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의 유산 -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
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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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저술의 표제인 “세계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은 한편으론 정당하지만 다른 측면에선 부당한 왜곡의 논리라 할 수 있다. 20대째의 CIA 국장은 19대까지의 CIA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와 수행업무분야가 축소된 기관을 맡고 있을 뿐이다. 21세기 초, 세계를 속인 이라크전쟁에 이르기까지 가장 추악한 인류의 시대인 20세기의 무자비한 횡포를 행사한 역대 미국정부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넘기기 위한 희생양으로 CIA를 삼았다는 시선을 피 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1946년 이래 CIA의 창설에서 오늘에 이르는 CIA의 각종 세계 공작과 첩보활동, 준군사적 활동의 정치적 배경과 시대별 미국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헨리 키신저와 같은 실질적 권력행사자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저질러진 무지한 음모들과 전쟁의 비밀을 적나라하게 정리하고 있다.

‘팀 와이너(Tim Weiner)'의 이 정리된 CIA역사는 내게 몇 가지 뚜렷한 주제를 시사한다. 그 첫째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대변되는 20세기 후반의 왜곡된 기막힌 세계사의 어처구니없음이며, 둘째는 정보전의 그 비밀스런 공작과 첩보활동의 수확이 실제 얼마나 무익하고 무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렇듯 은밀한 정보전쟁의 이면에 행사된 추악한 권력의 도덕성, 이성의 파괴적인 행태들이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치의 혼란과 무관하지 않음을 이해케 된다는 것이다.

CIA를 통해 취해진 비 서구국가들에 대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 수 많은 암살과 음모와 쿠데타, 그리고 전쟁의 동기가 오로지 미국의 정치, 경제적 이익과 소심한 자국 안보주의에 기인한 것이라는 은폐되었던 진실에서 20세기 지구촌을 지배하고, 경찰국으로 자임해온 미국 정부의 거짓과 속임수와 몰염치에서 인간의 사악함의 그 극한을 보는듯하여 자괴감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시작된, 지금은 해체된 소련(소비에트 연방)과 미국이란 양대 진영의 냉전은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을 저지하고, 민주주의 이념을 확산하여 자국(미국)의 영향력을 증강하겠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탐욕과 무지의 권력을 보게 된다. 서구사회로는 이탈리아의 정치인과 바티칸 정치조직에서부터 남아메리카의 쿠바, 과테말라, 칠레 등 여러 국가들, 그리고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중국, 대만,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의 동아시아지역 국가, 그리고 이라크,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근동지역 국가, 아프리카, 동유럽 등 전 세계에 대한 CIA를 통한 미국의 제멋대로이고 터무니없는 기만은 바로 20세기 전 인류를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내전, 갈등으로 온통 뒤덮는 최악의 세기로 빠뜨렸음이 그들의 증언으로 명료해졌다.

그들(미국 정부)은 그들이 은밀하게 진행한 수없는 준군사적 행동과 쿠데타의 부추김, 반군의 지원, 전쟁의 야기를 통해 그들의 명분인 자유민주주의의란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CIA의 공개 자료에서와 같이 그들의 순간적 이익이란 편의성에 의존한 무분별한 행동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일례로 “부패하고 믿을 수 없는 두 지도자인 남한의 이승만과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개석의 정보기관”을 단지 CIA가 동반자로 삼았기에 그들은 이 무능하고 사악한 정권들을 지원했을 뿐이며, 마약밀수범이나 살인자 등 범죄자는 물론, 잔인한 독재군사정권을 불문하고 미국의 권력자들의 한 마디에 친구가 되었고, 다시 적이 되어 반복되는 쿠데타와 내전 등 혼돈과 무질서에 휩싸일 밖에 없었음은 충격이상의 고통을 던져준다.

