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21세기 국제질서 맥락으로 이해하기 - 패권 전환기 속 대한민국의 미래
정하늘 지음 / 국제법질서연구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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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흔히들 ‘세계화globalization’라 불리는 범세계적 통합이 지금의 수준까지 이뤄진 시기는 인류 역사상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러한 세계적 통합은 사실 현행 국제질서의 산물이다. UN, WTO, IMF, OE­CD, SWI­FT, UCP, ISO, IS­DS…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런 영문 약어들은 국제사회에서 운용되는 다양한 체제와 제도를 상징한다. 국제사회의 여러 체제regime는 국가 간의 합의나 동의, 협력으로 구성된다. 체제 안에 조직된 제도institution는 회원국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국제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에 의해 주로 관리된다. 세계의 통합은 국제적인 체제와 제도, 기관을 중심으로 지난 30여 년간 세계화가 꾸준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세계의 통합은 최근 몇 년 사이 느려지거나 멈추었고, 심지어 여러 방면에서 후퇴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누렸던 것과 같은 통합된 세상이 향후 수십 년간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 이유는 오늘날 국제질서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3)


제2장 패권의 역사, 그리고 질서의 진화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세계패권국인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질서라고 해서 일극적一極的, unipolar 국제질서라 불리기도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현상 변경 세력은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체제uni­po­la­ri­ty를 다극체제mul­ti­po­la­ri­ty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국제사회의 일극체제를 다극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은 미국이란 유일 패권국이 주도하는 시대를 끝내고 복수 또는 다수의 강대국이 선도하는 국제질서를 구현하겠다는 의미다. 현실적인 국제질서는 이처럼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힘’의 숫자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데 현행 국제질서에는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힘의 숫자와 무관한 명칭도 붙어 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아직도 국제사회의 대세적 질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일극적 패권이 쇠퇴함에 따라 자유주의 국제질서도 함께 훼손되고 있다. 29)


제3장 팍스 아메리카나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미국이 주도해온 오늘날의 국제질서에서 국제사회의 통합은 경제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뒀다.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은 유사 이래 가장 자유로운 상태가 됐다. GATT 체제의 후신後身으로 1995년 출범한 WTO 체제는 회원국 간 관세장벽과 서비스무역 장벽을 대거 철폐했을 뿐 아니라 모든 회원국을 상호 간에, 그리고 자국민보다 차별하지 않을 공통된 의무까지 부과함으로써 느슨하게나마 세계 경제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 권리 중 하나인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국제규범도 다수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WTO 협정(그중 T­RI­PS 협정)은 저작권co­py­ri­ght, 저작인접권re­l­at­ed ri­ght­s, 상표권t­ra­de­ma­rk, 특허권pa­te­nt­s, 산업디자인in­du­st­ri­al de­si­gn, 지리적 표시geo­gra­phi­cal in­di­ca­ti­on 등 다양한 지적재산권을 광범위하게 보호하고 있다. WTO 협정의 영향으로 세계 각국의 지재권 관련 규정들도 많이 유사해졌다. 국제 거래에서의 예측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97)


경제 및 기술 분야에서 국제교류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는데 필요한 국제표준in­ter­na­tio­nal s­ta­nd­a­rd이 자리 잡은 지도 오래되었다. 여러 기준들 가운데 공인되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기술적 기준을 ‘표준’이라고 한다. 현재 대다수 국가는 상품, 서비스, 과학, 기술, 산업 등 방대한 분야에 있어 자체적으로 사용되는 표준을 갖추고 있는데, 각국의 표준은 국제표준화기구“ISO”,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등 관련 국제기구가 보급한 국제표준과 연동되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국제교류를 가능케 한다. 자본의 이동도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으로 자유화된 상태다. IMF와 세계은행은 각국의 통화cur­ren­cy 흐름을 감독하고 국경을 넘어 이뤄지는 투자cross-bor­der in­ve­st­me­nt를 촉진한다. 오늘날 국제금융은 전 세계 대부분의 은행이 가입한 국제은행간통신망“SW­I­FT,”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과 같은 국제금융시스템을 통해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97-8)


계약법, 회사법, 금융법, 경쟁법 등 국제 거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각국의 경제법들은 적어도 주요 원칙에 있어서 만큼은 유사해졌다. 그러다 보니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Con­tr­a­ct­s f­or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이 규율하는 상품거래뿐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M&A 등과 같이 투자유치국의 고유 법제에 구속되는 투자거래조차 큰 틀에서 대동소이해졌다. 범용성 있는 영문 템플릿tem­pla­te에 개별 거래에 따른 특유사항들만을 반영하여 수정한 국제계약서에 기초하여 투자거래를 진행하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제 거래에서 발생한 분쟁은 당사자들의 국내 법원에서 소송으로 해결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국제중재in­ter­na­tio­nal ar­bi­tra­ti­on라는 사적 절차를 통한 해결이 선호된다. 중재판정부가 내린 판정은 뉴욕협약이라는 다자조약에 의해 전 세계 168개국에서 집행력이 담보된다. 그 결과 국제 거래에 대한 진입장벽이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98-9)


제4장 미·중 패권 경쟁의 시대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함으로써 사실상 전 세계를 새로운 시장으로 얻게 되었다. 모든 WTO 회원국은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거나 철폐에 가까운 수준으로 낮추어야 했고,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중국산 상품을 자국산 또는 제3국산 상품에 비해 차별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됐다.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을 통해 생산된 저가의 중국산 상품은 곧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WTO 가입은 중국의 수출시장을 더욱 늘리고, 수출 장벽을 더욱 낮추고, 중국산에 대한 차별대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 외에도 다른 거대한 혜택을 제공했다. 막대한 규모의 외국인 투자가 그것이었다. 중국의 상품시장과 주요 서비스 시장이 중국의 WTO 가입의정서Ac­ce­ss­i­on P­ro­to­co­l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에게 개방되자 거대한 내수시장을 노리고 전 세계에서 외국인 투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WTO에 가입한 중국은 가입 원년인 2001년을 기점으로 문자 그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39)


중국의 대외정책이 뚜렷하게 패권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2010년경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배경이 얽혀 있으나,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금융위기를 통해 미국의 쇠락을 확인하고, 또 세계가 중국에 손을 벌리는 모습을 보며 중국인과 중국 정부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유교적 천하 질서. 즉 중국이 유일 대국으로서 중원에 자리 잡고 변방의 소국들이 이를 지지하는, 중국을 정점으로 한 위계적 국제질서를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대안으로 내세우기 시작한 시점도 대략 이 무렵이다. 두 번째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된 해가 바로 2010년이란 점이다. G2로 올라선 직후에도 중국의 경제 규모는 미국의 40%를 밑도는 수준이었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WTO 체제는 여전히 굳건했고, 중국은 다자무역체제 최대의 수혜자로 계속 남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140)


마지막 세 번째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군사적 균형이 2010년을 기점으로 결정적인 전환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2010년, 드디어 대함탄두미사일an­ti​-sh­ip bal­li­s­t­ic mis­si­le 둥펑东风 21D“DF-21”가 실전 배치되었다. 그러자 상황은 근본적으로 뒤바뀌었다. 중국은 DF-21을 중심으로 미 항모전단의 중국 근해 접근을 차단하는 소위 ‘반反접근·지역 거부 전략’“A2​/AD”, an­ti​-ac­ce­ss, ar­ea de­ni­al을 수립했다. A2​/AD 전략의 골자는 전역戰域 내에서 미 해군과의 무력 충돌 발생 시 대함탄도미사일을 쏟아부어 항모전단을 일제히 타격함과 동시에 인민해방군의 해군력과 공군력을 전력 전개하는 것이다. A2/AD 우산 아래서 중국 인민해방군과 미 제7함대가 총력으로 격돌할 때의 결과는 예측이 어렵지만, 적어도 미 항모전단의 일방적인 공격 앞에 중국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은 끝났다고 보아도 좋다. A2/AD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큼은 미국이 자랑하는 항모전단은 더 이상 무적이 아니게 된 것이다. 140-1)


중국은 남중국해의 90%에 달하는 수역에 대해 자국의 역사적 종주권을 주장하는 소위 구단선九段線, Ni­ne Da­sh Li­ne이란 해상경계선을 선포한 상태다. 구단선은 대만을 통째로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가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을 대부분 잠식한다. 구단선이 인정되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는 EEZ를 사실상 전부 박탈당하게 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2013년 필리핀은 유엔해양법협약에 근거하여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규정에 따라 설치된 중재판정부에 중국 구단선의 국제법적 효력을 판단해 달라고 제소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중국은 재판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심리 과정에 불참했다. 대신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2014년부터 인공섬을 만들고 석유 시추장비를 설치하여 주변국과의 긴장 수위를 더욱 높였다. 141-2) 


GATT 시절 미국이 자국 시장과 산업 보호를 위해 활용한 안전장치는 반덤핑관세an­ti​-du­mp­ing du­ty, 상계관세co­un­ter­va­il­ing du­ty, 세이프가드 조치sa­fe­g­ua­rd m­ea­su­re로 대표되는 무역구제조치trad­e re­me­dy m­ea­su­re와 수출자율규제“VER,” vol­un­ta­ry ex­po­rt re­st­ra­i­nt였다. 반덤핑관세나 상계관세는 부당한 덤핑이나 보조금의 혜택을 받아 저가로 수입되는 외국 상품으로 인해 관련 국내 산업이 피해를 봤을 때 부과하는 보호관세이고, 세이프가드 조치는 국내 산업에 특히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보호조치다. 이러한 무역구제조치는 저가 수입품으로부터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데 유용한 방어 수단이다. 한편 VER은 수출국이 특정 상품의 수출물량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다. 다만 ‘자율’이란 명칭이 무색하게 물량 제한은 수출국과 수입국 간에 양자 협상을 통해 합의된 물량으로 정해지는 게 보통이었다. VER은 미국이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최강의 도구였다. 147)


1980년대에 들어 미국의 주력 산업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진화하고, IT산업의 발전으로 해외시장에서 자국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할 유인이 커지면서 미국은 한층 진보된 다자무역체제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다. 1940년대에 만들어진 GA­TT로는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과 진화하는 국제경제 관계를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서비스무역 자유화와 범세계적인 지적재산권 보호, 기술 장벽 철폐 등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미국도 무언가를 내놓아야만 했다. 미국의 상품시장을 지키는 안전장치였던 무역구제조치와 VER이 대표적인 협상 대상이 됐다. 그렇게 미국과 개도국 간에 이루어진 타협의 결과물이 신생 WTO 협정의 주요 뼈대를 구성했다. 반덤핑관세 및 상계관세 부과와 관련해 GA­TT보다 훨씬 빡빡한 요건들을 부과한 반덤핑협정 및 보조금협정이 채택됐다. 또한 세이프가드 협정의 채택으로 VER이 원천적으로 금지됐다. 미국으로선 위급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던 VER을 빼앗긴 셈이다. 147)


WTO 체제가 출범하고 미국은 서비스무역과 지적재산권이 중요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 많은 이득을 보았지만, 제조업 산업의 쇠락은 가속되었다. 자연히 미국은 무역구제제도를 활용해 자국 제조 산업의 보호에 나섰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미국이 수입 상품에 적용한 각종 무역구제 조치에 대해 WTO 재판부가 번번히 위법하다는 판정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GA­TT와 WTO의 차이는 단순히 규범의 종류와 범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효성 있는 분쟁 해결 수단이 부재했던 GA­TT와 달리 WTO의 분쟁해결절차는 국제공법 관계에서 가장 강력한 집행력을 담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WTO 재판부가 내린 일련의 판정들은 미국이 WTO 협정을 체결하면서 무역구제제도와 관련해 가졌던 기대를 근본적으로 저버렸다. 미국은 반덤핑과 상계관세와 관련된 피소된 WTO 분쟁에서 높은 확률로 패소했고, 특히 세이프가드와 관련해 피소된 WTO 분쟁에서는 2021년 이전까지 모든 사건에서 패소했다. 148)


WTO의 권능 아래, 약육강식이라 여겨졌던 국제사회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법치주의가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는 황폐화하는 자국 제조 산업과 부상하는 중국을 지켜보는 미국의 인내심이 말라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미국인의 정서는 이미 2010년대 중반에 보호무역주의로 전환되었고, 여기에 트럼프가 적극적으로 편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후보로 내세운 공화당의 정강정책이 무역정책에서의 ‘A­me­ri­ca F­ir­st’를 선언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내세운 민주당의 정강정책도 보호무역주의를 선언하고 있었다. WTO의 최종심을 담당하는 상소기구가 공식적으로 마비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였지만, 미국이 상소기구에 새로운 재판관이 임명되는 것을 저지하기 시작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6년부터였다. 149)


GA­TT와 WTO 협정에는 소위 ‘안보 예외Security Exception’란 조항이 있다. 조치국이 자국의 중요한 안보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취하는 조치에 대해서는 WTO 협정상의 의무가 적용되지 않도록 한 예외 조항이다. 하지만 WTO 회원국들이 안보예외를 남용하여 WTO 협정에 따른 정당한 책임을 회피하기 시작하면 WTO 체제가 형해화될 수도 있다. 그래서 WTO가 출범한 이후에는 조치국이 안보 예외를 이유로 자국의 WTO 협정 위반을 정당화한 사례는 2016년 이전까지 단 한 건도 등장하지 않았다. 국제무역에서 안보와 경제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한 것은 2017년도에 트럼프 행정부가 철강·알루미늄 산업에 대한 안보 예외 보호조치를 채택하면서부터였다. 이때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보호조치를 채택하였는데, 소위 ‘제232조’라 불리는 이 조치 역시 WTO 출범 이전까지는 활발히 사용됐었으나 WTO 출범 이후 약 20년간은 사용되지 않은 조치였다. 155-6)


G2로 성장한 중국의 굴기는 미국이 깔아놓은 자유무역질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바, 현재 미국은 중국을 꺾기 위해 WTO 다자무역체제를 비롯해 스스로 설계한 여러 국제체제와 국제제도를 변경하거나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은 미국의 연성적 세계 패권의 근간이 되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훼손함으로써 세계 패권의 약화 또는 해체를 가속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세계 패권 유지에 집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탈냉전기 미국이 누린 세계 패권이란 처음부터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에서의 한시적 현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국과 다른 나라 간에 한때 현격했던 기술격차도 계속 유지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의 평준화가 이뤄지면,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강대국들이 사방에서 준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장은 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 구축을 노리는 중국과 유라시아에서 지역 패권 구축을 노리는 러시아가 문제지만, 머지않아 인도가 인도양에서 지역 패권 구축을 시도할 것이다. 183-4)


때마침 미국의 국내 정치 상황도 세계 패권의 포기를 종용하고 있다. 미국이 자유무역질서를 유지하는 동안 금융자본과 다국적기업은 국경을 초월해 성장하였으나 국내 제조 산업은 황폐해졌다. 중산층이 줄어들고 부의 편중이 심화했다. 세계화로 큰 피해를 본 미국 내 제조업 노동자의 불만은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도래함에 따라 해외로 이전했던 공급망을 미국으로 리쇼어링할 정책적 필요성까지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전통적인 고립주의가 다시 힘을 얻으면서 ‘세계의 경찰’ 노릇을 중단하라는 정치적 요구가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국력은 모든 영역에서 소진됐고 영향력은 쇠퇴했다. 어차피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허망한 세계 패권과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느라 국력을 소모하는 것은 미국에 있어 현명한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미국은 현재 진행 중인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더라도 팍스 아메리카나를 복원하려 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184)


제5장 우크라이나와 대만해협


대만해협은 미·중 패권 경쟁의 잠재적 승부처가 되고 있다. 2023년 1월, 미국의 전략국제연구센터CS­IS는 그때까지 업데이트된 자료를 바탕으로 총 24차례의 워게임을 실시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미국과 대만, 일본의 연합군은 항공모함 2척과 대형 전투함 20여 척, 전투기 100여 대를 잃는 등 엄청난 손실을 보고서야 중국해군을 괴멸시키고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큰 손실을 봤다는 점 외에도, 미군과 대만군에 더해 일본군까지 참전하고서야 위와 같은 결과를 얻어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제 전쟁에서 일본 자위대가 참전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 2023년 5월 중국이 실시한 워게임에서는 인민해방군이 총 24발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사용해 미국의 제럴드 포드 항모전단을 격침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은 미 해군의 대공 방위시스템을 상대로 80%에 달하는 돌파·명중률을 보였고, 항모와 대형군함을 3발 이내의 명중 타격으로 침몰시켰다고 한다. 221)


만일 미국이 대만해협을 포기하면 중국의 세력권은 제1 도련선을 따라 남중국해 전역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 경우 중국은 남중국해에 선포한 구단선 내 해역 전체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구단선의 지척에는 말라카해협이 있다. 전 세계 해상 운송물량의 20%가 통과하는 말라카해협은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 3대 해상 운송로로 손꼽힌다. 말라카해협까지 통제하게 된다면 중국은 동북아와 중동·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최적의 항로를 틀어쥐게 될 것이다. 그다음 차례는 제2 도련선이다. 제2 도련선의 궤적을 따라 일본과 필리핀을 넘어 괌에까지 중국의 세력권이 팽창하면 서태평양 전역이 중국의 수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다음 목표는 남태평양이 될 것이다. 만약 중국의 해양 패권이 제3 도련선까지 확장된다면, 중국은 하와이 앞바다까지 세력권을 넓힘으로써 미국과 진정으로 태평양을 양분하는 거대 제국이 될 수 있다. 222)


반대로 미국으로선 중국의 세력권이 아예 제1 도련선까지도 확장되지 못하도록 틀어막는 것이 최선이다. 중국의 해군력이 남중국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억누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다름 아닌 중국이 알려주었다. 대함미사일을 주축으로 한 중국의 A2​/AD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미 해군의 항모전단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미국도 남중국해를 포위한 미사일망을 구축할 수 있다면, 앞으로 중국해군이 더욱 많은 항모전단을 꾸리게 되더라도 남중국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남중국해를 포위한 미사일망은 유사시 중국 본토에 설치된 미사일 전력을 타격하여 A2​/AD 우산을 훼손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2019년 미국은, 1987년에 구소련과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에서 탈퇴했다. 이는 중국을 상대로 신형 미사일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되었다. 222-3)


현재 미국과 미국의 동맹 세력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의 무력 충돌이 발생할 시 동원할 수 있는 육상 미사일 전력을 차근차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2020년 오키나와 본섬에 미사일 전력을 배치할 계획을 발표한 이래 규슈九州와 대만 사이에 펼쳐진 난세이南西 제도에 미사일 기지를 대거 설치·확장하고 있다. 난세이 제도는 오키나와 남서쪽 300킬로미터로부터 대만 북동쪽 150킬로미터 지점까지 늘어선 약 2천 5백여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그야말로 중국의 동중국해 진출을 막아서는 천연 해상요새이다. 중국의 제1 도련선과 구단선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해양주권 역시 심각하게 침해하는바, 미국은 동남아 국가들도 남중국해의 대중국 미사일 체계에 포섭하고자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미국이 괌, 오키나와, 필리핀, 난세이 제도 등에 소재한 기지들에 대함미사일들을 대거 배치하면 중국이 계획대로 2035년까지 6척의 항공모함을 확보하더라도 남중국해 제해권을 장악하게 될 가능성은 희박해질 것이다. 223-4)


한편 미국은 그 외에도 다양한 대중국 봉쇄계획을 수립하여 착실히 실행하고 있다. 오늘날 미군은 항모전단 일변도의 전투 수행 방식에서 탈피해 해군과 공군, 각종 육상 무기체계와 사이버 전력, 드론 등 모든 전략자산을 유기적으로 운용해 적을 격퇴하는 소위 다중영역작전mul­ti​-do­ma­in o­pe­ra­ti­on 역량을 실시간으로 함양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육·해·공을 망라하는 대규모 무인 드론 군단을 건설해 중국군을 정량적으로 압도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최첨단 스텔스 전투함이 기함으로서 다수의 무인 드론 함정들을 통솔하는 속칭 ‘유령 함대’의 도입도 가속화하고 있다. A2​/AD에 맞서 미 해군이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 항모전단이 갖춘 현재의 대응체계로도 중국의 최첨단 극초음속 미사일을 종말 단계에서 요격할 수 있다는 평가가 존재하지만, 여하튼 미군은 MD 능력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224-5)


