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한겨레 옛이야기 22
신동흔 지음, 노을진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 나라 판소리 여섯마당 가운데 하나인 '춘향가'를 이야기로 묶어낸 '판소리계 소설'이 <춘향전>이다. 원래는 '판소리 열두마당'이라 전해지는데, 대부분 유실되었고 신재효에 의해 판소리 여섯마당이 전해지고 있다. 여섯마당에는 '춘향가'를 비롯해서 '흥부가(박타령)',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이 정리되었다. 이 가운데 '가루지기타령'은 너무 야한 내용을 담고 있어 점잖은 소리꾼들은 잘하지 않아 요즘에는 '판소리 다섯마당'으로 정리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전해지는 <춘향전>은 판소리계 소설 가운데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사랑받고 있다. 특히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로 시작되는 '사랑가'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명곡이며, 완창을 하려면 총 7~8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마저도 간략히 추려서 핵심적인 내용만 부를 때 걸리는 시간이며, 완벽한 완창을 한다면 12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는 '판소리 유럽투어'를 떠났을 때, 이탈리아 극장에서 '춘향가 완창'을 요구했다가 된통 혼났다고 전해진다. 사연인 즉슨, 관객들의 매너가 좋기로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 극장측에서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완창'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12시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주의를 주었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하는 바람에 결국 완창을 시작했고, 한 번 시작한 이상 무대를 끝까지 듣고야마는 이탈리아 관중매너 때문에 12시간 동안 관객들이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고문(?)을 받은 끝에 감동의 피날레로 기립박수를 1시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는 믿지 못할 후문이 들리기도 했다.

 

  그때 '춘향가'의 가슴 절절한 소리꾼의 '소리조'와 '아니리' 사이의 오묘한 앙상블과 소리꾼의 적절한 '발림'으로 완벽히 알아듣지는 못할지언정 이야기의 맥락과 흐름을 가슴으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고 극찬을 했고, 12시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소리꾼'과 '고수' 단 2명이서 완창을 소화해내는 것을 보고 자국의 오페라 명가수들도 해내지 못하는 무대매너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3~4시간짜리 오페라 가수들도 길어야 2~3일간 무대에 오를 뿐이며, '같은 배역'을 2~3명 이상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무대에 오르기 마련인데, 12시간이 넘는 완창을 단 한 명의 소리꾼이 일주일을 공연하는 것을 보며 '신의 경지'에 올랐다면서 놀랍다는 말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호평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춘향전>의 매력은 무엇일까? 일단 판소리를 소설로 옮겼기에 그 매력은 '소리'가 전해주는 매력과는 사뭇 다른 '흡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팔 청춘 꽃다운 나이의 선남선녀가 아우러낸 사랑이야기라는 것이 첫 번째 까닭일 것이고, 두 번째는 기승전결이 딱 들어맞는 흥미진진한 이이갸구성일 것이며, 세 번째는 온갖 인물들이 벌이는 갈등과 억압적인 사회적 모순이 엮어낸 모진 고난을 이겨낸 두 남녀가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결실을 맺는 것으로 해소해버리는 통쾌한 결말을 맺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름지기 이야기가 '극적인 성공'을 얻어내기 위해선 주인공이 잘 생기고 아름다워야 한다. 더구나 꽃다운 나이 '열여섯'의 두 선남선녀가 맞났으니 혈기왕성한 두 사람이 벌일 일이야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배경'을 깔아놓았으니 이미 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구성이 두 남녀를 소개하기도 바쁘게 첫 만남부터 첫 사랑을 나누며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더니 '혼인약조'까지 나눌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그런데 덜컥 제동이 걸린다. 몽룡이 '과거급제'를 위해 서울로 떠나야만 한단다. 남자의 출세길을 막지 않으려면 춘향은 몽룡을 따라가지 않고 남아 몽룡을 기다려야만 하고 말이다. 이렇게 이별의 눈물바다를 만들어놓고서 더욱 눈물을 쏙 뺄 일이 남았다. 춘향이 기생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새로 부임한 사또의 수청을 들어야 한단다. 하지만 춘향은 일부종사, 이군불사, 삼종지법을 내세우며 이미 낭군이 있는 몸이니 정절을 지키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변사또는 천한 기생 주제에 정절 운운하다니 꽤씸하다며 온갖 매질을 다하고 옥에 가두고 만다. 그렇게 춘향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춘향을 죽을 위기에서 구하고 변사또를 벌하며 온갖 수탈로 억압받던 백성들의 설움을 해소하니 '최고의 절정'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해피엔딩 중에 해피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선남선녀가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장면과 자신의 목숨을 구한 어사가 실은 그토록 그리던 낭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은 독자들로 하여금 가슴을 절절 끓게 만들다가 한 순간에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장면이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명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거지꼴을 하고 변사또의 생인잔치에 사또의 부정부패를 낱낱이 밝히는 '칠언율시' 끝에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는 장면은 죽을 위기에 놓인 춘향의 목숨이 다시 살았다는 안도와 함께 탐관오리들에게 온갖 수탈을 당하며 곤궁함을 면치 못한 백성들의 설움이 일순간에 풀림과 동시에, 억울한 사연을 아무리 외쳐도 들을 척도 하지 않던 아전들이 제대로 된통을 맞게 되는 통쾌함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화룡점정의 순간'일 것이다.

