 지성적으로 지배적이게 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과 상당히 잘 병존할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이것이 1980년대에 기업과 계급 엘리트가 기교를 부리고자 했던 도전이었다."(63)


"노조가 강했던 북동부 및 중서부 주들로부터 노조가 없고 '일할 권리'가 강조되었던 남부 주들─멕시코와 동남아시아로 진출하지 않았다면─로 산업 활동이 이전하는 것은 일반적 관행이 되었다." 아울러 "집단행동을 와해하기 위해 개인으로서의 노동자에게 제공될 수 있는 수많은 '당근'도 있었다. 노조의 엄격한 규율과 관료주의적 구조는 노조를 이러한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노동시장에서 "더 큰 행동의 자유(freedom)와 자율(liberty)을 선사하겠다는 것은 자본과 노동 모두에게 덕목으로 여겨졌고, 이는 여기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의 '상식'에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통합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적극적 잠재력이 유연적 축적의 매우 착취적인 체계(시공간 모두에서의 노동 할당 유연성 증가로 인해 생겨난 혜택은 모두 자본에 돌아갔다)로 전환하게 된 이유는 실질임금이 정체 또는 하락하고 수혜가 감소된 현상을 설명하는 열쇠이다."(75)


영국은 "도덕적 다수로 동원될 수 있는 기독교 우파" 같은 세력이 없었기에, 매우 다른 방식으로 대중의 동의를 구축했다. 특히 "세계지향적 금융자본의 권력 성장이라는 점에서 런던 시의 위상을 보호 및 고양"했다. "(이자율 조작을 통한) 금융자본의 보호는 국내 제조업 자본의 요구와 적지 않게 갈등을 일으켰으며 (자본가 계급 내 구조적 분화를 촉진하면서) 국내시장의 팽창을 억제했다." 금융중심지로서 런던 시는 "케인스적 정책보다는 통화주의적 정책을 오랫동안 선호했으며, 이에 따라 착근된 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거점을 형성했다."(77-8) 대처는 "주택 소유, 사유재산, 개인주의, 그리고 기업적 기회의 해방을 즐기는 중간계급의 배양을 통해 동의 연합을 형성했다. 어려움 속에서 약화되는 노동계급의 결속력과 탈산업화를 통해 급격히 변화하는 일자리 구조와 더불어, 중간계급의 가치는 한때 확고한 노동계급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면서 좀 더 널리 전파되었다."(84)


# 신자유주의 국가 이론의 허점

1. (경쟁을 저해하는) 독점 권력의 처리 혹은 정반대로 전력, 수도, 가스처럼 국가 개입이 불가피한 자연 독점의 처리 문제

2. 시장 실패(비용의 외부화) 혹은 사회 관계와 제도를 훼손하는 기술혁신의 처리 문제

3. 매력적이지만 소외를 낳는 소유적 개인주의와 의미 있는 집단 생활을 추구하는 소망 간의 모순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이다. 다수결 원칙에 의한 통치는 개인적 권리와 헌정적 자유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만주주의는 사치스러우며, 단지 정치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강력한 중간계급의 등장과 결합된 상대적 풍요의 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전문가와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90) "완전한 정보와 경쟁을 가능케 하는 평등한 행위의 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가정은 순수하게 유토피아적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부의 집중과 이에 따른 계급 권력의 회복을 유도하는 과정을 감추려는 신중한 연막으로 보인다."(92) 국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진압하기 위해 설득 및 선전, 또는 필요하다면 적나라한 폭력과 경찰력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자유주의적 (확장하면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권위주의에 의존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 대중의 자유는 소수의 자유를 위해 제한된다."(94)


신자유주의 국가는 "전형적으로 탈규제를 통해 금융 제도들의 영향을 확산시키지만, 또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금융 제도의 통합성과 지급 능력을 보장한다. 이러한 집착의 원인은 부분적으로 국가 정책의 기반을 (신자유주의 이론의 어떤 변형 속에서 정당화된) 통화주의─화폐의 통합성과 건전성은 이 정책의 핵심적 부분이다─에 의존하는 데 있다."(97) 위기가 닥쳤을 때 은행과 금융기관들의 필요를 우선하고 채무국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관행은 국제적 맥락에서 바라봤을 때, "국제 은행가들에게 보상하려고 빈곤한 제3세계 국민들로부터 잉여를 추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 메커니즘을 통한 공물(tribute)의 추출은 "계급 권력─특히 세계의 주요 금융 중심지에 있는─의 회복에 매우 도움이 되며, 또한 이의 작동은 항상 구조조정의 위기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98)


"왜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를 통한 신자유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득되는 데 그리도 성공적이었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리적 불균등발전의 변동이 가속화되고, 어떤 영토들에서는 다른 영토들의 손실을 전제로 (최소한 일정 기간 동안이나마)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예로, 1980년대가 주로 일본, 아시아의 '호랑이', 그리고 서독의 시기였고, 1990년대는 미국과 영국의 시기였다고 한다면, 이처럼 세계 어딘가에는 '성공'이 이뤄진다는 사실은 신자유주의화가 성장을 촉진하고 복리를 증진하는 데 일반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한다. 둘째, 이론이라기보다 실제 과정으로서 신자유주의화는 상위 계급들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성공을 가져왔다. 이는 (미국이나 부분적으로 영국에서처럼) 지배 엘리트들에게 계급 권력을 회복시키거나, (중국, 인도, 러시아 또는 다른 국가들에서처럼) 자본가계급 형성을 위한 조건을 창출했다."(191)


신자유주의화는 "상품화化의 선線을 의심할 바 없이 후퇴시켰고, 법적 계약의 범위를 크게 확대시켰다. 이는 전형적으로 (포스트모던 이론의 대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짧은 수명과 단기 계약을 찬양한다."(202) 신자유주의화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노동도 상품이라고 강조함으로써, 노동·여성 및 토착민 집단이 사회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전환시켰다." 강도와 범죄 카르텔, 마약 밀매망, 소규모 마피아와 슬럼가 두목들에서부터 공동체, 민중, NGO에 이르기까지 "이 조직들은 국가권력, 정당, 그리고 다른 제도적 형태들이 활발하게 분해되거나 집단적 노력과 사회적 연대의 중심지로서 기능을 소진하게 됨에 따라 남겨진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대안적 사회형태이다. 종교로의 현저한 전환은 이러한 관점에서 흥미롭다(파룬궁)." 미국에서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기독교의 확산은 "고용 불안정의 증대, 다른 형태의 사회적 결속의 상실,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의 공허함과 어떤 연관성을 가진다."(207-8)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은 산업 및 농업에서 임금노동의 확대를 통한 축적과는 상이한 일단의 관행들을 동반한다. 1950년대 및 1960년대 자본축적 과정을 지배했던 후자의 축적은 착근된 자유주의를 창출한 (노조와 노동계급 정당에 착근된 것과 같은) 저항문화를 유발했다. 다른 한편 탈취는 (여기에서는 민영화, 저기에서는 환경 퇴락, 또 다른 곳에서는 부채에 의한 금융 위기가 일어나는 식으로) 파편적이며 특정적이다. 보편적 원칙들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특이성과 특정성 모두에 반대하기는 어렵다."(215) 신자유주의 아래 살아가는 것은 "자본축적에 필요한 일단의 권리들을 수용하거나 준수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적 소유와 이윤율에 대한 개인들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그리고 법인들은 법 앞에서 개인으로 규정된다는 점을 상기하라)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개념화를 압도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218)


"1935년 연두교서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0년대 대공황의 경제적·사회적 문제의 근원에는 지나친 시장 자유가 있었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과도하게 이윤을 추구해 부당한 개인적 힘을 키워도 된다는 부의 획득 개념을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궁핍한 사람은 자유인이 될 수 없다.(221) 마르크스 역시 허기진 배는 자유를 전도하지 못한다는 굉장히 급진적인 견해를 가졌다. 그는 "필요성과 일상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이 끝나는 곳에서야 자유의 영역이 시작한다"라고 적고 있으며, 따라서 자유는 "실제 물질적 생산 영역 너머에 놓여 있다"라고 덧붙인다.(223) 저자가 신자유주의적 권리 체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회적·생태적·정치적 결과가 어떠하든지 무한한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의 체제 아래 살아가는 것 외에 대안이 없음을 인정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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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수학무기 -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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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경제의 원동력인 수학 모형 프로그램들은 대다수가 "인간의 편견, 오해, 편향성을 코드화했다. 그리고 이 코드들은 점점 더 우리 삶을 깊이 지배하는 시스템에 그대로 주입됐다."(15) 대량살상수학무기(WMD) "모형 자체는 속이 보이지 않는 블랙박스로, 그 안의 내용물이 영업 비밀처럼 엄격하게 보호된다. 이것은 매스매티카 같은 컨설팅업체들에게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첫째,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알고리즘이 지닌 가치보다 훨씬 많은 수수료를 청구할 수 있다. 둘째, 평가 대상이 모형의 작동 원리에 대해 모르기에 모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대신에 평가 대상자들은 모형의 기준에 맞춰 열심히 일하고 규칙을 준수한다. 모형이 그들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세부 사항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 결과에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24-5)


