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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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나래를 활짝 펴고 삶의 편린들을 모아 문학작품 속에 잠겨있는 진중한 정신세계를 비범한 통찰력으로 정리한 책 읽기의 진수라 해야 할까. ‘프루스트’를 읽어내는‘알랭 드 보통’의 방식 - 온전히 작가의 시대와 삶으로 들어가 작가의 시선과 생각으로 - 으로서만이 프루스트를 독해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프루스트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세운 그의 대표작『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좀처럼 손에 들기가 여의치 않다. 7편 11권으로 국내에도 완역된 전질이 나의 서가에 나란히 꽂혀진지 몇 해가 지났는 지 모르겠다. 매번 읽어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다가서지 못하는 내게, 그의 동생‘로베르’의 말처럼 “사람들이 매우 아프거나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는 읽을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는 조크가 진실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마 밀폐된 침대에서 쓰인 글이라서 그런 것일까. 당시 프루스트의 열정적 팬들조차 작품의 길이가 너무 길어 난처했다할 정도이니 위안이 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프루스트를 좋아 하세요』라는‘보통’의 프루스트 읽기를 따라가며 마주하는 인생의 작은 조각들과 사건들에 대한 광대한 사유는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이면의 층위들을 깊고 색다르게 느끼게 해주는 멋진 길잡이가 되어준다.
프루스트가 들으면 정확히 기분 나빠할 얘기가 되겠지만,‘보통’의 이 에세이를 정의한다면, 삶을 바라보는 법, 그리고 감사하는 법의 탐색이 아닐까?
“신문 읽기라는 가증스럽고 음란한 행위”라고까지 단문과 빈약한 표현에 질색했던 프루스트이고 보면 조잡한 이 정의가 무책임하고 독자를 우롱하는 방해공작이라고까지 비난할지 모를 일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제1권 「스완네집 쪽으로」의 첫 페이지를 접하는 누구든 바로 느낄 수 있는 지루할 정도의 세세한 묘사와 설명으로,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장면을 몇 장에 걸쳐 기술하는 프루스트의 글쓰기가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의 설명을 듣고 보면 그 구체적이고 작은 경험들이 모두 표현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전달이 된다는 믿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는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N'allez pas trop vite)"라는 프루스트주의적 슬로건이 있으며, 너무 빨리하지 않으면 생기는 이점은 그러는 도중에 세상이 재미있어진다는 그의 신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철학은 형태는 다르지만 “예술작품은 왜곡되었거나 지나친 현실의 측면들을 우리의 시야에 회복시키는 능력이다.”라는 예술작품에 대한 그의 생각과 공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생을 천식을 앓으며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에서 보낸 병약한 사람인 프루스트의 고통에 대한 찬양은 역설적이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고통에 빠지고 우리가 희망했던 대로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까지는 아무것도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고통스러울 때만 철저한 탐구심이 발현된다는 진리의 실천으로 느껴지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 될까.
어쨌든‘보통’은 프루스트의 이러한 삶의 견해로부터 “우리는 앓는다. 고로 생각한다.”고 데카르트를 차용한 재치 넘치는 명구를 만들어낸다.

한편 ‘보통’의 의도야 어찌되었든 ‘프루스트주의적’, ‘프루스트적’, ‘프루스트하다’는 표현들이 등장하는데 프루스트의 행동과 말, 그리고 그의 글들이 일체화되어 동시대인들을 비롯해서 오늘의 문학적 삶에까지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한 정형화된 의미가 될 정도로 새로운 하나의‘가치’이자 ‘정신’이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보통’의 이 글이 돋보이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들에게 프루스트의 작가관, 친교관계, 성장 배경과 과정, 삶의 자잘한 것들에 대한 신념, 예술관들을 명쾌하고 유연하게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작품 속 화가인‘엘스티르’는 “조잡한 그림에서 르아브르 항구에 대한 놀라운 재현”이라는 양극의 평가를 받았던 인상파 화가‘클로드 모네’의 일면임을 통해, 프루스트의 예술관을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은 프루스트가 하는 작은 상념의 자투리로부터 연결되어 무성한 기억의 층위들을 헤집는 모양과 아주 닮아있다.