 

  이처럼 <춘향전>은 단순한 사랑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울불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그렇기에 <춘향전>은 곱씹어가며 읽어야 할 고전이다. 더구나 천한 기생이 양반들이나 지키던 '정조'를 다하겠다는 서민들의 의식고양은 눈여겨 볼 일이다. 실제로 조선후기에는 일반 평민들도 웬만한 부를 이루며 살 수 있던 시대였다. 그로 인해 '평민들의 삶'은 차츰차츰 수준이 높아지고 있었고, 일부 평민들은 '양반' 못지 않은 의식주를 갖추게 되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또한 그렇게 부유한 평민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평민들은 '양반'들보다 더 양반 같은 행세를 했으며, 심지어 양반이 양반 같지 않다며 '비꼼'의 대상으로 만들어 풍자와 해학이라는 새로운 '서민문화'를 만들어냈으니 춘향이 양반흉내를 내고 있다한들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춘향과 몽룡은 '자유연애'를 시도하였다. 양반가의 아들과 천한 기생의 딸이 '혼인약조'를 한다는 것조차 놀라울 판에 부모가 점지해주는 짝이 아닌 자기 자신들 '스스로'가 정한 혼인약조 맺고 정절과 수절을 지키려 애쓰는데 아무도 놀라지 않고 있다. 마치 '그런 것'이 당연한 일인냥 말이다. <춘향전>은 시대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면모를 갖췄다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네 고전소설 속에서 으레 찾던 '시대적 한계'를 찾는 것보다 이런 선구적인 면모를 찾아내는 것이 더 의미 있다 할 것이다. '남자의 발목을 잡는 여인'이라느니 '여성의 해방이 아닌 한 남자의 아내로 만족한다'느니 하릴없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깎아내리는데 급급한 평론 따위는 개나 줘버렸으면 좋겠다. 비단 <춘향전>뿐이 아니다. 교과서에 실린 '우리 고전'은 죄다 '시대적 한계점'을 시험에 출제하며 달달 외우게 만든다. 외국소설을 보면서 '단점'을 꼽아보라고 시험문제를 내지 않으면서 말이다. 앞선 서양문물에 비해 뒤처진 우리네 전근대적인 낡은 사상을 직시하라던 '식민사관'과 다를 바가 없다. 하긴 해방 이후에도 교육계에도 상당기간 '친일적폐'들이 윗자리를 선점하였더랬으니 놀랄 일도 아니긴 하다. 암튼, 이제라도 '전근대적인 낡은 비판'은 집어치웠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 고전'은 다시금 조명해야만 한다. <춘향전>은 종종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교되곤 하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두 가문 때문에 죽어야만 하는 젊은 두 남녀 이야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되어 마땅할 것이다. <춘향전>에서는 젊은 두 남녀의 사랑을 가로 막는 것이 '사회적인 병폐 현상'이었고, 두 남녀가 끝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면서 '사회적 문제'도 아울러 해결해버리는 뜻깊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가방끈 긴 평론가들은 '희극(해피엔딩)'보다 '비극(새드엔딩)'이 카타르시스를 더 진하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값어치가 높다고들 하지만, 난 달리 생각한다. 이 세상에 '해피엔딩'보다 값어치 높은 것은 없다고 말이다. '죽느냐 사느냐 고것이 문제로다'라면서 고뇌에 쩌들기보다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며 십년 묵은 체증이 쭉 내려가는 듯한 통쾌함이 더 짜릿하지 않느냔 말이다. 우리네 고전이 더 맛깔 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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