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2 -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물(백성)은 배(임금)을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
[다산비결]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내게 '참학자의 표본'으로 여겨져 왔었다. 죄인으로 내려간 유배생활동안 수 백 권의 책을 펴낸 것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던 것,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임금을 섬기며, 백성을 어려워 할 줄 아는 양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를 따르고자 수 많은 책을 펴 낼 수 있게 한 비밀이 있다고 해 지난 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구입하여 읽었지만, 다산선생에 대한 얇은 지식으로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중도에 그만 멈추고 말았다. 읽자니 어렵고, 그냥 두자니 자꾸만 눈에 밟히는 '계륵(닭갈비)'과 같은 책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역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한승원 선생께서 '다산 선생'에 대한 책을 펴내셨다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일찌기 정약전 선생을 다룬 책 [흑산도 가는 길]과 다산 선생의 제자 초의스님을 다룬 책 [초의] 그리고 다산 선생의 후학인 추사 김정희를 다룬 [추사]를 펴낸 적은 있었고 그 책들에서 다산선생을 이야기 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 다산 선생을 주인공으로 책을 냈다는 데 그분의 사명은 다한 듯 마지막 완결을 짓는 것은 아닐까 싶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자인 한승원 선생 스스로가 "드디어 힘겨운 큰 산 '다산'을 넘었다" 고 말할 정도이고 보면 그에게 이번 소설은 큰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인가 보다. 책의 소개글에서 5년간의 연구와 집필, 200여 권의 문헌과 고증자료를 토대로 완성했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 소설은 정적들의 공격으로 경상도의 장기와 전라도의 강진에서 귀향살이를 하게 되는 18년 간의 삶과 유배 이후 노년의 삶을 주로 조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시간을 넘나들며 정약용 선생의 일생이 조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약용선생이 천주교 신사였는가 아닌가 하는 논란에 대해 이 책은 해답을 던져 줄 수 있다고 봐야겠다. 소설인 만큼 저자 스스로도 그 답을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자 스스로가 그의 형 정약종과의 대비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상과 철학은 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 을 가새질러 포개고, 그 한가운데 사북으로 박혀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그것들은 종교임과 동시에 학문으로 삼은 것이다.
 
  가문은 폐족되고, 자신과 형님은 서로 떨어져 유배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한 인간의 절대고독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책쓰기에 몰두했던 다산선생의 학자적 정신에 감동을 받는다. 유배생활동안 만나는 주막집 주모와 연두색 머리처네, [주역]을 대상으로 한 혜장 스님과의 한 판 승부, 그리고 영원한 제자이자 벗이었던 초의 스님까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소설의 흥미를 돋운다. 눈에 보이는 듯, 한 편의 장편 드라마를 보는 듯 읽기에 어려움이 없으며, 페이지를 더할수록 다산 선생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듯 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저자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참고문헌을 수배중에 증조부모가 쓰시던 농 밑바닥에서 발견한 흘림체의 한글로 쓴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다산비결]인 듯 하다 했다. 방례초본의 핵심을 간략하게 적은 책이라고 하나, 한글로 된 점을 생각하면 이는 양반이 아닌 백성을 위해 써진 책이라고 보여졌다. 내용 또한 짐짓 놀랄 만한 것들과 새겨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물은 백성이고, 임금은 배이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정치하고 바꿀 수 있다." 라고 하여 유배생활을 하는 양반으로써는 감히 언급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겼다. 이것은 그가 유배생활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깨우치기 위해 언문(한글)로 쓴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소설의 내용중에도 그런 내용이 있음을 보면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또 하나 주목된 점은 "흥인지문을 서울의 동쪽에 세우고, 숭례문을 서울의 남쪽에 세운 것은 임금이 어짊과 예로서 정치를 펴겠다는 것이다. 착취와 탐학을 일삼는 임금과 관료들은 백성들을 벌벌 떨게 하는 법으로 다스리지만, 자애로운 임금은 백성들을 어짊과 예로써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문구였다. '예禮를 높이 받들어라'는 뜻으로 당시 명필이었던 세종의 형 '양녕대군'이 일부러 현판을 세로로 썼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올해 초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그 현판은 불타서 아래로 내려져 있고, 그 후로 일어나는 국내의 사건들로 인해 온 국민이 떠들썩거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임금이 백성들을 대할 때 '어짊과 예'로 대해야 하는 것을 알아야 물이라 할 수 있는 백성이 배라고 하는 임금이 잘 떠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인데, 배가 풍랑을 만나 심하게 요동치는 요즘의 세태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예감하게 한다.
 
