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문 -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 최고의 젊은 작가 한한 대표작
한한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한,일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글맛'의 중국소설.
 
 
일본소설이 국내 서점가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발군의 힘을 발휘하는 우리 작가의 소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장소설'로 주류를 잡고 있는 요즈음 '뭐 특별한 소설은 없을까?' 시선을 돌린 건 톡 쏘는 맛이 없는 밍밍하다 못해 느끼한 일본음식에 물린 사람이 다른 음식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먹자골목 여기 저기를 둘러보다 들어간 곳, 중국집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특별한 음식, 아니 소설을 만났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작가 한한韓寒의 이력.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차세대 작가군을 일컫는 '80후後'의 대표적인 작가로 놀라운 글솜씨 못지 않게 영화배우를 뺨치는 수려한 외모, 그리고 2006년 2억 6천만 위안이라고 하는 엄청난 인세수입으로 <포브스>지 유명인 명단에도 오른 젊은 작가가 쓴 소설이다. 베이징 외곽의 한 중학교 3학년생 린위샹林雨翔 의 학창시절을 이야기한 성장소설(일부러 피해서 고른 책 또한 성장소설이다. 트렌드는 트렌드인가 보다) [삼중문三重門] 이다.
 
 





이제껏 중국소설을 접한 적은 많지 않지만 김용의 웅장고 스펙터클한 서사적 소설과 문화혁명 전후 그리고 공산체제내에서의 소시민들의 애환를 그린 작품들이 내가 알고 있는 중국소설의 주류였다면, 이 소설은 보수주의적 교육으로 첨철된 한 학생이 바라보는 현대의 중국과 중국교육을 꼬집는 청춘소설이다.  실제로 저자 한한韓寒은 중국 교육문제를 비판하는 글을 주로 썼다가 유급처리를 당하는가 하면,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중국 교육계의 부패와 입시위주의 틀에 박힌 교육에 회의를 품고 학교를 자퇴한 터라 그가 갖는 중국 교육계에 대한 불만을 글 속에 녹여 여과없이 내보냈다. 
  

      
  중국고전책을 목숨같이 사랑하는 아버지. 그래서 자식이라고는 하나 밖에 아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고전만을 고집하며 가르쳤다. 중재를 해야 할 어머니는 자식보다 마작이 우선이다. 용하게도 아버지가 권한 고전에 재미를 붙여 수박겉핥기식으로나마 섭렵한 아들 린위샹은 어려서부터 한학의 천재로 소문나고, 고전으로부터 베끼다시피한 그의 글들은 '천재적 작가의 소질을 타고난 아이'로 불리운다. 자비로 200권의 책을 내어 '문학가'행세를 하는 마더바오는 우연한 기회에 중학교의 문학선생으로 취업을 하고, 그 학교의 문학도 주인공 린위샹을 만나 환상적인 결합을 하게 된다. 마더바오의 권유에 의해 작품을 응모하게 된 전국 중학생글짓기대회에서 1위로 입상하면서 위샹은 교내에서 독야청청하게 되고, 같은 문학반 여학생 선시얼의 친구 수잔을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베이징 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체육특기생으로 들어갔지만, 재력으로보나 실력으로보나 뛰어난 동급생 치엔룽을 만나면서 좌절을 느낀다. 영원할 줄 알았던 수잔과의 사랑은 흔들리고, 치엔룽과의 맞대결은 번번이 패배를 하고, 급기야 어렵게 얻어낸 문학반의 대표에서도 물러나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되는 등의 불행의 연속으로 린위샹은 생애 최고의 고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간단하게 보면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엇비슷한 스토리의 성장통을 겪는 주인공의 학원소설같지만, 이 소설은 '이것이 현대중국문학이야'라고 차별화를 선언하는 듯 하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허세 그리고 위선어린 대사들은 중국고전의 그것들보다 오히려 더 과장되었다. 특히 문장구사에 있어서 '마치~ 하는 듯'한 직유적 비유가 유독 눈에 띄는데, 자연스럽게 읽히는 맛은 다소 떨어지지만, 적절한 묘사와 딱 들어맞는 표현은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고전의 싯구를 빌어 연애를 걸거나 편지를 쓰고, 앎의 정도를 표현하는 그들에게서 순수함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20대 중반의 작가의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책 속에 인용되는 수많은 책이야기와 명언들은 놀랄만큼 방대해서 오히려 저자가 능글맞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느냐? 유쾌하고 재미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을 하나 둘 알아가는 순진한 소년의 시선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작가 한한의 표현력은 정말 재미있다. 예를 들어보자. 주인공 린위샹이 수잔을 만난 후의 소감을 '미인은 경치 같아서 귀로 들으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지만 직접 보고 나서도 정말 아름다우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눈이 가장 먼저 먼다고 하더니 위샹은 귀까지 멀어버렸다' 로 표현하는가 하면, 비를 피해 숨은 처마밑에서 젊고 예쁜 애인을 둔 중년의 아저씨를 표현하면서 '그 남자 나이는 짐작하건대 아마도 베이징 대학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듯했는데, 마음은 늙지 않았는지 수시로 자기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댔다. 안타깝게도 몇 가닥 담지 않은 머리카락은 빗질할 게 없어 그저 이리저리 문질러대고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과외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비싼 교습비(과외비)는 정말 대단해서 한 시간에 몇 십 위안하는 기녀 팁과도 같았다. 돈을 번다는 행위는 같았지만 교사들은 기녀들보다 더 고약하다. 그녀들은 상대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며 돈을 벌지만 교사드은 상대방에게 고통을 안기며 보란 듯이 돈을 버니 이것이 바로 위대한 고문 아닌가'라며 비웃는다.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그의 표현과 대사들은 능글맞기까지 해서 독자들도 연신 능글맞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지금껏 읽은 소설들과는 확실히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뿌리깊게 박혀 있는 '꽌시(관계)'와 부정부패 그리고 부조리한 중국교육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 젊은 작가 한한의 글들이 젊은이들과 식자들 사이에서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를 알 듯 했다. 중국고전의 큰 흐름을 잃지 않은 범위에서 새롭게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그들의 힘에서 80후後 작가 들의 선전은 계속될 듯 하다. 다소 낯설은 표현과 과장된 표현으로 엮어졌지만 '색다른 맛'을 느낀 것은 틀림없다. 과연 80후後 작가들의 소설이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어떤 호응을 얻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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