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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출출할 땐, 주기율표 - 먹고사는 일에 닿아 있는 금속 열전
곽재식 지음 / 초사흘달 / 2024년 12월
평점 :
21 스칸듐: 야구장 간식을 고르며 Sc
합금을 만들면 왜 성능이 좋아질까? 세상의 모든 물체처럼 금속 덩어리도 크게 확대해 보면 원자라는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 원자들은 왜 낱낱이 흩어지지 않고 그렇게 덩어리지어 붙어 있을까? 간단히 이야기하면 원자 속에 있는 전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 속에 있는 전자는 ⊖전기를 띤다. 바로 그 전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두 원자가 달라붙게 해 준다. 전자 하나가 두 원자를 휘감아 돌고 있으면 두 원자는 그 전자의 움직임 때문에 서로 붙어 있으려고 할 것이다. 원자의 중심부 핵에는 ⊕전기가 있으니 ⊖전기를 띤 전자에 잘 이끌릴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와 반대로 원래 붙어 있던 원자들이 전자의 움직임 때문에 떨어질 수도 있다. 대체로 원자들이 잘 붙어 있느냐, 떨어지기도 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자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원자가 어떻게 붙어 있느냐에 따라 물질의 성질이 바뀌는데, 화학은 바로 그런 변화를 연구하는 일이다. 9-10)
원자의 종류가 무엇이냐에 따라 하나의 원자 속에 있는 전자의 개수가 다르고, 전자가 들어 있는 모양도 다르다. 수소에는 원자 하나당 전자가 1개 있고, 헬륨에는 원자 하나당 전자가 2개 있고, 알루미늄에는 원자 하나당 전자가 13개 있으며, 스칸듐에는 원자 하나당 전자 21개가 있다. 또한, 그 전자들이 주로 원자의 겉면 쪽을 돌아다니는지, 아니면 원자의 중심부 쪽을 돌아다니는지도 원자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서로 잘 맞는 성질을 가진 원자들을 적절히 섞어 놓으면 원자 사이를 밀고 당기며 돌아다니는 전자들이 원자들을 최대한 잘 묶어 놓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튼튼한 합금이 만들어진다. 필요하다면 원자들이 잘 들러붙지 않는 조합으로 합금을 만들어서 쉽게 녹이고 가공하기 편리한 재료를 얻을 수도 있다. 학자들은 알루미늄에 스칸듐을 약간 더해서 잘 섞어 주면 그냥 알루미늄 덩어리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 재질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야구 방망이가 바로 스칸듐 합금 방망이다. 10)
22 타이타늄: 외계인 초코볼을 집어 들며 Ti
색소를 사용하는 분야에서 타이타늄이라고 하면 보통 흰색을 띠는 이산화타이타늄을 일컫는 경우가 많듯이, 금속 재료를 사용하는 분야에서 타이타늄이라고 하면 타이타늄 합금을 줄여서 말한 것일 때가 많다. 골프채 같은 운동기구에서 군사용 무기까지 타이타늄 합금 재료의 용도는 상상외로 넓다. 가볍고 튼튼하며 녹이 잘 슬지 않는 타이타늄은 사람 몸과 관련된 부품을 만드는 데도 많이 사용된다. 수술로 사람 몸에 장치하는 부품이 쉽게 상한다면 수리나 교체를 하느라 거듭 수술을 해야 할 것이므로 그런 일이 없도록 처음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너무 무거우면 사람이 움직이는 데 힘이 들므로 가벼울 필요도 있다. 아울러 사람 몸은 60% 이상이 수분으로 되어 있으니 물과 산소가 닿더라도 쉽게 녹슬지 않아야 한다. 다행히 타이타늄을 잘 이용하면 그런 소재를 만들 수 있다. 치아 임플란트에서도 가짜 이를 잇몸에 고정하는 뿌리 부분을 타이타늄을 이용해서 만들곤 한다. 19-21)
타이타늄은 땅에 있는 웬만한 금속 중에서도 양이 무척 풍부한 편이다. 우주 전체로 보면 세상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는 수소인데, 지구의 땅에는 수소보다도 타이타늄이 더 풍부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학 분야에서 대단히 유명한 치글러-나타Ziegler-Natta 촉매가 타이타늄을 가공해서 만든 물질이라는 사실도 기억해 둘 만하다. 치글러-나타 촉매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바로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석유를 가공해서 뽑아내는 에틸렌이라는 기체에 치글러-나타 촉매를 조금만 떨어뜨려 주면 에틸렌 기체가 마법처럼 서로 엮여 굳으면서 플라스틱으로 변한다. 이렇게 해서 만드는 물질이 비닐봉지부터 볼펜까지 흔하게 쓰이는 대표적인 플라스틱 폴리에틸렌polyethylene이다. 타이타늄의 가장 큰 단점은 가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타이타늄을 철처럼 다루면 깨지고 부서지기 쉽다. 어찌 보면 너무 튼튼하고 강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22-3)
23 바나듐: 생수 맛을 음미하며 V
원래 바나듐은 금속 제품의 재료를 만들 때 조금씩 섞어 넣는 물질로 유명했다. 금속 공업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매년 8,000t 이상의 바나듐을 수입한다. 특히 널리 사용되는 금속인 철 제품을 만들 때 바나듐을 조금 섞으면 철이 더 튼튼해지고 충격을 잘 흡수하며 열에도 강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보통 강철에 바나듐을 1% 정도만 섞어도 성질이 확 좋아진다고 하는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현복 선생이 쓴 글에 따르면 고속도공구강high speed steel이라는 재료는 “바나듐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바나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고속도공구강은 다른 금속을 깎고 자르는 도구를 만들기 위한 강철 재료를 말한다. 즉, 바나듐을 섞은 강철 덕분에 좋은 공구를 만들 수 있고, 그런 공구로 금속 재료를 세밀하고 정교하게 가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바나듐이 있어야만 세밀하고 정교한 금속 부품을 만들 수 있고, 나아가 그런 부품이 들어가는 정교한 기계도 만들 수 있다. 26)
