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
헤르만 헤세 지음, 구기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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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시절에 꼭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한다면, 단연코 <데미안>을 꼽을 것이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표현으로 청소년들을 싸잡아 놓지만 우리네 청소년들은 그저 '폭풍속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존재'만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나역시 청소년 시절을 겪었지만 '질풍노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오리무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던 것 같다. 뭔가 '해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면 '이것저것 다 해볼 시간 따윈 없다'면서 그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지금, 나도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만 뼈져리게 느낄 뿐이다.

 

  그렇다면 청소년 시절에 꼭 챙겨야 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너무 많지만, 딱 세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는 '건강'이다. 10대에는 돌도 씹어먹을 정도로 무엇이든 왕성한 시절이기 때문에 '건강'을 소홀히 하기 십상이다. 이는 20대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무엇을 하더라도 건강을 해쳐가는 줄도 모르고 미치기 일쑤이고, 정작 3, 40대가 되어서야 서서히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마련이고, 50대 이상이 되면 여기저기 몸이 망가져서 '하고 싶은 것'이 생겨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예전이야 나이 50살을 넘기면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죽을 날'만 손꼽고 살았지만, 이제는 '100세'를 바라보고 살아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50살이 넘어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넘쳐날 나이다. 그런데 정작 건강은 10대부터 챙기지 않으면 50살을 넘기기 힘드니 미리미리 챙겨야만 한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 망가지고 난 다음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사이보그', '안드로이드'가 되어 영생을 누린다해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청소년 시기부터 건강을 챙기는 습관을 올바르게 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둘째는 '인성'이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형제끼리 돈독하고 친구에게 우애로운 것도 해당되는 것이 '인성'이지만, 청소년 시기에는 '제 앞가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배려(싸가지) 없음'을 경계하고,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갖추는 것을 통틀어 '인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흔히 말하는 '인성 쓰레기'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개쓰레기'밖에 될 것이 없다. 아무리 학벌 좋고, 돈 많아서, 사회지도자 자리에 떡하니 올라가도 '인성 개쓰레기'라면 우리 사회에서 절대로 얼굴 들고 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인성이 나빠도 '잘 생기고 예쁘면' 봐줬고, '학벌 좋고 돈 많으면' 깨갱했고, '금배지 달고 '사'짜 직업 갖고 있으면' 그저 굽신굽신 해줬을지 몰라도, 이젠 그딴거 다 필요없다. 인성이 더럽다고 '확인'되는 순간 모든 걸 박탈시켜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공부'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공부할 시간은 많다. 아니 공부는 평생해야 하는 것이기에 딱히 시기를 논할 꺼리가 없다. 그럼에도 청소년 시기에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까닭은 오직 청소년 때만 유일하게 '공부'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난 다음에는 '공부'에만 전념할 시간이 없다. 하더라도 먹고 살아야 할 '돈벌이 수단'과 병행해야만 한다. 전문적인 용어로 '경제적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 20대 이후부터는 '집 걱정', '결혼 걱정', '육아 걱정', '노후 걱정' 등등의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하기 때문에 '뛰어난 학업 정진', '훌륭한 가치관 형성'과 같은 한가로운(?) 공부는 오직 '청소년기'에만 할 수 있는 특권인 탓이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와 <데미안>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아시다시피 헤세는 불우했던 학창시절을 보낸 뒤에 '자살'을 극복하고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아 문학의 거장으로 발돋움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야 했던 수많은 갈등과 고뇌, 그리고 가난한 환경이 주는 핍박속에서 모진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찾아내 인류애를 성찰시킨 위대한 작가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찰한 내용들은 헤세의 소설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고,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이겨낸 깊은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데미안>은 작가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조국을 위해 싸울 것인지, 아니면 배신자로 낙인 찍힐 것인지 고민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건 바로 '선과 악의 공존'이다.