이러한 공개된 자료와 증언에서 이미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가치는 그 의미를 모호하게 하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서구유럽이 지구촌에 강요해온 보편성이란 가치의 붕괴를 직시하게 된다. 한편, CIA라는 정보원천의 60년에 이르는 연대기에 있어 비밀정보 활동의 속성과 그 한계를 성찰하게 된다. “개방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비밀첩보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 할 것인가? 거짓말을 수단으로 해서 진실에 복무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 할 것인가? 속임수와 교활함을 이용해서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킨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 할 것인가?”하는 본질적이고도 고통스러운 질문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군대의 파병으로 우리와 무관치 않은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정부(백악관,국무부,국방부 등)와 CIA의 거짓과 속임수, 그리고 오만으로 점철된 실패사례는 이 질문에 대한 한 단면을 시사해 준다. 또한 21세기에 초기부터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역시 세계를 속인 가장 극악한 거짓이었음을 모두 알고 있다. 여기서 전직 CIA요원들의 “지식이 없는 행동, 정보가 없는 전쟁은 위험한 일이었다.”는 자성(自省)과 같이 “60년 동안 수 만 명의 비밀 공작요원들이 수집한 정보들 가운데 정말 중요한 정보는 극히 조금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CIA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다.”는 비판은 비밀정보활동의 속성을 신랄(辛辣)하고 솔직하게 지적하고 있다하겠다.

소련의 붕괴(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인도의 핵실험과 같이 전혀 감지하지 못한 CIA의 정보활동이나, 중동(근동)에 대한 무지와 실패, 쿠바의 카스트로에 대한 미국의 끊임없는 압박과 침공의 실패, 베트남전의 완벽한 패배 등에서 “첩보활동의 실패, 사진 분석의 실패, 보고서 이해의 실패, 사고의 실패, 그리고 관측의 실패”와 같은 정보활동의 근원적 한계를 볼 수 있으며, 권력자(미 대통령 등)의 이해관계와 통치스타일에 따른 정보 왜곡현상의 불가피성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시선을 달리하여, 한 국가의 안보유지를 위한 정보활동을 실천하는 요원의 자질은 어떠해야 할까? 하는 질문으로 부터 “주어진 일을 하는 과정에서 교활하게 거짓말을 잘해야 합니다. 이런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덕적인 안정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비범한 인재”여야 한다는 지적이나, 정보활동이 지니는 원천적 속성으로서 적(상대국)의 기밀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가 인정하는 도덕적 행동규범이 지켜져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 질문에 “지금까지 인정되어왔던 인간 행동규범은 이 대치(전쟁 등) 상태에서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비위에 거슬리는 이 철학에 익숙해져야 하며, 이 철학을 이해하고 또 지지해야합니다.”하는 대답은 과연 진실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활동에 있어 인간 행동, 조직 행동에 대한 일탈이란 측면만으로 20세기, 그리고 21세기 오늘에 이르는 동안 미국행정부와 그 권력의 수반인 대통령, 그들의 수하인으로서의 권력집행자, CIA가 인류에게 저지른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전쟁에서 이기려면 정보가 중요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전쟁은 정보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전쟁터로 내보내는 청년들의 피와 용기로 이긴다.(...)정보가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은 전쟁을 피하도록 할 때이다.” 그들은 전쟁을 억제하고 전 지구촌 인류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정보와 권력과 힘(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되었으며, 그리고 뻔뻔한 거짓말로 세계사회를 기만했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세계경찰로서의 오만한 지위를 버려야 할 것이다.

이 저술에는 “‘잿더미의 유산’만을 남긴 채 떠났다. ”는 표현이 수차례 등장한다. 즉, 돌이킬 수 없는 폐해만 남긴 그네들(CIA, 미국의 최고권력들)의 수치스런 오점을 의미한다. 이 충격적인 보고서이자 증언이며, 역사서인 이 저술에서 자유와 정의, 그리고 혼돈에 가려진 이성과 파괴된 인류의 도덕적 가치를 바로잡고자 하는 저자의 용기를 읽는다. 자유주의적이지도 않고 민주주의적이지도 않은 20세기에 보여준 미국과 유럽적 가치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이제라도 전 지구적 보편적 가치와 새로운 이성의 세계를 위해 확장된 사유와 지성을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저작물을 단순히 CIA와 미국 정부의 숨겨졌던 비화로서, 그리고 비밀정보 활동이란 용어적 고뇌에 국한하여 보기에는 그 질량이 둔중하다.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위한 철학적 반성의 기반으로서 이해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저자의 오랜 세월에 걸친 노고와 뛰어난 통찰력이 만들어낸 노작(勞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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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리나 2008-10-1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술의 논지와 독자의 느낌이 분명한것 같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이별을 잃다
박영광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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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울었다.  그 상실이 너무 간절하고 애틋해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훔쳐댔다. 어, 지운이 녀석 이렇게 가슴 아프게 하나, 다시금 그리움에 절망하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별조차 잃어버린 이 지독한 역설이 사무치도록 아플 것이라는 걸 몰랐다. 사랑이란, 행복이란, 그리고 삶이란, 그것은 이미 살아있음의 다른 표현이 되어버린다.

