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7 - 사부들의 죽음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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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IX / 김영사 29번째 리뷰] 제 7권에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제 단황야(단지흥, 일등대사)'가 본격 등장을 하지만, 그의 등장은 곧이어 벌어진 '강남칠괴(곽정의 사부들)' 가운데 '강남오괴의 죽음'으로 인해 바로 묻혀버리고 만다. <사조영웅전>에서 '강남칠괴'는 별볼일 없는 무공을 지닌 인물로 등장해서 '동사서독 남제북개 중신통'에 비해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줄거리 전체 분량에서 1/4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곽정과 황용'의 분량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며,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할 정도로 비중 높게 다뤄진다. 도대체 왜 이렇게 중요하게 다루는 것일까?

  <사조영웅전>의 시대적 배경은 중국 한족이 세운 나라인 '송나라(960~1279)' 시대다. 송의 시조는 '조광윤'이며 당나라의 멸망으로 '5대10국'으로 분열되었던 중국대륙의 혼란을 정리한 강력한 나라이기도 했다. 조광윤은 후주(後周)의 어질고 뛰어난 임금이었던 세종이 죽자 군 직책인 부장을 맡았던 조광윤이 근위병의 추대를 받아 천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게 대륙을 통일한 뒤 송나라를 건국한 뒤에는 문관을 우대하는 '문치주의'를 실시하며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빠르게 안정시키는데 공헌을 했다. 쉽게 말하면 '지방군'을 해체시켜 '중앙군'에 집중시켜 반란을 도모할 수 없게 만들어 나라를 안정시켰단 말이다. 그리고 각 지방의 장군이었던 세력들을 '글 공부하는 서생(사대부)'로 만들고, '과거시험'을 통해 중앙 관료로 취직시킬 수 있게 만들어 지방반란을 '원천차단'하는 동시에 학문을 권장하고 발달시켜 '인재'를 두루 키워내는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변방(국경지대)의 군사력이 취약해지며 '북방세력(거란, 여진, 몽골)'이 차례차례 송나라의 국경을 넘보기 시작했고, 그 시작은 거란침략으로 인해 '연운16주(황하 북쪽 지류)'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게 되었다. 이후 '요나라'로 성장한 거란은 송나라의 반격과 고려침공 실패, 여진족의 성장으로 인해 멸망하였고, 뒤를 이어 여진족이 급팽창을 하며 급기야 송나라를 '남송'으로 밀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사조영웅전>은 이러한 '금나라의 팽창과 몽골의 성장'을 시대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주요등장인물은 주로 '남송시대의 한족'으로 삼아 송 휘종과 흠종이 금나라 군사에게 붙잡히며 '북송'을 멸망에 이르게 했던 '정강의 치욕'을 되갚아주겠다는 애국적(?) 거사를 주요 담론으로 삼았다.

  이렇게 탄생한 애국지사가 바로 '곽소천'과 '양철심'이고, 두 사람의 아들은 각각 '정강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곽정'과 '양강'이 되었다. 허나 곽정은 온갖 고난을 극복하며 충효를 아는 '우국지사'로 성장하지만, 양강은 충성은 고사하고 애비애미의 죽음도 외면하는 불효자로 등장해서 끝내 나라를 배신하는 '금나라의 왕세자'가 되길 희망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송나라의 충신들이 내린 평가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했다는 점에서 고루하다 하겠다. 애초에 곽소천과 양철심은 망해가는 나라에 충성을 다한 결과 '가난'을 면치 못했다. 그런데 양강은 금나라의 여섯째 왕자인 '완안홍열'에 의해 부귀를 한몸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그래서 양강은 '선택'할 수 있었다. 가난한 친부모를 택할 것인가? 부귀한 양부를 섬길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는 망해가는 '송(한족)'을 선택할 것인가? 천하통일을 앞둔 '금(이민족)'을 섬길 것인가? 하는 고민과 상통한다. 양강의 선택은 '부귀'였으며, 이는 곧 '한족 출신'임에도 '이민족'을 섬기는 배신자의 길을 걷게 된 셈이다. 그러나 양강이 배신자로 낙인 찍혀야만 하는 것인가? 송을 건국한 태조 조광윤도 '후주의 장군 출신'이었으나 성공적(?)인 배신으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이러한 사례가 부지기수일진데, 어째서 '양강'만이 배신자라는 낙인을 받아야만 한단 말인가? 이는 '실패자'에 대한 냉혹한 잣대일 뿐이다.