프루스트의 친교관계를 쫒아가면서, 대화와 책이 갖는 장단점으로 이어지고, 다시금 프루스트의 내면을 조명하는 변화무쌍, 종횡 무진하는 ‘보통’의 글쓰기 역시 삶의‘이면(裏面)의 원인들’을 현란하게 탐색해 낸다.
부호(富豪)인‘공작부인’과 소시민인‘알베르틴’의 소비행태를 통해 “욕망과 기쁨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주는 막대한 이득에 대한 식견이나, 프루스트의 성적(性的)이해와 의지에 대한 고찰로서 “오늘밤 시간 없어요.”라는 여성의 말이 소유가능성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만들고, 이는 진정하고 지속적인 욕망의 원인이 된다는데 까지 이르는 상상력의 연결은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한다.

평범하다고 생각한 것,(....)하찮다고 생각했던 자연에 위대한 예술이 있다는 것에 압도되었을 때, 철물과 질그릇도 매혹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자발적으로 생겨난 기억이 과거의 진정한 모습을 환기시켜줄 때, 오랜 망설임 끝에 예쁜 옷을 구입했을 때 느끼는 기쁨이야말로 행복이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 될 것이다.

프루스트의 높은 감수성과 “시간의 분해와 상실의 이면에 있는 원인들을 탐색하는”,‘보통’식 이 에세이는“대상자체 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질에 달려있다.”는 그의 말처럼 세상을 이해하는 사고의 품격을 한 단계 올려주고, 우리의 정신적 삶을 한층 고양시켜준다. 풍부한 지성의 향취를 만끽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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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들>을 리뷰해주세요.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 - 유가에서 실학, 사회주의까지 지식의 거장들은 세계를 어떻게 설계했을까?
황광우 지음 / 비아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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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소비와 쾌락, 대중 미디어를 통한 무차별적인 욕망의 부추김과 우민화는 소수 지배계층이 힘도 들이지 않고 다수의 대중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그저 천박한 속물주의가 지상의 목표인 사람들에게 자유니, 민주니, 인권의 침해니, 비민주적이니, 정책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들이 들릴 리 없으며, 설혹 들린다 한들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알 턱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이고 좀처럼 자신들의 삶과 연결 짓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이 속해 있는 계층이 보이지 않는 위계에 얽혀있으며, 직접의 모욕과 침해가 발생하면 그제서야 기득권 계층이 어쩌니 저쩌니, 권력가진자들이 자기를 멋대로 취급한다느니, 돈 없고 백 없는 놈 서러워서 못살겠다느니 하는 것을 보면 이기적이고 교활하며, 어리석어 보이고 일면은 측은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보행자도로에서 아빠 목마를 탄 어린아이가 촛불을 들었다고 체포되고, 세 걸음 걷고 한걸음 쉬었다고 구속되는, 그리고 인터넷을 마구 감청하여 사생활이라는 기본권의 침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고, 정책을 비난하면 조직적으로 매장해버리는 점점 폭력적이고 인권을 마구 짓밟아대는 현실에도 모두 나 몰라라 하는 이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극단적 이기주의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그나마 모든 국민들이 오늘 이만큼의 자유와 민주적 질서를 누리고, 인간의 기본권을 가지게 된 것은 불과 20년 남짓에 불과한 것을 모두들 잊고 있는듯하다. 정치의 옳고 그름을 논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고, 실정(失政)과 독재적 일방주의를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아대고 악랄한 고문과 죽음으로 내몰던 자유가 억압되고 인권이 부정되던 야만의 시절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이다.

이제 언론까지 마음대로 하려들고, 비판 세력은 고립시키고, 국민을 딴따라 출신의 관료가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조롱할 정도로 이 막돼먹은 권력은 그 어느 때 보다 자유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민들은 자신들의 기본권이 점점 축소되고, 자유가 손상되며, 민주적 질서를 폭력적 권위로 눌러대는 상황이 자신들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궁극적으로 권력이 오만 불손해지고 국민 위에 군림하여 명실상부한 지배계층으로 네트웍을 공고히 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심화 확장키 위해 전 국민의 노예화를 치닫는 사실을 결코 자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탓일 게다.

