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6 :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6
신현정 지음, 박종호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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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학문의 경계'를 부수는 과학책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과학발전사의 '패러다임(틀)'을 깨는 결정적 열쇠가 되었다면 슈뢰딩거의 책은 물리학자가 생물학책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통섭의 열쇠'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마치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문구처럼 '새는 알껍질을 깨고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가 '틀안에 박힌 지식'에 머물지 않고 '지식의 경계'를 허물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을 선사한 셈이다. 실제로 슈뢰딩거 이후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전공분야'를 뛰어넘어 다양한 학문연구를 한 덕분에 현대과학은 진일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지금까지도 '과학자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을 하며 꾸준히 읽히는 책이라 한다.

 

  물론, 과학책은 시간이 흐르면 '낡은 지식'이 되어 쓸데없게 되어 버리곤 한다. 스마트폰 출시 이후에 더는 고물과 다를 바 없는 '플립폰'을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리한 폰'이 등장하고나니 더는 전화기가 '전화와 문자'만 보내는 통신수단으로 그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안테나 뽑아 다이얼을 띠띠 누르던 그 시절의 낡은 폰을 오늘날에는 거들떠 보지 않는 것이 상식일테다. 그런데 여느 폰과 달리 '새로운 폰'을 발명하는데 유용한 팁을 선사하는 폰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영리한 폰'을 넘어 '초월하는 폰'을 연구하는데 기반이 될 영감을 선사하는 폰이 있다면 꾸준히 쓰지 않겠느냔 말이다. 일반 사용자는 쓰지 않을지라도 '핸드폰 발명가'라면 기꺼이 읽고 또 읽으면서 발명의 초석을 다질 것이 틀림없다.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바로 그런 책이다. 과학자들에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샘솟게 만드는 영감책 말이다.

 

   사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전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읽었을 때 '오류'가 많은 옛날책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도 70년도 훌쩍 넘은 이 책이 현재의 과학도들에게 필독서가 된 까닭은 바로 '과학의 경계'를 허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슈뢰딩거는 물리학자(양자역학)였다. 그런데도 물리학자의 눈(관점)으로 '생명의 비밀'을 파헤치겠다고 뛰어들었고, 그의 시도가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선사한 것도 사실이다. 유전자의 비밀을 파헤친 왓슨과 크릭도 사실은 '생물학자 출신'은 아니었단다. 원래는 평범한 화학자였는데 슈뢰딩거 이후에 '새로운 영감'을 얻어 DNA의 나선구조를 기가 막히게 풀어낸 공로로 노벨상을 거머쥐게 되었단다. 이처럼 책 자체는 별볼일 없는 내용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널리 읽히는 까닭은 바로 '통섭의 힘'을 깨우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통섭이란 그저 해박한 지식을 뽐내며 이것저것 모두 통달한 지식을 쌓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과학의 눈으로 예술을 파악하고, 시인의 눈으로 날카롭게 사회비판을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통섭'인 것이다. 교육계에서도 이런 힘을 아이들에게 깨우치기 위해 '통합교과'를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스팀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배우는 처지에 놓인 이들이 '학습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 전공에 빠삭해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언제 두세 가지 전공지식을 쌓고 실력을 뽐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 까닭에 '통섭의 힘'은 결코 학습자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어서는 효과를 볼 수 없다.

 

  마치 '뉴턴의 사과'처럼 우연히 뉴턴의 어깨 위에 떨어진 사과에서 영감을 얻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린 것처럼,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처럼 피곤한 몸을 욕조에 담그는 우연한 일상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는 것처럼 '통섭의 힘'을 길러야만 한다. 결코 이학문 저학문 '학문의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며 방황하는 수준에서는 도저히 발휘할 수 없는 성격인 것이다.

 

  또한, 고수는 고수끼리 통하는 법이다. 요리에 통달한 요리사는 접시 위에 요리를 뛰어넘는 예술을 담아내는 경지에 오르기 마련이다. 어디 예술뿐인가. 뛰어난 요리사는 '영양학'을 연구한 박사보다 더 뛰어난 과학적 지능을 뽐낼 수도 있다. 이런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인재들은 의외로 많다. 명문대 출신 가수가 많고, 특히 수학에 능숙한 공대출신 가수가 뛰어난 가창력과 독특한 음색, 기발한 연주법으로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요즘에 '투잡'은 기본이다. 한가지 재능으로 평생을 먹고 살기가 참 힘든 세상이란 말이다. 이런 시절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해봐야 한다. 요즘 아이돌 가수도 노래만 잘해서는 부족하니 작곡도 할 줄 알고, 연기도 할 줄 알고, 예능도 잘 해야 한다. 요컨대 만능엔터테인먼트쯤 되야 성공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슈뢰딩거는 참으로 대단한 업적을 남긴 셈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열심이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려는 욕심만 키우다보면 이도저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과학도가 아닌 '일반독자'라면 <생명이란 무엇인가>보다는 이 책을 추천한다. 과학적인 지식과 영감보다 더 한 것을 얻게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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