미 해군은 노후화된 기존 함정을 순차적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2027년까지는 함선의 숫자가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대신 2027년 이후에는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동맹국의 전력이 강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만일 중국이 승부수를 던진다면 그 시점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현대화와 대만 통일 준비가 갖춰지는 시점과, 미국과 일본의 남중국해 대중국 대응 전력이 완성될 시점 사이의 매우 짧은 기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기회의 창은 2027년을 전후하여 몇 년 동안만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27년이 시진핑 주석의 3번째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란 점도 중요하다. 미·중 간에 무력 충돌 위기는 쇠퇴하는 기존 패권국이 신흥 강대국을 두려워한 나머지 전쟁을 벌이는 소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아닌, 패권국을 추격할 가망이 없어진 신흥 강대국이 도전을 위한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다급히 승부수를 띄우는, 소위 ‘전성기 함정’에 의해 발생할 거라는 전망이 지난 2021년에 나온 바 있다. 227-8)


제6장 패권국이 없는 세계


많은 사람이 미국의 탈선은 트럼프라는 비주류 대통령에 한정될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본질적 성격은 봉쇄전략이나 다자주의, 자유주의보다 훨씬 오랫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이었던 고립주의i­so­la­ti­on­i­sm에 입각한 시각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행보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그저 자기파괴 행위에 불과했지만, 고립주의적인 관점에서는 합리성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고립주의 정책이란 가능한 모든 국제문제로부터 거리를 두고, 국제기구나 동맹과의 관계 또한 최대한 느슨하게 가져가며, 관세와 같은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해 외부에 대한 경제 의존도 또한 가급적 낮추는 대외정책을 의미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보라.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의 여러 대외정책 기조와 매우 유사하지 않은가? 트럼프는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처음으로 등장한 고립주의자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세계대전 이전에는 미국의 거의 모든 대통령이 고립주의자였다. 246)


고립주의로 전환한다고 해서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처럼 외국의 사정에 마냥 무관심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바다를 면한 지역 패권국이 등장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이 보장해온 항행의 자유가 훼손될 수 있기에, 세계 패권을 내려놓은 다음에라도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패권국이 다른 지역에서 등장하지 못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다만 미국은 잠재적 지역 패권국과 직접 맞서기보다는 해당 지역의 다른 강대국에 힘을 실어주는 균형 전략ba­lan­c­ing을 통해 지역 패권국의 등장을 억누르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역내 패권국의 등장을 막기 위해 미국의 균형 전략에 기꺼이 협력할 것이다. 문제는 잠재적 패권국이 너무나 강해져서 간접적인 개입만으로는 지역 패권국으로의 부상을 견제할 수 없는 경우다. 잠재적 지역 패권국을 억누르기 위해 미국이 직접 나서 경합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세계 패권을 내려놓은 미국은 과연 어디까지 개입하려 들 것인가? 250) 


미국이 탈냉전기에 가졌던 사활적 이해 중 상당수는 2023년 현재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도 미국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중국과 러시아 등의 도발 행위를 억제하는 것이 미국의 사활적 이해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것 또한 미국의 사활적 이해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요컨대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막는 것이 미국의 사활적 이해에 해당함을 밝힌 셈이다. 그런데 중·러를 억제하여 현상 유지를 달성하는 것이 사활적 이해라고 강조하면서도, 무력 충돌에까지는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명시적인 단서를 달아 모호함을 남겼다. 즉, 2022년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사활적 이해에 대한 위협이 반드시 무력 개입을 담보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과 러시아 등의 도발 행위나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와 안전을 해치는 행위 등은 오늘날 미국에 있어 실존적 위협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51-2)


영미동맹은 현존하는 가장 강대한 동맹 세력이다. 영미동맹의 다섯 개 국가(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차지한 영토는 전 세계 육지 전체 면적의 20%에 육박하고, 경제 규모도 전 세계 GDP의 30%를 훌쩍 넘는다. 미국이 포함된 영미동맹의 군사력은 단연 세계 최강이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농업목축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최다 규모의 부존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리튬·니켈·코발트·구리 등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핵심 광물도 풍부하다. 대륙 규모의 국가가 셋이나 포함된 영미동맹은 지리적으로는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로 연결되어 있고, 바로 그 바다를 지배하고 있다. 영미동맹은 미·중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최강의 동맹자산이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영미동맹은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적인 신냉전으로 비화하더라도 확고하게 미국의 편에 설 것이고, 설사 미국이 완전한 고립주의로 돌아서더라도 마지막까지 동맹 세력으로 남을 것이다 258)


일본은 서태평양과 남중국해, 그리고 남태평양에 중국의 해양 패권이 건설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1905년부터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한 1942년까지 서태평양의 해양 패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했던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팽창을 저지할 의지와 역량을 가진 유일한 나라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조공 체계에 진정으로 복속된 적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일본은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중국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는다. 중국을 미국과 동급으로 보지도 않는다. 2021년 4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과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일본을 견제하고자 모테기 도시미쓰 당시 외무상에 “대국 대결에 휘말리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2022년 11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일본 양국은 모두가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있어 중요한 책임이 있는 대국”이라며 일본이 중국과 동등한 대국임을 강조했다. 262-3)


2022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NATO 정상회의에서는 NATO 설립 이후 7번째로 채택된 전략개념인 마드리드 전략개념이 등장했다. 1999년에 개최된 NATO 정상회의에서는 탈냉전기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유화책을 채택한 워싱턴 전략개념이 채택됐었고,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은 중국의 WTO 가입을 지원하여 오늘날의 중국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마드리드 전략개념에서 NATO는 러시아를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중국을 유럽과 대서양의 안보는 물론이고 NATO 동맹국의 방어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체계적 도전sys­te­mi­c cha­ll­en­ge”으로 정의했다. 특히 중국과의 경쟁을 자유·인권·민주주의·법의 지배에 도전하는 야망 및 강압적 정책과의 대결이라 규정한 뒤, 중국에 맞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할 것이라 결론 내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쏘아 올린 공이 유럽이 자유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에 대항하게 되는 결과로 귀결된 것이다. 270-1)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의 세계 패권이 위협받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란이 연대하는 상황을 꼽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위기는 지엽적으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만과 중국 사이에 발생한 지역 문제이지만, 세계적인 관점에서는 미국의 지정학적 봉쇄망을 돌파하기 위한 두 나라의 노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대만해협이 각각 돌파되면 두 나라는 그만큼 지역 패권국 등극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와 대만해협은 패권의 관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반미연대의 또 다른 축인 이란은 중·러처럼 미국의 세계 패권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지만,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을 해체하고 나아가 중동의 맹주가 되길 원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이들 세 나라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276)


브레진스키는 중국-러시아-이란의 삼각 연대는 냉전기의 공산권과는 달리 이념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고충com­ple­men­ta­ry g­rie­van­ce’으로 뭉친 연대가 될 것이라 예언했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은 지정학적 경쟁국이고,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역에서만큼은 러시아와 이란도 지정학적 경쟁국이다. 중국과 이란 간의 협력관계도 중국이 일대일로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의 세계 패권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서로 연대할 필요와 유인이 있다. 오랫동안 미국의 제재에 억눌린 이란에 있어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는 고립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해방구와 같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전면 제재에 노출된 상황에서 중국과 이란의 지원이 없으면 버티기 어렵다. 중국 또한 러시아, 이란과 연대하지 않으면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산을 기대할 수 없다. 즉, 반미연대란 순수하게 이해관계로 결속된 세 나라 간의 전략적 연대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278)


이란의 잠재력과 지정학적 입지가 아무리 중요해도 반미연대의 핵심은 결국 중국과 러시아다. 반미연대의 결속력을 결정하는 것 또한 이 두 나라의 연대일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는 미국을 상대로 한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한은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초강대국의 협력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세계 패권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상수로 남을 수 있다. 언젠가 미국과의 패권 경쟁이 끝난 이후에는 연대할 목적을 상실한 중국과 러시아는 서로 대립하게 될 것이다. 이 예정된 미래는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두 나라가 온전히 협력하는 데에도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소련이 나치 독일에 맞서 연합전선을 펼치면서도 막후에서는 전후 예정된 패권 경쟁에 대비했던 것처럼, 당장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두 나라 역시 미국의 세계 패권이 약해질수록 협력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상이몽을 꾸게 될 수 있다. 283-5)


중간 지대에 속한 글로벌 사우스에 있어 오늘날의 세계는 기회의 장이다. 패권 경쟁이 심화할수록 미국과 반미연대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글로벌 사우스를 회유하거나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아직 인건비가 높지 않은 글로벌 사우스는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을 대체할 만한 생산공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사우스의 입지를 키운 가장 중요한 요인은 누가 뭐래도 자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중추 산업을 위한 각종 원재료와 광물의 공급처로서 오늘날 글로벌 사우스의 입지는 절대적이다. 세계화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든 가장 저렴한 가격에 각종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영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자원 확보에도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를 비롯한 자원 부국엔 기회인 셈이다. 21세기의 지정학적 다툼은 글로벌 사우스와 어떠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유불리有不利가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292-3)


그간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있어 자원은 양날의 검이었다. 자원 덕택에 기초적인 경제를 꾸릴 수 있었던 측면도 있지만, 자원 때문에 착취의 표적이 된 역사도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열강의 식민지로서 말 그대로 약탈 되었고, 세계화 시대에는 다국적기업에 헐값으로 자원을 넘기거나 값싼 노동력을 착취당하기도 했다. 자원 부국일수록 경제발전이 저조한 현상을 일컫는 소위 ‘자원의 저주pa­ra­d­ox of pl­en­ty’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부패한 권력층과 결탁한 외세의 착취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오늘날 인도네시아는 중장기적으로는 니켈의 1, 2차 가공을 넘어 ‘전기차 배터리 허브’가 되겠다는 목표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인도네시아뿐이 아니다. 지난 3차례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에 호된 맛을 본 글로벌 사우스는 패권 전환기를 맞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뇌리에 박힌 쓰라린 과거의 기억은 오늘날 ‘자원 민족주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296-7)


현재 동남아를 위협하는 중국발發 안보 위협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중국이 동아시아 최대의 수원水原인 티베트의 수자원을 통제하면서 발생한 문제다. 중국은 마오쩌둥 이래 남부의 풍부한 수자원을 북부로 끌어다 쓰는 소위 ‘남수북조南水北調’ 정책을 채택하고 치수治水에 힘쓰고 있다. 티베트에서 발원해 베트남·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를 관통하는, 동남아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길이 4천 8백 킬로미터의 메콩강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하나의 위협은 중국의 해양 팽창주의다. 남중국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고자 하는 중국의 야심은 동남아에 있어 거대한 위협이다. 중국은 동남아 국가 중 친중 성향이 강한 캄보디아와 맺은 비밀 협정을 통해 베트남과 태국에 인접한 레암 해군기지를 넘겨받는 등, 남중국해 포위망을 날로 공고히 하고 있다. 아직은 중국이 대만해협을 넘지 못하였기에 당면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대만해협이 무너지면 구단선은 곧바로 동남아 국가들의 실존적 위기로 부상할 것이다. 302)


2023년 2월,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사우디·UAE 등과 협력을 강화하는 데 불만을 품고 중국대사를 초치했던 이란의 라이시 대통령을 베이징에 초대했다. 그리고 다음 달인 2023년 3월 10일, 중국이 이란과 사우디 사이를 중재해 양국 간에 국교 정상화를 끌어냈다는 놀라운 소식이 외교가를 휩쓸었다. 이란과 사우디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한 다음 날 중국 외교부는 중동의 안전과 안정을 촉진하는 역할을 중국이 담당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두 나라 간의 평화가 “지속 가능하다면 환영한다”라는 애매한 코멘트를 내놓았다. 얼마 후 중국 수출입은행이 사우디와의 무역대금 결제를 위한 첫 위안화 대출을 실시하면서 ‘페트로 달러’ 체제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본격화됐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같은 달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이 주도하는 안보 협의체인 SCO에도 가입했다. 적어도 사우디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반미연대에 맞서지는 않겠단 입장을 명백히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행보였다. 311)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쭉 미국 편에 섰던 GCC 계열 중동 국가들이 미국의 동맹 대열에서 이탈하여 다른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기조를 같이하기 시작한 데는 복잡다기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셰일 혁명 이후 ‘탈중동’을 정책 방향으로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발을 빼는 미국의 대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불안을 느낀 중동 국가의 이탈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미국도 탈중동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미국이 과거와 같은 수준으로 중동에 계속 관여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됐다. 사우디와 GCC 계열 국가들은 앞으로도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랫동안 친미 국가였던 수니파 산유국들의 그러한 행보는 단기적으로는 반미연대에 치우친 행보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나 GCC 계열 국가가 반미연대의 일원으로서 미국과 대립하게 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312-3)


21세기 인도의 패권 미래가 장밋빛인 가장 큰 이유는 그 지리적 위치다. 수에즈 운하를 통한 홍해-아덴만 항로이든, 반미연대가 건설 중인 남북 국제교통회랑(페르시아만-오만만)이든 모두가 아라비아해를 통해 인도의 서쪽 바다에서 합류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물류는 이 둘 중 하나를 거치게 되므로, 인도 앞바다를 지나지 않을 수 없다. 수에즈를 통하지 않는 아프리카 동부 지역과 아시아와의 무역 역시 인도 앞바다를 통하는 것이 보통이다. 인도의 영향력은 동쪽 벵골만과 버마해를 넘어 아시아로 통하는 관문인 말라카해협까지 뻗어있다. 인도의 영토에 속하는 약 1천 4백여 개의 섬들 가운데 거의 6백여 개의 섬이 말라카해협과 이어지는 벵골만과 안다만해에 산개해 있다. 유럽과 아프리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를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와 연결하는 모든 항로가 사실상 인도 앞바다를 지나는 것이다. 거기에 남아시아나 중동, 동아프리카에는 굴기하는 인도에 위협이 될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321)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일본-인도-호주 간 일반협의체였던 ‘쿼드’를 전략협의체로 승격하고 IPEF의 발족을 계획하던 미국은 IPEF와 쿼드에서 인도가 중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인도의 셈법은 미국이 바라던 것과는 달랐다. 인도는 ‘미국의 카드’가 아닌 ‘카드 플레이어’로서 독자적인 미래 패권을 추구한다. 인도양과 남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은 미국과 공유하지만, 그저 미국의 꼭두각시가 되어 중국을 전면적으로 적대할 실익은 없다. 인도는 쿼드의 안보적 색채가 강해지는 데 거부감을 나타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도 인도는 UN 차원에서 이뤄진 러시아 규탄 결의에서 기권했다. 동서냉전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비동맹 전통을 유지하며 양측 모두로부터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워낙에 전략적 가치가 높은 인도와의 협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도 역시 중국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이상 미국과의 협력은 필요했다. 323)


다만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전략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뿌리 깊은 비동맹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 냉전기 인도가 고수했던 소위 ‘비연대n­on​-a­li­gn­me­nt’ 정책은 탈냉전기와 패권 전환기에 들어서 소위 ‘다중연대mul­ti​-a­li­gn­me­nt’ 정책으로 발전했다. 한마디로 모든 나라와 필요한 협력을 해서 이득을 얻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2022년 9월 인도는 러시아가 주도한 군사훈련인 보스토크-2022 훈련에 참여했다. 패권 전환기를 맞아 인도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안보 위협에 맞서고 세계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했던 자리를 빼앗기 위해서는 미국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도가 인도양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세계 패권 역시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당장은 미국과 손잡고 중국에 맞서겠지만, 경제·군사적 성장이 충분히 무르익으면 인도는 인도양의 지역 패권국으로 등극하기 위한 독자적인 행보를 개시할 것이다. 324-5)


튀르키예가 잠재적 패권국이라 하면 의아할 수 있다. 튀르키예는 큰 나라이지만 중국이나 인도 같은 대국은 아니다. 국토 크기가 세계에서 30위권 밖이고, 인구는 8천만이 넘어 충분하지만 특별하지는 않다. GDP는 20위권, 군사력은 10위권이다. 그러나 절대적 힘의 우위가 필요한 세계 패권과 달리, 지역 패권국이 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패권을 조성하기에 얼마나 유리한 역내 환경이 갖춰져 있는지이다. 아나톨리아반도와 발칸반도에 걸쳐 있으며,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째로 품은 이스탄불의 입지는 독보적이다. 유럽의 공산품과 러시아·중앙아시아의 에너지, 우크라이나·러시아의 곡물은 발칸반도와 흑해, 캅카스, 중동, 지중해를 죄다 육로와 해로로 연결하는 아나톨리아반도를 거쳐 운송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한창일 때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에서 지향했던 ‘중심축 국가pi­vot s­ta­te.’ 그것이 튀르키예에 있어선 지리적 선물이나 다름이 없다. 325-6)


패권 전환기를 맞아 튀르키예가 역내 패권을 노릴 수 있게 된 것은 주변국의 형편 덕도 크다. 사기적인 판도를 가졌던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 튀르키예는 미군의 전진기지에 불과했었다. 당시에는 튀르키예와 동쪽 국경을 마주한 캅카스 3국도 소련이었고, 흑해 너머도 전부 소련이었다. 튀르키예는 패권국은커녕 중심축도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함께 소련이 무너지고 캅카스 지역에는 약소국이 세워졌다. 흑해 너머에는 우크라이나가 등장했다. 튀르키예에 비해 약세였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보기는 어려웠던 시리아와 이라크는 문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고, 강대국 이란도 장기간에 걸친 미국의 제재로 천천히 약화 되어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마지막 남은 지역 강대국인 러시아조차 크게 약해진 상태다. 러시아가 (미국이 관여를 줄인) 중동에 다시금 강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하기 전까지는 튀르키예가 중심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인 셈이다. 326)


제7장 남은 21세기의 국제질서


현재 미국과 서방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명칭 대신 ‘규칙 기반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국제법에 따른 ‘법의 지배’를 국제사회에 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오늘날 미국이 주창하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가장 중요한 기둥인 자유무역주의가 포함되지 않는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규범에 기초하는 이상, 규범의 창설과 집행의 근간이 되는 다자주의는 전제될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아래서 만들어진 국제규범과 국제제도는 처음부터 국가들의 의견대립을 조율하여 협력으로 이끄는, ‘다자주의’라는 메커니즘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은 21세기에는 국제법의 구속력bi­nd­ing po­wer이나 강제력en­for­c­ing po­wer보다 국제사회의 자발적 존중과 준수에 기초한 규범력nor­ma­ti­ve po­wer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342-3)


오직 규칙 기반 국제질서만이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오늘날 국제사회에 만들어 놓은 체제와 제도를 온전히 계승하는 게 가능하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주창하는 다극적 국제질서는 사실상 힘의 역학관계만을 의미하는 다극체제일 뿐,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국제질서’라고 부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극체제 또는 다극적 국제질서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자주의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극체제의 복원은 소수의 나라를 제외한 대다수 글로벌 사우스도 선호할 수 없다. 미국 및 서방이 갖는 자유 및 인권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지 않는다 해도, 남은 21세기에 글로벌 사우스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권 존중 원칙과 개방된 세계시장, 그리고 다자주의에 따른 국제협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유럽도 미·중 패권 경쟁의 다른 영역에서는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더라도, 차기 국제질서를 결정하는 싸움에서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채택되도록 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345-6)


대다수 국가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미래는 패권 전환기 이후에도 국제사회에 다자주의가 유지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바로 미국의 세계 패권이 해체된 후에도 지역 패권국이 등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패권국, 특히 권위주의 패권국은 자국의 세력범위에 속한 나라들을 복속시켜 종속국으로 만들 것이다. 또한 지역 패권국의 등장은 다른 모든 강대국에 지역 패권을 추구할 유인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패권국이 다자주의를 시스템적으로 강제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국제정치는 자연히 강대국 본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독자적인 행보를 걸을 만한 국력을 갖지 못한 국가들은 비슷한 이해관계와 지정학적 입지를 공유하는 동류 국가끼리 짝지어 세력을 형성하려 시도할 것이다. 즉, 남은 21세기의 다자주의는 지금보다 훨씬 느슨해질 것이고,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국가와 세력 간에 중첩적인 소다자주의가 범람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349)


