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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고, 그래서 막연한 사정 외에 현실적인 장면을 접해본 바가 없는 밑바닥 노동을 대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부조리’ 그 자체일 것이다. 부조리함 앞에서 우리는 제일 먼저 그들의 열악한 처우를 동정하고 그 상황에 몸서리친 후에 사회 개혁의 명분에 동참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과의 신분 차이에 안도하고 더 높은 자리로의 상승 욕구를 절감할 것이다.
부조리를 대했을 때 우리가 돌고 돌아 도달하게 되는 감정 또한 부조리이다. 부조리는 선악의 기준으로 판별하거나 해소할 수 없다. 우리의 정체성은 상사와 부하직원, 부모와 자식, 손님과 종업원, 친구와 라이벌 등 모순의 집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순된 상황은 나의 삶을 선악의 기준으로 판별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동시에 타인의 삶을 선악으로 쉽사리 구분해 내도록 유혹한다.
그러므로, 부조리는 소멸해야 할 절대악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조건이다. 혼란이 앞서면 부조리에 시달리게 되고, 아슬아슬한 균형을 달성하면 조화로움이 되는 것이다. 이 아슬아슬한 균형상태를 잡아주는 전제조건이 바로 ‘인간다움’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조건이 가장 힘들다고 여긴다. ‘인간다움’은 자신과 타인 사이에 놓인 이 울퉁불퉁한 간극을 직시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인간은 부조리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다움’은 아무런 노력 없이 도달할 수 있는 평지 위의 목적지가 아니다. 천부인권의 관념 또한 근대에 일어난 부르주아 혁명의 부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전혀 동시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시간이 이행기이며 나의 안정기가 타인에게는 불안정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 세계는 단순했다. 나는 이름없는 순교자였고 손님은 합법적인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애꿎은 식당 종업원에게 화풀이를 한) 나란 존재는 순교자인 동시에 박해자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73
우리는 모두 어떤 불가항력적인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 이 존재는 고정된 형상을 갖고 있지 않으며 매 순간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아주 멀리 떨어져 도달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이 존재는 한마디로 규정 지을 수 없다. 이것의 존재성은 ‘부조리’ 그 자체이다. 역설적으로 이 ‘부조리’의 균열은 단순했던 나의 세계의 심장에 나의 손바닥을 댔을 때, 그 굴곡이 선사하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