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51 | 152 | 153 | 15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담형식으로 써진 이 책은 빨리, 많이 읽기위한 속독이나, 다독의 방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 책 읽기를 즐겨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굳이‘책 읽는 방법’이란 것이 그리 요구되는 기능도 아니고, 그 즐겨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유하고 편리한 습관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 아니겠는가.

책의 성격이나 유형에 따라 책 읽는 자세도 달리한다는 대담자인 책 읽기의 전문가인‘마쓰오카 세이고’처럼 자신만의 습관적 규칙이 있듯이, 저마다의 편리한 자세가 있다. 책 읽는 방법에 이것을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나 도달해야하는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나는 소파에 눕거나 의자에 등을 깊이 밀어 넣고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해야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책을 읽다가 관심 있는 대목에 밑줄을 그을 수 있는 분홍색 형광펜과 책갈피를 항상 대동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적 조건을 만드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굳어진 습관이다.

그러나 이 전문가는 무엇인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가 보다. 책을 편집하고, 책을 집필하고, 책 읽는 전문화된 방법을 연구하는 편집공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책 읽는 행위 자체에 이미 목적을 수반한 사람이기에 우리 일반적인 독자들의 책 읽기와는 근원적 차이를 지니고 있는듯하다.
일례로 그는 읽은 책에 대한 연대기 노트를 만들고, 또한 인용노트를 만든다. 아마 이러한 자신의 읽기에 대한 역사를 만드는 행위가 독서의 질을 제고할 수는 있겠지만 글쓰기를 전제하지 않는 대다수의 우리들에게는 사실 낯 선 주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저자가 말하는 독서법은 그만의 방법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오히려 이 저작에서 수용하고자 하는 내용은 독서가 지니는 인문학적 성찰이라 하고 싶다. 예로서 “독서는 덮여있던 것을 열어나가는 행위”라 정의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열어나가는 주체로서의 독자의 겸양을 말하거나, “미량의 비자기(非自己)를 주입해서 자기라고 하는 면역시스템을 형성하게 하는 것”이라고 자기 반영으로서의 독서철학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편집공학으로 본 독서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저자와 독자 사이에는 어떠한 형태의‘커뮤니케이션 모델’이 교환되는 것으로 간주되는‘편집모델의 상호작용’을 주장하기도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관심을 추가한다면 이 독서의 대가는 어떻게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독서방법론들을 축적하였는지에 대한 역할 모델을 취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수많은 책을 읽다보면“빛을 발하는 한 권의 책”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면서 그것을 ‘열쇠 책’ 또는 ‘키 북’이라 명명하여 상호텍스트성이 독서력을 확장시키는데 얼마나 유용한지 알려주며, 독서를 지속시킬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독서리듬’에 대한 감각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저작은 독서에 대한 의미론적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전문화된 독서기술의 면모들을 엿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진정 독서력의 확장이나 방법론적 전환을 모색하는 독서가들에게는 훌륭한 참고서가 될 터이지만, 여기서 무언가 획기적인 독서기법의 획득과 같은 얕은 기능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그저 책을 통해 타자와 교류하고, 그곳에서 내 무지의 세계를 줄여나가며, 마음을 정돈하고 위무하는 즐거움의 세계로 책을 읽는다. 삶의 다양한 가치 그 자체로서의 책이 이미 풍요로움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차례독서법’, ‘표시독서법’, ‘매핑독서법’, 그리고 ‘대각선 편집독서’등 다독을 위한 다양하고 풍부한 독서방법론들이 체험적인 설명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 이 저술이 분명, 독서에 대한 생생한 인문학적 증언이 되어, 우리들의 독서를 보다 질적인 성장으로 나가는 길을 지원하고 있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책을 진정 재미있고 즐기는, 나아가 삶의 지평을 확장하는 도구로서 진일보한 방법론을 배우고자 하는 독서인들에게는 멋진 모델이고 지식이 되어 줄 고수의 비법 전수가 될 터이다. ‘책에 납치당하는 스릴’과  책의 마력을 거듭 확인하는 유익한 계기가 되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 불어넣기 아시아 문학선 8
메도루마 슌 지음, 유은경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집은‘오키나와’라는 일본속의 이방지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떨칠 수 없는 호감, 아니 동질의 유대감을 가졌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일본의 한 지역으로 표기되지만 일본이라는 국가나 일본인들과는 유리된 소수자들의 지울 수 없는 사연들이‘자이니치’라고 불리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우리의 재일동포들의 그것과 겹쳐 애틋하고 아련한 통증으로 살아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 어디에도 격렬한 구호나 감정의 과잉을 찾을 수 없지만, 본토라는 주류의 단선적 역사로부터 퇴출되거나, 배제되고 지워진 오키나와인들의 기억과 정체성, 고유의 문화적 리듬을 복원하려는 작가적 노력이 전체를 장식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폭력의 힘에 의해 그네들 기억의 표면에서 지워진 것들, 기억의 망각에 숨겨진 것들, 역사적 단일성이라는 강제에 의해 포함되지 못했던 기억들을 아주 나지막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작품들은 주체성을 장악한 자가 통합한 하나의 시간적 좌표를 벗어나고 해체하여 이질적이라고 버려진 그네들 고유의 풍속과 삶의 기억들을 잔잔하게 풀어낸다.