소다자체제가 추후 다른 세력에 맞서기 위한 배타적 동맹체제로 발전할 위험도 있다. 동일한 목적을 놓고 서로 다른 세력이 각기 소다자체제를 결성할 때, 소다자체제 간에 이해관계가 상충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기 때문이다. 다자주의가 기본인 세계에서는 이러한 마찰을 비교적 수월하게 조정할 수 있겠지만 세력균형과 세력다툼이 대세인 세계에서는 사소한 마찰이라도 세력 간 갈등으로 비화할 위험이 있다. 그 경우 소다자체제의 당사국들은 배타적인 동맹체제로 결속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동맹체제의 등장은 갈등이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도 위험하지만, 다자주의를 통한 범세계적 통합을 어렵게 만든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다자주의는 남은 21세기 동안 활발히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다자주의를 통한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소다자체제의 한계와 위험성에 주의하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라도 국제협력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350-1)


핵무기나 WMD 확산 방지, 기후변화 대응, 인공지능 규제, 우주 개발 등은 오직 다자주의를 통해서만 대응할 수 있는 문제의 예시에 지나지 않는다. 변화의 속도가 날로 빨라질 남은 21세기에 인류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종류의 도전에 수없이 직면할 것이고, 개중에는 다자주의가 아니고서는 극복할 수 없는 도전도 상당할 것이다. 다자주의에 기초한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통해 얻은 교훈 위에, 냉전 시대 이후 쌓은 세계화의 이력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이 질서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보완하고 보강하여 더욱 진보시켜야 할 일이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로 되돌아가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이미 인류는 근대 이전의 법칙에 따라서는 ‘종으로써 생존할 수 없는’ 지점까지 와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다자주의는 인류가 자초한 수많은 문제점에 대응하고 또 인류가 인류로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될지도 모른다. 354)


제8장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중국과 미국 모두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원하지만, 각자가 바라는 영향력의 성격이나 수준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양자택일 상황에 내몰리면 결국 미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도 상식적으로 인정하는 바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가 대한민국에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편에서 미국에 맞서는 것도, 미국을 버리고 중립이 되라는 것도 아니다. 비록 한미동맹을 상수로 둘 수밖에 없더라도 그들의 핵심 이익이 걸린 사안에 있어서 만큼은 그들을 적대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로서도 대북 관계에 있어서는 미국·일본과 긴밀히 공조하되 대만해협 문제나 반도체 제재,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는 한발 물러나 중국·러시아를 자극하지 않는 방안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사실 이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란 명목하에 대한민국이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채택해온 대전략과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전략적 모호성이 통용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374-5)


경쟁국 간에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이라면 전략적 모호성에도 위험이 따른다. 전략적으로 모호한 행보를 보이는 국가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중 패권 경쟁의 시대에도 전략적 모호성이나 심지어 적극적인 이중헤징전략d­ou­ble hedging st­ra­te­gy을 채택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 나라도 있다. 인도나 튀르키예와 같이 양 진영 모두로부터 열렬한 구애를 받고, 어느 쪽으로부터도 불이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나라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다르다. 다른 모든 이유를 제쳐두더라도 북한이 있는 한 미국과 멀어질 수 없고, 마찬가지로 북한이 있는 한 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북한과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가장 좋겠으나 그동안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노선을 바꾸지 않았고, 북한은 내부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대한민국을 상대로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은 지난 시기 대한민국의 발전과 안보를 도왔지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375)


패권 전환기에 대한민국의 대외정책은 크게 두 가지의 상호 대립하는 전략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전략 목표는 미국과 서방에 대한민국이 자유 진영의 일원이라는 신뢰를 확고히 심어주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이 권위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 또는 북·중·러와 미·일 사이에서 이중헤징전략을 채택하려 한다는 의심이 들만한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미국이 안보 문제와 경제 문제를 동전의 양면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이상 미국에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인식되는 것은 재앙적일 수 있다. 현재 미국은 국가별 신뢰성과 필요성에 기초해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노력은 인도와 같이 중국을 대체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나라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축하는 양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신뢰를 잃어 미국의 기술과 시스템, 공급망에서 배제되는 상황은 대한민국이 감당할 수 없다. 381-2)


두 번째 전략 목표는 중국과 러시아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것이다. 철저하게 현실주의적 세계관에 따라 움직이는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존재하는 이상 대한민국이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즉, 한미동맹을 이유로, 또는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경우 중국이나 러시아와 일정 수준 대립하거나 대치하는 것은 중·러의 입장에서도 예상 범위 내의 행동이다.  한편 북한이란 이름의 레드라인은 중·러를 상대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도 북한이 대한민국에 있어 실존적 위협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이 중·러의 레드라인을 먼저 넘기 어려운 상황이란 점도 알고 있다. 사실 이는 국제사회에서는 상식에 가깝다. 그런 만큼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이익이요,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위협을 악화시키는 외부 세력의 행위는 대한민국의 레드라인을 넘는 행위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체계적이면서도 엄중히 전파해야 한다. 383-4)


본격적인 신냉전이 시작되지 않은 이상 대한민국은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발휘할 수 있고, 또 발휘해야 한다. 속 시원한 ‘사이다’ 해답은 없다. 다만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위기를 모면하고 기회를 살리다 보면 시간이 흐르며 상황은 개선될 것이다. 일단 패권 전환기가 끝나면 여러 변수가 제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더 이상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순간이 오면 미국도 여유와 관대함을 되찾을 것이고, 중국도 21세기 중반까지 동아시아 패권을 차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모험심에 따라 준동하는 대신 장기 전략을 재검토하려 들 것이다. 반대로 이번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꺾어내면 큰 혼란이 발생하겠지만, 그때는 상황이 외려 단순해진다. 중국의 지역 패권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길과 역내 국가들과 연합하여 중국에 직접 대항하는 길 중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84)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서 대한민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서방과 비서방, 자유 진영과 반미연대 등 대부분의 진영 사이에서 중계자 또는 연결자 역할을 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다자주의가 유지되는 국제질서에서라면 대한민국의 ‘연결자’ 위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여러 지역과 진영을 연결하고 중재할 수 있는 역량은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대한민국이 국제협력을 통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즉,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전략적 연결성st­ra­te­gi­c con­nec­ti­vi­ty을 배양하여야 한다. 과거에도 대한민국은 여러 진영을 잇는 중계자 또는 연결자 역할을 맡기 위해 노력했으나, 세계화와 자유무역주의로 전 세계가 통합되어 있던 시기에는 대한민국의 연결자적 가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진영 간 균열이 깊어지는 패권 전환기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연결자적 가치가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여러 진영과 다층적으로 연결되기에 충분할 만큼 개방될 필요가 있다. 386)


합리적으로 고려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대북 유화책이 소진된 이상 앞으로의 대북 정책은 현실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의 지상과제가 체제 유지라는 점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북한이 제대로 된 개혁개방에 자발적으로 나설 일은 아마도 없을 거란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체제가 위태로워지지 않을 수준으로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건이 허락되면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재개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동포애나 인류애적 차원에서도 인도주의적 지원은 바람직하지만, 북한 정권을 무턱대고 고사나 붕괴 위기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끝나고 북·중·러 연대가 현실이 된 이상 일각에서 선호하는 북한 봉쇄는 어차피 실현될 수 없다. 그러니 패권 전환기가 끝날 때까지는 한 손에는 억지력을, 다른 한 손에는 소통이란 끈을 쥔 채 상황관리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389-90)


만일 자유무역질서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훼손되지 않고 쭉 이어졌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세계화 시대에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발판이 되어준 중국에 의해 꺾이게 되었을 수 있다. 중국은 가성비를 앞세워 GVC에서 대한민국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한 뒤, 기술 발전을 거듭한 끝에 산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대한민국을 추월하는 중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미·중 패권 경쟁은 어쩌면 대한민국 산업에 행운이 될 수도 있다. 자유무역질서가 막 훼손되기 시작할 무렵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는 점도 크다. 우수한 제조업 역량에 더해 문화콘텐츠 산업의 약진으로 세계시장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가 크게 제고되었고, 대한민국이 생산한 상품들의 브랜드가치도 동반 상승했다. 때마침 4차 산업혁명이 찾아온 것도 큰 기회다. 패권 전환기와 함께 찾아온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더욱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앞세워 오히려 선두그룹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 392)


그러나 대한민국이 패권 전환기의 높고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의 단합이 필요하다. 문제는 대한민국이 현재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하지만 결여된 것은 사회적 갈등을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를 되찾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만, 결국은 자유민주주의로부터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건설적인 토론과 승복, 합리적인 이견 조율, 그리고 도출된 결론이 모두에게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대승적인 타협을 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을 무턱대고 악마화하지 말고, 포퓰리즘과 분열주의적 정치를 하는 정치인을 강하게 배척하며,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고 사안별로 합리적인 비판과 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용적인 시민의식과 사회문화를 제고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대한민국이 당면한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393-5)


제9장 맺는말


대한민국의 안보는 동북아시아 정세에 종속되고, 동북아의 정세는 더욱 큰 국제질서와 직결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긴밀한 한미동맹과 대승적인 한일협력을 통해 동북아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안보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도 소통과 교류의 끈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합리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통해 시장과 인력, 자원을 확보하는 한편 기술우위를 추구하며 선진국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가 저문 이상, 통일을 위한 무조건적 노력에 앞서 북한과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우선 찾아내야 한다. 또한 장차 글로벌 사우스와 반미연대도 동의할 수 있는 성격의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면서, 필요시 유럽과 적극 공조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영 간 연결자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개방성을 전략적으로 함양하고 다자주의를 강도 있게 활용해야 한다. 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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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변증법 - 경이로움의 징후들
프랑코 모레티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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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장 공포의 변증법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는 비슷한 삶을 산다. 둘은 상보적이기 때문에 분리할 수 없는 형상이다. 단일한 사회의 무시무시한 두 얼굴, 양 극단이다. 다시 말해 흉측하게 생긴 비참한 사람과 잔혹한 소유자, 즉 노동자와 자본가를 대변하는데, 〈사회 전체가 소유자들과 무소유의 노동자들이라는 두 계급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마르크스에게는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견(이자 미래 사회의 재조직화를 보장해주는 것)인 동시에 19세기 부르주아 문화의 종언에 대한 사전 경고였다. 공포문학은 바로 '분열된 사회의 공포로부터', 그리고 그것을 치유하려는 욕망에서 태어났다.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가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물론 드물게나마 예외가 있긴 하다. 아무튼 그러면 위험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포문학은 일단 공포를 만들어낸 이상 그것을 제거하고 평화를 회복시켜야 한다. 깨진 균형을 회복하고, 역사를 멈출 수도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20)


"소유 그 자체는 소비에는 무관심한 채 본성상 만족을 모르며 무제한적이다. 폴리도리의 흡혈귀는 여전히 그저 살아남으려는 가련한 목적을 위해 아가씨의 목을 조르려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그저 그런 봉건 영주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대가 그의 편이 아니었으며, 그의 보수적인 욕망에도 맞지 않는다.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그와 반대로 지배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즉 런던을 정복하기 위해 금을 투자하는 합리적 기업가다. 그리고 이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전 세계에, 즉 알프스에서 스코틀랜드까지, 동유럽에서 남극과 북극까지 파멸의 씨앗을 뿌린 바 있다. 그에 비하면 『오트란토 성』의 거대한 유령은 난쟁이처럼 보인다. 그는 단일한 장소에 갇혀 있다. 그리고 또 단 한 번밖에 나타날 수 없다. 그는 단지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일단 질서가 회복되면 영원히 침묵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의 괴물들은 영원히 살지도 모르며, 세계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가한다. 이 때문에 이들을 죽여 없애야 한다."(22)


"프롤레타리아와 마찬가지로 괴물에게도 이름과 개인적 정체성은 거부된다. 그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일 뿐이다. 그는 전적으로 창조자에게 속한다(마치 〈포드 회사 노동자〉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프롤레타리아와 마찬가지로 그는 '집단적이고 인공적인' 피조물이다. 자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온갖 것을 만들어내는 발명자─과학자로 '명상적'인 발견자─과학자인 윌튼과 누가 봐도 분명하게 갈등 관계에 있다. 그가 만들어낸 이 괴물 속에서 봉건적 관계가 무너지면서 도적질에 나서거나 가난과 죽음으로 내몰렸던 사람들─'가난한 사람들'─의 육신이 재통합되고 다시 생명을 얻는다. 오직 현대 과학─이 메타포는 〈어두운 악마의 맷돌들〉[블레이크의 시 『예루살렘』에 나오는 구절]을 가리킨다─만이 이들에게 미래를 제공할 수 있다. 과학이 이들을 다시 꿰매 붙이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주조하고 마침내 생명을 부여한다. '하지만 괴물이 눈을 뜨는 순간' 기겁해 뒷걸음친다."(23)


"공포문학은 주인공이 불안감을 자아내는 요소가 '자신 안'에 있다는, 즉 자신이 두려워하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프로이트가 묘사한 바 있는─의식에 부딪히는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 저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긴 악몽 속을 헤매다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지.〉 억압된 것은 이런 식으로 회귀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돌아올까? 광기로, 또는 단지 오직 '주변적'으로만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러한 책들이 전달하려는 교훈은 미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자신에 대한 억압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즉 자신의 정신의 분열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괴물'을, '물질적인 것'을, '외적인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것이 열쇠다. 흡혈귀에 비하면 광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광기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광기는 자체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흡혈귀, 괴물, 미약이다."(52-3)


"사회의 유대를 깨는 사람은 누구나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 문학이 축출하려는 진짜 위험이다. 심층적인 의미에서는 오히려 자유를 제한하는 이 문학은 통합된 사회, '유기적' 자본주의에 대한 욕망을 반영하고 촉구한다. 이것은 '변증법적' 관계들의 문학으로, 대립물들은 분리되어 갈등을 일으키는 대신 상대방과 동시에 기능하며 서로 강화시켜준다. 마르크스에게서는 자본과 임금노동 관계가 그러하다. 프로이트에게서는 초자아와 무의식의 관계가 그러하다. 스탕달에게서는 연인과 그가 '사랑'이라 부르는 '질병' 간의 유대가 그러하다. 프랑켄슈타인을 괴물과, 루시를 드라큘라와 묶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독자와 공포문학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작품이 무서울수록 그만큼 교화적이다. 굴욕을 강요할수록 그만큼 고상함을 가장한다. 더 많이 은폐할수록 그대로 드러낸다는 환상을 더 많이 불러일으킨다. '필요한' 것은 공포이다."(62)


2장 대일식 ― 주권의 세속화로서의 비극 형식


"우리에게 연극이라는 개념은 직접적으로 미학적 활동을 가리키지만 엘리자베스조 사람들에게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적 관계들의 체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세상은 연극이며 우리는 단지 거기서 주어진 역할을 할 뿐이라는 이념은 봉건적인 '신분 사회'의 맥락에서만 진정 완벽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개인은 오직 사회적 '역할' 속의 '배우[행위자]'인 한에서만 '실존했다.' 사회는 오직 무대로서만, 그리고 삶은 오직 연기로서만 생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 엄격하게 말해 실제적인 무대를 생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실제로 봉건 사회는 오직 종교적 형태의 연극[종교극]밖에 몰랐다. 영원히 규정된 역할을 계속 반복해서 연기하는 것 말이다. 무대의 재탄생은 오직 이 신분 사회를 구성하는 역할들이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정치적 유대의 견고함이 14세기의 장기 위기의 과정 속에서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일어날 수 있었다. 절대주의는 이 과정을 멈추려는 시도에서 유래했다."(87-8)


"셰익스피어의 장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자유와 사적 이익의 공간이 활짝 열리고 '인격'과 '기능' 사이의 격차가 생겨나자 무대로서의 세상이라는 이상이 얼마나 취약해졌는가를 냉정하게 조명해주는 데 있다. 인간 사회에 새로운 견고한 토대를 마련해주려면 '이익'이라는 이상을 위해 '충실[충성]'이라는 이상을 포기하고 사회적 유대를 봉건적 '맹세'로부터 자연법 철학의 '계약'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실과 가치의 관계를 전도시킨 문화적 변동이 일어나게 된다(그리고 문학사에서 비극이 소설로 대체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보다 훨씬 더 앞선 시대의 사람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그러한 것을 읽어내 보려고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아마 그는 부르주아 문명의 여명을 선언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예시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와 반대로 그는 자신이 알던 유일한 규칙인 낡은 규칙을 준수한다면 세상은 그저 산산조각날 수밖에 없음을 가차 없이 입증했을 뿐이다."(106-7)


3장 호모 팔피탄스 ― 발자크의 소설들과 도시적 퍼스낼러티


"도시는 궁극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모든 구성요소의 가치와 의미가 물건들, 즉 다양하게 묘사되고 분류될 수 있는 존재들 형태로 결정화되는 공간적 실체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을, 시골 또는 인간이 거주하는 그 밖의 다른 어떤 형태에 대해서도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의 특징을 이루는 것─이것은 소설의 기법 속으로 도입될 것이다─은 도시의 공간적 구조(기본적으로는 집중)가 '이동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능하는 데 있다. 너무나 당연히 공간적 이동성이지만 주로 '사회적' 이동성을 말한다. 성공과 몰락의 눈부신 속도는 발자크부터 모파상에 이르는 19세기 소설의 위대한 주제이다. 이것과 함께 도시는 현대 문학 속으로 들어와 말하자면 의무적인 맥락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물리적 장소로서의─따라서 묘사와 분류들의 지탱물로서의─도시가 한창 발전 중인 사회적 관계망으로서의, 따라서 서사적 시간성의 지탱물로서의 도시의 단순한 배경이 되기 때문에만 가능하다."(135)


"현대의 도시적 환경은 최초로 기형적인 것에 의존할 필요 없이 흥분되는 플롯을 창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거대한 자유방임적 도시의 기본 규칙은 '분류법의 부단한 변동'을 가속화시킨다는 기이한 특징을 갖고 있다." "분류법이 부단히 변동한다는 것은 최소한 두 가지 결과를 함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예외적이고 혐오스럽다는 이중적 의미에서) 괴물 같은 것을 규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누가 가장 근접할까? 보트랭 또는 뉘싱겐? 아니면 라시티냑 또는 고리오?(그 밖에도 '괴물 같다'라는 개념은 이미 낭만주의 문화에 의해 의문시된 바 있다). 하지만 두 번째의, 전자보다 훨씬 더 큰 파급력을 미친 결과가 나오게 되는데,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더 이상 상징적 체계(괴물은 더 이상 준수되지 않는 분류법을 가리킨다. 모든 상징적 '법칙'이 산산조각난다), 따라서 재현된 삶의 '예외상태'가 아니게 된다. 예견 불가능성이 '일상적 삶'의 '일상적 관리' 속에 숨어들게 된 것이 그것을 대신한다."(140-1)


"발자크가 이례적으로 고안해낸 것은 젊은이의 삶은 무인도에 배가 좌초하지 않아도, 악마와의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아도, 살인을 위한 실물 크기의 인형을 만들지 않아도 흥미진진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연극평을 쓰고, 머리가 텅 빈 여배우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철석같은 의지를 결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도무지 믿음이라고는 가지 않는 친구들에 의해 행해지는 몇 푼의 아주 속물적인 투기, 약속어음에 대한 금융규제, 그리고 궁정이 나머지는 어떻게 처리해줄 것이다. 실제로 발자크와 함께 '세계의 산문'은 지루한 것이기를 그쳤다. 발자크의 플롯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연사체적─시간적─특징들을 부여한 것은 이제 막 시작된 자본주의의 바로 산문적인 사회적 관계들이었다. 주인공과 독자를 자극하기 위해 더 이상 여행에 나설 필요가 없게 되었다. 도시에 머무는 편이 훨씬 더 나았다. 여기서는 실제로 일상적 삶이 모험으로 변할 수 있었다─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반드시 그러해야 했다."(141)


4장 단서들


5장 유치원


6장 긴 작별인사 ―『율리시즈』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종말


"〈[『율리시즈』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다투는 것을 본다. 사람들이 돈을 쫓는다. ······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생산적 활동은, 그것 없이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활동의 표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이 소설에서는 노동자가 한 명도 없다. 그가 묘사하기로 선택하는 사회적 관계는 소비 관계이다.〉 위의 지적은 정확한 동시에 조야하다. 정확한 것은 바로 그것이 『율리시즈』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조야한 것은 조이스가 현실의 이러한 측면을 확대해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가 이 그림의 나머지는 모르거나 경멸하기 때문이 아니라 의도적인 문화적 선택 때문에 그러하다." "조이스는 자신이 그처럼 기생적인 몰락에 너무나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영국의 지배계급에 어떤 종류의 '해법'이 아니라 단지 이 사회와 이 사회의 세계에 대한 흉측한 캐리커처를 제공할 뿐이다."(252-3)


