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수의 한 마디
매일 새벽 푸른 물자락을 젖히며
얕은 내 숲을 열러 오신다 아버지
그가 낳은 알이 숲의 가장자리에
바닷가 부족들과 함께 살아있기 때문이다
많은 날들을
바다 뒤에 숨어 중얼거리고 웅성거리느라
고 푸르고 맑은 것들과 눈 맞추지 못했다 나는
다시 숲을 일으켜 세우고 물가에 내려선다
등 푸른 고등어로 살다 가신 아버지께
이 시집을 바친다
2013년 여름, 설머리에서
커피 방앗간에서,
그녀가 빻아 내리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은.. 한글날 아침이다.
시인이 적어 내려간 표준전과를 읽으니, 어린 날 그 두꺼웠던 책
온갖 내용의 글자들이 등을 맞대고 빽빽하게 들어 있던 '표준전과'를 열심히
들여다 보던 시간들이 잃어 버린 추억이 되어 다시 돌아 온다.
요즘도 석탄 매장량과 꼬불꼬불한 리아스식 해안이 들어 있던 그 '표준전과'가
여전히 있는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표준전과'라는 이름이라니...
어제 읽었던 드림님의 리뷰 <4퍼센트의 우주>를 읽은 직후라 그런지, '하얀 빛으로
흐르던 선들과 작은 입방체들이 분리되어/ 아득히 멀어지다 다시 속까지 뻗혀/ 다시
죽는 별들이 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들이 있다' 하는 서쪽으로 흩어지던
은싸라기들이 다시 동쪽으로 차르르 차르르 흐르기 시작한다는...은꽃들을 오늘 밤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울어진 밭으로 가 나도 가을별들을 만나고 싶다.
지난번 영풍문고에 갔을 때 이 <바닷가 부족들>의 페이지를 넘기다, 눈에 확 들어 오던
시가 서늘하였다. '동빈 바다'.
그 시의 제목에 가장 사랑하는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첫아이가 백일이 조금 지났을 무렵. 옆지기가 어떤 프로젝트 때문에 겨울부터 여름까지
포항으로 내려가 파견근무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아기를 데리고 내려가 회사에서
내어 준 사원아파트에서 세 식구가 오롯이...낮설고 검푸른 색이었던 그 도시에서 이방인
처럼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택시가 삐얄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갑자기 둥실 바다가
이발소 그림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매번 놀라고 막막했던 그 기억이 여전하다.
아침이면 단지내로 들어와 사원들을 실고 가는 출근버스를 타고 저녁이면 그 버스에서
내렸던 옆지기를 기다렸는데 퇴근 후 회식이 있어 늦는 밤이면 아기와 함께 베란다에서
보았던 포항제철의 빨간 불빛들이, 또 우리만 이곳에 남겨져 있는 듯한 막막함을 주었다.
서울에서 함께 내려온 어느 부장님께서 혼자 지내던 여관인가에서 자주 무엇인가를 분실해
방이 두 개였던 우리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기로 하고 들어오신 날부터, 우리는 그제야 밤바다
에 아기를 데리고 나가 술도 마시고 주말이면 포항 인접의 지역으로 소풍도 매주 다녔는데
그 부장님이 손수 종이에 적어 주신 세밀약도를 들고 우리는 보문사도 가고 강구도 가고 울진도
가고 경주도 가고 그랬다. 퇴근하고 따로 한잔을 하고 오신 그 부장님께선 아주 늦은 밤에도
꼭 우리의 방에 들어 오셔서, 침대에 누워 있는 우리 아기에게 웨하스를 하나 까 입에 대어 주며
"아가야, 녹여봐~" , 또 양복 주머니에서 초록색 예쁜 딸랑이를 꺼내어 "아가야, 흔들어 봐"
하시던 그 아릿하고 아련한 순간의 장면들이, 아직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남아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아지랑이처럼 온 어느 주말, 우리는 여전히 또 소풍을 나섰다.
칠포 해수욕장을 약도를 들고 찾아 나섰는데 가도가고 배추밭만 나오고 도무지 바다는
보이지 않아 지쳐갈 무렵 드디어 우리 앞에 나타난 칠포 해수욕장의 모래사장. 하하하~웃으며
신발을 벗고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물에 조금 발을 적시는 찰나에, 갑자기 커다랗게 일어 서는
높은 파도에 아기띠를 매고 놀라고 있는 나와 아기를 옆지기가 잽싸게 찍은 그 사진이 푸르다.
우리 아기가 맨 처음으로 정면으로 어마어마하게 보았던 바다와 우리의 바다!
사진 한 장에는 어느 순간의 모습이라도 그 사람의 추억이, 지워도 지울 수 없게 담겨져 있다.
그후에도 여러 바닷가를 다녔고, 죽도 어시장도 자주 다니다가 여름에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 왔다. 항구다방엔 가 보지 못했지만, 우리 식구가 살던 집은 항구아파트였다.
아직도 그 항구아파트가 있는지 모르겠다. 짧았지만 아주 강렬한 어떤 기억이 남아 있는 곳.
그리고 포항의 칠포 바다를 처음으로 보고, 화들짝 놀랐던 그 아기 동빈이는 지금은 동해 바다
에 따라가 낚시를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동빈이가 보았던 동빈 바다,
이제 동빈이를 비롯해 식구들을 깨워, 따뜻하고 맛있는 아침을 먹여야 겠다.
여전히 아름답고 좋은 가을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