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5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곽광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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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ula vagula, blandula,
Hospes comesque corporis,
Quae nunc abibis in loca
Pallidula, rigida, nudula,
Nec, ut soles, dabis iocos ••••••
- P. Aelius Hadrianus

방황하는 어여쁜 영혼이여,
육체를 맞아들인 주인이며 반려인 그대여,
그대 이제 그곳으로 떠나는구나,
창백하고 거칠고 황폐한 그곳으로,
늘 하던 농담, 장난은 이젠 못 하리니.


(근대과학은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이자, 소유자가 될 수 있는 힘을 주었다.(데카르트, 방법서설)

그 덕분에 우리는 고백록이나 명상록, 회상록이나 수상록이 잊혀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들은 깨어나고 잠드는 일상의 장막을 찢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반성하는 생활의 양식이요, 서사였으니 지는 태양의 서러움과 뜨는 달의 애처로움을 담을 줄 아는 '인문학'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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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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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고, 그래서 막연한 사정 외에 현실적인 장면을 접해본 바가 없는 밑바닥 노동을 대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부조리그 자체일 것이다. 부조리함 앞에서 우리는 제일 먼저 그들의 열악한 처우를 동정하고 그 상황에 몸서리친 후에 사회 개혁의 명분에 동참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과의 신분 차이에 안도하고 더 높은 자리로의 상승 욕구를 절감할 것이다.

 

부조리를 대했을 때 우리가 돌고 돌아 도달하게 되는 감정 또한 부조리이다. 부조리는 선악의 기준으로 판별하거나 해소할 수 없다. 우리의 정체성은 상사와 부하직원, 부모와 자식, 손님과 종업원, 친구와 라이벌 등 모순의 집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순된 상황은 나의 삶을 선악의 기준으로 판별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동시에 타인의 삶을 선악으로 쉽사리 구분해 내도록 유혹한다.

 

그러므로, 부조리는 소멸해야 할 절대악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조건이다. 혼란이 앞서면 부조리에 시달리게 되고, 아슬아슬한 균형을 달성하면 조화로움이 되는 것이다. 이 아슬아슬한 균형상태를 잡아주는 전제조건이 바로 인간다움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조건이 가장 힘들다고 여긴다. ‘인간다움은 자신과 타인 사이에 놓인 이 울퉁불퉁한 간극을 직시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인간은 부조리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다움은 아무런 노력 없이 도달할 수 있는 평지 위의 목적지가 아니다. 천부인권의 관념 또한 근대에 일어난 부르주아 혁명의 부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전혀 동시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시간이 이행기이며 나의 안정기가 타인에게는 불안정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 세계는 단순했다. 나는 이름없는 순교자였고 손님은 합법적인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애꿎은 식당 종업원에게 화풀이를 한) 나란 존재는 순교자인 동시에 박해자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73

 

우리는 모두 어떤 불가항력적인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 이 존재는 고정된 형상을 갖고 있지 않으며 매 순간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아주 멀리 떨어져 도달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이 존재는 한마디로 규정 지을 수 없다. 이것의 존재성은 부조리그 자체이다. 역설적으로 이 부조리의 균열은 단순했던 나의 세계의 심장에 나의 손바닥을 댔을 때, 그 굴곡이 선사하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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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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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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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없이 타자를 향한다. 교감한다. 발언한다. 그리고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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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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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정치인들의 부패나 연예인의 스캔들이 사실로 드러나면 '그럴 줄 알았다'면서 냉소를 날린다. 여기서 '그럴 거 같은데'라는 추정과 '그럴 줄 알았다'는 사실확인은 엄연히 다르다.

자기 강화 중에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이 바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다. '혹시나'와 '역시나'는 그렇게 함께 다니지만 동일개념이 아닌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관계이다.

도덕 교육이 개인과 국가 사이의 절대적 상하관계를 기초로 국가 이데올로기의 대변자 역할을 하며, 자아 결정권에서 비롯한 적극적 실천보다는 상위 권력에 복종하는 수동적 행위를 가르친다는 사실이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어 명확하게 규정짓지 않고 흘려버리는 개념과 사태를 정초하여 특정 언어에 담긴 본질을 재발견하도록 도와준다.

예컨대, '도덕'이라는 구태의연한 말을 자신의 사유와 언어를 통해 정의할 수 있는 힘, 다시 말해, 'maybe'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사유를 'certainly'의 영역으로 옮기고자 하는 각성과 의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성에서 개별성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에 기초한 개별성에서 보편성을 구현하는 여정을 멈추지 않는 일, 이것이 현실 제도를 변혁하는 방법론 이전에 그 구조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탄탄히 받쳐주는 사유의 힘이며, 저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성찰의 존재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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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엘리엇 애런슨.캐럴 태브리스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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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지 부조화 현상이 자기 정당화라는 방어 체계와 결합했을 때 사실을 보는 관점을 얼마나 흐리는지를 친절하게 분석한 저서.

피라미드 꼭대기라는 출발점은 같아도 자기 정당화를 거칠수록 우리는 서로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며 그 간극을 메우기는 한결 어려워진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기정당화는 신이 되지 못한 인간의 변명이다. 누구나 갖고 있으며 수시로 작동하는 경보체계다. 그러므로 실수와 잘못을 인지했다면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라. 더 먼 곳으로 미끄러지기 전에 말이다.

말은 티끌처럼 한없이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태산처럼 무겁다.

(자기정당화에 집착하다 돌이킬 수 없는 경계선을 넘은 사례로 한국의 한 과학자를 거론하는데 이 유명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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