"『율리시즈』에서 구현된 선택, 즉 소설의 시간을 하루 속으로 꽉꽉 눌러 넣는 것은 진정 급진적이다. 그렇게 하는 것을 통해 조이스는 우리에게 모든 날들이 동일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루카치에게는 실망스럽게도─(장르로서의 소설의 기본적인 구조적 특징 중의 하나인) 역사적·문학적 '전망', 그리고 그와 함께 역사적 '진보'라는 이념을 완전히 파괴한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은 오직 영국의 위기의 특수성에 너무 몰두해 있어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조직화의 눈에 띄는 현상을 망각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우리의 당면 문제─소설 속의 '시간'─와 관련해 카프카를 조이스와 정반대 극에 놓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카프카의 소설들은 거의 전적으로 통시적 축을 따라 전개되며, 고립된 개인과 비인격적인 권력 장치 사이의 회복 불가능한 갈등을 핵심으로 하는데, 이것은 이미 20세기 자본주의 세계에 속한다. 카프카의 통시적인 플롯들의 결과 또한 모든 위안적 '전망'을 철저하게 파괴한다."(259) 


"추론을 좋아하는 자칭 '철학자'들에 대한 패러디인 블룸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상투어를 찾아낼 수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에서부터 남녀 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아량에 대한 호소부터 사회적 프로그램들에 이르기까지 그는─자유주의의 정통 논리의 문자에 충실함으로써─자신이 영원히 접촉을 잃어버린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미 델라 볼페가 쓰듯이 『율리시즈』는 〈······ 우리의 인본주의적인 휴머니즘적 문명에 대한 정당화가 이제는 '생명을 잃은 상투어들'의 용어로 축소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문명의 요약이자 그에 대한 평가이다.〉 그리하여 조이스의 무자비한 풍자는 블룸을 겨냥하는데, 그를 통해 더 높은 것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이스의 아이러니는 독특한 갖는데, 그것은 동시대인인 토마스 만이 이해하고, 판단하고, 설파하려면 치러야 할 대가로 지적한 '초연함'은 전혀 갖지 않으며 반대로 해결 불가능한 모순의 체계 내부에서 유래한다."(273-4)


7장 『황무지』로부터 인공낙원으로


"『황무지』는 종종 〈모든 것을 포함한 작품〉으로 규정되어 왔다. 거의 모든 종류의 이질적 소재를 포함하고, 더 이상 '문체들'이나 수준을 구분하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조야한 변호론처럼 보인다. 『황무지』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다소 '통상적인' 의미─이에 기초해서는 단지 그러한 요소들이 이질적이고, 상호관계를 결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뿐이다─이외에도 이 시의 깊은 의미론적 구조─여기서는 반대로 완전히 '동질적이며 상호 연결되어' 있다─에서 유래하는 은유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황무지』에는 상이한 코드들에서 취한 요소들을 '동화시키는 것'을 허용해주는 코드가 존재한다. 이 시의 표면에 드러나는 '모든 것을 포함함'은 이처럼 심층에 자리 잡은 형식적 기법의 결과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본질적으로 '신화적 체계'로 기능한다."(300-1)


"신화적 체계의 사용은 엘리엇으로 하여금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분열을 치유하는 것을 겨냥한 시적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대신해 이 두 가지 것이 구분 불가능한 커뮤니케이션 및 지각 형태를 수립하는 것을 허용해준다. 그것은 또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어떻게 세계의 이미지를 '의미의' 완전한 '내재성'이 주어지는 '구체적 총체성'으로 복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개인이 더 이상 경험적으로 주어진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자기 자신의 '이상들' 사이의 불일치─실제로는 기원에서부터ab origine 서로 관련된─를 지각하지 못하는 총체성 말이다." "한발 뒤로 돌아감으로써 신화는 문화가 더 이상 역사적 존재의 상징적 '중립성'─따라서 잠재적 무질서─과 관련해 단순한 상부구조가 아닐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샅샅이 침투시켜 '의의'를 부여하며, 따라서 그러한 존재의 모든 표출을 인간화하는 가치 체계로 자신을 드러낸다."(302-3)


"하지만 신화가 원래의 순수성을 모두 간직한 채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20세기에 그것이 '재림'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터무니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화적 사고의 매력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기획에 착수했을 때 엘리엇의 과제는 오직 신화적 구조의 요구들과 그것을 구성하는 '소재들' 사이의 모종의 타협으로만 나타날 수 있었다. 『황무지』의 아이러니─있을까 말까한 정도이다─는 정확히 신화적 기획의 순수성은 결코 완전히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닫는 데 있다. 『황무지』에서 사태는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부합한다. 모든 연결 관계가 미심쩍으며, 모든 상동성은 유사성으로 변형된다. 보들레르나 단테로부터의 저 특수한 인용구의 기능은 쉽게 '다른', 유사한 구에 의해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술집 여성과 타이피스트는 다른 많은 캐릭터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포에니 전쟁이나 엘리자베스조의 런던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변형될 수 있는 역사적 '사례들'이다."(316-7)


8장 미결정의 마력


"소수의 모더니즘적 상상력으로부터 시작해보자.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우산과 재봉틀, 다다, 초현실주의, 파운드, 엘리엇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몇몇 사람들은 이 기본 유형에 대해 무수한 변주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 그렇게 전복적 이미지일까?" "짐멜은 「대도시와 정신의 삶」이라는 에세이에서, 도시 거주자의 주요한 심리적 문제는 〈급속도로 이미지들이 교체되면서 밀려오거나,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포착되는 내용의 변화가 급격하거나 밀려드는 인상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경우에 더 큰 부담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짐멜의 대도시인 이 전형적인 '모더니즘'적 텍스트에서 자극들은 위험할 수 있다. 그 충격으로부터 몸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단지 그것을 보지 않는 식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제공하고 제시해야 하는 것 중 최고의 것이기 때문이다. 소유해야 하는 물건들이고, 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들이고, 한번 겪어보고 싶은 매혹적인 상황이다."(336-8)


"그렇다면 보는 동시에 보지 말아야 하며, 받아들이는 동시에 거부해야 한다. 모순적인 곤경이다. 그리고 부르주아적 대도시에서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끼려면 외적 자극과 주체적 지각이 다소 특이한 속성들을 소유해야 한다. 먼저 자극의 경우 그것은 '의미를 갖기'보다는 '환기적'이어야 한다. 가능하면 최대한 확정적이지 말아야 하며, 따라서 누구나 거기서 '뭔가를 찾을' 수 있도록 다수의 연상에 열려 있어야 한다─더 좋게는 그러한 다수성을 생산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의 저 핵심어, 즉 모호성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다른 한편 주체 쪽에서 발전되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연상의 은하계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확정된 선택─광고에서의 특수한 대상의 선택이든 아니면 시의 독법에서의 의미론적 선택이든─을 행해 나가는 출발점이 아니라 '가능성들의 장'─이 장의 매력은 정확히 '현실(성)'으로의 환원 불가능성이 점점 더 증가하는 데 있다─으로서."(338)


9장 진리의 순간


"비극에서 진리와 위기가 상호 의존하는 것은 혁명적 정치의 고전적 수사학을 예견해준다. 소렐의 『폭력론』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를 청년 루카치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루카치에게서 경제적 위기는 정확히 자본주의의 진리의 순간으로 작동한다. 그것은 총체성이라는 핵심적 개념을 〈실천이라는 영역 자체에서 파악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변형시킨다. 그것은 일상생활을 탈물상화시키는 계기로 작동하며, 〈불가피한 운명을 향한〉 자본주의의 〈오이디푸스적인 진전〉을 가동시킨다. 슈미트의 『정치 신학』은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그것 말고는 완전히 상이한 이론적 틀 내에서 '위기'라는 개념에 인식론적 우월성을 부여한다." "이후, 슈미트는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정치와 비극의 연관성의 개념적 전거가 되었고, 이 비[애]극이라는 간판 아래 두 문화의 공모는 계속되었다. 니체와 하이데거가 좌파 지식인들의 문화적 지평을 지배하고 있는 정도를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360-2)


"그렇다면 좌파와 우파는 동일한 문화, 동일한 가치를 공유한다는 말인가? (소렐은 극좌파의 원형이자 반동이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나는 좌파가 '비극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한 좌파를 우파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진리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도되는 가운데 정치적 신화(학)들 중 (아마 가장) 모호한 것임이 드러난다. 결국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좌파와 우파의 큰 차이는 무엇보다 시간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무게와 기억들, 현재의 끝없는 갈등, 그리고 미래의 기획과 희망들의 산물 말이다. 하지만 문화가 위기의 순간이라는 미신적 독특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 (루카치를 기억하라. 〈이러한 순간은 하나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것에 뒤이어,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생겨나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성은 수축되고 폐지될 것이다. 과거, 미래, 현재가 모두 사라질 것이며, 그것들과 함께 모든 중요한 정치적 규정들도 사라질 것이다."(362-3)


"그렇다면 이것은 좌파는 위기─공공연한 폭력, 혁명, 전쟁─의 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지평으로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까? 그것은 요점이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혁명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거나 가치를 낳는 메커니즘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특정한 상황에서 주어진 일군의 가치들의 가능한 '결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위기의 순간을 진리의 '유일한' 순간으로서도 또 '유일한' 진리의 순간으로서도 간주하지 않는 좌파의 문화이다." "'위기'에 기반한 신념은 우리 시대의 정치 현상 중 가장 모호한 현상, 즉 좌익 테러리즘에 의해 논리적·실천적 결론에 이르고 있다. 좌파가 자신으로부터 제거해야 할 것은 멜로드라마와 공허함 사이의 바로 이처럼 불건전한 공모이다." "따라서 '결과'를 형이상학적으로 무시하거나 '예외'를 바로크적으로 즐겨서는 안 된다. '파국'을 진리의 원천으로 비극적으로 갈망해서는 안 된다."(363-4)


10장 문학적 진화에 대해


"라마르크에게서 진화는 일원론적인, 분리되지 않은 발달로, 적응이라는 단 하나의 원리가 선택과 변이를 주관한다. 그와 반대로 다윈에게서 그것은 이원론적 과정으로, 우연에 의해 지배되는 변이와 필연성에 의해 통제되는 선택 사이에서 회복할 길 없이 분열되어 있다. 인간의 역사를 라마르크적으로 파악하면, 그것은 분리되지 않은 발전으로, 여기서 문제들은 오직 해결책들이 주어졌을 때만 나타나며, 해결책들 또한 항상 명확하고 오인의 여지가 없는 형태로 주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는 전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바람직하지도 않은) 헤겔적 꿈처럼 보인다. 내가 그것을 다윈적 이원론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유물론을 위해서이다. 문학사를 두 개의 반쪽으로, 두 개의 분리된 단계로 나누는 이론으로 말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우연만이 작동하는데, 거기서는 수사학적 변이들이 생성된다. 그리고 사회적 필연성이 두 번째 단계를 주관하는데, 거기서는 변이들이 역사적으로 선택된다."(366-7)


"유럽적 규모에서 보면 18세기에 임의로 증식하던 소설 양식들은 (19세기 들어) '교양소설'이라는 (말하자면) 새로운 종의 국제적 성공에 의해 돌연 끝나게 된다. 그 이유는 새로운, 외부적 압력 때문이었다. 세기말에 일어난 소위 이중 혁명이 그것이다. 거의 100년 동안 유럽 사회는 쾌적하고, 거의 무제한의 서식지였다. 코젤렉의 『비평과 위기』에 따르면 사적 삶의 영역은 규정상 모든 종류의 재현에 열려 있었다. 하지만 20세기로의 전환기에 가능성들의 지평이 좁혀졌다. 산업과 정치의 격동이 유럽 문화에 동시에 작용해, 개인적 기대들의 영역을 다시 그리고 '역사 감각'과 모더니티의 가치에 대한 태도를 새로 규정할 것을 강요했다. 온갖 다양한 이유에서 교양소설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상징적 형식이었다. 그리고 교양소설은 실제로 살아남은 반면 교육소설과 성장소설, 예술가소설, 알레고리 소설, 서정 소설, 서한체 소설, 풍자 소설은 모두 문학적 삶을 위한 진짜 투쟁에서 사라졌다."(370-1)


"미시 진화적 사건에 초점을 맞춰보면, 모더니즘적 완벽성─극단적인 기법적 완벽성과 극단적인 의미론적 모호성을 한데 뒤섞은─은 실로 수수께끼 같으며, 그것의 존재는 진화론의 최대 난제였을 수도 있었을 것을 상기시킨다. 즉 다윈의 말을 빌리자면 〈완성도가 매우 높은 복잡한 기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다름 아니라 너무 완벽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 자체와 상충되는 기관을 말이다." "몇 년 전에 굴드와 브르바는 그러한 기관들을 '굴절 적응'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따라서 나는 두 사람의 용어를 빌려 모더니즘 시의 높은 형상성은 정확히 굴절 적응, 아마 모든 문학사 중 가장 매력적이고 성공적인 '목적의 변경'이라고 말할 것이다. 즉 낯설게 하기, 모순어법, 미결정 등의 효과를 특징으로 하는 높은 형상성은 실제로 모더니즘 시의 위대한 조직적 원리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래 이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즉 그것의 발생에서 의도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385-6)


# 굴절적응(屈折適應, exaptation). 진화과정에서 신체기관이 본래의 기능과 다르게 쓰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11장 영혼과 하피 ― 문학적 역사학의 목표와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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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분쟁 지역을 읽으면 세계가 보인다 - 국제정치 전문가 김준형의 세계 10대 분쟁 이야기
김준형 지음 / 날(도서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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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까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이전의 경우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일례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수도 모스크바와 500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나토 회원국이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 여부는 자신들이 선택할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기 나라 일부로 여깁니다. 그래서 전쟁이라고도 하지 않고 ‘특수 군사 작전’을 펼친 거라고 주장합니다. 형제 또는 러시아 일부로 여기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번 침공도 ‘버릇없는 동생’을 벌주려는 것이지 타국을 침공한 전쟁이 아니라고 합니다. 러시아는 미국에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금지하고 새로운 나토 회원국에 배치한 군대와 핵무기를 철수하라고 요구합니다. 또한 2014년에 체결한 민스크협정을 준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의 요구를 전면 거부했고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도 나토 가입 의사를 철회하지 않아서 결국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14)


민스크협정은 벨라루스 수도인 민스크에서 돈바스Donbass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우크라이나, 러시아, 러시아 분리주의 집단 간에 맺은 국제 협정이에요. 돈바스 전쟁이 일어난 배경은 이렇습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인 돈바스에서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죠. 우크라이나에서 분리하고 싶다는 겁니다. 돈바스 지역엔 러시아인이 많이 사는데 정부 정책에서 자신들이 소외당하고 있다고 느꼈던 거예요.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이들을 진압하죠. 한동안 두 세력의 싸움이 계속됩니다. 민스크협정은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약속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돈바스의 자치권을 인정하기로 합니다. 이것이 협정 내용 중 핵심이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결국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면전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애초에 민스크협정을 충실히 이행했다면 전쟁까진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지적입니다. 미국은 이보다 더 큰 비판을 받고 있죠. 전쟁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으니까요. 15)


2장.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올까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 체제도 무너집니다.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죠.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그 결과물이 1993년에 맺은 ‘오슬로 협정’인데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주권 국가로 독립해 ‘국가 대 국가’로 공존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이른바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죠. 협상 장소가 노르웨이 오슬로여서 오슬로 협정으로 부르게 되었죠. 14차례 비밀 협상이 있었다고 하네요. 이스라엘은 건국을 했고 4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영토도 더 확장했기 때문에 오슬로 협정은 사실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하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치 정부를 세울 수 있게 허용하고 가자 지구 등 점령지도 돌려주라는 것이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더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 투쟁을 하지 말고요. 2국가 해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돌려줘야 합니다. 25)


오슬로 협정으로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마침내 수립되었고,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 일부 지역에서 철수합니다. 아라파트 의장이 자치 정부 초대 대통령이 되죠.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을 모두 축출하려는 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가 1996년에 이스라엘 총리가 되었기 때문이죠. 팔레스타인도 2006년 총선에서 강경파 하마스가 압승합니다. 하마스 역시 근본적으로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을 모두 축출하고 싶어 합니다. 강 대 강이 맞서니, 합의는 힘을 잃고 분쟁만 살아남았습니다. 2국가 해법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이 원하는 국경선과는 일치하지 않아 국경선 설정이 가장 큰 문제로 남았습니다. 팔레스타인은 1947년 유엔의 분할안대로 국경선이 정해지길 바라지만, 이스라엘은 더 많이 갖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국경선이 바뀔 때마다 그 안쪽에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 늘리는 속칭 알박기를 하고 있습니다. 26-7)


이스라엘 사회가 우경화된 가장 큰 원인은 인구 구성의 변화에 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건국 초에는 유럽 중동부 출신의 유대인 즉 아슈케나지Ashkenazi가 많았습니다. 아슈케나즈는 히브리어로 독일을 뜻하니, 아슈케나즈 유대인은 ‘독일 유대인’이란 뜻입니다. 이들은 금융, 무역업에 주로 종사했습니다. 건국 이후에는 이베리아반도 출신의 유대인 즉, 세파르디Sephardi가 대거 들어왔습니다. 세파르디는 히브리어로 스페인을 뜻하는 ‘세파라드’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세파르디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반도 지역에 주로 거주하던 유대인 집단을 말하죠. 이들은 이스라엘에서 하류층을 이루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삶의 기반이 팔레스타인 거주지와 겹쳤죠. 사회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이들은 진보 세력의 점령지 반환 정책에 반대합니다. 여기에 1991년 소련 붕괴 후 러시아계 유대인 70만 명까지 유입되면서 극우 세력이 더 강해졌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네타냐후의 장기 집권이죠. 29-30)


3장.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에 무관심해졌을까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치른 최초의 서구 열강은 영국입니다. 3차례나 전쟁을 벌였지만,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끝내 지배하지 못합니다. 2차 대전 이후 아프가니스탄 왕국(1926~1973년 아프가니스탄 일대에 존재했던 왕국)은 중립을 표방합니다. 서구 근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부동항을 포기하지 못한 소련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조용히 실리를 추구해 나간 거죠. 아프가니스탄은 한동안 평화롭게 근대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나갔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덜 방법으로 소련과 군사적으로 깊게 교류한 것이 문제가 되고 맙니다. 소련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이 소련식 공산주의를 추구하며 세력을 형성한 것이죠. 이들의 반대편에는 부족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슬람이란 종교를 중심으로 뭉쳤고 서구화는 물론이고 소련식 공산주의에도 반발했습니다. 그 결과 소련의 영향을 받은 정부와 이에 반발하는 반정부 세력이 대립하게 됩니다. 33)


1978년 좌파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뒤를 이은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죠. 부족들은 반발했고, 급기야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이른바 무자헤딘(Mujahideen, 성전에서 싸우는 전사)이라는 반정부군이 조직됩니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서막이었죠. 소련은 정권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에 쳐들어갑니다.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1979년에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납니다. 소련은 긴장합니다. 소련의 남부 지역인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이슬람권 공화국들에서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날까 봐 겁을 먹은 거죠. 곧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무려 10년이나 이어집니다. 막대한 군사비에 소련 경제가 휘청입니다. 소련 붕괴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죠. 결국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곰의 덫The Bear Trap이라며 철수합니다. 그리고 1992년 4월, 탈레반 정부가 들어서죠. 33-4)


2001년 10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합니다. 알카에다를 보호한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었죠. 두 달 만에 성공합니다. 탈레반이 쫓겨난 자리에 친미 정부를 세웁니다. 처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때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국을 공격한 이들을 처단한다는 것에 세계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지속되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미국은 새로운 명분을 만들어 내죠. 바로 북한을 필두로 몇몇 나라를 ‘악의 축’이라며 새로운 적으로 삼은 겁니다. 알카에다 같은 테러 조직과 악의 축 국가들은 세계 질서를 위협하니 세계 평화를 위해 앞으로도 이들에게 맞서겠다고 선포한 겁니다. 그런데 탈레반이 집요하게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계획이 틀어집니다. 결국 미국은 2021년 8월 도망치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합니다. 그러자 친미 정부의 대통령(아슈라프 가니)도 곧 탈레반에 항복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달아납니다. 20년 만에 탈레반은 정권을 되찾죠. 35)