  또한 [다산비결]에는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일을 하고 먹는 밥이 성스럽다. 일하지 않고 먹는 밥은 추하다. 일이나 밥을 착취하는 벼슬아치는 도둑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고, 임금에게는 백성이 하늘이다.
여기에서 현재와 비교해서 생각하건데 온 국민이 먹거리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것을 하늘로 여기기 때문이고, 나라를 평온하게 해야 할 위정자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하여 이토록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 것은 그들이 하늘인 백성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것이므로 그들이 근무태만을 하는 것이고, 이는 곧 일하지 않고 밥을 먹으려 하니 그런 벼슬아치는 도둑이 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백성이 먹거리를 걱정함이 당연하듯, 정치하는 이들은 국민을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 국민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남아있는 아쉬움은 다산선생과 같은 훌륭한 학자이자 선각자가 지금 이땅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며, 가족을 아끼고, 백성을 생각하는 그런 학자이자 양반이 오늘날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아쉬움이 더욱 그를 뒤쫓게 만든다. 미처 다 읽지 못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새로고쳐 읽을 용기가 생겼고, 내친 김에  얼마전 구입한 책 [다산어록 청상]도 함께 읽으려 한다. 얼마전 정조대왕 '이산'을 극화화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정조의 영민함과 부모에 대한 효성, 그리고 백성에 대한 자애로움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지금 시대의 부름은 '다산 선생'를 찾고 있다. 이젠 그를 부를 차례다. 이 책이 그를 찾는데 등불 노릇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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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물(백성)은 배(임금)을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
[다산비결]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내게 '참학자의 표본'으로 여겨져 왔었다. 죄인으로 내려간 유배생활동안 수 백 권의 책을 펴낸 것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던 것,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임금을 섬기며, 백성을 어려워 할 줄 아는 양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를 따르고자 수 많은 책을 펴 낼 수 있게 한 비밀이 있다고 해 지난 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구입하여 읽었지만, 다산선생에 대한 얇은 지식으로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중도에 그만 멈추고 말았다. 읽자니 어렵고, 그냥 두자니 자꾸만 눈에 밟히는 '계륵(닭갈비)'과 같은 책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역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한승원 선생께서 '다산 선생'에 대한 책을 펴내셨다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일찌기 정약전 선생을 다룬 책 [흑산도 가는 길]과 다산 선생의 제자 초의스님을 다룬 책 [초의] 그리고 다산 선생의 후학인 추사 김정희를 다룬 [추사]를 펴낸 적은 있었고 그 책들에서 다산선생을 이야기 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 다산 선생을 주인공으로 책을 냈다는 데 그분의 사명은 다한 듯 마지막 완결을 짓는 것은 아닐까 싶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자인 한승원 선생 스스로가 "드디어 힘겨운 큰 산 '다산'을 넘었다" 고 말할 정도이고 보면 그에게 이번 소설은 큰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인가 보다. 책의 소개글에서 5년간의 연구와 집필, 200여 권의 문헌과 고증자료를 토대로 완성했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 소설은 정적들의 공격으로 경상도의 장기와 전라도의 강진에서 귀향살이를 하게 되는 18년 간의 삶과 유배 이후 노년의 삶을 주로 조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시간을 넘나들며 정약용 선생의 일생이 조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약용선생이 천주교 신사였는가 아닌가 하는 논란에 대해 이 책은 해답을 던져 줄 수 있다고 봐야겠다. 소설인 만큼 저자 스스로도 그 답을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자 스스로가 그의 형 정약종과의 대비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상과 철학은 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 을 가새질러 포개고, 그 한가운데 사북으로 박혀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그것들은 종교임과 동시에 학문으로 삼은 것이다.
 