이 『위대한 생각들』이라는 저작은 바로 이러한 오늘의 우리사회를 표현하고 있는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체제와 이념을 구성하는 본질과 의미를 세상에 가장 쉬운 글로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지켜내야 할, 그리고 당연히 주장하여야 할 권리와 질서, 즉 ‘자유민주의’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갖는 내재적이고 실질적인 의미를 차근차근 전달해 주고 있다.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그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은 어떤 것이고, 그래서 보완되어야 할 이념으로서 민주주의를 설명하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왜 결합되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써 오늘에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이른다.
또한, 자유주의의 대척점으로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적 본질과 민족주의에 대한 다각적인 시선, 빗나간 민족주의의 극단적 사례인 파시즘이 인류에게 남긴 상흔, 나아가 동아시아,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의 근대이전의 사상과 정체성을 지배해 온 유학(儒學)과 그 밖의 도가, 법가 등 동양사상, 실학과 동학사상까지 우리의 사상적 계보를 아우르고 있다.

오늘의 인류사회에 자유주의 이념의 근본이 된 프랑스 대혁명과 인권선언, 이에 이르는 로크, 루소 등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사상, 시민계급(부르주아)의 사상이었던 자유주의의 정치적 한계와 노동자, 농민의 경제적 소외가 민주주의라는 확장된 의지의 포함까지 결합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자유주의가 야기한 뚜렷한 불평등의 현실에서 자라난 평등사회의 꿈을 지향하던 인류의 유토피아라는 염원으로 시도된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의 태생적 오류를 지적하고, 비록 현실에서는 폐기된 이념이지만 계급의 해방을 위한 실천적 사상으로서의 가치를 새로이 조명하기도 한다.

특히 민족주의의 토대가 되는 국민국가라는 개념의 형성과정과 이 과정이 만들어 낸 국가적 이기주의와 편협성,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책으로의 이향에 대한 배경, 그리곤 20세기 인류 이성에 근본적인 상처를 가져온 독일,이태리,일본의 빗나간 민족주의의 광기와 열정인 파시즘이 한국과 같은 제3세계 의 미숙한 국가들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교묘하게 전파되고 있는지 높은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오늘의 인류에 여전히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들 이념과 아울러, 한국인의 습속과 태도에 깊이 침착되어있는 유가(儒家)사상을 비롯한 동양사상의 본질을 꿰뚫고 있음은 이 저작의 또 다른 탁월함이랄 수 있겠다.

우리가 본격적으로‘근대화’라는 세계적 질서에 편입되는 1945년 이전의 시기에 한국인을 지배하던 사상은 ‘성리학’이다. “조선사회 전체의 행동규범이자 통치철학이었던 이 사상은 양반과 상놈을 철저히 나누어 서로 다른 일을 하는 현실을 정당화한 지배층의 사상”이었으며, 이는 역시 ‘군자(君子)의 학(學)’이라 했던 유가사상을 그 이념의 핵심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18세기 실사구시의 실학사상을 시작으로 피지배계층이던 국민의 절대다수였던 농민의 수탈로 인한 ‘갑오농민전쟁’과 동학의 의의, 29개조로 구성된 폐정개혁안은 비록 무능한 당시 지배세력과 외세에 의해 무력화되기는 하였으나, 인내천(人乃天)등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각성과 투쟁의 역사를 알려준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민주주의의 최전선이라는 생각으로 국민 각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각성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언제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성큼 후퇴하고 말 것이다.”생명권, 신체권, 재산권, 자유권, 명예권, 인격권 등의 권리는 인간의 실존 조건이다. 불법과 불의를 감수하고 관용하는 비겁함과 무관심을 벗어던지고,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하여야 하는 것은 그래서 당위성을 갖는 것이다.
진정 이 저작은 오늘의 한국인들을 위한 ‘위대한 생각’의 기초적 이해를 제공한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위한 필독서로서 어떠한 손색도 없다. 저자의 의지와 노고가 돋보이는‘자유민주주의’의 대중교과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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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계곡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0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0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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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하기 짝이 없는‘포’의 시구가 함께하던 어둠과 죽음의 사자,‘시인(poet)’이 돌아왔다!
FBI를 향한 시인의 도발, 그것도 즐비한 사체들을 쌓아두고 자신에게 총을 겨누었던‘레이첼 월링’을 수신자로 하는 소포와 함께.
이 작품은‘마이클 코넬리’의 주력 시리즈물의 주인공인 전(前) LAPD베테랑 수사관이던‘해리 보슈’가 해결사로 등장하면서 시인과의 대결에 한층 긴장감을 더해준다.