WMD이 안고 있는 세 가지 위험 요소는 '불투명성, 확장성, 그리고 피해'다. 비즈니스에 중요한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알고리즘이 공개되지 않은 모형에 쓰인 가정들은 파괴적인 피드백 루프를 통해서 자신의 가정들을 정당화하는 환경을 창조한다. "은행의 대출심사모형이 당신에 대해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다고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지독한 오해에 불과할지라도 온 세상이 당신에게 '예비 채무불이행자'라는 똑같은 꼬리표를 붙일 것이다. 꼬리표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 꼬리표는 당신이 아파트나 일자리를 구할 때는 물론이고 자동차를 렌트할 때조차 기준이 되어 당신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58-9) 문제의 핵심은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되는 모형이 수백만 명의 면전에서 기회의 문을 닫아버리고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가끔은 지극히 하찮은 이유로 그렇게 한다."(61)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은 MBS(주택저당증권, mortgage-backed securities)에 투자하는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바로 불투명성이었다. 투자자들은 증권에 포함된 주택담보대출 각각의 건전성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증권에 포함된 내용물을 얼핏이라도 짐작해볼 수 있는 방법은 신용평가기관의 분석가들이 평가한 등급이 유일했다. 그런데 분석가들은 자신이 등급을 매기는 금융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들에서 수수료를 챙겼다."(75) 금융과 첨단기술이 안겨주는 혜택을 장악한 계층의 사람들은 "똘똘 뭉쳐 서로 칭찬하는 사회mutual admiration society를 형성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시스템을 악용한 것과 대단한 행운이 결합된 결과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성공을 적자생존의 사회적 다윈주의가 작동한 결과임을 납득시키려 한다."(90)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계들 스스로가 우리의 데이터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우리의 습관과 희망, 두려움과 바람을 찾아내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한 뒤 "전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삶, 일, 구매 경험, 우정 등에 관해 무수히 많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언어를 처리하는 기계들을 위한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학습 말뭉치training corpus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손글씨와 종이에서 이메일과 SNS로 소통의 도구를 바꿈에 따라 기계들이 우리의 언어를 연구하고 비교하면서 언어의 문맥과 관련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진전은 신속하고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통해 향상된 "자연언어 처리 능력은 광고주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이제 프로그램은 특정한 단어의 의미를 안다. 아니, 적어도 가끔은 그 단어를 특정한 행동이나 결과와 충분히 관련시킬 수 있을 만큼은 안다."(135-8)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인터넷 세상에서 드러낸 선호도와 패턴을 토대로 수많은 모형에서 나뉘고 분류되어 점수가 매겨진다. 이런 정보는 합법적인 광고 캠페인의 튼튼한 토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약탈적인 광고들의 연료가 된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만 골라서 지킬 수 없는 거짓 약속을 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드는 약속을 해서 바가지를 씌우는 악질적인 광고 말이다."(126) 전형적인 WMD인 약탈적 광고는 절박한 사람들을 찾아내 표적공략한다. 일례로, 배터롯 칼리지는 신입생 모집원들에게 "복지수당을 수령하고 자녀가 있는 편모, 임신한 미혼여성, 최근에 이혼한 사람, 자긍심이 낮은 사람, 저임금 종사자, 최근에 가까운 사람과 사별한 사람, 신체적·정신적 학대 피해자, 최근 출소자, 약물 중독 재활 치료 유경험자, 장래성이 없는 직종 종사자"를 집중 공략하라고 지시했다.(129)


이처럼 알고리즘은 기본적인 명령에 따라 데이터를 처리할 뿐이지만, 그 명령을 내리는 사람(혹은 집단)의 의도가 모형 안에 속속들이 배어 있다. "미국 정부는 1965년에 시행된 고등교육법Higher Education Act에 소위 '90-10법칙'이라고 불리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 조항은 대학들이 재정의 최대 90%까지만 연방정부의 원조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9대1이라는 비율의 근거는 학생들이 교육비의 일정 부분을 감당할 때 자신의 교육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리 대학들은 이 조항의 허점을 공략하는 사업 계획을 만들었다. 저축이든 은행 대출이든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수천 달러를 긁어모을 수 있다면, 영리 대학들은 그 학생들의 이름을 빌려 그 금액의 9배나 되는 돈을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리 대학들에는 학생 하나하나가 막대한 수익 창출원이 됐다."(142)


"가난한 동네에서 경미한 범죄는 흔한 일이다. 오죽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경찰들이 그런 범죄를 범죄가 아니라 반사회적 행동antisocial behavior, ASB이라고 부르겠는가." 이런 2군 범죄를 예측 모형에 포함시키면 "더 많은 경찰이 가난한 동네로 출동하게 되고, 당연히 그런 동네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체포당할 것이다." 이는 바로 유해한 피드백 루프가 활성화되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경찰 활동 자체가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시키고, 이런 데이터가 다시 더 많은 경찰 활동을 정당화해준다. 그리고 교도소는 피해자가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를 저지른 수많은 범죄자들로 넘쳐나게 된다. 이런 범죄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동네 출신이고, 또한 대부분 흑인이거나 히스패닉계다. 설령 모형이 '색맹', 다른 말로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피부색과 소득 수준에 따라 거주 지역이 뚜렷이 구분되는 오늘날 미국 도시에서 지리적 요소는 인종에 대한 유효적절한 대리 데이터다."(151-2)


"미국 직장인들 사이에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가 있다. '클로프닝clopening'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단어는 상점이나 카페의 종업원이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매장 문을 닫고 퇴근한 다음, 불과 몇 시간 후 새벽 동도 트기 전에 다시 출근해서 매장 문을 여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한 명의 종업원이 매장 문을 닫고 여는 클로프닝은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물류logistics적으로 타당한 업무 방식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수면 부족과 빡빡한 일정에 쫓기는 것을 의미한다."(208) 일정 관리 소프트웨어가 양산하는 "불규칙적인 장시간 근무는 노동자들이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요구하거나 스스로 조직화하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대신 노동자들은 극심한 불안감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고 있다." 더욱이, 일정 관리 소프트웨어에게 착취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자녀도 커다란 피해자다. 이런 부모를 둔 아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한다."(217-8)


"보험사들은 신용평가 보고서에서 신용평가점수를 얻은 다음, 자사의 고유한 알고리즘을 통해 자체적인 등급이나 e점수를 생성시켰다. 이런 등급이나 e점수는 '책임 있는 운전 습관'을 대신하는 대리 데이터"로 활용된다. "자동차 보험비를 산정하는데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어떻게 운전하는가'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273) 보험사들은 이를 악용해서 저신용 고객층에게 "과다한 보험료를 부과함으로써 실리를 챙긴다. 운전 기록이 깔끔해도 신용평가점수가 낮은 운전자는 사고 위험이 낮기 때문에 보험사에 복덩어리다. 게다가 그 운전자의 보험 계약에서 발생한 수익의 일부는, 보험사가 사용하는 모형의 비효율적인 측면을 보전해준다. 신용평가 보고서가 완벽해서 보험료를 적게 내는 운전자가 음주 운전 사고를 일으켰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그 손실을 신용평가점수가 낮아도 운전 습관이 좋은 운전자들의 보험료로 메울 수 있다."(275)


"현대의 소비자 마케팅은 정치인들을 특정한 유권자들에게로 데려다주는 새로운 경로를 제공한다. 이제 정치인들은 각 유권자 집단의 욕구에 맞춤화된 정보를 들려줄 수 있다. 일단 그렇게 하고 나면,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큰데, 그 주장이 자신들의 기존 믿음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정치참모들은 micro-targeting이라는 "신용카드업계의 전술을 차용함으로써 막대한 유권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각자의 가치관과 인구통계학적 정보를 고려해 유권자를 다양한 하위집단으로 분류했다. 그리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이웃한 두 집이 동일한 정치인으로부터 각각 다른 내용의 우편물이나 팸플릿을 받게 됐다. 가령 같은 후보로부터 한 집은 야생동식물 보호를 약속하는 우편물을, 바로 옆집은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우편물을 받는 식이다."(311-2)


정치가와 유권자 사이의 이런 "정보의 비대칭asymmetry of information은 여러 집단이 손을 잡고 힘을 합치는 것을 막는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다."(325) 정보의 비대칭 말고 또 다른 비대칭이 있다. 바로 관심의 비대칭이다. "알고리즘에 의해 투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투표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 선거에서는 관심의 융단폭격을 받게 된다. 여전히 투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면 애시당초 투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권자들은 관심에서 거의 배제된다. 정치 시스템은 투자 수익률이 가장 높은, 다른 말로 가장 적은 비용으로 표심을 바꿀 수 있는 유권자들을 열심히 찾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때로는 투표 기권자들이 돈 먹는 하마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정치 시스템의 이런 역학은 양극화를 부추긴다. 특정 계층은 물과 양분을 쏟아부어가며 살뜰히 보살피고, 나머지 계층은 영원히 방치되고 있다."(327-8)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WMD들은 상위 계층 사람들, 즉 부자들에겐 확연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들만을 따로 모아 배타적인 마케팅을 전개한다. 가령 카리브 해에 위치한 아루바로 휴가를 가도록 추천하고,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준다. 그러니 부자들은 세상이 갈수록 편리해진다고 생각할 만하다." 이런 표적 마케팅 기법의 "은밀하고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사회의 승자들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모형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볼 수 없다."(330) "돈으로 영향력을 사는 오늘날 사회에서 WMD의 피해자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나 다름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과 범죄로 개인적 비난에 시달리기 십상이지만, "사회적 통념에서 보면 가난의 병폐는 질병에 가깝다. (오늘날 정치권의) 빈곤 퇴치 노력은 중산층에게까지 그 병폐가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시키는 것이 전부다."(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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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계산기 - 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
필립 로스코 지음, 홍기빈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계몽주의 학자들에게 시장은 진리의 장소, 자연의 거울이자 산업 사회 이전의 촌락이라는 억압적 사회관계에 맞서는 해방의 힘이었다. 그들에겐 무역이 제공하는 여러 자애로운 메커니즘을 거치기만 하면 자기 이익, 즉 사적인 이윤의 추구라는 것도 공적 미덕의 샘솟는 원천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제러미 벤담이 착상하고 이후 존 스튜어트 밀이 상세히 발전시킨 영국 공리주의의 프로젝트는 이러한 공적 미덕을 다시 법률로 전환시키고자 했으며, 감옥과 학교 또한 이 새로운 시장 경제의 노선에 따라 개혁하고자 했다. 이것이 19세기 말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들이라 불릴 만한 오스트리아의 <한계주의> 혁명가들, 즉 카를 멩거, 조지프 슘페터, 루트비히 폰 미제스, 그리고 가장 유명한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이 나타날 때까지의 상황이었다. 이 오스트리아인들은 영국인 스탠리 제번스 그리고 프랑스인 레옹 발라 등과 함께 경제학을 수학적 프로젝트로 재창조했다."(51-2)