  가문은 폐족되고, 자신과 형님은 서로 떨어져 유배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한 인간의 절대고독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책쓰기에 몰두했던 다산선생의 학자적 정신에 감동을 받는다. 유배생활동안 만나는 주막집 주모와 연두색 머리처네, [주역]을 대상으로 한 혜장 스님과의 한 판 승부, 그리고 영원한 제자이자 벗이었던 초의 스님까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소설의 흥미를 돋운다. 눈에 보이는 듯, 한 편의 장편 드라마를 보는 듯 읽기에 어려움이 없으며, 페이지를 더할수록 다산 선생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듯 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저자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참고문헌을 수배중에 증조부모가 쓰시던 농 밑바닥에서 발견한 흘림체의 한글로 쓴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다산비결]인 듯 하다 했다. 방례초본의 핵심을 간략하게 적은 책이라고 하나, 한글로 된 점을 생각하면 이는 양반이 아닌 백성을 위해 써진 책이라고 보여졌다. 내용 또한 짐짓 놀랄 만한 것들과 새겨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물은 백성이고, 임금은 배이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정치하고 바꿀 수 있다." 라고 하여 유배생활을 하는 양반으로써는 감히 언급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겼다. 이것은 그가 유배생활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깨우치기 위해 언문(한글)로 쓴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소설의 내용중에도 그런 내용이 있음을 보면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또 하나 주목된 점은 "흥인지문을 서울의 동쪽에 세우고, 숭례문을 서울의 남쪽에 세운 것은 임금이 어짊과 예로서 정치를 펴겠다는 것이다. 착취와 탐학을 일삼는 임금과 관료들은 백성들을 벌벌 떨게 하는 법으로 다스리지만, 자애로운 임금은 백성들을 어짊과 예로써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문구였다. '예禮를 높이 받들어라'는 뜻으로 당시 명필이었던 세종의 형 '양녕대군'이 일부러 현판을 세로로 썼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올해 초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그 현판은 불타서 아래로 내려져 있고, 그 후로 일어나는 국내의 사건들로 인해 온 국민이 떠들썩거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임금이 백성들을 대할 때 '어짊과 예'로 대해야 하는 것을 알아야 물이라 할 수 있는 백성이 배라고 하는 임금이 잘 떠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인데, 배가 풍랑을 만나 심하게 요동치는 요즘의 세태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예감하게 한다.
 
  또한 [다산비결]에는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일을 하고 먹는 밥이 성스럽다. 일하지 않고 먹는 밥은 추하다. 일이나 밥을 착취하는 벼슬아치는 도둑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고, 임금에게는 백성이 하늘이다.
여기에서 현재와 비교해서 생각하건데 온 국민이 먹거리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것을 하늘로 여기기 때문이고, 나라를 평온하게 해야 할 위정자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하여 이토록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 것은 그들이 하늘인 백성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것이므로 그들이 근무태만을 하는 것이고, 이는 곧 일하지 않고 밥을 먹으려 하니 그런 벼슬아치는 도둑이 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백성이 먹거리를 걱정함이 당연하듯, 정치하는 이들은 국민을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 국민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남아있는 아쉬움은 다산선생과 같은 훌륭한 학자이자 선각자가 지금 이땅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며, 가족을 아끼고, 백성을 생각하는 그런 학자이자 양반이 오늘날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아쉬움이 더욱 그를 뒤쫓게 만든다. 미처 다 읽지 못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새로고쳐 읽을 용기가 생겼고, 내친 김에  얼마전 구입한 책 [다산어록 청상]도 함께 읽으려 한다. 얼마전 정조대왕 '이산'을 극화화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정조의 영민함과 부모에 대한 효성, 그리고 백성에 대한 자애로움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지금 시대의 부름은 '다산 선생'를 찾고 있다. 이젠 그를 부를 차례다. 이 책이 그를 찾는데 등불 노릇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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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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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도 '대한민국 원주민'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
 
  만화가 최규석. 그를 만난 것은 지난 5월에 읽은 책,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에서였다. 청소년 시절 단순한듯 심오한 표정으로 인간세상을 꼬집었던 아이공룡 둘리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계 국민으로 둔갑시키고, 소외된 서민이 되어 생명을 잃어가는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라 한편으로는 파격적인 소재를 사용한 작가의 과감함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만화컨텐츠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는 점에서 자신과 작품을 나에게 각인시켰었다. 책 속에 있던 단편 [사랑은 단백질] 또한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짐작케 했던 인상깊은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남의 이야기도 아닌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게다가 만화로 담은 것이다. 그리 밝힐 것도 아니고, 관심도 없었을지 모르는 것에 대해 전에 없었던 또 다른 파격적인 시도가 나를 매료시키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제목은 [대한민국 원주민]이다.
 