화학물질이 서로 반응을 하고 안 하고는 물질에 들어 있는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바나듐은 금속인 만큼 잘 움직이는 전자를 꽤 많이 품고 있어서 잘만 사용하면 독특한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게다가 희귀한 물질도 아니어서 다방면에 활용할 수 있다. 자동차 매연이나 굴뚝 연기 성분 중에 이산화황이라는 해로운 물질이 있다. 이산화황은 몸에 좋지 않은 스모그의 원인이자 산성비의 주원인으로도 지목되는 물질이다. 공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시도했던 많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굴뚝을 통과하는 연기를 공기 중에 바로 내뿜지 않고 물에 한 번 적셔서 그 속의 오염 물질인 이산화황을 잡아채는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 많은 이산화황을 어쩌면 좋을까? 이럴 때, 모아 놓은 이산화황에 오산화바나듐을 넣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황산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든 황산 또는 이산화황 계통의 성분을 빼내고 남은 물질은 그 물질이 필요한 곳에 돈을 받고 팔 수 있다. 29)
24 크로뮴: 쌀밥을 한술 뜨며 Cr
오랫동안 철로 만든 숟가락이 널리 쓰이지 않은 것은 바로 녹이 잘 슨다는 문제 때문이다. 다른 용도로 사용할 때는 최대한 물에 닿지 않도록 하거나 기름칠을 해서 녹스는 것을 피해 볼 수 있겠지만, 항상 음식물에 닿고 입에 넣고 빨아야 하는 숟가락, 젓가락은 그런 방법을 쓸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철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도 식기를 만드는 데는 잘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20세기 초쯤에 유럽의 과학기술인들이 철에 크로뮴chromium이라는 금속을 조금 섞어 철과 굉장히 비슷하면서 녹이 슬지 않는 합금을 만들었다. 그 기본 원리는 철에 녹이 슬기 직전에 크로뮴 성분이 먼저 녹슨 상태로 변하면서 미세하게 철을 뒤덮는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주 얇은 크로뮴 막이 철을 감싸서 철이 공기나 물과 닿아 녹스는 것을 막아 버린다. 녹이 스는 문제만 해결되면 철은 숟가락, 젓가락에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 그 덕택에, 한국의 금속 식기는 놋쇠에서 스테인리스강으로 빠르게 바뀌어 갔다. 34-5)
주변 원자와 달라붙는 데 특히 요긴하게 활용되어서 그 원자의 성질을 따질 때 잘 살펴봐야 하는 전자들을 원자가전자valence electron라고 부른다. 크로뮴 원자 하나가 다른 원자와 연결되어 덩어리를 이룰 때는 크로뮴 원자 속에 있는 전자 3개가 쓰이기도 하고, 6개가 쓰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크로뮴은 원자가전자가 3개일 때도 있고, 6개일 때도 있다. 전자 3개를 이용해서 주변의 다른 원자와 연결된 크로뮴을 “3가 크로뮴”이라고 하고, 전자 6개를 이용해서 연결된 크로뮴은 “6가 크로뮴”이라고 표현한다. Cr3+, Cr6+라고 쓰기도 한다. 여기서 Cr6+라는 말은 크로뮴 원자 하나가 ⊖전기를 띤 전자 6개를 소모해서 주변의 원자들과 달라붙었기 때문에, 원래 상태보다 ⊖전기가 6만큼 부족해졌고, 이에 따라 ⊕전기를 6만큼 띠게 되었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 Cr3+는 3가 크로뮴이라는 뜻이고, Cr6+는 6가 크로뮴이다. 둘 중에 몸에 병을 일으킬 수 있어서 나쁜 중금속 물질로 손꼽히는 것은 6가 크로뮴이다. 39-4)
25 망가니즈: 깻잎나물을 무치며 Mn
과거에 망간이라고 불렸던 망가니즈는 금속인 만큼, 철 덩어리를 만드는 제철소에서 가장 중요하게 활용한다. 철의 성분을 조절한다는 말은 철의 성질을 원하는 정도로 맞추고, 철이 균일하게 나오도록 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제일 기본으로 따져야 할 문제는 철에 탄소가 얼마나 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탄소가 많을수록 철이 단단해지는데, 그렇다고 너무 많으면 너무 딱딱해서 오히려 부서지기 쉽다. 그래서 탄소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탄소가 많이 들어 있어서 아주 딱딱한 철을 무쇠라고 하고, 탄소가 적당히 들어 있어서 튼튼하고 질긴 철을 강철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쇠는 강철과 비교하면 너무 잘 부서진다. 그러니까 무쇠 팔, 무쇠 다리보다는 강철 팔이 더 튼튼한 셈이다. 고로에서 녹아 나온 쇳물을 이용해 보통 철을 강철로 만드는 과정에 망가니즈를 사용한다. 망가니즈는 녹은 쇳물이 굳을 때 공기 거품을 제거해 주는 데도 도움이 되며, 철을 부서지게 하는 불순물인 황을 없애는 데도 도움을 준다. 44)
망가니즈가 많은 곳으로 유명한 곳은 바다 밑이다. 왜 바다 밑에 망가니즈 덩어리가 있을까? 바닷속에 사는 고래나 상어 같은 생물 또는 다른 몇몇 작은 생물들이 죽으면 그 뼈와 이빨, 껍질이 물속에 가라앉는다. 마침 그곳이 충분히 깊은 바다라면 그 이빨 조각, 껍질 조각이 바다 밑에 가라앉을 때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바닷물에 드러난 이빨의 겉면 성분과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아주 약간의 여러 금속 성분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 운이 좋으면 그중 일부는 바닷물에 들어 있는 아주 적은 양의 망가니즈 계통 성분을 서서히 끌어당기는 물질로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변한 상어 이빨 따위가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으면, 그 상태로 아주 천천히 바닷물 속에 들어 있는 망가니즈를 겉면에 붙이고 또 붙이게 된다. 이렇게 망가니즈 성분을 많이 품고서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덩어리를 망간단괴라고 한다. 망간단괴 속에는 망가니즈뿐 아니라 니켈, 구리 등 다른 금속 원소도 포함되어 있다. 48)
26 철: 도다리쑥국을 기다리며 Fe