"19세기가 되면 어떤 좋은 것의 유용성을 연속의 수학적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등장하게 되었고, 제번스, 멩거, 발라가 각각 독자적으로 한계 효용의 이론을 <발견>했던 것도 그때였다." 그전까지 <효용utility>이란 "단순히 <가치> 혹은 <유용성>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다음 두 가지 점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정의를 얻었다. 첫째, 이 유용성이란 오로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순간에만 관찰과 이해가 가능하다. 즉 어떤 사물의 유용성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욕망으로 실제로 어느 만큼의 행동을 벌이는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둘째, 그 효용이란 단일의 수리적 함수로 표현될 수 있다. 좋음의 본성을 두고 철학자들은 오래도록 입씨름을 벌여 왔지만, 이제부터 분석가들은 그런 논쟁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쓸 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제각각이니, 그 제각각의 가치 평가를 그들 각각의 행동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만 인식하면 된다는 설명이다."(52-3)


"하이에크 그리고 그의 사상을 물려받은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선택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들의 해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에 돈을 지불하게 하여 자기들이 거기에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보여 주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화폐는 보편적인 매개물이므로 이를 통해서 이질적인 가지가지의 재화 및 서비스들에 대해 한 개인이 갖는 모든 선호 사항들에다가 단일의 서열을 매길 수 있고, 심지어 모든 개인들의 모든 선호 사항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저 기적의 장치인 시장이 자동적으로 만들어 내는 단일의 척도인 화폐를 사용한다면 인간들의 오만가지 필요, 욕망, 욕구를 모조리 한 줄로 세울 수가 있다는 설명이었다."(59-60)


"경제라는 세계는 우리가 <경제학>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규칙들로 세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실로 매혹적인 질서와 명확성을 가진 세상이다. 이렇게 경제학이 그 세계를 그렇게 잘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라는 세계의 조직과 구조와 통치 자체가 바로 그 경제학의 규칙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조사하는 대상은 인간 세상이며, "경제학이 초점을 두는 것들은 모조리 특정한 역사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로서 무엇보다도 가격과 가치와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경제학이 내놓는 여러 묘사는 이 세상에 대한 묘사인 만큼이나 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학, 그리고 경제학이 조사하는 세계는 상호 작용과 되먹임의 순환 고리로 강하게 묶여 있다." 경제학 또한 "전문성, 도구화 작업, 언어 등이 긴밀하게 얽히는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이 점에서는 자연 과학과 동일하다. 그런데 자연 과학과 다른 점이 있다. 경제학은 바로 자기 자신을 척도로 삼는다는 것이다."(84-6)


형이상학이 제거된 명징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현실을 파악하는 포퍼의 방법론을 받아들인 "프리드먼은 경제학이란 과학적 탐구의 엔진으로서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여러 예견을 내놓기 위해 여러 가정들을 활용하고, 이를 기초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해 나가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포퍼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 나아가 버렸다. 프리드먼의 글을 보면 가정들이 정확하지 않아도 이것들이 반증 가능한 예견들을 내놓을 수만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니며, 나아가 여러 가정들이 이런저런 부정확성을 담고 있다면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큰 미덕(설명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의미)을 갖게 된다는 뜻까지 담겨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떠받치는 근저에는 또 하나의 좀 더 기본적인 가정이 있다. 이 가정이야말로 위와 같은 경제학 방법론의 모든 주장과 다른 모든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가 되는 가정이니, 그것은 바로 이 세계를 명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88-9)


경제학의 언어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한계 효용과 기회비용이라는 관점에서 선택하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가격, 효용, 가격 대비 성능 등의 언어들 자체가 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문제의 성격 자체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과연 <가격>이니 <효용>이니 하는 것들이 현실과 조응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이러한 개념들 자체가 살아있는 생물이며, 나의 정신과 육체를 매개로 현실에서 작동한다. 경제학의 규칙들과 논리가 움직이는 곳마다 이 세계는 무너지며, 그 무너진 틈은 다시 경제학의 규칙들과 논리가 메꾸어 버린다. 경제학은 우리에게 어느 테두리 내에서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가르치며,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도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들이 현실 세계에서 내리는 의사 결정의 테두리를 실제로 결정해 버린다."(93-4) 경제학자들이 구축한 세계상은 "<인간이 구축한 미로이자, 인간이 출구를 찾아내도록 설계된 미로>이다."(102)


"경제학의 파놉티콘을 건설하는 그다음 단계는 권력 관계를 완전히 자동적이면서도 연속적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곧 개개인들이 자신의 경제적 주관성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경제학은 개인의 내면에 이런저런 계산과 가치 평가를 형성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시도한다."(121) 일례로 노르웨이에서 어부들에게 조업량 쿼터 시스템을 도입하자, 이전까지 공유지였던 바다는 조각조각 울타리가 쳐진 개인의 재산으로 변모했다. 어부들은 "화폐로 표현되는 시장 가치를 받아들여 행동을 결정했고,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은 극대화하는 행동을 선호했다. 또한 <평범하고 진부한 프로그램들, 계산들, 기술들, 도구들, 문서들, 절차들의 복합체>를 조심스럽게 실행에 옮기는 가운데 합리적이고 도구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경제적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어부들이 영위하는 삶, 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와 온 세상 또한 전혀 다른 것으로 탈바꿈했다."(127)


"계산의 공유는 거의 불가피하다. 우리가 기술적으로 발전된 사회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남들과 계산 작업을 분배한 덕분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남들에게 계산 작업을 맡기는 양도 커질 수밖에 없고, 위임받은 이들이 계산을 대신해 줄수록 우리의 운명은 점점 더 그들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된다." 경제적 인간이 "합리적 계산을 해내는 것 역시 여러 도구들, 측량 기기들, 계산기들을 통해서 가능하다. 사회학자 미셸 칼롱의 표현처럼, 발명된 도구들은 경제적 행동을 위한 <인공 기관들(의치, 의족 등)>로 변한다. 시장 사회학에서는 이렇게 인간들과 발명 도구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배열agencement>이라는 다른 말을 이미 사용해 오고 있다. 이는 도구들이 행위자agency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즉 이 도구들이 행동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단어다."(143-5)


마트에서 우리는 "미리 가공 처리가 끝난 사실들만을 받게 될 뿐이다. 계산대에서 나오는 영수증에는 2.78파운드를 절약했다는 가공의 숫자만 나올 뿐이며, 홈쇼핑 채널의 텔레비전 화면에는 몇 퍼센트가 더 저렴하다는 수치만이 등장한다." "계산의 인프라가 은폐된 채로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객으로 변모한다. 즉 만사 제쳐 놓고 가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고객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판매대에 오른 제품의 "여러 성질들 가운데 오로지 가격만 보여 주면 나머지 요소들은 우리의 결정 과정에서 확실하게 쫓겨난다. 우리가 그러한 가격 차이가 과도한 노동, 과도한 경작, 착취적인 노동 조건 등에서 비롯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해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어떤 상품이 어떤 조건에서 생산되는지는 상품의 <가격표>가 확실하게 가려 버린다. 가격만이 우리 의사 결정의 틀이 되며, 가격만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147-9)


"어떤 사람이 신용 리스크가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신용에서 <배제>된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신용이라는 희소한 자원에 대해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제 한 사람의 신용 점수는 "그 개인의 인격적 속성이자 계속 갈고 닦아야 할 무엇으로 여겨진다. 마치 대학 졸업장이나 빨래판 복근처럼 말이다. 신용 점수 시스템의 확산은 곧 인격적 관계에 묻어 들어 있었던 대출에서 통계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한 대출로의 이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경제학의 개념들은 여러 기술적 도구들에 새겨져 있다. 그 도구들은 미국 농촌의 가게 점원이 참조하는 채점표처럼 원시적일 수도 있고 피코 스코어의 배후에 있는 알고리즘처럼 현란하고 세련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옛날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했던 사회적 유대를 끊어 내는 일에 일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160-1)