한 때 공조수사 파트너였던 전직 FBI요원인‘테리 매컬렙’의 심장질환에 의한 돌연사의 의혹을 시작으로 보슈는 사망하기 전 테리의 석연찮은 행적을 좇는다. 테리가 남긴 프로파일의 메모들은 네바다 사막으로 연결되는 '지직스 로드(zzyzx road)'를 가리키고,  한편 시인이 조종하듯 안내하는 사막에 묻힌 사체들로 레이첼을 비롯한 FBI수사팀은 시인의 의도와 행적을 찾지 못해 곤혹해한다.

결국 한 인물을 좇는 보슈와 FBI수사팀간의 미묘한 신경전은 레이첼의 애매한 입지로 수사력의 균형을 보슈로 기울게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전작(前作) 시인의 전체를 떠돌던 죽음의 망령이나 공포와 같은 음침하고 음울한 분위기의 스릴러에서, 걸출한 전직 수사관을 통해 본격적인 추리작품으로서의 속도감과 남성적 박진감이 장착된 범죄 수사물(탐정물)로 보다 강화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이렇듯 냉정한 이성적 전유물로서의 크라임스릴러(crime thriller)에는 여간해서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의 가족이 등장하는 의외로움도 있다. 사건 해결의 중심에선 주인공인‘해리 보슈’의 전처와 그의 딸‘매디’의 출현인데, 이는 아이의 순수한 시선과 오염된 어른들의 사악한 사회를 교차시키고, 시인의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외상과의 대비를 통해 아이들의 양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책임을 드러내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어쨌든 이 작품만의 보기 힘든 특징이고, 시리즈의 다음 작품과의 어떤 관련성이 예견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섬세한 감수성이나 타자에 대한 배려와 같은 보슈에게서의 인간적 갈등의 묘사가 몇 차례 등장하는 것도 새로운 형태의 추적자이자 형사의 인물상을 보여준다.

작품의 정점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감정이입과 몰입으로 긴장을 넘어 안절부절 못할 정도로 독자를 흡입해댄다. 세차게 퍼붓는 비와 급하게 휘감아 도는 검푸른 강물, 세상의 끝만 같은 계곡, 그리고 처절한 추격과 대결장면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의 하나로 각인 된다. 단서 하나하나에 까지 미치는 정교하고 세심한 장치는 정통 크라임스릴러의 진수란 이런 것이다! 라는 작가의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인지 LAPD(L.A.경찰국)로 복직 신청을 한 보슈의 다음 행보는 예사롭지 않다...영혼을 잃은 망자의 검은 눈이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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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에 관한 잡학사전
미하엘 코르트 지음, 권세훈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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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전은 세계 문학에서 유명한 작품들이 슬프거나 우스꽝스러운, 혹은 어지러운 삶의 상황에서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여줄 것이다.”라는 저자의 서문은 정확히 옳다. 틀에 박힌 일상으로부터 일탈하고, 거짓과 사기, 위선과 파렴치, 마약, 섹스, 음주 중독자인 비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갔던 110여명의 걸출한 작가, 사상가, 예술인인 그들의 또 다른 실체를 좇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의 작품이나 저술과는 연결되지 않을 것만 같은 기행(奇行)과 위선을 보는가 하면, 자신의 난잡한 일상을 그대로 작품에 옮겨놓은 자들, 허풍과 기생(寄生), 구걸로 연명하는 낙오자의 얼굴들을 보는 당혹스러움도 있다.  

