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이 세상 광활한 대지가 모두 내 것인 줄 알았다
모든 자유를 훑고 나면 그렇게 나를 찾으리라 믿었다
아름다운 낭만 속에 사랑이 꽃피울 것을 믿었고
그로 인해 맺을 열매로 펼쳐질 삶이 늘 풍요로울 것을 믿었다
이젠 그 모두가 내 것이 아님을 안다
내가 속할 수 있는 부분이 극히 적음도 알고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늘 현실에 묶여 있음도 안다
아름다운 사랑의 낭만이 현실의 책임으로 대치된 것도
꿈꾸던 이상이 현실이라는 좁은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도 깨닫는다
새털처럼 가볍고 넓었던 꿈들은
세월을 입으면 현실처럼 무겁고 축축해진다
인생의 호리병 속엔 부피 가벼운 이상보다는
밀도 높게 압축된 현실만 담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피라미드 아래서부터 정수리를 향해 올라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오르면 오를수록 영역은 좁아지지만
그것이 삶의 두께를 더해가는 일인 것처럼
최고의 두께를 지니게 될 그때
나는 한 점이 될 것이다
버리고 깎아야 오를 수 있는 정상은
오로지 발 한 짝 디딜 공간도 없는 無의 지점이면서
가장 큰 깨달음의 순간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아우르고 깨닫는 그 순간을 위해
난 두께를 더하며 오를 뿐이다
無를 향하여
한 점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