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저편

 

 

 

 

                          한 사람이 나무로 떠났지만

                          그 뒷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나무가 되어 돌아온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떠난 그였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떠난 그가 남긴 유품을 새벽에 깨어

                          천천히 만져보는 기분,

                          길을 뒤돌아보면

                          그를 어느 나무에선가 놓친 것도 같다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한다는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

                          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P.12 )

 

 

 

 

 

                          여행

 

 

 

 

                            여정이 일치하는 그곳에 당신이 있고

                            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시간은 망명과 같다 아무도 그

                            서사의 끝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끝끝내 완성될 운명이

                            이렇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

                            사랑은 단 한 번 펼친 면의 첫 줄에서

                            비유된다 이제 더이상

                            우연한 방식의 이야기는 없다

                            이곳에 도착했으니 가방은

                            조용해지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여행은 항상 당신의 궤도에 있다  (P.18 )

 

 

 

 

 

 

                         비에게 듣다

 

 

 

 

 

                             귀를 대보아도 추억은 난청일 때가 많다

                             몰아쳤다가 흩어지는 점들의 외곽

                             가로등은 불빛을 뿌리며 척박한 거리를 키웠다

                             몇몇 약속은 필라멘트처럼 새벽이 되곤 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온기를 잊지 못한다

                             흐르는 얼룩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유리창은 인상파처럼 집착을 뭉갠다는 사실,

                             두고 온 날들이 비를 흠뻑 맞고 여전히

                             가는 빗소리로 턴테이블을 돈다

                             나는 지하 카페 뒷좌석이거나 눅눅하게 젖어버린 노트,

                             그러다 뒤집힌 우산이 버티는 후미진 방치

                             불행하게도 오늘은 스피커만큼 현현하다

                             바닥 곳곳 둥근 테두리 생겨나고

                             손잡이를 움직이자 소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완전한 소음이 될 때까지

                             시간은 리시버를 구름에 꽂는다   (P.34 )

 

 

 

 

 

 

 

                          감(感)에 대한 사담들

 

 

 

 

 

                                바람의 궤와 함께 이어지는 색감에서

                                사위를 움켜진 채 회전하는 윤곽,

                                신화의 조난 같은 새벽이 다가오는 사이

                                빛은 여러 개의 가설을 파먹는다

 

                                 가지마다 행성을 밝히는 액정들

                                 지금도 불 밝은 몇몇의 접속자들

 

                                 후둑 떨어지는 홍시의 여정을 귀에 들려주면

                                 불면의 시공간이 채집된다

 

                                 녹슨 자전거 바퀴 속을 항해하는 먼지들은

                                 이제 외계의 답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아득히 계통에 없는 유기물로 스며든 후

                                 나선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을 때

                                 감나무에서 붉어지는 봉분이 있다

 

                                 핏빛 중력이 서서히 끌어당기던 언 땅 밑 항로를 가다보면

                                 나직이 어느 불행과 조우할 수 있을까

 

                                 새벽녘 얼굴만 비추는 액정에는

                                 파리한 안색이 걸려 있거나 주술처럼 손톱이 부딪쳐온다

 

                                 별들이 지독한 건 제 빛을 보내

                                 그 눈빛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붉은 탯줄에 매달려 양육되고

                                 고인은 외장 하드에 검은 시신경을 연결한다

 

                                  희부연 배경 붉은 화소의 감나무는

                                  광속의 주파수를 따라

                                  운명은 다만 서로 돌아보는 거라고

                                  나뭇가지 갈래로 뻗어가고 있다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P.36 )

 

 

 

 

 

 

                               해후

 

 

 

 

 

                              꼭 한번은 누구도 모르게 자신의 일생을 만나고 간

                              사람에게 타인을 입힌다 다시 만난 듯

                              인상이 호감을 조금씩 떼어내며 서로의 구면이 된다

                              폭우처럼 밀려오는 말(言)의 기압골에 표류하는 소리 소리들

                              금을 새기듯 번쩍번쩍 의미가 얼굴을 바꾸는 중이다

                              이때 가장 빠르게 눈동자로 옮긴 둥긂에서 빛이 스러진다

                              기억의 뒷면에는 언제나 터널이 있다

                              그곳으로 여행 온 사람이 지금 태연하게 웃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안은 그대로 독하다

                              아무도 모르는 내가 되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눈을 부릅뜨는 것보다 때론

                              그 사람의 눈에서 처음 보는 나를 쓸쓸하게

                              떠나보내주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P.42 )

 

 

 

 

 

                                                    -윤성택 詩集, <감(感)에 관한 사담들>-에서

 

 

 

 

 

 

 

 

 

 

 

 

   시간의 약관에 동의한 나는/ 태어나 로그인된 방문자 /..

