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적들]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 한) 점

 1,2권에 실린 총 112편의 일화(逸話)는 우리 사람들이 겪고 있는 상실과 좌절, 삶과 죽음의 고통이  사랑과 행복으로 변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들 중 어느 한 편의 이야기는 우리들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 모든 이에게 마음의 평온을 주는 복음서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곁에 두고 위안이 필요 할 때 따뜻한 손길로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책이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자제와 절제, 겸손과 겸허함,  인생의 경외심, 추억, 나이듦, 세월으 흐름에 대한 여유로운 시선,기다림의 미학, 심성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삶을 지탱해주는 고귀한 가치들이 빛난다.
가정의 소중함, 영혼이 아름다운 여자들 이야기등 1,2,3 의 완결편으로 구성되어있는 잭 캔필드의 인생 에세이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25가지 이야기 ]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야기, 베품의 이야기들, 진정 우리에게 소중한 재산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영혼의 에세이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사랑을 잃은 사람, 가족을 잃은 상실의 고통을 겪는 사람, 삶의 좌절로 번뇌하는 사람, 세상에서의  고립과 외로움으로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일상의 힘겨움에 용기가 필요한 우리들과 기적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어머니의 사랑은 / 꽃잎마다 달콤한 향기를 머금은 / 향기로운 장미와 같다네.

    사랑을 받을 때가 아니라 / 진정으로 사랑할 때 / 그대는 축복을 받는다.”

 

   “친절한 행동은 얼마나 멀리까지 퍼져 나갈까? 그것은 지구의 반대편까지 퍼져 나갔다가 우리의 집 현관으로 되돌아온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는 가슴은 가끔 그 고통을 치유 할 수 있는 능력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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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상실, 공허감, 부재가 던지는 정신의 상흔(傷痕)이 너무도 고통스럽게 그려져 있다. 아버지의 부존재,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무지, 그래서 메마른 세상에 내던져져 고립과 고독을 영양분으로 성장한 남자,‘펠릭스 마레스코’. 생명의 잉태, 출산, 그리곤 아이만을 남기고 훌쩍 떠나버린 아내. 그에게 더없이 소중한 아이, ‘콜랭’만이 남겨졌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칭얼대는 아이에게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세상의 행복이란 가치 모두를 주려한다. 그러나 육아에 대한 외부모(싱글 파파)로서의 한계는 엄마의 복장, 금발머리와 원피스, 그리고 가공의 가슴, 냄새까지 가장한 기형적 모성애를 동원하게 한다.

아비로서의 사랑과 정성만으로 아이의 성장과 발달이란 과정을 온통 충족시키에는 미흡한 무엇이 존재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작품의 일관된 맥락은 오늘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족제도의 붕괴, 특히 외부모에 의한 자녀 양육의 사회 심리학적 성찰이랄 수 있겠다.

작가의 말과 같이 부성이 모성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인가? 의 추상적, 비본질적 문제라기보다는 남녀의 성적 본질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가치와 그 부모로서의 성적(아버지와 어머니라는)의무에 대한 불이행이 인간의 정신적 성숙에 미치는 사회학적, 심리적, 생태학적, 인류학적 고찰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아이, 그 아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를 태우고 다니던 빈 유모차를 끌어야 비로소 세상을 지탱할 수 있는 남자. 그 어떤 물건과 장소, 언어의 끝자락에도 아이와의 추억이 살아있는 남자. 그러나 아이는 엄마로 변장한 아빠의 보살핌보다, 어쩌다 나타나 안아주는 엄마를 향해 달려가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사랑을 받지 못했던 남자,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남자, 엄마의 사랑을 기대하지 못했던 남자의 손상된 심리가 보여주는 자기아이에 대한 집착은 광기로 표현된다. 잔인함과 연민이 중첩되는 이 모순된 사랑은 질투로 왜곡되기도 하고, 끝내는 증오와 분노로 일그러진다. 두려워진다. 역사시대 이래, 전통적으로 인간들이 수호해오던 가족과 생식과 양육의 도덕률이 물신과 쾌락이란 욕망의 추구로 전도(顚倒)된 오늘날, 그 신성한 가치는 몰락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기형적 괴물로 변해버린 인간들이 점차 증가하기만 하는 듯하다. 립스틱 ‘붉은 애무’를 짙게 바르고, 여장을 하고 경찰서에 출두하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섬뜩하게 드리워진 공포의 자락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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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보 경제학 - 새로운 부와 네트워크를 창출하는 콜래보레이션 성공전략
데본 리 지음 / 흐름출판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프레너미(Frenemy; Friend+Enenmy)'의 시대인 오늘의 경영환경은 “‘협력’이야 말로 적극적인 방어이자 공격”이라고 주창된다. 이 저작은 이렇듯 개별기업이 저마다 보유하고 있는 시장에서의 자기영역과 특성만으로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유아독존식 존재와 유지성장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소비자에 대한 제한된 이미지와 고객층을 가진 특정 브랜드, 기업 등이 변화의 이미지 창출을 통해, 보다 확장된 시장을 확보키 위한 전략으로서, 기업간, 브랜드간, 나아가 공간, 인물(스타)과의 제휴, 협력, 믹스는 자사(自社)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폭발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타 네트워크에의 진입을 의미한다.
[루이비통의 아트 콜래보래이션 예]

