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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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은 고정된 형식을 벗어나서 자유를 만끽하며 즐기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풍조다. 그래서 '낭만'의 반대말이 '고전'이 되었다. 하지만 고전적인 아름다움도 우리는 함께 느끼곤 한다. 먼 옛날의 일상을 바로 눈앞에서 펼쳐보인 것 같은 생생함이 색다른 감흥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두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로맨스 소설'이라고 부른다. 그 로맨스가 바로 '로망'이고, 로망을 일본식 한자음으로 '로망(浪漫)'으로 쓴 것을 우리식 한자발음으로 '낭만'이 된 것이다. 여기 정은궐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하 <성균관>)은 바로 그런 '낭만적인 이야기'를 우리의 '고전적인 역사'로 투영시켜서 세련될 필체로 우리에게 읽힌 책이다.

 

  가끔 '책읽기 슬럼프'에 빠졌을 때 <로맨스 소설>을 읽곤 하는데, 이번엔 대차게 빠졌기에 이 책을 꺼내 들었다. 벌써 네 번째 읽는 책인데도 여전히 질리지 않고 재미나게 읽는 낭만 소설이다. 정은궐의 매력이 물씬 나는 책이 이것뿐이 아닌데도 유독 이 작품만 줄창 읽어댔다. 왜 그랬을까?

 

  첫째, 소재가 재미났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조선은 '유교 국가'였다. 그 때문에 '반상의 법도'뿐만 아니라 '남녀의 분별'도 대단히 엄격했다. 다시 말해,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따로따로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가득했던 시대란 뜻이다. 그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아무리 재주가 많은 여인이라도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전혀 없었다. 여자는 '칠거지악', '삼종지도', '남녀유별' 등등 온갖 족쇄를 달아놓고 집밖으로 함부로 나다닐 수조차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은 두 말하면 입 아플 지경이었다. 근데 <성균관>에서는 '남장여자'를 등장시켜 그 여인의 재주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이 어찌 신 나고 재미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둘째, 금녀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야릇한 상상이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 여타의 '낭만 소설'이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입맞춤 정도는 시시하고, 키스와 스킨십, 애무와 섹스를 넘나드는..일명 '선을 넘는 묘사'가 차고 넘치는데 반해서, <성균관>에는 그런 묘사를 최대한 절제하고 있다는 점이 독자를 더욱 감질나게 만든다. 물론 두 남녀 주인공에 한해서만이다. 대물과 가랑 사이에서만 절제될 뿐이고, 걸오에게선 검약, 여림에게선 넘쳐나다 못해 주체하지 못할 정도 과낭비하는 묘사를 해서 더욱 묘한 대비를 이룬다. 거기다 천하일색 기생인 초선과 규중가인 부용화까지 등장하며 여섯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나름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읽는 맛을 더욱 살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은 역사적 고증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다. 이는 '사극'을 다루는 소설에서 '선택' 사안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소설이 '허구의 세계'를 다룬다고 하여도 '역사적 사실'을 배격하거나 없는 사실을 억지로 껴맞춘다면 그 어색함이 단박에 눈에 띄어서 독자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에는 '사극 소설'이나 '사극 드라마/영화'를 통해 역사공부를 한다고 할 정도로 철저한 고증을 요구하는 독자가 더 많아졌다. 여기에 딱 맞는 작가가 바로 정은궐일 것이다.

 

  <성균관>은 조선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펼쳐낸 소설이다. 그리고 공간적 배경으로 '성균관'을 선보였다. 오늘날로 치면 '서울 국립대학' 격이지만 서울 명지동에 '성균관대학'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소설을 재미나게 읽은 독자라면 실제로 방문하여 '잘금 4인방'이 공부하던 곳을 직접 견학하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물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드라마가 나오기 훨씬 전에 성균관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외부인도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90년대면 너무 옛날인가...

 

  이 책의 색다른 묘미는 '사색당파 싸움'이 주인공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조정관료들의 당색이 그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어서 대를 이어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라는게 겉에서 본 '당파 싸움의 전부'이지만, 당파 싸움의 원인인 '해석의 차이'를 들여다보면 당시 조정관료들의 고심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노론, 소론, 남인으로 갈라져 허구헌날 싸우기만 했지만, 각자 나름의 이유와 고집은 있었던 셈이다. 허나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한낱 '명분'에 사로잡혀 세상 돌아가는 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조선을 우물 안의 개구리로 만들어버린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할 때, 조선에서는 장희빈이 사약을 한샷으로 먹네, 투샷으로 먹네하며 구중궁궐 다툼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낭만 소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금녀의 공간인 '성균관'에 여인의 몸으로 상유가 되어 조선 당대의 수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점에 충실하면 이야기는 더할나위 없이 재미지게 읽혀진다. 한마디로 '역사적 고증'까지 완벽하지만, 그딴 거 몰라도 이야기가 재밌게 흘러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한다.

 

  1권에서는 아픈 동생을 대신해서 과거를 본 윤희가 덜컥 생원과 진사에 합격해 성균관에 '거간수학(임금의 명령으로 성균관에 기숙하며 공부함)'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여인의 몸으로 남정네들이 득실거리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 걱정이 되면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미남자인 가랑 이선준과 '한 공간'에서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뜨게 된 대물 김윤희는 또 다른 미남자인 걸오와 여림을 만나면서 여성독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된다. 하지만 윤희는 생각 밖으로 '남자 행세'를 잘하게 된다. 천하일패 기생 초선의 도움으로 여인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별호 '대물'도 받게 되고, 미남자들과 어울리다보니 웬만한 남정네들이 훌러덩훌떡 벗어젖힌 맨몸을 보는 것도 '면역'이 빠르게 생겨버렸다. 그렇게 '성균관 생활'에 잘 적응하나 싶더니만 '남장행세'를 하였는데도 어쩔 수 없이 '여인의 마음'으로 질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바로 가랑 이선준에게 '부용화'라는 미인 처자가 들러붙은 것이다. 선준은 성균관 신방례 때 신세를 진 부용화의 부탁을 아니 들어줄 수가 없었는데, 윤희는 그것조차 마음이 아파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런가? 대물 김윤희와 가랑 이선준의 사랑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여기에 여림은 대물이 여자임을 확인하는 마지막 함정을 파놓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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