   어디에도 있는 나를 / 어디에도 없게 하는 로그아웃 / 나는

   태연하게 다른 곳으로 로그인된다 /   [로그인]中

 

 

   [로그인]의 시인, 윤성택을 만난 것은 2006년 詩集,

   <리트머스>이다.

   그리고 또 윤성택 시인의 새 詩集을 아침에 읽었다.

   한층 더 미려함과 두터운 물감같은 질감을 입고

   불면의 광속들속에서 경계,의 꽃가지들로

   접속되고 반짝이고 명멸하고 또 재생되는 이 시대의 외로움을

   보다 깊은 심해와 심야의 言語로 로그인,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성택의 우울과 외로움은 바깥에서 수없이 재조직

   되는 거짓자아의 중심을 벗어나 본래적 자아에게로 귀의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정념의 끈이라 할 수 있다.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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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6 0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7-05 14:52   좋아요 0 | URL
마음을 열어 소리를 듣기에
시 하나 태어나는군요

appletreeje 2013-07-06 06:45   좋아요 0 | URL
^^
지금 이곳 흐린 아침에는
창밖에서 새소리가 짹짹~들리고 있습니다. ^^

2013-07-05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6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7-05 20:55   좋아요 0 | URL
듀마키 읽으면서 주인공이 시를 읽어주다가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 나왔어요.
그 장면 읽으면서 나무늘보님 생각이 많이 났답니다.

매일 매일 좋은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appletreeje 2013-07-06 06:53   좋아요 0 | URL
저는 항상 보슬비님께 더 감사드려요~^^
오늘은 비님이 오시려 보네요, 날씨가..


보슬비님! 주말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3-07-08 11:01   좋아요 0 | URL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시에서 느껴지는 깊은 사유의 은유가 느껴져요..
언제 한 번 윤상택님의 시를 깊이있게 만나보고 싶어지네요 ^^
나무늘보님 덕에 늘 좋은 시를 알게 되네요 *^^*
늘 감사드립니다 ^^

appletreeje 2013-07-08 14:09   좋아요 0 | URL
윤성택님의 시는, 주로 삶의 로그인과 로그아웃에 대한 깊은 은유,지요.
드림님께서는 언제나 굉장히 핵심적으로 시의 중심을 잘 느끼시는 것 같아요. ^^
특히 이번 시집은, 더욱 미학적이고 깊은 응시로 써내려가 참 좋았어요..

드림님! 오늘도 좋은 날 되시구요~*^^*
 

 

 

 

 

 

 

 

나는 혼자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밥 한 공기와 그저께 끓인 감잣국, 멸치볶음과 김치에 도시락용 김을 곁들인 간소한 식사엿다. 습관적으로 켜둔 스마트폰의 FM라디오 애플리케이션에서 그 소식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털구름이 걸린 자리는 공기가 희박할 것 같았다. 아닐지도 모른다. 안에서 밖의 세계에 대하여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잣국 국물을 개수대에 따라 버리고 남은 찌꺼기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쏟아부었다. 침묵 속에서 세제 거품을 많이 내어 천천히 설거지를 했다.

 집을 나서면서 썬글라스를 쓰는 것은 비 오는 날이나 눈 내리는 날이나 변함없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다. 진갈색 렌즈 너머의 거리 는 침침하고 적막했다. 나는 털목도리를 칭칭 감고서 정직한 보폭으로 걸었다. 건조하고 쌀쌀한 날씨였다. 나는 정면만 바라보며 걸어갔다. 아무데도 두리번거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요새는 가끔 내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용히 닳아가는 것.

 도봉산행 7호선 전철은 오후 1시 39분에 도착했다. 어제보다 2분 느렸다. 빈자리에 앉는 동시에 눈을 감았다. 곧 노원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지하철로 오가는 동안 신문이나 책을 보는 것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한 학습교재를 제외하곤 나는 신문도 책도 안 본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뇌 속에 새로운 것을 단 한톨도 집어넣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퍼내고 또 퍼내고 싶다. 쩍쩍 갈라진 밑바닥이 다 드러날 때까지.

