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2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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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생들의 나날'에 이어 '각신들의 나날'을 보낸 향안랑 4인방(대물, 가랑, 걸오, 여림)들의 대미가 장식된 마지막 이야기다. 드라마로도 인기리에 방영된 까닭에 줄거리가 궁금할 까닭은 없을 것이므로 과감히 스포일러를 포함한 총평을 남기고자 한다.

 

  이 책은 <꽃보다 남자>에서 비롯된 '꽃남 속의 여주인공'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남장여자'를 등장시켜 보이쉬한 여주인공이 꽃남과 달달한 연애를 이어가는 매력을 '사극 장르'로 한껏 끌어올려 독자들을 홀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극이 갖고 있는 중후함에다가 '조선판 F4'를 연상케 하는 '잘금 4인방'을 주인공을 캐스팅하였고, 그 가운데 한 명을 '절세미인'이면서 동시에 '꽃남'으로 변신시켜 <로맨스 소설>의 격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정은궐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후속작인 <해를 품은 달>(2011년)에서 또 한 번의 시대극 로맨스를 펼쳐보였다. 정은궐 작가의 '사극 로맨스소설'은 <홍천기>(2016년)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책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또 다른 까닭'은 바로 <로맨스소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꼼꼼한 '역사고증'에 있다.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성균관 유생들'과 '규장각 각신들'의 일상사를 아주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에 여자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있었고, 독자들도 시대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책속으로 흠뻑 젖어들어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대극'에서 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 어려운 까닭은 바로 '1차 사료'속에서 여자의 기록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에 남겨지지 않았기에 상상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을 법 싶지만, 그시절의 여자들이 어떻게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없으니,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까닭에 이야기를 만들기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타의 작품들 가운데 장르는 '시대극'인데, 등장인물들은 '현대인'으로 이질감이 묻어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런데도 정은궐은 당시의 '여성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현대극'에서처럼 달달한 로맨스를 그려내어서 감탄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심각한 '여성차별적인 요소'가 눈에 거슬리기도 하다. 여성을 온전한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았던 시대를 열연하는 등장인물이 보일 때마다 울컥하였고, 여성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장면에서는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은궐 작가는 연인들을 옥죄어서 독자들에게 더 큰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장치로 삼았다. 그런 점에서는 참 얄미운 작가다. 요리조리 잘 피해가니까 말이다.

 

  또한 정은궐 작품을 감상할 때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는 바로 '출중한 능력'을 가진 등장인물이 '애민정신'까지 갖춘 반듯한 이상형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가랑 이선준'이다. 조선시대 선비의 대명사였던 '조광조'가 떠오를 정도로 올곧고 반듯한 성품을 가진 선비가 지고지순한 사랑까지 하고 있으니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비단 정은궐 작품뿐만 아니라 '시대극'을 표방하고 있는 작품의 주인공 가운데에는 꼭 이런 인물들이 있으니 주목하며 읽으면 더욱 재미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을 준 것이 바로 '대물'의 등장이다. 올곧다 못해 꼿꼿한 주인공 감을 '서브'로 밀어내고, 가난에 쩔어서 현실적인 삶의 현장을 낱낱이 보여주는 여주인공을 전면에 등장시키며, 주인공 감을 감히(?) 조연으로 출연시킨 것이다. 물론 여주인공에게도 그에 못지 않은 '절세미인'이라는 가공할 설정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로맨스소설>은 달달함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며 깊은 감동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설정에 충실하였지만, 이 책은 그중에서 최고라는 타이틀만큼은 놓치지 않은 듯 싶다. 지금껏 정은궐의 아성을 뛰어넘은 작품으로는 <구르미 그린 달빛>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아직까지도 '미완'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작가도 주인공 일행이 '청나라에 다녀온 뒤'를 구상했을 것이다. 왜냐면 아직 풀어나갈 이야기가 넘치기 때문이다. 먼저 선준과 윤희가 펼쳐나갈 '신혼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 또한 윤희와 윤식이 서로의 역할을 바꾸고 난 다음에 벌어질 일들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디 이뿐인가. 문재신과 반다운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도 못다 그렸으며, 여림 구용하가 암행어사를 갔을 때 보여주었던 활약상으로 짐작할 수 있었던 '슈퍼파워'도 채 그리지 못했다. 더구나 <외전>의 성격을 보여주는 '여림의 본처 이야기'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왜 여림이 처를 사랑하면서도 온세상 여자들과 썸씽을 나누는 것인지 이야기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윤식'의 이야기도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누님에게 가리워져서 본래의 능력을 1도 보여주지 못했지만, 대물의 동생이기에 보여줄 수밖에 없는 그만의 '슈퍼파워'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면 '잘금 4인방'이라는 명성을 이어나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뒷이야기'가 나올 수 없는 까닭도 있으리라. 무엇보다 '잘금 4인방'이 몸 담고 있는 규장각을 든든히 해야할 정조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청나라에 다녀온 뒤에 활약할 수 있는 기간도 그리 길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겠다. 정조의 사후에 벌어질 일을 전개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정조가 승하한 직후부터 '탕평'은 무너지고, '노론 천하'가 되어버린다는 점이 '잘금 4인방'을 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한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그러면 더는 <로맨스소설>일 수 없게 되어 정은궐 작품이 되기에 적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뒷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예상은 되지만, 그럼에도 애독자로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수많은 팬들은 이 책을 <로맨스소설>의 정석으로 손꼽을 것이다. 소설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했던 팬들도 더 많았으니 두말 하면 입 아플 것이다. 가랑 역할을 맡았던 이가 '현실의 변태'로 밝혀지면서 대실망을 하였지만, 드라마의 품격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본다. 물론 팬들의 충격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암튼 또 다른 '정은궐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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