 

  책속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우연히 '두 개의 세계'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그렇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선과 악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에 큰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러다 만난 '데미안'이란 인물은 선한 인물인 것 같으면서도 악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묘한 인물이었다. 그러면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며 선과 악의 개념마저 혼동해버릴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만난 베아트리체와 피스토리우스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지만 아직은 그뿐이었다. 그러다 첫사랑의 얼굴에서 다시금 데미안을 떠올린 싱클레어는 '이상한 꿈'과 함께 그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도착한 답장에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적혀 있을 뿐이다. 세상은 알, 그 잡채이고, 그 경계를 허물고 나와야 새로운 세상과 조우할 수 있으며, 그 새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는 묘한 말과 함께 말이다. 여기서 '아브락사스'는 신의 이름인데, 이 신의 특징은 선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악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과 악의 구분'은 모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전쟁에 참전한 싱클레어는 전투중에 포격을 받아 부상병으로 치료를 받는데 옆자리에 누워있는 데미안을 발견한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데미안은 이 만남이 마지막이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린다. 싱클레어는 문득 잠에서 깨어나 데미안을 찾았지만, 그는 이미 떠난 듯, 낯선 사람만이 누워있을 뿐이었다. 싱클레어는 그 뒤에도 아픈 일 투성이었지만 더는 괴로워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소설은 끝맺는다.

 

  흔히 <데미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구를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에서 찾곤 한다. 더 넓은 세상을 맞이하려면 '경계'를 깨고 나와야만 하고, 그러려면 '기존의 세상'을 깨부수어야 한다며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매우 깊이 음미하곤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세상'이란 무엇이고, '더 넓은 세상'이란 무엇인가?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첨부한다면 '선과 악'을 구분하며 괴로워하던 싱클레어라는 껍질을 깨고 '선과 악'을 구분할 것도 없이 더 넓고 깊은 세상을 훨훨 나는 데미안을 맞이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데미안이 누구인가. 최초의 살인자 '카인'도 그저 살인을 일삼는 나쁜놈의 대명사가 아니라 하느님마저도 용서할 수밖에 없는 '능력자'라고 말하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옆에 있던 도둑놈마저 예수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지조를 지켜 자신의 죄값을 달게 치룬 멋쟁이라고 추켜세운 인물이 아닌가 말이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우리가 '악인'이라고 낙인을 찍은 사람조차 '어쩌면' 선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을 지닌 인물이 바로 '데미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데미안>을 해석하면 청소년 필독서라고 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다. 만약 싱클레어에게 앞서 말한 '세 가지'를 이미 갖춰진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곰곰히 따져보길 바란다. 싱클레어가 '건강'을 챙기다 못해 뛰어난 운동실력을 갖춘 능력자였다면, 감히 '프란츠' 따위가 어린 싱클레어에게 삥을 뜯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싱클레어가 '두 개의 세계'를 깨달음과 동시에 '올바른 인성'까지 깨우쳤더라면 프란츠 떼거리의 어설픈 협박에도 전전긍긍하지 않았을 것이고, 데미안의 알쏭달쏭한 견해에도 따박따박 반박을 하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공부'까지 짱 먹었다면 첫사랑 베아트리체는 싱클레어가 꼬시기도 전에 넘어왔을 것이고, 범생이 피스토리우스의 궤변 따위에 고민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참가한 전장에서도 하는 일마다 명쾌했을 것이다. 애당초 전쟁은 완벽한 폭력일 따름이니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자신이 참전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면 '전우'를 위해서 내 한몸 희생할 각오로 싸울 것이고, '지키기 위한' 전쟁을 할 뿐, '빼앗기 위한' 전쟁에는 결사반대를 할 것이고, '조국을 위해' 무모한 희생을 강요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무뇌충'들에게 저항의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조국을 위한다며 하나 뿐인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라고 말하려면, 그 '조국'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약자'를 위해서 뭐라도 했어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 위대한 조국이라면 애초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을 것이며, 일어났더라도 애꿎은 희생을 줄이기 위해 '약자'를 총알받이로 내세우기에 앞서 '힘센 강자'를 내세워 적들이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게 든든히 막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약자'들도 뭐라도 내놓을 것이 없어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이 아니냔 말이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청소년 필독서여야 한다. 제 앞가림을 하기 위해 '건강, 인성,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모두가 사는 '공동체 사회'에서 우월한 일원이 되어 밝고 멋진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헌신하는 위인으로 거듭날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돈돈돈'밖에 모른다. 돈만 벌면 장땡인 듯 스스로 '개쓰레기'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지치고 힘들 때에는 '사회비판'이랍시고,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비난을 나불댄다. 그런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 '인성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당신도 한몫 단단히 하지 않았으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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