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사람 - 다니구치 지로 마지막 대담
브누아 페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타니구치 지로 / 이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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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났다.
종로에서.
아끼고 아껴 읽는다.
갑자기 가 버린 그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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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차례 - 제20회 편운문학상 본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67
김명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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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예 접히는 길도 서로가 그은 상처 아니라는 것!” 15

“무릇 강이란 피차가 일상이어도
건너다보는 맞은편 불빛에는 물기 돋곤 하는 것” 38

그는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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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여성 - 오리엔탈리즘적 페미니즘을 넘어서
리-시앙 리사 로즌리 지음, 정환희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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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족

“대체로 보아, 조정의 수많은 금지령을 견뎌내고 천 년 동안 지속된 문화적 관행인 전족은 너무나도 빤한 관점 그 이상으로 이해되어 야 한다. 즉, 전족은 남성에 의해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의 표식이자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 의한 여성의 희생을 나타내는 표식 그 이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대신에 전족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중국 문화의 예의범절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즉 여성은 천싸개의 바늘을 통해, 여자 조상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만들고 전수하였다. 둘째, 젠더 규범의 표식이다. 즉 ‘여성성‘은 여성의 신체를 의도적으로 가린 한 쌍의 묶여진 발을 통해 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민족적 정체성의 표식이다. 즉 청 조정의 권위에 대해 끈질기게 저항함으로써, 한족의 예의범절이 표현되었다.“ 292

”다만 여기서의 나의 논의가 전족 - 여성에 대한 승인된 사회적 폭력-의 잔혹성을 부정하려는 데 있지 않다. 6-7세의 소녀들은 자신들의 자연적 몸을 손상하여야만 했는데, 문자 그대로 생살을 잘라내고 발 뼈 구조를 재배열하면서 위험한 감염과 끝없는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9센티 정도의 아름다운 발‘이란 규범적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머니나 가족 구성원 중 여성 연장자에 의해 발이 묶여진 처음 2년 동안에는 충격적인 고통을 견뎌내야 했으며, 그 기간 이후에 소녀들은 남은 인생 내내 자신의 발을 감싸야 하는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오늘날 여성의 신체를 아름답게 하고자 하는 미용문신과는 달리, 전족은 생애적 과정lifelong process으로 여성 스스로 발을 묶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되었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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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락 창비시선 295
정끝별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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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오는 것들’
을 의연히 맞서는
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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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12-04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dalgial님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 한 해 수고 많으셨어요

dalgial 2023-12-04 23:50   좋아요 1 | URL
올 한해 애쓰셨습니다. 나와같다면님도 축하 드려요. 즐거운 책 읽기 계속하셔요~
 
유교와 여성 - 오리엔탈리즘적 페미니즘을 넘어서
리-시앙 리사 로즌리 지음, 정환희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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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유교와 중국의 성차별주의

흔히들 유교와 중국의 성차별을 동일시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 물론, 양자간에 아예 관계가 없다는 것이 아님. 필자가 볼 때, 유교보다 오래되고 중국 문화의 저간에 깔려 있는 성억압의 문화적 기초는 성씨의 연속 즉 부계의 유지, 조상 숭배, 효라는 세 가지 문화적 의무. 이 세 가지와 유교의 윤리, 문의 권력 사이의 복잡한 교차intersection가 성차별주의를 만든 것.

과부에 대한 고찰이 흥미로움.
과부의 정절은 원나라 때까지 제도로도 사회적으로도 이상이 아니었음. 성리학과 과부제도가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유교의 사서에서는 과부의 정절에 대한 강조가 전혀 없음. 고대에는 과부의 재혼이 일반적인 관행. 공자의 아들이 죽은 뒤 과부인 공자의 며느리는 재혼했으며, 공자의 손자인 자사는 그 재가한, 자신의 어머니를 애도함. 과부나 홀아비는 국가가 돌봐야 하는 대상이었음.
과부 이념이 성행한 것을 송나라 성리학의 토대를 닦은 정이의 “굶어 죽는 것은 정말 작은 문제이며, 정절을 잃음은 정말 큰 문제이다.”와 같은 진술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심지어 주희도 그 진술에 대한 논평에서 “남편이 죽은 뒤에 재혼하게 되면 정절을 잃게 되지만, 또한 부득이한 사람들이 있으니 성인도 이를 금지할 수 없다.”라고 했으며, 정이의 조카와 조카며느리 모두 재혼했음. 즉, 정이의 진술은 사회 엘리트들을 위한 규제적 이상으로 이해해야 함. 심지어 정이의 주장은 남편과 아내의 동등한 가치를 강조한 것. 남편도 아내와 평생의 유대를 가져야 하므로 남녀 모두의 재혼 금지를 주장한 것. 정이의 진술이 유행했음에도 과부의 정절은 원나라 이전에는 사회적 규범력이 되지 못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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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02 0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편이 죽은 뒤 재혼하면 정절을 잃는다는 주희의 주장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홍동백서 같은 제사상차림을 만들어낸 것도 유교를 추종하는 선비들이 만들어낸 창작품일 뿐, 정작 유교에는 이같은 제사상차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고 합디다. 과부나 홀아비가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감정이자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를 뭐라고 하는 학자들이 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