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완독하는 책들이 에세이 밖에 없는 것 같아 서글프다. 그렇지만 마음이 허하고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에는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은 역시 에세이이다. 이 책을 사게 된 계기도 제목 탓도 있지만 에세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미뤄두었던 다른 책들을 끈덕지게 완독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동기부여는 되었으나 이 책을 완독한 것이 안타깝게도 금요일이었다. 그래서 오늘 다시 도서관으로 가서 지난번에 2/3만 읽고 반납했던 [장애와 유전자 정치]를 다시 빌려 왔다. 하늘은 푸르고 가는 길에 있는 아파트 장도 구경한 즐거운 나들이 길이었다.
'교양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10쪽)'라고 서문에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작가가 대학생일 때 들었던 교양수업에 대한 이야기들을 학년 순서대로 묶은 책이다. 나는 대학의 특이점 때문에 선택과목의 폭이 매우 좁았고 계절학기가 없었으므로 작가가 풀어내는 대학생활 이야기가 별천지처럼 느껴졌었다. 고등학교처럼 정해진 수업만 듣던 우리학교와 달리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듣는 다른 대학의 시스템이 다시금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글의 차분한 어조도 좋았지만 이 책에서 발견했던 것은 소위 암기하는 공부에 대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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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며 창의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아직 뇌가 굳어버리기 전이라 외우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할 때 암기로 지식을 주입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토양 삼아 창의성이라는 꽃이 자라날 수 있을까? '창의적'이라는 것은 여러 연구 끝에 합의된 기본적인 지식을 소화해 바닥을 잘 다진 다음 단계에서의 도약을 뜻하는 것이지, 허공으로 무작정 날아오르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창의성'은 영화 속에나 있다.(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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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십 년 전부터 교육에 그림자처럼 꼭 붙어 있던 '창의성'에 대한 이 구절에 매우 공감한다. 창의성을 위해 끝없이 강조되었던 허용적인 환경 또한 중요하지만 구시대의 유물인 주입식 교육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주입식 교육이라고 해서 무작정 비판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지식을 선택하고 이를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지식 또한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글쓴이는 교양 수업을 통해 외웠던 것들, 수없이 읽었던 텍스트, 고심해서 제출했던 레포트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외우고, 읽고, 쓰는 것이 공부의 기본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전공은 과로 따지면 이과쪽에 가까웠기에 저자처럼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본 경험이 거의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대학생이었던 저자의 열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정해진 시간표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공부에 몰두하는 대학생의 의욕이 생기 넘치게 느껴졌다.(거기에 더해 글쓴이가 받았던 학점도 매우 대단했다....) 보통 대학시절을 회상할 때 자주 등장하는 선후배와의 친목이나 연애 얘기가 아니어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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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란 학식과는 다르다. 교양은 비정한 현실 속에서, 더 비정하거나 덜 비정한 세계를 상상하고 그에 틈입할 여지를 준다. 그러한 자유라도 있기에, 우리는 지치지 않고 생(生)의 수레바퀴를 유연하게 굴릴 수 있는 것이다.(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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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며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목표를 달성한 독서였다. 물론 작심삼일이겠지만... 언젠가 또 공부에 대한 자극을 받고 싶어질 때면 다시 책장을 들춰볼 것이다.
+책을 읽고 보고 싶어진 드라마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514/pimg_7319381093412366.jpg)
넷플릭스 <더 체어>
+더 읽고 싶은 책
+ 사족: 102, 258쪽의 그림 출처가 궁금했다.
교양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 P10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며 창의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아직 뇌가 굳어버리기 전이라 외우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할 때 암기로 지식을 주입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토양 삼아 창의성이라는 꽃이 자라날 수 있을까? ‘창의적‘이라는 것은 여러 연구 끝에 합의된 기본적인 지식을 소화해 바닥을 잘 다진 다음 단계에서의 도약을 뜻하는 것이지, 허공으로 무작정 날아오르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창의성‘은 영화 속에나 있다. - P131
교양이란 학식과는 다르다. 교양은 비정한 현실 속에서, 더 비정하거나 덜 비정한 세계를 상상하고 그에 틈입할 여지를 준다. 그러한 자유라도 있기에, 우리는 지치지 않고 생(生)의 수레바퀴를 유연하게 굴릴 수 있는 것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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