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41 : 논어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41
서기남 지음, 신명환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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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철학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 왜 그런가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우리는 철학을 공부할 때, '철학, 그 잡채'가 아닌 '철학자의 위대함'만을 떠들곤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철학에서 말하는 '인식론'이니 '존재론'이니, 또는 '영국의 경험론'이니 '대륙의 합리론'이니 뭔가 그럴듯한 이론들만 늘어놓고, 그걸 애써 끄집어내고 발견(?)해낸 철학자들의 업적(!)만을 나불거리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생님들이 먼저 '위대한 철학자의 위상'에 짓눌려서 학생들 앞에서 꺼뻑 죽는 소리를 하니, 그런 '철학자들의 위대함'만을 듣고 배운 학생들은 그런갑다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십상이다. 이러니 철학을 전공한 이들조차 '자기만의 철학'을 내세우기보다는 고작 '철학자의 위대함'을 해석해서 들려주고 말 뿐이다.

 

  그렇게 철학자들의 똥꼬만 추켜세워줄 바에야 '철학'을 아예 모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모름지기 철학이란 '비판의식'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위대하다면 '그의 철학'에 비판할 틈이 없을 정도로 빈틈이 없다는 것에 주목하고, 그럼에도 그가 남긴 '빈틈'을 찾아내서 더 위대하고 완벽한 철학으로 가다듬는 것이 '후학들의 의무'일 것이다. 훌륭한 학생들을 가리켜 '청출어람'이라 했거늘, 스승보다 더 나은 제자가 될 생각은 애당초 '시작'도 하지 않고, 어찌 철학을 배웠다고 할 것인가? 그렇기에 철학은 배우고 난 다음에 더욱 갈고 닦아 빛내야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니 '철학자의 위대한 똥꼬'만 바투 세우는 '철학공부'는 애초에 생각도 하지 말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개똥철학'일지라도 '자기만의 철학'을 시작하라. "소크라테스가 그랬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데카르트가 요랬대? 하지만 내 생각은 이런 걸!", "칸트가 그랬어? 그럴 듯 한대, 나라면 이렇게 하겠어"...얼마나 멋지냔 말이다. "나의 철학은 이렇다"는 말을 왜 못하냔 말이다. 너무나도 위대한 철학자들의 뿜어내는 밝은 빛에 어둠마저 가려지듯, '나의 철학'이 너무나도 초라해서 감히 말을 할 수 없기에, 그렇다는 변명 따위는 할 생각도 하지 마라. 그런 철학나부랭이를 나불거릴 거면서 뭣하러 '철학공부'에 뛰어들었단 말인가.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말이 있다. 장을 담그다보면 곰팡이도 피고, 구더기도 끼고, 그런 법이다. 그럴 때 우리 어머님들은 슬기롭게 곰팡이 핀 부분을 걷어내고, 구더기가 끼지 못하게 고추도 띄우고, 망도 갈아주고, 이 항아리에서 저 항아리로 장을 옮겨담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알뜰살뜰 장을 담가오셨다. 그렇게 우리 음식에 '깊은 맛'을 내주는 비법인 '장 담그는 법'을 전통으로 살려내 지금의 우리 음식에 다채로운 맛을 내주는 '근본'이 된 것이다. 어떻게 이제 '철학공부'를 제대로 할 생각이 좀 드는가?

 

  각설하고, 성현들의 위대한 가르침인 '철학'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비판의식'이다. 다시 말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그래야 오래 전의 철학이 오늘날에 다시금 생생히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특정종교의 '근본주의자'와 같이 철학자들의 사상을 맹신하며 '토씨 하나 틀림이 없어야 한다'는 그릇된 자세로 공부하려 드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많은데, 그럴 거면 '철학자'가 아니라 '종교가'가 되길 권한다. 철학은 얼마든지 비판이 가능하지만, 종교에서는 비판은 금물이기 때문이다. 비판도 하길 꺼린다면 차라리 '철학공부'를 그만 두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이 책, 공자님의 말씀인 <논어>도 날카로운 질문으로 시작해 날카로운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자세다.

 

  한편, <논어> 좀 읽어보았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길, "옳은 말씀이긴 한데, 오늘날에는 잘 안 맞아"라고 떠들곤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에도 똑같은 말을 수많은 사람들이 떠들곤 했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공자는 너무 '예법'을 따지고, '도덕'으로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고리타분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이 보기에 그렇다는 것은 쉬이 이해가 되는 바지만, 2300여 년 전에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그렇다면 공자가 말한 '유교사상'이란 오늘날에도 낡고, 과거에도 '낡은 사상'이었단 말일까?