이제 동종업종간의 경쟁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의류업체가 가전업체의 경쟁자로 불쑥 나타나기도 하며, 전자회사가 화장품회사에게 고객을 빼앗기는 시장이 되고 있다. 야채가게에서 백색가전업체가 공통된 고객층의 마케팅 기법을 벤치마킹하여야 하며, 저가 브랜드가 어느 날 고가 브랜드의 수요를 사로잡기도하는 그야말로 산업간 컨버전스(Conversions)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무한경쟁의 시장 환경임을 직감하게  된다.

이러한 시장 환경에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 서로 다른 고객층을 가지고 있거나,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진 기업 간의 제휴나 협력은 고객층의 확대와 이미지 변신에 획기적인 성과를 제공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협력관계를 통한 기업성과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경제적 개념을 '콜래보노믹스(Collabonomics; Collaboration+Economics)'라 하고, 서로 다른 네트워크에 진입함으로써 얻어지는 폭발적인 수요의 확장은 1+1⪳2의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일종의 수확체증의 법칙이 지배할 수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 콜래보래이션의 사례로서 ‘LG전자와 프라다(PRADA)'의 제휴 산물인 ’프라다폰‘의 성공적인 론칭을 비롯하여, '루이비통(Louisvuitton)'의 ’스테판 스프라우스‘, ’무라카미 다카시‘와 같은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력, 대형할인점 ’타깃‘의 고급디자인 브랜드와 공조를 통한 수요계층의 확장 등은 콜래보노믹스의 전략적 가치에 매료되게 하기까지 이른다.

한편, 다섯 유형으로 분류하여 설명되는 콜래보래이션의 전략적 특성과 성과를 실증적 사례를 통하여 그 적용과정에서 실전적 전술, 구체적 형태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어, 콜래보래이션 전략전술집(輯)으로서도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다.

스낵컬쳐(Snack Culture)로 대변되는 오늘의 일회성 문화에 편승하면서 희소성과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루이비통이 선택한 ‘아트 콜래보래이션’, 타깃이 가치를 무기로 극과 극을 넘나드는 H&M과의 협력, 소니와 애플의 ‘공간 콜래보래이션’으로서의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나이키의 ‘스타 콜래보래이션’을 통해 브랜드 지향의 정체성을 비롯한 스타 레거시(legacy)의 이용방법, 아모레퍼시픽의 ‘시에나 밀러’로 인한 우연이 만들어낸 파파라치 마케팅까지 화려한 콜래보래이션의 사례들이 실전의 응용례로서 멋지게 수놓아지고 있다.

가격대와 관련 없이 물건의 가치를 따져 구매하는 '가치 사냥꾼(Value Hunter)'인 오늘의 똑똑한 소비자가 주도하는 시장에 적응하기위한 기업의 브랜드전략, 마케팅전략, 경영전략으로서 소비자의 마음을 훔치기 위한 마인드 점유율이 중대한 시대이다. 그래서 “브랜드간 경쟁력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시너지를 발휘하는” 콜래보래이션은 소비자와 공존하며 성장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업성장 프로그램으로서 당분간 시장중심을 누비는 언어가 될듯하다.