교육을 상품화한 "윌레츠의 주장은 명쾌하다. 학생들을 소비자로 만들기만 하면 대학들도 개선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지불하도록 하면 대학들이 이 <고객들>을 끌어오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므로 자생적으로 시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시장이라는 장치는 "교육이 가져다주는 여러 혜택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 학생은 스스로의 경제적 이력을 책임져야 할 개인으로서, 교육을 통해 장래에 엄청난 혜택들을 받게 된다. 따라서 그 비용을 감내해야 할 것은 학생 본인이며, 그 대신 학생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168) 대학 교육의 상품화는 "여러 가지의 귀결을 가져온다. 그중 중요한 것으로 사회적 재화의 감소를 들 수 있다. 교육이란 그 내재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피어나기 위한 핵심 도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이제 개인적 출세라는 단기적 목표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177)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에 따르면 "여러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비용은 그 문제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쪽에게 부담시켜야 한다. 지출이 적을수록 '만인이' 더 큰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코즈의 규칙은 잘못을 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나 무엇이 정의로운 선택인가 등의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비용과 편익이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분배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그렇게 해서 절약할 수 있는 총량이 얼마인가가 중요할 뿐이다."(187) "비용-편익 계산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려면 무조건 모든 것에 가격을 붙여야만 한다. 설령 그것이 인간의 목숨이라고 해도 말이다. 둘째, 만약 정말로 이러한 분석이 의사 결정의 도구가 되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비용이 어떤 것인지를 보고 나서도(예를 들어 180명 사망, 180명 불구, 2,100대 차량 파손) '태연하게' 그 비용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한다."(191)


"깨끗한 공기와 같이 가격이 붙어 있지 않은 것들을 꺼내 놓고서 한번 가격을 불러 보라고 묻는 것 자체가 그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이며, 그것을 상품 즉 우리가 거래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바꾸어 놓는 행위이다. 그런 것들을 지켜 내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대응들이 있는데도 이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그런 방법론으로 얻은 가격 수치만 중시하게 되면 그러한 종류의 성격 변화가 아예 제도로 굳어진다."(225) 장기 매매 시장을 허용하고, 장기의 공정 가치를 구하는 식의 "장기 이식을 둘러싼 주장들을 보게 되면 경제학이란 단순히 현실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경제학은 수행한다. 즉 자기 스스로가 제시한 현실 세계의 묘사를 실제 세계의 무대 위에 그대로 연극으로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경제학이 무엇을 분석하는가는 현실 세계에 큰 중요성을 가지는 문제가 된다."(235)


온라인 데이팅의 "여러 규칙들은 개개인들을 서로 교체할 수 있고 교환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체 가능한 존재로 바꾸어 버린다."(276) 온라인 데이팅은 "사랑을 이해하는 독특한 경제학적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랑에 빠지는 일을 상대방의 여러 특질과 양립도에 기초하여 매력을 느끼는 모종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사이트들의 광고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통제해야지 확률이나 행운 따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이트들에서 짝이 될 이들을 검색하는 사용자들은 자기를 포함한 개개인들을 여러 성질들이 교차하는 결절점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 이 결절점들은 다른 결절점들을 보면서, 또 자기를 검색할 사용자들이 무엇을 내놓을지를 염두에 두면서 자기가 지닌 성질들 하나하나의 가치를 올리려고 노력한다."(287)


오늘날의 자기 이익이라는 개념은 "21세기식 경제 행위자의 계산적·도구적 합리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복잡한 기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오래된 부르주아의 미덕 따위와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루어진 무정무감의 합리성이 우리의 삶과 신체의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공간에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사태이다. 나아가 이러한 자기 이익이라는 것이 순전히 개인의 수준에서만 현실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는 이미 통치governance의 사회적 장치의 일부가 되어 버렸으며, 우리 모두가 스스로 사업가로 변해 가도록 장려한다."(300) 비용-편익 분석은 "직선적이며, 투명하며, 객관적인 외양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공론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 주장의 "배후에는 항상 따져 보아야 할 계산 과정이 버티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302)


"자연과학은 정리와 증명, 데이터와 증거들의 끝없는 증식을 추구하며 이를 중시하지만, 경제학은 오로지 희소성 조건 아래에서의 비용과 편익의 비교라는 단 하나의 보편적인 알고리즘 외에는 아무것도 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현실에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경제 분석의 중심을 차지하는 질문이 비용과 편익의 비교라면, 경제적 이성의 중심적 미덕은(그리고 경제학과 관련된 모든 의사 결정, 정책, 규제 등에서도) 효율성이다. 이는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언명이며 명백하게 도덕적인 성격을 띠는 주장이다. 만약 어떤 특정한 행동 노선을 취할 경우 더 적은 수단으로도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러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 복잡한 우리의 삶에서 "비용만 빼고 나머지는 완전히 똑같은 행동 노선들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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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3-1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섬뜩한 대단한 책입니다.
읽고 싶은 책입니다. ^^

nana35 2018-03-15 17:14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에게도 충만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고쳐쓰기 -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괜찮은 자본주의로
세바스티안 둘리엔 외 지음, 홍기빈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각국의 국내 금융 분야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동산금융의 경우에는 금융시스템의 다른 부분들과 단절되어 국가의 긴밀한 통제를 받는 것이 예사였다. 소비자 신용은 종속적인 역할만을 수행하였고, 신용팽창은 비즈니스 부문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소비수요의 역동성이 기초가 된 것은 소득 증대였다.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이자율에는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다. 심지어 전통적으로 자본시장에 기초한 금융체제를 가져왔던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조차도 주식시장이 특출한 역할을 맡았던 것은 아니었다. 유럽 대륙과 일본 그리고 여러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은행 중심의 체제가 지배적이었으며 여기에서는 소위 '주거래 은행(house-banks)'이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외부 금융 원천으로 기능했다."(43-4) 이 시스템은 "1960년대 말부터 계속되던 위기를 겪은 후 1973년 2월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46)


1960년대 말 이후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미국으로부터 자본이 유출되었지만, 미 중앙은행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은 자국 통화의 가치 안정성을 돌볼 필요가 없었으며 그저 그 부담을 다른 나라들에 떠넘길 수 있었다. 미국은 이러한 자신들의 특권을 각별히 이용하였다." 오히려 "1971년 8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외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는 더 이상 금으로 태환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하였고 이 때문에 달러에 대한 신뢰는 더욱 더 급격히 떨어지게 됐다." 이른바 '닉슨 쇼크'는 고정환율 체제를 잠식해 들어갔다. 달러의 가치절하를 막기 위해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 정책을 펼치던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들─특히 제2의 외환 보유 통화로 자리매김한 마르크화의 독일─도 미 중앙은행의 수수방관 앞에 무기력했다. 결국 "독일의 분데스방크는 1973년 2월 12일 미국 달러 매입을 계속할 수 없다고 거부했고, 이로 인해 달러의 과감한 가치절하가 벌어졌다."(46-7)


# 유럽의 화폐 통합 과정

1. 통화 뱀(currency snake) 체제 : 변동환율제가 시행된 후 1972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6개국이 상호간 환율 등락폭을 2.25%로 제한하기로 합의

2. 유럽통화체제(EMS, European Monetary System) : 통화 뱀을 계승하여 1979년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간에 고정환율제 창출

3. 유럽통화연합(EMU, European Monetary Union) 도입 : 1999년 유로화 출범


1960년대말 거의 모든 서방 산업국가에서 실업률은 역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그 결과 나타난 노동 부족 때문에 피고용자들의 시장 협상력이 강력히 지지되었고, 이것이 다시 명목임금의 상승을 떠받쳤다. 이는 한편으로는 단체협상에서 합의한 바의 임금상승 때문이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합의한 임금률 이상으로 임금을 지급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전개된 사회 개혁 운동들은 "민주적 제반 권리의 강화, 기회 균등의 확대, 노동자들의 지원, 교육체제의 변화, 소득분배의 공정함, 여성 해방 등 그 밖에도 더욱 진보적인 사회의 개념과 연결된 여러 사안들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개혁 운동들은 거의 필연적인 부산물로서 더욱 공격적인 임금정책을 낳았다."(54-5)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혁 프로그램을 임금인상과 연계하고,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한 임금인상 억제에 반대한 시도들은 향후 반동을 낳는 주요인이 된다.


1973년 오일쇼크가 터졌을 때 "실업률은 여전히 낮았기에 노동자들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임금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임금인상을 힘으로 얻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 결과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 고리가 시작되었다. 임금이 올라가면서 기업에는 비용 압력이 가해졌고, 이는 다시 물가를 올렸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또한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낳았다. 환율 통제를 걷어내자 수많은 나라들이 자국 통화의 가치절하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외환가치 절하는 수입 가격의 상승을 낳으며, 특히 석유 가격 인상의 경우처럼 결국 물가수준 전반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실질임금은 감소하게 된다. 오일쇼크뿐 아니라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과 외환가치 절하 같은 효과가 누적적으로 발생한 나라들은 특히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56-7) 여기에는 1976년, 통화위기에 휘말린 파운드의 가치절하로 어려움을 겪던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은 IMF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수많은 조건들이 붙기는 했어도 일정한 대출을 받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경제난 극복을 위해 "물가 안정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노동조합 대표자들을 데려 오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한 뒤, (노동당의) 캘러헌은 마침내 그들에 맞서기로 결심하였다. 이른바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라고 불리는 1978년 말의 겨울이 왔고 여기에서 거대한 파업의 물결이 영국 경제 전체를 휩쓸었으며 사실상 마비 상태로 몰아가버렸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한다면 마거릿 대처가 1979년 5월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처 여사는 승리를 거둔 직후 그녀의 보수적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이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은 자유화, 규제완화, 사유화, 그리고 경제성장과 고용에서 큰 감소를 대가로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인플레이션과 노동조합을 반드시 때려잡겠다는 선전포고 등이었다."(58-9)