인류의 위대한 창작물들, 발견들, 사상은 불현듯 질서와 규칙을 진리처럼 지켜나가는 범인(凡人)들로부터는 출현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수록된 인물들의 일상은 정상의 궤도에 있지 않다. 『광기에 관한 잡학 사전』의 표제처럼 이 저작물을 ‘광기(狂氣)’라는 언어에 맞추어 읽기에는 광기의 의미가 극단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동성애도, 싸움질도, 육욕도, 도박도, 음주도 모두 광기의 한 측면으로 보아야 하고, 사기와 배반, 간통과 위선도 광기의 연장이 되어야한다. 그렇다면 광기에 휩싸여 있지 않은 인간은 존재치 않는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이들은 곧 우리 모습의 투영이랄 수 있을 것이며, 일탈을 꿈꾸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이 저작이“자신의 결단과 행동을 낯설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역자의 말 또한 동일한 관점의 이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걸출한 문인들, 사상가들의 궁박한 남루와 비굴함, 그리고 교활함, 역겨운 위선과 파렴치까지도 오늘의 우리에게 문학의 소재로, 삶의 아이디어로, 인생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시선을 제공한다.
윤리(倫理)의 사도로서 행세하던 ‘찰스 디킨스’의 추악하고 비도덕적인 비밀스런 애정행각이나, 욕망의 대상을 장난치듯 바꾸던 ‘조르주 상드’, “울타리 바깥에서는 막대기로 다루어야 하는 야수”였던 교활하고 막돼먹은 이중인격자 ‘루소’, “육체노동과 빈약한 음식이 아이들에게 밝은 정서 함양과 눈에 띌 정도의 건강한 발육을 보장해준다.”고 주장하던 어린이의 노동을 착취하던 근대교육의 아버지라는 ‘페스탈로치’의 위선은 인류의 사상과 감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그네들의 저술과 그들의 인격을 동일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몰이해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20세기‘정신의 비상’이라 일컬어지는 ‘비트겐슈타인’과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의 우연한 만남의 일화에서, 시니컬의 대명사인 ‘쇼펜하우어’의 냉소적인 유머와 독설, 베를린대학에서‘헤겔’과 똑같은 시간에 강의를 함으로써 동시대에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 “어떠한 상상력도 없었기 때문에”기억만이 귀중한 재산이었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삶의 일화들이 압축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엄청난 분량으로 이루어진 그네들의 평전을 능가할 정도의 통찰력과 넘치는 기지로 채워지고 있다.

또한,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이들 명인들이 남긴 한 마디 한 마디가 삶과 죽음에 대한 寸鐵殺人의 언어로 장식되어 그네들의 삶이 때론 해학적이고, 때론 심원한 깊이를 가지고 철학의 언어로 독자를 매료시키기도 한다.
화려한 여성 편력 끝에 눈을 감는 시대의 연인이었던‘바이런’의 오만하고 자신에 찬 유언은 왠지 부럽기조차 하다.
“삶을 충분히 누렸기 때문에 헤어질 시간을 기꺼이 맞이하겠습니다. 왜 한탄해야 합니까? 과도할 정도로 삶을 즐기지 않았던가요?”
허, 정말 위대한 시인이지 않은가?  