 돌이켜보면 지난 삶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받는 과정이었다. 비효율적인 인생이다. 절망스럽지는 않다. 대부분의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세상에는 기어이 무엇인가가 되고자 안간힘 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구 위의 모든 산 이름을 외우거나 스와힐리어 공부를 하거나 꿀벌을 치거나 인공수정을 하거나 시를 쓰거나. 그래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열아홉살 이후 나는 생에 대해 어떤 기대도 품지 않아왔다. 그때의 나는 가끔이라도 꿈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나면 찬물로 오래 세수를 하고 이를 닦는다. 텅빈 위장에 뜨거운 인스턴트커피를 들이부으면서,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안도한다.

 일층엔 편의점과 헤어숍, 치킨집, 안경원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이층엔 교회와 피시방이 나란히 들어선 오래된 건물이 일년째 내가 출근하는 곳이다. 나는 삼층으로 오르는 계단참에서 썬글라스를 벗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하버드보습학원의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후덥지근한 기운이 이마에 훅 끼쳐왔다.

 책상 위에 놓인 시간표를 확인했다. 오늘도 다섯시간이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아이들을 앉혀놓고 하루 네시간이나 다섯시간씩 강의를 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만큼을 내리 떠들다보면 말하기 전에 뇌에서 한 번 거르는 과정이 자동으로 생략되어버리곤 했다. 그 순간만이 나를 견딜 수 있게 했다. 아직도 뱉어지지 못한 말들이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영원히 뱉을 수 없을 말들을 혀끝으로 짓이겼다.

 "사회쌤, 일찍 오셨네."

 부원장이자 중등부 국어강사인 김이 턱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제가 몇 살 위라는 걸 알고부터 은근슬쩍 존대어미를 잘라먹는 사내였다.

 "좀 전에 이상한 전화 왔었는데."

 "네?"

 "왠 여자가, 이지혜씨좀 바꿔달라는 거야. 처음엔 학부모인 줄 알았지. 안 계시다고 했더니 전화번호를 묻데? 개인 연락처는 알려드리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했더니, 쌤이 혹시 78년생 맞는지 확인해달래."

 "그래서요?"

 "아마 그럴 거라고 했지. 그랬더니 머뭇대다가 또 묻더라고. 혹시 집이 반포 아니냐고. 사회쌤 집이 그쪽 아니잖아. 그치?"

 "네."

 "낌새가 좀 이상해서 잘 모르겠다고 하고 끊었어."

 몇초간, 눈앞의 풍경이 노랗게 탈색되어 멈춰버린 것 같았다.  (P.7~10 ) / 프롤로그.

 

 

 

 

                                            -정이현 장편소설, <안녕, 내 모든 것>-에서

 

 

 

 

 

 

 

 

 

 

 

     정이현의 <안녕, 내 모든 것>을 펼쳐보다가

     프롤로그가 왠지 마음에 닿아서 이 책을 또 즐겁게 읽으리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갖는다.

     내식대로의 즐거운 책읽기,의 경우 대부분 그랬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프롤로그안에 뭔가 나의 경우도 포함되었을 경우 더욱 그렇다.

     날씨도 좀 흐릿하니 안심이 되고.. 나도 된장찌개와 오이무침, 미니돈까스, 도시락김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오늘도 또 즐겁게 이 소설을 읽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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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04 15:12   좋아요 0 | URL
마음이 즐거우면 언제나 모든 책이 즐겁게 스며들어요.
비 그치는 사이사이
하늘을 흐르는 구름 누려 보셔요

appletreeje 2013-07-05 10:11   좋아요 0 | URL
비 오시길 간절히 기다리는 아침이에요..^^

2013-07-04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5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4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5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07-04 21:29   좋아요 0 | URL
표지가 참 이쁩니다.^^
그리고 제목도 그렇구요.
나중에 꼭 봐야겠어요.ㅎㅎ

대구는 비님이 많이 내립니다.
시원해서 참 좋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appletreeje 2013-07-05 10:18   좋아요 0 | URL
나중에 보시면 좋아하실 책이에요~.
표지도 정말 참 예쁘지요~? ^^

아 이곳은 비님이 안 오시네요...ㅠ.ㅠ
빨리 비님 소리 들리시길 기다리고 있어요~^^
후애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

2013-07-05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6 0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보대로 새벽부터 비가 좍좍 시원하게 내리는 아침.

 어젯밤의 숙취를 설렁탕 국물에, 후르륵칼국수를 넣고 끓여 부추김치와 먹고 나니 이제야

정신이 맑아졌다. 아까부터 빗속에서 어떤 새가 장난감새,의 소리같이 삐이삐이, 울고 .

