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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상실, 공허감, 부재가 던지는 정신의 상흔(傷痕)이 너무도 고통스럽게 그려져 있다. 아버지의 부존재,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무지, 그래서 메마른 세상에 내던져져 고립과 고독을 영양분으로 성장한 남자,‘펠릭스 마레스코’. 생명의 잉태, 출산, 그리곤 아이만을 남기고 훌쩍 떠나버린 아내. 그에게 더없이 소중한 아이, ‘콜랭’만이 남겨졌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칭얼대는 아이에게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세상의 행복이란 가치 모두를 주려한다. 그러나 육아에 대한 외부모(싱글 파파)로서의 한계는 엄마의 복장, 금발머리와 원피스, 그리고 가공의 가슴, 냄새까지 가장한 기형적 모성애를 동원하게 한다.
아비로서의 사랑과 정성만으로 아이의 성장과 발달이란 과정을 온통 충족시키에는 미흡한 무엇이 존재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작품의 일관된 맥락은 오늘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족제도의 붕괴, 특히 외부모에 의한 자녀 양육의 사회 심리학적 성찰이랄 수 있겠다.
작가의 말과 같이 부성이 모성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인가? 의 추상적, 비본질적 문제라기보다는 남녀의 성적 본질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가치와 그 부모로서의 성적(아버지와 어머니라는)의무에 대한 불이행이 인간의 정신적 성숙에 미치는 사회학적, 심리적, 생태학적, 인류학적 고찰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아이, 그 아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를 태우고 다니던 빈 유모차를 끌어야 비로소 세상을 지탱할 수 있는 남자. 그 어떤 물건과 장소, 언어의 끝자락에도 아이와의 추억이 살아있는 남자. 그러나 아이는 엄마로 변장한 아빠의 보살핌보다, 어쩌다 나타나 안아주는 엄마를 향해 달려가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사랑을 받지 못했던 남자,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남자, 엄마의 사랑을 기대하지 못했던 남자의 손상된 심리가 보여주는 자기아이에 대한 집착은 광기로 표현된다. 잔인함과 연민이 중첩되는 이 모순된 사랑은 질투로 왜곡되기도 하고, 끝내는 증오와 분노로 일그러진다. 두려워진다. 역사시대 이래, 전통적으로 인간들이 수호해오던 가족과 생식과 양육의 도덕률이 물신과 쾌락이란 욕망의 추구로 전도(顚倒)된 오늘날, 그 신성한 가치는 몰락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기형적 괴물로 변해버린 인간들이 점차 증가하기만 하는 듯하다. 립스틱 ‘붉은 애무’를 짙게 바르고, 여장을 하고 경찰서에 출두하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섬뜩하게 드리워진 공포의 자락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