4장. 대만은 왜 국기가 없을까 : 중국 —대만의 갈등


중국은 대만을 전쟁에 패한 장제스가 세운 괴뢰정부로, 대만은 중국을 쿠데타를 일으킨 공산당 세력으로 봅니다. 상대를 무력 통일의 대상으로 여기죠. 우려는 현실이 됩니다. 1954년 대만 해협의 진먼섬에서 중국과 대만이 무력 충돌을 했기 때문이죠. 진먼섬은 대만보다 중국에 더 가깝지만, 대만이 점령한 곳이었어요. 대만으로서는 최전선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더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이곳에 군대를 많이 파견했습니다. 이를 중국은 좌시하지 않았고요. 1955년 미국이 개입해 휴전 상태로 접어듭니다. 미국이 핵무기를 쓸 것처럼 굴었기 때문에 중국이 물러선 거죠. 이 사건으로 미국과 대만은 방위 조약을 맺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58년 중국은 미국과 서유럽이 중동에 시선을 돌린 틈을 타 다시 진먼섬을 공격합니다. 무려 50만 발의 포탄을 44일간 쏟아붓죠. 그 바람에 대만 해협 바닷길이 봉쇄되기까지 합니다. 극한의 대치 상황은 미국과 중국이 기습적으로 수교를 맺은 1979년에야 끝이 납니다. 42)


1970년대부터 데탕트 시대로 접어들죠. 대만은 이런 분위기가 영 마뜩잖습니다. 중국을 탈환할 날도 멀어 보이는데 자기편인 줄 알았던 미국까지 중국과 가까워졌으니 불쾌했습니다. 곧이어 이 감정은 깊은 배신감으로 변합니다. 1971년 미국이 유엔 총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로 선언했기 때문이죠. 물론 미국은 중국이 대표 국가가 되는 대신 대만은 일반 회원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완강히 반대했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대만은 화가 나서 유엔에서 탈퇴해 버립니다. 미국은 1972년 중국이 주장해 온 ‘하나의 중국’ 원칙에도 동의합니다. 하나의 중국이란 중국과 홍콩, 마카오, 대만은 나뉠 수 없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대만이 격하게 항의하자 미국은 결국 1978년 12월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합니다. 미국의 보복으로 인해 대만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 줄줄이 쫓겨나고 국제무대에서도 지워집니다. 43-4)


2025년 3월 현재까지 대만은 친미 성향인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이 집권하고 있습니다. 중국으로선 불편하고 불쾌한 상황입니다. 차이잉원 전 총통은 2021년 10월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대만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파장을 일으켰죠. 비공식적이었던 내용을 당국자가 처음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대만은 중국의 영토니,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대만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연설에서 중국은 평화통일을 지향하되 무력 사용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무력 행사 대상은 중국 통일에 간섭하는 ‘외부 세력’과 ‘일부 독립 세력’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한마디로 미국에 내정 간섭을 그만두라고 경고한 거죠. 하지만 미국은 시진핑이 계속 권력을 놓지 않을 것이고, 그 경우 대만은 무력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을 계속 자극하고 있습니다. 47-8)


5장. 중국군과 인도군은 왜 몸싸움을 벌였을까 : 중국—인도 분쟁


중국과 인도가 국경선을 놓고 본격적으로 갈등하기 시작한 건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해 점령하면서입니다. 유엔이 한국전쟁에 집중하는 틈을 타 마오쩌둥은 티베트를 기습해 손쉽게 점령해 버립니다. 건국 1년 만에 중국은 왜 서둘러 이런 전쟁을 벌였을까요? 윈난성·쓰촨성과 접한 티베트 지역이 혹시라도 인도 쪽으로 돌아서면 북서부의 신장·위구르 자치구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죠. 티베트는 중국 영토의 8분의 1에 해당할 만큼 영토가 넓을 뿐 아니라 청나라 때 조공을 바치던 나라니 자국 땅이란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었죠.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당하자 티베트 불교 수장인 달라이 라마와 추종자들은 1959년 인도로 망명합니다. 인도가 망명 정부를 받아들이자 중국은 분노합니다. 인도가 미국이나 영국 등 서유럽과 연대해 자신들을 압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티베트 망명 정부를 허락한 이후로 둘 사이가 급속히 나빠집니다. 그리고 1959년 가을부터 국경선을 놓고 무력 충돌을 벌이기 시작했죠. 55-6)


1962년에 두 나라는 크게 부딪칩니다. 중국이 맥마흔 라인McMahon Line에 근거해 인도 북서부 라다크 지역(악사이 친)과 북동부 아루나찰 프라데시Arunachal Pradesh 지역을 자기네 땅으로 편입하려고 했거든요. 티베트는 오랫동안 청나라 지배를 받다 1914년에 독립합니다.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진 후였죠. 독립 당시 인도를 실제로 지배했던 영국과 중화민국, 티베트가 그은 국경선이 맥마흔 라인입니다. 1962년 전쟁 이후에도 두 나라의 국경 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다만 대표적인 두 분쟁 지역을 하나씩 나누어 가짐으로써 참고 있는 중이죠. 인도는 아루나찰 프라데시를 갖고, 중국은 악사이 친을 갖는 식이었죠. 1996년에서야 두 나라는 가까스로 협정을 맺고 두 지역에 실질 통제선LAC, Line of Actual Control이라는 완충 지대를 설정했습니다. 실질 통제선은 국제법에 따르면, 확정된 국경선은 아닙니다. 양측이 군대를 배치하고 있으니 순찰 중 언제든지 무력 충돌로 확장될 위험이 있죠. 56-7)


중국은 1960년대만 해도 점령한 악사이 친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어서 이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지금은 이 지역에 애면글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대규모로 투자한 결과 이제는 신장·위구르를 활용해 파키스탄이나 중동과 교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객관적으로 보면 인도가 약간 불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 역시 조급하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심지어 인도 정부는 중국과의 갈등을 국내 정치에 활용합니다. 외부의 적, 그중에서도 중국처럼 큰 적이 존재하면 내부를 결집할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죠. 물론 중국도 인도와의 국경 분쟁을 국내 정치에 잘 활용합니다. 특히 민족주의가 통치 전략인 시진핑에게 국경 분쟁만큼 애국심을 고취하기 좋은 소재는 없으니까요.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양보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지지율만 떨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방법엔 관심이 없는 겁니다. 59-60)


6장. 이웃과 왜 싸우게 되었을까 : 인도 —파키스탄 카슈미르 분쟁


카슈미르 지역은 카슈미르 계곡을 중심으로 히말라야산맥과 피르 판잘Pir Panjal 산맥 사이에 위치한 고산 지대입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지상의 천국’이라 할 정도로 히말라야산맥을 비롯해서 관광 자원이 아주 많은 곳이죠. 무굴제국 때부터 유명한 관광지였습니다. 수자원이 풍부하고 땅도 비옥해 벼농사뿐 아니라 농작물 재배도 잘되는 데다 루비 등의 지하자원도 풍부하죠. 직조업도 발달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캐시미어의 본고장이기도 합니다. 16~19세기 중반까지는 인도 최초의 통일 국가인 무굴제국의 땅이었죠. 무굴제국이 영국 식민지가 되면서 인도제국이 되었고요. 이후 인도에서는 임시정부 수립을 놓고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무슬림)가 극심하게 갈등합니다. 그 결과 힌두교는 인도, 이슬람교는 파키스탄이란 국가로 나뉩니다. 카슈미르 지역도 인도 땅과 파키스탄 땅으로 나뉘고요. 훗날 인도령 일부인 악사이 친을 중국이 차지하면서 카슈미르 지역은 인도령, 파키스탄령, 중국령 3곳으로 나뉩니다. 64)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차이를 부각해 두 종교인들 간에 적대감을 품게 했고 이런 감정은 독립한 이후에도 사람들을 지배했죠.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은 이런 감정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영국은 분할 통치를 통해 이슬람 세력을 약화하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힌두교 사람들을 지배층으로 편입시켰죠. 영국은 힌두교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 세력도 동시에 지원합니다. 2차 대전 직후 영국은 인도를 떠나기로 했고 인도는 임시정부 수립을 놓고 갈등합니다. 간디는 “분단은 곧 인도를 생체로 해부하는 것”이라며 통일된 인도를 간절히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힌두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 대표가 만나 담판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던 거죠. 이를 지켜보던 영국은 제 마음대로 1947년 8월 14~15일 이틀에 걸쳐 인도를 파키스탄과 인도,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 3국으로 분할해 버립니다. 65)


특히 벵골주와 펀자브주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습니다. 벵골주 서쪽과 펀자브주 동쪽은 인도, 그 반대편은 파키스탄이 되었으니까요. 이 중 펀자브주 국경 분쟁은 인접한 카슈미르 지역으로 확산됩니다. 영국에서 독립할 당시 카슈미르 지역의 대부분 주민은 이슬람교도였습니다. 당연히 이들은 자신들 땅이 무슬림이 많은 파키스탄에 속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카슈미르의 지배층은 힌두교도였습니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20퍼센트에 불과했지만, 대다수 주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인도에 편입해 버립니다. 파키스탄은 반발했고, 이 문제로 1948년 인도와 전쟁을 벌입니다. 1949년 유엔의 중재로 전쟁이 중단되었고, 카슈미르 지역은 인도령(잠무 카슈미르Jammu and Kashmir와 라다크Ladakh 지역)과 파키스탄령(아자드 카슈미르Azad Kashmir와 길기트‒발티스탄Gilgit-Baltistan 지역)으로 나뉩니다. 여기에 중국이 끼어들면서 문제가 더 커지죠. 인도령을 침공해 악사이 친 지역을 점령해 버렸거든요. 66-7)


서벵골은 인도, 동벵골은 파키스탄 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동벵골 지방의 무슬림들이 동파키스탄을 세우긴 했지만, 정치적 실권은 모두 서파키스탄(오늘날의 파키스탄)이 장악했습니다. 1970년 태풍 피해로 동파키스탄 국토의 대부분이 수몰되고 50만여 명이 사망하자 동파키스탄인들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이것은 동파키스탄의 독립 운동으로 발전합니다. 정부군이 이들을 탄압하자 많은 동파키스탄인이 인도로 넘어갑니다. 당시 인도는 이 난민들을 받을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돕죠. 동파키스탄 정부와 인도 사이에 전쟁이 터집니다. 인도가 승리해 동파키스탄은 인도가 바라던 대로 1971년 2월 ‘방글라데시’라는 나라로 독립합니다. 1980년대 들어와서도 카슈미르 지역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계속 충돌합니다. 1999년에는 카르길Kargil 분쟁도 일어나죠. 두 나라는 2004년부터 평화의 길을 모색합니다. 잦은 전쟁과 무력 대치로 인해 서로 경제적인 타격만 입기 때문이죠. 67-8)


7장. 왜 쿠르드족은 국가를 세울 수 없었을까 : 튀르키예—쿠르드 분쟁


쿠르드족은 ‘국가 없는 최대 단일 민족’, ‘중동의 집시’로 불립니다. 튀르키예·이란·이라크·시리아 등 중동 지역에 3천만여 명이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채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합니다. 중동에서 아랍인, 이란인, 튀르키예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민족임은 분명하죠. 이 중 절반이 튀르키예에 삽니다. 쿠르드족은 인종, 역사적으로 이란과 관련이 깊습니다. 이란계 산악 민족이죠. 그래서 이란과 접경 지역인 튀르키예 동부에 많이 거주합니다. 이곳을 주 투쟁 근거지로 삼고요. 역사에 처음 등장한 쿠르드족은 12세기에 제3차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점령한 살라딘Saradin 이집트 술탄입니다. 살라딘은 아이유브 왕조를 창건해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에 대제국을 건설했죠. 1250년 아이유브 왕조가 망한 이후 쿠르드족은 셀주크제국과 그 후 들어선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습니다. 쿠르드족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 자기들끼리 모여 사는 자치 지역이나 국가를 원하는 겁니다. 거주하는 국가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죠. 77-8)


1880년대 오스만제국 내 쿠르드 족장 셰이크 우베이둘라Sheikh Ubeydullah는 당시 이란(카자르 왕조)이 내부적으로 불안정한 틈을 타 이란 서부의 쿠르드족을 규합해 들고일어납니다. 초반에는 이기다가 결국 오스만제국과 이란 연합군에 패합니다. 그럼에도 우베이둘라의 봉기는 이후 쿠르드 독립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죠. 쿠르드족은 오스만제국이 1차 대전에서 패하자 독립을 다시 염원합니다. 1920년 연합국과 오스만제국이 체결한 세브르 조약을 보면, 쿠르드족에 자치권을 주기로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923년에 로잔 조약을 다시 체결합니다. 이 조약에서는 쿠르드족 얘기가 아예 빠지죠. 이렇게 된 것은 영국 탓입니다. 영국은 쿠르드족에게 주기로 했던 땅에 대규모 유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땅을 영국령으로 편입해 버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연합국은 오스만제국이 해체된 후 쿠르드족이 세운 국가를 무효화해 버립니다. 78-9)


소련도 쿠르드족을 이용합니다. 2차 대전 직후 소련은 이란 북부를 점령하고 쿠르드족의 국가인 ‘마하바드 공화국’(1946년 1월 22일~1947년 3월 31일)을 세웁니다. 소련은 이란과 유리하게 협상하기 위해 잠시 도운 척했을 뿐이죠. 마하바드 공화국은 불과 1년여 뒤 소련이 이란과 협정을 맺고 철수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1972년 쿠르드족은 이라크에 자치 정부를 세울 수 있게 돕겠다는 이란과 미국의 약속을 믿고 이라크와 3년 동안 싸웁니다. 이 전쟁 역시 미국과 이란에 이용당한 경우입니다. 당시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친미 정부였고, 이라크와 국경 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라크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쿠르드족을 이용한 것이죠.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80년부터 이란과 전쟁 중이었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쿠르드족이 이란을 도울 것을 염려해 1988년 안팔(Anfal, ‘성스러운 전쟁의 전리품’이란 뜻)이라는 비밀 작전을 펼칩니다.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학살하고 마을도 파괴해 버리죠. 80)


1920년대 초기에 튀르키예는 세속주의를 내세워 쿠르드족 고유의 언어, 의복 등을 금지합니다.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는 자국의 모든 민족이 튀르키예어를 사용하도록 강제했고, 당연히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했죠. 튀르키예가 세속주의를 내세우자 쿠르드족은 본격적으로 독립 운동을 펼쳤고 그 일환으로 1978년 PKK를 조직합니다. PKK는 쿠르드족 독립을 주장하며 테러를 일으키고 폭력 시위도 벌였습니다. 그로 인해 튀르키예에서 반쿠르드 감정이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2013년 튀르키예와 쿠르드족은 휴전 협정을 맺지만, 이후에도 무력 충돌은 계속됩니다. 튀르키예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라가 쿠르드족이 국가를 건설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지역에 자원이 많기 때문이에요. 영국과 프랑스 등의 서유럽 국가와 인근 아랍 국가 등이 서로 그 자원을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죠. 82)


8장. 시리아에서 전쟁은 끝난 걸까 : 시리아 내전


내전의 발단은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의 작은 도시 다라Daraa에 사는 10대들이 학교 담벼락에 “의사 선생님, 이젠 당신 차례야”라고 쓴 사건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2007년 7월 집권한 바샤르를 말하죠. 안과 의사였거든요. 당시 중동에서는 2010년부터 튀니지를 시작으로 훗날 ‘아랍의 봄’이라 불린 민주화 운동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독재 정권을 향해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거죠. 아이들은 이번 차례는 시리아 독재자라고 썼던 겁니다. 경찰은 아이들을 체포했고, 배후를 밝히라며 혹독하게 고문합니다. 정부가 군용기, 탱크까지 동원해 시민들을 학살하자 군대 안에서도 반감을 품는 군인이 늘어납니다. 결국 이들은 정부군에 등을 돌리고 시민군에 합류하죠. 대표적인 사람이 공군 대령 리야드 알아사드Riad al-Assad입니다. 그는 탈영병과 시위대를 모아 시리아 자유군SFA, Syria Free Army을 만듭니다. 이제 반정부군도 무장 조직을 갖추게 된 것이죠. 그리고 민주화 운동은 내전으로 전환됩니다. 86-7)


그런데 내전이 묘하게 흘러갑니다. 아랍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파 분쟁으로 번진 거지요. 시아파와 수니파 분쟁으로 말입니다. 시리아는 인구의 약 70퍼센트가 수니파인데 집권층은 시아파였습니다. 지배받는 수니파가 지배하는 시아파에 맞서는 구도가 됐습니다. 이 때문에 시리아 내전은 민주화 운동과 종교 전쟁이 섞이는 성격을 띠게 됩니다. 아사드 정권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돕고, 반정부군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합니다. 여기에 아사드의 오랜 우방국 러시아까지 가세하죠. 수니파 테러 조직인 IS가 내전을 틈타 시리아 북동부를 점령하면서 반정부군 진영에 끼어들고요. 미국은 아랍의 민주화 운동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시리아 반정부군 중 하나인 시리아 민주군SDF, Syria Democracy Force을 지원합니다. 미국이 SDF를 지원한 이유는 IS 때문입니다. 비록 IS가 시리아에선 반정부군 진영에 속해도 미국에게는 격퇴 대상이니 SDF를 이용해 물리치려고 한 것이죠. 87)


또 시리아 내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입니다. 먼저 튀르키예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가장 큰 이유는 쿠르드족을 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2011년 7월부터 튀르키예는 반정부군 중 하나인 시리아 자유군SFA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2017년 트럼프가 시리아에서 완전히 발을 뺌으로써 쿠르드족과 SDF는 궁지에 몰리죠. 튀르키예는 미국과 러시아의 묵인 아래 쿠르드족을 공격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틈만 나면 시리아 정부군을 공격했습니다. 시리아가 헤즈볼라를 비롯한 반이스라엘 무장 조직들에게 거점을 제공하고 있었으니 반감이 늘 있었죠. 이런 데다 3차 중동 전쟁의 결과로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리아 정부군이 승리할 경우, 이곳이 위협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전이 길어지길 바랐겠죠. 전쟁에 참여한 모든 세력이 전부 약해지는 것을 최고의 시나리오로 생각했을 겁니다. 88)


러시아는 아사드 부자와 오래 동맹을 맺었고 이들에게 무기도 지원했습니다. 푸틴이 시리아 정부를 도운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타르투스항에 해군 기지를 두었습니다. 타르투스항은 러시아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갖고 싶어 한 부동항인 데다 중동과 지중해를 넘볼 수 있게 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또한 시리아에서 반정부군이 정권을 잡을 경우 유럽으로 가스관을 연결할 가능성이 큰데, 이렇게 되면 러시아 ‒ 유럽의 가스 공급망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국제 사회에는 IS 격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말이죠. 미국은 오바마 정부 이래 고립주의를 내세웠습니다. 이 때문에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약해지고 그만큼 러시아의 영향력은 커졌습니다. 물론 미국과 서유럽이 시리아 내전에서 한발 물러난 데에는 IS 영향도 있습니다. 반정부군을 돕는 것이 IS를 키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죠. 89-90)


9장. 군부가 계속 집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 미얀마 내전


미얀마는 인구의 70퍼센트가 버마족이고 샨족·친족·몬족·카친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이 3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서로 언어와 문화도 크게 달라 종족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미얀마는 1824년부터 1948년까지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1942년부터 45년까지는 일제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2차 대전에서 패한 일제가 물러난 뒤에 다시 영국이 지배했고요. 그러니까 미얀마는 거의 12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은 것이죠. 당시 미얀마의 독립 운동을 이끌었던 아웅산 장군은 독립 후 국가 재건을 준비하던 중에 반대 세력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그리고 아웅산이 주축이 돼 만든 정당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 Anti Fascist People’s Freedom League이 총선거에서 승리해 서구식 민주 정부가 들어서죠. 하지만 2차 대전 후 탄생한 대다수 신생 국가들처럼 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소수민족끼리 갈등하면서 경제 혼란까지 겪습니다. 그러다 1962년 네윈Ne Win이 쿠데타를 일으켜 기나긴 군부 시대로 들어섭니다. 96)


