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2 :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 십자군의 원정로를 따라가는 시간여행 한빛비즈 교양툰 11
파니 마들린 지음,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수영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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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에서 <킹덤>과 같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열풍을 분 것처럼 서양에서도 <왕좌의 게임>과 같은 '중세'를 배경을 한 시대극이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긴 창과 방패를 장착한 채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마상시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을 흠뻑 쏟아낼 정도로 '중세'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허나 곧바로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는 상상의 이미지일 뿐, 현실과는 다른 것일까? 아니면 '시대극'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아름답고 낭만이 가득한 시대였을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중세는 꽤나 극과 극으로 갈리는 '모순의 시대'이기도 했다. 왕과 교황이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평민들의 생산력을 갈취하는데에는 한결 같이 최선을 다했다. 물론 합법적으로 말이다. 또한 평민들은 왕족과 귀족, 성직자, 그리고 기사 들에게까지 수탈을 당하면서도 엄청난 생산력으로 그럭저럭 넉넉한 삶을 살았던 시절이 바로 '중세'였다. 또한 여자에 대한 의식도 '원죄를 지은 이브'와 '성모 마리아'처럼 선과 악의 극단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중세의 기사들도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건 마찬가지였다. 현실에선 싸움질을 통해 이득을 챙기는 영락없는 조폭이었으나 '기사도'를 내세운 노래와 이야기속에서는 '전설적인 영웅'으로 등장해서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대상이 되곤 한다. 더구나 '아더왕의 전설'과 '성배(성유물)'를 구하러 떠나는 영웅의 이야기들은 실제 역사를 엄청나게 미화하였다는 비판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중세의 매력에 빠지는 것일까? 역사에서 짐작할 수 있는 '중세의 모습'은 비참할 뿐이다. 봉건제도라는 신분제도가 정립되면서 사회는 역동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고, 주어진 신분에 만족하고 주어진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신분상승을 위한 노력 따위는 왕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으므로 '소수의 세력다툼'으로 왕조가 바뀌는 정도였을 뿐, 중세인들의 삶이 크게 바뀌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중세는 '종교의 시대'였다. 신앙을 강조한 덕분에 경건한 삶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탓에 축제로 들뜨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조차 '이교도'나 '이단' 취급을 받을 지경으로 갑갑한 현실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이런 갑갑한 시대가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원래 '결핍'이 많을수록 조그만 '변화'에도 민감해지는 법이다. 장애가 없을 때보다 장애가 있을 때 '불편'을 더 많이 느끼지만 조금이라도 '불편'을 극복하거나 개선해나가면 행복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신분으로 억압된 사회속에서 살아야 '신분해방'과 같은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법이다.

 

  이렇게 모순이 많고 갑갑한 시대인데도 중세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우리가 사는 현대에도 여전히 많은 모순과 답답한 사안들이 많다고 느끼는 친숙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중세의 매력'을 탐구하면 할수록 오늘날의 문제점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는, 비유적인 표현을 하자면, '갑갑한 문제로부터 탈출구'를 찾는 심정으로 중세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런지...그러나 가장 현실적인 정답은 "그냥, 재밌다"가 아닐까? 왕자와 공주가 사는 판타지인데, 우리가 사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 낯설고도 낯익은 '모순'이 갖고 있는 매력에 흠뻑 빠지는 것일테다.

 

  이런 궁금증을 갖고 이 책을 접한 느낌은 설렘, 그 자체였다. 더구나 '십자군 운동'과 같은 중세시대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 연출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 말이다. 근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런 설렘과는 약간 '다른 각도'로 중세를 바라본 책이었다. 이를 테면, <십자군 운동>의 시작부터 끝까지 사건을 종합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십자군이 지나간 길'을 지나며 과거와 현재의 건축물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중세시대 '성직자의 삶', '기사의 삶', '농민의 삶', 그리고 '여성의 삶' 등과 같은 알찬 정보가 가득 담겨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기도 했다. 마치 책 속의 주인공들이 '성지순례자'가 되어서 중세의 길목을 누비며 중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오늘날의 일상을 비교하며 깊은 사색과 긴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이렇게나 알찬 책이었지만, '중세의 매력'을 잔뜩 기대했던 나였기에 살짝 미흡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중세가 그리 답답한 시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억압되고 종교적으로 어두운 시대라고 해서 '암흑시대'라고 불렸지만, 중세는 꽤나 '평등한 사회'였고, 때론 갈등이 심각해도 다투기보다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몰두했던 시대였다. 물론, 중세인이 생각하는 자유와 평등이 오늘날의 개념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또한, '평화로운 방법'이라는 것이 '마녀재판'처럼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정해진 답을 말하여 평화를 이룩하라는 강요일 때가 더 많았지만 말이다.

 

  이렇게나 중세는 결핍투성이에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였다. 짜고 치는 고스톱마냥 '파문'을 공공연하게 남발하여 '교황의 권위'를 드높이기도 했고, '성지탈환'이라는 그럴 듯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같은 편'을 공격하고, '유대인'을 수탈하곤 했다. 목적은 오직 하나다. 바로 '돈(이득)'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협잡과는 달리 '순수한 신앙'으로 세상을 정화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 인간다운 시대가 아닐까 싶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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