  아버지, 엄나, 큰형과 누나 넷, 그리고 나 이렇게 여덟 식구의 이야기가 담겨졌는데, 만화가 최규석은 자신들의 가족사는 곧 대한민국 소시민의 작디 작은 60년사 였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기억이란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는 것. 조각 조각 났지만 가슴에 뭍혀지고 머리 한 켠에 새겨졌던 기억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사실은 기억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본인도 알 수 없는 것. '잘 알 수 없다' , '~~했을 것이다'는 표현이 두드러진 것은 그 때문이리라.
 
 
 

 

 

 


  무책임한 아버지, 가난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던 엄마, 그것에 힘겨워했던 누나들 그리고 그것들을 목격한 나... 그는 '전통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다가 느닷없이 닥쳐온 파도에 밀려 끝없니 떠돌아야만 했던 사람들,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물 마른 강바닥에서 소용도 없는 아마미를 꿈벅대대는 물고기처럼 삶의 방식을 손볼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야 했던 사람들, 그들을 키웠던 곳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들의 일상이었던 것들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어버린 사람들' 을 일러 '원주민' 이라 해서 제목도 '대한민국 원주민'이라 이름 붙였다. 
 
 













  가족들의 차마 꺼내지 못했던 아련한 기억들은 육덕지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실려 대본이 되었고, 만화가 최규석의 리얼한 화력畵力으로 그림이 되어 50여 개의 이야기책으로 묶였다. 두 세쪽 남짓한 이야기는 1분이면 보고 읽지만, 떠오르는 웃음과 상념 때문에 곧장 다음 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다 맞는 말이다, 나도 그랬다. 우리집도 그랬다더라. 너도 그랬냐?' 싶고, 웃고 넘어가기엔 가슴이 너무 먹먹해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이 책을 만들기까지 참 울기도 많이 울었겠다 생각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가족을 더 이해할 수 있었을테고, 최소한 예전보다 얼굴 한 번 더 봤을 것 같다는 생각에 최규석이 부러웠다. 원한다면 들을 수 있는 가족들이 있고, 그것들을 오롯이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가 부러웠다.
 
불쑥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필경 맛난 낮잠을 곤히 즐기셨을 법한 오후 시간.
 
 "엄마, 엄마! 엄만 아버지 어떻게 만나셨어?"
      
"그건 왜? 자다가 봉창이라고... 그건 왜 궁금한겨?"
 
"아니,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래. 응, 응?"
 
"어유 얘, 말두 끄내지 마라.
그때 생각하믄 내 손을 절구에 콩콩 찧고 싶으니께. 끊어, 언능 !!"
 
다시 전화하면 '한 바가지' 욕을 배부르게 먹을 것 같아 전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난 기억과 손과의 관계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다른 한 당사자 역시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라 물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잊고 싶은 기억은 굳이 꺼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의 이야기라면 약간은 포장되고 과장되더라도 알고 있으면 좋겠다. 어느 날 더 이상 가족을 볼 수 없는 그날엔 '한 바가지 욕'도 들을 수 없을테니까.
 

독자로 하여금 항상 생각을 던져주는 만화가 최규석의 그림은 늘 반갑다. 그리고 한쪽 켠에 숨겨진 듯 차려진 만화코너를 당당히 문화장르로 옮겨 놓는데 한 몫을 하는 것 같아 보기도 좋다. 늘 그렇듯 가슴앓이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 또 다시 , 좀 더 아프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 뒤엔 기꺼이 나도 아파해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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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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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칼의 날>의 프레더릭 포사이스는의 펜끝은 아직 무뎌지지 않았다!
 