평이하고 수월한 언어로 쓰여진 이 저작은 하이터치마케팅, 감성마케팅이란 근자의 화두와 어울려 다양한 영역의 전문 집단들이 상호 경쟁과 협력, 그리고 다시 분열과 제휴로 이어지는 그 속사정을 이해하는 언어로서도 가치가 있다. 그야말로 21세기는 무수히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고 사멸하는 혼돈의 시기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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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오따쓰 -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앨런 와이즈먼 지음, 황대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콜롬비아하면 그 정국의 불안함이 얼마나 오랜 기간 지속되었으면, 지구 반대쪽에 있는 무관심한 사람에게 조차 내전과 코카잎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제아무리 인류애가 깊고 이상적이며 균형 잡힌 발상과 실행도 이러한 사회에서 30여년을 꾸준히 지속하고 유지하기란 불가능해 보이기만 한다.

‘가비오따쓰’, 원주민 야네로가 제비갈매기를 일컫는 말이자, 이젠 콜롬비아 중부 내륙 사바나지역의 생태공동체 마을의 이름이며, 지명이기도 하다. 또한, 인류와 자연의 조화를 실천하는 사람들 그자체이기 하며, 존재 가능한 유토피아(Utopia)의 이름, 즉 지상에 유토피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실행된 그 어떤 유토피아보다 훨씬 더 실천가능성이 있음을 입증하는 장소이다.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버려진 광활한 사바나의 초원에서, 숲이 성장하는 토양으로 만들어 내고, 지구 대기환경을 끊임없이 훼손하고 있는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태양광을 이용한 천연의 에너지 개발을 위한 무수한 연구노력, 그리고 오염된 식수로 질병에 노출된 극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식수원과 상상력 넘치는 펌프의 개발 등 오직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통해 풍요로운 이상향의 건설에 매진한‘파올로 루가리’를 비롯한 콜롬비아국립대 농화학부 토양화학자‘스벤 제텔리우스 박사’, 안데스대학 기계공학부 교수‘호르헤 쌉’박사등 최고 지성들의 야망에 찬 출발은 정말 인류의 대안적 생활양식처럼 기대와 열망으로 가슴 부풀게 한다.

제텔리우스 박사가 “새롭고 대안적이며 거주 가능한 생태공동체를 목표”로 하여야 한다고 오늘 이 공동체의 산파이자 후원자이고 주체자인‘파올로 루가리’에게 제언한 초기의 이상(理想)은 이제 울창한 열대삼림지로 변모하고, 자족경제를 마련한 명실상부한 생태공동체의 실증으로 우리에게 그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단기 생명보험 패키지, 무기판매, 경호시스템, 장례기업과 같은 “죽음이 가장 잘나가는 성장산업”이라 할 정도의 무차별적인 살상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콜롬비아의 불안정한 사회 환경을 극복하고, 이들 초기의 가비오따쓰인(人)들이 그들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30여년이라는 그 오랜 세월만큼 무수한 굴곡과 시련의 연속이다.
자연친화의 생태공간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농기구와 태양열온수기를 비롯한 난방기구, 풍력과 놀이를 이용한 펌프의 개발 등 공동체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초기의 부단한 노력에서부터, 공동체를 위해 지혜와 노동력을 아끼지 않았던 무수히 지나쳐간 사람들의 진실과 애환, UN과 UNDP 등 구호와 지원의 단절로 자생하기 위한 수익원천의 발굴이라는 문명사회와의 불가피한 연계에 대해 공동체의 이상을 손상시키지 않고 어떻게 그 접점을 찾아 내는가하는 실천적 문제점들이 생동감과 열정이 담겨져 기술되고 있다.

한편, 부분적으로 틀렸음이 입증되기도 하였지만, 1972년 로마클럽이 제출한 보고서‘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에서 “소비와 생산재의 문제에서 전 세계인이 집단적으로 자제하지 않으면, 인류는 한 세기도 지나지 못가서 실제적인 생존이 불가능해 질것이라는 경고”는‘지구를 구하기 위해 맺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조약’이라 일컬어지는 1987년 몬트리올협정으로 이어졌음과 같이 급격하게 파괴되는 오존층처럼 지구환경의 손상은 그 심각성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비오따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실로 지대하다.