사람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그러나 세상 어딘가에서 세상의 한 축을 떠받치고 살아가는 소박한 이웃인 경찰관 ‘진수’의 고단한 일상 속 작은 행복의 커다란 이야기이다.  진수는 정말 이별을 잃는다. 은빛 칼날이 그의 몸 깊숙이 들어와 헤집고, 수 없이 뚫려버린 구멍들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에 젖은  자신을 부여잡고 추적추적 뿌려대는 빗속에서 아스팔트 도로위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시신을 내려다 볼 때, 죽음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이별조차 앗아가 버렸음을 이해한다.

아내 ‘수경’과의 수줍고 마냥 설레기만 했던 만남과 아이들의 출산, 그리고 깊은 속 내비칠 줄 모르시는 어머니는 그에게 행복 그것이었으며, 삶의 의미 자체였다. 자신의 죽음에 비통해 하는 가족과 친지, 동료들과 지나온 날을 바라보고, 살아있는 그들의 슬픔에 한없는 연민을 보내는 여정은 내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 작품이 살아있음에 대한 고귀함과 가족이란 그 애절한 관계의 본성적 사랑, 그들과의 작은 일상들이 바로 행복이라는 삶의 한 시선을 던져주고 있지만, 주인공 진수의 직업적 신분인 일선 범죄 수사관들이 처한 우리사회의 후진적 구조와 위험에 내몰리고 혹사되어 피곤에 찌든 그네들의 현실이 작품의 중요 배경을 형성하고 있음은 그저 지나치기에는 부족한 무엇이 있다. 네 가족이 살기에 빠듯한 소형공동주택과 소형 중고 자동차, 생계와 소박한 미래를 위해 허드렛일을 해야만 하는 아내,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란 거의 존재가 불가능한 업무현실 등은 소설이 제공하는 또 다른 고발이라 할 수 있겠다.

살아있음의 감동과 곁에 있어주는 가족들을 향한 연민의 감정이 마구 솟아나게 하는 작품이다. 그저 감동적인 작품이라는 표현이외에 어떤 말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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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적 보편주의 - 권력의 레토릭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김재오 옮김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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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시기라는 서구화의 물결에 거세게 휩싸인 20세기, 그리고 21세기 오늘에 이르는 동안 우리의 신념 깊숙이 자리한 보편주의란 어떠한 것인가? 우리는 어떤 가치를 신봉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보편주의라 말하는 것은 진정 전 지구적인 보편주의라 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보편주의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계의 지성은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의 미(美)대륙 발견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를 세력범위로 통합하는 지구상 유일한 역사체제로 지속되어온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를 구성하는 지식기둥 모두가 견고함을 상실하고 있으며, 체제의 진동이 격렬해지고 무질서해지는, 그래서 근대세계체제의 권력들이 지난 5백년간 정당화시켜온 일련의 이념들이 더 이상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시기에 도달해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2001년9월11일의 사건은 바로 이러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와 새롭거나 통합된 전 지구적인 보편주의에 대한 고민을 가속화시켰다.

이 저술은 500년간 지속되어온 보편적 가치의 실체를 그 역사적 배경 하에서 조명하면서, 그 허세와 독선, 편파적이고 왜곡된 강자들의 기본적인 레토릭(rhetoric)으로서, 또한 범 유럽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근대세계체제 지배계층의 이익을 도모 할 강자들의 자기정당화 이데올로기에 불과했음을 역설하고 있다.

