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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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시대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 문학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까닭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면 그냥 맥락만 볼 때면, '미국판 막장드라마'와 다를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배경지식'도 없이 그냥 읽으면 그저 그런 '불륜소설'이고, 심지어 우리 나라 일일드라마보다도 재미가 없는 '통속소설'에 불과하다는 느낌만 받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래서 1차세계대전이 막 끝난 1920년대 미국 대호황의 시대를 이해하고 넘어가야만 한다.

 

  미국은 1차세계대전의 승전국이지만, 바다 건너 유럽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전할 생각까지는 전혀 없었다. 왜냐면 미국은 제5대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먼로가 선언한 '먼로주의'에 입각해 바다 건너 유럽의 간섭을 받지도, 하지도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접어들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패권국가였던 '대영제국'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대영제국이 다른 제국국가들의 거센 도전을 받다가 부침을 심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흔들리는 대영제국을 대신할 국가로 '미국'이 새롭게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1차세계대전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전황은 지지부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고 독일의 공세는 점점 세찬 광풍처럼 불어재꼈고, 영국과 프랑스는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기 때문이다. 이젠 미국의 도움이 절실해졌다. 엄청난 자원과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물량공세'가 승패를 가를 분수령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참전을 선언하고 '막대한 이익'을 톡톡히 챙겼다. 마침내 '먼로주의'는 폐기되다시피했고 전후의 유럽에 '미국의 입김'은 거대해졌다. 그리고 산업기반이 완전히 망가진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그들의 식민지에 '미국제 상품'이 쏟아지듯 들어갔다. 이로 인해 미국의 공장은 눈코 뜰새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새로 지은 공장에서 만든 물건조차 만들자말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기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주식시장도 '파란불'을 잊은 듯 온통 '빨간색' 천지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어제 산 1달러짜리 주식이 내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100달러로 오르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투자를 하면 할수록 돈방석에 오르기 십상이었고, 급기야 미국사람들은 '흥청망청'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것에 길들여졌다. 라디오, 냉장고를 비롯한 전자제품은 하나만이 아니라 방의 갯수만큼 사들이기 일쑤였고, 옷 같은 것은 하루 입고 버리는 등 돈을 써도써도 늘어나기만 했을 정도다.

 

  이렇게 흥청망청한 세상이 되면 으레 '날마다 파티'를 열어째끼며 온갖 향락을 즐기며 돈지랄을 하기 십상일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마침 미국에서는 '금주법'을 제정해서 술이 귀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청교도적인 발상에서 착안한 '금주법'은 또 한 번 아이러니하게도 범죄조직인 마피아를 배불려주고 말았는데, 마피아가 이 당시 '밀주'를 제조하고 유통하며 판매까지 '독점'을 하며 엄청난 부를 쓸어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프기 마련이고, 몰래 들여온 술인 만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막대한 이득을 범죄조직이 챙기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덕분에 '칵테일'이라는 술 비슷한 음료가 만들어지게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당시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면 '파티' 같은 것을 열어 술에 취해 헤롱헤롱대는 모습을 보여주기 쉽지 않은 차분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자, 그런데 이 책에서는 '매일밤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개츠비라고 하는 비밀스런 인물에 의해서 말이다. 그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유명인사를 비롯해서 돈 깨나 있다는 사람들은 몽땅 개츠비의 집을 찾아와서 미친듯이 여흥을 즐겼다.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이 휘몰아치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분명 '실제'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환락'을 배경으로 삼아 '불륜남녀'가 등장해 사랑을 나눈다. 청교도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건전한 미국가정에서 이 책이 읽기에 끔찍한 책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글쓴이인 피츠제럴드가 살아 생전에는 '그닥 많이 팔리지 않는 소설'이 되고 말았다. 그 덕분에 피츠제럴드도 비참한 생을 살다 불우한 죽음을 맞이했고 말이다.

 

  하지만 또 다시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피츠제럴드의 죽음' 이후에 각광받기 시작했다. 미국 독자들이 대공황을 지나 2차세계대전까지 치르고 나니 '그 시절'에 대한 향수라도 불러일으킨 듯 '그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각된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평론가들이 이 책을 '미국 문학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겼다는 것에 틀림없다는 자부를 하였고, 독자들 또한 이에 호응하듯 '판매부수'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순위권'에서 내려간 적이 없다고 하니, 이 책에 미국인들의 자부심이 곳곳에 담겨 있다는 평론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무엇이 그다지도 '미국스럽다'는 것일까?

