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난하고 나약한 환자를 온몸으로 감싸안았던 의사, 장기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시기를 논할 것이 못된다. 항상 고민해야 하는 평생의 숙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그리 많지 않고, 그 답에 대해서도 내 처지와 형편에 따라 다르기만 하다. 늘 '훌륭한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만 가질 뿐, 그에 다가가기는 마음과 몸이 엇갈리는 나를 발견하는데 참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 내게는 자신의 소신껏 평생을 살다 간 사람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부러운 이야기다. 마지막 숨을 다하는 그 순간 '후회없이 살았노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삶일까? 게다가 제 혼자만 잘 살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살다 갔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삶은 없으리라. 제 몸 추스리기에 바빠 아둥바둥 살아가는 인생이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 한 권의 책을 만났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아픈 이들과 함께 하며 살다 간 아름다운 의사 장기려의 생을 손홍규씨의 손을 빌어 쓴 책 [청년의사 장기려]이다. 
  
  
나는 아픈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아프면 더 힘들다.
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다.
 
  1935년 그의 나이 스물 다섯에 스승없이 자기 생애 첫 수술을 집도한 장면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아름다운 청년의사 장기려'의 생을 소설로 만든 책이다. 일제시대의 학생시절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식산殖産 즉, 산업을 부흥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물리치고, 사람 살리는 일에 뜻을 둔다. 의사가 되어 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노라 맹세하게 된다. 선생은 1932년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당시 국내 최고의 외과의사였던 백인제(백병원 설립자) 선생의 수제자로 경성의전 외과에 근무를 시작해 평양 연합기독(기흘)병원에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해방후 평양도립병원장과 평양의과대학(김일성대학) 외과교수로 재직하면서 일제시대와 해방, 분단과 한국전의 개시까지 우리 역사의 질곡의 순간을 그대로 겪으며 환자를 치료하게 된다.  
 
 





둘째 아들 가용(張家鏞·전 서울대 해부학과 교수)씨만 데리고 우역곡절 끝에 월남하면서 그의 제2의 인생은 시작됐다. 한국전쟁은 그에게 가족과의 생이별이라는 아픔을 안겨주었지만 평생을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며 참의사의 길을 걷게 만든 동기가 되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두고 온 가장의 슬픔을 승화시켜 병약하고 가난한 환자의 가족을 제 가족을 보듯 돌보고, 그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게 된다. 선생은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한평생 절개를 지키며 45년을 홀로 살았다. 늘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그 사진을 보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 했다. 선생을 아는 이들은 그에게 자꾸 재혼하기를 권유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북에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어찌 그 기다림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평양에서 결혼할 때 주례하시던 목사님이 우리 부부를 앞에 세워놓고 백년해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재혼하는 것은 100년 뒤에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의 삶에 버팀목이 되었던 것은 하나는 신앙심(기독교적 가치관), 다른 하나는 분단과 함께 생이별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었다. 특히 그는 가장 없이 힘들게 지낼 가족들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저렸고, 그래서 병원에 오는 어려운 환자들을 보면 모두 가족 같이 여겼다. 선생 자신이 그 환자들을 잘 돌보면 누군가 자신의 가족도 잘 돌보아 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생까지 "늙어서 별로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 다소 기쁨이기는 하나 죽었을 때 물레밖에 안 남겼다는 간디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가진 것이 너무 많다"며 겸손해 했던 무사무욕의 삶을 실천한 사람이었고,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 최고의 외과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집 한 채는커녕 통장에 달랑 천만 원을 남겨 놓았고, 그마저도 간병인에게 줘 버리고 빈손으로 떠나갔던 사람이었다.
 
 


 

"왜 아픈 사람을 일컬어 환자患者라고 하는지 아나? 환患은 꿰맬 관串자와 마음 심心자로 이루어져 있다네. 다시 말해 환자란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치유하기 쉽지만 마음에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네. 자네가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환자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하네." (P406)
 
  수많은 의사들의 집무실에 그의 액자가 걸려 있을 만큼 그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모범이 되고 있고, 한국의 슈바이쳐, 푸른 십자가, 성인聖人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을 만큼 그가 생에 보여왔던 행적은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신앙심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환자들에게 옮겨졌고, '가난하고 병들어 의사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한 번 더 진료를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떠나갔다. 그가 추앙받는 이유는 바로 의술업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공평히 보고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진정한 의사의 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의사로서의 고뇌와 질곡 많은 삶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소설로 표현되어 장기려 선생의 삶을 더욱 가까이서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의사로서 나아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아파하는 모든 것들은 어쩌면 한낱 미망未忘의 찌꺼기들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시간의 흐름에 맡기며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행동하는 사랑, 실천하는 지식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살았던 이 땅에도 이토록 훌륭한 의사가 존재했다는데 행복하고 감사했다. 나 또한 당장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인지를 몸소 가르쳐준 그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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