美 예일大 석좌교수인 저자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박사는 이렇듯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범 유럽 세계의 오만과 허세로 가득한 그들의 보편적 가치와 진리를 유럽적 보편주의(European Universalism)라 명하고 이들, 즉 서구문명이 16세기 이후 근대세계체제의 역사 내내 그 밖의 세계에 팽창, 확산시킨 보편주의의 모순되고 폭력적이며, 탐욕으로 일그러진 상(像)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적 보편주의, 다시 말해 오늘 우리의 가치관 중심을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의 다른 표현인 이 가치의 근원적이고 시계열적인 성찰에서 나 자신과 우리들의 무분별하고 무지한 가치사유와 그 무비판적 수용에 초라하고 궁색한 그 무엇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스페인 인들의 아메리카 신대륙의 침탈, 원주민 인디오들에 대한 추악한 범죄로 야기된 ‘후안 히네스 쎄뿔베다 와 바로똘로메 데 라스까싸스’의 1550년 논쟁을 근대세계체제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인식기반으로 하여, 18세기, 19세기, 그리고 1945년, 1968년의 인류 지식기반의 대 격변기별로 그들의 정당화된 보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최초의 ‘개입’에 대한 라스까싸스와 쎄뿔베다 논쟁의 핵심인 “누가 개입 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와 언제 어떻게 개입 할 것인가?”는 오늘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폭넓은 갈등의 중심에 놓여있는 정의의 문제이다. 16~7세기 비 유럽권에 대한 악랄한 침탈과 팽창은 비 기독교인인 이종교자의 개종, 그리고 야만인의 교화라는 명분으로, “ 그 팽창이 문명화, 경제성장과 발전, 그리고 혹은 진보”로 불리는 어떤 것을 확산시키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가치체계였다는 것이다.

이는 스페인이라는 서구의 신대륙이라는 그 밖의 세계에 대한 탐욕스럽고 잔인한 수탈행위가 자행된 이래 21세기 미국의 이라크 전(戰) 개입에 있어서도 동일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미국이 허구적이기 짝이 없는 ‘국제사회’라는 것에 주장하는, 인류사회에 위협이 되는 악으로서 이라크의 ‘야만성’이란 정치적 이고 자의적 수사로 치장된 구실을 내세워 그들이 이라크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 명분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누가 그 행위를 범죄라고 규정했으며, 그 행위들이 저질러졌을 때 그렇게 범죄로 규정되는가? 누가 처벌할 사법권을 갖는가? 처벌이 마땅하다면 처벌에 참여하는데 우리보다 더 적합한 다른 어떤 이는 없는가?”,  결국 이는 누구의 개입할 권리인가의 문제이며, 실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행동결의에서 15표 중 4표의 동의를 받는데 불과했던 이라크 개입은 승인 없이 독단적으로 자신(미국)의 의사를 밀어 붙였으며, 강자에 의해 전유된 전 지구적 보편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그들만의 정치적, 윤리적 가치의 실행임을 드러나게 한다.

한편, 18세기 서구열강의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향한 인식체계에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16세기 “쎄불베다의 교묘한 변주곡”이 있다. 이 변주곡은 고도의 “고급 문명세계”인 동아시아와 인도라는 잠재적 적(敵)이자 일정한 존중을 갖도록 한 낯선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며, “유럽 문명만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흥성한 관습, 규범, 관행”을 가지고 있다는 서구의 본래적 우위성을 입증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다. 여기서 이들은 '윤리적 선이자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오만한 “서구 관찰자의 발명품”으로 근대성(Modernity)'을 산출해낸다.

이들의 보편주의가 자민족중심주의이며, ‘특수주의’的이라는 역설을 낳게 한다. 이렇듯 위선과 왜곡의 보편주의가 19세기에 이르러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라는 전 지구를 세력범위로 하는 역사체제의 고착과 함께 독창적인 인식론인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이분법적 구별을 구체화하여 자기본위적, 윤리적 확신이라는 오만의 뿌리를 내린다. 서구는 보편적 가치를 가지나 그 밖의 세계는 특수적이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편협한 인식론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전 세계적인 대규모 탈식민화 기간은 새로운 추동력을 요구하게 되었고, 더 이상 ‘쎄뿔베다’ 식(式)기독교 복음전파라는 방식은 합당하지 않았으며, 이들은 자연법적 견지의 윤리의식에 호소하게 된다. 나아가 이의 합리화를 위해 “폭력수단의 사용만이 자신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명백한 악(惡)을 박멸할 수 있다는 구실”로 ‘꾸시네’ 식 민주주의 전파라는 왜곡된 정당화의 질서로 재빠르게 갈아탄다.

