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갈 장사 아저씨의 외침을 들었다.
"명란젓, 오징어젓, 꼴뚜기젓, 한번 드셔보세요. 까무라칩니다. 너무 맛있어서 기절했다가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납니다."
그때 나는 '무명의 시인이 여기 있네. 장사하는 아저씨의 창조정신이 남다르네' 감탄하며 웃었다. 그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꼴뚜기젓 한 통을 사왔다. 다행히 까무라치지는 않았으나, 꼴뚜기가 뛰노는 바다가 그리워졌다.
시인으로 살면서 저 사람이 시인이 돼도 참 좋겠다고 생각 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사진 찍으러 다니다 만난 농부, 국밥집 아줌마, 택시기사 등등 참 많았다. 물론 우리 식구들 중에는 내 아버지와 남동생, 여동생이 그랬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부터 폐병 환자로 지낸 10년 동안 시를 쓰셨다. 그러고 보면 평생 함께한 가족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많다. 인생은 꽤 아이러니하다. 엄마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젊은 날은 더 더욱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보다 더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던 남동생은 정신과 의사가 되었고,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던 물리학도 여동생은 작가가 아니라 목사가 되었다.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잘 그렸던 언니는 가정주부로 산다. 작가, 예술가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식구들이 내뿜는 예술적 기운과 신앙의 힘은 징글징글하고 전쟁같은 삶을 이겨내는 힘이었다. 특히 남동생은 죽음의 고비를 세 번 정도 넘겼다. 물론 이겨내는 데 신앙의 힘이 가장 컸겠지만 시와 예술, 책 읽기를 사랑하는 에너지의힘도 적지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물론 당사자에게 물어봐야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서예, 도자기, 그림도 좋아하시지만, 무엇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시다보니 홀로 남으셨을 때에도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일흔의 끝자락에 선 아버지는 늘 서점을 들려 시대의 흐름을 살피신다. 그리고 꼭 책을 사서 귀가하는 청춘 꽃할배시다.
지난주에 고향집에 갔을 때 아버지가 읽고 계신 책이 궁금해 뭔가 보았다. 인문학 명강의였다. 그런 모습이 늘 존경스럽고 자식들에게 안정감과 안도감을 준다. 이 세상에 책이라는 친구가 없었다면 우리가 어찌 견뎠을까. 인간의 영혼은 끊임없이 성장하고자 하는 열정 속에서 더 빛난다.
사랑의 시를 읊고 사랑의 시를 쓰고 싶은 계절.
시를 읽으면 그나마 흘러가는 시간의 허망함을 이길 수 있으리라. 책 한쪽이라도 읽는 습관이 몸에 배면 삶이 달라진다. '끊임없이 배우는 데 젊고 늙음은 없다'는 아이스킬로스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 바로 아버지께 힘을 줄 수 있는 시를 읊어드리고 싶다. 맛있어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시게 하는 시를. 느낌이 있고, 기쁨을 배가시키는 시를. 지금은 지혜와 용기를 주는 샤뮤얼 울먼의 <청춘>, 글 일부를 읊어드리고 싶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일한 삶을 뿌리치는 모험심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일흔 노인이 더 젊을 수 있다
나이 먹는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꿈과 희망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P.169~171) / 배우고 즐기는 데는 늙음과 젊음이 따로 없네.
-신현림, <아빠에게 말을 걸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