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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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도 '대한민국 원주민'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
 
  만화가 최규석. 그를 만난 것은 지난 5월에 읽은 책,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에서였다. 청소년 시절 단순한듯 심오한 표정으로 인간세상을 꼬집었던 아이공룡 둘리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계 국민으로 둔갑시키고, 소외된 서민이 되어 생명을 잃어가는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라 한편으로는 파격적인 소재를 사용한 작가의 과감함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만화컨텐츠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는 점에서 자신과 작품을 나에게 각인시켰었다. 책 속에 있던 단편 [사랑은 단백질] 또한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짐작케 했던 인상깊은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남의 이야기도 아닌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게다가 만화로 담은 것이다. 그리 밝힐 것도 아니고, 관심도 없었을지 모르는 것에 대해 전에 없었던 또 다른 파격적인 시도가 나를 매료시키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제목은 [대한민국 원주민]이다.
 



  아버지, 엄나, 큰형과 누나 넷, 그리고 나 이렇게 여덟 식구의 이야기가 담겨졌는데, 만화가 최규석은 자신들의 가족사는 곧 대한민국 소시민의 작디 작은 60년사 였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기억이란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는 것. 조각 조각 났지만 가슴에 뭍혀지고 머리 한 켠에 새겨졌던 기억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사실은 기억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본인도 알 수 없는 것. '잘 알 수 없다' , '~~했을 것이다'는 표현이 두드러진 것은 그 때문이리라.
 
 
 

 

 

 


  무책임한 아버지, 가난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던 엄마, 그것에 힘겨워했던 누나들 그리고 그것들을 목격한 나... 그는 '전통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다가 느닷없이 닥쳐온 파도에 밀려 끝없니 떠돌아야만 했던 사람들,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물 마른 강바닥에서 소용도 없는 아마미를 꿈벅대대는 물고기처럼 삶의 방식을 손볼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야 했던 사람들, 그들을 키웠던 곳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들의 일상이었던 것들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어버린 사람들' 을 일러 '원주민' 이라 해서 제목도 '대한민국 원주민'이라 이름 붙였다. 
 
 













  가족들의 차마 꺼내지 못했던 아련한 기억들은 육덕지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실려 대본이 되었고, 만화가 최규석의 리얼한 화력畵力으로 그림이 되어 50여 개의 이야기책으로 묶였다. 두 세쪽 남짓한 이야기는 1분이면 보고 읽지만, 떠오르는 웃음과 상념 때문에 곧장 다음 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다 맞는 말이다, 나도 그랬다. 우리집도 그랬다더라. 너도 그랬냐?' 싶고, 웃고 넘어가기엔 가슴이 너무 먹먹해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이 책을 만들기까지 참 울기도 많이 울었겠다 생각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가족을 더 이해할 수 있었을테고, 최소한 예전보다 얼굴 한 번 더 봤을 것 같다는 생각에 최규석이 부러웠다. 원한다면 들을 수 있는 가족들이 있고, 그것들을 오롯이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가 부러웠다.
 
불쑥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필경 맛난 낮잠을 곤히 즐기셨을 법한 오후 시간.
 
 "엄마, 엄마! 엄만 아버지 어떻게 만나셨어?"
      
"그건 왜? 자다가 봉창이라고... 그건 왜 궁금한겨?"
 
"아니,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래. 응, 응?"
 
"어유 얘, 말두 끄내지 마라.
그때 생각하믄 내 손을 절구에 콩콩 찧고 싶으니께. 끊어, 언능 !!"
 
다시 전화하면 '한 바가지' 욕을 배부르게 먹을 것 같아 전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난 기억과 손과의 관계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다른 한 당사자 역시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라 물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잊고 싶은 기억은 굳이 꺼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의 이야기라면 약간은 포장되고 과장되더라도 알고 있으면 좋겠다. 어느 날 더 이상 가족을 볼 수 없는 그날엔 '한 바가지 욕'도 들을 수 없을테니까.
 

독자로 하여금 항상 생각을 던져주는 만화가 최규석의 그림은 늘 반갑다. 그리고 한쪽 켠에 숨겨진 듯 차려진 만화코너를 당당히 문화장르로 옮겨 놓는데 한 몫을 하는 것 같아 보기도 좋다. 늘 그렇듯 가슴앓이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 또 다시 , 좀 더 아프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 뒤엔 기꺼이 나도 아파해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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