 문제는, 어젯밤 우리가 다정하고 좋은 시간을 지낸 술집옆에 책방이 있다는 것.

 그리고 꼭 후렴처럼 그 책방에 들어가 책들의 아릿따운 몸들을 쓰다듬고 정다운 눈빛으로 넘겨

보고 흥겨운 마음으로 여기저기를 읽어보고...음..음...집에 읽을 책들이 나란히나란히 줄을 서고

있는데..도 또 사고 싶은 탐욕의 마음~, 그리고 결론은 어제도 또 선한 웃음으로 선선히 지갑을 열어 주신 선배 덕분에 신나게 고이고이 모셔온 몇 권의 책들. 나를 비 오는 날 더욱 즐겁게 바라보고

있는 이 책들..^^

 

 

 

 

 

 

 

 

  <잘 표현된 불행>을 쓰신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 님의 산문집. 지난번 윤성학의 詩集 <쌍칼이라 불러다오>의 해설 '도시의 토템'도 아껴 읽은지라 더욱 반갑고 좋은 책이다.

  문학에 관한 논문이나 문학비평이 아닌 글로서는 처음 엮는 선생의  첫 산문집이다. 1980년대부터 2013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삼십 여 년의 세월 속에 발표했던 여러 매체 속 글 가운데 추려 1부와 3부에 나눠 담았고, 그 가운데 2부로는 강운구 구본창 선생의 사진 가운데 이 책의 기저에 전체적인 비유가 될 수 있는 몇 컷을 골라 글과 함께 실었다.

 

 

 

 

 

 

   <밤의 인문학>.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활하다가 어느 날 그림에 빠졌다. 이제는 자판을

  두드리던 손으로 펜을 잡고, 그래픽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며,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

  "나는 보이는 걸 그리지 않고 생각하는 걸 그린다."라는 피카소의

  말을 가슴에 담고 작업하며, 마티스의 색감과 인생을 좋아한다.

 

 

 

 

<밤의 인문학>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맥주에 취해 읽은 책과, 나눈 삶의 기록이다. 언뜻 독서일기처럼 보이지만 책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밥장이 책을 통해 찾은 삶의 태도다. 범박하게 말해 인문학이 통념에 대한 의문을 통해 우리가 삶의 주인이 되도록 돕는 학문이라면, 책을 매개로 삶을 고민한 <밤의 인문학> 또한 '밥장 식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

 

    

 

 

2012년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에서 진행한 ‘맨땅에 펀드’ 프로젝트의 기록이자 결산이다. 지리산닷컴은 도시 사람들(지리산닷컴 회원들)에게 매일 아침 물음표 없는 ‘행복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지리산 자락의 사진과 이야기를 보내 염장을 지르는 것으로 유명한 사이트다. 이곳에서 2012년 3월 ‘땅, 농부, 이야기에 투자한다.’는 뜬구름 잡는 명목으로 1계좌당 30만원씩 100명의 투자자를 모집했는데, 놀랍게도 이 고가의, 고위험 펀드는 출시 즉시 완판되었다.

이후 지리산닷컴에서는 1년간 그 돈으로 임대한 땅에 “약을 치지 않고 농사짓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은” 마을 엄니들을 설득해 가능한 한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지으려 애썼고, 또 주변의 어려운 농부들, 위대한 농부들이 가꾼 작물들을 ‘제값’에 구매해 배당했다. 투자자들은 총 5번의 배당을 받았고 배당품으로는 직접 농사를 지은 밀과 감자, 감, 땅콩, 고구마, 배추, 무, 직접 농사를 지어 가공한 김치, 청국장, 그리고 인근의 ‘착한’ 농부들에게서 구입한 산마늘(명이나물), 두릅, 오이, 건표고, 꿀, 매실효소, 허브차, 조청 등이 포함되었다.

이 보고서를 일반 독자들 용으로 보완해 만든 책에서는 ‘맨땅에 펀드’라는 기이하고 위험한 펀드가 1년간 겪은 희노애락, 가령 인선 파동과 마을 엄니들 간의 계파 경쟁, 그리고 아찔한 교통사고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책에는 그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행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책도 담겨 있다.