철은 핏속에서 붉은색을 내는 물질인 헤모글로빈hemoglobin에 들어 있다. 사람의 몸 구석구석에 꼭 필요한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헤모글로빈이 맡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숨을 쉬면 허파 속에 퍼져 있는 혈관 속을 흐르는 핏속의 헤모글로빈에 산소가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 피가 온몸 구석구석에 퍼진다. 따라서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붙여 왔다가 떼어 주는 일은 쉼 없이 일어나야 한다. 만약 헤모글로빈에 산소가 붙고 떨어지는 일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숨을 헐떡이더라도 들이마신 산소가 정작 필요한 부위로 퍼져 나가지 못할 것이다. 만약 몸속에서 헤모글로빈 대신에 다른 물질을 이용해 산소를 운반하는 생물이라면 사정이 좀 다를지도 모른다. 문어나 오징어의 경우, 철이 들어 있는 헤모글로빈 대신에 구리가 들어 있는 헤모시아닌hemocyanin이라는 물질을 활용해서 살아간다. 따라서 문어나 오징어의 피는 붉은 색이 아니다. 헤모시아닌 계통의 물질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경우가 많다. 51-2)
핵융합은 한 번 일어나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 별 속에서는 이런 일이 수억 년, 수십억 년 동안 이어진다. 그러면서 한 원소가 다른 원소와 합쳐지면서 새로운 원소들이 계속 만들어진다. 그런데 여기에 단 한 가지 이상한 걸림돌 같은 현상이 있다. 그게 바로 철이다. 원소들이 뭉쳐서 새로운 원소들이 생겨나다가 철이 만들어지면, 그때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철은 거기에 무슨 다른 원소를 억지로 갖다 붙여 핵융합을 일으키려 해도, 다른 원소들의 핵융합이 일어날 때만큼 열을 내뿜지 않는다. 도리어 주변을 더 차갑게 식힌다. 따라서 일단 철이 생겨나면, 핵융합으로 발생한 열이 연달아 핵융합을 일으키는 현상이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철은 별이 핵융합으로 빛을 내면서 여러 원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만들어지며 열의 연결 고리를 끊는 물질이다. 그러니 우주에서 저렇게 많은 별이 빛나는 만큼, 별이 빛을 내고 남기는 잿더미인 철도 자연히 우주 곳곳에 많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53)
27 코발트: 김밥을 말며 Co
비타민은 몸에 많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병이 들므로 항상 조금씩은 챙겨 먹어야 한다. 그런데 비타민B12는 곡식이나 채소에서는 좀체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개 고기에 들어 있는 영양소로 간주한다. 원소로 따져 보면 우리 몸의 성분은 대체로 산소, 수소, 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질소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다른 생물도 대개 비슷하다. 비타민 중에서도 비타민A, 비타민C 등은 산소, 수소,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다들 흔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비타민B12는 너무나 독특하게도 코발트cobalt라는 금속 성분을 품고 있다. 그나마 한국인들은 고기를 별로 먹지 않아도 비타민B12 부족 증상을 덜 겪을 것으로 추정된다. 답은 해조류에 있었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김,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를 많이 먹는 편이다. 맛도 독특하고 비타민B12처럼 고기가 아니고서는 찾기 힘든 귀한 영양소도 들어 있는 김은 한국의 개성 있는 식재료다. 59-61)
코발트60은 자연 상태에서는 찾기 어려운 물질로, 보통 원자력을 이용해서 만들어 낸다. 코발트60은 보통 자연에서 캐내는 코발트보다 무게가 약간 더 나가는데, 59:60 정도로 무겁다. 이름이 코발트60인 것 역시 그런 성질 차이 때문이다. 코발트60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질은 방사선을 꽤 긴 시간 동안 강하게 내뿜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사선을 쏘아 파괴해야 하는 물질이 있을 때 코발트60을 그 곁에 갖다 놓으면 없앨 수 있다. 이 때문에 196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방사선 치료 방법을 이용해서 암을 치료하려고 할 때, 바로 코발트60을 활용했다. 코발트60을 최대한 암세포 가까이 두면 코발트60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암세포를 파괴하도록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파괴하는 소독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할 때도 소독하고 싶은 물건을 코발트60 근처에 놓아두면 거기서 나오는 방사선이 미생물을 파괴해 버린다. 코발트60은 이렇듯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질이다. 65)
28 니켈: 초콜릿을 조심하길 Ni
과거에 니켈은 철을 만들 때 성질을 좋게 하려고 조금 섞어 넣는 용도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철에 크로뮴을 섞으면 녹슬지 않는 강철이라는 뜻의 스테인리스강이 되는데, 스테인리스강을 만들 때 니켈도 약간 넣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니켈의 새로운 용도가 생기면서 산업계에 니켈이 한층 더 많이 필요해졌다. 바로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용도다. 특히 한국의 배터리 회사들은 리튬과 니켈, 코발트, 망가니즈를 함께 이용하면 가벼우면서도 오래가는 전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바로 NCM(Nickel-Cobalt-Manganese) 배터리다. NCM배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본래 코발트였다. 코발트를 많이 넣어 주면 성능을 끌어 올리기에 유리했다. 그런데 코발트는 가격이 너무 비싸서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한국 회사들은 배터리를 만들 때 코발트를 줄이고, 그보다 구하기 쉬운 니켈을 많이 넣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해 왔다. 이렇게 니켈 성분을 많이 넣은 배터리를 흔히 하이니켈배터리라고 부른다. 73)
