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네버랜드 클래식 1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엘 그림 / 시공주니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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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책을 고를 때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더구나 부모가 '자녀교육'이라는 관점을 고려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교훈'이 담긴 이야기책을 고르려 하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녀가 독서도 즐기면서 '배울 점'도 있으면 참 좋을 것이라 막연하게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라면 '교훈'은 둘째치고 아에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선 부모가 원하는 '자녀교육'과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마는 셈이 되고 만다.

 

  그럴 땐, '교훈' 따위는 잠시 내려 놓길 바란다. 순수하고 온전하게 '재미'만을 추구한 이야기로 먼저 독서습관을 잡아놓은 뒤에 '교훈'을 슬그머니 챙겨도 결코 늦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100%의 재미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로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나면 기대했던 것만큼 '성과'가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무려 150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책이고, 디즈니 만화영화조차 70년 전인 1950년대에 선을 보여 흥행을 이끌었던 것을 간과한 결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요즘 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울 것도 없는 고리타분한 내용의 책이란 말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생생한 '이상한 나라'는 책속이 아니라 '너튜브(동영상) 세상'속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읽을만한 가치도 없는 낡은 옛책에 불과할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훌륭한 고전이라는 점을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또한 이 책의 알짜배기는 바로 '언어유희(말장난)'에 있다. 더구나 토끼가 옷을 쫙 빼입고서 고급스런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늦었다, 늦었어"라고 말하는 '판타지적 요소'가 교과서적으로다가 때려박혀 있는 '명품고전판타지'라는 배경지식을 언급해주지도 않고서 아이들에게 권해주는 것은 어리석은 부모들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아직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언어유희'를 배우고, 풍자와 해학을 즐기며, 판타지의 세계관을 익히는 고전중의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 어린이들이 그런 유익한 재미와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는 까닭은 '뒤침(번역)'이라고 하는 1차적인 문제점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발음(동음이의어)으로 엉뚱한 대화를 지껄이고, 원래의 내용과는 아주 다른 시와 노래를 읊고, 심지어 시시때때로 변해버리는 자신으로 '본래의 나'가 누구인지 헷갈려서 '본질'이라고 하는 철학적 고뇌에 빠져버리는 엉뚱한 소녀 앨리스를 보면서 웃음보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데도, 이를 우리말로 옮겨버리고 나면 그런 '원초적 재미'를 전혀 느껴볼 새도 없이 아주 요상한 이야기만 되풀이되고 말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풍부하지 못한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그저 그런 이야기책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그럴 땐, 어른들이 부연설명을 해주며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앨리스가 크로켓을 할 차례가 되었네. 그런데 앨리스는 칠 수가 없었어. 크로켓 공을 쳐야 하는 막대기가 살아있는 홍학이었거든. 앨리스가 여왕처럼 멋진 스윙을 하려고 힘껏 휘두르면 홍학이 얼굴을 들어올리고 앨리스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지 뭐니. 앨리스는 그런 홍학을 달래서 공을 잘 칠 수 있게 다시 한 번 스윙을 휘둘렀지만 또 칠 수가 없었어. 왜냐면 홍학이 또 얼굴을 들고서 앨리스에게 사정을 했거든. '정말 날 휘두를거야? 나 무척 아플텐데, 흑흑' 왜 그랬을까? 사실은 크로켓 공도 살아있었기 때문이야. 바로 고슴도치였거든. 고슴도치는 홍학이 자신을 치려고 하자 따꼼한 가시를 바짝 세우고서 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결국 앨리스는 크로켓 경기에서 질 수밖에 없었단다. 어찌어찌 고슴도치를 쳐봤자 공은 제멋대로 달아나기 일쑤였고, 골대도 여왕의 명령에만 따르는 카드병정이었거든. 깔깔깔"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에 책을 읽으면 '상상력'은 더욱 배가 되어서 글자가 살아 숨쉬는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어디 그뿐인가. 비싸디 비싼 '후추'를 온 집안에 날릴 정도로 뿌려대는 흥청망청 욕쟁이 귀족에게는 날카로운 풍자를 엿볼 수 있고, 앨리스가 어려운 일에 쳐할 때마다 도와주는 체셔고양이와 애벌레는 또 어떻고, 제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람에 앨리스를 도와주는 건지 골탕먹이는 건지 알 수가 없잖아. 거기다 제법 어른스런 충고를 해주는 존재가 고작 애벌레였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런 애벌레가 담배를 꼬나물고서 뻐끔거리는 장면에서는 '반어법의 정수'를 느낄 수 있지, 그리고 모자장수와 3월 토끼, 겨울잠쥐가 벌이는 엉뚱발랄한 티파티는 익살과 해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맛볼 수 있단다.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영어식 언어유희'를 통해 펼쳐지고 있는데, '뒤침(번역)의 한계'에 부딪혀서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쯤되면, 우리 나라 아동서적 1위 출판사인 [시공주니어]에서 '네버랜드 클래식' 제1권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꼽은 까닭도 절로 이해가 될 법하다.

 

  명작고전은 '베스트셀러'가 아닌 '스테디셀러'다. 단순히 '많이 팔린 책'이 아니라 '오래도록 사랑받고 널리 읽힌 책'이라는 부연설명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명작고전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손꼽고 싶다. 다만, 이 책의 장점인 '언어유희'와 '상상의 나래'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위해선 꼬꼬마 어린이보다는 초등학생 중학년 이상에게 권한다. 혼자서 읽으며 순수한 재미를 즐기기 위해선 중학생 이상의 청소년에게 권하고 말이다. 영어실력이 받쳐준다면 '원작'도 함께 즐겨보길 권한다. 영미권에서 왜 아직도 사랑받는 고전인지 그 이유를 잘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상상력'이라고 하는 훌륭한 교훈이 담겨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의 시작과 끝부분에 등장하는 '앨리스의 언니'와 사뭇 대조되는 것을 통해서 '앨리스의 엉뚱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상력=비상식'이라면서 비판의 대상이었고, 앨리스의 언니를 모범생으로 추켜세우고, 앨리스는 말썽이나 일으키는 엉뚱한 문제아로 비춰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어떤가? 모범생이 환영받고 있는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틀'에 잘 적응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법(?)이었던가? 21세기에는 '기존의 뻔한 틀'을 과감히 깨트리는 '파격적인 인재'가 환영받는 시대다. '틀에 짜여진 상상'은 이미 상상이 아니고 상상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녀가 이 책을 읽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만 있다면...애초에 '교훈'을 찾아 헤메던 부모들의 걱정거리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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