더구나 1945년 이래 의심 할 여지없는 서구 보편주의의 가장 유력한 형태인 ‘과학적 보편주의’의 대두는 “보편주의를 문화의 외부, 정치적 싸움과는 무관한 이데올로기적 중립에 위치시켜 강자들의 가장 교묘한 이데올로기 정당화 방식”으로 정착 시켰으며, 이는 즉시 “선(善)에 대한 추구를 우월한 지식의 영역에서 배제”시키고, “윤리적 비판의 가능성과 객관성을 평가절하 함으로써 윤리적 비판으로부터 강자를 지켜주는” “자기정당화 과정의 최종적인 못질”이 되었다.

이렇듯 500년간 대단히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전 지구를 지배해 온 그들의 보편주의가 기술과 부(富)의 엄청난 팽창으로 야기된 20:80과 같은 세계체제의 뒤틀린 양극화를 낳고, 무자비한 권력의 사용을 정당화하기 위한 독트린으로 전락하였으며, 선과 윤리의 평가절하와 장기 추세적 균형상태의 이격으로 더 이상 지식기둥으로서의 역할이 작동되지 않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제 이 왜곡되고 편협하며 독선적이고 자의적인 유럽적 보편주의를 대체할 ‘보편적 보편주의(Universal Universalism)'를 찾아야 할 터 인데, 우리는 모두 어떻게 서로 주고 받는 그런 세계에 도달해 낼 수 있겠는가? 저자는 “모든 지식의 재통합에 대한 희망을 유지시켜줄 유일한 종류의 인식론 - 배제되지 않은 중도(unexcluded middle)론 - 을 제안하지만 이 역시 그의 지적처럼 또 하나의 딜레마를 낳는다.

“성취할 가능성은 있으나 자동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실현될 거라는 보장은 없는 보편주의를 선언하고 제도화 할 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지식인들의 필연적 소명이다.

서구인들의 비 오리엔탈리스트가 되려는 노력, 보편주의가 특수주의를 포용하고, 특수주의가 보편주의가 되는 “일종의 끊임없는 변증법적”교환이 지속되는 그런 세계의 도래를 기대해 본다. ‘가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동서(東西) 지식인들의 고뇌가 도처에서 진중하게 논의되는 오늘은 보편적 보편주의를 발견해 낼 그 가능성을 희망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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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서평단 알림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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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물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실로 무수한 저술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낯익은 내용이 아니다. 그럼 나는 왜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30여 년 전인 대학시절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으며, 그것은 철저하게 지금에도 내 일상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나는 저자가 정의하듯이 분명 “사회적 신분상승이나 존재론적 변신”에 독서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달리 표현해서 지식습득과 인격형성에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또한,“책을 읽으면서 우리 정신 깊은 곳에 숨어있던 악의 요소를 깨끗이 씻어냈다.”는 극기복례(克己復禮)와 같은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책을 읽어왔다. 누군가 나와 같은 이는 없을까 하던 중 출판평론가 이중한 선생의 이야기를 발견했다. 그처럼 나는 “그저 스스로 사는 것에 대한 희로애락을 좀 더 폭넓게 느끼기”위해서였으며, 타인과 쉬이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으로 비교적 많아진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지 않겠다는 의도일 뿐이었다.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나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무하여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겠다는 정서적 위안이었고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절대적 도구였다는 점이다.

이렇듯 독서는 책을 읽는 사람마다 독특한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저자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언급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옳다. 이 옳은 조언들을 수식하기 위해 인용하고 비유하여 부연된 구구절절에서 그가 우리사회에 들려주는 지혜들 모두 아름답다.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의 일화부터, “도리는 이미 주어진 것인데, 아직 그 실체를 우리가 모르므로 책을 읽어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책은 나를 성장하도록 이끈다, 책은 징검다리이니,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처럼 책 읽음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명료하게 설명되고 있다.