니켈과 철을 적절히 섞어 만든 재료 중에는 열을 받아도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는 것도 있다. 모든 물체는 온도가 높아지면 크기가 좀 불어나고 온도가 낮아지면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밀 가공을 해야 할 때 온도에 따라 크기가 자꾸 변하면 정확하게 작업하기가 어려워진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온도에 따른 변화가 크지 않은 니켈계 재료가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인바invar라고 하는 재료인데, 보통 철 64%에 니켈 36%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니켈 함량 36%를 강조하여 FeNi36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니크롬선nichrome wire을 만드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니켈의 소중한 용도다. 니켈과 크로뮴을 섞어서 가느다란 선을 만들면 전기가 계속해서 쭉쭉 흐르기는 하는데, 어느 정도는 저항 때문에 전기가 잘 안 흘러서 열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이 선에 전기를 흘려 주면 주변을 뜨겁게 데울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이것을 니켈과 크로뮴을 섞어 만든 선이라고 해서 니크롬선이라고 부른다. 74-5)
29 구리: 꽃게를 손질하며 Cu
구리는 문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금속이다. 철은 녹는 온도가 1,500℃가 넘는 데 비해, 구리는 1,080℃ 정도만 되면 녹아내린다. 그만큼 녹여서 가공하기가 쉽다는 뜻이다. 그러니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사람들에게는 구리가 사용하기 좋은 재료였을 것이다. 구리가 철보다 덜 녹슨다는 장점은 현대에도 요긴하게 활용될 때가 많다. 건물을 지을 때 물이 통과하는 파이프로는 구리로 만든 관, 즉 동파이프를 사용하면 좋다. 동파이프를 난방용으로 바닥에 묻어 두면 뜨거운 물이 돌 때마다 금속인 구리가 열을 잘 전달해서 바닥이 금방 따뜻해진다. 게다가 구리가 철보다 약하기 때문에 철로 된 공구로 자르거나 두들기면 쉽게 가공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 외에도 조선 시대에 금속활자를 사용해 책을 인쇄할 때가 있었는데, 이때도 구리로 금속활자를 만들곤 했다. 여기에 청동을 비롯해 구리와 다른 금속을 섞어 만드는 오동, 백동 등의 재료까지 합치면 용도는 더욱 많아진다. 79-80)
주기율표에서 아래위로 같은 줄에 적혀 있는 원소들끼리는 성질이 비슷하다. 같은 줄에 적혀 있는 원소들은 같은 족group에 속한다는 말도 자주 쓴다. 그런데 주기율표를 보면 구리 아래에 은이 있고 은 아래에 금이 있다. 구리와 금의 닮은 점으로 녹이 잘 슬지 않는 성질을 꼽는다면, 구리와 은의 닮은 점으로는 전기가 잘 통하는 성질을 꼽을 수 있다. 구리는 은보다는 조금 부족하지만, 전기를 아주 잘 전달하는 재료다. 그러면서 가격은 구리가 은보다 훨씬 더 싸기 때문에 예부터 구리로 만든 가느다란 선이 전기를 전달하는 재료로 자주 쓰였다. 그 때문에 구리선이라고 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전선의 대표로 꼽힐 정도였다. 철이나 석유도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유용한 자원이기는 하지만, 철은 가격이 흔들리기에는 너무 흔하게 구할 수 있고, 석유는 반대로 너무 귀해서 몇몇 나라를 중심으로 가격을 조절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구리만큼 세계 경제를 잘 보여 주는 물질도 없다는 이야기가 생겼다. 80-1)
30 아연: 굴전을 부치며 Zn
아연은 전기적으로 다채롭고 특이한 성질을 내는 금속 원소다. 사람 몸속에서도 복잡하고 특이한 물질을 만드는 데 조금씩 활용된다. 특히 몇 가지 호르몬을 만드는 화학반응에 아연이 필요한 때가 있다고 한다. 사람의 몸은 음식으로 먹은 재료를 소화해서 분해하여 다양한 원자들을 얻고, 그 원자들을 재조립해서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질을 만들어 낸다. 호르몬도 이런 방식으로 생겨난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해내려면 여러 가지 재료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역할을 하는 기계 장치 내지는 도구에 해당하는 물질도 몸속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준비 작업에 아연이 아주 약간 필요하다. 반대로 말하면 아연이 부족하면 몸에서 호르몬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도구를 제대로 만들 수 없게 되고, 결국 호르몬도 필요한 만큼 만들어지지 않는다. 음식 중에서도 고기나 조개류에 아연이 많다고 하며, 곡식 중에서는 통곡물에 아연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한다. 아연 성분이 많은 음식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굴일 것이다. 85)
현대에는 구리와 아연을 주성분으로 한 합금 소재를 황동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조선 시대에 쓰던 놋쇠 중에는 황동이 아닌 것도 있지만 황동도 그 일종으로 포함된다고 보는 게 맞다. 황동을 영어로는 brass라고 하는데, 트럼펫이나 트롬본 같은 금관 악기를 많이 사용하는 악단을 브라스 밴드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악기를 흔히 황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황동은 구릿빛을 띤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 때 순수한 구리 못지않게 자주 쓰인다. 아연의 양을 잘 조절하면 구리만 사용할 때보다 훨씬 딱딱하고 튼튼한 재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발견하는 금속 재질 물건 중에 반짝이는 구릿빛이나 황금색 비슷한데 순수한 구리나 금은 아닌 것 같을 때, 구리와 아연이 섞인 황동이라고 생각하면 대체로 맞다. 총알은 튼튼하면서도 녹슬지 않고 오래가야 하며, 열과 압력을 잘 견뎌야 한다. 그런데 총알의 겉면인 탄피 부분은 황색을 띤다. 이것은 탄피를 황동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87-8)
31 갈륨: 쌈 채소를 씻으며 Ga