 

                           

 

 

 

 

 

 

 

    '고양이와 냉장고의 연애'를 통해

    알게 된 홍일표 시인의 詩集,

    <매혹의 지도>. 오필민님의 표지 디

    자인처럼, 시인의 말처럼

    '명왕성에 라일락이 피는, 혹은 457년  

    만의 두 행성의 충돌이라고 명명하고

    싶은 그런 순간들과 그 흔적의 기록'.

    홍일표 시인의 얼굴,같은 그런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시집이다.

 

 

 

  

 

 

 

 

    쏟아지던 비가 잠시 소강상태이다.

    나도 잠시 이렇게 즐겁게 페이퍼를 쓰며 논.다.

    고맙습니다~! 다음달에는 어지간하면 책 안 사달랄께요..라고 말씀은

    드리고 싶지만,

    그 술집 옆에 그 서점이 있는 한,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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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7-02 11:50   좋아요 0 | URL
술집옆 책방... 낭만적이예요.
인터넷서점이 아닌 책방에서 책을 직접 산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네요... -.-;;

은근 나무늘보님 술자리 좋아하시는 듯해요.
식사말고 술한잔 하자고 하시면 나오실듯.. ㅎㅎ

appletreeje 2013-07-02 11:53   좋아요 0 | URL
앗, 우리 실시간!!
보슬비님! 비 그친 사이에 우리 데이트~^^ ㅋㅋ

근데,,나무늘보는 부끄러움도 잘 탄다능,,,뭐..ㅎㅎ

보슬비 2013-07-04 19:45   좋아요 0 | URL
^^ 저도 부끄럼 많이 타요.
저와 나무늘보 사이에 술을 놓으면 될것 같아요. ㅎㅎ

숲노래 2013-07-02 12:18   좋아요 0 | URL
맨땅펀드 책표지를 보면서...
'일본 제국주의 깃발' 떠올리게 한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네요...
요새 하도 이런 말만 떠도니까요...

즐겁게 밤마실 하면서 '밤' 책을 얻으셨군요!

appletreeje 2013-07-02 12:59   좋아요 0 | URL
ㅎㅎ ^;;;;
저 책표지 중앙의 할머니가 수석펀드매니저,라고 작은 글씨로 써있네요.
펀드운영위원, 개, 감, 감자..또 펀드매니저 할머니들 !
김낙훈님이 책 디자인을 하셨는데 뭐, 저는 사방으로 퍼지는 길처럼 재밌어용~

드림모노로그 2013-07-02 16:1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나무늘보님의 유쾌한 책 산 이야기네요 ㅎㅎㅎ
제가 방금 책을 또... 샀는데 ㅎㅎㅎ 그 전에 나무늘보님의 페이퍼를 먼저 보았어야 했어요.
<밤이 선생이다> 를 같이 주문하였을 것을 하는 생각이 마구 마구 ...하네요 ㅎㅎ
며칠 전 숙취로 워낙 고생을 해서... 저도 칼국수가 땡기네요 ㅎ!!!
매혹의 지도도 담아갈게요 ^^
술집 옆 그 서점, 왜 이렇게 운치있게 들리는 거죠 !!
저도 나무늘보님과 술 잔을 밤새 기울고 싶습니다 ! ~~

appletreeje 2013-07-02 16:3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책을 삥뜯고 넘 부끄런 줄도 모르고
뻬이뻐를 쓴 ㅃㅃ한 나무늘보,,^^;;;

<밤이 선생이다>. 정말 좋아요~
매혹의 지도도 좋은데, 시집이란 또 개개인의 취향일런지 몰라서요..^^

ㅎㅎㅎ 저도 드림님과 밤새 술 잔을 기울이고 싶어용~~ㅎㅎ

안녕미미앤 2013-07-03 16:53   좋아요 0 | URL
하하하 어딘가 귀여운 나무늘보님, 술 몸에 안 좋아요~~^^*
많이 드시진 마세요^^

appletreeje 2013-07-03 23:39   좋아요 0 | URL
ㅋㅋㅋ~
네~많이는 안 마실께요. ^^;;;
병아리 눈꼽만큼만 마실께요. ^^
안녕미미앤님! 좋은 밤 되세요~! :)

안녕미미앤 2013-07-04 00:38   좋아요 0 | URL
약속했습니다! *^^*
 

 

 

 

 

 

 

 

 

 올 여름도 꽤 덥겠다. 벌써 30도를 오르내리는 곳도 있다니 슬슬 여름 나기 준비를 해야겠다. 뒷방에 넣어둔 것들, 대나무 베개와 대나무 돗자리를 꺼내서 개울가에 나가서 잘 씻은 다음 햇볕에 바짝 말려놓고 죽부인도 꺼내서 깨끗이 손질해놓는다.