수록된 작품들에서 그네들 고유의 전통적 풍속으로 혼을 불어넣거나 영혼과 대화를 하는 신녀의 등장, 치성을 드리는 장면 등 근대화로 인해 퇴출된 비근대적 주술신앙의 요소를 도처에서 발견하게 되는데,「혼 불어넣기」,「이승의 상처를 이끌고」, 「내해」라는 세 편의 작품은 이러한 자신들만의 민속적 고유문화를 복원함으로써 오키나와인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재현하여 전통적 유산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노력에 직접 닿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 작품 중 특별히 애착이가는 작품으로 표제인「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을 들 수 있는데, 천진무구한 소년의 시선으로 비추어지는 비릿한 회상들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2차 대전 중 에는 일본인들의 폭력과 살상에 떨고, 전쟁 후 27년간의 미군 통치에서 일본에 반환되던 1972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유치하고 천박해 보이며”, “얼굴에 큰 점이 있고 깐깐해 보이는 노인네(이토 히로부미)가” 찍혀있는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 일본의 화폐로 바뀌는 것으로부터 “오키나와 반환이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라는 소년의 인식처럼 이 소설은 웅변조의 거대 담론식 접근이 아니라 잔잔한 서정적 화폭에 담아 배제된 역사를 회생시키고 있다.

강어귀 외딴집에서 과일나무를 가꾸며 낚시로 살아가는 노인의 뜰에 자란 과일을 훔치고 그 노인을 골려먹는 재미로‘습격’을 반복하던 악동 소년과 노인의 교감, 그리고 노인의 옛 이야기에 흠뻑 빠져 피어오르는 아련한 그리움을 담은 기억은 삶의 버팀목이 되었다는 옹기단지에 담긴 술의 사연으로 이어지며 코끝이 징하고 울려댄다. 이처럼 작품들은 지난날들의 기억을 끌어내는 후일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흐리고 애틋한 감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듯하다.

오키나와를 방문한 일본 황태자를 향한 화염병 투척사건을 작은 일화처럼 흘려버리고, 일본군에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남편과 아들을 둔 여인네들의 슬픔조차도 일상의 그리움으로 처리되지만, 가주마루(정령이 깃든 나무)아래서 죽은 영혼들과 대화하는 또 다른 영혼의 사랑과 외로움, 시린 기억에서 본토와 차별되어 자신의 것을 상실하고 이질적인 것을 수용할 밖에 없었던 오키나와인의 소외되고 배타된 역사를 소생시킨다.

미군의 스파이라고 일본군에게 끌려가 처형당했던 오키나와인, 미군으로부터는 일본인이라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 그리곤 반환 후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버리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신들, 미군기지에 스며들어 삶을 꾸려가는 기지촌의 여자와 아이들처럼 일본 속에서 버려진 낯 선 얼굴을 한 오키나와가 각각의 작품들을 채우고 있다.