 

  좀 따져보자. 공자의 제자들이 썼다고 전해지는 <논어>에는 '인(仁)'이란 글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리고 공자는 툭하면 '예의도덕'을 강조하고, 그것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한 철학자이다. 사실 '춘추시대'라는 것이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막 되먹은 세상이었기에, 옆 나라에서 힘을 길러 쳐들어올 것이 두려워 공자께 여쭈면, 공자는 "임금께서 몸소 예를 다하면, 신하들도 옳은 일이라 여겨 그대로 따라할 것이고, 백성들도 저절로 감화를 받아 그른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니, 나라가 태평해질 것입니다. 나라가 태평해지니 백성들도 살기 좋아 열심히 일을 해서 부를 쌓을 것이고, 신하들도 바른 정치로 나라를 부강하게 할 것이니, 어찌 이웃나라가 넘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임금께서 예를 다하시면, 그들도 바른 나라를 치는 것이 부끄러워 감히 쳐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으로 설교를 했다고 한다. 틀린 얘기는 하나도 없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답변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제관계도 '첨예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보면, '춘추시대'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이런 각박한 현실에서 '예의도덕'을 말하면 고리타분한 몽상가로 보이기만 할까? 그렇다면 '예의도덕'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오로지 '강 대 강'으로 강력한 무기를 선점해서 이웃나라에게 힘을 과시하며, 여차하면 '이토록 강력한 무기로 선제공격을 할끄얌!'이라고 떠세를 부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란 말인가? 공자도 적군이 쳐들어오면 용감하게 맞서 싸우라고 했을 것이다. 염치고 나발이고, 당장 죽게 생겼는데, 날아오는 미사일에 대고 호통을 친들 무슨 소용이겠냔 말이다. 다만, 아직 그렇게 공격 당할 것 같진 않으니, 먼저 '나라살림'부터 관리하고, 백성들의 '민심'부터 달래주어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제시했을 것이다. 더구나 공자는 '학자'이자 '선비'인데, 전쟁에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쟁전문가'와 같은 답변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가 생각한 바른 나라란 무엇일까? 문제를 해결할 평화적인 방법이 단 하나라도 남았다면 '그것'부터 시행한 다음에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나라의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온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길 망설이지 않는 나라라고 본 것 같다. 공자가 말한 '예의도덕'이란 그런 큰 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부끄러움(염치)'을 알고 불의를 참지 않으며 어진 마음으로 공명정대하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면, 저절로 부국강병한 나라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도 바로 그렇다고 본다. 이제는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거듭나야하는 마당에 자꾸 발목을 붙잡고 나아가질 못하게 하는 '어질지 못한 무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고 지목하지 않아도 눈에 뻔히 보인다. 왜냐면 우리는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내걸면 한없이 자랑스럽고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던, 그 경험 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불의스럽고 뻔뻔한 행동을 하는 나라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준엄하게 꾸짖었던 경험도 말이다. 적반하장으로 대한민국을 면박 주려던 '그 나라들'에게 대한민국은 어질지 못하고 부끄러운 짓을 일삼는 자들에게 "부끄러운줄 알라"고 당당히 말할 용기있는 국민들이 있다고 행동으로 보여준, 바로 '그 경험' 말이다. 지금 공자가 살아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예와 도덕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구나"하고 말이다.

 

  물론, 이 책 <논어>에 '대한민국'과 관련된 그런 말은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철학공부가 '공자님의 말씀'을 그대로 읊어야 하는 것이라면 하지 말라는 의도로 몇 자 적어봤다. 한때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면서 공자의 말씀을 '전근대적인 낡은 사상'으로 싸잡아 퉁쳐서 '버려야 할 것, 1호'로 낙인을 찍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어찌 '낡은 사상'이 공자왈 뿐이겠는가. 철학이란 늘 새로운 것이어야 마땅하다. <논어>에도 '온고지신'이라 하지 않던가. 옛 것을 배워 새롭게 하라고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선도국가로 나아가려 함에 '나침반'이 필요할 것이다. 그 나침반에 꼭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는 것에 반박할 이는 드물 것이고 말이다. 다만 '철학, 그 잡채'에 매몰되어 '낡은 사상'에만 매달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이제 오래 묵혀두었던 <서울대선정 인문고전>을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써내려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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