물론 가비오따쓰의 30여년에 걸친 지난한 과정이 모두 성공적이지만은 않다. 작게는 그들이 만들어낸 수력터빈이 기술적으로 성공했으나 전력이 갖는 사회적 시스템의 연속성을 고려하지 않은 사회적 실패, 까싸바 분쇄기가 가져온 생활의 편리함과 생산성의 향상이 원주민과 농촌사회와의 괴리로 문화적 측면에서 실패하기도 한다. 또한, 공동체의 정체성이란 측면에서 “사람들은 우리를 왜 분류하려는지 모르겠소. 우리는 이념 주의자가 아니에요. 모든 이념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뿐이지요.”라는 루가리의 열띤 주장에도 세상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어느 한 틀에 끼워 맞추려는 이기적 잣대를 거두려하지 않는다. 더구나 콜롬비아 중국대사를 역임하는 끼비오따스의 조정자였던‘빼빼 고메쓰’와 파올로 루가리와의 공동체에 대한 견해 차이는 우리사회(한국)의 대안공동체의 실현에 있어서도 신중히 고려하여야할 다양한 과제들을 시사해주고 있다. 경쟁이 없는 사회, 이기적 소유욕이 배제된 삶을 사는 공동체로서 구성원들의 직무,기능 영역의 자율적 수행과 상호존중, 균등한 대우, 거주공간과 식사의 공동적 운영 등 200명 남짓한 공동체로서 불협화음이 대두되고 있지 않지만, 관리되어야 할 삼림의 규모와‘지속가능한’인류의 대안 공동체로서 성장하기 위한 구성인의 증가에 대응하는 시스템의 고려가 준비되어야만 할 것이다.

“발전이란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하는 질문에 국민총생산(GDP), 의료 병상수와 같은 물질적 지표가 아니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라는 루가리의 인류의 진정한 발전에 대한 진의는 “지속 가능한 기술이나 경제 발전 같은 것은 그에 걸 맞는 인간의 발전 없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와 맞물려 21세기 오늘 시장만능적 몰가치와 이성의 황폐화, 지역,민족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산업 국가들의 우리들에게 현명한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러시아, 인도, 중국, 멕시코가 제조 불법 화학물질(염화불화탄소(CFCs,프레온가스),메틸브롬화물)이 콜롬비아가 생산해내는 최악의 물질 코카인의 양을 능가하고 있을 정도로 인류는 이기적이고, 무지하며, 몰염치하다. 그래서 파올로 루가리를 비롯한 가비오따쓰인들의 이젠 울창한 삼림으로 변모한, 여전히 인류미래의 대안을 실험하는 유일한 장소처럼 보이는 야노스(Llanos)의 생태공동체가 어떤 구원처럼만 느껴진다.

수백만 그루씩 심어지고 관리되는 소나무, 그리고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복원능력으로 천연의 열대우림처럼 보이는 경외를 자아내는 숲, 그곳의 동물들, 새, 곤충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리, 경쟁 대신 협동이 들어서 있는 장소, 나누고 섬기는 존재로 살아남는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낸 독소에 젖어 허우적거리는 인류에게 잃어버린 감각을 되살려주고자 하는 시도가 지구 한쪽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본다. 누군가 루가리에게 말한다. “당신이 쓰고 있는 역사는 마치 시와 같군요.”가비오따쓰인들이 지금도 만들어내는 사바나의 풍요로운 삼림은 바로 우리들 미래의 삶이 되지 않을까?
앨런 와이즈먼의 이 저술은 그의‘인간 없는 세상’이 도래하기 전, 우리 인류가 준비할 수 있는 진정한 상상력이자 현실이며, 귀중한 대안으로서 아름답다. 인류의 오디쎄아(Odisea)로 발걸음을 내 딛는 가비오따쓰를 그리며...

“사람들은 가장 편리하고 풍족한 곳에서 사회적 실험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힘든 곳을 원했지요. 여기서 무언가 이루어 낼 수 있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해낼 수 있을 겁니다.”
- Paolo Lu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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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문명의 야만성에 대한 고발이라고 하여야 할까? 순수함에로의 귀환이라고 하여야 할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세상의 추악함이 이 보다 절실하게 표현 될 수 있을까?

어린 소녀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무차별적 위협과 억압, 강제, 추행은 끊임없는 도피를 종용한다. 이러한 지속적이고 극한적 삶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내 존재를 계속 유지해 낼 수 있을까?

 

난, 검둥이 계집애, 내 부모가 누군지,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 내가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단지, 다섯 살 인지 여섯 살 무렵의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자루에 갇혀 낯선 곳에 옮겨졌다는 어렴풋한 기억만 있을 뿐이다.