전후 시기만 해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세계 부동산시장은 금융체제 내에 별개의 부문을 형성하여 금융체제 내 다른 부분들과 거의 무관하거나 관계가 있더라도 엄격히 규제되었다." 그러나 시장자유주의의 세계화와 더불어 "1980년대 초 금융시장의 규제완화가 시작되면서 이런 양상은 크게 변하였다. 첫째, 새로운 대출기관들이 시장에 몰려들어 오면서 경쟁이 격화되었다. 둘째, 이자율에 제한을 두었던 나라들이 이자율 통제를 철폐하였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대출을 위한 금융시장 자체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부동산 대출을 해준 뒤 이를 매각해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는 여러 결과를 초래했는데, 무엇보다도 부동산시장과 전국 금융시장, 심지어 국제 금융시장까지 서로서로 긴밀히 연계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유통시장에서 여러 부동산 대출을 매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77-8)


이제 "전체 경제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 거시경제학적 접근은 낡은 모자 취급을 당하게 되었고, (효율적 자본시장과 합리적 기대 가설을 바탕으로)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미시경제학적 접근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91) 그러나, 미시적 접근은 미래를 과거로부터 통계적으로 유추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을 외면한다. 일례로, "VaR(위험감안가치, value at risk)란 위험의 척도로서, 포트폴리오가 일정한 기간 동안 손실을 볼 가능성을 얼마간의 확실성을 갖고 보여준다. 그 계산은 전적으로 과거와 관련된 데이터에 의존한다. 방법론적으로 이와 동일한 것이 금융 세계에 잘 알려져 있는 블랙-숄스 모델(Black-Scholes model)이다."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이러한 위험관리모델들은 경기순환을 더욱 강화시키는 강한 효과를 갖게 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들은 자산시장에서 거품이 쌓여가는 과정을 더욱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그 거품이 폭발했을 때에는 그 뒷감당 비용 또한 증폭시키는 것이다."(99-100)


"1990년대 초부터 회계 조항들에 도입된 변화들 또한 이 효율적 시장이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뻗어 나온 움직임으로서, 역사적 원가에 기초한 회계 규칙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지배적인 시장가치에 조응하는 가치 평가가 들어서게 되었다." 자산 가치가 떨어지는 기간에는 "이른바 '공정가치회계'라는 것이 자기자본의 부당한 감소로 이어지게 되며, 심지어 지급 능력의 문제와 생존의 문제까지 나올 지경이 된다. 특히 자산시장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각별히 높은 배당금을 지급했던 기업들은 자기자본을 충당하는 데 써야 할 돈을 주주들의 배당금으로 흡혈귀에게 피를 빨리듯 내줬으니, 자기자본 상태가 좋지 못하며 따라서 모종의 위기가 닥쳤을 때에 이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만약 자산들의 가격이 여러 기초여건들을 제대로 반영하는 가격이 아니라면 공정가치회계라는 것도 결국 경기순환을 더욱 증폭시키는 경향을 띠지 않을 수 없다."(100-1)


변동환율제 하에서, "외환시장은 마치 자산시장처럼 기능하여 근본적으로 그곳의 행위자들의 기대와 예측으로 결정된다."(109)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대와 예측의 형성이란 사회적 과정으로서 역사적 상황, 특수한 제도와 해당국의 상황 등 여러 요인들과 상호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경제행위자들이 제아무리 기초여건들을 성공적으로 찾아낸다고 해도 미래의 환율 변화를 알아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112) 결국 변동환율제는 "불안정한 국제 자본흐름이 지배하는 혼돈의 체제이며, 국제무역과 지구적 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합리적을 틀을 제공해줄 능력이 없는 체제이다. 하지만 문제는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 및 서비스와 해외에서 생산된 재화 및 서비스의 상대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환율의 운동이기 때문에 이것이 경제 전체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있다. 재화시장, 노동시장, 자산시장 모두가 교란당하지 않을 수 없다."(115)


프리드먼에 따르면 "통화정책은 오로지 가격안정 유지만을 업무로 삼아야 하며, 고용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것은 통화정책이 아닌 노동시장의 임무다. 임금형성 메커니즘이 자유시장의 작동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사용자 연합 등에 지배당하는 형태가 나타나고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서 지역적 불균형 및 직종 간 불균형이 생겨나는 등 노동시장이 교란당하는 것이 실업의 원인─그렇게 나타나는 실업률이 '자연적' 실업률이다─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경제정책에 접근하면 실업과 싸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노동시장의 규제완화가 된다."(140-1) 반면, 케인스는 "노동시장의 역할과 의미를 재화시장에 대한 총수요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한다. 재화에 대한 수요야말로 생산 총량 그리고 경제 전체의 고용 및 실업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이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노동시장은 여러 시장들로 이루어진 위계 서열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으며 자산시장과 재화시장의 지배를 받게 된다."(145)


금융위기에 맞서 각국 정부가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면서 쌓이는 "공공부채의 저량(stock)을 GDP에 대한 비율로 측정했을 때 이것이 아주 높다면 무수한 부정적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첫째, 공공부채 수준이 높아지면 재분배에도 부정적 결과가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국가가 부채에 대해 지불하는 이자소득은 소득이 높은 집단에 흘러들어가며, 반면에 이 돈의 원천이 되는 조세는 중위 혹은 하위 소득자들이 내는 돈이다. 둘째, 공공부채가 높은 수준이 되면 고금리 시기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렇게 금리가 올라가면 다시 예산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마침내 예산 자금을 더 조달하기 어려운 지경이 될 수 있다. 셋째, 국가예산이 지나치게 부채를 안게 되면 신용시장에서 아예 퇴출당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부채가 외화로 표시되어 있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개발이 덜 된 나라들의 경우 최근 몇십 년간 이 때문에 통화위기를 겪은 경우가 허다하다."(204)


"일반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정부 부채가 크게 증가하였다. 미국에서는 총 공공부채가 1970년대 초에는 평균 45퍼센트 정도였지만 2010년에는 90퍼센트 이상이 된다(순부채는 65퍼센트 이상)." 이러한 숫자들을 볼 때 "시장자유주의가 득세하던 시대 동안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그토록 균형재정을 외치는 경향이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공공의 살림살이를 건전한 방식으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는 1970년대 이후 경험했던 경제적 불안정과 관련이 있으며, 또 경기순환을 극복하기 위한 지출을 충당할 만큼 세금을 올리는 일을 정치적으로 주저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242-3) 공적인 개입 없이는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이 불충분한 시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선진국 세계 대부분의 정부가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한 결과, 개별 나라의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자체가 실질적으로 안정성의 파괴를 겪어야 했다."(251)


교육과 사회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는 그 계획의 시간 지평이 장기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철도나 자동차 도로에 대한 투자 그리고 교육은 모두 그 혜택이 40년은 족히 지속되는 것인 바, 이렇게 긴 시간의 미래를 놓고서 어느 만큼의 투자가 어느 만큼의 편익을 낳는지를 정확히 수량화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217) "상속세가 너무 높으면 중간 크기의 기업들은 파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 기업 소유자가 죽으면 상속자들이 그 기업의 유동성 자금을 세금 납부에다가 너무 많이 써버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상속자들이 상속세를 즉각 납부할 능력이 없는 기업들의 경우 정부가 사업에 일체 참견하지 않는 무명의 동업자(sleeping partner)가 되는 것도 일책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상속이 이루어지는 시점부터 기업 이윤의 일정한 몫을 보유하게 되지만, 상속자들은 돈이 생기게 되면 그 즉시 정부로부터 그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222)


의료 부문 역시 정부가 개입하여 적절한 규칙과 규제를 부과하고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펼쳐야 하는 영역 중의 하나이다. "의료보험 부문에서는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경쟁을 행하는 방법이 보장성의 정도를 변화시키는 식이라면, 역선택 이론에 따라서 경쟁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즉 보험 계약에서 일정한 조건에 해당하는 치료의 보장성이 갈수록 사라져 마침내 그 치료를 확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들만이 그 치료를 보장해주는 보험을 구매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그 의료보험은 아주 비싸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보험회사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치료비를 낮추고 운영비를 줄이거나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가장 건강한 '고객들'을 가입시키려고 경쟁을 벌일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238)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의 증가에 맞서서 모든 형태의 소득에 동등하게 누진적 소득세를 매기고 그리고 여기에 정규적인 상속세까지 배치한다면, 기업 이윤에 대한 조세는 그 중요성이 줄어든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법인세를 낮춘다고 해도 이것이 꼭 공공부문의 자금 불균형을 낳거나 사람들의 소득 및 자산 불균형이 위험할 정도로 증가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법인세를 낮추면 또한 기업 부문의 자본 기초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어 기업들이 부채에 의존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법인 기업들에 대한 조세의 그 으뜸가는 목적은 투자를 장려하는 시스템을 조직하는 것이어야 한다."(222-3) "강력하고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정부는 튼튼한 수입을 필요로 하며, 이 수입은 오로지 광범위한 조세와 누진적 소득세 체제로 최고 구간 한계세율이 50퍼센트에 근접하거나 그를 훌쩍 넘도록 만들어야만 제대로 보장될 수 있다."(252)