군사첩보소설의 대가 톰 클랜시의 맥을 잇는 최고의 소설가 프레데릭 포사이드의 새 작품을 만났다. 전작 <자칼의 날>, <어벤저> 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내려다 본 소설 [아프간]이다. 냉전시대와 그 이후 요원들의 생존을 그린 작품들을 읽었을 때는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고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려서 영화처럼 즐기듯 재미로 읽었지만(어려서 읽은 탓도 있으리라), 이 작품은 현재도 진행중인 보이지 않는 치밀한 전쟁 '테러와의 전쟁'의 일부를 다룬 것이고, 인터넷을 통해 관심만 둔다면 그 전쟁의 진행과정과 피해상황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터라 즐기듯 읽을 수만은 없었다. UCC등으로 보이는 참상등이 사실과 조작이 혼재하는 세상인 만큼 '허가받은 거짓말'을 표방하는 소설임에도 실재한 사전, 실존인물, 진행중인 사전등 그 생생한 사실감에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 소설은 21세기 첩보전의 현황을 완벽하게 묘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007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최첨단의 무기와 도청기법, 그리고 작전의 치밀함은 놀람과 동시에 공포감까지 느끼게 한다. 첩보소설의 주인공은 거의가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소설 [아프간]의 주인공 마이크 마틴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최소한의 희생을 원하지 않는 한 인간으로 묘사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날 전쟁의 양상이 국가의 존립을 가늠하는 관념적 사상체계을 넘어 지하자원과 식량등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와 결부된 만큼 다툼의 정당성을 표방하기는 절대로 쉽지 않다. 선방은 항상 테러로 분류되고, 일당 백의 생명가치를 표방하는 강대국의 잣대에서 적군은 항상 후진국의 미개인으로 가늠된다.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의 한 부분을 묘사한 이 작품을 보면서 단순히 흥미만을 느끼기에는 너무 알거나 늙은 것일까 전에 읽은 [연을 쫓는 아이]와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떠오르게 한다. 이 소설의 몇 줄로 표현된 미사일과 폭탄의 폭발로 사그러져간 민간인의 모습들이 계속 눈에 보이는 듯 하고, 장군 멍군을 번갈아가며 그들이 벌이는 첩보전과 요원들의 활동은 체스게임을 벌이는 인간 보다 더 큰 어떤 존재를 연상하게 한다. 이 모든 상념들의 이유가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논픽션같은 사실적인 묘사 때문이리라.
 
톰 클렌시의 군사소설을 즐겼거나 '테러와의 전쟁'을 둘러싼 현대 첩보전에 관심있거나, 두 시간짜리 영화로는 표현할 수 없는 스케일과 스토리의 영화를 혼자 머리속으로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하지만 읽기 힘든 중동국가의 지명이나 이름을 기억하기는 냉전시대의 소련의 그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앞서 말한 소설 [연을 쫓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어 본 이들에게는 덜 하겠지만. 현재진행형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 즐기듯 읽기보다는 지구 반대편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느낄 수 있다고 봐야겠다. 프레더릭 포사이스는의 펜끝은 아직 무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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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유령
폴 크리스토퍼 지음, 하현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여름을 날려 줄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스펙터클한 소설 !
 
  렘브란트 반 린[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그의 이름을 떠올릴 때면 항상 먼저 떠오르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의 최고의 작품이면서 그 작품을 완성하면서 불우한 인생이 시작되었던 작품 야경꾼[The Night Watch]이다. '빛과 그림자의 화가'라 알려진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부터 인간의 양면을 나타내는 분위기와 표정 그리고 눈빛를 조화롭게 그리고 극명하게 나타내었는데, 그에게 작품을 의뢰한 조합원들에게는 그리 신통치 않은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더이상 그에게 작품을 의뢰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이 작품이 제작되던 해에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가 죽자, 그는 절망하여 투기와 낭비를 하게 되고, 급기야 아이들의 유모였던 여인과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그의 복잡하고 문란한 사생활은 그를 가난으로 몰아넣는다. 결국 암스테르담의 유태인 거리에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숨을 거두게 되지만, 마치 벽돌공이 삽으로 벽돌을 쌓는 듯 범벅으로 두껍게 칠한 듯한 임파스토 기법은 그의 작품을 어두운 곳은 빛을 흡수하고, 밝은 곳은 오히려 반짝이게 해 명암을 더욱 극명하게 했는데, 이것이 지금도 그를 최고의 화가라 부르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속에 나타나는 인간들의 표정속에서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이중성과 '왜 너는 다를 것 같아?'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들에서 항상 놀람과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그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다른 또 하나는 1997년에 나왔던 영화 익명[인코그니토Incognito,1997] 이다. 우리나라에는 며칠 상영한 후 간판을 내리고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되었지만, [영화매니아] 사이에서는 [진흙 속에 숨은 진주]로 평가될 만큼 예술과 스릴러가 결합된 뛰어난 작품이다. 렘브란트보다 더 렘브란트 작품같이 그림을 모사 [copy] 하는 주인공(모사화가)에게 거액의 작품료를 제시하며 모사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받는다. 아버지의 수술비에 고민하던 그는 결국 수락하고, 이름만 거론될 뿐 아무도 보지 못한 잃어버린 렘브란트의 작품을 그리게 되고 이를 의뢰인에게 건네면서 끝을 알 수 없는 사건은 시작되어 도망자 신세가 되는 내용인데, 이 영화에서 내 주의를 끈 것은 이 영화가 함부로 모사할 수 없는 렘브란트의 작품을 소재로 했다는 것과 그의 작품을 모사하는 과정을 장시간에 걸쳐 영화속에 담았는데 이 장면이 내 눈을 사로 잡았었다. 다시 보려고 대여점을 찾았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어 이젠 기억속에 남겨둔 소중한 스릴러 영화다.
 
