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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평점 :
“인간은 반성보다 자기 합리화를, 고통보다는 안락과 포만감을 추구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뇌는 (자기 생존에 불리한)기억을 삼켜버린다.”
- 67쪽에서
소설의 문을 열기 전에 거치는 것이 유익한 읽기가 있다. 이 책에는 별책 부록으로 짧은 소설 「낙원의 기억」이 있는데, 15년 전 만우절 학생주임의 티코 자동차를 엉뚱한 곳에 옮겨놓고 골탕 먹였던 기억의 장면들이다. 이를 바라보며 뿌듯하게 웃음 짓는 아이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마지막 문장이 이어진다. “적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에 한해서”
그리고 본 작품인 『낙원은 창백한 손으로』의 프롤로그에는 “삽을 들어올려 고통을 끝내주겠다고 선한 마음으로 머리를 다시 한번 내리찍”는 남자의 정제되고 효율화된 행동이 이어진다. 여기까지가 소설을 읽기 위한 워밍업이다. 두뇌 엔진이 충분히 가열되었으니 드디어 시작된다. 새해 첫날 변호사 차도진은 의문의 쪽지를 받는다. “선양 경찰서에 체포된 용의자의 변호를 맡을 것. 만일 그러지 않을 경우 15년 전 그날의 일을 낱낱이 밝히겠다....”
지역에서 명망과 보이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던 에덴종합병원 원장 차요한의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위해 서울청에서 파견된 정호연 경위는 용의자로 지목된 간호사를 취조하던 중 불시에 들이닥친 용의자의 선임 변호사라는 차도진과 마주하게 된다. 차도진은 자신이 변호하는 사건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아버지인 차요한의 피살 사건임을 뒤늦게 인지하게 된 차도진은 당혹감과 함께 자신이 함정에 빠진 것임을 알게 된다. 사건은 15년 전, 차도진이 자신의 기억에서 지운 어떤 사건의 진실로 향하게 된다.
폐광되면서 돈과 가족마저 잃은 은퇴한 광부들이 우글대는 곳, 이들은 오랜 질병인 폐결핵과 함께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차요한은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 사회의 주변으로 배제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그 어떤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을 무수한 이들 은퇴광부들을 이용해 신약 개발의 실험도구로 이용한다. 차요한은 주장한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니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한 거다.”, 즉 신약개발을 위한 실험 도구로 이용되어 그 부작용으로 신체의 근육과 뼈가 뒤틀리고 부러져 사망하는 것은 소위 의학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정당하며, 희생자들은 의미있는 죽음을 가진 것이니 영예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생텍쥐베리가 자신의 소설 『야간비행』을 통해 ‘인도적인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내버릴 때 인간은 비로소 위대해 진다.’라는 인간의 독자성과 생명윤리를 문명의 위대성과 맞 바꾸어 영웅적 행동이라며 공리주의적 셈법을 들이대는 그 터무니없이 기만적인 문장이 떠오른다. 이렇다 할 야간 비행을 위한 기술적 수단도 없이 오직 조종사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시행착오를 반복함으로써 새로운 야간 조종술과 항공로의 개척이라는 목적을 ‘위대한’ ‘인간 본연의 책임’이라고 선언하는 그 메마른 비윤리성을. 인류의 진보라는 대의(?)를 위해 인간 개개인의 생명은 그것의 수단으로 소용될 수 있다는 인간 도구화의 이 주장은 악의 기괴한 미화 아닌가?
이 악덕은 또 다른 악덕으로 순환한다. 15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차요한의 아들 차도진은 에덴병원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시체들이 즐비하게 싸여있다는 장소에 숨어들고 두 친구는 홀린 듯 살아있는 사람을 끌고가 소각시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두 학생은 두려움과 친구 차도진을 위해 본 것에 대해 입을 다문다. 인간이 한 개인의 야심을 위해 한낱 실험도구로 사라지는 현실이 정당화되는 세계, 여기서부터 모든 것은 뒤틀어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가면 뒤에 숨겨진 흉측한 본색, 아이는 절망하고 방황한다.
생텍쥐베리식(式) 대의에 굴종된 세계, 경찰도 학교도, 그 세계의 모든 어른들도 불의에 협력하거나 방관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에 열중한다. 실의로 절망한 소년 차도진은 실험용 주사액을 자신에게 주입하지만 극단의 환각과 폭력상태에서 차요한의 환상을 살해한다. 그러나 그 실제의 대상은 다른 이였다. 선양지역의 실질적 권력자에 빌붙어 부정한 돈을 챙기는 경찰은 범죄를 둔갑시켜 억울한 희생자를 만든다. 가난한 약자의 아들은 친구들의 거짓 증언과 조작된 증거에 희생되는 것이다. 그 위대한 대의라는 인간도구화의 악덕은 인간을 지속적으로 살해하며, 공권력과 결탁하여 법(法)망까지 무력화한다. 악은 이렇게 또 다른 악으로 순회한다.
15년 전 사건의 진실 속으로, 그 끔찍하게 부도덕한 생체 실험의 세계와, 권위와 재화에 종속되어 불의가 정당화되는 현실을 파들어 간다. 한편 사건을 축소, 은폐하기에 바쁜 부패한 선양 경찰을 피해 본청에서 파견된 민완 여수사관 정호연은 사건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새로 부임한 선양경찰서장의 피살, 에덴병원 간호사의 죽음 등 연쇄적인 살인이 이어지며, 사라진 도진의 15년 전 친구들과 유력한 용의자의 인상을 주는 인물들을 통해 소설의 미스터리적 구성미를 강화하며 강렬한 흥미로 독자를 몰아넣는다. 차요한의 살해자를 추적하는 현재의 수사 이야기와 현재의 범죄를 초래한 15년 전 진실의 이야기가 미로처럼 얽혀들며 핏빛으로 물든 농장 ‘낙원’에 이르게 된다. 나약한 짐승은 결국 강자의 도구일 수밖에 없다는 그 주장이 과연 이 세계를 어떻게 지옥으로 추락시키는지의 또 하나의 강력한 이야기다. “물을 마시다 죽게 될 걸 알아차린 사슴의 눈”에 방아쇠를 당기는 이들로 세상이 들어차게 된다면 인류의 존속은 아마 불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자기 안락과 이익을 위해 기억을 삼켜버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그러나 그럴 수 없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악의 고리를 자르고, 그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서 또 다른 악이 실행되어야 하는 이 세계를 확인하는 것은 사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작가의 전작인 『이름 없는 사람들』의 스릴러 판본이라면 곡해일까? 전작에서 말한 ‘사라져 가는 사람들을 대가로 빚을 가리고 이득을 보는 도시, 그들의 실패와 죽음을 연료로 휘황하게 빛나는 도시’가 바로 ‘선양‘ 일 것이다. 선양!,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와 인간들의 이야기다. 비윤리와 비굴함, 불의한 권위와 부패한 권력, 이 악의 처단을 위해 또 다른 희생양을 요구하는 악이 순환하는 세계. 속도감 넘치는 스릴러 작품이지만 함의하는 무게는 꽤 묵직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