LED는 반도체의 일종으로, 전기를 받으면 빛을 내는 성질이 있는 특별한 물질을 이용해 만든다. LED라는 부품이 개발된 초창기부터 빨간색 빛을 뿜는 제품은 만들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빨간색 빛을 내는 전자 제품이 그렇게 흔했던 것이다. 이와 달리 LED로 흰색 빛을 내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런데 흰 빛은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빛이 섞인 결과가 사람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파란색 빛을 내는 재료를 만들기가 몹시 어려웠다. 이 문제는 1990년대에 들어와 주로 일본 과학자들의 활약으로 해결되었다. 당시 갈륨gallium이라는 금속 물질과 질소의 원자를 규칙적으로 잘 엮어 만든 물질을 이용하면 파란색 LED의 재료로 쓸 수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갈륨과 질소를 잘 엮는 작업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일본의 화학 회사 연구원이었던 나카무라 슈지なかむらしゅうじ와 동료들이 질화갈륨 결정을 만드는 절묘한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LED 시대가 열렸다. 92-4)
갈륨은 석탄이나 금처럼 덩어리로 뭉쳐 있는 것을 캐낼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갈륨은 다른 원소들과 반응한 상태로 이곳저곳에 조금씩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보통 다른 금속을 돌 속에서 뽑아내고 점점 순수하게 정제하는 과정에서 불순물로 걸러낸 물질을 분리해 갈륨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광산에서 캔 돌에서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공장이 많은 곳에서 갈륨도 많이 생산된다. 사실 순수한 갈륨 덩어리는 좀 웃기고 재미난 물질이다. 갈륨은 금속치고는 매우 쉽게 녹아내리는 물질이어서 차가울 때는 꼭 철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30℃ 정도의 온도만 되어도 은색 페인트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해 버린다. 그래서 갈륨 덩어리로 칼이나 바늘을 만들어서 누구에게 써 보라고 건네주면, 그것을 받은 사람이 막상 사용하려고 할 때 체온 때문에 녹아 버려서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러고 나서도 다시 모양을 잡아 준 뒤에 찬 바람만 좀 쐬어 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튼튼한 강철 덩어리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96-8)
32 저마늄: 도라지무침을 먹으며 Ge
게르마늄이라고도 부르는 저마늄은 최초로 개발된 트랜지스터의 주원료 물질이었다. 저마늄 덩어리는 전기가 통할 듯한 특성을 많이 갖춘 금속이기는 한데, 막상 전기를 흘려 보면 그다지 잘 통하지는 않아서 부도체에 가깝기도 한 애매한 물질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바로 이 어중간한 성질을 잘만 이용하면 훌륭한 전자 부품을 개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947년에 미국의 과학자들이 진공관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더 좋은 부품을 개발했다. 전기가 잘 흐르지 않던 저마늄에 불순물을 조금 섞어 넣으면 평소에는 전기가 흐르지 않다가 조건이 맞을 때만 전기가 흐르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릴레이를 대신할 수 있고, 진공관을 대신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트랜지스터라는 부품이다. 다시 말해 트랜지스터도 “스위칭”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진공관보다 크기도 훨씬 작고, 고장도 잘 나지 않고, 전기도 훨씬 덜 들었다. 이렇게 개발된 저마늄 트랜지스터를 일반적으로 반도체 산업의 시작으로 본다. 102-4)
# 릴레이 : 전기신호가 약해지는 지점에 기계 장치를 설치해 본래의 전기 신호를 계속 연결하는 방식, 스위칭도 비슷한 개념이다.
요즘은 트랜지스터 대신 저마늄이 사용되는 다른 분야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저마늄으로 만든 유리는 규소로 만든 보통 유리보다 적외선을 잘 통과시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적외선을 잘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카메라를 만들 때 저마늄 유리 렌즈를 자주 사용한다. 적외선을 감지하는 기능은 어두운 밤에도 물체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장비나, 열을 내뿜는 물체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관찰하는 열화상 카메라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저마늄으로 만든 유리가 활용되는 또 다른 분야도 있다. 요즘 인터넷 통신을 이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장비로 광케이블이 있는데, 광케이블은 광섬유라는 재료로 만든다. 그러니까 인터넷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때 그 정보는 광섬유를 따라 흘러간다. 전선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전기를 전달해 준다면, 광섬유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빛을 전달해 준다고 보면 된다. 과학자들은 광섬유를 만들 때 약간의 저마늄을 같이 조합하면 성능이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04-5)
33 비소: 곶감 사건을 생각하며 As
비상이 사람에게 독이 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비소砒素라는 원소 때문이다. 비소는 꼭 산소와 연결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사람 몸에 독이 될 가능성이 큰 물질이다. 이것은 꽤 특이한 성질이다. 탄소의 경우, 탄소와 산소 원자가 하나씩 연결된 물질은 일산화탄소이며, 이것은 연탄가스 중독의 원인이 되는 대표적인 위험 물질이다. 하지만 탄소와 산소, 수소 원자가 다른 형태로 일정하게 연결된 탄수화물은 달콤한 음식이 된다. 염소 역시 염소끼리만 모여서 염소 기체를 이루면 대표적인 독가스 무기가 되지만, 염소와 소듐이 1:1로 붙어 있으면 음식 맛을 내는 데 빠져서는 안 되는 소금이 된다. 그런데 비소는 다른 원소를 어떻게 활용해서 무슨 물질을 만들든 대부분 사람 몸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물질이 된다. 더군다나 중금속 물질은 주로 사람 몸에 어느 정도 쌓였을 때 피해가 나타나지만, 비소는 적은 양으로도 사람 목숨을 빠르게 빼앗는 위험한 물질이 되는 경우가 많다. 109-10)