달콤하고 아득한 감각과 “똑똑 부러지는 나뭇가지 소리가 가슴의 고동”소리를 닮은 단편,「붉은 야자나무 잎사귀」의 불안감과 죄의식, 자기혐오를 겪는 소년의 모습에서, ‘다우치’라 불리는 투계 ‘아카’와 소년을 통해 소수자의 분노를 표현한 「투계(鬪鷄)」는 통합되고 단일화된 역사에서 자기의 것, 강요된 단선과 엄연히 차이가 있는 자신들의 것을 생성하고, 주류에 대항함으로써만 지워진 자신들의 역사를 이야기 할 수 있음을 들려주는 작가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단편,「이승의 상처를 이끌고」에 등장하는 가주마루 아래서 붙잡고 놔주지 않는 영혼들이 들려주었던 얘기를 들려주면 진지한 표정으로 지그시 바라보곤 했던 남자가 있는데, 마치 이 소설집 전체가 들려주려는 그네들의 망각에 숨겨진 것들을 모두 들어주는 성스러운 존재처럼 이해된다. 역사화를 둘러싼 힘과의 대립에서 소외되고 지워진 것들을 여느 참여문학의 작품처럼 급진적인 양식에 담아 전달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역사 밖에 사건들을 안으로 끌어들여 뜨고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눈을 비로소 開眼시켜주는 역할을 담백하고 은은한 문장으로 멋지게 해내고 있다. 일본의 주류문학에 가려 보지 못했던 소수자의 문학,‘오키나와(沖繩)’를 이야기하는 메도루마 에게서 역사를 이야기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스맨 프로젝트 - 신자유주의를 농락하는 유쾌한 전략
앤디 비클바움.마이크 버나노.밥 스펀크마이어 지음, 정인환 옮김 / 빨간머리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국적 거대기업의 자본이 세계의 권력을 좌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해는 새로운 정보도 아닐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데 소용이 닿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거대기업의 힘과 이윤을 최대화하도록 고안된 체제를 밀어붙이는 신자유주의의 왜곡된 부정의(不正意)의 권력을 방조할 수만도 없다.
그래서 그 불공정성과 부정의를 시정해내기 위해 힘없는 시민,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는 그 반대의 의지를 시위와 자결의 행동, 시민세력의 집결, 연합 등 다양한 저항수단으로 기획하고 대항한다.

이 책자는 이렇듯 많은 시민저항 수단 중 아주 독특한 기획과 그 실화를 담고 있는데, 이들이 명명한 명의 보정(Identity Correction)'이란 해학적 접근이 그것으로, 지구촌 대다수인 시민의 권리를 짓밟고 소수의 거대기업과 지배권력의 이권만을 위해서 작동하는 못된 개인과 단체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 제 이름을 찾아주겠다는 갸륵한 행동의 이름이다.
특히, 이들의 명의보정 행위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를 관리, 집행하기위한 기구로 출범한 WTO(세계무역기구)가 애초의 취지를 상실하고, 다국적 기업을 소유, 통제하고 있는 이들에게만 좋은 일을 하는 이권단체로 전락하여 지구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지나치게 약자를 유린하는 정책에 몰두하는, 즉 부(富)라는 힘의 논리를 정의로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의 광신자 집단의 희화(戱化)와 조롱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