한편, 책을 읽지 않는 우리사회, 그리고 청년들을 향해 뱉어내는 그의 패러독스는 멋지다. “오늘의 청년들을, 역설적인 의미에서 이해할만하다는 상념이 불쑥 들었다. 먼저 그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우리사회에 책을 읽고 성공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금력과 권력이 판치는 세상에서 지식과 지성의 가치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천박하게 동냥한 몇 줄의 지식으로 권력과 영향력의 속성만을 꿰어 차기만 해도 살 수 있는 사회이기에 그렇다는데 공감한다. 여기서 이 저술이 부분적으로 지적하는 독서와 교육계에 대한 상념까지 서술하는 것은 피하련다.

“책은 거짓과 위선, 그리고 권력의 타락을 눈치 채게 해준다.”, “책 읽기는 마치 여투는 것과 같다.... 온축되면 절로 큰 힘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세속적 의미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실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더 큰 가치가 있는 삶의 지혜로 드러나기도 한다.”와 같이 무궁무진한 책읽기의 효능을 서술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로서는‘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하는가?’의 의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나의 독서관(讀書觀)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일으키게 했음에 틀림없다. 바로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을 키우려 해서이다.라는 언급이다. 사람에 대한 연민이란 공감이 바로 우리를 독서로 견인하는 것이었음을 비로소 각성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끝으로 저자가 우리 인간들의 자제력 상실과 오만을 경계하는 언어로서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귀중한 조언 - 지식에 대한 열망에는 권력의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안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것이다. 책으로 쌓은 바벨탑은 그래서 위험하다. 무조건 앎만 추구하는 삶은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하는 파우스트다. 앎의 궁극에 이르면서도 지배와 권력의 욕망을 경계할 줄 아는 것. 이 역설을 부여잡고 있을 적에 진정 책의 주인이 된다. - 은 오늘의 혼돈된 우리들의 가치에 명쾌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즐겁게 읽었고, 공감했으며, 책 읽음의 고귀한 가치를 얻어간다.

주1)여투다: 돈이나 물건을 아껴 쓰고 나머지를 모아두다.

주2)온축(蘊蓄): (오랜 연구로 학식을 많이 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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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마녀 2008-09-2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님의 견해에도,지은이의 견해에도...깊은 공감을 보냅니다.

필리아 2008-09-2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해주시는 분, 즐겁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타인을 만나는 즐거움만한 것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권력의 경영 - 탁월한 경영자가 되려면 먼저 유능한 정치가가 되라
제프리 페퍼 지음, 배현 옮김 / 지식노마드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정연하고 탄탄한 이 저술이 지니는 본성에 우선 찬탄의 갈채를 보낸다.