이 밖에 세상을 조롱하는 재치 넘치는 말들도 이 저작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내가 이 세상에서 몇 사람만이 이해 할 수 있는 논문 몇 편으로 유명해지다니 정말 알 수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유머나, “자비로운 하나님은 이 나라에서 대단히 귀중한 세 가지 재산을 허락했다. 언론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그리고 이 자유를 한 번도 활용하지 않는 총명함 ”이라고 시대를 풍자하는 ‘마크 트웨인’의 신랄함은 역시 이 사전만의 탁월한 발견이고 시선이다.
“몇몇 남자들이 이러한 똥구덩이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조르주 상드’를 향한 ‘니체’의 악평은 그 똥구덩이에 빠질 수 없었던 시기(猜忌)가 아니겠는가.‘하이네’,‘쇼팽’,‘플로베르’...180권의 책을 출판했기에 애인수도 그만큼은 되었을 것이라는 그 많은 그녀의 애인에 끼지 못했던 니체는 이러한 독설로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음주, 도박, 허풍, 싸움질, 육욕의 화신, 마약중독자, 동성애자, 마초맨...이었던 고골, 니체, 다니엘 디포에서 토마스 딜런, 파스칼, 하우프트만, 횔덜린까지 이들의 폭풍우 같은 삶과 그들의 꿈과 현실의 닿지 않는 대화 속에서 자유로운 심성, 정신의 비상, 위대한 상상력이라는 귀중한 재산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글을 쓸 때,  그네들의 작품을 읽거나 감상하게 될 때, 삶이 시들할 때, 이 작은 인물사전은 꽤나 위용을 자랑할 것 같다. 삶은 본디 위선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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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1 - 워런 버핏과 인생 경영 스노볼 1
앨리스 슈뢰더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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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부자, 자산운용∙투자의 귀재, 천문학적 재산의 사회 기부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을 천명한 기업인 등 수없이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고, 그의 탁월한 경영안목과 삶의 철학을 연구 분석하고, 인생계발의 역할 모델로 내세운 저작들이 그칠 줄을 모른다.

작은 '눈 덩이(snowball)'가 거대한 눈사람이 되듯 엄청난 부를 일궈낸 그의 투자기법에 맞추어진 책, 그의 경영관, 인간관계론, 경제전망에 이르기까지 조명하는 관점을 달리하며 한 인물의 탐구에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2,000쪽 가까운‘워렌 버핏’의 이 자서전은 시중의 그 많은 저작들이 보여준 관심을 한 방에 날려준다. 극히 사적인 가정사에서부터 성장과정, 성품의 형성, 미숙한 사회성과 대인관계의 발전적 노력, 사회적 성취를 향한 일련의 과정, 시련이나 성공의 결정적 순간에서의 행동, 주식중개인에서 자산운용, 기업인수자로서, 또한 선배 기업들과 동료와의 관계 등 한 인물의 망라된 진면목을 확인 할 수 있다.
특히 워렌 버핏 자신의 집필로서 기술된 자서전이 아니라는 점은 자칫 주관적 감성이나 자기연민, 불필요한 자기합리화나 주장과 같은 왜곡, 미화의 편향이 상당부분 배제되어 시종 냉정함과 담담한 객관적 읽기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위대한 인물이라거나 영웅의 족적을 담겠다는 그 어떠한 허위나 과장 그리고 수치와 결핍과 같은 의도적인 은폐까지도 차단하려 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병뚜껑을 수집하고, 신문을 배달하는 소년에서, 사업하는 대학생으로, 전문 주식중개인에서 엄청난 수탁자산을 운용하고 거대한 금융제국으로 나아가는 행보가 연대기의 형식을 가지고 서술되고 있다. 수백에 이르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서신과 언론기사, 기업자료, 직접의 술회까지 방대한 자료의 진정함과 노고가 배어있다.
오늘에도 오마하의 버핏 사무실에 걸린 하원의원을 지냈고 주식 중개사업을 하였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의 사진이 걸려있는 정경은 그의 성장과정에서 아버지의 이해와 격려가 보내준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짙게 스며있음을 느끼게 한다. 보수성향의 공화당원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비로소 드러내는 워렌에게서 겸양과 배려, 존중의 정신을 본다.

동전과 우표를 수집하고, 낡은 중고차를 사서 대여하거나, 이발소에 핀볼 게임기를 설치해서 수입을 창출하고, 신문배달의 영역을 확대하여 자신과 싸우는 도전과정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어린 소년 워렌의 일화에서 세계최고의 돈(money)수집가가 된 부호의 가능성을 본다면 너무 상투적인 인식이 될까.
『천 달러를 버는 천 가지 방법』이라는 책자에 황홀해하며, “기회가 문을 두드린다. ~ 中略 ~ 작은 돈을 가지고 자기사업을 시작하기에 지금처럼 유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이야기에 자극되어 사업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실행에 옮기는 소년의 집요한 행동에서 성취를 향한 집념을 읽어내는 것은 감동과 경외가 아닐 수 없다.

