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라딘 회원이 되어서 처음 읽었던 소설 "화두 1 "의 한 장면에 이런 문장이 실려 있었다.
"... 차림표를 보면서 저마다 시켰다. 신선로를 시키고 갈비탕, 볶음밥, 냉면을 시켰다. "

윗장면은 어느 음식점에 간 사람들이 제각기 음식을 주문한다는 장면.

이 문장을 본 첫 순간 나는 매우 당황하였다.
"시키다" ?  내가 아는 한 "시키다"는 "(남에게 어떤 행위를) 하도록 한다, 지시한다" 그런 뜻이라고 생각해 왔다.  
내가 윗장면에서 당황한 이유는, 일본에선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할 경우, 일반적으로 "させる(사세르)=시키다"가 아니라 그저 "注文する(츄-몽 스르)=주문하다" 혹은 더 일반적으론 "賴む(타노므)=부탁한다" 라고 흔히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잘 생각해 보면, 손님이 음식점에 가서 종업원에게 "부탁한다"는 것은 이상할지도 모른다, 고도 느껴졌다.
"부탁"해야 하는이는 오히려 종업원측이 아니겠는가?
"더 많이 잡수세요, 더 많이 주문해주세요"
"자주 들러 주십시오"

그런데 일본 음식점에서 흔히 볼수 있는 손님과 종업원의 해화는 아래와 같다.
(손님,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종업원이 오지 않다)
손님A     : "すみません(스미마셍)"  = 미안합니다,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갑자기 용서를 빈다
종업원 : "はい、すみません(하이, 스미마셍)" =  네, 미안합니다, 역시 이 종업원도 잘못은 없는데 갑자기 용서를 빈다.
손님A    : "コーヒー二杯ください(코-히- 니하이 크다사이)"  =  커피 두잔 주십시오.
손님B   : "ケーキも賴もうか(케-키모 타노모-카)" = 케이크도 부탁할까
손님A   : "あ, すみません, ケーキも二つ(아, 스미마셍, 케이키모 흐타쯔)" = 아, 미안합니다. 케이크도 두개. ---> 많이 주문하는 것이니까, 죄스러워 할 필요는 없고 용서를 빌 필요도 없을 텐데...

일본인은, 남의 행동을 중지시키고나 남을 불러내는 것을 이상할 정도로 죄스럽게 생각하는 국민이다.
자기가 손님인데도 말이다.
남이 화 내면 어떻게 할까, 이런 것이 두려운가 보다.
... 그런데 이런 개인들이 어떤 집단이 되면....
일본인은 한 개인으로서는 매우 상냥해서 정중하며 온화한 사람들이 많은데 반면에 자기의 속심을 표면에 내지 않는 탓인지 집단이 되면 그 집단의 방침(그것도 결국은 한 개인의 의지이겠지만)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 "시키다"란 말, 일본인들에게도 잘 설명해 주고 싶다.
여러분들도 음식점에 갔을 적에는 원하고나, 부탁하지 말고 손님으로서 당당하게 "시킵시오". 그래야 마음속에 있는 울적한 감정은 처음부터 사라질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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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05-0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으로서의 일본인과 집단으로서의 일본인. 종종 저를 당황케하는 모순을 잘 집어주셨네요. 잘 읽고 갑니다.

ChinPei 2005-05-0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안녕하세요.
위에서 제가 말한 것은 일본인의 성격의 한 측면이라고 이해해주시길.
한마디로 말할 수있을 정도로 단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ㅇ^

BRINY 2005-05-0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국민성이니 민족성이니하고 한마디로 말은 하지만, 그 안에 포함되어져 있을 수천만, 수억의 개개인들을 생각하면 말이죠.

조선인 2005-05-0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말머리마다 사과하려면 힘들겠네요. 참 재미난 지적입니다.

ChinPei 2005-05-02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사과해놓으면 화 내지 않겠지, 그런 발상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