 해마다는 아니지만 단오 즈음에 부채를 구해다가 먹을 갈고 쓱쓱 붓질을 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시원한 여름 나시라고 나눠드리고는 했는데 작년에도 올해도 부채를 구하지 못해서 그냥 넘기고 말았다.

 뒷방 책장 위에 얹어 있는 부채를 꺼내들고 살펴본다. 가만 있자, 이건 단기 4340년(2007년)에 그린 부채구나. 더운 여름날, 앞마당에는 우리 집 지붕보다 키가 큰 파초가 그 큰 잎을 스르랑거리며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어제는 텃밭에서 막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붉은 갓을 뽑아 물김치를 담가서 물에 띄워두었다. 물김치가 익어가겠지. 국수를 삶아 시원한 갓물김치국수를 해 먹어야지.

 햇볕 쨍쨍거리는 날 파초의 푸른 그늘이나 뒤뜰 원두막에 앉아 무성하게 자라는 상추와 쑥갓을 뽑고 매운 고추 몇 개 따서 가끔은 식은 밥에 땀을 뻘벌 흘리며 쌈을 해 먹는 맛. 참 싱싱할 거야.

 낮잠이 오면 돗자리 위에 목침을 베고 누워서 뒤적뒤적 책갈피를 넘기며 부채를 살랑거리다가 깜빡 단잠에 빠지겠지. 밤이면 앞마당 평상에 모기장을 치고 밤하늘을 올려다 볼거야. 은하수의 밤하늘,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  (P.52~53 )

 

 

  책 읽다 낮잠 한 줌

 

 

 생감자를 갈아 넣어 만든 열무김치와 마당 한쪽에 쑥쑥 자란 머윗대를 끊어 껍질을 벗기고 뚝뚝 토막을 내어 된장국을 끓여 점심을 먹는다. 새콤하게 익은 열무김치와 머윗대의 쌉싸름한 맛이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게 한다.

 엊그제 습기때문에 아궁이에 불을 조금땠다. 방바닥이 아직 열기를 품고 있기는 하지만 고실고실해진 방바닥에 목침을 베고 누워 여름 피서용으로 머리맡에 두고 읽는 책들 중에서 <채근담>을 꺼내 펼친다.

 

 

     비 갠 뒤 산빛을 보면 경치가 문득 새로움을 깨닫게 되고, 밤

    고요할 때에 종소리 들으면 그 울림이 한결 맑고 높아라.

 

 

 문밖을 내다본다. 모처럼 비가 그친 하늘이 환하다. 뭉게구름 몇자락 목화솜 꽃처럼 피어오르며 한가롭게 흘러간다. 눅눅한 옷가지들과 밀린 빨래들이 빨랫줄을 타고 바람에 날리며 춤을 춘다.

 활개를 치며 몰려다니던 잠자리 떼들이 멋진 비행술을 뽐내다 힘이 드는지 그중 두어 마리 나무 울타리 끝에 앉는다. 키 큰 파초잎이 넓은 옷소매를 펼치며 너울거린다.

 

 

      산창서 하루 내내 책을 안고 잠을 자니

      돌솥엔 상기도 차 달인 내 남았구나

      주렴 밖 보슬보슬 빗소리 들리더니

      못 가득 연잎은 둥글둥글 푸르도다.

 

 

 조선 후기 문인이었던 서한순의 <우영>이라는 한시를 정민 선생이 번역한 것이다. <채근담>을 읽다 낮잠 한 숨을 자고 일어난다. 빨랫줄에 빨래가 다 말랐겠지. 뒤뜰 작은 연못엔 꽃 몇송이가 피어 있을까. 하얀 애기수련 세 송이 그리고 무리무리 노랑어리연꽃들에게 못마땅한 세상 일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한동안 수작을 건넨다.

 햇빛 냄새가 뽀송뽀송한 빨래를 개서 옷장에 넣고 점심을 먹고 달여 놓은 찻물을 홀짝거린다. 차는 집에 불쑥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도 내놓지만 평소에도 혼자서 자주 마신다.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수도로 연결해 쓰기 때문에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수시로 차를 달여서 식혀두고 마신다.