"경제성장은 분배가 더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며, 소득이 낮은 이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통하여 소비를 늘리도록 해주는 분배를 요한다. 그렇지 않고서 소비수요를 충분히 성장시키려면 일부 임금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은 부채를 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서브프라임 위기를 겪은 이후, 명백히 막아야 할 사태임이 분명해졌다." 사람들은 일자리와 소득이 불확실해질수록 "가정경제 면에서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당장의 소비수요는 더 낮아진다." 또한 소득분배는 국민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몫에 달려 있는데, 이것은 최근 몇십 년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하락한 바 있다. 이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도 금융체제의 권력이 점점 커져서 더 높은 이윤 마크업을 강제할 수 있었다는 점을 반영한다. 만약 안정된 성장을 얻고자 한다면 임금이 차지하는 몫을 다시 올려야만 하며,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금융시장의 개혁을 통하여 이뤄져야 한다."(257)


"지난 몇 십 년간 금융시장 규제의 개혁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규제 당국조차 효율적 시장이라는 가설에 대한 신앙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규제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270) 그러나 현재 우리가 처한 지구적 금융 체제는 그에 걸맞는 지구적 관리를 필요로 한다. 한 국가의 규제를 피해서 다른 나라로 이전할 수 있는 규제 차익이 가능해지면 "은행들과 여타 금융시장 행위자들은 당연히 가장 규제가 가벼운 법체제나 장소로 활동 거점을 옮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림자은행 체제'라는 것이 생겨난 이래 지난 몇십 년간 목도해온 바이다. 그림자은행 체제는 여러 나라의 내부로부터 생겨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반적으로 규제 수준이 낮은 나라로 여러 거래를 이전함으로써 생겨나기 때문이다."(272)


국제적 자본이동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고정환율제를 쓰든 변동환율제를 쓰든 시장의 힘만으로는 지구적인 경제 안정과 번영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찍이 케인스는 "원칙상으로는 고정환율이지만 국가들 간에 경상수지 불균형이 출현하게 될 경우에는 새로 조정이 가능한 환율체제를 제안한 바 있었다. 이렇게 환율은 기축통화와의 등가를 중심으로 일정한 폭으로 오르내리게 되지만 그 진폭은 가급적 적어야 한다. 국가 간 경상수지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의 조정 메커니즘으로 케인스가 그렸던 것은 흑자를 본 나라에서는 경기부양 정책이, 적자를 보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긴축정책이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나아가 케인스는 "적자국과 흑자국 모두에 대칭적인 조정과정을 장려하고 강제하기 위해서 경상수지 적자를 보는 나라들이나 흑자를 보는 나라들이나 모두 일정한 징벌적 조세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였다."(295-6)


"한 나라의 국내 통화를 국제 통화로 그대로 쓸 경우 그 통화를 쓰는 나라들은 상당한 이점을 누리게 된다. 이 나라들은 자국 통화로 외국에서 차입을 해 올 수 있으며 자신들 대외무역의 큰 몫을 자국 통화로 거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들의 지폐와 주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며 심지어 통화가 미약한 나라에서는 그 나라 통화를 밀어내기까지 하므로, 이를 통해 상당히 높은 소위 '화페주조세(seignorage)'의 이윤을 실현할 수가 있다. 하지만 불리한 점들도 있다. 그 하나는 각국 중앙은행들과 민간의 경제행위자들이 자신들의 화폐 자산을 보유할 때 대부분 국제통화로 보유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투자는 단기 투자이며 그 결과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준비통화 몇 가지가 함께 쓰이는 특징의 통화체제에서는 통화에서 통화로 자산을 재구조화하는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302)


"그러한 재구조화가 벌어질 때마다 그 통화를 발행한 나라는 외부에서 비롯된 경제적 혼란을 겪게 되고 그 여파로 통화 발행국만이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가 부정적 효과를 입게 된다. 더욱이 국제통화를 발행하는 나라는 또한 그 통화에 대한 높은 수요 때문에 끊임없이 자본이 유입되는 결과를 보게 되며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환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이에 따라 지속적이고도 높은 경상수지 적자에 봉착하게 되며 이는 다시 국내 경제의 성장에 질곡으로 작용한다. 또 그런 나라가 적절한 통화정책을 추구해줄 것이라는 보장도 있을 수 없다." 달러 지배가 초래하는 위기를 "피하기 위한 현실성 있는 구상 하나는 IMF가 국제통화를 창출하되 이는 각국 중앙은행들 간의 거래에만 쓰이도록, 그리고 그들 간의 국제적 준비금으로만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의 이점은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안정된 준비통화를 갖게 된다는 데 있다."(303-4)


#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성장을 위한 세 가지 질문

1. 우리는 어째서 이미 우리가 달성한 생산수준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경제성장을 원하는가?

- 인류의 대다수는 아직 빈곤선에 머물러 있으며, 부의 재분배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2. 환경 기반을 파괴하지 않고도 지속 성장이 가능한가?

- 장기적으로 재생불능의 투입요소를 사용하지 않는 생산과 소비는 불가피하며, 여기에 필요한 기술혁신 가능성은 낙관적이다.

3.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를 실제로 찾아낼 수 있는가?

- GDP 측정 방식을 바꾼다. 즉, 소비재 중심의 재화와 서비스 측정을 친환경, 건강, 육아, 오락, 돌봄 등의 서비스 측정으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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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없는 자본주의 - 파괴와 혁신의 역사
조이스 애플비 지음, 주경철.안민석 옮김 / 까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자본은 대개 무엇인가를 생산하여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서 사용될 때에 자본이 된다. 그런 사적투자의 원칙과 전략이 지배적인 때가 되어야 비로소 '자본(capital)'에 '주의(ism)'를 붙일 수 있다." 혁신이 관습을 이기기 위해서는 "행운을 동반한 많은 요소들이 필요했다. 결의에 차 있고 단련된 개척자들은 원래의 질서로 복귀하라는 명령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뿌리를 내릴 때까지 지속적으로 혁신을 추진해야 했다. 그 과정은 작은 변화가 계속 누적되어 결국 큰 변혁을 일으키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제방에 작은 구멍이 뚫려서 그 안에 갇혀 있던 엄청난 에너지가 일단 분출되기 시작하면 다시는 그 구멍을 메울 수 없는 현상과 유사했다."(15-6) 16세기 영국에서는 초기의 사업적 성공이 지속적인 다른 혁신들로 이어졌는데,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자본주의의 발생은 민족적 우월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발적 사건과 우연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23)


스미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란 '거래하고 교환하려는' 사람들의 보편적 성향에서 자연스럽게 출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제발전이 그런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촉진시켰다." 19세기의 사회 혼란을 목도한 마르크스는 "그런 강제력을 새로운 계급관계의 형성에서 찾았다. 그것은 생산활동 과정에서 서로 공유하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사람들이 연합하는 것이다. 베버는 진보적인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새로운 가치, 관습, 사고방식이 어떻게 전적으로 다른 생활 리듬과 도덕적 어휘를 가지고 있었던 전근대 유럽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베버의 결론은 자본주의가 "소위 '자본주의 정신'이란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예기치 않은 부산물"이라는 것이었다.(24-6) 자본주의는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투자자들의 요청에 부응하는 경제관행들에 뿌리내린 체제"로서, "단순한 경제체제가 아니라 문화체제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요인들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36)


자본주의를 만든 변화를 추적할 때, "구례의 상업관행과 산업생산의 혁신을 구분"해야 한다. "교역 루트와 파트너의 확대가 가지는 중요성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자본주의 역사에서 교역에 대해서 언급해야 할 핵심은, 그것이 자본주의 이전에도 수 세기 동안 존재했으며 또한 자본주의 없이도 꾸준히 번성했으리라는 점이다." 17세기 중반 새로운 교역로가 열렸을 때, "수천 년 동안이나 지속되어온 생산방식을 변화시킬 놀라운 기계들이 연달아 발명되고,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관한 새로운 설명이 등장하여 오랫동안 사람들이 믿어온 전통적 지혜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당시 사람들이 예측했으리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43) 저자는 "신세계의 발견과 자본주의의 출현을 연결지어서 생각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통념을 깨고자 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교역의 확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다른 태도와 기술들을 필요로 했다."(65)


"활자의 발명으로 인쇄비용이 하락했고, 일종의 출판시장이 형성되어 탐험의 소식들을 전 유럽에 전파했으며, 그리스의 천문관측의와 나침반은 대양항해를 뒷받침했고, 이탈리아의 복식부기는 상인들의 이윤관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발전들이 모두 산업화에 기여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다만 자본주의 발전에 유리한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었다. 자본주의는 식량을 재배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 다른 차원의 사회적 역동성과 혁신을 필요로 했다." 그런 점에서 영국은 주변국들과 다른 길을 개척했다. "영국 정부는 철저히 귀족들을 장악했지만, 그 귀족들 가운데 상당수가 새로운 기업활동에 열광적으로 참여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귀족들이 농업개량을 후원했다는 사실이다. 농업의 발전은 얼마나 많은 노동자와 자본을 다른 경제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결정했다."(66)


기근이 일상적이었던 전근대 시기까지 "곡물은 가장 높은 가격을 찾아서 자유롭게 유통되는 상품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차지농이건 자영농이건 지주이건 간에 농부가 곡물을 재배했다고 해서 그 수확물을 진짜로 소유하지는 못했다. 그는 단지 곡물이 밭에서 시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보살피는 사람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밀가루를 빻는 제분업자와 빵을 굽는 제빵업자는 정해진 방식에 따라서 마무리 공정을 진행하여 빵이라는 최종적인 결과물을 지역의 순회재판소에서 정한 가격에 판매했다."(68) 17세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대략 80퍼센트의 주민들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냉혹한 통계치를 바꾸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다."(70) 식량가격이 떨어져야 "지주나 도시 부유층이 아닌 사람들도 공산품과 수입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은, 기근으로부터 영구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이 필수적인 변화들이 유달리 관습에 집착하는 농촌 공동체에서 시작되어야 했다는 사실이다."(82)


