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2 - 비무초친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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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XLVIII / 김영사 24번째 리뷰] 사조영웅전 2권의 키포인트는 '곽정과 황용의 만남'이다. 1권의 장황한 서론은 바로 두 소년소녀가 운명적으로 만나기 위해서 짜여진 '포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사조영웅전>의 주제인 '영웅이란 누구인가?'에 걸맞은 주인공으로 '곽정'이란 인물을 등장시켰다. 1권에서는 전쟁영웅으로서 '칭기즈 칸(테무친)'을 부각시켰고, 의협영웅으로는 곽소천과 양철심, 전진칠자, 강남칠협 등을 내세웠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소년 곽정'을 등장시키기 위한 배경역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어린 나이이지만 '영웅의 품격'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천재소녀 황용'을 등장시켜서 곽정의 유일한 히로인으로 짝을 맺어주는 스토리가 시작되므로 진정한 영웅으로 '선택'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몽골의 테무친, 한족의 곽정이 '영웅 후보'로 등장한데 반해,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너무나도 장황스럽기 그지없다. 이제 곧 등장할 '동사서독 남제북개 왕중양'이라는 다섯 명의 절세고수가 등장하는데, 이들 또한 '영웅의 풍모'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연 '무공고수'는 영웅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자질에 속할 수 있을까? 도덕성이 결여 된 '살육자'로 등장하는 무공고수를 과연 영웅이라 칭해도 되겠냐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무술고수들이 <구음진경>이라는 무공비급를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시작은 황약사의 제자인 동시 진현풍과 철시 매초풍이 보여주는 '최심장'과 '구음백골조'라는 악랄한 무공이다. 아무리 초절정의 무공을 연마하기 위함이라도 해도 무고한 사람들을 무술수련의 소모품으로 삼아 생명을 앗아가고 있으니, 결코 '영웅'이라는 칭호를 언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구음진경>을 '정상'적으로 수련한 결과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수련한 결과다. 훗날 곽정과 황용도 <구음진경>의 무공을 습득하지만 결코 이런 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는 '무협인'들도 바른 길을 걷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른 길을 걷고자 노력하는 무협인들만이 '영웅'을 논할 자격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아직 줄거리는 '소년 곽정'이 이런 비정상적인 무협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무공'을 착실히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더딤'은 '천재소녀 황용'을 등장시켜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어쩌면 작가는 영웅은 '속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성, 즉 서서히'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대기만성'처럼 큰 그릇을 완성시키기 위해선 빠른 시간 안에 완성코자 높은 열을 한꺼번에 가하게 되면 완성은커녕 금이 가고 깨지기 마련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보여주는 듯 싶다. 이런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강남칠괴와 구처기 간의 내기로 성사된 '두 소년의 취선루 대결'에서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2권에서는 그 '전초전의 성격'을 띠고 두 소년의 '성품'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곽정은 몽골 초원에서 뛰어놀며 '정직과 의협심'을 배웠고, 무엇보다도 '거짓'을 싫어하는 순박한 성격을 지녔다. 반면에 양강은 화려한 금국 왕실에서 자라며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게 자라 '귀족적인 품성'을 갖췄다. 거기다 천부적으로 영특하여 '배움'이 빠르다보니 성품이 올곧기보다는 '부귀와 권위의 맛'에 길들여져 경박스럽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탓에 힘들고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들의 곤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 같은 모습마저 보인다. 이런 둘이 '비무초친'이라는 무공대결로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어린 소녀와의 무공대결로 혼인할 남자를 구한다는 '대의명분' 앞에서 곽정은 단순한 무공실력을 뽐내기보다 '한 소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데 반해, 완안강(훗날 양강)은 예쁘장한 소녀를 희롱할 목적으로 뛰어난 무공실력을 뽐낼 뿐이었다. 이로 인해 혼인당사자인 '목염자'라는 소녀는 양강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이것이 그녀의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는 짐작도 못한채 말이다.

  한편, 금국의 여섯번째 황자 완안홍열은 무공고수를 섭외하여 '악비의 <무목유서>'를 차지해 천하를 여진족의 발아래 두려는 야심을 떨쳤다. 그렇게 등장한 사통천, 후통해, 양자옹, 팽련호, 영지상인, 그리고 구양극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은 끝내 '곽정의 무공향상'을 위한 들러리 역할에 그칠 뿐, 영웅의 품격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만다. 오히려 곽정과 황용 두 소년소녀에 의해 온갖 창피를 당하는 역할로 전락하고 마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무공고수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면서 진정한 '무협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궁극적인 주제와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무협소설'에 딱맞는 소재를 보여줌으로써 '현란한 무공'을 펼쳐낸다. 허나 '무협소설'에서는 언제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절세무공을 선보여준다 하더라도 그를 뛰어넘는 '또 다른 인물'내지 '또 다른 무공'이 등장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위기감'을 고조시켜 가슴을 두근두근거리게 만든다. 이런 '무협지의 맛'은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끝으로 <사조영웅전>에서 나타난 '잘못된 표현'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 책이 '중국소설'이고 1970년대 출간된 '텍스트'를 원본으로 삼았다고 하더라도 중국인들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몽고'와 '장백산'이란 표현은 좀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민족의 근원지로 삼고 있는 '백두산'을 중국인들은 '장백산'이라 부르고 있다.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의 발흥지로 여기고 있어서 오래도록 '접근'조차 허락치 않은 '영험한 장소'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족의 관점에서 보면 '오랑캐의 땅'일 뿐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여진족의 영지를 한족 정통의 '중국 자존심'으로 삼고 '장백산'이라는 명칭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렇게 '장백산 vs 백두산'이라는 명칭이 대결 양상(?)으로 불붙고 만 셈이다. 마치 '동해 vs 일본해', '독도 vs 다케시마'와 비슷한 양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선노괴 양자옹을 '장백산'에서 온 영웅으로 소개하는 것을 수정해주었으면 싶다.

  또 하나, 몽고(蒙古)라는 표현은 중국인들이 몽골인들은 낮잡아 부를 목적으로 고집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풀이 하면 '어리석을 몽'에 '옛 고'로 낡고 고루하며 어리석다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몽골정부'는 우리 나라에 '몽골'이라고 바로 잡아주길 요청했고 우리도 이를 받아들여, 현재는 '몽골'이라는 표현을 바르게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아직까지도 수정없이 그대로 쓰이고 있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원문'이 그러해서 잘못을 바로 잡기 힘들다면 독자분들께서라도 '백두산', '몽골'이라고 바로 고쳐 읽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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