 

 

       마음이 쉬면 문득 달이 뜨고 바람이 부나니 사람 사는 데가 반드

      시 고해만은 아니다. 마음이 멀면 수레 먼지와 말발굽 소리가 절로

      없나니 어찌 산속을 그리워함이 병 될 것까지 있으리오.

 

 

 다시 <채근담>을 펼친다. 화들짝 놀란 듯 맴맴 참매미 소리가 개울물 소리에 실려 방안으로 뛰어든다. 서쪽으로 해가 많이 밀려갔다. 개울 쪽에 이사를 와서 심은 살구나무가 그늘로 제법 긴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의자를 하나 들고 살구나무 그늘로 가서 앉는다.

 "며칠 있으면 입춥니다. 말복도 남았고 더위도 아직 더 남아 있지만 으쌰으쌰 견디며 건넙시다. 가을이 머지않았습니다. 연락사항 남겨주시구요. 그럼 안녕. "

 나는 한동안 바꾸지 않았던 자동응답기에 새로운 녹음을 남겨놓는다.  (P.71~73 )

 

 

 

 

                                                   -박남준 산문집,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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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6-30 17:36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읽다가 낮잠 잤는데... ㅎㅎ 재미있는데, 날씨가 더워서인지 잠이 솔솔 오더라고요.^^

appletreeje 2013-06-30 23:08   좋아요 0 | URL
ㅎㅎ 오늘 정말 더웠어요. ^^
저도 보슬비님처럼 책 읽다 잠든 적이 종종 있어 이 글이 더욱 와 닿았다능...^^;;;

2013-06-30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30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6-30 20:49   좋아요 0 | URL
글 쓰는 사람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 누구나
시원하고 맑은 여름을
나무그늘에서 누리기를 빌어요.

그럼 모두 시인이 되겠지요.

appletreeje 2013-07-01 09:14   좋아요 0 | URL
예~정말 모든 분들이
나무그늘에서 시원하고 맑은 여름 되시기를 빌어요~^^

수이 2013-07-01 12:19   좋아요 0 | URL
낮잠 자고싶은 마음을 마구 들게 하는 글인데요 후훗.
시원하고 따뜻한 여름 보내세요 나무늘보님~ :)

appletreeje 2013-07-01 13:20   좋아요 0 | URL
ㅎㅎ 앤님께서도,
즐겁고 신나는 휴가 잘 다녀오세요~^^ :)

안녕미미앤 2013-07-01 17:03   좋아요 0 | URL
정말 낮잠 자고 싶어지네요^^;;
나무늘보님도 더운 날이지만, 시원한 하루 되세요~^^*

appletreeje 2013-07-02 09:35   좋아요 0 | URL
오늘은 비가 시원하게 오시네요~
안녕미미앤님께서도 행복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후애(厚愛) 2013-07-02 15:26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무척 읽어보고 싶네요.^^
담아가야겠어요~

appletreeje 2013-07-02 16:46   좋아요 0 | URL
예~잔잔하고 재밌어요. ^^
조금 있다가 이 책 보내드릴께요~

후애(厚愛) 2013-07-04 21: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너와 나의 국토대장정

 

 

 

 

                            모든 길은 확정적으로 주어졌다

                            깃발은 19세기식 수염을 휘날리면서

                            쁩쁘쁘 트럼펫을 부는 구름의 입술들

                            귓전에서 따갑게 손뼉 치는 가로수 가지들

                            사흘째부터 우리는 서로 말을 잃었다

                            사흘째부터 취침 시간에는 어머니 사랑해

                            소감문에 적어야 할 명단만 늘어났다

                            잘했어 이제부터 너희는 빛나는 청춘이야

                            이마에 도장을 꽝꽝 찍으며

                            아침부터 태양은 머리 위에서 홍알거렸고

 

                            이력서 한 줄처럼

                            각자의 땅만 내려다보고 묵묵히 걸어간 동안   (P.25 )

 

 

 

 

 

 

                            국지성

 

 

 

 

                              우리에게도 집중력은 있지만

                              우리에게 집중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만 집중되길 바란 건 아니었으나

                              우리의 공부와 무관한 곳에서 대학 건물은 올라가고

 

                              초고층 주상복합을 보고 온

                              할아버지는 역시 고성장 시대야, 너만은 키가 커라

                              소년의 다리를 자꾸 잡아 늘였습니다

                              관절의 부드러움을 위해

 

                              아파? 괜찮아 얘야, 노동은 유연성이라더구나

                              발라봐, 발라봐, 오일이란다, 쇼크는 없단다, 할배는 머니

                              라 부른단다, 할머니를 줄여 그리 불렀단다, 투자하면 돌아

                              오잖아, 너도 장차 여자를 만날 때는

 