"네덜란드의 일부 농민들은 매년 경작지의 3분의 1을 휴경하는 오래된 중세의 관행을 중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경작면적을 3분의 1 가량 늘렸다. 휴경지를 없애고 땅을 네 부분으로 나눈 다음 계절에 따라서 곡물, 순무, 건초, 클로버 순으로 돌려짓기를 했다. 클로버는 토양에 질소를 공급한 후 가축의 사료로 이용되었다. 성장의 선순환이 쇠퇴의 악순환을 대체했다. 몇몇 지주들과 농민들이 이런 생산성 향상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이제 역사상 최초로 기근의 경제로부터 영구적으로 벗어나고 있었다." 일부 영국 농민들은 "네덜란드식 4포제(four-field rotation)를 모방한 반면, 다른 이들은 업앤드다운(up-and-down)식 경작을 받아들였다. 이 경작방법은 지력이 가장 좋은 땅에 3-4년 동안 곡물을 경작한 다음 5년간 방목지로 활용하는 식이었다. 이 기간 동안 가축의 분뇨와 질소고정 식물들이 다시 지력을 회복시켜주었다."(85-6)


농업개량과 시장 확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연이은 풍작은 지적인 측면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변화를 덜 위협적으로 생각했고, 자연에 덜 굴종했으며, 권위에 순종하는 경향도 줄어들었다."(91) 도덕주의자들은 여전히 "공동체 경작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상호간의 도리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 새로운 농업기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에 강한 반론을 제기했다. 그들은 농부가 융통성 있게 목초나 곡물을 재배하고 방목지에 물을 대며 자신만의 윤작을 시행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들이 제기하는 이상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형제애를 기르는 것은 지혜와 통찰, 기율과 지성을 사용하여 자연의 부를 늘리려는 개개인의 노력에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94)


"농업개량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났지만, 사실 그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었다. 역사 인구학자들은 출생과 사망의 증감과 함께 곡물가격의 등락을 재구성하던 중 영국 경제사에서 결정적인 기준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1648년에서 1650년 사이에 지독한 흉년이 발생한 다음 곡물가격이 치솟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망률에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 곡물가격이 이따금 등귀騰貴하더라도 기근이 재난으로 번지는 일은 없었다." 농업생산성과 더불어 구매력도 증가하여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는 다른 곳에서 식량을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의 네 기사 가운데 하나는 이제 영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엄격한 사회질서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조용히 사라진 것이다. 그후에도 잔존한 일련의 사회적 관행들 역시 서서히 쇠퇴해갔다. 기근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영국은 1819년에 마지막으로 대기근을 경험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결정적으로 달랐다."(95-6)


"사회변화가 서서히 일어나는 주된 이유는 새로운 것은 반드시 문화적 형태로 통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현과 토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사람들이 혁신과 그 영향을 평가하고 그것이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찾아내며, 또 그것이 공동체의 다른 측면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101)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죄악에 물든 존재였다. 인간의 본성을 그런 식으로 본다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시장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관한 새로운 진실은 스미스의 견해를 뒷받침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 새로운 관념들은 "이미 상당 기간 존재했으므로 스미스는 그것들을 당연시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새로운 관념들이 보편적 진실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것이다."(104)


17세기 초반, 경제활동의 중심 이데올로기는 제로섬 가정에 근거한 중상주의였다. 즉, 일국의 부는 수입보다 수출이 많을 때 생겨나며, "화폐는 그저 수동적으로 상품이동의 반대방향으로 이전될 뿐"이라는 주장이다.(110) 무역차액론을 반박하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국내 수요를 진작시켜 국부를 창출한다는 새로운 견해는 "소비가 실제로 경제발전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정말로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엘리트들은 너무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경멸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이런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보통 사람들은 고집 세고 게으르며 조잡하다는 낡은 생각이 하층민에 대한 상류층의 사회적 통제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실제로 18세기에 이르면 노동자들로 구성된 "거대한 국내 소비자층이 영국의 상업 팽창을 가능하게 하고 또 시장에 의존하는 대단히 정교한 물질문화를 자극했다."(119-20)


"명심해야 할 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충동적인 인물들과 달리, 새로운 영국의 소비자들은 각자의 환상을 즐기기 전에 고된 노동규율에 적응해야 했다는 점이다. 그러고 나서야 욕망에 대한 호소가 억제와 조심스러움에 대한 요구를 대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방식으로 자본주의는 옛 사회윤리를 제압해갔다."(121) 영국인들은 시장을 "면대면 흥정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계약이 이루어지는 보이지 않는 실체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18세기를 거치면서 가격, 수요, 무역정책 등에 관한 저술들이 상당히 정교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화폐, 식량, 토지는 특별한 지위를 상실하고 가격과 비율에 따라서 평준화되었다. 거래 당사자로서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믿음은 인간이 본래 불평등하다는 널리 퍼진 믿음을 교묘하게 약화시켰다. 머지않아 도덕과 고정된 신분제도의 수호자들도 교환 가능한 시장 참여자들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관념을 수용해야만 했다."(129)


"17세기 후반의 정치는 유럽의 무역 패턴에 변화를 가하여 자본주의의 역사를 바꾸었다. 왕조 간의 격렬한 경쟁은 영국과 프랑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및 네덜란드, 스페인과 영국, 프랑스와 러시아 및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 내 영방국가(嶺邦國家 : 독일과 이탈리아가 민족국가로 성장하기 이전에 각 지역이 분할되어 독립 주권을 누리던 지방국가)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 국가들은 1689년부터 1815년까지, 총 63년 동안 8차례에 걸쳐서 다양한 조합을 이루어가며 서로 전쟁을 치렀다. 이런 적대행위들로 인한 한 가지 중요한 결과는 그 이전 두 세기 동안 상당히 증가했던 유럽 내 교역의 감소였다." 유럽 열강들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면서 "일종의 딜레마가 발생했다. 교전국가들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와 신세계에서 부를 수취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수익성 있는 교역을 통제하려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면 그것이 더 큰 호전성을 유발했던 것이다."(139-40)


자본주의의 새로운 점은 "전대미문의 규모로 상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야만성이었다."(140) 아메리카의 노예제 플랜테이션에 "자본을 투자한 사탕수수 경작자들은 그들의 노예와 토지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빠른 이윤 회수를 위해서 지력의 쇠퇴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설탕으로 버는 이윤은 엄청났고 플랜테이션 소유주들 또한 지독히 잔인해서 노예들은 문자 그대로 죽도록 일했다. 카리브 제도의 노동력은 10년에서 13년 주기로 교체되어야 했다."(147) 일단 노예제가 정착하면, "아프리카인을 비난할 만한 사항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들의 검은 피부는 검은 악마, 암시장, 암흑가 같은 경멸적인 심상과 표현들을 연상시킨다. 여기에는 또한 놀랄 만한 순환논리가 작동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노예제에서 발견하는 매력적이지 않은 특징들─게으름, 무례, 아둔함, 무기력─은 다시 노예화를 정당화하는 데에 동원되었다."(152)


자본의 가혹한 착취는 유럽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 세기 넘게 지속된 산업혁명기 동안, 영국에서 작업장 내 변화의 속도와 규모에 반대해서 발생한 직접행동은 400건이 넘었다. 재산의 파괴는 지주들과 제조업자들, 금융가들과 상인들의 무자비한 대응을 불러일으켰다." 1846-1848년에 발생한 아일랜드 기근사태를 보면, "수십만 명의 남녀노소가 굶주리고 있었지만, 아일랜드의 곡물은 번영하는 잉글랜드로 수출되었다. 왜냐하면 부재지주가 소유한 토지에서 생산된 식량을 경작자가 소비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은 종종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완화시켜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업무의 균등화, 항시적인 소음, 사고발생에 대한 끊이지 않는 두려움 등으로 인해서 육체노동을 더 힘든 고역으로 만들었다. 기계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계 소유주들이 자신들의 투자자본을 통해서 최대의 이윤을 얻고자 했기 때문에 강도 높은 노동이 일반화되었다."(173)


1789년, 미국은 13개의 반半자치주들을 모아서 단일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헌법을 도입했다. "미국의 자유주의 사회의 기반을 놓은 것이 헌법이라면 자유주의 사회의 기틀을 짠 것은 기업 중심의 자유경제였다. 헌법의 비준 이후에 새로운 경제질서가 형성되었고 영국이 지배하던 경제질서는 자취를 감추었다. 토지와 신용에 대한 제국의 지배를 제거함으로써 수천 명의 행위자가 큰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났다. 정부권력을 탈중앙화하겠다는 제퍼슨의 의지는 농촌지역에도 기회를 부여했다."(198) 공화국의 건설과 함께 "예기치 않은 속도로 확산된 민주주의는 젊은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영국으로부터 해방되고 식민지를 지배했던 계급의 정치권력이 사라지자,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목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제퍼슨과 그 후임자들이 규제를 풀어버린 경제 안에서 그들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었다."(203)