네윈 군부는 1988년까지 26년간 집권합니다. 네윈은 주요 기업과 자원을 국유화해 시민의 몫을 착취하는 경제 구조를 만들었죠. 폐쇄적인 경제 정책 결과, 세계 경제에서 고립되고요. 당연한 귀결처럼 결국 경제는 무너지고, 지하경제와 암시장만 활성화됩니다. 독재와 경제난으로 국민의 분노는 점점 깊어졌죠. 마침내 1988년 8월 8일, ‘8888항쟁’이 일어납니다. 학생과 승려들을 주축으로 수많은 시민이 군부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합니다. 미얀마에서 일어난 첫 민주 항쟁이었죠. 하지만 군부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세대를 바꿔 가며 독재를 유지했죠. 8888항쟁 당시 정부는 저항하지 않는 시민들까지 무차별로 학살했습니다. 수천 명이 죽습니다. 군인이 자국민에게 총구를 겨누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항쟁 결과 네윈은 물러나지만, 군인들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쥐죠. 군부는 더 악랄해집니다. 아웅산수치도 집 밖으로 못 나오게 가택연금을 해 버리죠. 수치는 20여 년 만인 2010년에야 풀려납니다. 97-8)


2007년 8월 다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른바 ‘샤프란 혁명’이죠. 샤프란은 승복 색인데, 이 색을 떠올릴 정도로 승려들이 주축이 된 투쟁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미얀마는 국민의 약 90퍼센트가 불교도입니다. 샤프란 혁명은 군부가 연료 판매 가격 보조금을 폐지하면서 일어났습니다. 군부가 연료의 유일한 공급자였는데,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서 버스용 압축 천연가스 가격을 비롯해 가스 가격이 폭등한 것이죠. 시민들의 저항이 계속되자 군부도 한발 물러납니다. 2008년부터 자유선거를 실시합니다. 무늬만 자유선거지, 실제로는 부정선거였지요. 군부가 지지하는 통합단결발전당USDP, 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이 압승합니다. 하지만 군부도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2008년 새 헌법을 만들죠. 대통령 간선제, 시장경제 체제, 정당제 민주주의 등을 표방합니다. 그런데 의회 의석의 25퍼센트를 군에 자동 할당하게 돼 있어 그 외의 내용은 사실 치장에 불과했습니다. 98)


아웅산수치는 2010년 연금에서 해제되었고, 2012년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됩니다. 2015년 총선에서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이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합니다. 이번에는 웬일인지 군부가 이를 인정하고 정권을 이양합니다. 군은 2020년 11월 총선에서도 패배하자 다시 움직입니다. 수치는 군에 유리하게 돼 있던 헌법을 개정하려고 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의석의 25퍼센트를 군이 자동으로 갖게 돼 있기 때문이죠. 개헌안이 통과될 경우, 군의 영향력은 약해지겠죠. 그러자 2021년 2월 군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진보적인 인사들을 구금합니다. 쿠데타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할 뿐만 아니라 무자비하게 살해했습니다. 더는 평화 시위가 어려워지자 시민들은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시민들은 4번의 쿠데타를 겪으면서 군부를 끝낼 방법은 무장 투쟁밖에 없음을 인식한 것입니다. 99-100)


10장.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왜 학살자가 되었을까: 에티오피아 내전


에티오피아는 13세기부터 1974년까지 황제가 지배하는 제국이었습니다. 황제를 중심으로 80개의 크고 작은 종족으로 이루어진 연방제 국가였죠. 각 종족은 자치권을 누렸습니다. 그러다 1974년 9월, 공산주의자인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제국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군부는 1987년 군정을 폐지하고, 민심을 얻기 위해 공화국을 선포하죠. 제1대 대통령은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Mengistu Haile Mariam입니다. 그는 수많은 자국민을 학살했습니다. 무늬만 공화국이지 멩기스투 정권의 폭정은 계속됐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이들이 반정부군을 조직해 들고일어납니다. 멩기스투 정권은 1991년에 무너집니다. 2대 대통령은 대표적인 반정부군인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 Ethiopian People’s Revolutionary Democratic Front 지도자 멜레스 제나위Meles Zenawi가 되었습니다. 멜레스 제나위 총리 시절엔 그가 소속된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TPLF, Tigray People’s Liberation Front이 집권당이었습니다. 109-10)


2019년 12월 EPRDF는 공식적으로 해산하고, 새로운 조직인 번영당PB, Prosperity Party을 만듭니다. TPLF를 제하고 나머지 3개 정당만으로 꾸린 거죠. 왜 TPLF를 제외했을까요? 멜레스 제나위가 총리가 되면서 TPLF는 집권당이 됩니다. 이들이 정치를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멜레스 역시 독재자로 변질됩니다. TPLF는 멜레스가 2012년 사망하고 2018년 실각할 때까지 30년 가까이 독재를 합니다. 결국 총리(2대 총리 하일레마리암 데살렌)가 물러났고, 2018년 번영당을 주도한 아비 아머드 알리(Abiy Ahmed Ali, 오로모족 출신)가 3대 총리가 됩니다. 아비 총리는 TPLF를 배제했습니다. 그러자 TPLF가 들고일어나면서 내전이 시작되었죠. 아비 총리는 국경을 두고 오랫동안 분쟁해 온 에리트레아를 설득해 평화 협정을 체결합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노벨평화상을 받지요. 하지만 TPLF 본거지인 티그라이주는 이 협상에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자기들 땅이었던 바드메Badme를 에리트레아로 넘겨주었기 때문이죠. 110-11)


정부와 TPLF 간의 갈등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폭발합니다. 아비 정부는 보건 안전을 위해 전국 지방선거를 연기하겠다고 선언했는데 TPLF가 반발하며 독자적인 선거를 치르겠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실제로 2020년 9월 티그라이주는 따로 선거를 치릅니다. 아비 정부는 티그라이주 정부를 불법 군사정부로 규정하고, 재정 지원을 끊는 맞불을 놓습니다. 인터넷과 전화까지 모두 차단해 티그라이족들을 고립시키죠. 그리고 11월 정부군을 투입해 티그라이주의 주도 메켈레Mekelle를 점령합니다. 이후로도 내전은 계속됩니다. 에티오피아는 2021년 5월 총선을 치르고, 석연찮지만 번영당이 압승해 아비 총리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합니다. 2022년 아비 정부와 TPLF는 내전 중단에 합의합니다. 하지만 티그라이족은 이후로도 계속 박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현재도 서로 죽고 죽이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111-2)


후기


심리학 개념 중에 ‘낯선 사람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친구나 가까운 지인보다는 오히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개인적인 고민을 더 쉽게 털어놓는 경향을 말합니다. 낯선 사람과는 관계 유지에 대한 부담이 없어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죠. 낯선 사람 효과는 분쟁이나 전쟁을 해결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분쟁 당사국들은 서로 적대하고 불신하기 때문에 아예 대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때 제3의 중재자가 등장하면 대화의 물꼬가 트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당사국들이 공식적으로 말하기 힘든 조건들을 상대국에 대신 전하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런 존재들을 피스메이커Peacemaker라고 하지요. 2024년 12월 타계한 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가 대표적입니다. 국제 사회는 이런 피스메이커들에게만 기댈 것이 아니라 분쟁이나 전쟁 등 국제 사회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해결해 갈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입니다.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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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처럼 써라 - 헤밍웨이, 포크너, 샐린저 외 18인의 작법 분석
윌리엄 케인 지음, 김민수 옮김 / 이론과실천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장 | 오노레 드 발자크처럼 써라


"혹시 당신의 글 속에도 투박한 문장의 요소가 들어 있는가? 문장이 음악처럼 들리는 일이 별로 없는가? 종종 문장이 한없이 무디고 무겁게만 느껴지는가? 그렇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기 바란다. 물론 그러한 결점을 고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결점이 글쓰기를 중단해야 할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발자크는 서툰 문장 때문에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투박한 문체가 발자크의 성공을 가로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문체를 가다듬는 데 시간을 들이는 대신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비틀고 더 많은 글을 쓰는 데만 신경을 썼다." "때로는 서툰 문체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진다. 많이 쓸수록 잘 쓰게 되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매일 네 시간에서 여섯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쓴다면 글솜씨가 나아지지 않을 리 없다." "최선의 방법은 직접 많이 써보는 것뿐이다. 우리가 발자크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가능한 한 많이 써라."(20-2)


"발자크는 감정 묘사의 대가였다. 그의 글엔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는 등장인물의 시시콜콜한 느낌 하나까지도 놓치려 하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발자크의 문장은 여전히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묘사할 때 발자크가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절반가량은 같은 단어다." "그렇다, 본질은 단순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와 감정의 반복은 발자크의 작가 경력을 빛낸 일등공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야기에 속도가 붙고 등장인물이 분노, 교만, 자만, 갈망, 사랑, 시기, 증오와 그 밖의 중요하고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면 잠잠하던 이야기의 돛을 뒤집을 바람과 독자를 위한 수식어구를 아끼지 말고 사용해야 한다." "영감이 떠오른 순간을 놓치지 마라. 한두 개의 멋진 문장 전환으로 독자의 뇌리에 못을 박아라. 독자가 등장인물의 마음 속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수식어구라는 등불을 내걸어라."(22-7)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인 젊은 청년 외젠 드 라스티냐크의 꿈은 오로지 출세이다. 이 꿈은 소설 말미에 와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 소설 내내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친척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출세를 위한 디딤돌로 이용한다. 어떤 사람과도 오랫동안 관계를 맺지 않으며, 마지막엔 항상 언제 봤냐는 듯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다. 그는 늘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굶주려 있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진정한 사랑에 빠져본 적도 없으며, 윤리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등장인물의 변화에 대한 강좌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가 창조했음직한 인물이다." "변화를 모르는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순전히 시간낭비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특히 등장인물의 변화를 최소한 보여주는 데도 충분히 강력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며 사실 이것이야말로 발자크가 현대의 작가들에게 전하는 최고의 가르침이다."(34-7)


2장 | 찰스 디킨스처럼 써라


"디킨스의 모든 소설은 바로 등장인물이 이끌어간다. 물론 디킨스도 소설 연재를 앞두고 몇 달 전부터 줄거리를 만들어 놓을 만큼 이야기 자체에 신경을 썼고, 그의 줄거리가 강력한 흡입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이전에 그는 인물 풍자에 관한 한 최초이자 최고의 작가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진득하게 소설 한 페이지를 읽는 독자가 드물고 대사 없이 묘사만 긴 책들은 외면당하기 십상인 오늘날, 생생하고 사실적인 디킨스의 인물 묘사를 작품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전(前)세계 체스 챔피언인 이매뉴얼 래스커의 말을 빌려 답하자면, 〈좋은 묘사가  떠올랐을 때 더 좋은 묘사가 없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식상한 것에 안주하지 마라. 상상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라. 특히 유머를 잃지 말고 터무니없는 상상과 풍자를 활용하라. 자신이 만든 인물을 조롱하고 익살맞으며 아이러니한 별칭을 붙여라. 그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묘사하라. 그러면 독자도 당신의 장난에 맞장구를 치며 즐길 것이다."(41-2)


"아치볼드 쿨리지는 『연재소설가 찰스 디킨스』(1967)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편다. 연재소설 때문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던 디킨스가 아주 과감한 기법들을 개발하여 모든 소설가의 공통된 고민거리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 고민거리란 어떻게 하면 독자가 다음 페이지를 궁금해 하도록 만들 것인가이다. 디킨스가 사용한 중요한 기법 중 하나가 바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다." "미스터리 기법을 활용하려는 작가는 이야기의 일부를 독자가 모르게 숨겨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작가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정보를 찔끔찔끔 흘려야 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예컨대 주인공의 진짜 친구는 누구이고 진짜 적은 누구인지 밝히지 마라. 또 핍이 미스 해비샴을 후원자라고 철썩같이 믿었듯이 등장인물이 엉뚱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으면 이를 미끼로 독자를 엉뚱한 곳으로 유인할 수 있으며, 의외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 독자가 받는 충격과 놀라움은 두 배로 커진다. 부디 독자를 애타게 만들길."(48-51)


3장 | 허먼 멜빌처럼 써라


"멜빌은 많은 상징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상징을 자신의 작품에 결합하여 핵심 주제를 뒷받침했다. 고래는 분명히 자아의 상징으로, 카를 융이 말한 통합적 인격의 전형이다. 에이해브 선장에게는 이 통합적 인격이 결여되어 있다. 에이해브라는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균형감각을 잃은 광기다. 이런 인물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퀴퀘그가 이상적인 인간의 상징에 더 가깝다. 멜빌은 『모비딕』 34장에서 퀴퀘그를 〈고귀한 야만인〉이라고 부른다. 어떤 평론가는 퀴퀘그가 〈형제애나 종교적 관용, 본능의 아름다움〉처럼 멜빌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상징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슈마엘은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밝은 등장인물과 어두운 등장인물이 균형을 이뤄야 어두운 인물과 대비되어 밝은 인물이 더욱 돋보인다. 이렇게 하면 등장인물의 구체적 성격을 만들어내는 작업과 추상적 개념(상징)을 만들어 내는 작업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61-4)


"등장인물의 성격을 만들 때 멜빌이 사용한 장치는 네 가지다. 우선 '복합성'이다. 그는 에이해브를 여러 가지 성격이 충돌하는 인물로 그렸다. 에이해브는 악과 광기로 무장했으며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인 동시에 선과 이성, 그리고 예측가능성을 지닌 인물로도 묘사된다. 두 번째 장치는 '불확실성'이다. 우리는 펠레그 선장이나 빌다드 선장처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에이해브 선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두 인물은 에이해브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그 바람에 에이해브의 성격은 오히려 더 모호하고 불확실해진다." "멜빌이 사용한 세 번째 장치는 '선택'이다. 이는 몇 가지 주요 특징에만 집중해서 조명하는 것을 뜻한다. 가령 멜빌은 에이해브를 묘사할 때 그의 광기와 편집증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킨다. 멜빌이 사용한 마지막 장치는 '미스터리'다. 그는 에이해브에 대해 아직 알려지지 않거나 알 수 없는 사실이 몇 개 더 있다고 슬쩍 흘려놓는다."(65-6)


4장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써라


"불안하면서도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도스토예프스키는 치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인물들의 마음 사이를 이동한다.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우선 장면을 설정하고 A라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침투한 다음 B라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도스도예프스키는 『죄와 벌』의 5부 4장을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여자 친구 소냐에게 자신이 살인자임을 고백하는 장면 설정으로 시작한다." "다음 단계인 인물의 마음속으로 침투하기는 혼란의 와중에 있거나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인물을 묘사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 그는 여자 친구에게 자신이 살인자라고 고백해야 하는 상황을 부끄러워하고, 처음으로 살인자라는 사실을 수치로 여기기 시작한다." "마지막 단계는 상대 등장인물의 마음속으로 이동하기다. 처음엔 이 불행한 남자에 대한 연민으로 소냐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자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었다."(72-4)


"도스토예프스키는 등장인물을 묘사할 때 인물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낸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보통 키에 호감이 가는 용모를 지닌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었지만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첫 문장부터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등장인물의 외모는 곧 그 인물의 내면이며 성격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등장인물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격정적이고 혼란스러운 생각 때문이다." "작가가 인물을 격정과 혼란에 빠트리는 순간 그 인물은 더 이상 평범한 사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격정과 혼란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기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드미트리, 미쉬킨 공작 모두 마찬가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등장인물들의 기이하거나 놀랍도록 대담한 행동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러한 장치를 작품에 적용하려면 작가의 시선이 평범함 너머에 있는 것을 향해 있어야 한다. 과연 얼마나 극단적인 지점까지 행동을 밀어붙일 수 있는지 도전해보라."(83-5)


5장 | 크누트 함순처럼 써라


"전통적인 소설에 대한 함순의 비판은 전적으로 옳았다. 대부분의 소설은 직선적인 방식으로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즉 시간의 한 지점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일련의 에피소드와 장면을 거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가 불씨가 되는 사건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우연에 의해 연결되어 있던 에피소드와 장면들은 마치 우르르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서로 영향을 미친다. 물론 현대 작가들도 종종 플래시백(회상) 기법을 사용하여 직선적인 진행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그러나 플래시백은 대부분 배경 설명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는 자신의 기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거나 감정의 그물에 걸려 사건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우리가 인식하기 힘든 형태로 직선적인 시간을 왜곡하기도 한다. 크누트 함순은 직선적이고 이성적인 방식보다는 꿈을 이용한 자기 성찰적 접근을 선호했다. 헤밍웨이나 카프카 같은 작가가 함순의 작품을 존경하고 연구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96-7)


"크누트 함순이 문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공로가 있다면 에밀 졸라의 캐릭터 접근법을 거부한 것이다. 실제로 함순은 지배적 특징을 내세워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자연주의 작가들을 대놓고 비웃었다. 함순에게는 등장인물을 몇 가지 지배적 특징으로 한계 지우는 것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보였다. 그런 인물은 도무지 진짜 같지 않았다. 함순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즉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마음이 바뀌고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이야말로 진짜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함순은 자신의 등장인물 중에 '지배적 특징'으로 설명한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대신 함순의 소설에는 변덕이 죽 끓듯 수시로 마음이 바뀌거나 하나의 특징을 선보이는가 싶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리고 뜬금없이 아무런 관련 없는 또 다른 특징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함순은 마치 불교에서 명상을 하듯 인간의 의식을 묘사한다."(98-9)


6장 | 이디스 워튼처럼 써라


"스탠리 큐브릭은 〈우리는 6개나 7개쯤 되는 중요한 순간(big moments)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디스 워튼도 항상 6개나 7개의 깨달음의 순간을 준비해놓고 소설의 얼개를 짰다. 이를 캐릭터 아크라고 부른다. 그러나 캐릭터 아크가 초반, 중반, 결말로 이루어지는 포괄적인 영어라면 깨달음의 순간은 캐릭터 아크의 최소 단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고, 더 쉽게 당신의 작품에 적용할 수 있다. 깨달음의 순간에 도달하면 앞만 보고 나아가던 등장인물의 직선이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그림 하나를 떠올려보면 더 쉽게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뻗어나가던 직선이 곡선 형태를 이루면서 마디마디가 부러진 활을 떠올려보라. 부러진 마디마디가 바로 깨달음의 순간이다. 조이스는 깨달음의 순간을 '직관의 번득임(lightings of intuition)'이라 불렀다. 이처럼 통찰의 순간에, 즉 등장인물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잠시 속도를 늦추고 정성을 들여 그 순간을 다듬어 작품 속에 집어넣어라."(126-9)


7장 | 서머싯 몸처럼 써라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속으로 등장인물을 밀어 넣는 것이다. 여기에 미래에 벌어질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광고'하여 독자의 기대를 부풀리는 것은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진행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첫 번째 기법, 등장인물을 난처한 상황에 몰아넣고 어려운 결정을 요구하면서 등장인물에게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르게 해야 한다. 그 결정은 등장인물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만큼 까다롭고 힘든 결정이어야 한다.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결정을 요구하라." "미래에 일어날 일을 독자에게 약속할 때는 몸이 그랬듯 미래의 그 일이 이야기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고 줄거리에 필수적이며 등장인물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어야 한다." "독자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미리 알려준다면, 그리고 작가의 약속이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흥미진진하다면, 독자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책장을 넘길 것이다."(137-40)


"'뜻밖의 사건'은 스토리텔링의 핵심적 요소다. 글쓰기란 결국 당장 필요한 만큼만 이야기를 드러내고 나머지 사건은 마지막에 독자를 놀라게 하기 위해 숨겨놓는 일종의 게임이다. 『면도날』에서 독자가 래리와 이사벨의 행복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을 때 몸은 래리가 진리와 깨달음, 지혜를 구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인간의 굴레』에서 밀드레드가 필립 앞에 다시 나타는 시점을 보라. 그가 노라와 한창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다.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의 아내를 빼앗으면서까지 끝내 자신이 원하는 여자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곧 그녀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쳐 자살로 내몬다." "개연성과 더불어 뜻밖의 사건이 갖추어야 할 또 다른 조건은 그 사건을 통해 독자가 알지 못했던 등장인물의 면모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릭랜드가 스트로브의 아내를 차버릴 때 독자는 적어도 그의 잔인성에 다시 한 번 치를 떨며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 한 걸음 더 다가간 느낌을 받는다."(141-3)