일례로 생태 주지사, 교육대통령이라고 자신을 미화시킨‘조지 W.부시’의 위선과 거짓에 대해 대대적인 명의 보정을 실시하는 것이다. GWBush.com이란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주지사시절 최악의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교육 민영화 추진 등 시민에게 상처를 주기만 했던 본색을 공개하여 탐욕스럽고 사악한 실체를 알리는 것과 같다.
사실 이 아주 영리한 사람들, 일명‘예스맨’의 활약은 세계경제의 정의를 세우고 지구촌의 균형적 발전, 부의 형평성 있는 배분, 신자유주의의 비뚤어진‘굶주림의 미덕’모델을 시정하려는 진지하고 용기 있는 것이지만, 그 천연덕스럽고 배짱두둑한 명의보정의 실천모습에서는 배꼽을 잡고 구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스맨의 활동에 감동을 받은 한 독지가가 제공한 Gatt.org 라는 웹사이트를 소유하게 되면서 WTO의 횡포 - G-8등 부국과 거대기업을 위한 일방적이고 모순된 경제정책 - 를 조롱하고 그 부정의를 시정하고자 하는 일련의 해프닝을 기획하게 된다. 사이트를 오해한 유수의 국제경제 관계자들로부터 강연의 초청, 방송 출연 등의 제의를 받고,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담아 펼치는 예스맨의 대담한 활약은 피식 피식 웃음을 그칠 줄 모르게 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무역기구’소속의 경제전문가로 가장하여 「무역규제 완화와 점진적 개선이란 개념: 거버닝 측면에서 본 1790년부터 현재까지」라는 그럴듯한 강연제목을 가지고 세계의 내놓으라 하는 경제전문가들을 앞에 두고 벌이는 코미디는 또다시는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 KLM항공과 이태리 Alitalia항공의 합병결렬은 이태리의 시에스타(siesta ; 정오의 수면)같은 문화적 후진성 때문이니 문화적 차이는 뿌리를 뽑아야 한다거나, 거대 자금으로 이루어지는 오늘날의 정치선거의 자본화를 위해 투표권은 상품화를 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지만 이 국제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CNBC방송의 대담자로 초빙되어 “힘을 가진 게 누구냐, 결국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이냐, 그 말이죠.”하며, WTO는 힘의 논리를 중시한다고 그 실체를 까발리지만 역시 어떠한 소란도 일지 않으며, 핀란드 탐페레에서의 「섬유산업의 미래」라는 주제의 국제회의 초청강연자로서 노예제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둥 간디는 순진한 보호 무역주의자였다는 둥 헛소리를 떠들고, 빈국에 세운 원거리에 있는 노동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종업원 투시 보조기(employee visualization appendage)’ 가 부착된 경영자 여가복의“1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황금색 남근을 위풍당당하게 앞세우고”흔들어 보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많은 석학들과 경제전문가, 기업인들 중에서 이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본질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바로 “전문성이란 게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읽게 한다. 고작 잘난 체 하는 한 페미니스트가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남성 중심주의적 아니에요?”라고 눈을 흘기더라니 정말 웃기는 세상 아닌가 말이다.

WTO식 세계화에 대한 100% 끔찍한 이미지를 그려내자. 그 허위와 거짓, 불평등과 힘의 실체를 보여 주자.라는 이들 예스맨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라는 얼굴을 하고 “새로운 아파르헤이트(Apartheid)’를 전 지구촌으로 확산”시키는 WTO의 실체를 이처럼 명료하게 명의보정한 예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들 예스맨이 연출한 이 희화된 행위가 지배 권력자들의 위선적 정책을 바로잡거나 방향을 이동시키는데 얼마큼의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영향을 주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발칙하고 영특한 기획처럼 이러한 사람들의 노력이 우리의 음울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것은 확신 할 수 있다. 이 기발한 명의보정이란‘공공패러디’는 불투명성과 부정과 부패로 흐리멍텅한 우리의 정치와 경제현실의 비판과 시정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론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가볍고 유쾌한 마음으로 신자유주주의의 허상을 읽어낼 수 있는 깜찍한 저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쾅! 지구에서 7만 광년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친구, 우정, 의리, 호기심, 모험심, 도전과 같은 어휘들을 떠올리게 하는 환상적 모험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무심한 듯 아이들이 던지는 어른들을 향한 시선에서 허점과 결여 투성이의 미흡한 기성사회를 보게 되고, 불완전한 어른의 세계를 뛰어넘는 또 다른 성장의 모델까지 제시하는 작품이라 하여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의미심장한 철학적 구조나 경직된 언어로 이루어진 문장과는 거리가 아주 먼 유쾌하고 발랄하며 활력이 넘치는 동화적이고 헐리웃 스타일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의 흐름으로 한 순간에 작품에 도취될 정도로 단순 명쾌한 구성에 이 정도의 주제를 편입시킨 작가의 역량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학업에는 관심이 없는 문제아인 나,‘짐보’, 그리고 과격한 데스메탈(death metal)음악에 심취하고 가죽잠바와 오토바이족과 어울리는 누나‘베키’, 프라모델이나 조종하는 실업자 아빠, 생계를 책임지느라 바쁜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라는 가족구성처럼 소설은 전통적 성역할을 답습하지 않으며, 짐보가 아빠에게 사다드리는 <초심자를 위한 500가지 요리법>이라는 요리책처럼 엄마에게 이혼당하지 않도록 돕겠다는 의도는 물론 의기소침한 어른들에게 세상 다시보기라는 용기와 긍정의 관점을 선사하기에까지 이른다.