"미국에서 민족주의가 경제발전을 장려했다면 독일에서는 서로 다른 경제체제들을 근대화하는 작업이 민족형성의 수단이었다." 독일 지역의 "민족 만들기는 경제발전을 위한 노력에 도덕적, 낭만적 그리고 미학적인 호소력을 부여했다."(189)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단일 무역 공동체를 결성하는 와중에,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여 독일 통일을 한걸음 더 진전시켰다. 예전에는 경제가 강하거나 약하다고 표현되었지만, 영국이 생산성에 대한 기존의 기준으로부터 점점 더 빠르게 멀어지면서 경제는 선진적이거나 후진적이라고 표현되었다." 이제는 경제가 "발전 혹은 퇴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대가 팽배했다. '퇴보'는 '전통'과는 다른 느낌을 전달했다. 경제적 후진성 개념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프랑스, 영국 사이의 경쟁을 격화시켰다. 역사는 곧 진보를 향한 움직임이라고 보는 직선적인 관점에 매우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 관점이 야기한 최초의 충격을 이해하기 힘들다."(193)


"자본주의하에서 저축을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리고 투자자들을 손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했다. 유럽에는 제대로 동원하기만 하면 산업화에 이용할 만한 돈이 충분히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은행이 필요했다. 은행은 저축하는 사람들을 투자자로 바꾸어서 자본이 산업계로 흘러들어가도록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209) 법인이라는 법적 형식만큼 산업 금융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없다. "법인은 기업의 소유자에게 유한책임을 부과한다. 법인(法人)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상의 인간을 만들어서 세금을 내고, 회사 이름으로 고소해서 빚을 받아내고, 반대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는 주체로 내세운다. 법인은 돈을 빌릴 수 있고 돈을 모으기 위해서 일반 대중들에게 주식을 팔 수 있다." 법인은 인공적이기 때문에 "파트너십이 내포하고 있는 해체 위험성을 없애줌으로써 기업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다."(214)


"자본주의는 경제활동에 전대미문의 자유를 부여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역사는 개인의 도전 이야기로 가득하다. 과학과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은 19세기 기업가들에게 방향을 제시했으며, 그들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다듬어서 자신의 상업적 가능성의 실현에 이용했다. 기업가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서 몇몇 사람들이 자신만의 거대한 경제적 영역을 형성하게 되었다." 철도계의 밴더빌트, 철강업계의 카네기, 석유업계의 록펠러 같은 "산업계의 리바이어던은 전제군주와도 같은 권력을 가졌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 초강력 경쟁자들이 경쟁을 감소시켰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시장 점유율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이 운영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거대해진 탓에 이제 이 기업들은 거대한 법인회사로 발전했고, 이런 형태의 기업이 20세기의 자본주의를 특징짓게 된다."(224-5)


"미국인들은 모든 시민이 평등하다는 이상을 열렬히 숭배했지만 일반적으로 부의 불균형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보통 사람의 옹호자를 자처하는 제퍼슨은 "연방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부를 소유한 엘리트 집단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241) 미국에서 백인 집단의 균질성은 "소비재의 대량시장화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현상을 가능하게 했다. 많은 미국인들은 차별화를 시도하기보다 이웃이 가진 것을 구입하기를 좋아했다. '존슨 네와 같아지기'는 차별화의 노력이 아니라 동질성의 추구였다. 사람들은 친구가 가진 것을 자신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동질적인 중간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매우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선사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대량생산에 매우 적합했다."(247) 소비재의 유혹은 필요가 아니라 욕구에 따르는 새로운 소비 패턴을 창출했고, "회사들은 소비자의 취향, 곧 어지러운 속도로 질주하는 대중의 변덕과 씨름해야 했다."(249)


"20세기 초에 미국이 눈부신 속도로 다른 모든 국가들을 앞지를 때, 미국식 대량생산과 경영조직으로 인해 거침없는 발전은 자본주의적 기업의 논리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이런 전통적인 해석은 사실을 오도한다. 미국 기업들의 합병과 재조직은 필연적이지도 않았고, 또한 더 큰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게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적 환경과 사회적 가치의 산물이었다. 세 가지만 들어보도록 하자. 약한 정부, 싸고 풍부한 노동력, 표준화된 상품을 수용하는 일반 대중. 미국인들은 모양도 비슷하고 맛도 비슷한 값싼 물건들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역할에 기꺼이 만족했다. 표준화된 제품들에 대한 이런 수용성은 회사들이 대량생산 과정에서 가격절감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든 요인이었다. 이는 구매자들이 여전히 정교한 수제품들을 선호했던 유럽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반응이었다."(290-1)


"대공황 이전까지 진보는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미국 경제는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더 큰 정도로 소비자들에 의존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계절적 성격이었던 실업은 이제 영구적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감을 잃고 구매를 중단했다. 저축과 은퇴의 계획은 폐점, 퇴거, 도산으로 변모해갔다. 가족 구성원 전체가 실업상태에 놓였다. 각 민족집단별 상호부조협회의 자선 네트워크와 교회 복지사업은 한계점까지 내몰렸다.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은 경제가 불황에 접어들었을 때 개인적인 구제책에 의존해왔는데, 대공황은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다."(303) 어디에서나 가혹하고 장기적인 고통을 안겨준 대공황은 "경제가 스스로를 교정하는 내재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대공황은 "통화, 신용, 상품의 흐름을 안정시킬 (새로운) 메커니즘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306)


"전후 각국의 지도자들 앞에는 세 갈래 길이 놓여 있었다. 그 길은 각각 '지시의(indicative)' 길, '명령의(imperative)' 길, '정보제공의(informative)'의 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첫 번째 방법에서 지도자는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방향을 제시한다. 두 번째 방법에서 지도자는 명령을 한다. 세 번째 방법에서는 시장의 체계화된 언어가 구성원들의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정부 역시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대신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인들은 "정부가 경제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급진적인 계획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루스벨트의 뉴딜을 주도했던 인사들은 정치적 통제에 보다 호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을 거치며 그들은 이내 기업가들로 대체되었다. 소위 '연봉 1달러의 사나이(dollar-a-year man)'라고 불렸던 이 기업가들은 전시의 생산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고, 이런 성공을 통해서 그들은 대공황기에 잃어버렸던 대중들의 신뢰를 되찾아올 수 있었다."(318-9)


# 지시의 길 : 프랑스, 영국, 스웨덴 / 명령의 길 : 소련 / 정보제공의 길 : 미국


"서유럽 중에서도 유럽 대륙에 위치한 국가들은 코포라티즘(corporatism, 국가의 정책결정에 유력 기업이나 단체의 참가를 요하는 정치제도) 경제를 받아들였다. 정부는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서 성장을 이끌고 나갔고, 중앙은행은 실질적으로 벤처자금을 독점했으며, 노조는 법인 이사회에서 노동자들의 대표권을 지켰다. 안정적인 성장은 공동의 목표였다. 이런 특징은 특히 독일에서 가장 뚜렷했다. 나치에 대한 경험 때문에 사회주의자와 대산업가를 포함한 거의 모든 독일인들이 강력한 국가를 두려워했다."(325) '초국가 연합'이라는 구상은 1951년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ECSC) 창설, 1957년 유럽 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 EEC) 탄생,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한 유럽 연합(European Union, EU) 출범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최초 12개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럽 시민권이 탄생했다."(326)


"전후 경제의 또다른 새로운 특징은 급격한 기술변화였다. 기업가들은 다음에 치고 나갈 경주마가 누가 될 것인지 끊임없이 살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엉뚱한 경주마를 찍을 위험이나 예상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실현될 위험을 안고 있었다. 새로운 탄생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것을 파괴한다. 기존의 것은 대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했고 생산 및 판매 직원들 모두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이런 파괴의 과정은 기업가들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352) 노동의 미래 역시 밝지만은 않았다. "노동자들을 탈인격화하는 경제분석 용어들로 인해서 노동의 승인을 위한 투쟁은 더욱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분석에서 노동은 단지 사업의 주요 구성요소 중 하나, 즉 자본 및 토지와 한묶음일 뿐이었다. 이런 용어는 미묘한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탈인격화시켰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물질요소 사이의 엄청난 차이점을 모호하게 만든 것이다."(358)


"자본주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아마도 변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는 점일 것이다." 급격한 변동 그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 요소가 되었으며, 자본주의는 "누가 이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자기지속적인 체제로 굳어졌다."(368) 번영의 시대를 이끈, "전후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시너지 효과는 1973년을 기점으로 붕괴했고, 그후 가변성과 유동성의 시대가 열렸다."(412) "자본주의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자본주의자들의 행동은 반복된다. 위기가 임박했음에도 그것을 막으려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누구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가 어떤 성질을 강화시키는지 말해준다. 그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낙관주의이다. 자본주의 '정신'은 자신감으로 가득찬 세일즈맨의 정신에 다름 아니다.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은 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가능하면 쉬운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에만 몰두하면 위기와 공황, 대폭락은 불가피해진다."(452)


"(자본주의) '체제(system)'라는 단어에 함축된 의미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하나의 통합되고 조직된 체제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시장에서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관행과 제도의 집합이다." 자본주의적 성장은 "혁신에 의존하는데, 혁신은 현재의 상황(status quo)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자유시장 체제는 흔히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를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시민들'은 '나, 개인'과 상충하는 개념이 된다. 자본주의는 성장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술적 경이를 필요로 하지만, 새로운 기술의 응용은 노동력, 원자재, 소비자, 법적 보호 그리고 평화를 확보해주는 전제조건인 사회적 안정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멋지게 양립할 수도 있지만, 종종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다투는 연인들처럼 행동한다."(4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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