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 세계대전부터 태평양 전쟁, 중국 근대사까지 전쟁으로 읽는 역사 이야기 썬킴의 거침없는 역사
썬킴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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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공부 좀 한 분이라면 '고대사'보다 '근현대사'를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물론 '시험공부'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까닭인즉슨, 공부할 분량만 따진다면 '고대사'가 분량도 적고 외워야할 것이 한정된 탓에 시험대비하기에 수월한 편이지만, '근현대사'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뭐 하나 빼놓을 수 없을만큼 중대하고 굵직한 사건이 수두룩 빽빽이라서 단순히 외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기 때문이다. 허나 시험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면 너무나 오래된 옛기록이 띄엄띄엄 전개되는 '고대사'보다는 숨막힐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인과관계'가 명백한 사료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근현대사'가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무 빼곡하게 전개되는 '근현대사'를 조목조목 읽어나가는 작업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특히, '1차 세계대전부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까지 20세기 전반기를 아우르는 부분은 너무나도 많은 국가와 인물이 얽히고 설켜있기 때문에 복잡한 전후맥락 파악도 쉽지 않고, '부분과 전체'적인 역사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밖에 없다. 하지만 '썬킴'은 해냈다. 이 복잡한 역사구도를 '전쟁사'라는 타이틀만으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관통하는 '전체'맥락을 잡아냈고, '부분'에 해당하는 일본제국의 태평양 전쟁 전개과정과 중국 근현대사까지 녹여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세계가 요동치는 역사의 현장속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조목조목 끄집어내면서 '구한말의 혼란기와 국권피탈, 일제강점, 그리고 해방까지'의 대한민국사를 책 한 권으로 엮어낸 것이다. 거기에 '역사관련 영화'를 소개하면서 역사의 이해를 돕는 친절한 안내까지 빼놓지 않아 역사를 더 쉽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역사책이 쉽고 재밌게 느껴지면 역사를 '단면'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일관된 관점'으로 서술하여 역사의 흐름이 거침없이 흘러가게 되고, 역사의 맥락을 어렵지 않게 쏙쏙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거나 '역지사지'를 하게 되면 매끄럽던 흐름도 틀어지게 되고, 쏙쏙 이해되던 '역사적 인과관계'도 복잡한 미궁속으로 빠져들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을 쉽고 재미나게 읽을수록 그속에 감춰진 '역사의 이면'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숙제를 남긴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이 책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오로지 '히틀러'라는 악당이 혼자서 지지고 볶고 있다. 그리고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전쟁도 종식된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히틀러와 대적해서 싸웠던 '연합군'은 모두 선량한(?) 모습만 그려내고 있다. 과연 '2차 세계대전'을 이렇게만 알고 끝내면 될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으로 맥락을 잡았다면, '또 다른 역사책'으로 더 자세하게 파고드는 작업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되어 나치 독일 같은 나쁜 놈들은 절대 전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착한 연합군은 또 다른 나쁜 놈들을 때려잡아도 되는 '반쪽짜리 교훈'만 얻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착한 전쟁'은 없다. 모든 전쟁이 다 나쁘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히틀러'가 나쁜놈이라는 사실은 잘 알면서 왜 그 시대에 '히틀러' 같은 미치광이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잘못을 가리지 않기 일쑤다. 만약 1차 세계대전을 종전하면서 전세계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대량학살'을 자행할 수도 있다는 뼈아픈 실책을 낱낱히 밝히고, 다시는 이런 비극을 연출하지 않기 위해 처절한 반성을 했다면,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승전국은 의미 없는 전쟁에서 잃어버린 손실을 보상받기 위해 독일에게 가혹한 전쟁배상금을 요구했고, 이를 갚을 길이 없는 독일은 '전체주의(나치즘)'를 통해 대반전을 꾀했던 것이다. 이런 망상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떠벌리는 '히틀러'라는 미치광이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또한 승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은 '승전국'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짓밟아버릴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고, 설마 미치광이일지라도 전쟁까지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완벽한 오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모든 전쟁의 책임을 '히틀러'에게 덤터기 시키고 '연합국' 측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철저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면 큰 잘못이다. 이런 잘못으로 또다시 '푸틴'이나 '김정은', '시진핑' 그리고 '네타냐후' 같은 미치광이들을 자극한다면, 이들이 '또 다른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할 것이냔 말이다. 끝내 전쟁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악당'을 처치하는 것으로 종결지을 것인가? 그런 종결이 수 억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동반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고백하건대, 난 이 책을 무척 재미나게 읽었다. 지금도 썬킴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있으며, 역시나 매우 재밌게 읽고 있다. 그런데 '전쟁사'를 위주로 재미나게 풀어냈고, 어렵기만한 역사를 쉽게 접하게 해주며, 몰랐던 사실을 일깨워주어 그동안 궁금했던 '역사의 진면목'을 깨닫게 해주는 유익한 독서를 경험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인류가 경험한 가장 끔찍한 전쟁을 '블럭버스터급 전쟁영화'로 감상한 것 같은 느낌만 들고, 두 번 다시 이런 전쟁을 치르지 말자는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칫 '밀리터리' 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역사책인 것만 같이 안타까웠단 말이다.

 

  전쟁은 절대 홀로 치룰 수 없다. '고장난명'이라는 고서성어처럼 손바닥 하나로는 손뼉을 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나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도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영화감상'하듯 나몰라 관객이 되어 관망하게 된다면 끔찍한 전쟁은 결코 끊이지 않고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어야만 한다. 특히, '전쟁사'를 공부한다면 발발원인만 분석하며 패배한 쪽의 잘못만 부추기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승리한 쪽'은 잘못을 탕감하게 되어 '전쟁은 승리하면 무죄'라고 하는 그릇된 편견을 갖게 될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전쟁도 언젠간 끝이 나겠지만, 승리한 쪽이 '착한 편'이라고 판결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처럼 재미난 책에 딴죽을 걸어 죄송스런 마음뿐이지만, 너무 재밌다보니 하마터면 나도 '전쟁광'이 되어 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우려스런 마음에 몇 자 적어보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착한 전쟁은 없다'는 사실이 상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차례의 끔찍한 전쟁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만이라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승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히틀러 같은 '미친 전쟁광들의 뇌구조'라는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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