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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재 하늘 1
권정생 지음 / 지식산업사 / 1998년 11월
평점 :
리뷰 쓰기에 앞서 나는, 이 소설을 나에게 추천해 주신 chika님께 백만번, 천만번 감사를 드린다.
나의 할배, 함매가 1930년대에 왜 그리운 고향을 “내던지고” 눈물 흘리면서 일본에 건너 오셨던가를, 많이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으셨던 할배, 함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을, 내 나이 40이 되어서 겨우 이 소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19세기 말의 경상도 안동 산밭골에서 시작한다.
시작하자 마자 매우 많은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누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지 살폈던데, 얼마 없이,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란 “개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분들네와 조석 부부, 그 아이들 깨금이, 장득, 강생이, 말숙이, 재득, 수득. 또 그 아이들.
남편 길수를 잃은 복남이와 아들 서억. 서억의 아내 영분이.
과부 정원이와 그 아이들 이석이, 이순이, 이금이, 정원이의 친정어머니 수동댁. 이석이 아내 달옥이.
귀돌이와 분옥이 자매. 문둥병이 된 분옥이를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살펴 준 동준이.
분들네 동생 기태와 아내 실겅이, 그 아이들 후분이, 춘분이들.
모두 가난한 농민이고 머슴들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사람마다 원한이 있고 억울한 사연이 있고 가끔 평범한 행복도 있었다.
이 소설은, 아무리 원한이 많아도, 아무리 고통이 앞을 가로막아도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 단순하고도 숭고한 명제를 읽은이의 마음 깊은 곳에 호소해 마지 않는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 한 명 한 명은 가늘고 긴 줄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가늘한 줄기들이 모여들고 마주 잡고 서로 얽혀, 튼튼하고 무성하고 아름다운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삶이라는 걸 나는 새삼스럽게 느꼈다.
지금도 이순이가 일본으로 떠날 직전에 외친 “어매애!” 소리와 분옥이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부르던 “싱야…싱야…” 소리가 나의 귓가에 들려 눈물을 고이게 한다.
마침 그 목소리는 이국 일본에서 돌아가신 나의 함매의 목소리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