할머니보다는 마님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랄라 아스마’, 나의 주인인 노파는 나를 ‘라일라’로 부른다. 라일라는 몸종이자 벗이자 손녀처럼 키워진다. 그러나 라일라의 어린 몸을 탐하려는 노파의 아들과 폭력과 욕설의 겁박으로 위협하는 며느리가 있는 이 끔직한 세계는 노파의 죽음을 계기로 탈출로 이어지고, 작은 인연만이 존재하던 거리의 여자들, 공주님들이 사는 곳으로 도피한다. 그녀에게 열려 있는 세상이란 다시금 삶의 건강한 기회가 기다리는 땅과는 너무나 멀다.

노파의 며느리 ‘조라’의 추적으로 공주님들과의 그나마 자유로운 세계는 사라지고, 조라의 끔직한 폭압에 묻힌 구속의 노예로서 살아간다. 잠시의 자유의 기회처럼 보인 백인가정으로의 가정부로 대여되지만, 이곳에도 강자인 백인남자의 성적 탐욕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세상은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 벅찬 가혹한 환경일 뿐이다. 그녀의 생존적 도피는 의지가 아니라 그저 열려 있는 방향일 뿐, 선택이 랄 수 없다. 강자들의 문명 넘어 강을 건너면 소외된 사람들의 열악한 환경이 펼쳐진다. 문명의 야만적 질서가 뿔뿔이 내몬 거리의 공주, 그녀를 보살펴 주던 언니들의 만남으로 작은 위안이 된다. 그곳에는 삶이 없다. 질병과 가난과 죽음만이 도사리는 그 열악한 곳으로부터, 조라의 위협적 추적이 있는 곳을 떠나야한다. “호시탐탐 노리고 뒤쫓고 그물을 치는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라일라의 성장한 의식은 프랑스로의 밀입국을 결정하고, 바다를 건너, 에스파니아의 험한 산맥을 넘어, 꿈의 도시 파리로 들어가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이방인으로서의 지위는 또 다른 소외와 불안의 세상 이상이 아니다. 어느덧 성숙한 여성의 몸으로 거주증을 획득하기 위해 복싱에 몰두하는 연인에게 몸을 열지만, 그녀의 세계는 냉정한 현실사회의 이해와 아프리카 초원과 강을 내달리는 근원으로의 회기를 꿈꾼다. 거주증 없는 불완전한 지위의 여린 흑인 소녀에게 내민 손길은 여지없이 추악한 탐욕만을 드러내고,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을 전해주던, 그리고 세네갈의 강변 과 초원을 이야기하던 하킴의 할아버지 엘하즈는 그녀에게 죽은 손녀 마리마의 여권을 남긴다.

이 인간으로서 최초의 실존적 지위가 주어지는 행위는 자못 가슴을 에리듯 파고든다. 어디에도 그녀가 살아갈 바다가 없다. 라일라는 자신을 거친 물살에 이리저리 표류하는 한 마리의 가녀린 물고기라 생각한다. 그녀의 표류는 마리마란 실존의 존재가 되어 미국으로 표류한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그녀의 노래는 저 멀리 검은 자루에 실려 떠나기 전 “영겁의 시간 전에”,“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울음소리” 들리던 아득한 세계로 향한다.

“나는 당신에게 주문을 걸었네, 검은색은 내 진정한 연인의 머리카락 색이네.”

서구의 감추어진 사악한 탐욕과 위선, 문명이란 얼굴의 야만성, 세상의 이중적이고 기만적인 모습, 세계화에 감추어진 인종과 지역의 소외라는 얼굴이 아프리카의 당당한 정체성으로 환원되고, 그 아스라한 태고의 소리들이 있는 곳, 그녀가 떠내려 온 검은 대륙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황폐해진 소녀의 의식은 평온을 찾는다.

잔잔한 서정적 운율이 감아 도는 듯 한 포근한 감성이 내내 맴도는 작품이다. 다분히 저항적이고, 문명의 어두운 왜곡을 질타하고 있지만, 순수함으로의 회귀로 안내되는 여정에서 풍요로운 아름다움, 라일라의 밤!, 그 검은 마법에 매혹된다. 탁월한 문학이다. 소설이 빚어낼 수 있는 선의 극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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