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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ㅣ 여형사 유키히라 나츠미의 두뇌게임 시리즈 1
하타 타케히코 지음, 김경인 옮김 / 엠블라(북스토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한 권으로 어제의 무더운 '열대야'를 잊을 수 있었다 !
예년 같으면 매일 찬물로 샤워 후 각빙이 생기기 전까지 얼려 놓은 캔맥주를 '치이익~' 따서는 목구멍으로 넘기는 맛으로 여름밤을 보냈겠지만, 한 캔이 두 캔되고, 두 캔이 세 캔되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술이 술을 부르는 상황도 마득찮았거니와 마시는 만큼 불룩 불룩 솟아나는 뱃살때문에 더욱 힘든 여름을 보낸 것 같아 그만둔 터. 올해는 지금과는 전혀 반대의 방법을 쓰고 있다. 이열치열로 오밤중에 워킹과 조깅으로 땀을 빼고, 미지근한 온수로 샤워를 한 후 마무리는 냉수로 뒤집어쓰고 나온다. 시원한 냉녹차 한 잔에, 개량된 삼베모시 옷을 입고, 선풍기는 자연풍으로 맞추고, 스토리있는 소설 한 권으로 오늘밤과 싸울 채비는 끝. 이주일째 즐기는 중인데 그 맛이 쏠쏠하다.
'허가받은 거짓말'이라 불리는 소설은 원래부터 읽지 않던 터라 몰랐는데, 뭘 모르고 내린 판단이었다. 300여 페이지 남짓되는 소설 한 권을 두 세시간 몰두해서 읽고 나면 영화의 그것보다 더 풍성한 듯 가슴과 머리에 남아있고, 글맛있는 작가를 만나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무엇보다 잠못드는 여름밤을 보내는 여흥으로 충분히 즐길만 했다. 물론 오쿠다 히데오의 최근작 '최악'같은 책을 만날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600여 페이지의 베고 잘만 한 두께에 내용은 박진감와 스피드감이 넘쳐서 첫 장을 펼치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으니...잠을 자려고 폈다가 밤을 하얗게 새서는 그 다음날 업무를 그야말로 '최악'으로 만들었던 기억도 있기는 하다('최악'은 올여름에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 단 주말이나 휴가때 보시길 적극 권장한다) 여름밤 소설읽기는 어제밤에도 계속되었는데, 어제 만난 녀석(소설)도 재미면에서 대단한 강적이었다. 하타 다케히코 秦 建日子 의 추리소설 推理小説 을 읽었다.
< 한국판 책 표지와, 저자 하타 타케히코, 일본판 추리소설의 표지>
일드(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중 형사물을 좋아한다면 잘된 작품 다섯 손가락안에 꼭 드는 일드로 시노하라 료코 가 여형사를 맡은 작품 [언페어 Unfair]를 드는데, 스페셜드라마(일본에서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해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의 경우, 여름 혹은 겨울 특집으로 두 시간짜리 스페셜작품을 만든다. 즉 스페셜 드라마가 제작된 작품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난하다)로 제작되기까지 한 이 드라마의 원작이 된 소설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추리소설]이라는 작품이다. 이런 저런 화려한 수식어에 이미 회는 동한 상태. 주저없이 읽기를 시작했다.
<일드 언페어의 한장면>
시체 수를 몇 개로 할까? 먼저 그것부터 생각하자.
처음에는 두개. 이것은 확정. 이 두 시체가 없으면 이야기가 안된다.
그리고 다음에 또 하나. 문제는 이때부터다.
네번째 시체에는 일종의 '장치'가 필요하다.
다섯 번째 시체도 마찬가지.
가능하다면 네 개로 끝내고 싶지만,
여기서부터는 상대가 있는 이야기라서,
이쪽 사정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
네 개, 다섯 개, 아니....최악의 경우 여섯 개의
시체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책을 펼치면서 죽은 사람을 말하는 시체의 수를 '개個'로 이야기하는 범인의 생각에서부터 섬뜩함이 뭍어났다. '범상치 않은 사이코패스같다'는 것이 범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범행수법 또한 기가 막힌다. 비오는 어느 날 밤, 공원에서 서로 관련 없는 두 사람이 살해 당한다. 다음날 현장에 수사관들이 급파되고 수사를 진행하던 중 세 번째 희생자가 나타난다. 용의자들이 수사선상에 오르던 중 사건을 맡은 경찰서와 각 출판사에 한 권의 원고봉투가 도착한다. '추리소설 상권 재중在中' 이라 쓰여진 봉투 속의 원고는 세 명의 피살자에 대한 살해현장이 눈에 보이는 듯 피의자(살인자)의 시점으로본 소설형식으로 소설이 쓰여져 있다.
한편 범인과 관련이 있는 듯한 미모의 여인 가스야 리에코에게는 T.H.라는 이름으로 희생자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의문의 휴대폰메일이 도착한다. "내일, 두 생명을 거두기 위해 내 재능은 부활한다."와 "오늘 밤에 세 번째. 사랑하는 네 눈앞에서." 범인은 소설을 통해 다음 희생자의 살인사건을 미리 예시하면서 출판사가 자신의 판권을 최소 3천만엔(한화 3억원 가량)부터 입찰을 할 것을 지시한다. 이어 네 번째 희생자의 죽음 또한 소설에 쓰여져 있고,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사건은 용의자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그 범위를 좁혀간다. 희생자의 주변에 있던 책갈피 "불공정한 것은 무엇인가?" 가 의미하는 의문에 대한 답도 점점 좁혀져 가며 용의자 또한 최종 한 명으로 지목되어 간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추리소설같은 미스터리 형사물을 통해 공정과 불공정 즉, 세상에 페어Fair 한 것은 무엇이고 언페어Unfair 것은 진정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누가 말할 수 있는지에 리얼리티와 독창성을 요구하는 출판사와 베스트셀러의 대필업자, 정의를 심판하는 자들의 고민과 갈등 등을 함께 묶어 교묘하게 실어내 눈을 사로잡아 좀처럼 놓질 않았다. 특히 '소설을 통한 예고살인'이라는 독특한 살인방식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독특한 내면을 가진 검거율 1위의 여형사 유키하라의 캐릭터도 흥미롭고, 순진하기만 한 신참내기 형사 안도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역이다.
짧기만 한 서술형식은 긴장감을 더하고, 스피디한 전개와 간결한 설명은 몰입도를 높였다. 예상할 수 있었지만 설마하는 반전은 뒤통수를 치기 충분했고,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에게 담겨있던 짧은 러브스토리도 인상적이었다. 소설을 리뷰로 말하기란, 특히 스릴러물이나 추리소설의 리뷰를 담기란 정말 힘들다. 영화관을 나오며 표를 구하려고 길게 늘어선 관객의 줄에 대고 "범인은 OOO였다" 큰소리로 말하는 '못된 놈'이 되고픈 충동도 생기고, 거짓으로 범인을 말해줘 독자들을 속이고도 싶어진다. 마치 범인이 세상에 추리소설을 쓰면서 느꼈던 '나는 범인을 알지롱~'하는 한 단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희열도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이 맞다. 이 책 한 권에 어제의 무더운 '열대야'를 잊을 수 있었다. 스피디한 전개의 영화나 드라마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놓쳐서는 안될 완소작품이다.
P.S. 일드 [언페어]를 찾아 1편을 봤다. 열 편 모두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안보면 후회할 것 같다. 내 상상 속에서 있었던 미인 여형사 유키하라를 드라마에서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재미있다, 역시. 주말에 몰아서 봐야겠다.
<영화로도 제작된 언페어의 극장판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