지금은 비소의 위험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시대다. 그러나 현대에도 우연한 비소 중독 피해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이미 비석이나 웅황을 구해서 사용했고 비상을 제조하기도 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비소 성분은 돌과 흙 속에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렇기에 유독 비소가 많은 지역에서 지하수를 개발해 물을 마시거나 그런 땅에서 농작물을 길러 먹는다면, 물이나 작물에 녹아든 비소를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먹게 될 수 있다. 개중에 몇몇 농산물은 특히 비소가 잘 쌓이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하필 이런 농산물을 비소가 있는 땅에 심어 기르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가끔은 수입하는 농산물 중에 검사 결과 비소가 나온 것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우물을 파고 지하수를 개발해서 쓸 때, 그 물속에 비소가 있는 것을 모르고 사용하다 피해를 보는 곳이 많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등이 자주 언급되는 곳들이다. 113-4)
34 셀레늄: 조기를 구우며 Se
양자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물체가 가진 에너지를 변화시키려고 할 때 일정한 단계별로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시속 20km로 달리고 있는 자동차가 있다고 해 보자. 이 차를 운전하면서 가속 페달을 잘 밟으면 시속 22km로 달리게 할 수도 있고, 시속 25km로 달리게 할 수도 있으며, 시속 31km로 달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양자이론을 적용하면 그렇지 않다. 주변 조건에 따라 자동차의 속도를 바꿀 수 있는 단계가 정해져 있다. 시속 20km에서 더 빠르게 달리게 하면 그다음 단계인 시속 30km가 되어야만 한다. 그 사이의 단계는 없다. 반대로 더 느리게 달리게 하면 그 전 단계인 시속 10km가 되어야만 한다는 식이다. 양자점은 국내에서는 흔히 약자로 QD(quantum dot)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양자점의 첫 번째 유용한 특성으로 꼽는 것은 에너지가 단계별로 정확히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이 특징을 잘 활용하면 정확하게 정해진 색깔의 빛만 내뿜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119)
양자점을 만들려면 고작 수십 나노미터, 그러니까 10만분의 1mm 정도밖에 안 되는 극히 고운 가루를 일단 만들어야 한다. 그런 물질을 대량 생산해서 사용하려면 그것을 끝도 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게 곱고 고운 가루를 오차 없이 항상 같은 크기로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양자점을 어떤 부품이나 장치에 넣어 활용하려면 양자점을 보호하기 위해 주위에 다른 물질을 살짝 발라서 씌워야 한다. 이런 작업을 핵core 주위에 껍질shell을 씌운다고 말한다. 이때 그 작디작은 가루 알갱이 하나하나마다 보호용 껍질이 제대로 씌워지지 않으면 실패다. 껍질을 씌운 뒤에는 이 알갱이들을 다른 물체에 고정하고 연결해서 쓰기 위한 일종의 갈고리나 접착제 역할을 하는 배위자ligand라고 하는 물질들을 껍질 위에 붙여 줘야 한다. 제대로 된 배위자를 만들어 고르게 붙이지 못하면 역시 실패다. 이렇게 빛을 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양자점의 핵을 만드는 재료로 널리 사용되던 물질이 바로 셀레늄이다. 119-20)
35 브로민: 어묵탕을 끓이며 Br
다시마를 우린 국물이 맛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다시마 속에 들어 있는 글루타메이트glutamate 성분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할 때 조금만 넣어도 감칠맛이 확 도는 화학조미료 중에 글루탐산나트륨monosodium glutamate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마 같은 해조류는 바닷속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몇 가지 특이한 물질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코발트나 아이오딘iodine, 요오드 같은 물질이 대표적인데, 과거에 브롬이라고 했던 브로민bromine도 해조류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물질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완도금일수협의 특산물 안내 자료를 보면 다시마에는 브로민이 0.02~0.09% 정도 들어 있다고 한다. 매우 작은 수치인 것 같지만, 대다수 동물이나 지상 식물 몸속에서는 이보다 훨씬 적은 양의 브로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고추의 매운맛이 캡사이신 덕분에 나는 것이라면, 다시마는 대략 그 정도만큼은 브로민 맛이 나는 음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124)
만약 브로민만 모은 덩어리가 담긴 병을 보게 된다면 꽤 신기할 것이다. 찰랑거리는 액체가 되어서 마치 핏방울 비슷하게 불그스름한 색깔을 띠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가지 원소만 모아 놓았을 때 저절로 액체 상태가 되는 물질은 매우 드물다. 금속으로 분류되지 않는 원소 중에서는 오직 브로민밖에 없고, 금속 중에서는 수은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모든 원소 중에서 그것 한 가지만 모아 놓았을 때 저절로 액체가 되기 쉬운 물질은 브로민과 수은, 단 두 가지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특이함은 지구의 평범한 환경에서만 그렇게 여겨진다. 철이나 구리 같은 쇳덩이도 아주 높은 온도로 달구면 결국 흐물흐물 녹아서 액체가 되기 마련이고, 헬륨 같은 물질도 아주 낮은 온도 속에 집어넣으면 굳어서 액체가 될 수 있다. 즉, 어떤 물질이 액체냐, 고체냐, 기체냐 하는 것은 주변 조건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하필이면 액체 상태가 된 순수한 수은 덩어리와 순수한 브로민 덩어리는 둘 다 몸에 해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129)
