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밥 한 공기와 그저께 끓인 감잣국, 멸치볶음과 김치에 도시락용 김을 곁들인 간소한 식사엿다. 습관적으로 켜둔 스마트폰의 FM라디오 애플리케이션에서 그 소식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털구름이 걸린 자리는 공기가 희박할 것 같았다. 아닐지도 모른다. 안에서 밖의 세계에 대하여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잣국 국물을 개수대에 따라 버리고 남은 찌꺼기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쏟아부었다. 침묵 속에서 세제 거품을 많이 내어 천천히 설거지를 했다.
집을 나서면서 썬글라스를 쓰는 것은 비 오는 날이나 눈 내리는 날이나 변함없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다. 진갈색 렌즈 너머의 거리 는 침침하고 적막했다. 나는 털목도리를 칭칭 감고서 정직한 보폭으로 걸었다. 건조하고 쌀쌀한 날씨였다. 나는 정면만 바라보며 걸어갔다. 아무데도 두리번거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요새는 가끔 내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용히 닳아가는 것.
도봉산행 7호선 전철은 오후 1시 39분에 도착했다. 어제보다 2분 느렸다. 빈자리에 앉는 동시에 눈을 감았다. 곧 노원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지하철로 오가는 동안 신문이나 책을 보는 것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한 학습교재를 제외하곤 나는 신문도 책도 안 본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뇌 속에 새로운 것을 단 한톨도 집어넣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퍼내고 또 퍼내고 싶다. 쩍쩍 갈라진 밑바닥이 다 드러날 때까지.
돌이켜보면 지난 삶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받는 과정이었다. 비효율적인 인생이다. 절망스럽지는 않다. 대부분의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세상에는 기어이 무엇인가가 되고자 안간힘 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구 위의 모든 산 이름을 외우거나 스와힐리어 공부를 하거나 꿀벌을 치거나 인공수정을 하거나 시를 쓰거나. 그래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열아홉살 이후 나는 생에 대해 어떤 기대도 품지 않아왔다. 그때의 나는 가끔이라도 꿈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나면 찬물로 오래 세수를 하고 이를 닦는다. 텅빈 위장에 뜨거운 인스턴트커피를 들이부으면서,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안도한다.
일층엔 편의점과 헤어숍, 치킨집, 안경원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이층엔 교회와 피시방이 나란히 들어선 오래된 건물이 일년째 내가 출근하는 곳이다. 나는 삼층으로 오르는 계단참에서 썬글라스를 벗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하버드보습학원의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후덥지근한 기운이 이마에 훅 끼쳐왔다.
책상 위에 놓인 시간표를 확인했다. 오늘도 다섯시간이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아이들을 앉혀놓고 하루 네시간이나 다섯시간씩 강의를 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만큼을 내리 떠들다보면 말하기 전에 뇌에서 한 번 거르는 과정이 자동으로 생략되어버리곤 했다. 그 순간만이 나를 견딜 수 있게 했다. 아직도 뱉어지지 못한 말들이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영원히 뱉을 수 없을 말들을 혀끝으로 짓이겼다.
"사회쌤, 일찍 오셨네."
부원장이자 중등부 국어강사인 김이 턱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제가 몇 살 위라는 걸 알고부터 은근슬쩍 존대어미를 잘라먹는 사내였다.
"좀 전에 이상한 전화 왔었는데."
"네?"
"왠 여자가, 이지혜씨좀 바꿔달라는 거야. 처음엔 학부모인 줄 알았지. 안 계시다고 했더니 전화번호를 묻데? 개인 연락처는 알려드리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했더니, 쌤이 혹시 78년생 맞는지 확인해달래."
"그래서요?"
"아마 그럴 거라고 했지. 그랬더니 머뭇대다가 또 묻더라고. 혹시 집이 반포 아니냐고. 사회쌤 집이 그쪽 아니잖아. 그치?"
"네."
"낌새가 좀 이상해서 잘 모르겠다고 하고 끊었어."
몇초간, 눈앞의 풍경이 노랗게 탈색되어 멈춰버린 것 같았다. (P.7~10 ) / 프롤로그.
-정이현 장편소설, <안녕, 내 모든 것>-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