  



그러던 중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의 크로스오버 픽션'이라고 소개된 어느 소설에서 1640년에 그린 자신의 자화상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제목은 렘브란트의 유령, 원제는 Rembrant's Ghost 다. 이 소설은 철저하게 모습과 사생활을 숨긴 채 폴 크리스토퍼 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작품속에 소개되는 매력적인 여주인공 핀 라이언은 그의 전작인 <미켈란젤로 노트 2006>와 베스트셀러였던 <루시퍼 복음 2007>에도 등장했다. 실제로 근세사를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미술품 강탈과 도난등에 관한 책을 많이 내고, 강연도 했던 그인 만큼 미술작품과 역사에 대한 놀라운 지식들이 작품속에 녹아 들었다. 특히 작품속에 설명된 렘브란트에 대한 내용, 즉 렘브란트는 자신의 공방에서 12명의 도제徒弟를 거느렸는데, 그들은 렘브란트라는 서명을 할 권리가 있었고, 심지어 자신이 붓질 한 번 하지 않은 그림에 자기 이름을 남긴 화가라도 유명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100편이 넘는 자화상은 시기에 따라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그 때의 기분과 변화되어가는 그의 붓터치가 오롯이 담겨있는데 그들의 다름이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혹시 이것들도?'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했다. 
 
 


미술사학을 전공한 매력적인 여주인공 핀 라이언은 주드 로를 연상시키는 잘 생긴 영국 공작 필 그림을 만나게 되고, 이 둘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피터르 부하르트'라는 사람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그들에게 남겨진 유산은 렘브란트의 그림 한 점, 암스테르담에 있는 대저택, 그리고 보르네오 섬 근처의 낡은 배 한 척인데, 이들을 모두 보름 안에 찾아야 유산이 상속된다는 조건을 변호사에게 듣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여주인공 핀은 샤를리스 테론을, 공작 필은 책속에서도 거론된 배우 주드 로를 주연으로한 영화를 보는 듯 스토리는 빠르게 진행된다.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면서 유산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하나씩 해결되는데, 마지막에 반복되는 반전은 요즘 영화에서도 찾을 수 없이 훌륭했다. 

A mystery to be solved.
A foutune to be found.
A race to survive.
 
 
뜻하지 않은 행운과 위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풀어야 할 미스터리, 찾아야 할 행운, 목숨을 위한 레이스를 펼치는 그들을 지켜보다 보면 이 소설의 제목으로 왜 렘브란트가 사용되었는지 결말에서 알 수 있고, 작가의 작품 속에 겹겹히 숨겨놓은 이야기들이 렘브란트의 작품성 하나로 결부되는 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서두에 말했듯 나는 책 제목에 있는 그의 이름을 보고 최근에 나온 바 있는 위대한 인물을 소재로 한 '히스토리 팩션'인 줄 알고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미술품 속에서 거론되었을 뿐, 대륙을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의 스릴러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위작과 진품, 유산을 둘러싼 행운과 기회, 마지막 보물섬이라 불리는 방의 벽등의 대립을 통해 '빛과 그림자의 마술사'로 불리는 렘브란트를 이 작품 전반에 걸쳐 유령이라 불릴 만큼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음을 책을 덮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한 번 손에 집었다가 시간을 잊고 끝을 보게 했던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던 소설이다. 올 여름쯤 발간될 신작을 위해 집필중이라는 폴 크리스토퍼를 모가지를 뺀 사슴처럼 또 다시 기다리게 하는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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