한편 엉망인 학교생활이지만 마음을 흔쾌히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찰리’와 함께 겪게 되는 세상보기는 문제의 접근과 해결,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도전과 용기, 위험과 결단, 우정과 의리 등 사람의 정신과 관계에 대한 모델로서의 역할을 한다.
짐보와 찰리, 두 소년의 호기심은 우연히 엿듣게 된 두 명의 선생님이 주고받는 알 수 없는 언어의 기묘한 의혹에서 시작된다.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들을 미행하고 감시하며, 급기야는 몰래 잠입한 선생님 집의 다락방에서 이상한 언어로 써진 쪽지와 용도를 알 수 없는 팔찌를 발견 한다.
그러던 중 찰리가 실종되고, 의혹의 두 선생님도 감쪽같이 사라진다. 여기서 소설은 빠른 호흡과 긴장을 높이는 추리적 요소와 서술로 전환되어 급격하게 독자의 시선을 밀착 시킨다.

이 속도는 짐보를 살해하려는 낯선 이들과의 힘겨운 격투와 누나 베키와의 긴박한 탈출의 장면, 그리고 찰리가 써 놓은 <스푸드베치!>라는 비밀의 단서가 지목하는 곳, ‘스코틀란드 스카이섬의 코루이스크 호수’여정으로 급격하게 치솟는다. 이 여정에서 견원지간처럼 으르렁대는 남매는 형제의 사랑을 새삼 깨닫는데, “나는 내가 실은 우리 누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평생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하는 짐보의 이 대목은 누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내 아들 녀석이 제 누나만 없으면 안절부절 하는 모습과 겹쳐 슬며시 공감의 웃음을 머금게 된다.

쪽지의 좌표가 말하는 장소, 파란빛의 기둥, 그리고 쾅! 하며 사라지는 사람. 오직 친구 찰리를 구하겠다는 짐보의 열망은 예기치 않은 원통장치에 이끌려, 대마젤란 성운 방향으로 태양계 중심에서 약 7 만 광년 떨어진 곳인‘궁수자리 왜소 타원 은하’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알 수 없는 언어를 말하던 두 선생님, 바로 외계인를 발견하게 된다. 지구의 파괴를 기획하는 외계인의 음모와 이를 막고 지구를 구하여야하는 절대절명의 위기가 두 소년의 어깨에 지어진다.

다분히 동화적이고 몽환적 요소로 살짝 유치하기도 하지만 이야기에 내재한 어른들의 불완전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세상보기 제시라는 둔중한 주제의식은 재미를 오히려 깊게 만들어준다. 쾅! 우주여행의 시작과 도착을 알리는 굉음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정신을 구성하는 우주를 이해하고 나아가 새롭고 독창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소리의 다른 형식이 아닐까? 두 악동의 용기와 사랑, 모험의 여행을 감동적이고 성공적으로 그려낸‘마크 해던’의 또 하나의 걸출한 모험 소설이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으면 얼마나 다른 이해를 말하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하는 그런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의 아이, 몽텐
니콜라 바니어 지음, 유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8개월짜리 여아(女兒)의 해 맑은 눈망울과 천진스런 미소, 깔깔대는 그 순박한 행복의 메아리가 내 가슴속으로 밀려오는 듯하다. 인간의 발길을 허락한 적 없어 보이는 깊고 깊은 협곡과 산악, 야생의 동물들과 강과 호수와 습지, 그리고 섭씨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대 자연에 그대로 하나가 된 듯 한 몽텐, 디안, 니콜라, 이들 가족의 여정은 그대로 아름다운 시(詩)가 되고, 삶의 노래가 되며, 생생한 활력이 되어 스모그처럼 탁해진 정신과 마음을 청량한 기운으로 바꿔준다.