‘권력’이란 언어가 가지는 그 근원적 몰염치함의 속성이 보이는 듯하여 나와는 무관하다고 손사래 치게하는 막연히 거북한 그 무엇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또한 인위적이든, 자연발생적이든 ‘조직’이란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기 마련이고 바로 이 조직이란 틀은 필연적으로 권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위대한 저술은 바로 우리 인간 개인이나 집단에서의 권력이란 속성과 그 발생의 원천, 그리고 권력이 사용되는 방법(전략,전술), 권력의 획득과 유지, 상실의 역학관계를 유수의 기업, 공공기관, 정부조직과 그 속에서 탄생한 권력자들의 부침을 통해 탁월한 통찰로 조명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조직에 종사하는 최고경영자를 비롯하여 경영관리계층의 인력, 정부 및 공기업 조직의 종사자뿐 아니라,  개인 단위의 모든 이들에게 삶의 중대하고도 긴요한 지혜와 인식을 전해주는 본질적 요소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권력의 본질에 대한 가히 해부학적 접근이라 할 이 저술은 마키아벨리즘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중세 봉건군주체제하에서의 권력론이라면 이 저술은 현대사회의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재조명한 ‘마키아벨리즘’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1부 조직과 권력을 비롯해 전편(全篇)에서 정의되는 권력의 해석과 그 본성에 대한 다채로운 관계의 분석과 조명은 이 저술에 몰입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의 신선함과 적나라하고 명쾌한 규명이 거침없이 서술되고 있다. 저자인‘제프리 페퍼’스탠포드 경영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권력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권력이란...타인의 행위에 대해 자신이 의도한 특정 결과를 초래하는 능력을 말한다....”,“권력은 저항을 극복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이다.”즉, 자신이 의도한 목적달성을 위해 행위를 개시하고 지속하는데 요구되는 근본적인 힘, 다르게 말하면 의도를 현실로 바꾸고 그것을 지속시키는 역량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어떠한 일이든 혼자 달성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존재치 않는 오늘에 있어 권력이란 타인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고자 하는 인간 상호관계에 대한 기술이라고 까지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이 타인에 대한 영향력의 행사라는 속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권력에 대해 논하는 것을 회피하는 쪽을 선호한다.”고 지적하고 ‘로자베스 캔터’의 연구와 ‘간즈와 메레이의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권력과 정치가 존재함을 알고도, 심지어 그것이 개인의 성공에 필수적임을 마지못해 인정하면서도 이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는 권력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증명하기도 한다. 이렇듯 신뢰받지 못하는 권력이지만 오늘과 같은“상호의존적인 체계에서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빈번하게 요구되는 중요한 사회적 과정”임을 부인 할 수는 없다. 저자는“우리는 위험 때문에 약품이나 자동차, 원자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위험을 이러한 힘들을 생산적으로 사용 할 수 있게 해줄 교육과 정보 등을 얻으려는 동기로 간주”하는 것과 같이, 권력은 인류 진보에 시급하고도 가장 필수적인 것이며, 따라서 우리들 개인 개인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수단을 불신하는 논리가 자동으로 합리화 되지도 않”듯이 고의로 방기(放棄)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이란 본성을 배경으로, 권력을 획득하여야 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행동의 귀결이 된다. 따라서, 나의 권력 기반은 어떤 것들인가, 내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들이 행사하려는 권력과 영향력의 기반은 무엇인가, 어떤 상황 하에서 통제권을 거머쥐기 위해 개발하여야 할 영향력의 기반은 어떤 것인가, 권력행사를 위해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전략 전술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바로 내가, 우리가 목적하는 것을 실현하기위한 필연적 지식이며, 능력이 된다. 이들 내용은 바로 금융서비스업체 E.F.허튼을 비롯해, 혼다, 제록스, 애플,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CBS방송, GE, 그리고 뉴욕시, 미 행정부 등의 최고경영자, 정치가들과 그들의 조직 예를 통해 권력의 관점, 권력 주체의 중요성, 권력의 상호의존관계, 권력 네트워크와 의존 패턴, 권력의 상징에 대한 멋 떨어지는 해설들이 주술처럼 펼쳐진다.

“사회적 행위를 이해하는 데에는 범주와 꼬리표가 가진 중요성을 인식해야한다.”,“필수불가결한 수단을 동원하여 수호하겠다...”는 링컨의 헌법수호선서의 무시무시함, 내가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누구의 협조가 필요한가, 내가 하려는 것을 무산시킬만한 적대자는 누구인가, 내가 성취하려는 것에 영향을 받는 자는 누구인가, 실세로 파악한 사람들의 친구와 동맹자는 누구인가.”와 같이 수단과 방법이 가히 공작적이라 할 정도로 치밀하게 조명되고 있는 것과 같다.

이 저술의 꽃 중의 꽃은 바로 2부 권력의 원천이라 할 만 하다.‘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권력은 개인적 특성으로부터 나오지만 상황이 제공하는 기회로부터 나오고 우리자신을 환경에 맞게 바꾸어나갈 수 있는 능력으로 부터도 나온다.”고 한다. 자기편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자원에 대한 통제력, 조직의 활동, 정보에 대한 장악력, 공식적 권한, 이들 3가지는 감히 권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자원, 동맹, 황금율”그리고 “좋은 자리”, 이들을 획득하여“공원국장 따위에서 뉴욕시전력공사이사장, 세계박람회의장, 연방주택공급 제1프로그램의장...”에 이른‘로버트 모제스’의“경쟁이 없는 틈새시장에서부터 권력기반을 만들어나간 다음 조직 내에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획득하고, 그 조직을 활용하여 더욱 결정적이고 실질적인 자원을 획득할 방안을 알아낸”사례는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를 능가한다.

