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도 꽤 덥겠다. 벌써 30도를 오르내리는 곳도 있다니 슬슬 여름 나기 준비를 해야겠다. 뒷방에 넣어둔 것들, 대나무 베개와 대나무 돗자리를 꺼내서 개울가에 나가서 잘 씻은 다음 햇볕에 바짝 말려놓고 죽부인도 꺼내서 깨끗이 손질해놓는다.

 해마다는 아니지만 단오 즈음에 부채를 구해다가 먹을 갈고 쓱쓱 붓질을 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시원한 여름 나시라고 나눠드리고는 했는데 작년에도 올해도 부채를 구하지 못해서 그냥 넘기고 말았다.

 뒷방 책장 위에 얹어 있는 부채를 꺼내들고 살펴본다. 가만 있자, 이건 단기 4340년(2007년)에 그린 부채구나. 더운 여름날, 앞마당에는 우리 집 지붕보다 키가 큰 파초가 그 큰 잎을 스르랑거리며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어제는 텃밭에서 막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붉은 갓을 뽑아 물김치를 담가서 물에 띄워두었다. 물김치가 익어가겠지. 국수를 삶아 시원한 갓물김치국수를 해 먹어야지.

 햇볕 쨍쨍거리는 날 파초의 푸른 그늘이나 뒤뜰 원두막에 앉아 무성하게 자라는 상추와 쑥갓을 뽑고 매운 고추 몇 개 따서 가끔은 식은 밥에 땀을 뻘벌 흘리며 쌈을 해 먹는 맛. 참 싱싱할 거야.

 낮잠이 오면 돗자리 위에 목침을 베고 누워서 뒤적뒤적 책갈피를 넘기며 부채를 살랑거리다가 깜빡 단잠에 빠지겠지. 밤이면 앞마당 평상에 모기장을 치고 밤하늘을 올려다 볼거야. 은하수의 밤하늘,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  (P.52~53 )

 

 

  책 읽다 낮잠 한 줌

 

 

 생감자를 갈아 넣어 만든 열무김치와 마당 한쪽에 쑥쑥 자란 머윗대를 끊어 껍질을 벗기고 뚝뚝 토막을 내어 된장국을 끓여 점심을 먹는다. 새콤하게 익은 열무김치와 머윗대의 쌉싸름한 맛이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게 한다.

 엊그제 습기때문에 아궁이에 불을 조금땠다. 방바닥이 아직 열기를 품고 있기는 하지만 고실고실해진 방바닥에 목침을 베고 누워 여름 피서용으로 머리맡에 두고 읽는 책들 중에서 <채근담>을 꺼내 펼친다.

 

 

     비 갠 뒤 산빛을 보면 경치가 문득 새로움을 깨닫게 되고, 밤

    고요할 때에 종소리 들으면 그 울림이 한결 맑고 높아라.

 

 

 문밖을 내다본다. 모처럼 비가 그친 하늘이 환하다. 뭉게구름 몇자락 목화솜 꽃처럼 피어오르며 한가롭게 흘러간다. 눅눅한 옷가지들과 밀린 빨래들이 빨랫줄을 타고 바람에 날리며 춤을 춘다.

 활개를 치며 몰려다니던 잠자리 떼들이 멋진 비행술을 뽐내다 힘이 드는지 그중 두어 마리 나무 울타리 끝에 앉는다. 키 큰 파초잎이 넓은 옷소매를 펼치며 너울거린다.

 

 

      산창서 하루 내내 책을 안고 잠을 자니

      돌솥엔 상기도 차 달인 내 남았구나

      주렴 밖 보슬보슬 빗소리 들리더니

      못 가득 연잎은 둥글둥글 푸르도다.

 

 

 조선 후기 문인이었던 서한순의 <우영>이라는 한시를 정민 선생이 번역한 것이다. <채근담>을 읽다 낮잠 한 숨을 자고 일어난다. 빨랫줄에 빨래가 다 말랐겠지. 뒤뜰 작은 연못엔 꽃 몇송이가 피어 있을까. 하얀 애기수련 세 송이 그리고 무리무리 노랑어리연꽃들에게 못마땅한 세상 일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한동안 수작을 건넨다.

 햇빛 냄새가 뽀송뽀송한 빨래를 개서 옷장에 넣고 점심을 먹고 달여 놓은 찻물을 홀짝거린다. 차는 집에 불쑥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도 내놓지만 평소에도 혼자서 자주 마신다.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수도로 연결해 쓰기 때문에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수시로 차를 달여서 식혀두고 마신다.

 

 

       마음이 쉬면 문득 달이 뜨고 바람이 부나니 사람 사는 데가 반드

      시 고해만은 아니다. 마음이 멀면 수레 먼지와 말발굽 소리가 절로

      없나니 어찌 산속을 그리워함이 병 될 것까지 있으리오.

 

 

 다시 <채근담>을 펼친다. 화들짝 놀란 듯 맴맴 참매미 소리가 개울물 소리에 실려 방안으로 뛰어든다. 서쪽으로 해가 많이 밀려갔다. 개울 쪽에 이사를 와서 심은 살구나무가 그늘로 제법 긴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의자를 하나 들고 살구나무 그늘로 가서 앉는다.

 "며칠 있으면 입춥니다. 말복도 남았고 더위도 아직 더 남아 있지만 으쌰으쌰 견디며 건넙시다. 가을이 머지않았습니다. 연락사항 남겨주시구요. 그럼 안녕. "

 나는 한동안 바꾸지 않았던 자동응답기에 새로운 녹음을 남겨놓는다.  (P.71~73 )

 

 

 

 

                                                   -박남준 산문집,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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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6-30 17:36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읽다가 낮잠 잤는데... ㅎㅎ 재미있는데, 날씨가 더워서인지 잠이 솔솔 오더라고요.^^

appletreeje 2013-06-30 23:08   좋아요 0 | URL
ㅎㅎ 오늘 정말 더웠어요. ^^
저도 보슬비님처럼 책 읽다 잠든 적이 종종 있어 이 글이 더욱 와 닿았다능...^^;;;

2013-06-30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30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3-06-30 20:49   좋아요 0 | URL
글 쓰는 사람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 누구나
시원하고 맑은 여름을
나무그늘에서 누리기를 빌어요.

그럼 모두 시인이 되겠지요.

appletreeje 2013-07-01 09:14   좋아요 0 | URL
예~정말 모든 분들이
나무그늘에서 시원하고 맑은 여름 되시기를 빌어요~^^

수이 2013-07-01 12:19   좋아요 0 | URL
낮잠 자고싶은 마음을 마구 들게 하는 글인데요 후훗.
시원하고 따뜻한 여름 보내세요 나무늘보님~ :)

appletreeje 2013-07-01 13:20   좋아요 0 | URL
ㅎㅎ 앤님께서도,
즐겁고 신나는 휴가 잘 다녀오세요~^^ :)

안녕미미앤 2013-07-01 17:03   좋아요 0 | URL
정말 낮잠 자고 싶어지네요^^;;
나무늘보님도 더운 날이지만, 시원한 하루 되세요~^^*

appletreeje 2013-07-02 09:35   좋아요 0 | URL
오늘은 비가 시원하게 오시네요~
안녕미미앤님께서도 행복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후애(厚愛) 2013-07-02 15:26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무척 읽어보고 싶네요.^^
담아가야겠어요~

appletreeje 2013-07-02 16:46   좋아요 0 | URL
예~잔잔하고 재밌어요. ^^
조금 있다가 이 책 보내드릴께요~

후애(厚愛) 2013-07-04 21: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