                              할아버지, 제가 돋보기로 놀길 바랐셨나요

                              검은 종이를 태우는 건 재미있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벌레를 태워 죽이긴 싫어요

                              죄송합니다, 지금도 저는 매미를 못 잡습니다, 무능합니다

                              저를 벌레 보듯 하는

                              공터에는 돋보기를 쓴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하느님, 당신조차 이제는 시력이 나빠지셨습니까

                              골고루 비를 나누소서

                              당신이 든 태양은 돋보기처럼 말이 없다가

                              한쪽에선 폭염이,

                              한쪽에선 폭우가.  (P.26 )

 

 

 

 

 

 

                              부지깽이 소셜 클럽

 

 

 

 

 

                                누군가 엉덩이를 툭 치고

                                누군가 귀에 바람을 불어 넣고

                                벽에 붙어 당신은 후끈댔어

                                벽을 킁킁 쳐대며

                                불꽃처럼 당신은 아무 곳으로나 흩어졌다

 

                                영혼을 들쑤신 자 누구나

                                구식 사이키 조명에 따라

                                비보이의 엉키는 스텝에 따라

                                드라이아이스 연기에 갇혀버린지 오래

                                누가 단속이라고 외치면

                                모두 덜덜 얼어붙는 순간

                                당신은 혼자 잘 타는 숯덩이

                                당신 손목을 잡고 이리저리 테이블로 운반해줄께

 

                                - 다 같은 놈들인가요

                                신선한 이분을 찍어주세요, 부킹!

 

                                자정이 되면 당신의 주사는 시작된다

                                기호 1번 2번 또 몇 번을 달고

                                무대에 올라 당신은 고래고래 소리치지

                                사람들은 얼씨구나 춤추고

                                나는 먹다 버린 과일의

                                표면만 살짝 깎아 공약처럼 새 안주로 내놓고

 

                                자, 거짓말 같은 밤의 쇼가 끝나갑니다

                                집으로 돌아들 가세요

                                우리도 내일 장사를 준비해야지요

                                새벽에 야시장에서 사과 박스가 온답니다

                                안에 든 게 뭐냐구요? 제대로 안주를 달라구요?

                                어이 고릴라, 부지깽이 들고

                                이 손님 좀 저 끝방으로 모시고 가!  (P.50 )

 

 

 

 

 

                                                                -박강 詩集, <박카스 만세>-에서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박강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박카스 만세』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후 6년 만에 내놓는 첫 시집으로 표제작 「박카스 만세」를 비롯해 총 60편의 시를 담았다. ‘갑을사회'에서 '88만원 세대'로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비애를 현실적인 시어와 현장감 넘치는 이미지로 표현한 『박카스 만세』는 “모든 희망을 담지한 주체인 갑으로부터 국지성 혜택의 한계 조건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을로 바뀐 삶의 내력이 심리적으로 구조화되는 과정을 리얼한 관찰과 적실한 이미지”(조강석 문학평론가)로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박카스”, “우루사” 등 ‘피로 완화’를 연상시키는 언어들을 동원해 역으로 회복 불가능한 현대인들의 피곤함을 포착한 것이 눈여겨볼 만하다. 박강의 시 세계에서 이러한 피로를 유발하는 것은 계급적 좌절감이다. 시민에서 민중으로 올라갔다 서민으로 내려와 살아가는 서글픔을 드러낸 「위생의 제국」은 정치.사회적 주체인 시민이 역사.철학적 주체인 민중으로 고양되었다가 경제적 객체인 서민으로 전락한 것이 청년 세대가 느끼는 불안의 실체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서민들의 마음에 내재화된 심리적 강등의 구조물이 바로 박강의 시이지만, 한편 추락을 조롱하고 낭만을 응용함으로써 한 줌 희망을 삶에 적용하는 것 역시 박강의 시다. 절망을 소망으로 이겨내는‘을’들의 노래가 우리 시대의 피로를 어루만져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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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28 11:39   좋아요 0 | URL
서로서로 손잡고 이 나라 이 땅 두 발로 디디면 세상이 달라지겠지요...

appletreeje 2013-06-29 09:38   좋아요 0 | URL
예, '서로서로 손잡고' 이 땅을 함께 두 발로 걸어가다보면
세상이 달라지리라 희망합니다...

2013-06-28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9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