저자의 가르침중 하나를 소개하면, “소유는 사회정치적 인식과 구속력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하는 간접적인 재량권일 따름이며, 소유하지 않더라도 접근을 규제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자원의 실제 사용과 그 사용에 대한 통제권 즉, 자원의 소유, 할당, 사용에 관한 규제를 만들고 그 규제를 실행하는 능력”을 통해 권력을 획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이 끊임없이 규제를 만들어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물리적 중심성이 의사소통 네트워크에서의 중심성을 낳는다는 것으로 GM의 최고경영자 마크네일러 기획그룹의 물리적 공간 설정의 실패사례와 같이 보안상 일급정보를 다룬다는 이유로 지하실에 격리하여 위치시켜 오히려 업무 프로세스에 긴밀하게 밀착하기 어려워지게 됨으로써 권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과 같다. 결국 위치가 갖는 상징적 지위를 선택할 것인지, 근접성을 택해 정보의 흐름에 가까이 있는 것과의 균형성을 고려하여 선택하는 것이 성공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보좌관으로서의 시작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된 ‘린든 존슨’의 중요한 권력의 원천인 ‘네트워크 포지션’의 획득과정 사례나, CBS의 윌리엄 페일리와 같이 “마음이 내키면 설명했지만 내키지 않으면 설명하지 않았다...그의 전제주의적 행동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보스로 여겼다.”는 일화, 이를 뒷받침하는‘예일대 사회심리학 교수 스탠리 밀그램’과 ‘주커’의 실험사례, 그 유명한 세계적 재벌인 ‘체이스뱅크 회장 재직시의 록펠러’의 융통성을 통해“감정적으로 초연함으로써 얻어지는 융통성은 권력을 키우기 위한 중요한 특성”에 이르는 엄청난 통찰이 빚어낸 설명들은 가히 권력론에 대한 바이블이라 치켜세우고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프레임짜기, 대비, 몰입강화, 희소성과 관련한‘심리학적 유도저항’이론, 대인영향력의 확보를 위한 사회적 증거효과, 영향력 행사의 기막힌 책략으로서 타이밍으로서의 기습, 지연, 마감시한,조직의 안정, 존속을 위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외부에서 유력 인사나 의사결정기구를 영입하는 것과 같은 적응적 흡수, 착각원리에 기초하여 정치적 배경, 언어, 의식등을 사용함으로써 사람들 속의 강력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견인 하여 합리적 분석을 방해하거나 흐리게 하는 등의 무궁무진한 권력실행의 전략전술이 ‘자신을 영입하려는 펩시의 존 스컬리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간의 일화’,‘메릴린치 도널드 리건의 예’,‘힘멜스트란드, 톰 피터스의 상징적 관리에 대한 정의’등과 함께 풍부한 실례를 기반으로 심도 있게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목표관철에는 권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는“선인(善人)과 악당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곳, 즉 세상을 일종의 원대한 도덕이 작동하는 곳으로 보려”하지만, “나쁜 사람들이 때로는 위대한 멋진 일을 하고, 착한 사람들이 때로는 나쁜 일을 하거나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고, 우리의 균형감각이 혼란으로 흐뜨러진다. “누구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고 과오를 저지르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권력 획득은 항상 매력적인 과정이 아니며, 권력 사용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우리는 목적과 수단이란 쟁점 때문에 심란해진다. 그러나 밀어붙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며, 목표관철을 위해 권력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반대자보다 더 큰 권력이 필요함을 이해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그것은 선(善)의 다른 시각으로서 존중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권력과 영향력에 대해 이처럼 명쾌하고 분석적이며, 실천적이자 이론적인 저술이 집필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걸작이다. 조직을 회피할 수 없는 우리네들이라면, 그리고 삶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원한다면, 이 저술은 우리들의 인생항로를 밝혀주는 등대가 될 수도 있으며, 기업이나 집단적 조직, 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위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경영전략서가 될 수도 있다. 올 최고의 경영 전략 도서라 추천함에 주저치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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