 

  개츠비의 순수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앞선 리뷰에서 넘치도록 나불거렸으니, 이번에는 '데이지의 사랑'에 대해서 읊어보려 한다. 아무래도 데이지는 '영원한 소녀'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순진무구한 사랑'을 꿈꾸는 미 동부출신 아가씨다. 미국을 동서로 가르면, 동쪽은 부유한 귀족적이고 세련된 도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 방향인 서쪽 출신은 가난한 서민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서부개척(골드러쉬)'에 나선 거친 시골스런 면모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개츠비가 바로 서부출신이고 말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출신배경'을 가진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려 했으니 잘 될 턱이 없다. 그래도 데이지는 자신을 '공주 이미지'를 갖도록 추켜세워주는 귀족집안의 자제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서민출신'이라고 할지라도 사랑을 베풀어줄 넓은 아량을 갖춘 듯한 '꾸밈'을 묘하게 잘 하는 그런 사랑꾼이었다.

 

  다시 말해, 데이지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기에 자신과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재능을 타고났다. 이런 데이지에게 강렬한 첫사랑으로 등장한 남자가 바로 '개츠비'였다. 개츠비는 잘 생겼고 매너 좋았으며, 비록 '서민출신'으로 가난했지만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자신'에게 푹 빠졌으니 귀족아가씨가 사랑을 베풀어주기에 딱 좋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데이지는 개츠비와 불 같은 하룻밤을 보낼 정도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개츠비가 데이지를 얻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명예와 사회적 지위 따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서민출신인 개츠비가 전쟁에 참전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당시 미국 젊은이들은 '전쟁영웅'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부풀어있기도 했지만,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악당을 물리칠 '의무' 같은 것에 더 끌려서 참전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츠비에게는 돈과 명예를 얻어 '데이지'를 쟁취해야 할 목적이 더 분명했다.

 

  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를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데이지는 천성적으로 '사랑'을 갈망하는 타입이었고, 순수한 사랑보다는 뜨거운 사랑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젊은 아가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 많은 귀족가문의 톰 뷰캐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에 크게 거부감도 없었다. 마침맞게 결혼식날 날아온 '개츠비의 편지' 때문에 결혼식이 무산이 될 뻔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신혼여행을 떠난 데이지는 톰과 찐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이 훗날 다시 만난 '개츠비'에게 돌아갈 수 없게 한 이유였고 말이다. 결국 데이지는 '사랑, 그 잡채'를 원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가져다주는 환상과 허영에만 만족하는 '실속' 챙기는 여자였던 것이다. 속물의 대명사로 일컫는 '동가숙서가식'을 꿈꾸던 그 여인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끝내, 데이지는 모순덩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신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남편, 톰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가져다주는 '사랑의 징표' 따위에 헬렐레하고 마는 공주였다. 잠시 잠깐 '다시 돌아온 연인, 개츠비'와 만나서 '사랑의 추억'을 담뿍 느끼며 설레였지만, 거기까지였다. 데이지는 결코 '사랑의 도피' 같은 걸 할 수 있는 용기 따위는 없는 여자였다. 어쩌면 데이지는 톰과 개츠비를 오가며 '이 사랑, 저 사랑'의 단물만 쏙쏙 빼먹으며 지내는 것을 찐행복이라고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오, 그렇지만 이런 데이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왜냐면 토마스 뷰캐넌도 도덕군자처럼 입바른 소리는 곧잘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두고서도 '욕정에 불타오른 유부녀'와 달달구리한 섹스를 탐하고 또 탐하는 '욕망덩어리'였기 때문이다. 모순덩어리와 욕망덩어리가 부부라니, 정말 잘 어울리지 않은가?

 

  현대인들은 어쩔 수 없이 모순과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악과'를 따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일까? 겉으로는 이성을 지키는 척하지만 '남들 눈에 띄지만 않는다'면 본능에 충실한 유전자를 품고 있기 때문인걸까? 세상 가장 맛있는 사과는 '훔친 사과'라는 말도 안 되는 늘어놓으며 키득거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정말로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개츠비의 순수함'이 더욱 돋보이기 마련이다. 세상 모두가 타락해도 오직 '개츠비'만은 사랑을 믿고, 사랑으로 움직이며, 사랑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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