8장 |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처럼 써라


"버로스는 이야기를 정상적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그는 혐오감을 주거나 거부감을 주는 이름을 가진 인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고, 낯설거나 생소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그는 마치 친구가 또 다른 친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쏟아놓듯이 친근한 주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은 버로스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여자 주인공들의 이름은 항상 매력적인 여자를 연상시키고 남자 주인공들의 이름은 강한 남자를 연상시킨다. 악당은 그야말로 악랄한 악당을 연상시킨다." "버로스의 어떤 책을 펼치더라도 갈등이 꿈틀거린다. 갈등은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엔진이다. 이야기가 늘어지기 시작한다면 주인공을 다른 누군가와 충돌시켜 위험을 고조시키는 도박을 걸어보라. 그 즉시 이야기는 생명력을 되찾을 것이다." "SF에 사랑 이야기를 도입함으로써 버로스의 소설이 더 흥미진진해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신의 이야기가 로맨스로 가득하게 하라."(151, 154, 160, 163)


9장 | 프란츠 카프카처럼 써라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어느 날 아침 그는 잘못한 일이 전혀 없는데도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심판』의 첫 문장에는 소설 전체의 줄거리와 갈등이 압축되어 있다." "『변신』의 첫 장을 펼쳐본 사람이라면 첫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소설의 맨 앞에서 제시되는 이야기의 전제는 놀라우리만큼 독창적이다. 〈간밤의 뒤숭숭한 꿈에서 잠을 깬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 위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판』과 『변신』의 도입부에서 카프카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정수만을 뽑아내어 전체 갈등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버린 것이다. 다른 작가들은 이런 방식을 꺼린다. 그들은 비밀을 감춰두고 싶어 한다. 주요 갈등과 이야기의 전제를 드러내기 전까지 뜸을 들이고 싶어 한다. 문제는 분위기 조성이다. 분위기 조성만 그럴듯하게 된다면 도입부에 너무 많은 패를 보여준다는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하다."(170-1)


"카프카의 주인공은 항상 줄거리의 덫에 걸려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댄다. 이 모든 것이 임시하는 것은 꿈이 가진 악몽 같은 특성이다. 복도에서 문을 여니 법정으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보이고 추격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누군가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카프카는 꿈이 가진 이러한 탄력적인 면들을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표현주의적 기법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카프카의 작품이 그토록 폭넓은 호소력을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프카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분명 위험하고 이상하며 낯선 곳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은 이상한 세계로 더 깊이 가라앉다가 결국 그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독자는 대리 경험을 통해 낯선 꿈의 세계로 빠져들고 주인공의 눈을 통해 그 세계의 진실을 바라본다. 이렇듯 카프카의 줄거리는 강력한 비유와 함축을 동원하여 신화적으로 각색된 현대의 풍경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172-4)


10장 | D. H. 로렌스처럼 써라


"로렌스는 줄거리보다 개인들 간의 관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는 하나의 큰 흐름보다는 단편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진 느낌을 준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로렌스는 인물의 마음과 생각을 깊이 파고든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읽는 가장 큰 재미 가운데 하나는 모든 장에서 깊은 정서적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로렌스는 등장인물이나 몇 쌍의 연인들만 갖고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 인물들이 소설 한 권이 끝날 때까지 이야기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별다른 줄거리 없이 작업을 지속해나가는 방식을 가장 좋아했다. 장면과 장을 자신의 상상에 맞게 구성하고, 그렇게 써놓은 거친 초고를 바탕으로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서 조바심을 내지만 않는다면 이 방법은 당신에게도 효과적일 것이다. 많은 작가들은 이야기의 절정이나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 글을 시작한다. 이 방법을 '등장인물의 망령(Character Possession)'이라 부른다."(190-3)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는 사실적 행동 못지않게 '공간의 상징(ambient symbolism)'도 많이 등장한다. 공간의 상징은 이야기의 배경, 혹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나는 상징을 가리킨다. 여러 번 반복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공간의 상징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 사냥터 관리인의 숲, 채털리 부인의 남편이 살고 있는 공업 도시, 채털리 부인이 살고 있는 대저택은 모두 '공간의 상징'이다." "로렌스에게서 상징을 배우기가 더 쉬운 이유는 상징을 분명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상징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때 로렌스는 독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주입한다. 채털리 부인은 남편의 '추악하고 산업적인' 탄광 때문에 세상이 망가졌다고 비난한다. 〈사람들한테서 자연의 삶과 인간다움을 빼앗아간 게 누군데요? 사람들에게 이 산업사회의 공포를 가져다준 게 누구죠?〉 주저 말고 가끔은 독자의 옆구리를 쿡 찔러라. 그렇게 해서라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198-202)


11장 | 윌리엄 포크너처럼 써라


"포크너는 이미 이야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 뛰어들어 소설을 시작하는 방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반면 많은 작가들은 한창 이야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소설을 시작한다. 그것이 더 적절하고 극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포크너는 주로 이야기의 한복판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소설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뜸을 들이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깊이 있고 복잡하게 쌓아나감으로써 포크너는 입체적이고 그럴듯한 세계를 창조한다. 독자는 마치 현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허구의 세계에서 복잡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탐구심을 발휘해야 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본다. 뿐만 아니라 주변부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포크너의 방식은 작품에 문학적 특성을 좀 더 강하게 부여한다. 물론 포크너의 방식에는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도입부의 속도감을 떨어트릴 위험성이 있기도 하지만 지적인 독자들에게 복잡하고 불확실한 도입부의 묘미를 감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211-5)


"포크너는 소설의 시작도 독특하지만 이야기의 결론을 내리는 방식도 눈에 띄게 예술적이다. 존 가드너는 이를 가리켜 '울림이 있는 결말(resonant close)'이라고 부른다. 이런 결말에서는 〈등장인물이나 이미지, 사건들만으로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요약하거나 다시 떠올리게 하여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독자는 그동안 연관성을 찾기 힘들었던 인물과 이미지, 사건이 서로 앞뒤가 들어맞아 마침내 중요한 것들이 모두 연결되는 느낌을 통해서 감동을 얻는다.〉" "포크너는 결말을 시로 처리하기도 한다. 소설 초반에 시가 나왔더라면 어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말에 등장하는 시는 소설의 마무리를 예술적으로 만들어준다." "결말은 새로운 언어를 과감히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억눌러온 장식적인 구조나 미사여구에 도전할 수도 있고 소설 초반부에 등장했으면 어울리지 않았을 시를 사용할 수도 있다. 독자는 이야기의 마지막 순간에서만큼은 작가가 겉멋을 부려도 관대히 받아들인다."(215-7)


12장 |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써라


"그렇다, 헤밍웨이는 문장을 짧게 썼다. 그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문장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문장을 짧게 쓰기 위해 헤밍웨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왜 문장을 짧게 쓰려고 했는지 대부분의 작가들은 잘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의 정확함 때문이다." "주저하지 말고 길고 복잡한 문장을 작은 조각으로 분해하라. 가독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헤밍웨이가 간결한 문장을 쓴 이유는 표현의 정확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문장을 짧게 썼던 또 다른 이유는 극적 효과를 위해서였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주인공은 썩어가는 다리 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래 좋아. 그는 이제 죽음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항상 두려워한 것은 고통, 그 한 가지 뿐이었다.〉 이 짧은 문장들은 주인공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점증 효과를 발휘한다. 문장의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극적 호소력을 강화하고 싶을 때 짧은 문장을 길게 이어놓으면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을 수 있다."(228-30)


"〈잠시 후 밖으로 나갔을 때 나는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When I went out after a while, I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이 문장엔 종속절이 쓰였다. 여기서 종속접속사 'when'을 없애면 이런 문장이 남는다. 〈나는 잠시 후 밖으로 나가 병원을 떠났다.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I went out after a while, I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다음에는 쉼표를 없애고 그 자리에 'and'를 집어넣는다. 〈나는 잠시 후 밖으로 나갔고 병원을 떠났고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I went out after a while and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이제 첫 두 절의 순서를 바꿔주는 일만 남았다. 〈잠시 후 나는 밖으로 나갔고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After I went out and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정확히 이 문장으로 끝냈다."(238-9)


"오로지 상상으로만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마라. 현실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을 토대로 인물을 만들어라. 그렇게 하면 현실과 멀리 떨어진 곳을 흐르고 있던 당신의 이야기가 마침내 살아 솟구쳐 오를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반드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마련이다. 때로는 하나의 등장인물을 만들기 위해 두 사람 이상을 모델로 삼을 수도 있다. 헤밍웨이가 즐겨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두 인물을 하나로 합친 복합적 캐릭터는 소설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의 하나이다. 두 사람 이상의 인물을 떠올린 다음 그들의 특징과 행동을 한 명의 등장인물 속에 결합시켜라. 이 작업을 제대로만 하면 독자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합쳐져 하나의 캐릭터로 태어났다는 것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독자는 당신의 글을 통해 새롭게 생명을 얻은 인물을 만나는 기쁨을 누린다. 두 사람을 합쳐 놓은 복합적 캐릭터는 한 사람을 토대로 만든 캐릭터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인 경우가 많다."(246)


13장 | 마거릿 미첼처럼 써라


"미첼은 등장인물의 내면의 소리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한 작가였다. 그녀의 글이 독자를 사로잡은 이유는 소설의 대부분이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가 바라보는 제한된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칼렛의 감정이 변할 때마다 독자는 그녀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다. 스칼렛은 사랑과 인간관계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녀가 사랑을 얻거나 잃을 때, 저택과 영지를 잃을 때 독자는 그녀 못지않게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된 힘은 이러한 정서의 힘이다. 따라서 미첼이 사용한 내면의 독백은 이야기를 튼튼하게 구성하고 독자를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주인공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문학적 장치다." "등장인물의 생각에 할애하는 비중은 전체 이야기에서 10퍼센트 정도가 적당하다. 미첼도 전체 이야기에서 스칼렛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이 정도의 비중을 할애했다. 나머지 시간은 주요 등장인물과 기타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으로 채워야 한다."(253-5)


14장 | 조지 오웰처럼 써라

"

『1984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등장인물은 단연 윈스턴 스미스다. 소설 전체를 윈스턴의 관점에서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웰은 『1984년』을 집필하는 동안 폐결핵으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도 오른쪽 발목 윗부분의 정맥류성 궤양으로 고통을 겪는다. 고문을 당할 때도 궤양이 언급될 정도다. 국가는 그를 세뇌시키는 데 성공한 뒤에야 궤양을 치료해주고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아준다. 폐결핵에서 궤양으로 바뀌긴 했지만, 작가의 병이 주인공에게 전이된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물을 만드는 기본적 방법 한 가지를 엿볼 수 있다. 작가 자신을 비롯해 실제 인물의 특징을 바탕으로 인물을 만드는 방법이다. 단, 진행중인 줄거리에 적합한 방향으로 실제 인물의 특징에 '변화'를 주는 게 필요하다." "특히 국가가 상처 부위를 붕대로 감아줄 때 궤양이라는 소설 속의 장치는 그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국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전체주의 정부에 포섭되어간다는 것을 절묘하게 암시하지 않는가?"(277)


"주제 혹은 지배적 아이디어는 작가의 도구이자 고성능 렌즈이다. 작가는 주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수정하고 윤을 내며 더 흡인력 있게 만든다. 주제를 뒷받침하거나 구현하는 사건이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라. 주제에서 겉돌거나 주제를 구현하지 못하는 대화나 장면이 한 토막이라도 있다면 인정사정없이 잘라내라." "『1984년』은 작품 곳곳에 주제가 배어 있다. 오웰은 주제를 통해 작품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당신도 오웰처럼 주제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나 메시지가 처음부터 명확하게 포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주제나 메시지는 작품을 본격적으로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며, 작품에 대한 고민을 거듭할수록 더욱 명확해진다. 주제는 구조의 결함을 발견하고 고칠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독자를 감동시키는 원동력 또한 주제에서 나온다. 비록 많은 단어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주제가 반복되어 점점 쌓여나갈 때 생기는 효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288-9)


15장 | 이언 플레밍처럼 써라


"플레밍은 정확한 세부묘사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세부묘사를 통해 감각적 쾌락만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과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한마디로 그는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는 작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플레밍은 자메이카의 북쪽 해안가에 은둔자처럼 처박혀 글을 썼다. 플레밍의 명성을 알린 작품들도 그곳에서 탄생했다. 『카지노 로얄』(1953)을 필두로 모두 열두 편의 '본드 시리즈'가 차례로 발표되었다. 자메이카에서 글을 쓰는 동안 플레밍은 금도금을 한 로얄 디럭스 타자기를 사용하고 몰랜드 스페셜 담배를 쉴 새 없이 피워댔는가 하면 늘 술에 절어 있었다. 인생의 쾌락을 좇는 그의 성향은 문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세부적으로 묘사를 아끼지 않은 문장과 이국적 배경 설정, 다채로운 인물의 창조는 플레밍 특유의 문체로 자리 잡았다. 그가 모든 작품에서 사용한 플레밍 문체는 세부묘사를 활용하여 감각을 자극하고 독자에게 호화로움과 쾌락의 세계를 전한다."(292-3)


16장 | J. D. 샐린저처럼 써라


"샐린저의 작품에서는 (줄거리보다) 등장인물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조이스 메이너드는 샐린저가 캐릭터에 관한 메모를 깨알같이 적어놓은 수십 권의 공책을 갖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 공책들이야말로 샐린저가 끊임없이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비결이다. 물론 독자가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세상에 발표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국한된다. 샐리저는 후기 작품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글래스 가문을 묘사하기 위해 구성원들 한 사람당 책 한 권 분량의 메모를 적어두었다. 최종 발표된 작품에 이들이 전부 실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샐린저는 작품에 실리지도 않을 이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자세하게 분석했다." "헤밍웨이도 이런 작업 방식을 좋아한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 유명한 '빙산 이론'을 논하는 자리에서였다. 〈당신이 어떤 부분을 빼버렸을 때 이야기가 더 강화된다면, 어뻔 부분을 빼버렸을 때 독자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풍부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무엇이 됐건 빼버려라.〉"(321-3)


17장 | 레이 브래드버리처럼 써라


"많은 작가들은 초고를 쓸 때 머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걸러내지 않고 빨리 써야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냥 나오는 대로 받아써라.〉 스티븐 킹과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도 모두 그런 식으로 초고를 썼다.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 수정을 했다. 브래드버리도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초고를 쓸 때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을 걸러내지 않고 최대한 빨리 쓰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겹쳐 쓰기를 한다. 나중에 수정할 때 잘라내고 편집할 요량으로 문장이나 대화마다 다양한 대안을 적어놓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려면 써야 할 글의 분량이 많아진다. 그러나 이 방법의 매력은 글 쓰는 이의 가슴이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다시 말해 소설 속 장면 한가운데에 있을 때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예행연습' 때 최고의 어휘와 표현이 떠오른다면 그것이 바로 작가가 찾고 있는 그 어휘일 가능성이 많다."(337-8)


"단짝 캐릭터는 세계 문학사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효과가 입증된 장치이다. 브래드버리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능숙하고도 의식적으로 이 장치를 사용한다. 첫 번째 이유는 두 인물을 비교하여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 소년만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심도 깊은 인물 묘사가 가능해진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 정반대다. 매우 미세한 두 인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짝 캐릭터를 사용하면 중심인물이 한 명일 때보다 두 소년의 심리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브래드버리는 『무언가 위험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에서 단순히 짐과 윌의 차이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두 소년의 우정과 일반적인 우정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간다. 친구란 서로 다른 차이를 끌어안는 것이고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캐릭터 묘사를 통해 소설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우정과 충성심을 강조하는 효과까지 거둔다."(343-5)


18장 | 플래너리 오코너처럼 써라


"만약 오코너의 작품이 재미있게 읽힌다면 그것은 오코너가 '자유간접화법'이라는 문학 장치를 빈번하게 사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유간접화법은 한 가지만 빼고 간접화법과 똑같다. 그것은 간접화법과 달리 전달동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자유간접화법은 전문용어로 '올바른 철자 표시(orthographic marker)'라고도 불린다." "『폭력이 그것을 끌고 갔다』의 2장 중반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난다. 〈소년은 학교 선생님들에게 배신당했다는 것을 '알 만한 눈치는 있었다.'〉 홑따옴표로 된 부분이 바로 타워더의 관점에 물든 자유간접화법이다." "자유간접화법을 사용하고 싶다면 당신이 설명하려는 등장인물의 마음속으로 뛰어들어라. 특정 상황에서 '당신'에게 떠오르는 단어나 구절 말고 '등장인물'의 머리나 마음속에 떠오를 법한 단어나 구절을 찾아라." "이러한 등장인물의 목소리는 당신의 전형적이고 '따분한 목소리'에 의한 서술보다 훨씬 짜릿한 흥분을 독자에게 선사한다."(363-6)


19장 | 필립 K. 딕처럼 써라


"18세기와 19세기의 작가들은 등장인물의 과거에 대한 장황한 묘사를 통해 그 인물의 동기를 드러내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디킨스는 『황폐한 집』에서 에스더의 혈통에 대해 길고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에스더의 어머니인 데들록 부인이 다시는 딸과 만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에서 작가인 자신도 전부 드러내지 못할 만큼 등장인물들의 동기가 복잡하다고 솔직히 털어놓고 독자들의 양해를 구했다." "등장인물에게 동기를 부여할 때 딕의 현대적인 접근 방식을 활용하고 싶다면 배경 지식이나 세부묘사를 최소한으로 생략하고 압축하라. 등장인물의 대사 몇 줄이나 간단한 생각만으로도 얼마든지 독자에게 등장인물의 동기를 이해시킬 수 있다. 독자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짧은 대사나 생각에서 등장인물의 동기를 집어낼 것이다. 등장인물의 동기가 개연성이 있다면 굳이 길게 묘사하지 않고 간단히 언급만 해줘도 충분하다."(378-80)


20장 | 톰 울프처럼 써라


"울프가 등장인물을 만드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의 방법과 같다. 즉 등장인물의 주요 특성을 과장하고, 자신이 만든 등장인물을 냉소적으로 조롱하며, 그들의 허물이나 기벽(奇癖)을 실제보다 과장하여 드러내는 방식이다." "당신의 등장인물을 아기처럼 살살 다루지 마라. 특히 주인공을 부드럽게 다뤄서는 안 된다. 작가가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많은 연민을 품게 되면 울프가 찰리에게 그랬던 것과 달리 당신의 주인공을 고통에 빠트리는 데 망설이게 된다. 주인공이 수치심과 모욕, 불안과 동요, 추락을 경험케 하라. 그렇게 하면 독자의 관심은 주인공에게 쏠릴 수밖에 없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독자 자신이 처한 상황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캐릭터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글쓰기의 본질이다. 이는 문학이 음악이나 영화, 연극보다 훌륭한 매체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은 글쓰기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다."(394-6)


21장 | 스티븐 킹처럼 써라


"간단히 말하면 서스펜스란 독자가 미래에 벌어질 어떤 사건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독자가 불안감을 갖게 하려고 애쓴다. 때로는 단순히 독자가 간절한 기대와 호기심을 갖고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게끔 만다는 것을 서스펜스라 부르기도 한다. 의미상으로는 그렇겠지만, 스티븐 킹의 서스펜스는 약간 다르다. 킹의 서스펜스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독자가 '걱정'하게 만드는 데서 형성된다. 말하자면 킹의 서스펜스는 눈에 잘 띄는 송곳 같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단순한 호기심도 아니고 제인 오스틴의 기대감과도 다르다. 킹의 서스펜스에 빠져든 독자는 손톱을 물어뜯고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심한 근심에 휩싸인다." "서스펜스는 천박하거나 조악한 기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용했을 때 서스펜스는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이야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최고의 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무기가 될 것이다."(410-1)


"스티븐 킹은 서스펜스를 만들 때 항상 세 단계로 구성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킹은 독자가 궁금해 하거나 염려하는 일이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언급이나 단서를 흘린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 일'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나는 이 두 번째 단계를 '재통보(callback)'라고 부른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 킹은 이야기의 전개상 공포가 최고조에 달하는 지점에서 서스펜스를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샤이닝』에서 대니 가족이 오버룩 호텔에 도착했을 때 요리사인 핼로란은 대니에게 217호실에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때는 소설의 초반부인데, 대니는 그로부터 몇 장이 지난 후에 집 안을 둘러보다가 217호실 앞을 지나칠 때가 되어서야 요리사의 경고를 다시 떠올린다. 이후 몇 차례 더 217호실에 대한 언급이 나온 후 결론 부분에 이르러서야 그 문 뒤에 도사리고 있던 공포의 실체가 드러난다. 킹은 이렇듯 재통보를 통해 독자가 안심하지 못하게 하면서 서스펜스를 증폭시킨다."(414, 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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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과 구경꾼 - 항해로서의 삶, 난파로서의 이론 NOUVELLE VAGUE 1
한스 블루멘베르크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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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경계 침범으로서의 항해 