36 크립톤: 포장마차 앞에 서서 Kr
빛은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이 서로 얽혀서 공간을 날아가고 있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빛을 전자기파라고도 부른다. 빛이 가진 전기의 힘은 빛이 날아가는 동안 빛을 따라가며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이 변화는 아주 규칙적이다. 즉, 빛이 날아가는 동안 전기의 힘은 똑같은 정도로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렇게 빛이 날아갈 때 전기의 힘이 한 번 커졌다가 작아지는 동안 빛이 날아간 거리를 파장이라고 한다. 크립톤에서 나오는 빛도 날아가는 동안에 전기의 힘이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규칙적으로 반복한다. 그리고 이 현상이 일어나는 정도, 그러니까 파장은 빛의 성질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이 현상이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따라서 크립톤 원자에서 나온 그 빛이 날아갈 때 전기의 힘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반복이 한 번 일어나는 거리, 즉 파장이 얼마인지를 측정해서, 거기에 1,650,763.73을 곱하면 그게 바로 1m라는 길이가 된다. 133)
주기율표를 살펴보면 크립톤은 헬륨, 네온, 아르곤 같은 원소와 아래위로 같은 줄에 적혀 있다. 따라서 크립톤 역시 화학반응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원소를 비활성기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사람 주위에 있다고 해서 냄새가 나지도 않고 몸에 악영향을 미칠 일도 없다. 어떤 원소 하나만의 성질을 정확히 측정하는 실험을 할 때 순수한 크립톤을 구해 실험하면 편리하다. 특정 원자가 내뿜는 빛을 관찰하려면, 그 원자가 빛을 내뿜도록 전기를 걸거나 온도를 올려 주어야 한다. 만약 이런 실험에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는 수소 기체나 염소 기체를 이용한다면 원자가 전기나 열을 받아 빛을 내뿜기도 전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물질에 들러붙으면서 엉뚱한 상태로 바뀌어 버릴 것이다. 이것이 1m를 정할 때 하필이면 크립톤이라는 낯선 물질로 실험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크립톤은 빛이 선명하게 잘 보이고 정확하게 잘 나오는 특징까지 있다. 그래서 1m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처럼 정밀한 실험을 하기에 좋다. 134)
# 지금은 빛이 날아가는 속력을 기준으로 1m의 길이를 정하고 있다.
37 루비듐: 곰취나물과 밥을 비비며 Rb
루비듐 중에는 방사성을 띠는 루비듐82라는 물질이 있다. 루비듐82는 보통 루비듐과는 다르게 반물질antimatter을 뿜어내는 놀라운 특성이 있다. 루비듐82가 뿜어내는 반물질은 양전자positron라는 것이다. 이 물질은 전자 제품 속을 돌아다니는 평범한 전자와 거의 모든 점에서 똑같아 보이지만, 전자가 ⊖전기를 가진 것과 반대로 ⊕전기를 가진다. 루비듐82가 뿜어내는 양전자와 정반대 전기를 띤 전자와 부딪혀 반응하게 만든다. 그러면 양전자와 전자가 서로 소멸하며 강력한 빛을 내뿜는다. 이 빛은 맨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물질을 다 뚫고 나온다. 그리고 정확히 반대인 방향으로 두 줄기 빛이 동시에 나오기 때문에 어느 위치에서 빛이 나오는지 관찰하기가 좋다. 그래서 양전자가 소멸하면서 나오는 강력한 빛을 관찰하면 그 양전자가 몸속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양전자를 내뿜는 물질을 몸에 주입하면 그 물질이 몸속에서 돌아다니는 위치를 정밀하게 알 수 있다는 뜻이다. 140)
루비듐은 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밝히는 데도 큰 도움을 준 물질이다. 루비듐이 금속이면서도 쉽게 녹고 잘 끓어오르기 때문이다. 금속은 수천억 개의 원자들, 수천조 개의 원자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엄청나게 많은 원자의 덩어리이다. 이런 상태라면 원자 하나하나에 각각 영향을 주어야 하는 정밀한 조작을 하기가 어렵다. 원자를 하나하나 조작하려면 덩어리가 아니라 원자를 하나하나 떼어 놓은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물질을 기체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어지간한 금속을 녹여서 액체로 만들려고만 해도 쇠가 녹을 정도로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하물며 그렇게 쇳물이 된 금속을 끓여서 기체로 만들기는 더욱더 어렵다. 그런데 루비듐은 쉽게 녹고 쉽게 끓는다. 그러니 어떤 작업을 금속으로 해야 하는데, 원자 하나하나를 움직여야 한다면 루비듐이 좋은 재료가 된다. 그런 이유로 레이저를 이용해 원자 하나하나를 각기 붙잡고 따로 움직이는 실험을 할 때 루비듐은 단골 실험 대상이다. 144-5)
38 스트론튬: 솜사탕을 건네주며 Sr
옛날식 텔레비전의 기본 원리는 전자가 부딪히면 빛을 내는 물질을 유리판에 발라 놓고, 전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발사하는 전자총을 이용해서, 유리판을 향해 전자를 이리저리 발사하는 것이다. 그 유리판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전자가 유리판에 부딪혀 생긴 빛이 그림을 이루게 된다. 전자는 ⊖전기, 즉 음전기를 띠고 있다. 그래서 이런 장치를 음극관cathode ray tube, CRT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옛날 텔레비전은 전자총으로 전자를 발사해서 CRT에 원하는 모양으로 빛이 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어 내는 장치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가 유리판에 부딪혀 영상을 만들어 낸 후에 문제가 생긴다. 이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가 충돌해서 갑자기 속력을 잃다 보면 엑스선 등의 방사선이 나온다. 그래서 텔레비전에서 생기는 엑스선을 흡수하거나 엑스선이 튀어나오지 못하게 방해하는 물질을 일종의 방어막처럼 텔레비전 화면에 얇게 발라야 했다. 여기에 적합한 물질이 바로 스트론튬이었다. 149)
