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에 관한 잡학사전
미하엘 코르트 지음, 권세훈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이 사전은 세계 문학에서 유명한 작품들이 슬프거나 우스꽝스러운, 혹은 어지러운 삶의 상황에서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여줄 것이다.”라는 저자의 서문은 정확히 옳다. 틀에 박힌 일상으로부터 일탈하고, 거짓과 사기, 위선과 파렴치, 마약, 섹스, 음주 중독자인 비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갔던 110여명의 걸출한 작가, 사상가, 예술인인 그들의 또 다른 실체를 좇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의 작품이나 저술과는 연결되지 않을 것만 같은 기행(奇行)과 위선을 보는가 하면, 자신의 난잡한 일상을 그대로 작품에 옮겨놓은 자들, 허풍과 기생(寄生), 구걸로 연명하는 낙오자의 얼굴들을 보는 당혹스러움도 있다.  

인류의 위대한 창작물들, 발견들, 사상은 불현듯 질서와 규칙을 진리처럼 지켜나가는 범인(凡人)들로부터는 출현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수록된 인물들의 일상은 정상의 궤도에 있지 않다. 『광기에 관한 잡학 사전』의 표제처럼 이 저작물을 ‘광기(狂氣)’라는 언어에 맞추어 읽기에는 광기의 의미가 극단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동성애도, 싸움질도, 육욕도, 도박도, 음주도 모두 광기의 한 측면으로 보아야 하고, 사기와 배반, 간통과 위선도 광기의 연장이 되어야한다. 그렇다면 광기에 휩싸여 있지 않은 인간은 존재치 않는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이들은 곧 우리 모습의 투영이랄 수 있을 것이며, 일탈을 꿈꾸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이 저작이“자신의 결단과 행동을 낯설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역자의 말 또한 동일한 관점의 이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걸출한 문인들, 사상가들의 궁박한 남루와 비굴함, 그리고 교활함, 역겨운 위선과 파렴치까지도 오늘의 우리에게 문학의 소재로, 삶의 아이디어로, 인생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시선을 제공한다.
윤리(倫理)의 사도로서 행세하던 ‘찰스 디킨스’의 추악하고 비도덕적인 비밀스런 애정행각이나, 욕망의 대상을 장난치듯 바꾸던 ‘조르주 상드’, “울타리 바깥에서는 막대기로 다루어야 하는 야수”였던 교활하고 막돼먹은 이중인격자 ‘루소’, “육체노동과 빈약한 음식이 아이들에게 밝은 정서 함양과 눈에 띌 정도의 건강한 발육을 보장해준다.”고 주장하던 어린이의 노동을 착취하던 근대교육의 아버지라는 ‘페스탈로치’의 위선은 인류의 사상과 감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그네들의 저술과 그들의 인격을 동일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몰이해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20세기‘정신의 비상’이라 일컬어지는 ‘비트겐슈타인’과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의 우연한 만남의 일화에서, 시니컬의 대명사인 ‘쇼펜하우어’의 냉소적인 유머와 독설, 베를린대학에서‘헤겔’과 똑같은 시간에 강의를 함으로써 동시대에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 “어떠한 상상력도 없었기 때문에”기억만이 귀중한 재산이었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삶의 일화들이 압축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엄청난 분량으로 이루어진 그네들의 평전을 능가할 정도의 통찰력과 넘치는 기지로 채워지고 있다.

또한,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이들 명인들이 남긴 한 마디 한 마디가 삶과 죽음에 대한 寸鐵殺人의 언어로 장식되어 그네들의 삶이 때론 해학적이고, 때론 심원한 깊이를 가지고 철학의 언어로 독자를 매료시키기도 한다.
화려한 여성 편력 끝에 눈을 감는 시대의 연인이었던‘바이런’의 오만하고 자신에 찬 유언은 왠지 부럽기조차 하다.
“삶을 충분히 누렸기 때문에 헤어질 시간을 기꺼이 맞이하겠습니다. 왜 한탄해야 합니까? 과도할 정도로 삶을 즐기지 않았던가요?”
허, 정말 위대한 시인이지 않은가?  

이 밖에 세상을 조롱하는 재치 넘치는 말들도 이 저작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내가 이 세상에서 몇 사람만이 이해 할 수 있는 논문 몇 편으로 유명해지다니 정말 알 수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유머나, “자비로운 하나님은 이 나라에서 대단히 귀중한 세 가지 재산을 허락했다. 언론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그리고 이 자유를 한 번도 활용하지 않는 총명함 ”이라고 시대를 풍자하는 ‘마크 트웨인’의 신랄함은 역시 이 사전만의 탁월한 발견이고 시선이다.
“몇몇 남자들이 이러한 똥구덩이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조르주 상드’를 향한 ‘니체’의 악평은 그 똥구덩이에 빠질 수 없었던 시기(猜忌)가 아니겠는가.‘하이네’,‘쇼팽’,‘플로베르’...180권의 책을 출판했기에 애인수도 그만큼은 되었을 것이라는 그 많은 그녀의 애인에 끼지 못했던 니체는 이러한 독설로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음주, 도박, 허풍, 싸움질, 육욕의 화신, 마약중독자, 동성애자, 마초맨...이었던 고골, 니체, 다니엘 디포에서 토마스 딜런, 파스칼, 하우프트만, 횔덜린까지 이들의 폭풍우 같은 삶과 그들의 꿈과 현실의 닿지 않는 대화 속에서 자유로운 심성, 정신의 비상, 위대한 상상력이라는 귀중한 재산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글을 쓸 때,  그네들의 작품을 읽거나 감상하게 될 때, 삶이 시들할 때, 이 작은 인물사전은 꽤나 위용을 자랑할 것 같다. 삶은 본디 위선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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