나이 스물에 수 만 달러의 자기자본을 만들어내고, 그의 인생 내내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의‘벤 그레이엄’으로부터‘안전 마진(margin of safety)'과 “주식시장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경제적인 산출결과를 반영할 뿐”이라는 배움은 정의롭고 건강한 자산운용의 철칙이 된다. 온갖 편법과 부정한 방법으로 막대한 자산을 굴리다가 시장을 훼손하고 사라지는 오늘의 많은 증권, 금융 자산 운용가들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큰 대목이다.
오늘날 버핏 제국의 중심이 된 기업들, 특히 뉴베드퍼드의 작은 의류공장이었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비롯해 블루칩 스템프, 가이코, 디버시파이드 리테일링 컴퍼니, 내셔널 인뎀너티, 시즈 캔디스 등의 투자와 인수과정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전설처럼 보이던 세계최고의 투자그룹의 형성과정과 교훈들을 제공한다.
또한, 오마하 선, 버펄로 이브닝 뉴스의 소유와 워싱턴 포스트 등 언론사의 투자에서 사회정의에 대한 그의 신념과 언론매체의 권력으로서의 힘에 대한 이해가 그의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과 금융제국 건설에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를 설명한다. 
 

한편 “잔인하고 인정머리 없는 어머니”라고 까지 표현되는 어머니‘레일라’와 갈등을 겪는 내성적이고 비사회적 성품의 남편에게 “자기 확신과 안정성이라는 재능을 내면화”시켜준 헌신적이고 지혜로운 아내 ‘수잔 톰슨(일명 수지)’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잔잔한 감동과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생각게 하여 이 자서전을 한층 격조(格調)높고 풍요롭게 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상속녀이자 회장인‘케이 그레이엄’과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우정, 돈과 사업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념 등 아내를 떠나게 하는 사연과, 부유한 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특권의식을 느끼지 않고 자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수지와 워렌의 노력 등에서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워렌을 볼 수 도 있다.

“탐욕스러운 젊은‘자산 운용의 마법사’들 사이에서‘바빌론의 청교도’라고”까지 묘사되는 워렌 버핏의 이 방대하고 걸출한 일생의 기록에서 ‘합리성과 정직’이라는 가치, 확실한 전문가로서 인정 받기위해 강한 집념과 근성을 놓지 않은 신념과 행동, 장기 투자가로서의 자산운용과 일화들, 이러한 일련의 관계에서 맺어진 탁월한 인적자산들을 목격 할 수 있다.
신문팔이 소년이었고 식료품점 아들이었던 아버지 하워드 버핏, 출생으로 결정된 사회적 지위와 상대적 박탈감을 이해한 소년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기까지의 갈등과 화해, 불안과 안정, 성취와 좌절, 사랑과 이별, 그리고 부에 대한 신념이 놓칠 것 없는 압축된 이야기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증권, 선물, 자산운용 등 금융업관련 종사자는 물론, 인생의 가치와 저마다의 삶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자서전은 탁월한 역할 모델이 되어 줄 것이다.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 둘 저작이 아니다. 한 인간을 사로잡았던 삶의 영역은 물론 그의 결핍과 무관심과 무지, 그래서 놓친 삶의 영역에서 조차 80년 세월이 담긴 이 불세출의 인생기록에서 무수한 자양분을 끊임없이 조달 받을 수 있다. 부모가 아들, 딸들에게, 그리고 또 그들의 딸, 아들에게 이어져 읽어나갈 아마 최고의 인생사전이라 함에 어떠한 손색도 없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자면 시장은 투표지 계산기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중계입니다. 체중은 계속 변합니다. 하지만 투표지 계산은 단기에 끝납니다...」 - 1999년 선 밸리 리조트 연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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