"두 가지 전제가 무엇보다 먼저 항해와 난파라는 은유법의 의미 부담을 규정한다. 첫 번째는 바다란 인간의 계획이 실행되는 공간을 제한하기 위해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경계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바다를 예측 불가능하고 법칙성을 벗어나 있으며 방향을 정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마계화하는 것이다. 기독교 도상학에서까지도 바다는 악이 출몰하는 곳으로, 거기에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 되가져가는 거친 물질을 대변한다는 식의 그노시스적 가필加筆이 종종 가해지기도 했다. 「요한묵시록」에 기록된 예언에 따르면, 구세주가 세상을 다스릴 때 바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1장 2절)]. 표류란 순수한 형태로는 힘들의 변덕의 표현으로, 그것들은 오뒷세우스에서처럼 사람이 귀향을 거부당하고 무정하게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 난파하도록 만드는데, 그렇게 되면 누구라도 코스모스를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영지주의처럼 정반대로 평가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45)


2장 난파자에게 남겨진 것 


"생존자가 바라보는 난파는 최초의 철학적 경험의 상징이다. 스토아 학파의 시조인 키티온 사람 제논은 페니키아에서 자주색 염료를 배에 싣고 돌아오던 중 페이라이에우스항 근처에서 난파당하고 말았는데, 그것을 계기로 철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는 이 경험을 이렇게 요약한다. 〈내가 난파한 것은 지금 돌이켜보니 나에겐 좋은 항해였던 것이다.〉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비트루비우스는 난파당해 로도스섬 해변으로 밀려 올라간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티포스[기원전 435~356년, 북아프리카 키레네 출신의 향락가. 인생의 목적은 쾌락이며 그것이 지고선이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식견과 극기와 절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는 모래사장에 기하학적 도형이 그려진 것을 보고 근처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고 보고한다. 이 보고는 그것을 돈과 쾌락에 너무 이골이 나서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들로부터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던 이 철학자에게 일종의 개종의 계기가 된 것처럼 기록한다."(54-5)


"설령 난파되더라도 해안으로 헤엄쳐 나올 때 휴대할 수 있는 것으로 여행에 필요한 것을 제한하는 식으로 삶을 꾸려 나가라는 고전적 조언은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제자 안티스테네스[기원전 445~365년경, 덕에 충실한 금욕주의적 삶을 강조했으며, 후대 학자들에 의해 견유학파의 창시자로 간주된다]가 했다고 한다. 몽테뉴는 「고독에 관해」라는 에세이에서 이 말로부터 도덕적 자족을 위해 새로운 요점을 끌어낸다. 〈분명 분별력 있는 사람은 자기를 잃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난파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입증된 것은 원할 땐 언제든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재산Besitz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발견과 자기-전유 과정을 통해 달성 가능한 침착함Selbstbesitz이다." "하지만 이 회의론자에게도 궁극적인 것은 항상 여전히 앞에 있다. 그가 발견한 실체의 견고함에 대한 시험은 단지 삶이 끝날 때만 끝날 뿐이다. 그러므로 〈충돌에 주의하라! 항구에 다다라 난파하는 자들이 얼마든지 있다.〉"(58-60)


"비록 사적 존재는 내면의 위험으로부터의 난파를 모면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이 존재를 함께 잡아 찢을 수 있는 국가와 세계의 몰락[침몰]이라는 큰 침몰이 남아 있다. 몽테뉴의 호기심은 국가의 몰락[침몰]이라는 드라마를, 그것의 징후와 형태를 자기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고 자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사태를 방지할 수 없는 이상 구경꾼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에 만족한다. 〈우리는 우리가 듣는 일에 동정이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극히 드물게 그러한 비참한 사건을 보고 인생의 고통을 환기시키며 쾌감을 느낀다.〉" "몽테뉴가 즐길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난파의 구경꾼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자기보존에 성공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의 즐거움─완전히 간악한 것으로 묘사된다─을 옹호한다. 그처럼 거리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덕분에 구경꾼은 안전하게 단단한 해변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쓸모없는 특성, 즉 구경꾼으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살아남는다."(61-4)


"니체가 항해의 은유법에 가져온 ('실존주의적'이라고 할 만한) 방향전환은 〈······ 당신은 승선했다〉는 말로 파스칼이 발견했던 것이다. 몽테뉴가 항구에 머무는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 바 있는 회의론자의 절제는 파스칼 관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승선했다는 은유법은 삶이란 이미 거친 바다 위에 있으며, 거기에는 행운 아니면 난파 외의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으며,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점에서 니체가 〈유일한 논리적 그리스도인〉으로 평가하는 파스칼은 내기 돈, 즉 무한한 이익을 절대적인 차원으로까지 올리려고 하지 않는 미온적 자기보존이라는 생각을 배제한다. 오직 그렇기 때문에만 이 〈그리스도교의 가장 교훈적인 희생자〉는 니체를 예견할 수 있었는데, 니체는 파스칼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한다. 〈우리는 육지를 떠나 출항했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 뒤의 육지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그러니 우리 배여, 앞을 바라보라! ······ '육지'는 이제 없다!〉"(66-7)


"이 은유의 다음 단계는 우리는 항상 이미 승선해 거친 바다 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필연적인 듯 난파당한다는 것이다. 구조된 난파자에는 부동의 대지가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꿋꿋이 서 있을 수 있으며, 새로운 인식을 위한 단단한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을 밝혀낼 수 있도록 해주는 그것은 과학의 근본적 경험이다. 환상적 변신이나 기적을 믿었던 다른 시대를 생각하면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로부터 떠오르고 있는 인간에게 확고한 대지가 신뢰 가능함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다. 니체는 지복의 경지라고 부르는 것을 〈육지에 닿아, 낡고 확고한 대지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서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것에 경탄하는〉 난파자의 행복에 비교한다. 단단한 대지는 구경꾼이 아니라 난파에서 구조된 사람의 장소이다. 대지의 단단함은 그러한 일은 완전히 비개연적이라는 느낌으로부터, 즉 그와 같은 것에 도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느낌으로부터 전적으로 경험된다."(68, 71)


3장 구경꾼의 미학과 윤리 


"대지의 경계를 넘어 바다로 나가는 은유적 사건 및 실제적 사건은 은유적 난파의 위험과 실제적 난파의 위험처럼 서로 겹친다. 인간을 거친 바다로 내모는 것은 동시에 자기의 자연스러운 욕구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내모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이라는 종족은 공연히 항상 헛되이 애쓰고, 공허한 걱정 속에 세월을 낭비하는 것이다. 인간은 소유의 목적과 한계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 현실의 쾌락이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는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삶을 조금씩, 조금씩 깊은 바다로 데려간 것과 같은 자극이 또한 전쟁이 거세게 끓어오르도록 충동한다. 항해라는 잘난 체하는 행위를 하기로 결심한 인간은 압도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벌을 받는데, 그러한 힘에 우리를 넘겨주고, 그러한 힘을 신의 이미지로 번역하는데, 그러한 힘이 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러한 힘을 어르려고 기를 쓰고 애쓰지만 소용없음을 통해 자연의 힘과 맹약을 맺을 수 없음을 즉각 깨닫는다."(85)


"그것과 정반대를 이루는 것이 다음과 같은 계몽주의의 근본 사상 중 하나일 것이다. 즉 난파라는 것은 바람이 완전히 잦아들어 세계의 모든 교역을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비유에서 철학에 의해 냉대 받는 정념passiones에 대한 옹호가 표현되고 있다. 요컨대 순수이성이란 잔잔한 파도를, 완전한 사리분별을 갖춘 인간의 부동의 태도를 의미할 것이다. 퐁트넬은 루키아노스[120~195년경]를 모작한 『죽은 자들과의 대화』 중의 한 대화에서 에페수스 신전의 방화범 헤로스트라토스의 입을 빌려 오직 파괴만이 인간에게 영구적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준다는 역설로 파괴를 옹호한다.  〈(···)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항해자들은 항해가 불가능한 잔잔한 바다를 극도로 두려워한다고 하지 않소? 또 그러기에 폭풍이 일어도 좋으니 바람이 일기를 바란다고들 하오. 사람에게 정념은 모든 것에 동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바람과 같은 것이오.〉"(85-7)


"하지만 구경꾼 또한 더 이상 현실의 가장자리에 선 현자라는 예외적 실존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추동하는 동시에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는 저 정념 중 하나의 주창자가 된다. 구경꾼은 본인이 모험 자체에 휘말리지는 않지만 파멸과 센세이셔널한 사건이 매력에 어찌할 수 없이 빠져든다. 그의 침착함은 지켜보는 자의 그것이 아니라 불타오르는 호기심의 그것이다." "사람들이 그러한 구경거리를 보러 달려가는 것은 호기심에 쫓겨서지만 호기심이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볼테르는 이 호기심 강한 무리 중 난파당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공개처형이 있을 때 사람들이 창가에 모여드는 것은 악의에서가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는 저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어 즐겁다고 생각할 때는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둘 중 하나다. 〈자기 처지에 비추어 보아서 아니면 ······ 오로지 호기심에서이다.〉"(94-5)


"갈리아니 신부는 난파와 구경꾼 비유를 다시 한 번 비튼다. 비록 호기심이 볼테르가 말하는 것과 같은 정념이더라도 그것은 어떤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입장에 있다는 가정을 그만큼 더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구경꾼이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운명의 드라마에 매혹당하는 것은 그저 그가 단단한 대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란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그것으로부터 물러난 후 자기 자신에게나 신경 쓰도록 강요하는 감수성이다. 따라서 갈리아니에 의하면 극장이 인간의 상황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준다. 관객에게 안전한 좌석이 지정된 후에야 비로소 눈앞에서 인간이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연극의 막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안전과 행운이 호기심의 조건이며, 호기심은 안전과 행운의 징후이다. 위험은 무대 위에서 연기되며, 안전은 처마 지붕 밑의 안전이다. 해안에서 극장 안으로 옮겨감에 따라 루크레티우스의 구경꾼도 도덕적 차원을 빼앗기고 '심미화'된다."(99-101)


"1792년에 헤르더는 『인간성의 증진을 위한 서한집』의 17번째 서한에서 독일이 이웃 국가들의 혁명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해 총괄하면서 난파와 구경꾼 이미지에 의존한다. 〈우리는 프랑스혁명을 마치 낯선 공해에서 일어난 난파처럼 안전한 해변의 높은 곳에서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악령böser Genius이 무도하게 우리를 바다 속으로 내던지는 것과 같은 짓을 하지 않는 한 말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갈리아니가 만들어낸 난파의 은유법과 극장의 은유법 사이의 관계가 헤르더의 이 텍스트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 중인 파국은 동시에 〈위대한 세계사라는 신의 책〉 속에 적혀 있는 교훈극, 국민적 성격 덕분에 이미 특전을 부여받은 구경꾼 앞에서 상연되는 신의 섭리극이다." "보다 깊은 수준에서 난파는 '섭리'에 의해 연출되는 교훈극이다. 구경꾼의 안전은 그를 바다 속으로 내던질 수 있는 악령의 형상에 의해 위협 당한다. ─이 드라마 전체는 '섭리'와 '악령'의 그러한 이원론의 틀 안에서 진행된다."(109-11)


4장 생존술 


"1807년의 예나 전장의 시찰자 괴테는, 전황을 호전시킬 수만 있다면 개인적 불행쯤은 기꺼이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열정적 대화 상대에게 한마디의 호의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 전장의 관찰자는, 역사라는 것은 항상 타인들의 역사이며 또한 그렇게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역사로부터 자기의 역사를 보호하기 위해 고대 시인의 이미지에 호소한다. 루크레티우스는 공포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찬양했다. 인간에게 공포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자연현상이며, 인간세계의 사건은 오직 자연의 일부로서 이차적으로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괴테에게 반성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도피처 자체의 거리만 존재한다. 〈······ 난파 순간에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반년 후 괴테는 벌써 자기를 난파의 구경꾼으로 비유할 수 있게 되지만 그것은 오직 자기와 자기의 세계가 겨우 몰락을 모면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121-3, 126)


"헤겔의 경우에 구경꾼 입장은 반성Reflexion에 의해 결정된다. 반성은 구경꾼에게 단순한 위로 이상의 것을 주며, 구경꾼을 〈역사의 다음 광경〉과 화해시킨다. 그리고 최고조로 높아진 반성은 〈겉으로는 불의로 가득 찬 것으로 보이는 현실을 변용시켜 합리적인 것과 화해시킨다.〉 구경꾼이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참함에 깊은 동정을 기울이며〉 개인을 역사 속에서 바라보고, 인간의 몰락을 자연의 소행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 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성의 얼마나 대단한 성취인가." "우리가 〈역사란 민족의 행복, 국가의 예지 그리고 개인의 미덕을 희생물로 해온 제물이 바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거기서 생기는 사건을 모두 단지 수단으로만 간주하려 한다면, 그러한 관점이야말로 역사철학의 모든 금언金言의 마지막에서 이성 입장에 선 구경꾼이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안심이다. 그것은 입장이라기보다는 〈특수한 비유에서 보편적 비유로의 격상을 가능하게 하는 반성의 길〉이다."(124-5)


"『시와 진실』 15장의 끝부분에서 괴테는 난파의 은유법뿐만 아니라 최초의 경험으로부터의 삶의 거리라는 은유도 모두 넘어선다. 그는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마치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고 쓴다. 괴테는 그것을 위해 바다 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항적이라는 은유를 떠올린다. 그가 이 은유를 갖고 가리키려고 했던 것은 끝나가고 있던 계몽주의시대가 헛되이 품고 있던 역사적 긍지, 즉 계몽주의의 성과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한 번 발견된 길은 계속 이어지리라는 긍지였다." "괴테에게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역사와 자연의 관계였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아무 항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역사와 자연이 다르게 되는 조건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명제에 불과하다. 따라서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조망될 수도 또 파악될 수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불가역성이라는 신뢰성 속으로 옮겨질 수도 없다. 진보와 몰락 모두 똑같이 잔잔한 수면만 뒤에 남길 뿐이다."(131-2)


5장 구경꾼, 구경꾼 위치를 잃다 


"쇼펜하우어의 관점에서 보면 두 위치Position, 즉 난파자 위치와 관찰자 위치에서 인간주체의 동일성이 완전히 해명된다. 그것을 위해 그는 본인의 체계를 틀로 이용하는데, 그것은 이성은 표상Vorstellung의 표상이라는, 따라서 삶의 직접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기관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골자로 한다. 인간이 본인이 겪는 고통의 구경꾼이 될 수 있는 것은 이성 덕분이다. 인간은 항상 현실과의 갈등에 휘말리지만 그것을 순수하게 관찰하는 입장에 도달한다면 〈삶 전체를 모든 측면에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추상적 삶에서 〈인간은 단순한 방관자이자 관찰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항해의 은유법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조망하는 능력을 갖춘 점에서 이성적 존재인 인간과 [그렇지 않은] 동물의 관계는 〈마치 해도海圖, 나침반 등에 의해 항로를 알고 대양의 그때그때의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선장과 다만 파도와 하늘만 보는 무지한 선원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135-6)


"주체의 이중적 삶─헤겔의 발명품에 가까운 사고방식─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숭고함의 감정에서이다. 이 감정은 맹위를 떨치는 자연현상에 직면해 내가 위험해진다는 의식과 나를 고양시킨다는 의식을 하나로 결합시킨다." "자연의 무시무시함으로부터의 그러한 초월론적 거리두기에는 암초 해안으로부터의 거리두기뿐만 아니라 자기의식으로부터의 거리두기도 포함되는데, 이 자기의식에게 이 모든 것은 자기의 표상이 된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세계의 광대함을 의식하게 되면〉 〈그러한 거짓된 불가능성에 맞서〉 웬일인지 초월론적 반항심 같은 것이 솟아난다. 이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계는 '오직' 우리 표상 속에서만, 그것을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반항심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은유법에서 만약 주체가 구경꾼 입장에서 물러나 의지─이것은 주체가 자연의 위험을 마주보게 되는 대신 주체를 위험에 노출시킨다─에 의한 세계의 갈등에 휘말려들게 되면 난파당할 수 있다."(136-8)


"어쨌든 삶으로부터 물러난 관점의 '지혜'를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가능한 이상 구경꾼이 보는 것은 자기의 과거이다. 하지만 그가 보는 것은 또한 〈암초와 소용돌이로 가득 찬 바다〉인 삶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것으로서 미래 속에서 자기 앞에 놓여 있다. 그는 신중하게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비록 〈어떻게 해서든 헤쳐 나가려고 온갖 노력과 수단을〉 쏟아부어 성공한다 해도 오히려 난파가 불가피한 지점에 보다 가까이 가버릴 뿐임을 알지만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삶의 충동과 명상으로의 이행을 하나의 이미지로 표상하기 위해 폭풍 한가운데 있는 선원을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만든다. 그가 탄 배는 살아남기 위한Überleben 그리고 삶을 초월하기 위한Über-leben 배가 되어버려 항로나 목적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쇼펜하우어의 작은 배에 탄 선원은 지금 본인이 세계의 구경꾼이 되었거나 되려는 중이어서 더 이상 해변의 구경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140-3)


"역사가가 거리를 둔 구경꾼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견고한 관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가는 시대를 전체로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을 얻을 수 없다. 이제 시대의 특징은 〈영구히 수정을 이어가는 정신〉이다. 사람들은 변화의 종결에 이르렀다고 믿고 또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 〈1789년 이후 인류를 사로잡아왔다고 할 수 있는 폭풍이 우리도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인간사를 계속 움직이며 종종 악천후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더 이상 정념의 바람이 아니다. 파괴하고 동요시키고 난파를 야기하면서 모든 것을 몰고 가는 것은 동일한 폭풍이다. ─〈지구상의 이미 알려진 모든 과거와 대립〉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 속에 같이 휩쓸려 들어가는 역사가는 그것의 추진력에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 그것의 바람은 말할 것도 없고 분명히 그것의 거대한 낙관적 의지에 말이다. 인식의 과제는 그에게 〈어리석은 즐거움이나 두려움으로부터 가능하면 최대한 자유로울 것〉을 요구한다."(149-50)


6장 난파로부터 배 만들기


"로렌첸은 인간적 사유의 방법론적 시작에 대한 물음은 한편으로는 칸트가 전치시킨 이후 공리公理주의적 방법론의 우위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철학 쪽으로 정향된 해석학에 의해 합리성의 영역의 시야로부터 사라지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딜타이로부터 유래하는 철학의 새로운 직접성은 인식은 삶의 뒤로 돌아갈[진상을 규명할] 수 없다는 명제로부터 의도치 않게 또 다른 명제를, 즉 '삶'이라는 표현 또한 사유에 부과되는 언어적 틀로 드러나는 일군의 우연적 전제를 가리킬 뿐이라는 명제를 만들어냈다. 논리실증주의는 이 물음을 과학적 언어를 정초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설정으로 협소화시켰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하나의 이미지 속에서 가장 명료하게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에 따르면 통사론적 규칙을 가진 언어란 배이고 우리는 그것을 타고 있다는 이미지가 그것이다. 어떤 항구로도 입항할 수 없다는 조건하에 말이다. 배의 수리나 개조 모두 거친 바다 위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161)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전에 결정적으로 주어져 있어 우리는 자연언어라는 배를 자발적으로 사용할 수도 또 그것을 버릴 수도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것이 아래 물음을 미리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그렇게 해서 요구되는 시작을 방법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우리 자신도 그와 동일한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가 물음 말이다. 로렌첸은 자연언어를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배〉로 표상하면서 그러한 이미지를 계속 사용하지만, 그 상황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관한 모든 기원적 물음을 넘어선 곳에 놓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도달 가능한 육지가 하나도 없다면 배는 이미 거친 바다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다. 우리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에 의해.〉" "바다는 분명히 이미 사용된 것과는 다른 목재를 품고 있다.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까? 혹시 이전의 난파들에서?"(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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