  한편, <사조영웅전>의 충성스런 주인공인 곽정은 '한족 출신'임에도 몽골사막에서 태어나 테무친(칭기스칸)의 아들과 의형제를 맺고, 딸과 혼인을 약속한 부마(임금의 사위)다. 그런데도 '한족여자(황용)'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다 끝내 애초의 약조를 저버리는 '매정한 인물'일 뿐이다. 그런데도 곽정을 욕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것은 '(이민족이 보장하는) 부귀영화'를 버리고 '(돈과 벼슬 하나 챙겨주지 않는 무능한 나라에 매달리는) 애국충정'의 길을 걷는다는 뉘앙스를 풀풀 풍기기 때문이다. 이렇듯 '송나라'는 충효를 중시하고 예법에 얽매이는 고리타분한 면모를 뿜뿜한다. 오늘날 MZ세대의 관점에서 딱히 먹히지 않을 '코드'인 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등장했던 '20세기 말' 동아시아의 분위기는 대체로 이런 '짜치는 코드'가 대단히 중요했다. 비록 나라가 잘 살지 못해도, 나라가 국민에게 해준 것이 없어도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서 나라발전을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헌신하는 인물이 대단히 높히 평가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진 것이라곤 '의협', 하나뿐인 '강남칠괴'가 이를 잘 대변한다고 할 것이다.

  '강남칠괴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는데, 이렇게 설명하지 않고서는 <사조영웅전>의 주제를 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곽정의 사부들 가운데서도 가장 별루인 '강남칠괴'를 곽정이 왜그리 애처로울 정도로 사모하는지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절정의 무공고수들도 별볼일 없는 '강남칠괴의 죽음'에 그토록 애도를 표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강남칠괴는 '곽정'과 마찬가지로 부귀와 공명을 하찮게 여기는 '지사(志士: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아낌없이 다 바치는 사람)'의 품위를 지녔고, 그 품위를 제자인 '곽정'에게 잘 가르쳤기에 양강처럼 '이민족'에게 알랑거리지 않는 애국지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셈이다. 이런 평가가 오늘날의 'MZ세대'에게도 먹힐 수 있을까? 오히려 부귀공명을 택하는 '기회주의자'를 더 높이 쳐주지 않을까?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공부' 따위도 필요없고, 어릴 적부터 '너튜브'와 '주식'에 올인해 '플렉스(돈자랑)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요즘 세태에 <사조영웅전>은 그저 고리타분한 옛날 소설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라는 이런 '돈자랑'만 쳐 지랄하는 이들에 이끌려 운영되지 않는다. 망조가 들지 않고서야 이런 벌레만도 못한 이들을 중시하지 않는단 말이다. <사조영웅전>은 바로 '양강'같은 이들을 비참하게 제거해버리고, '곽정'같은 가난을 마다하지 않는 우직한 인물이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물론 '곽정'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캐릭터다. 더구나 '한족 코드'에 매몰된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을 대변하는 밥맛이기도 한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우직한 인물이 주는 매력은 끝이 없다. 우리도 '민족정신'을 내세운 위인들이 한결같이 '우국충정'하며, 부귀를 쫓아 '이민족'에 배신하지 않고 우리 겨레와 가난과 고난을 함께 했다는 이야기에 열광하지 않느냔 말이다. 물론 이런 위인들이 오늘날의 'MZ세대'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 '나라 잃은 설움' 앞에서, '고통받는 한 민족' 앞에서 플렉스를 외치며 '나라 팔고, 민족 팔아' 돈 자랑을 끝없이 해대는 꼴통들과 '동급'으로 취급 받는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못다한 이야기는 '마지막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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