캐나나 북부 프린스조지에서 시작해 험준한 로키산맥을 넘어 알래스카 접경지 도슨에 이르는 이천사백 킬로미터의 대 여정은 변화무쌍한 자연이 인간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혈관 속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두려움으로 심장을 옥죄는가하면, 가족의 안전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문명으로부터의 엄청난 거리가 주는 무원(無援)의 숨막힘,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절대 고독의 조합이 된다.

겨울 여정을 위한 준비의 지점, ‘투카다시’호수로 가는 네 마리 말과의 신경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맞닥뜨린 회색곰과의 아찔한 조우, 쉼 없이 내리 퍼붓는 지긋지긋한 비, 모기떼 등 타이가 여름의 고단한 걸음에서 이들 가족의 신뢰와 인내, 사랑의 숭고함, 아니 인간정신의 경외를 목격한다.

특히 일 년 여에 걸친 기나긴 이 대자연 여행기가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우며, 행복감에 도취되게 하는 것은 새의 울음소리를 따라하고, 자연의 색깔과 움직임 하나하나를 자신의 커다란 눈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듯한 아기, '몽텐(Montaine)'의 자연과의 닮아가는 모습 때문이며, 그저 한 편의 서정시라 하여야 할 것만 같은 “아득한 아침의 빛”과 호수와 숲과 야생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향기와 그 무수한 자연의 오묘한 색깔들의 향연이 더 없이 소박하고 감동적으로 펼쳐지고 있음에서이다.

소나무를 베어 통나무집을 세우고, 온 세상이 얼어붙는 겨울 눈썰매 출정을 준비하는 과정과 함께 수놓아지는 그 매혹적인 가족의 풍경은 문자 그대로‘태초의 풍경’이 그러했으리라 만큼 천상의 행복감을 선사한다. “숲에 사는 것이 아니라 숲과 함께 사는”사람, “나는 산 속에, 산은 내 속에 있는” 사람, 자연과 합일이 되어 있는 이들 가족의 무한한 자유와 조화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부러워지기조차 한다.

여정의 작고 소박한 느낌과 사건들에서부터 생사를 달리는 위기의 순간들,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넘어 자유의지라고 까지 판단력과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 문명과 동떨어진 차디차고 고요한 눈 덮인 협곡과 얼어붙은 강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혹한 속 눈썰매, 그 안에 새근거리고 잠든‘눈의 공주’.몽텐의 사랑스러움에서 진정 인간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번뜩 깨우치게 된다. 어느덧 인간에게 낯 선 것이 되어버린 자연, 자연과 점점 멀어진 인간들이 말하는 진보가 얼마나 커다랗게 인간을 상심시키고 있는 것인지, 경탄과 환상의 기쁨을 앗아가 버린 것인지, 이들의 고귀한 경험이 어떠한 설득보다 강렬하게 다가온다.

 

‘니콜라’의 위험한 여행 제안을 따라주고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 아내‘디안’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 자연에 대한 민감성과 감수성이라는 놀라운 유산을 갖게 된‘몽텐’, “얼굴에는 서리가 맺혀있고, 눈썹은 얼어붙은”이들이 마침내 폭설과 혹한, 영하40도의 물살과 유빙을 해치고 ‘도슨’에 “다왔다!”고 외치는 순간은 단지 독자인 나에게도 정말 환상적인 순간이 된다. 해냈다! 아기도 해냈고, 니콜라와 디안도 해냈다. 보물보다 소중하고 값진 경험, 이들이 들려주는 록키산맥의 자연과 행로, 툰드라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몽텐의 미소, 정말이지 듬직한 명견‘오춤’의 활약이 물밀듯이 감동으로 밀려온다.  눈과 얼음, 장엄한 대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감수성 높은 야생 여행기이다. 아름답다, 경이롭다, 그리고 경외의 갈채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51 | 152 | 153 | 15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