스트론튬은 여러 방사성 물질 중에서도 특히 골칫거리로 자주 언급되는 물질이다. 정확히 말하면 보통 스트론튬보다 약간 더 무거운 스트론튬90이 문제다. 보통 스트론튬과 무게를 비교하면 88:90 정도로 약간 무겁다. 스트론튬90은 방사선을 오랫동안 꾸준히 내뿜는 점도 문제지만, 사람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에서도 걱정스러운 물질이다. 주기율표에서 스트론튬 바로 위에는 칼슘이 적혀 있다. 방사성 물질이라고 해도 몸속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방 몸 밖으로 나온다면 별 피해가 없을 수도 있다. 실제로 방사성 물질 중에는 그런 것도 여럿 있다. 그런데 스트론튬은 하필 칼슘과 성질이 비슷하고, 칼슘은 뼈에 많이 들어 있다. 그렇기에 스트론튬이 몸속에 들어오면 우리 몸은 스트론튬을 칼슘으로 착각해서 뼈를 만드는 데 칼슘 대신 스트론튬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그것이 보통 스트론튬이 아니라 방사성을 띤 스트론튬90이라면, 뼛속에 스트론튬90이 끼어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151)
39 이트륨: 양배추를 썰며 Y
스웨덴에서 광산 개발과 관련된 산업과 기술이 발전했던 역사는 주기율표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트륨yttrium이다. 스웨덴의 이테르뷔Ytterby라는 마을에서 발견된 돌에서 나온 원소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현대에 희토류로 분류되는 광물들은 이테르뷔에서 발견된 이트륨과 비슷한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대체로 들어맞는다. 주기율표에서 이트륨 바로 위에 적혀 있는 스칸듐과 이트륨 바로 아래 칸 근처에 있는 란타넘lanthanum이 대표적인 희토류이기 때문이다. 란타넘의 경우에는 주기율표 모양이 그 근처에서 확장되는 형태로 바뀌기 때문에 정확히 이트륨 바로 아래 칸에 적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트륨과 같이 엮기에 큰 무리는 없다. 그리고 란타넘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란타넘족 원소라고 분류하는 네오디뮴neodymium, 디스프로슘dysprosium 등 여러 원소까지 모두 합쳐 희토류라고 부른다. 그러니 화학 발전의 역사에서는 이트륨이 희토류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155-6)
흔히 야그 레이저라고도 하는 YAG 레이저는 Y, A, G 세 가지 물질을 주성분으로 하는 레이저 발생 장치를 말한다. 여기서 Y, A, G는 각각 이트륨, 알루미늄, 가닛garnet을 가리킨다. 레이저는 빛과 물질 속의 전자가 서로 독특한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을 이용해 특수한 빛을 내뿜는 것을 말한다. 자연 상태의 빛은 여러 성질이 섞여 있고, 진행하는 동안 사방팔방으로 퍼져 버린다. 이와 달리 레이저는 빛의 성질이 잘 가다듬어져 있으며, 잘 퍼지지 않고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나간다. 이런 빛을 만들려면 물질 속에 들어 있는 전자를 잘 조정해야 한다. 원하는 색깔의 빛이 생기도록 전자가 특정한 속력으로 움직이고 적절한 힘을 받으며 돌아다니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은 온갖 물질을 조합해 보다가 이트륨, 알루미늄, 가닛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놓으면 그 물질 속을 돌아다니는 전자들이 레이저로 쓰기에 좋은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게 해서 YAG 레이저가 실용화되면서 다양한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156-7)
40 지르코늄: 과자 봉지를 뜯으며 Zr
촉매 연구는 화학에서 가장 마법 같은 분야다. 원래는 안 일어날 화학반응을 촉매를 써서 일어나게 만들면 그야말로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사람이 설탕물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화학의 눈으로 살펴보면 이것은 대단히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다. 설탕이라는 별것 아닌 재료가 어떻게 사람의 살이라는 귀중하고 복잡한 물질로 변하는 것일까? 설탕물 1kg을 주면서 그것으로 사람 살 1kg을 만들어 보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일으키라는 요구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몸에서는 그런 일이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난다. 촉매라고 볼 수는 없지만, 과학자들은 지르코늄이 물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화학반응을 어느 정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단, 주변을 뜨겁게 만들어야만 이런 반응이 일어난다. 이 말은 연료를 사용해 불길로 주변을 뜨겁게 덥혀 주어야 수소가 생긴다는 뜻이다. 지르코늄의 이 반응 때문에 후쿠시마에서 커다란 사고가 발생했다. 163-4)
지르코늄은 중성자와 반응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 때문에 중성자가 많이 돌아다니기 마련인 원자로 내부에 들어갈 재료로 지르코늄을 사용하는 일이 많다. 평상시라면 이것은 매우 좋은 생각이다. 원자로에서는 중성자를 잘 조절하여 원하는 만큼 핵반응을 일으켜야 하는데, 여기에 지르코늄 재료를 이용하면 중성자 조절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으므로 안전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후 온도가 1,200℃에 가까워지자 지르코늄이 물과 반응해 수소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물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반응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 높은 온도라는 조건이 갖춰지자 지르코늄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 수소 생성 반응을 시작한 것이다. 평상시 안전을 위한 방어 판 같은 용도로 넣어 두었던 지르코늄이 이런 비상 상황에서 오히려 수소라는 불쏘시개를 잔뜩 만들어 낸 셈이다. 수소가 좋은 연료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불이 잘 붙는 물질이라는 뜻이다. 결국, 수소는 불이 붙어 폭발을 일으켰다.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